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유충홍 부인 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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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僉知 (유첨지) 忠弘 (충홍) 夫人 (부인) 許氏 (허씨)

첨지 유충홍(僉知 柳忠弘)은 선조 때(宣祖 時) 사람이요 그의 부인 허씨는 승지 허관(承知 許寬)의 딸이다. 부인은 평생에 가법을 엄중히 지켜서 그의 남편을 섬기되 손님과 같이 하여 극히 공경하고 평상에 의복과 음식을 극히 화려하고 풍부하게 하여 남편을 공궤하며 어떠한 일이 있던지 자기 남편의 앞에서 눈썹 한번을 찌프리지 않으니 그때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하는 까닭에 그의 남편이 비밀히 첩 장가를 들려고 잔칫날까지 받아 놓았었다. 부인은 그 소문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역시 남편 모르게 성대하게 잔치 제구를 준비하여 놓고 있다가 그날에 가서 그의 남편이 장가를 가려고 나아갈 즈음에 종년으로 하여금 의장 속에 준비하여 두었던 새 옷을 꺼내다가 신부와 같이 입고 또 미리 준비하였던 잔치상을 차려 놓은 다음에 부인이 그 앞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의 남편은 그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물은즉 부인이 웃어 가로되 처음에 당신과 혼인을 할 때에 이러한 예로 만났은즉 지금 당신이 나를 버리고 가는 때에도 마땅히 이러한 예가 있어야 하겠다 하니 그의 남편이 그만 기가 막혀 그 일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 뒤에 그의 남편이 돌아가니 그는 장례를 지내기 전까지 입에다 물 한 목음 장 한 숟갈을 대지 않고 또 三년상 동안에는 꼭 죽만 먹고 三년 후에도 평생에 소의 소식을 하며 죽는 날까지 조석 상식을 받들되 꼭꼭 절목이 있어서 과일 五六 그릇, 탕 六七 그릇은 의례 해 놓으며 날마다 해가 저물면 여자 종은 모두 안으로 들어 와서 시위를 하고 문을 꼭꼭 잠거서 다른 사람은 중문 이내에 들어서지를 못하게 하고 남자 하인은 반드시 문 밖에서 거처하게 하며 날마다 기명 등속과 살림 제구를 一一히 정돈하여 한번 쓴 다음에는 그 두었던 자리에다 두고 옮기지 못하게 하니 누구나 다 그의 집 가규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