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신라 진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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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第二世 女王 眞德女王 勝曼

진덕여왕(眞德女王)은 신라의 제이세 여왕이다. 이름은 선덕여왕과 같은 항렬로 승만(勝曼)이라 하였으니 진평왕의 모제 국반의 딸이다. (眞平王 母弟 國飯의 女) 그는 여러 신하의 추대로 선덕여왕의 뒤를 니어 왕이 되었으니 신장이 칠척이나 되고 손이 무릎 아래까지 나려와서 그 웅대한 체격된 품이 여간한 남자로는 감히 어깨도 견주지 못하게 잘났었다.

그는 왕위에 나아가며 조원전(朝元殿)에 어거하야 만조백관의 조하례(朝賀禮)를 받았으니 우리 조선 역사상에 있어서 역대 군왕으로 하정의 례(賀正之禮)를 받게 되기는 이 왕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왕은 절대로 중국의 문화를 숭배하야 관복(冠服) 제도까지도 모도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였으니 우리 조선 사람으로 중국의 관복 제도를 그대로 본뜬 것도 이때부터 시초였다. 그러나 중국을 너무 숭배한 결과는 자국의 독립성까지 아주 상실하고 자진하야 당나라(唐國)의 신속이 되기를 달게 녁이였으니 그가 김법민(金法敏=뒤에 文武王이 되었다)을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낼 때에 자기 손으로 소위 태평송(太平頌)이란 것을 짓고 그 문의로 비단을 짜서 당제에게 보낸 것은 그 글의 잘된 것과 직조의 교묘한 점으로 보아서는 그때의 사람은 그만두고 지금까지라도 감탄할 만하지마는 그 사의에 있어서는 대단이 창피하야 역대에 당당하던 독립국인 신라의 체면을 손실하고 누욕을 천추에 끼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이야 여하던 일반의 참고가 될가 하야 아래에 그 원문을 기록하고 글이 너무 호번한 까닭에 유감이나마 번역은 피하기로 한다.

太平頌 (親製)

大唐開鴻業, 巍巍皇猷昌. 止戈戎衣定, 修文繼百王. 統天崇雨施, 理物體含章. 深仁諧日, 撫運邁時康. 幡旗赫赫, 鉦鼓何鍠鍠. 外夷違命者, 剪覆被天殃. 淳風凝幽顯, 遐邇競呈祥. 四時和玉燭, 七曜巡萬方. 維嶽降宰輔, 維帝任忠良. 五三成一德, 昭我唐家皇. —(三國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