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중의 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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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삼국유사]〉(卷二[권이], 水路夫人[수로부인])에,

신라 聖德王[성덕왕] 시절에 純貞公[순정공]이란 양반이 江陵太守[강릉태 수]가 되어 부임을 하다가, 臨海亭[임해정]이란 곳에서 中火站(중화참)을 대었더니, 海龍[해룡]이 홀연 그 부인 水路[수로]란 마님을 훔쳐 끼고 바다 로 들어갔다. 純貞公[순정공]이 펄펄 뛰고 발로 땅을 동동 구르나 아무 謀 策[모책]이 없더니, 한 노인이 말하기를 「옛날에 衆口鑠金[중구삭금] 이라 하였으니, 해중의 용인들 여러 사람의 입을 아니 무서워할 길 없은즉, 마땅 히 境內[경내]의 인민을 모아서 노래를 만들어 일제히 외치면서 막대기로 해안을 치면 부인이 돌아오시리다」하므로, 그대로 한즉 용이 부인을 받들 고 나와 돌려보내었다. 公[공]이 부인더러 해중의 일을 물은대, 가로되 궁 전은 다 七寶[칠보]로 꾸몄고 음식은 甘滑香潔[감골향결]하여 인간에서 먹 는 것 같지 아니하더라 하며, 부인의 옷에는 異香[이향]이 젖어서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水路夫人[수로부인]은 인물이 절색이므로, 매양 深山[심산] 大澤[대택]을 지날 때면 여러 번 神物[신물]의 훔쳐가는 바 되었다.

하는 이야기 같음은 대개 반도 전통의 해신과 및 그 궁전을 나타내는 전설 의 하나이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중의 七寶宮殿[칠보궁전]이라는 말만 은 물론 그때 사람의 입에 익은 말로 홀란한 집 치장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또 駕洛國[가락국]의 시조인 首露王[수로왕]은 해외에 있는 阿踰陀國王[아 유타국왕]의 따님을 맞아서 后[후]를 삼았다하는데, 이 해외의 나라라 하는 것이 여러 다른 건국 신화의 유례로써 보건대, 檀君[단군]께서 匪西岬[비서 갑]이라는 水邊[수변]에서 배우를 맞아 오셨다 하고, 夫餘[부여]의 解慕漱 (해모수)가 靑河[청하] 河伯[하백]의 따님을 상종하였다 하고, 고구려의 東 明王[동명왕]이 卒本川邊[졸본천변]의 과부를 장가들었다 하는 것처럼, 首 露王[수로왕]의 后[후]되신 阿踰陀國王[아유타국왕] 公主[공주]란 양반도 변시 해중 나라의 따님을 의미함에 벗어나지 아니할 것을 미루어 알 수 있 읍니다.

해중 나라가 곧 용궁일 것은 따로 말할 것도 없겠지요. 고대 신화를 보면 神武天皇[신무천황]의 아버님이신 鵜茅葺不合尊[제모즙불합존]❨ウガヤフキ アエズノミコト(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과 또 그 아버님이신 彥火火出 見尊[언화화출견존]❨ヒコホホデミノミコト(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은 다 海神豊玉彥命[해신풍옥언명]❨ワタツミノカミトヨタマヒコノミコト(와타쓰 미노카미토요타마히코노미코토)) 두 따님을 차례로 나누어 장가드신 것처럼 (ワタツミ族[족] 日本古語大辭典[일본고어대사전] 一三六一頁參照[일삼육일 혈참조] 又[우] 七二頁アマ[칠이혈] 參照[참조]), (두 따님 중맏인 豊玉姫 [풍옥희]❨トヨタマヒメ(토요타마히메))는 彥火火出見尊[언화화출견존]의 妃[비]로 神武天皇[신무천황]의 祖[조] 母[모]이며 둘째부인 玉依毘賣命[옥 의비매명]❨タマヨリヒメノミコト(타마요리히메노미코토)❩은 鵜茅葺不合尊 [제모즙불합존]의 妃[비]로 神武天皇[신무천황]의 어머님이다) 해안에 나라 를 만드는 이가 해중 나라의 따님을 장가드는 例[예]는 동방 민족의 신화에 유례를 많이 보는 바입니다.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볼 때에는 문제가 달라 지지만, 돌이켜서 신화적으로 해석을 붙인다 하면, 죄다 해신의 나라는 용 궁이라고 볼 것입니다. 실제에 있어서 해중의 國主[국주]를 용왕이라고 일 컬은 예는 〈三國遺事[삼국유사]〉(卷一[권일])의 신라 脫解王[탈해왕] 내 력을 말한 一[일]절에,

그는 본래 倭[왜] 東北[동북] 一[일]천 리에 있는 龍城國[용성국]의 왕자 니, 그 나라에는 일찍 二八[이팔] 용왕이 人胎[인태]로부터 나서 차례차례 王位[왕위]에 오르고, 含達婆王[함달파왕]의 代[대]에 왕비가 아이를 밴 지 七[칠]년 만에 一[일] 大卵[대난]을 낳으매, 괴변이라 하여 궤에 넣고 배에 실어다 바다에 띄우니, 赤龍[적룡]이 배를 擁衛[옹위]하여 신라 땅으로 왔 는데, 그 알이 깨여져 사람이 된 이가 脫解王[탈해왕]이니라.

한 것이 그것입니다. 脫解[탈해]의 전설 기록한 글에도 그 시대의 습성이라 고 볼 밖에 없는 불교적 문자가 더러 섞이어 있지마는, 그 근본에는 역시 古人[고인]이 해상에 해신, 후에 용왕이라 하게 된 것의 나라가 있음을 생 각한 證跡[증적]이 명백히 간취되는 바입니다. 이렇게 건국시조의 출처가 천상이 아니면 해중이라 함에는, 대개 고대 인민이 그 종족의 전통을 신성 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왔음이 무론이나, 시대가 훨씬 떨어지는 고려의 王 [왕]씨가 역시 용의 種[종]이라 함은 진실로 이러한 檀君[단군] 이래 심원 한 전통 관념의 표현임에 불외하는 것입니다.

고려 왕실의 조상인 作帝建[작제건]이 활 쏘는 재주로써 서해 용왕의 큰 화액을 모면해 주고, 그 용궁으로 들어가 용녀를 장가들어서 나라 배포한 영웅이 났다는 이야기는 前次[전차]에 소개한 것과 같습니다.

고려의 王[왕]씨가 龍種[용종]이기 때문에 그 왕통을 계승하는 자의 脅下 협하 에는 [ ] 金鱗[금린] 三雙[삼쌍]이 있어 표적이 된다는 말은, 세상에 널 리 퍼지기도 한 이야기거니와, 또 서해 龍女[용녀]가 王[왕]씨의 조상에게 시집와서 살면서 松嶽山下[송악산하]의 그 집 침실 窓外[창외]에 우물을 파 고 井中[정중]으로부터 서해 용궁을 왕래할 때 항상 그 남편더러 약속하기 를, 「내가 용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결단코 엿보지 말라, 엿보면 다시 돌아 오지 아니하리라」하는 것을, 남편은 하도 궁금하여 하루는 몰래 엿본즉, 井中[정중]으로 들어가서 화하여 황룡이 되어 갔는데, 용녀가 돌아와서 노 해 가로되 「부부간에는 信[신]이 있어야 하거늘, 당신이 약속을 어기었으 니 내가 여기서 살 수 없노라」하고, 그만 용궁으로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 니하였다는 이야기도 번듯하게 고려의 국사에 적혀, 오래 일반에게 믿어 오 던 이야기입니다. 그때 용녀의 용궁 다니던 우물이란 것이, 開城府[개성부] 北[북] 七里[칠리]인 廣明寺[광명사]에 있어 후세에까지 내려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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