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제승당 비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전문[편집]

이충무공 계시던 제승당의터다

후면[편집]

이충무공이 「세도」「수군」을 「통제」하실ᄯᅢ 뭍에 오르면 여긔계섯다 헐어지고 다시세고 몃번이라 바로 그집은 아니나 누구나 눈속 마음가운데 「제승당」이 희미하여진적이 업음으로 삼백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계실제 그곳을 그대로 그리어나려왓다 「비」에삭여 전한바도 잇거니와 「비」아니라도 두렷하다 거의부서지던 나라를 혼자 붓드시니 이충무공은 한민족의목숨이섯다 해상작전을 지휘하시던데가 여긔요 적을 지치어 큰공을 세운이들을 상주시던데가 여긔요 밤이 새도록 걱정으로 못주무시던데가 여긔다 저 퍼런바다나 멀고 갓가운 섬과 산이나 다 그ᄯᅢ의그것이요 오고 가는 「해오리」까지라도 그ᄯᅢ에 보시던것과 달르지아니하려니 여긔서 이충무공을 생각하라 친히 뵈압는듯도 하니라

그동안 이ᄯᅡᆼ이 욕속에 잇은지 사십년이 넘엇다 그ᄯᅢ 적을 물리치시던 매운긔운이 은연한속에 우리나라를 버틔신지라 옛강토가 차례로 우리손에 도라오게 되였다 ᄭᅵ치신바 이러하시니 잠시 「배」그림자가 시치였던 물가의나무가 잇다할지라도 맛당히 밧들어 직히려든 이「제승당」은 중하기 저러하니 「비」하나만에 부족하야 다시 이돌을 사기는것도 그러할바요 ᄯᅩ 「중소학학도」들이 힘을 모아 이 일을 하니 알음이 계시면 긔특다하실만하다

알라 터도 터이려니와 이충무공의마음을 직히라 차저노흐신 삼천리를 하로밧비 한덩어리를 만들어야할것을 우리도 산 바다에 「맹서」하자

라이선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