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아버지가 형님에게 칼을 던진 것이 정통을 때렸으면 그자리에 엎어질 것을 요행 뜻밖에 몸을 비켜서 땅에 떨어질 제 나는 다르르 떨었다. 이것이 십 오 성상을 지난 묵은 기억이다마는 그 인상은 언제나 나의 가슴에 새로왔다. 내가 슬플 때, 고적할 때, 제일 처음 나의 몸을 쏘아드는 화살이 이것이다. 이제로는 과거의 일이나 열 살이 채 못된 어린 몸으로 목도하였을 제, 나는 그 얼마나 간담을 졸였던가. 말뚝같이 그 옆에 서 있던 나는 이내 울음을 터치고 말았다. 극도의 놀람과 아울러 애원을 표현하기에 나의 재쭈는 거기에서 넘지 못하였던 까탁이다.

부자간의 고롭지 못한 이 분쟁이 발생하길 아버지의 허물인지 흑은 형님의 죄인지 나는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한갓 짐작하는 건 형님이 난봉을 부렸고 아버지는 그 비용을 담당하고도 터 보이지 않을 만치 재산을 가졌건만 한 푼도 선심치 않았다. 우리 아버지, 그는 뚝뚝한 수전노이었다. 또한 당대에 수십만 원을 이룩한 금만가이었다. 자기의 사후 얼마 못되어 그 재산이 맏아들 손에 탕진될 줄을 그도 대중은 하였으련만 생존시에는 한 푼을 아끼었다. 제가 몬 돈 저 못 쓴다는 말이 이걸 이름이리라.

그는 형님의 생활비도 안 댈뿐더러 갈아 마실 듯이 미워하였다. 심지어 자기 눈앞에도 보이지 말라는 엄명까지 내리었다. 아들이라곤 그에게 둘이 있을 뿐이었다. 형님과 나, 하나 나는 차자이고 그의 맏아들, 형님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애지중지하던 우리 어머터를 잃고는 터져오르는 심화를 뚝기로 누르며 어린 자식들을 흩손으로 길러 오던 바 불행히도 떼치지 못할 신병으로 말미암아 몸져누운 신세이었다.

그는 가끔 나를 품에 안고는 에 미를 잃은 자식 이라고 눈물을 뿌리다가는 「느 형님은 대리를 꺾어 놀 놈이야」하며 역정을 내곤 하였다. 어버이의 권위로 형님을 구박은 하였으나 속으로야 그리 좋을리 없었다.

이 병이 낫도록 고수련만 잘하면 회복 후 토지를 얼마 주리라는 언약을 앞두고 나의 팔촌형을 임시 양자로 데려온 그것만으로도 평온을 잃은 그의 심사를 알기에 족하리라. 친구들은 그를 대하여 자식을 박대함은 노후의 설움을 사는 것이라고 간곡히 충고하였으나 그의 태도는 여일 꼿꼿하였다. 다만 그 대답으로는 옆에 앉았는 나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며 고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떡 사먹을 돈이나 주려는가 하여 맥모르고 마주보고 웃어 주었으나, 좀 영리하였던들 이자식은 르면 나의 뒤를 받들어주려니 하는 그의 애소임을 선뜻 알았으리라.

효자와 불효를 동일시하는 나의 관념의 모순도 이때 생긴 것이었다. 형넘이 아마지의 속을 색였다고 그가 애초부터 망골은 아니다. 남 따르지 못할 만치 지팍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에겐 토지가 많았다. 여기저기 사면에 흩어진 전답을 답품하랴 추수를 하랴 하려면 그 노력이 적잖이 드는 것이었다. 병에 자유를 잃은 아버지는 모든 수고를 형넘에게 맡기었다. 그리고 형님은 그의 뜻을 받들어 낙자 없이 일을 행하였다. 물론 이삼백 리치 걸어가 달포씩이나 고생을 하며 알뜰히 가을하여 온들 보수의 돈 한푼 여벌로 생기는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마주앉아 추수기를 대조하여 제대로 셈을 따질 만치 엄격하였던 까닭이다.

형님은 호주의 가무를 대신만 볼 뿐 아니라, 집에 들어서는 환자를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았다. 환자의 곁을 떠날 새 없이 시중을 들었다. 밤에는 이슥토록 침울한 환자의 말벗이 되었고 또는 갖은 쏭의로 그를 위로하였다. 그는 이따금 깜박 졸다간 경풍을 하여 고개률 들고는 자리를 책하는 듯이 꼿꼿이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밤거리에 인적이 끊일 때가 되면 그는 나를 데리고 수물통 우물을 향하여 밖으로 나섰다. 이 우물이 신성하다 하여 맑은 그 물을 떠다가 장독간에 을려놓고 정화수를 드렸다. 곧 아버지의 병환이 하루바삐 씻은 듯 나시도록 신령에게 비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먼저 눈을 뜨는 것도 역시 형님이었다. 밝기 무섭게 일어나는 길로 배우개장으로 달려갔다. 구미에 딸리는 환자의 성미를 맞추어 야채랑 과일이랑, 젓갈 혹은 객다른 찬거리를 사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언젠가 나는 혼이 난 적이 있다. 겨올인데 몹시 추웠다. 아침 일찌기 나는 뒤가 마려워 안방에서 나오려니까 형님이 그제서야 식식거리며 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장놈과 다투었다고 중얼거리며 덜덜 떨더니 얼음이 제그럭거리는 종이뭉치 하나를 마루에 놓는다.

펴보니 조기만한 이름 모를 생선. 그는 두루마기, 모자를 벗어부치곤 물을 떠오라, 칼을 가져오라, 수선을 부리며 손수 배를 갈라 씻은 다음 석쇠에 올려놔 장을 발라 가며 정성스레 구웠다. 누이동생들도 있고 그의 아내도 있건만 (느년들이 하면 집어먹기도 슁고 데면데면이 하는고로 환자가 못 자신다)는 것이었다. 셔쇠 위에서 지글지팔 끓으멱 구수한 냅새를 피우는 이름 모를 그 생건이 나의 입맛올 잔뜩 당겼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와 겸강을 하므로 좀 맛깔스러운 음식은 내것이었다. 그날도 나는 상을 끼고 앉아 아버지도 잠숫기 전에 먼젓번부터 노려 두었던 그 생선에 선뜻 젓가락을 박고는 휘저놓았다. 그때 옆에서 따로 상을 받고 있던 형님의 죽일 듯이 쏘아보는 눈총을 곁눈으로 느끼고는 나는 멈칫하였다. 그러나, 나를 싸주는 아버지가 앞에 있는 데야 설마, 이쫌 생각하고는 서름서름 다시 집어들기 시작하였다. 좀 있더니 형님은 물을 쪽 들이키고 나서 그 대접을 상위에 와 능으며 일부러 소리를 된퉁 내인다.

어른이 계시므로 차마 야판은 못 치고 엄포로 욱기를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무안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들었던 채 생선을 입으로 넣지도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멍멍하였다.

이 눈치를 채고 아버지는 껄껄 웃더니 「어여 먹어라. 네가 잘 먹고 얼른 커야 내 배가 부르다」 하며 매우 만족한 낯이었다. 물론 내가 막내아들이라 귀엽기도 하였으려나 당신의 팔이 되고 다리가 되는 맏자식의 지극한 효성이 대견하달 웃음이리라.

노는 돈에는 난봉나기가 첩경 쉬운 일이다. 형님은 난봉이 났다. 난봉이라면 천한 것도 사랑이라 부르면좀 고결하다. 그를 위하여 사랑이라 하여 두자. 열 여덟, 열 아흡 그맘 때 그는 지각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장가는 열 다섯에 들었으나 부모가 얻어준 안해일 뿐더러 그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랑에서 한문을 읽을 적이었다. 낮에는 방에 들어앉아서 아버지의 엄명이라 무서워서라도 공부를 하는 체하고 건성 왱왱거리다간 밤이 깊으면 슬며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새벽에 몰래 들어와 자고 하였다. 물론 돈은 평소 어른 주머니에서 조금씩 따끔질해 두었다 뭉텅이 돈을 만들어 쓰고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시에게 도끼날같이 무서운 어른이었다. 이 기미를 눈치채고 아들을 붙잡아 놓고는 벼룻돌, 목침, 단소 할것 없이 들어서는 거의 흔도할 만치 두들겨됐다. 겸하여 다시는 출임을 못 하게 하고자 그의 의관이며 신발 등을 사랑 다락에 넣고 쇠글 채워 버렸다. 그래도 형님의 수단에는 교묘히 과 폿을 꺼내 입고 며칠 동안 밤거리를 다시 돌 수 있었으나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또 얼마 안 되어 아버지마저 병환에 들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밖으로는 아버지의 일을 대신 보랴, 안으로는 그의 병구원을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자식된 도리를 다하니, 문내에 없던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 하였다.

병환은 날을 따라 깊었다. 자리에 든 지 한 돌이 지나고 가랑잎은 또다시 부수수 지니 환자도 간호인도 지리한 슬픔이 안 들 수 없었다. 그러자 하루는 형님이 자리 곁에 공손히 무릎을 꿇으며 「아버님」 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의 처는 사람이 미련하고 게다 시부모 섬길 줄 모르는 천치니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게 좋다, 그러니 아버지의 병환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다시 장가를 들겠다는 그 필요를 말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정색하여 아들의 낮을 다시 한 번 훈어보더니, 간단히 「안 된다」 하였다. 「내간 살아 있는 동안엔 안 된다」 하였다. 아버지도 소시적에는 뭇사랑에 몸을 헤었다마는 당신은 (빠땀뿡) 하였으되 널랑은 (바람풍) 하라 하였다. 나중에 서야 알았지마는 이때 벌써 형님은 어느 집 처녀와 슬며시 약흔을 해놓고 틈틈이 드나들었다. 아직 총각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부자의 자식이켠을, 문벌 좋겠다. 대뜸 훌쩍 넘은 모양이었다. 끄리고 성례를 독촉하니 어른의 숭낙도 승낙이려니와 첫째 돈이 없으매 형님은 몸이 달았다.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였고 당신의 몸같이 부리긴 하였으나 돈에 들어선 아주 맑았다. 가용에 쓰는 일전 일푼이라도 당신의 손을 거쳐서야 들고 났고 자식이라고 푼푼한 돈을 맡겨 본 법이 없었다. 형님은 여기서 뱃심을 먹었다. 효성도 돈이 들어야 비로소 빛나는 듯 싶다. 이날로부터 나흘 동안이나 형님은 집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똥오줌까지 방에서 가려주는 자식이 옆을 떠나니 환자는 불편하여 가끔 화를 내었고 따라 어린 우리들은 미구에 불상사가 일 것을 기수채고 은근히 가슴을 검뜯었다.

닷새째 되던 날 어두을 무렵이었다. 나는 술이 취하여 비틀거리며 대문을 들어서는 형님을 보고는 이상히 놀랐다. 어른 앞에 그런 버룻은 연래에 보지 못한 까닭이었다. 환자는 큰 사랑에 있는데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엣가락 뎃가락 하며 주정을 부린다. 그런 뒤집안 식구들을 자기 앞에 모아놓고는 약주술이 카랑카랑한 대접에다가 손에 들었던 아편을 타는 것이다.

누이동생들은 기겁을 하여 덤벼들어 그 약을 랫으려 했으나 무지스러운 주먹을 당치 못하여 몇 번씩 얻어 맞고는 을며 서서 뻔히 볼 뿐이었다. 술에다 약을 말짱히 풀어 놓더니 그는 요강을 번쩍 들어 대청으로 던져서 요란히 하며 점잖이 아버지의 함자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너 때문에 아까운 청춘을 죽는다」고 선언을 하고는 흘잭 을었다. 전이면 두말없이 도끼날에 횡사는 면치 못하리라마는 자유를 잃은 환자라 넘봤을 뿐더러 그 태도가 어른을 휘어잡을 맥이었다. 그러나 사랑에서도 문갑이 깨지는지 제 그럭 소리와 아울러 「이놈 얼찐 죽어라」는 호령이 폭발하였다. 이 음성이 취한 그에게도 위엄이 아직 남았는지 그는 눈을 등글등글굴리고 있더니, 나중에는 동생들을 하나씩 붙잡아 가지곤 두들겨 주기 비롯하었다. 「이년들, 느들 죽이고 나서 내가 죽겠다」 고 이를 악물고 치니 울음 소리는 집안을 뒤집는다. 어른이 귀여워하는 딸일 뿐 아니라 언제든 조용하길 원하는 환자에게 보복 수단으로는 이만한 것이 다시없으리라. 그리고 이제 생각하면 어른에게 행한 매끝을 우리들이 받았는지도 모른다. 매질에 누이들이 머리가 터지고 옷이 친기고 하는 서슬에 나는 두려워서, 드러누운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그 곁을 파고들며 떨고 있었다. 과는 상기하여 약오른 뱀눈이 되고 소리를 내이도록 신음하였다. 앙상한 가슴을 벌떡이었다. 병마에 시닥리는 설움도 컸거늘 그 중에 하나같이 민었던 자식마저 잃고 보니 비장한 그 심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나의 손을 지그시 잡더니만 당신의 몸을 데려다 안방에 놓아 달라고 애원 비슷이 말하였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조그맸다. 형님에게 매맞을 생각을 하고 다만 떨 뿐이었다.

그런대로 그날은 무사하였다. 맏아들의 자세로 돈이나 나을까 하여 얼러 보았으나 이도저도 생각과 틀림에 그는 실쪽하여 약사발을 발로 차버리고는 나가 버렸다. 그 뒤 풍편에 들으매 그는 빛을 내어 저회끼리 어떻게 결흔이라고 해서는 자그만 집을 얻어 신접살이를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곳을 누님들은 가끔 찾아갔다. 그리고 병에 울고 계시는 아버님을 생각하여 다시 그 품으로 돌아오라고 간곡히 깨헉 주었다마는 그는 종내 듣지를 않고 도리어 동기를 두들겨 보내호 보내고 하였다.

「이거 어서 났수?」아버지의 성미는 우리와 별것이었다. 그는 평소 바둑을 좋아하였다. 밤이면 친구를 조용히 데리고 앉아 몇백 원리 돈을 견고는 바둑을 두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밤 출입이 잦았다. 말인즉슨 오입을 즐겼고 그걸로 몸을 망쳤다 한다. 술도 많이 자셨다는데 나늘 직접 보진 못한 바 아마 똔을 아껴서이리라. 또는 점이 특술하였다. 엽전 네 닢을 흗들어 떤어뜨려 가지고는 이걸 팔로 풀어 앞에 라쳐을 운명을 판단하는 수완이 능하여 나는 여러 번 신기한 일을 보았다. 그러나 일단 돈모으는 데 들어서는 몸을 아낄이 없었다. 초작에는 물론이요 돈을 쌓아 논뛰에 포 비단하나 몸에 걸칠 줄 몰랐고 하루의 찬대로 몇 십 전씩 내놓을 뿐 알짜 돈은 당신이 울꽉어 쥐고는 흔자 주물렀다. 병에 들어서토 나는 데 없이 파먹기만 하는 건 망조라 하여 조셔마다 칠 홈씩이나 잡곡을 섞도록 뚠뚜하여 조투성이를 만들었고 흑은 죽을 쑤게 하였다. 그리고 찬이라도 몇 가지 더하면 피는 안자시고 밥강을 그냥 내보내곤 하였다. 이렇게 뼈를 깎아 모은 그 돈으로 말미알아 시집을 보낼 적마다 딸들의 신세를 졸였고, 또 마지막엔 아들까지 잃었다. 이걸 알았는지 과는 날마다 슬픈 빛으로 을었다.

아들이 가끔 와서 겉으로 돌며 북새를 부리다 갈 쪄마다 드러누온 채 야윈 주먹을 들어 공중을 내려치며

「죽일 놈, 죽일 놈」 하며 외마디 소리글 내었다. 따라 심화에 병은 날로 더쳤다. 이러길 반 해를 지나니, 형님은 자기의 죄를 뉘우폈는지 하루는 풀이 죽어서 왔다. 그리고 대접 하나를 손에서 내놓으며 병환에 신효한 보약이니 갖다 드리라 한다. 나는 그걸 받아 환자 앞에 놓으며 그 연유를 전하였다. 환자는 손에 들고 이윽히 보더니만 「그놈이 날 먹고 죽으라고 독약을 타왔다.」하며 피대로 요강에 쏟아 버렸다. 이 말을 듣고 아들은 울며 돌아갔다. 이것이 보약인지 혹은 독약인지 여지껏 나는 모른다마는 형님이 환자 때문에 알 밴 자라 몇 마리를 우정 구하여 정성으로 고아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며칠 후 그는 죄진 낮으로 또 다시 왔다. 부져으로 들어가더니 부지깽이처럼 굵다란 몽등이를 멸 자루 다듬어서는 두 손에 공손히 모아 쥐고 아버지 앞으로 갔다. 그러나 그 방에는 차마 못 들어가고 사랑방 문턱에 바싹 붙어서 머뭇거릴 똴이었다. 결국 그러다 울음이 터졌다.

「아버님, 이 매로 저를 죽여 줍소서」 하며 애걸애걸 빌었다. 답은 없다. 열 번을 하여도 스무 번을 하여도 아무 답이 없었다. 똑같은 소리를 외이며 울며 될기를 아마 한 시간쯤이나 하였을 게다. 방에서 비로소

「보기 싫다, 물러가거라」고 환자는 거푸지게 한마디로 괍는다. 그러나 형님은 올음으로 섰다가 울음으로 물러갈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자시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뉘라고 없었으랴마는 하는 행동이 너무 괘씸하였고 치가 떨렸다. 복반치는 분심과 아울러 한 팔을 잃은 그 슬픔이 이때에 양자를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피 양자란 시팔서 데려 올려온 농부로 후분에 부자뵉 생각에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약을 달이랴, 오줌똥을 걷으랴, 잔심부름에 달리랴, 본 자식 저이상의 효성으로 환자에게 섬기었다.

물론 피때야 환자가 죽은 다음 그 아들에게 돈 한푼 변변히 못 받을 것을 꿈에도 생각지는 못하였으리라.

아직껏 총각이라고 속이어 혼인이랍시고 저회끼리 부랴사랴 엉등거리긴 하였으나 생활에 쪼들리니 형님은 뒤가 터질까 하여 애가 탔다. 물론 식략은 대었으되 아버지의 분부를 받아 입쌀 한 되면 좁쌀 한 되를 섞어서 보냈다. 그뿐으로 동전 한 푼 현금은 무가내었다. 형님은 그 쌀을 받아서 체로 바치어 좁쌀은 뽑아 버리곤 도로 입쌀을 만들어 팔았다. 그 돈으로 쥔은 양주가 먹고 싶은 음식이며 담배, 잔용들에 소비하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듣고 아떠지는 그담부터 다시 보내지 말라고 꾸중하였다. 애비를 반역한 그 자시 괘씸한 품으로 따지면 당장 다리를 꺾어 놀것이나, 그만이나마 하는 것도 당신이 아니면 어려울진대 항차 그놈이 무슨 호강에 그러랴 싶어서 대노한 모양이었다. 부자간 육전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밥줄이 끊어진 형님은 틈틈이 달려와서 나를 죄었다. 담모퉁이로 끌끄 가서 내 귀에다 입을 대고는

「이따 왜떡을 사줄 테니 아버지 주무시는 머리맡에 가서 가방을 슬며시 열고 저금통과 도장을 거내오라」고 소곤거리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의복이며 신색이 궁기에 끼어 촐촐하였다. 부자의 자식커녕 굴하방 친구로도 그 외양이 얼리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자기의 차지될 그 재산을 임의로 못하는 그 뭔한이야 이만저만 아니었으리라. 나는 그의 말대로 갖다 주면 그는 거나하여 나의 머리를 뚜덕이며 데리고 가서는 왜떡을 사주고 볼일을 다본 통장파 도장은 도로 내놓으며 두었던 자리에 다시 몰래 갖다 두피 하였다. 그 왜떡이란 기름하고 검누른 바탕게 누비줄 몇 줄을 친 것인데 나는 그놈을 퍽 졸아했다. 그 맛에 들리어 종말에는 아버지에게 된통 흔이 났었다. 그담으로는 형님이 와서 누이동생들을 족대기었다. 주먹을 들어, 흑은 방망이를 들어, 함부로 때려 울혀 놓고는 찬대로몇 푼타 두었던 돈을 다괍하게 갖고 가고 하였다.

그는 원래 불량한 성질이 있었다. 자기만 얼러 달라고 날뛰는 사품에 우리들은 그 주먹에 여러 번 흑을 달았다. 양자로 하여 자기에게 마땅히 대 물려야 할그 재산이 귀떨어질까 어른을 미워하는 중 하물며 식량까지 푼푼치 못하매 그는 독이 바짝 을랐다. 뜨거운 여름날이라 해질 임시하여 씩씩 땀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환자는 안방에 드러누워 돌아가도 않고 뼈만 남은 산송장이 되어 해만 넘겼다.

그를 간호하는 산사람 따라 늘어 질 지경이었다. 서슬이 시퍼렇게 들어오던 형님은 긴병에 시달리어 맥을 잃고는 마루에들 모여 앉았던 우리 앞에 딱 서더니 도끼눈으로 우리를 하나씩 흘어 주고는 코웃음을 친다. 우리는 또 매맞을 징조를 보고는 오늘은 누가 먼저 맞나 하여 속을 졸였다. 그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들어갔다. 솥뚜껑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느들만 처먹니」 하는 호령과 함께 쟁그렁 하고 쇠 부딪는 소리가 굉장하였다. 방에서는 「이놈」 하고 비장한 호령. 음울한 분위기에 싸여 오던 집안 공기는 일시에 활기를 띠었다. 이 소리에 형님은 기가 나서, 뒤쪘으로 달아나는 세째 누이를 때려 보자고 쫀아갔다. 어른에게 대한 .노함, 흑은 어른을 속여서라도 넌즛넌즛이 자기에게 양식을 안 댔다는 죄목이었다. 누이는 뒤란을 한 바퀴 돌더너 하릴없이 마루 위로 한숨에 뛰어 올랐다. 방의 문을 열고 어른이 드러누웠으매 제가 설마 여기야, 하는 맥이나, 형님은 거침없이 신발로 뛰어을라 그 허구리를 너더댓 번 차더니 꼬꾸라뜨렸다.

그리고는「이년들 혼자먹어」 이렇게 어르자 그담 누님을 머리채를 잡고 마루 끝으로 자르르 끌고 와서 댓돌 아래로 굴려버리니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에 귀가 놀랬다. 세상이 눈만 감으면 어른도 칠 형세이라, 나는 눈이 휘등그렇게 아버지의 곁으로 피신하었다.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누웠다. 우는지 웃는지 분간을 못할 만치 이를 악물어 보이다가 슬며시 비웃어 버리며 주먹으로 고래를 칠 때 나는 영문 모르는 눈물을 청하였다. 수심도 수심 나름이거니와 그의 슬픔은, 그나 알리라. 그는 옆에 않았는 양자의 손을 잡으며 당신을 업어다 마루페 내다놓으라 분부하였다.

양자는 잠자코 머리를 숙일 꽐이다. 만일에 그대로 하면 병만 더칠 뿐 아니라 집안에 살풍경이 일 것을 염려하여서이다. 하지만 환자의 뜻을 거스름이 그의 임무는 아니었다. 재삼 명령이 내릴 적엔 환자를 마지못하여 고이 다루며 마루 위에 업어다 놓으니 환자는 두 다리를 세고 웅크리고 않아서는 마당에 하회을 기다리고 우두커니 섰는 아들을 쏘아보았다. 이태 만에야 비로소 정면으로 대하는 그 아들이다. 그는 기에 넘어 대똥 「이놈 ! 」 하다가 몹쓸 병에 가새질려 턱을 까불며 한참 쿨룩거리더니 「나를 잡아 먹으랴」

고 하고는 기운에 부치어 뒤로 털뻑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몸을 전후로 흔들며 시근거린다. 가슴에 맺히도록 한은 컸지만 병으로 인하여 입만 벙긋거리며 할 말을 못하는 그는 매우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당신 옆에 커다란 식칼이 놓였음을 알자 그는 선뜻 집어 아들을 향하여 힘껏 던졌다. 정갱이를 맞았으면 물론 살인을 쳤을 것이나 요행히도 칼은 아들의 발끝에서 힘을 잃었다.

이 순간 딸들은 아버지를 앞뒤로 얼싸안과 「아버님 저를 죽여 줄소서」 애원하며 그 품에 머리들을 박고는 일시에 통곡이 낭자하였다. 마당의 아들은 다만 머리를 숙이고 멍멍히 섰더니 환자 옆에 있는 그 양자를 눈독을 몹시 들이곤 들아가 버렸다. 하나 며칠 아니면 부자의 호강을 할 수 있음을 짐작했던들 그리 분할 것도 아니련만‥‥‥

얼마 아니어서 아떠지는 돌아갔다. 바로 빗방올이 부슬부슬 내리던 이슥한 밤이었다.

숨을 몬다고 기별하니 형님은 그 부인을 동반하여 쏜살같이 인력거로 달겨들었고 문간서부터 울음을 눌더니 아버지의 머리를 얼싸안을 때엔 세상을 모른다.

그는 느쪄 가며 전날의 지온 죄를 사해받고자, 대꼬 애원하었다. 환자는 마른 얼굴에 적이 안심한 빛을 띠이며 몇 마디의 유언을 남기곤 송장이 되었다. 짐톤을 놓으면 일상 부자간 공이 맞는 괘라 영영 잃은 놈으로 쳤더니 당신 앞에 다시 돌아오매 콩이 마음을 논 모양이었다. 과리고 형님의 효성이 꽃핀 것도 이때이었다.

그는 시급하여 허등거리다가 단지를 하고자 어금니로 자기의 손가자을 깨물어뜯었다마는 으스러져도 출혈이 시뭔치 못하매 그제서는 다듬잇돌에 손가락을 언어 놓고 방망이로 짓이겼다. 이 결과 손가락만 팅팅 부어 며칠을 두고 고생이나 하였을 뿐 피도 짤끔짤끔 하였고 아무 효력도 보지 못하였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건지 가리를 모르고 송장만 빤히 바라보고 서서 울다가 가끔 새아주머니를 곁눈으로 훈었다. 그는 백주에 보도 못하던시아비의 송장을 주무르고 앉아서 슬피 울고 있더니 형님에게 송장의 다리 괄을 펴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거기에 순종하였다. 내가 만일 이때에 나의 청춘과 나의 행닦이 아버지의 시체를 따라갈 줄을 미리 알았더면 나는 그를 붙들고 한 달이과 두 달이고 내리 울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사람을 모르는 철부지였다. 설움도 설움이려니와 긴치 못한 아버지의 상사가 두고두고 성가시었다. 왜냐면 아침 상식은 형님과 둘이 치르나 저녁 상시은 나 흔자 맡는 것이었다. 흔자서 제복을 입고 대막대를 손에 짚고는 맘에 없는 울음이라도 어구데구 하지 않으면 불공죄로 그에게 단박 몽등이 찜질을 받았다. 그러면 자기는 너무 많은 그 돈을 처치 못하여 밤거리를 휘돌다가 새벽녘에는 새로운 계집을 옆에 끼고 술이 만취하여 들어오고 하였다. 천금을 손에 쥐고 가장이 되니 그는 향락이란 향락을 다 누렸다마는 하루는 골피를 찌푸렸다. 철궤에 들은 지전 뭉치를 헤어 보기가 불찰, 10원짜리 다섯 장이 없이졌음을 알았던 것이다. 아침에 그는 상청에서 곡을 하고 나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출가하였던 둘째 누님올 호출하였다. 그리고 다픈 사람은 일절 관처에 얼씬도 못하게 영이 내렸다. 방문을 꼭꼭 닫치고 한참 중얼거리더니 이건 때리는게 아니라 필시 죽이는 소리이다. 애가가가하고 까부러지는 비명이 들리다간 이번엔 식식거리며 숨을 돌리는 신음, 그리고 다시 애가가가다. 그 뒤 들마 보니 전날밤 아버지의 삭망에 잡술 제물을 장만하러 간 것이 불행히 이 누님이던 바 혹시나 이 기회에 그 돈을 다른 데로 돌리지나 않았나 하는 협의로 그렇게 고문을 당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치마만 남기고 빨가벗기어 그 옷을 일일이 뒤져 보고 털어 보았으나 그 돈이 내닫지 않으매 대뜸 엎어 놓고 발깊로 차며 때리며 하여 불이 내렸다 한다. 그래도 단서는 얻지 못하였으니 세째, 네째, 끝의 누님들은 물론 형수, 하녀 또는 어린 나에 이르기까지 어찌 그 고문을 면할 수 있었으랴.

끝의 누님은 한 움큼 빠진 머리칼을 손바닥에 들고는 만져 보며 무한 울었다. 그러나 제일 호되게 경을 친 것은 역시 둘째 누님이었다. 허리를 못 쓰고 드러누워 느끼며 냉수한 그룻을 나에게 청할 제 나는 애매한 누님을 주리를 틀은 형님이 극히 야속하였다. 실상은 삼촌댁이나 세째 누이나 그 둘 중에 그 돈을 건넌방 다락 보고개를 뚫고 넣었으리라고 생각은 하였다마는 나늘 입을 다물었다. 만약에 토설을 하는 나절에는 그들은 형님 손에 당장 늘어질 것을 염려하어서이다.

라이센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