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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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천심(天心)에 있으니 이만하면 족하다. 물은 아직 좀 덜 들어온 것 같다. 축은 모래와 마른 모래의 경계선이 월광 아래 멀리 아득하다. 찰락찰락―한 여남은 미터는 되나 보다. 단애(斷涯) 바위 위에 우리 둘은 걸터앉아 그 한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자 인제 일어나요"

마흔아홉 대 꽁초가 내 앞에 무슨 푸성귀 싹처럼 헤어져 있다. 나머지 담배가 한 대 탄다. 요것이 다 타는 동안에 내가 최후의 결심을 할 수 있어야 한단다.

"자 어서 일어나요"

선(仙)이는 일어났고 인제는 정말 기다리던 그 순간이라는 것이 닥쳐왔나 보다. 나는 선이 머리를 걷어치켜주면서

"겁이 나나?"

"아―뇨"

"좀 춥지?"

"어떤가요"

입술이 뜨겁다. 쉰 개째 담배가 다 탄 까닭이다. 인제는 아무리 하여도 피할 도리가 없다.

"자 그럼 꼭 붙들어요"

"꼭 붙드세요"


행복의 절정을 그냥 육안으로 넘긴다는 것이 내게는 공포였다. 이 순간 이후 내 몸을 이 지상에 살려둘 수 없다. 그렇다고 선이를 두고 가는 수도 없다.

그러나――

뜻밖에도 파도가 높았다. 이런 파도 속에서도 우리 둘은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고 어느 만큼이나 우리들은 떠돌아다녔는지 드디어 피로가 왔다――

죽기 전.

이렇게 해서 죽나 보다. 위선, 선이 팔이 내 목에서부터 풀려 나갔다. 동시에 내 팔은 선이 허리를 놓쳤다. 그 순간 물먹은 내 귀가 들은 선이 단말마의 부르짖음,

"××씨!"

이것은 과연 내 이름은 아니다.

나는 순간 그 파도 속에서도 정신이 번쩍 났다. 오냐 그렇다면――

나는 죽어서는 안 된다.

나는 마지막 힘을 내어 뒷발을 한 번 탕 굴려 보았다. 몸이 소스라친다. 목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 아까 우리 둘이 앉았던 바위가 눈앞에 보였다. 파도는 밀물이라 해안을 향해 친다. 그래 얼마 안 가서 나는 바위 위로 기어오를 수 있었다. 나는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 버리려다가 문득

선이를 살려야 하느니라.

하는 악마의 묵시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월광에 오르내리는 검은 한 점, 내가 척 늘어진 선이를 안아올렸을 때 선이 몸은 아직 따뜻하였다.

오호 너로구나.

너는 네 평생을 두고 내 형상 없는 형벌 속에서 불행하리라. 해서

우리 둘은 결혼하였던 것이다.

규방에서 나는 신부에게, 행형(行刑)하였다.

어떻게?

가지가지 행복의 길을 가지가지 교재를 가지고 가르쳤다.


그러나 선이가 한 번 미엽(媚靨)을 보이려 드는 순간 나는 영상(嶺上)의 고목처럼 냉담하곤 하는 것이다. 규방에는 늘 추풍이 소조(蕭條)히 불었다.

나는 이런 과로 때문에 무척 야위었다. 그러면서도 내 눈이 충혈한 채 무엇인가를 찾는다. 나는 가끔 내게 물어본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복수? 천천히 천천히 하여라. 네 운명하는 날에야 끝날 일이니까.'

'아니야! 나는 지금 나만을 사랑할 동정을 찾고 있지 한 남자 두 남자를 사랑한 일이 있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어. 왜? 그럼 나더러 먹다 남은 형해(形骸)에 만족하란 말이람?'

'허―너는 잊었구나? 네 복수가 필하는 것이 네 낙명(落命)의 날이라는 것을. 네 일생은 이미 네가 부활하던 순간부터 제단 위에 올려놓여 있는 것을 어쩌누?'


그만해도 석 달이 지났다. 형리(刑吏)의 심경에도 권태가 왔다.

"싫다. 귀찮아졌다. 나는 한 번만 평민으로 살아보고 싶구나. 내게 정말 애인을 다고."

마호메트 것은 마호메트에게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일생을 희생하겠다던 장도(壯圖)를 나는 석 달 동안에 이렇게 탕진하고 말았다.

당신처럼 사랑한 일은 없습니다라든가,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라든가 하는 그 여자의 말은 첫사랑 이외의 어떤 남자에게 있어어도 '인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만났지"

"누구를요?"

"××"

"네―. 그래 결혼했대요?"

그것이 이렇게까지 선이에게는 몹시 걱정이 된다. 될 것이다. 나는 사실,

"아―니 혼자던데, 여관에 있다던데."

"그럼 결혼 아직 안 했군그래. 왜 안 했을까."

슬픈 선이의 독백이여!

"추물이야, 살이 띵띵 찐 게."

"네? 거 그렇게까지 조소하려 들진 마세요. 그래두 당신네들(? 이 '들'자야말로 선이 천려(千慮)의 일실이다)버덤은 얼마나 인간미가 있는데 그래요. 그저 좀 인간이 부족하다뿐이지."

나는 거기서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만 후회도 났다.

물론 선이는 내 선이가 아니다. 아닐 뿐만 아니라 ××를 사랑하고 그 다음 ×를 사랑하고 그 다음……

그 다음에 지금 나를 사랑한다는 체하여 보고 있는 모양 같다. 그런데 나는 선이만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까지 발전한 환술(幻術)이 뚝 천정을 새어 떨어지는 물방울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내 낙태를 이러니저러니 하고 시비하는 것 같은 벌써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