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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성삼문의 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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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成三問)의 서병(暑屛)

지금으로부터 五백여 년 전 세종대왕(世宗大王)때에 한 명신(名臣)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사육신(死六臣)중에 첫 손가락을 꼽는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이다.

그의 자(字)는 근보(謹甫)요, 또한 자(字)는 눌옹(訥翁)이요, 호(號)는 매죽헌(梅竹軒)이니 본시 창녕(昌寗) 사람으로, 낳은 곳은 애우고개(阿峴[아현]) 둥구재 밑이었다.

충문공이 명자(名字)를 하필 삼문(三問)이라고 지은 것은 다른 연고가 아니다. 공(公)이 낳기 삼일 전부터 하늘에서 분명히『낳느냐』하고 묻기를 공(公)이 출생(出生)되던 날까지 꼭 삼일을 연속해서 하루 한마디씩 세 번을 물은 일이 있어서 이름을 삼문(三問)이라고 한 것이다.

이같이 기이(奇異)한 일이 있는 것도 아무 사람이나 있을 일이 못되는데, 충문공은 출생 전후에 기이한 일이 이것뿐이 아니었다. 공이 출생한 후 석 달 동안을 동구재 산에 푸릇푸릇 나던 풀이 일제 나지를 않고 붉은산(赤山[적산])이 되었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충문공은 동구재 정기(精氣)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일렀다.

공의 사람 됨이 겉으로 보기는 회해방랑(詼諧放浪)한 것 같으나 안으로는 신실견확(信實堅確)하였고, 이 밖에 보통 사람으로는 감히 쳐다도 못볼 비상(非常)한 천재(天才)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한 가지는 정신(精神)이 어찌 명민(明敏)하뎐지 몇 만줄 내지 몇십만 줄 되는 책이라도 한번만 보거나 들으면 일남첩기(一囕輒記)로 능히 외어서, 공은 당초부터 글을 오랜 세월을 허비(虛憊)하여서 배운 일이 없었고, 불과 몇달 동안에 백가서(百家書)를 다 통달하였다. 또 한가지는 필재(筆才)가 탁월 하여서 글씨를 써 놓은즉 서기(瑞氣)가 나서 실로 고금(古今)에 없는 명필(名筆)이 당시에 짝이 없어서 문종대왕(文宗大王)께서 동궁(東宮)으로 게옵실 때 집현전(集賢殿)에서 어수학(御授學)을 하였다.

충문공(忠文公)이 자주 명국(明國)에 사신(使臣)으로 왕래하여서 명국 조신(朝臣)은 누구를 물론하고 친하지 않은이가 없었다. 그런 중에도 그중 가까이 친한 사람은 호부상서(戶部尙書) 주세응(朱世應)이었다. 그래서 공이 명국에 사신으로 가면 반드시 주상서(朱尙書) 사저(私邸)에 가서 유숙(留宿)하였다.

한번은 또 사신(使臣)으로 가서 국사(國事)를 마치고 주상서(朱尙書)를 찾아 갔더니 마침 주상서가 출타(出他)하여서, 그 아들 주번(週翻)이 나와 영접하니, 주번의 말이, 자기 아버지가 병풍(屛風) 한 벌을 백병(白屛)으로 꾸며놓고 그림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이 근처에는 유명한 명화(名畵)가 없어서 그림을 받지 못하였더니 마침 서촉(西蜀)에 유명한 명화(名畵)가 있다고 하여서 그 명화(名畵)의 그림을 받아야 할 터인데, 그는 원체 유명한 대가인 까닭에 앉어 청하여서는 오지를 않으므로 할 수 없이 부친(父親)이 친이 그 명화(名畵)를 청하러 서촉으로 갔다고 한다. 주번은 이와 같이 대답을 하면서 충문공이 자기 아버지와 친한 벗인 까닭에 일변 공(公)을 객실(客室)로 인도하였다.

공이 주번을 따라 객실로 들어가 앉은 뒤에

『대체 영대인(令大人)께서 어떠한 병풍을 얻어 두셨고, 또 어떻게 꾸며 놓았길래 그 귀학신 몸으로 서촉까지 가셨나?』

하고 물은즉 주번이 대답하기를

『네, 운남(雲南)사람 왕창(王昌)이가 음지(陰地)에다 오동(梧桐) 세 주를 심었다가 삼십년 만에 베어서 칠년 동안을 염수(塩水)에다 담것다가 꺼내서 양지에다 일년을 건조(乾燥)시키고, 또 다시 음지에다 일년을 건조한 뒤에 비로소 톱으로 켜가지고 조각조각에 돌을 달아서 다시 음건(陰乾)하기를 삼년 하여 곧기는 철장같고 가볍기는 한 장 백지(白紙) 같아서 진실로 귀품(貴品)이요 누구나 두기 어려운 보물(寶物)이올시다. 왕창(王昌)이 이 같은 병풍(屛風)을 세 벌을 짜서 황상(皇上)께 바쳤더니 황상(皇上)께서 녹주(綠珠) 일두(一斗)를 하사(下賜)하옵시고, 또 한 벌은 승상(丞相)에게 하사(下賜)하옵시고, 또 한 벌은 가친(家親)에게 하사(下賜)하옵셔서, 가친께서는 어사(御賜)하신 물품일 뿐만 아니라 그 물건의 근본이 그렇게 다수한 세월과 많은 공이 든 까닭에 세상에 다시 없는 귀품(貴品)으로 아셔서 그렇게 수천 리 원정(遠程)에 친히 가셨읍니다.』

한다. 충문공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 ― 그것 참 귀중품이요 공든 물건일세 그려. 그 병풍 재료를 만드는 동안이 그렇게 많은 세월이 걸리니 그 재료를 만드는 동안에 많은 공이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첫째 명이 짧은 사람은 해볼 수 없는 일일세. 하 ― 그렇게 귀중한 보물을 얻어 놓셨으니까 천리 아니라 만리인들 아니 가시겠나. 어 ―그것 참 귀한 물건인걸………. 자— 그러면 이제 어르신네가 아니 계신데 어려운 말일세마는 그 병풍을 좀 구경할 수가 없겠나?』

『네, 존공(尊公)께서 보시려고 하시는 것이야 가친(家親)이 아니 계신들 못 보실 것이 없으시겠죠만, 자식된 도리에 부형(父兄)이 두시고 가신 것을 임의(任意)로 보여드리기가 너무 황송합니다.』

『어― 그러하겠네. 낸들 그런 인사를 모르는 것이 아닐세마는 어르신네와는 동기(同氣)같은 사이인 까닭에 보기를 청한 것일세.』

주번이 차마 강박히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하기를

『그 병풍을 가친께서 여간 애끼시는 것이 아니오깐 제 자의(自意)로 손님을 보여 드릴수가 없읍니다마는, 존공(尊公)은 가친(家親)과 교우(交友)가 두터우셔서 가친이시나 다름이 없어서 보여드리기는 하겠읍니다. 그러하오나 자식된 도리에 대단 황송(惶悚)합니다.』

이같이 말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 가더니 싸고 싸둔 병풍을 가지고 나와 싼 것을 곱게 펴고 병풍을 꺼내서 죽― 펴 보이는데, 충문공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본즉 병풍 무고리와 장식을 순금(純金)과 오금(烏金)으로 찬란(燦爛)히 꾸미었고, 바탕은 눈이 부신 백릉촉단(白綾蜀緞)으로 정교로이 만들어서 눈이 현황(䝮煌)하다.

공(公)이 병풍(屛風)을 앞에다 죽 펴 놓고 정신을 모아서 보고 있는데, 이 때 주전은 공(公)을 대접할 준비를 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공(公)이 조용한 틈을 타서 일어나 문갑(文匣)을 다리어 먹을 대강 갈고 대필(大筆)을 들어서 먹을 흠뻑 묻혀가지고 병풍을 향하여 되는대로 휙휙 뿌려서 그 좋은 보물을 아주 억망을 만들어 놓고 태연히 앉어 있으니 얼마 후에 주번이 주효(酒肴)를 차려가지고 나와서 본즉 큰 일이 생기었다. 대체 어찌 된 연고인지 모르나 그 아버지가 이 세상에는 다시없는 보배로 알아서 몇 십리 걸음을 아니한던 몸으로 수천 리 먼 길을 문 앞 같이 생각을 하고 가기까지 한 보물덩이 병풍에 다 거무칙칙한 먹물을 되는대로 뿌려서 아주 흉상망상(凶像亡象)을 만들어 놓아서 세상에 없는 보물 병풍은 고사하고 단돈 서푼짜리 병풍이 못되게 되었다. 그러니 이것을 본 부번이 얼마나 놀랐을 것인지는 묻지 않어도 가히 알 것이다. 곧 경풍(驚風)을 하리만치 놀라서 나오는 줄도 모르게「어!」소리를 냅다 지르고 뒤로 자빠지려고 하다가 간신히 진정을 하면서 충문공을 건너다 보며

『아, 그런데 저게 웬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공이 주번의 놀라는 것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없지 못해서

『어, 너무 놀라지 말게. 내가 그렇게 했네.』

하였다. 주번은 공이 내가 했다는 기맥히는 말에 그만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누섭 사이에 내천자만 그리고 서 있다가 입맛을 한번 쩍 다시면서

『어, 어쩌시려고 저렇게 해 놓셨읍니까. 당초에 이 병풍을 가친 말씀이 계시지 안을 때는 뵈여드릴 수가 없는 것을, 저는 존공(尊公)을 꼭 가친(家親) 같이 생각하고 또는 아무리 귀중한 물품일지라도 보셔서 무관할 줄로 알아서 잠시 보시게 한 것인데, 저 모양을 해 놓았으니 일간 가친께서 돌아오시면 무엇이라고 말씀을 여쭈오며, 그러하오나 이것은 오히려 둘째요, 황상(皇上)께서 사송(賜送)하신 막중하온 보물을 버려놓았으니 신자(臣者) 도리에 큰 죄를 져서 황송(惶悚)합니다. 그리고 불일간 가친(家親)이 화사(畵師)를 데리고 오시면 무엇을 그려달라고 하올지 생각을 하오면 도무지 기가 막힙니다.』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공(公)이 남의 집 손으로 와서 잘 보여 주지도 않는 보물을 억지로 본 것만도 염의없는 일인데 하물며 무슨 심사로 남의 귀중한 물품을 여지가 없이 망쳐놓았으니 그게 대체 무슨 심사인지 참 없이 망쳐 놓았으니 그게 대체 무슨 심사인지 참 추측키 어려운 일이다.

가량 공이 준준(蠢蠢)한 용부(庸夫)라도 귀천(貴賤)과 내 것 남의 것은 알아서 무단히 남의 귀중한 물건을 버려 놓을 리가 만무한데, 하물며 공은 막중(莫重)한 국사(國事)를 담임(擔任)한 사신(使臣)이요, 또 공은 문필(文筆)과 재질(才質)이 당시(當時)에 뛰어나는 명사(名士)이니 귀천(貴賤)과 염의를 몰라서 그렇게 했다고 할 수는 없고 그 밖에 무슨 심사로 그랬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하면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했다고 할까. 혹시 정신에 이상이 생기어서 그랬다고 할까? 도무지 그 뜻이 참 알 수 없는 의문(疑問)이다. 대체 공이 병풍을 무슨 뜻으로 버려 놓았던지 간에 이것은 논의할 것도 없거니와, 어쨌던지 남의 중보(重寶)를 버려 놓았으니 그 주인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충문공은 큰 일을 저질러 놓고도 조금도 불안하거나 미안한 기색이 없이 태연히 앉어 있다가 천천히 주번을 건너다 보면서 진중한 어조로 대답을 한다.

『어 ― 자네 그렇게 걱정할 것 없네. 귀중한 보물(寶物)을 버려 놓기는 내 잘못일세마는 기위 그렇게 된 것을 어찌할 수가 있나. 자 ― 별수 없네. 결자해지(結者解之)로 내가 그릇쳐 놓은 일인즉 나중에 모든 죄책(罪責)은 다 내가 담임(擔任)하여서 자네게는 일호도 죄책(罪責)이 돌아가지 않게 할 터이니 조금도 염려 말게.』

주번은 전후를 생각하면 곧 펄펄 뛰어도 시원치 않으나, 충문공의 말과 같이 파기(破棄)는 부득성신(不得成新)으로 이왕 그 지경이 된 것을 뛴다고 고쳐질 이는 만무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음을 진정하고 보기도 싫은 병풍을 접어서 들여다 두었다.

그 이튿날!

재를 넘는 석양은 동편 다락에 붉은 빛을 토하였고, 집집이 일어나는 저녁 연기는 푸른 하늘을 덮는다. 이때 문 밖으로 하인이 분주히 들어오며 상공(相公)이 돌아오신다고 전한다.

이 말을 들은 주번이 깜짝 놀라서

『뭐! 상공(相公)이 오시어?』

하면서 전지도지(顚池倒地) 뛰어 나거더니 조금 있다가 문전이 요란하며 주상서(朱尙書)가 어떤 수자(豎子) 두 명을 데리고 들어오시더니 수자는 다른 방으로 인도를 하고 자기는 바로 사랑으로 들어오니 충문공이 문을 열고 마주 나오며

『아, 형이 서촉(西蜀)을 가셨다더니 수천리 원정(遠程)에 무사히 왕반(往反)하시니 감사 합니다.』

치사를 하였다. 주상서(朱尙書)가 흔연히 웃으면서

『네, 나는 염려하신 덕택에 머나먼 길을 무사히 다녀옵니다마는, 형은 공교로이 주인이 없는 때 오셔서 대접이 서어하여 대단 미안합니다.』

하면서 충문공과 같이 방으로 들어와서 앉으며 일변 주효(酒肴)를 내다가 주객이 진취(盡醉)하였다.

상을 물린 뒤에 공(公)이 주상서(朱尙書)를 보고 묻기를

『영윤(令允)한테 들은즉 형이 병풍에 그림을 받으려고 화사(畵師)를 구하러 그 먼 길에 갔다오셨다고 하더니 그래 마땅한 화사를 구해 오셨소.』

『네, 유명(有名)해서 데리고 왔읍니다.』

주상서가 이같이 말을 마치면서 일변 그 아들을 부르더니 병풍을 내오라고 한다. 주번(周翻)이 마지못해서 병풍을 내다 놓고는 그만 뜰로 내려가서 대죄(待罪)를 한다. 주상서는 영문을 몰라서 병풍을 끌러서 죽 ― 펴다가

『어! 이게 웬 일이냐.』

소리와 함께 방에가 털썩 주저앉었다. 그리고 다시 그 아들을 내려다 보며

『아 이게 대체 웬 변이냐?』

하고 물었다. 그러나 주번은 아무 대답을 못하고 업드려 있을 뿐이다.

이때 충문공이 옆에 앉아서 수염만 만지고 있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병풍은 내가 그렇게 한 것이요, 영윤은 아무 죄도 없소』

하였다. 주상서(朱尙書)가 그 말을 듣고 기사 막혀서 충문공을 쳐다 보면서

『아니, 내가 하다니. 저 병풍이 비록 일개 병풍이지만 그 품질이 썩 귀한 품질이 되어서 명나라 천지에서는 다시 구활 수가 없는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저 모양을 만드셨소.』

하며 낙심천만(落心千萬)을 한다. 충문공이 짐짓 천천히 대답하기를

『내가 그 같이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을 들은즉 그 병풍이 대단히 귀한 병풍인데 그렇게 귀한 병풍에다 받기로 하면 유명한 글씨를 받지 않고 하필 그림을 받는가 해서 남의 일이라도 분하고 심증이 나서 그리 했소.』

주상서가 그 말을 듣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앉아서 보기만 해도 심증이 저절로 나는 병풍을 들여다 보며 음! 소리와 입맛을 아울러 쉬일 새 없이 다시더니 충문공을 돌아다 보면서

『이왕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했으면 글씨나 쓰게 했어야 글씨를 받지를 않소? 그런데 저것은 그림도 못 받고 글씨도 못쓰게 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좋소?』

하면서 그만 기가 막혀서 껄껄 웃었다. 충문공이 천연한 빛으로

『글쎄 가만히 있소. 어디 화사(畵師)를 불러서 그대로 그리겠나 물러 보는 것이 좋을 듯하오.』

하였다.

주상서는 물론 가량없는 일인 줄 알지만 하도 답답하여서 그 아들을 보고 일어나 가서 화사(畵師)나 불러 오라고 하였더니 얼마 있다가 주번이 더벙머리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주상서가 수자(豎子)를 보고 병풍을 가리키면서 저 병풍에 그림을 받으려 했던 것인데 실수가 되어서 저 모양이 되었으니 어떻게 그대로 삭여서 그려보겠냐고 물었다. 수자(豎子)가 병풍을 건저다 보더니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저게 어떻게 되어서 저 지경이 되었읍니까. 보물을 버렸읍니다. 대체 그림이란 것은 묵화(墨畵)던지 색화(色畵)던지 간에 결백(潔白)물을 뿌려 놓은 데다 어떻게 그릴 수가 있읍니까. 이것은 아무라도 그럴 수가 없으니 참 아까운 병풍(屛風)을 버렸읍니다.』

하면서 밖으로 나가더니 총총하다고 하면서 곧 인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 갔다.

수자(豎子)가 돌아간 뒤에 주상서는 더욱 기가 막혀서 맥맥히 앉어 있으려니 공(公)이 상서(尙書)를 보고 말 하기를

『그 수자(豎子)들이 명화(名畵)가 될 수가 없오. 소위 명화라고 명칭(名稱)을 하면서 그까짓 것 하나를 삭이어 그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버리니 그리 하고 무슨 명화(名畵)라는 이름을 듣는단 말이요.』

하였다. 상서가 공의 말을 듣고 한참 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아니 저렇게 함부로 먹을 뿌려 놓은 것을 어떻게 삭여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소. 당초 내가 저런데다가 그림을 그리겠느냐고 물은 것이 염치없는 사람이지.』

하고, 이어서

『지금 형의 말씀이 저런 것을 삭여서 그림을 못 그리면서 무슨 명화라고 하느냐고 하니 그러면 그 사람들은 명화가 못되니까 삭여서 그림을 그릴 수가 있겠오.』

하고 물었다.

이때 공이 수염을 쓰다듬어 천천히 대답하기를

『그 말씀은 내가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을 아는 까닭에 나를 조롱하는 말씀이지만 내가 만일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면 저런 것은 그만두고 저보다 더한 그림은 못 그리는 것이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만약 날더러 글씨를 쓰라고 하면 저렇게 정신없이 뿌려놓은 먹점이라도 한 점도 드러나지않게 쓰겠오.』

하였다.

상서가 그 말을 듣고 역시 가당치 않은 말이나 이왕 그 병풍은 버린 병풍이니까 아무거나 시험을 해 보는 것이 좋을 줄로 생각이 들어서, 공을 건너다 보며

『그래 저 병풍에다 글씨를 쓰면 정말 먹점이 들어나지 않게 쓰시겠오?』

하고 의심스러이 물었다.

『네 그렇고 말고요. 대저 무엇이던지 잘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능히 못하는 것을 잘해야 방가위지(方可謂之)잘 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지, 아무 결점이 없어서 다른 사람도 다 잘 할 것을 잘하는 것이야 누구나 다 잘할 것이 안요? 자, 글씨를 받기로 하면 내가 잘 쓰지는 못하나 어디 써 보리다.』

하고 공이 소매을 걷고 달려들어서 먹을 많이 갈고 큰 붓에 먹을 흠뻑 묻혀 가지고 그 크고 적은 먹점을 정신없이 뿌려 놓은 위에다 붓을 탁 대더니 그

수없는 점을 눌려가면서 일필휘지(一筆揮之) 수천 자를 썼으나 그 많던 점과 지저분하던 먹물이 파리똥만한 점 하나 드러나지 않고 내려 쓰다가 그 끝에 가서 사람인자를 꼭 써야 되게 되었는데 사람인자 오른쪽 파임 위가 똑 파리똥 같은 먹점 셋이 나란이 찍혀 있는데 그자를 잡을 터이요, 그렇지 않고 제대로 쓰자면 점 셋이 들어날 모양이 되어서 공이 잠깐 머뭇거리가다가 문득 붓을 들어 석 점을 조금씩 삐치면서 이것은『성삼문체(成三問體)』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다 써놓고 본즉 글씨가 자자주옥(字字珠玉)이요 용사(龍蛇)가 비등(飛騰)인데 당초에 그 흉참(凶慘)하던 먹점은 털끝만치도 드러나지 않았다.

이같이 놀라운 광경(光景)을 묵도하고 앉았던 상서와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혀를 홰홰 내두루며 공(公)의 귀신(鬼神)같은 필법(筆法)에 놀라는 중, 상서는 한층 더 놀라고도 기뻐 마지 않으니, 그림을 받으려고 누천리(累千里) 밖에 가서 간신히 화사(畵師)를 데려왔다가 병풍이 그 모양이 된 것을 보고는 그만 기가 막혀 몸부림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공의 낯을 보아서 간신히 참고 있었으나, 그러나 세상에 드문 보물을 일조(一朝)에 버린 생각을 하면 불길 같은 심증이 올라와서 견딜수가 없다가, 공이 그 흉악한 먹점을 가려 가며 주옥같은 글씨를 써서 아주 훌륭한 서병(書屛)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어찌 상쾌한지 몰라서 즉시 공에게 사례하기를

『아 ― 우리가 친한지가 오래 되었으나 형이 이 같은 필법(筆法)이 있는 줄 알었더면 무슨 까닭으로 그 잡된 그림을 받으려고 서촉(西蜀)까지 갔을 리가 있었겠오.』

하면서 즉시 주찬(酒饌)을 내다 대접을 하며 무수히 치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병풍에 글씨를 받은 뒤로부터는 밤에 병풍을 처 놓으면 불을 아니 켜도 마치 불을 켜 놓은 것과 같이 방중(房中)이 환하게 서기(瑞氣)가 나서 그 병풍이 비로소 천하에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