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헌 세계일주 기행(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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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지명 - 삼천리 제3호
  • 발행년월일 - 1929년 11월 13일
  • 기사제목 - 세계일주기행(世界一週紀行) 제3신(第三信), 부활하는 아일랜드(愛蘭)와 영국(英吉利)의 자태
  • 필자 - 허헌(許憲)
  • 기사형태 - 기행문

아일랜드 산과 내천의 황량함[편집]

친애하는 여러분이시어! 나는 미국에서 본국 게신 여러분에게 둘재번 올니는 편지를 써 부친 뒤 수일 뒤인 1월 15일 새벽에 매연과 「모-터」소리에 잠긴 유육시가(紐育市街)를 뒤에 두고 부두에 나가 아일랜드로 가는 배를 집어탓소이다. 미국에 더 잇스면서 자본주의국가로 가장 고도의 단계에 이르럿슬 뿐더러 (中畧-원문)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조직이며 사회사정등을 더 만히 살피고 십헛스나 압길이 급한지라, 그냥 떠나기로 한 터이외다. 그렇다해도 미국에 여러 달 머무른 사이에 이 나라 민중의 기실이란다든지 또 노농 러시아(勞農露西亞)와 양극단에 잇서서 세계의 문화를 풍미하고 있는 「아몌리카이즘」을 보았는데 대개는 시사와 정치에 관계되는 것임으로 (삼천리)「三千里」지(誌)를 통하야 말슴들일 자유가 업서서 그냥 지내가기로 한 것이외다. 실상 저도 여러 도시에서 재류(在留)동포들을 위하여 또는 미국인과 유럽인을 위하여 청하는대로 목이 쉬게 연설도 수십 차하였고 그 반대로 내가 저곳 명사를 일부러 찾아가 손목을 붙잡고 열열히 협의한 일도 많으나 그를 아니 적는다고 여러분께서 상상도 못하여 주시랴. 좌우간 나는 그 달 22일에 남부 아일랜드의 유명한 항구 「쿠인스타운」에 도착하엿소이다. 태평양을 건널 때에 그 배 사무장이 일일이 해양을 지적하면서 '저기에서는는 몇 해 전에 빙산에 부딪친 「다-다넬」호 기선이 침몰된 곳입니다. 또 저기는 영불연합함대(英佛聯合艦隊)가 세계대전란(歐洲大戰亂)때에 독일 잠항정(獨逸潛航艇)때문에 여러 번 격침당했던 곳입니다'이라든지 하는 설명을 들을 때에 실로 새삼스럽게 몸에 소름이 끼치더이다. 저 아무 근심업시 양양(洋洋)히 흐르는 바다몰 우에 온갖 두러운 비극이 이르낫겟거니 그래서 우리 배가 지금 지내는 이 바다 밋 속에도 수만의 생령(生靈)들이 아직 호곡(呼哭)하며 잇겟거니하면 엇전지 머리가 차지더이다. 더구나 천애(天涯)에 흐르는 외로운 나그네(孤客)이매 저녁햇빛에 물드린 대서양의 망망(茫茫)한 해상을 바라볼 때에 그 순간에 향수에 아울러 이러한 감상적 정회(情懷)가 이러남을 금할 길이 업더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도착한 「쿠인스, 타운」항구로 말하면 속칭 '황후촌'이라 하야 얼마 전까지도 시가찬연(市街燦然)한 훌융한 도시이더니 수백년래 영국령이 되어 오는 동안에 부절(不絶)히 이러나는 전쟁때문에 그만 말할 수 업시 황폐하여저서 여러 곳곳에 총화(銃火)의 세례를 밧은 건물과 파손된 거리때문에 처참한 늑김을 가지게 하더이다. 나는 8시간을 이 항구에 배가 정박하는 틈을 타써 동선(同船)하엿든 「캐나다」 신펜 당지부장 부부와 함께 택시를 불너 타고 시가를 지나 그 곳 공원에까지 올라가 보앗는데 서방에 보이는 아일랜드의 전야(田野)도 모다 전쟁을 치고 난 자리가치 지름끼라고 업고 수목도 불에 탄대로 잇고 도로나 교량도 파훼(破毁)된 것이 만헛더이다. 민중의 건물인들 미국에서 보든 것 가치 정미(整美)한 것이 하나인들 어대에 잇스리까. 실로 모든게 처참하다 함은 이를 가르친 듯 하더이다. 그래도 요지음에는 자유국이 된 뒤에 신정부의 손으로 부흥사업이 성(盛)히 이러나는 모양으로 길가마다 새로운<15> 가로수가 서기 시작하고 또 도시의 구역도 개정이 되며 좌왕우래(左往右來)하는 아일랜드인의 얼골 우에도 희망과 정열의 빗치 떠오르더이다. 나는 이 모양을 보고 잿 속에서 날개를 털고 이러나는 「불사조」라는 새를 생각하엿소이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민족을 보고 죽지 안는 새를 연상(聯想)한 것이 엇재 올흔갓해서요.

결구웅대(結搆雄大)한 재판소[편집]

친애하는 여러분이시여! 나는 다시 「쿠인스, 타운」을 떠나 영국 「립퍼불」항구를 잠시 거처 4시간만에 북아일랜드에 잇는 「캉스, 타운」항구에 도착하엿소이다. 이 '황제촌'이라 함은 북아일랜드의 유명한 항구요, 또 아까의 '황후촌'(皇后村)이라는 것이 남아일랜드에 엇는 유명한 항구로 되어 이 두 항구가 장구 모양으로 양쪽에 벌러잇스면서 아일랜드 자유국의 문명과 온갖 국가의 경제를 대부분 삼키고 뱉고(呑吐)한다 하더이다. 여기서 기차로 아일랜드 서울인 「떠부린」시내를 직입(直入)하는 터이니 겨우 자동차로 40분만 가면 된다 한즉 마치 우리 서울과 인천항의 관계와 흡사하다 할 것이외다.

그런데 나는 이번 세계일주 여행에 아일랜드에서 몹시 치중하엿스니만치 미국잇슬 때에 벌서 아일랜드 여행의 만흔 편의를 가젓섯스니 즉, 내가 아메리까 「픽스킬」피서지에서 어학공부를 하고 잇슬 때에 수십만 재미 아일랜드인(數十萬 在美愛蘭人)을 거느리고 잇스면서 신펜黨紐育洲總支部長(신페인당 지부장)으로 잇는 M博士를 갓가히 알게 되어 氏로부터 「떼벨라」氏에게 친절하게 소개하는 장문의 서찰을 지녓섯고 또 뉴욕(紐育)에 이르러 「빗세이」 즉 여행권(旅行券)의 사증(査證, 비자를 말함.)을 얻을려고 아일랜드 총영사관에 가서 총영사를 만났을 때에도 벌서 나의 말을 들엇슴이지 기다리고 잇섯든드시 아일랜드 사정을 속속드리 잘 설명하여 주며 그 우에 아일랜드 정계의 여러 명사에게 소개하여 주는 글발을 하여 줌으로 그도 또한 지내게 되엇스니 이것은 아일랜드에 처음 여행인 나에게는 실로 큰 소획(所獲)이 아니라 할 수 업섯나이다. 딴 말이나 뉴욕(紐育)에는 영국총영사관외에 당당한 아일랜드 총영사관이 잇서서 아일랜드인에 대한 것은 전부 그 곳에서 처리하고 잇는데 자유국이 된 뒤로부터는 영국외교관들도 아일랜드의 외교에 대하여는 손끄락 하나 저치지 못하고 잇더이다. 아일랜드는 실로 자유롭더이다. 지배를 벋어나서 이제는 명실이 모다갓게 독립이 되어 잇더이다!

「떠부린」도시에 도착한 나는 즉시 택시를 불너 타고서 그날 오후 3시경에 떠부린 민립대학에 갓소이다. 『떼벨라」氏를 맛나자면 '민립대학으로 가라'는 말을 들엇기에 그래서 사무실로 드러가니 마츰 떼벨라氏는 2주일 전에 신페인당의 일로 남부 아일랜드로 출타하엿다 함으로 엇절가고 망서리는 까리에 그곳 대학교 노교수(老敎授) B博士가 나오면서 '무슨 일이냐'고 뭇기에 나는 코리안사람으로 '아일랜드 방문을 왓노라' 하는 말과 '미국 「픽스킬」에서 가지고 온 소개장'을 내어 보이니 그 분은 크게 반기면서 응접실에 잇글고 드러가서 멀니서 엇지왓느냐고 10년구지(年舊知)가치 정(情)을 보여 주더이다. 그 뿐더러 나종에는 교수시간(敎授時間)이 아니면 자기가 친히 압헤서서 안내하여 드릴것을 그만 시간때문에 못하는 것이 유감천만이라고 하면서 즉시 아일랜드 정청내무성(政廳內務省)에 전화를 걸어주더이다. 그리고 나더니 내일 아침 아홉시에 정청문(政廳門) 앞으로 가면 내각(內閣)의 비서가 나와 기대리기로 되엇슨 즉 그 시각에 가보라고 하더이다. 이러케 진정으로 주선하여주는 노박사의 심정에 한긋 논쾌(惀快)를 느끼면서 그날은 「호텔」로 도로 나와 피곤한 다리를 쉬엇소이다. 아일랜드는 정치적 환경이(略-원문) 같은 경우의 외국인을<16> 대(待)함에 유별함이 잇겟거니와 이와가치 하여줄 줄은 저는 몰랐소이다.

翌日 아츰에 그 말대로 政廳으로 간즉 門前에는 武裝한 把守兵이 잔뜩 직히고 서서 自由國 創始初의 騷亂한 雰圍氣가 內外에 가득하더이다. 把守兵 사이로 엇든 紳士 한 분이 직히고 섯다가 나를 보더니 「미스터, 허」냐고 무르면서 마저 드리어 政廳內로 잇글어 가기에 그 곳에 가서 約 5分間을 기대렷슬가 할 때에 內務次官格에 該當하다는 엇든 女官史 한 분이 나와서 親切히 마저 주는데 그 분이 純猝한 愛蘭말을 하고 나는 겨우 英語를 번지는 關係로 우리의 對話는 몹시 遲滯難通이엇슴니다. 그는 沓沓하든지 中國말을 아느냐고 뭇기에 中國말도 아나 日本말도 안다 한 즉 즉시 「색크레타리」(秘書)를 불느더니 民立大學에 잇는 中國留學生을 불느더이다. (日本人이나 朝鮮人으로 愛蘭에 留學하고 잇는 學生은 한 사람도 업다 하더이다.) 조곰 잇다가 南方蘇州에 산다는 中國靑年 한 사람이 드러왓는데 그 사람 입을 거치는 中國通譯은 더구나 말이 잘 안되기에 나는 辭退하고 그제부터는 英和字典을 끄내들고 한참 둘이서 冊보며 이약이하엿지요. 彼此에 땀이 빠젓스나 談話의 內容은 꺼림김 업는 重要한 것이엇소이다. 그런 뒤에 그 內務次官이 그 때 마츰 開會中의 愛蘭議會와 高等法院과 控訴院의 書記長에게 電話를 거러주기에 나는 議會와 裁判所見學을 할 次로 그곳을 나왓나이다.

그래서 바로 그 길로 裁判所를 訪問하엿나이다. 愛蘭의 法廷結搆의 雄大하다 함은 이미 듯던 말이나 實로 有名한 저 倫敦裁判所보다도 그 建物이나 設備에 잇서서 決코 지지 안터이다. 愛蘭도 亦是 高等 覆審 地方의 三審制度엇는데 英美의 法律界와 달라서 愛蘭은 不文法을 만히 쓰는 까닭으로 法廷안은 判決例가 갓득 찻더이다. 그것은 實로 裁判長의 등 뒤에서부터 被告와 傍聽客이 안는 자리의 등 뒤에까지 全部 藏書壁을 하여노코 年代順으로 判決例를 갓득 備置하여 두엇는데 그러기에 裁判하다가도 裁判長이든지 被告든지 辯護士든지 제 마음대로 그 壁藏의 문을 열고 判決例를 차저보면서 裁判을 進行하더이다. 그리고 內外國書籍이 그러케 만히 裁判所에 備置되어 잇는 곳은 東洋은 말고라도 英美에도 드문것 갓더이다. 辯護士控室에도 專屬圖書舘이 잇고 判事에게나 檢事에게나 모다 그러케 훌융한 圖書室이 잇는 것을 볼 때 最新智識을 吸收하기에 汲汲하는 新興國家의 意氣가 驚歎할 만 하더이다. 내가 裁判所에 갓다고 奔走한 분을 타서 男判事 3人과 女判事 한 분과 愛蘭 辯護士 여러분들이 食堂에다가 臨時 歡迎宴을 열고 歡待하여 주더이다.(畧-원문) 그러고 裁判所에서 나와 즉시 監獄求景으로 저는 떠낫슴니다. 監獄이 크고 깨끗하고 採風通光이 잘되어 衛生上으로 조흔것은 한갓 부러울 뿐이엇습니다. 그 속에는 演劇場과 라듸요와 大規模의 圖書室이 잇서 所定의 工場勞役時間以外에는 囚人들이 말숙하게 「세비로」로 차리고 제 마음대로 노더이다. 例컨대 그 속에서 뻬스쁠 競技大會도 열고 舞蹈會나 音樂會도 열닌다 하며 또 土曜와 日曜에는 囚人의 家族 그 중에도 愛妻들이 監房에 가치 드러와 즐겁게 하로 이틀씩 지내다가 가기까지 되어 실로 文明國家의 襟度가 달는 것을 깨닷하게 하더이다. 저도 監獄의 請으로 囚人 압헤서 講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엇나이다.

中國問題와 議會[편집]

親愛하는 여러분이시여! 裁判所와 法廷을 나와서 나는 앗가 內務次官이 주든 上下兩院의 傍聽券을 가지고 愛蘭議會의 傍聽으로 갓나이다. 그런데 나가 드러갓슬 때는 下院의 議題는 무슨 法律案討議가 되어서 자미 업서 곳 나와서 上院으로 갓나이다. 上院은 總議席 65, 6개중 缺席椅子가 겨우 3, 4개에 不過하고 그 외는 全部滿員된 場內에서 모다 亢奮의 되어 舌端火를 吐하며 國事를 激烈히 論戰하는 中이엇슴니다. 나는 나를 引導한다고 따라왓든 政廳외 秘書官에게서 오늘 議事 日程이 마츰 中國問題의 討議라고 하는 말은 들엇나이다. 즉 여러분도 아실 터이나 張作霖이 쫏기여 滿州로 가다가 죽고 蔣介石이 政權을 잡음과 동시에 南京事件 濟南事變이 疊出하야 英國에서는 大擧 中國에 한창 出兵하든 때엇슴니다. 每日 新聞을 보아도 오늘은 英國에서 陸戰隊 몃千名과 軍糧 얼마를 싯고 軍艦 몇隻이 中國을 向하야 出發하엿다 하는 等의 記事로 國民을 亢奮케 하든 때라 그 때 愛蘭議會에서도 英國의 이 對中出兵의 軍事費를 負擔할 것이야 아니할 것이냐 하는 것을 討議하는 마당이 되엇는데 그 날은 決局 現在 中國에는 英國人民은 만히 居住하는지 모르나 愛蘭自由國人民은 但只 7人밧게 居住함이 업슨 즉 無用한 出兵의 軍事費를 支拂할 必要가 업다고 滿場一致로 否決이 되더이다. 그 날 내가 階上 傍聽席에 잇스매 議席에서 소근소근하그 소리와 가치 그 만흔 사람들이 나를 連해 注意하여 보면서 議員들이 議長을 부르며 演說할 때에도 맨 처음에 나의 坐席을 意味잇게 보고 演說을 비롯하더이다. 나는 이 議會場內의 注意人物이<17> 되엇스나 그 態度가 조곰도 업서 보임은 스사로 깨다를만 하더이다. 뒤에 秘害官이 하는 말을 드르면 愛蘭上院議員들은 그 날 내가 간 것을 倫敦잇는 中國公使舘叅事官 되는 분이 일부러 英國出兵問題로 愛蘭의 公正한 輿論를 듯고 저 議會에 차저 온 줄만 알고 그리하엿다 하더이다. 그 뒤 上下議員들과 會談할 機會가 잇슬 때에 그 분들이 「중국사람이냐」고 뭇길래 난는 率直하게 中國人은 아니나 朝鮮人으로 中國과 脣齒의 關係에 잇다고 잘 說明하엿드니 그런가고 하며 대단히 깁버하면서 只今 愛蘭은 新興하는 中國國家에 만흔 期待와 援助를 악기지 안는다. 이약이 하더이다. 그리고 또 朝鮮事情에 대하여(중략-원문) 만히 알고 십흐니 귀국하거든 신문잡지와 書冊을 만히 보내달라고 비단 의원들 뿐아니라 각 대학과 재판소와 기타 단체에서 熱求하기에 倫敦와서 爲先 본국 신문과 조선사정집 둥을 여러 곳에 보내어 주었나이다. 그리고 동아일보 사원의 名*을 가지고 떠부린에서는 제크다는 「인덴펜스」란 신문사를 방문하여 그곳 간부를 맛나고 愛蘭의 현재와 과거에 대한 조흔 자료를 만히 어덧소이다.

수박 것할키라하여도 너무 어이가 업시 쓰고 십흔 말을 모다 빼어버리게 되어 슴슴하기 짝이 업슴으로 이 따위 말을 작고 하기 죄송하와 부활하는 愛蘭의 사정을 이에 끗치고 이제는 세계최대의 강국이라든 英吉利로 기행의 발길을 옴겨놋나이다.

强盜騷動?[편집]

親愛하는 여러분이시여! 나는 外地에 가면 의뢰히 그 都市의 地圖를 몬저 싸고 그러고 滋石을 사서 차고 그러고는 고국 사람부터 차저가는 法이외다. 地圖는 市街의 交通狀況을 알자는 初來者의 用心이요 滋石은 英國가치 雲霧가 만히 끼어 눈 압히 보지 안는 곳에서는 밤이나 낫이나 간에 東西南北의 方向을 알기 위함이요 우리 兄弟를 차즘은 案內를 請하기와 우리 사람의 사정을 알자는 까닭이외다. 그래서 저는 「떠부린」市에서 떠나 倫敦에 왓다가 즉시 아츰 車를 타고 「켐뿌릿지」市에 이르럿사외다. 劍橋大學의 法科大學에 잇는 故舊 朴錫胤君을 先着으로 맛나자는 까닭이외다. 劍橋는 크더이다. 20餘萬이 되는 市民들이 全部 大學때문에 살아가는 것 갓하야 宏壯한 大學校舍가 全 市를 덥고 잇는 속에 商人들은 그 周圍을 들너싸고 營業하여 가는 듯 하더이다. 牛津大學이나 이 劍橋大學이 모다 世界的으로 일흠이 놉흔 것에는 틀님이 업스나 이러케 建物이 고무에고 大規模일 줄은 몰낫슴니다. 結局 그 날 午后 4時半頃에 朴君이 留學한다는 法科大學을 차저 갓소이다. 法科大學은 市街를 지나 郊外라고 할 만한 먼 발층에 따로 떠러저 잇는데 寄宿舍로<18> 가니 미리 通寄하여 두엇슴으로 잇서 주어야 할 朴君이 업더이다. 나는 저윽히 失望하면서 일곱시까지 그 大學 講堂과 圖書室도 도라다니면서 苦待하엿나이다. 그러나 朴君은 如前히 아니오더이다.

그런데 큰 일은 나는 오늘밤 안으로 기어히 倫敦으로 도라가야 함이엇사외다. 그 까닭은 明朝 일즉히 大阪每日新聞特派員과 가치 나는 東亞日報의 特派員資格으로 倫敦「타임스」新聞社롤 見學次로 가기로 되어 타임스 新聞社와 긋게 約束하여둔 터임으로 萬事不計하고 가야 하는 것이외다. 倫敦갈 막차시간은 점점 박두하여 오는데 朴君만은 如前히 아니오더이다. 나는 기다리다 못하야 大學搆內를 뛰어 나왓나이다. 어듁컴컴한 거리에는 사람 하나 求景할 수 업고 街路의 電燈불빗도 四五馬場에 한 개씩 보일 뿐.

나는 倫敦으로 떠나기로 決心하엿나이다. 그래서 停車場이 잇슬 方向을 向하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구부로로 닷기 시작하엿나이다. 英國은 紳士國인 까닭인지 日暮后에는 行客이라고 업고 더구나 택시 가튼 것도 업더이다. 그래서 별로 길도 보지 못하고 한참 오는데 웬 男女둘이 喃喃接語하며 팔을 끼고 지나는 것이 보이더이다. 想必 約婚하엿거나 그러치 안으면 사랑을 속삭이는 靑春男女의 一對가트나 언제 남의 살피를 보고 안젓슬 때 오릿까 失禮되는 줄을 알면서 그 압헤 가서 停車場가는 길을 뭇고 또 倫敦가는 막차가 아직 잇겟느냐 하는 것을 불숙 무럿소이다. 그랫더니 그 靑年紳士는 스텍기끗으로 이리 이리 가다가 요리 조리 빠지면 停車場이 나오는데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안어서 엇더케 될는지 크게 疑問이라고 하더이다. 나는 一禮한 뒤 다시 두 주먹을 고 「마라손」하기를 시작하엿소이다. 외투는 버서서 한손에 움켜쥐고.... 아마 朝鮮里數로 2, 3里나 왓슬가 할 때에 누가 뒤여서 「미스터!!」 「미스터!」하고 목이 빠지게 부르면서 따라오더이다. 나는 웃뚝 섯슴니다. 그 소리는 내가 다라온 곳으로부터 작고 작고 나더이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나려안더이다. 美國에서는 無人地境에서 흔히 저러케 따라와서는 六穴砲로 威脅하면서 두 손을 들라하고는 金品을 强奪하여 가는 도적이 만헛스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함애 섯불니 행동하다가는 목숨을 이를가 겁이 나서 더 逃亡할 氣力이라고 업섯나이다. 이러한 境遇에 逃亡하면 흔히 銃殺을 當하는 터이니까 실상 萬里他國에서 일흠도 모르케 强盜에게 犬死룰 當하고야 엇지 憤하여 魂이라도 고국에 도라 가겟슴니까.

나는 허리에 찻든 돈 錢袋를 얼는 풀엇나이다. 世界를 한번 보고 오자고 故國에서 士地를 12,000圓에 팔아서 그 동안 2000餘圓은 美國과 愛蘭에서 쓰고 1000圓은 美國에 떠러저잇는 딸 貞淑에게 주고 아직 남은 現金 8000餘圓을 이 錢袋속에 너허 두엇든 것입니다. 銀行에 맛기어 노코 各國處處에서 가는 맛마다 차저 쓰고 십헛스나 그러자면 싯그러운 手續 等이 잇서서 全部 100弗 1000弗짜리의 高額의 紙幣로 換하여 錢袋속에 너허 차고서 아모대나 旅行할 때에 끄내어 쓰든 것이외다.

따라오는 그 사람은 漸漸 갓가워 오더이다. 나는 얼는 錢袋를 달달 마라서 오른손에 쥐엇슴니다. 만일 저 쪽이 손을 들나고 威脅하거든 드는 체 하면서 그 錢袋를 얼는 겻헤 풀밧 속에 던저 버리려 하는 꾀 때문이엇소이다. 그런데 漸漸 갓가히 오는 사람을 보니 「미스터!」「미스터!」하든 그 사람은 다른 아모개도 아니고 악가 길을 가러처 주든 그 靑年紳士엇슴니다. 그는 숨을 급하게 돌녀 쉬며 「지금 당신을 보내노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필연 당신이 外國사람인 것 가튼데 길 일코 고상하는 모양이니 어서 가서 도아주고 오라」하기에 왓노라 하면서 自己가 몬저 서서 주석주석 停車場가는 길을 거러주더이다. 말만 드르면 이러케 고마운 일이 어대 잇겟슴니가. 그러나 엇재 너무도 奇蹟갓하여 나는 그 말을 밋지 못하겟더이다. 그래서 放心못하고 울며 겨우자 먹기의 心理에 갓갑게 그 뒤로 한참 따라가는데 얼마 가다가 湖水가 나오고 그 湖水 그 가운데 조고마한 오솔길이 잇뎌이다. 그 신사는 이 오솔길도 가면 매우 갓가우니 그리로 가자고 하더이다. 나는 첫마듸에 斷然拒絶하엿슴니다. 그 녀석이 湖水중구픔에 가서 나를 물에 탁 차 버릴는지 누가 압니까. 다른 큰 길로 가로 가자면 3, 4倍 더 도라간다는 懇切叮嚀한 그의 說明도 모다 뿌리치고 나는 큰 길을 잡어서 것기를 固執하엇나이다. 그도 마지 못하여 내 뒤를 따라오더이다. 한참만에 停車場에 왓섯나이다. 車시간은 아직 남엇습데다. 그 紳士는 그제야 滿足한드시 自己는 愛人이 只今 앗가 그 곳에서 기대리고 잇슬 터이기에 도라간다 하며 가려고 하더이다. 그제야 나는 그 英國紳士의 襟度를 깨닫고 그를 强盜로 아러오든 제가 도로혀 붓그럽더이다. 우리은 喫荼店에서 荼를 내어 마이고 여러번 握手한 뒤 갈라젓슴니다. 英國人中 이런 분은 實로 正直高潔한 紳士더이다. 이제는 저는 倫敦으로 가나이다. 「맥드날드」도 맛나기로 되엇고 타임스 新聞社로도 가보기로 되엇는데 저의 마음은 알 수 업는 亢奮을 늣기어 지나이다. 그러면 여러분이시어 다시 편지 올닐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亞細亞의 고국에는 아마 눈이 몸시 왓슬 줄 아나이다. 여기도 추어서 저는 車깐에 드러가면 外套를 뒤집어 썻나이다. (次號繼續) (19) <15-19>

같이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