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장성기 노화와 노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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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城 (장성) 名妓 (명기) 蘆花 (노화)盧御使 (노어사)

노화(蘆花)=(혹은 노아(蘆兒)라고 한다)는 이조 성종 대왕 때(李朝 成宗時) 전라도 장성(全羅道 長城) 명기였다. 자색(姿色)과 재예가 일세에 관절하여 수령(守令)이 모두 침혹하고 사객(使客)들이 또한 오래 머물러서 공사를 전폐하게 되니 그 폐해가 여간 적지 않았다. 그때에 어사로 내려가는 노모(盧某)는 그 소문을 듣고 도임하기 전부터 그 기생을 기여이 죽이겠다고 언명하였다.

그 소문이 널리 퍼져 노화의 부모까지 알게 되니 그 부모들은 여간 걱정을 하지 않고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다. 그러나 정작 노화는 조금도 겁을 내는 기색이 없이 태연자약하였다. 노화의 부모는 노화를 보고 울며

『이애 이번에 오는 어사가 너를 꼭 죽이겠다고 벼른다 하니 그 일을 어찌 하잔 말이냐』 하니 노화는 웃으며 말하되 제가 한 꾀가 있으니 부모님은 아무 걱정도 마십시오 하고 큰소리를 하며 자기는 과부의 복색을 차리고 자기 생질은 주막집 종놈의 모양을 차린 후 어사가 어느 곳까지 온 소식을 탐문하고 이웃 고을 길가 주막집을 빌어서 술청 하나를 깨끗하게 내고 어사의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며칠 아니 되어 어사는 과연 그 주막에 와서 들게 되었다. 노화는 그 어사의 올 것을 알어 차리고 하얀 소복을 맵시 있게 입고 머리를 수수하게 빗은 다음에 일부러 물을 긷는 체하며 어사의 있는 방 앞으로 자주 왔다 갔다 하였다. 원래에 얼굴이 천하절색인 노화가 그렇게 소복을 차리고 보니 그야말로 달 속의 항아(姮娥)도 같고 설중의 매화(雪中梅花)도 같아서 아무리 강장의 남아라도 한 번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사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매 고만 정신이 황홀하여 여광여취하게 되었다. 이리 할까 저리 할까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최후에 그 집 종놈를 불러서 「얘 저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원래에 노화와 그 가짜(假者) 종놈은 서로 약속을 먼저 하였기 때문에 마치 춘향전에 방자 놈이 이도령을 놀리듯이 시침을 딱 떼고 「네 그 여자는 이 집 주인의 딸인데 불행히 수 월 전에 과부가 되어 지금 친정에 와서 있는 중이올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사는 「네가 그 여자를 불러올 수 있느냐」 하고 또 물었다. 종놈 「그가 비록 천인이나 지조가 여간 굳지 않아 불러올 수 없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사는 가만한 말씨로 「네가 만약 불러오면 내 상금을 많이 주마」 하고 꾀었다. 종놈은 「그 일이 여간 어렵지 않은데요」 하고 머리를 극적극적하고 갔다. 어사는 저녁을 먹고 혹 이놈이 불러오나 하고 여간 기다리지 않았다. 밤중은 하여서 종놈이 자박자박하고 어사의 있는 방으로 들어오더니 「그 각씨 말이 데려다 살 터이면 오늘 저녁에 와서 보입는대요」 하고 어사에게 이른다. 어사는 그 말이 여간 반갑지 않아 「데려다 살다 뿐이겠니 어서 가서 내 말을 하고 데리고 오너라」 하며 재촉하였다. 종놈은 또 쫄랑쫄랑 나가더니 마침내 그 계집을 데리고 왔다. 어사의 방에 들어온 노화는 시침을 딱 떼고 「제가 하향의 천한 계집으로 서방님 같은 양반과 한번 인연을 맺은 후에는 다른 사람과 살 생각이 없고 평생을 서방님에게 바치고 싶으니 그 허락을 하셔야 저도 서방님의 말씀을 쫓겠소이다」 하고 다진다. 어사는 「그리다 뿐이냐」고 쾌히 허락하였다. 노화는 「서방님의 한때 말씀으로만 믿을 수 없사오니 서방님이 그런 의향이 계시거든 저의 팔뚝에 서방님 한자를 삭이사 다른 날 증거가 되게 하시면 제가 말씀을 좇으려니와 그렇지 않으시면 죽어도 말씀을 들을 수 없소이다」 하고 굳게 다진다. 어사가 등불 밑으로 보니 욕심의 불이 확확 붙어 아무 생각 없이 네 말이 옳다 하고 노화의 팔뚝에다 자기 이름을 새겼다. 노화는 어사를 알아도 어사는 자기가 죽이기로 작정한 노화에게 그렇게 빠지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원래 능난한 노화는 자기를 죽이려 드는 어사를 녹여내는 그 밤이라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어사를 홀리고 어사는 노화에게 고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올라갈 제 데리고 가기로 맹세하고 주막을 떠났다. 어사는 그 이튿날 장성에 당도하여 출도를 한 후에 첫 공사에 노화를 죽이려고 잡아 들였다. 「그 요망한 년을 보기만 하면 환장이 된다고 하니 내 눈에 띨 것 없이 대매에 때려 죽여라」 호령하였다. 노화는 소리를 바락 질러 「말씀이나 한마디 아뢰고 죽겠소이다」 한다. 어사는 보기가 싫어 붓과 종이를 주어 써 올리라고 하였다. 노화는 붓과 종이를 받아 한시(漢詩) 한 수를 써 올렸다.

—原 詩—
蘆花臂上刻誰名, 墨入雪膚字字明.
寧使川原江水盡, 此必終不負初盟.
—意 譯—
노화의 팔 위에 뉘 이름 새겨 있나, 흰 살에 먹이 배어 글자마다 뚜렷하다
천원 강물이 흘러 다 진해도 이 마음은 나중까지 첫 맹서 지키리라

어사는 그 글을 보고 크게 부끄러워서 그만 노화를 내어 보내고 그 날로 다른 고을로 가 버렸다. 그 어사가 복명한 후에 성종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크게 웃으시며 특명으로 노화를 어사에게 하사하시니 그 후부터 장성에는 다시 기생의 폐단이 없어졌다.

—東野彙輯, 詩話 及 東雅隨錄—
—附 記—

다른 기록에는 이 사실을 숙종 때(肅宗時) 일이라 하고 또 노화는 장성기생이 아니요 평양기생이라 하여 영사천원강수진(寧使川原江水盡)을 영사대동강수진(寧使大同江水盡)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