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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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명호 의 아내(明浩) 혜정(慧貞)은 앞마루에서 아침을 먹은 뒤에 설거지를 하다가 손을 멈추고, 방 안을 향하여 “저 좀 보셔요.”하고, 자기 남편을 불렀다.

명호는 담배를 피워 물고 앞에다 신문을 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다가, 혜정의 부르는 소리에 재미스럽게 보던 흥미를 잃어버린 것같이 얼굴에 조금 불쾌한 빛이 나타나 보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허리를 굽혀 앞 미닫이를 소리가 나게 열고는 조금 퉁명스러운 소리로 “웨 그리우?”하였다.

이와 같이 불쾌한 뜻이 섞이어 들리는 “웨 그리우?”하는 대답에 혜정은 어느덧 그 다음에 하려던 말의 흥미를 절반 이상이나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저 보셔요.”라 부르기만 하여두고 한참 동안이나 남편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혜정은 남편이 또 무슨 생각에 열중 한 것을 짐작하였다. 명호는 어떠한 생각에 열중할 때에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할 줄도 모르고, 또는 대답을 한다 하여도 퉁명스러운 소리가 나오던 것이었다. 이와 같이 퉁명스러운 대답이 이 마을로 이사 온 뒤로는 더욱 많아진 것은 명호가 무슨 생각에 열중하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생각하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혜정에게 대하여는 불쾌한 생각을 느끼는 때가 더 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전 생활도 그다지 긴장한 생활이라 할 수 없으나, 이러한 시골로 내려오게 된 것은 조금 장유(長悠)한 시일을 보내어보자는 것이 동기가 되었었다. 그러나 유장(悠長)과 흐리멍덩한 것은 이 명호에게서 거의 구별할 수 없는 형용사가 되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요? 오늘은 밭을 좀 갈아야 할 것이 아니에요. 앞집 칠봉 아범을 하루 동안만 삯군으로 얻어볼까요?”

혜정은 얼굴에 수심스러운 빛을 띄워 가지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데 이 칠봉 아범이란 것은 명호 부부가 이 동리로 이사 오던 그날부터 서로 친하게 상종하는 다만 하나의 이웃 사람이었다. 집안에 조금 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이면, 흔히 칠봉 아범에게 부탁하게 되었다. 그는 젊은 명호 부부를 위하여는 자기 집 볼일이 있어도 그것을 제쳐놓고 명호의 일을 보살필 만큼 충실한 이웃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에도 바깥 일이 급한 것을 걱정하는 혜정이 칠봉 아범을 삯군으로 얻고자 한 것은 자연(自然)한 일이었다.

“글세…… 어떻게든지 해보아야지…….”

명호는 겨우 이만한 대답을 하고는 미닫이 바깥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혜정은 이러한 흐리멍덩한 대답에 조금 병이 났다.그리하여 그의 말소리는 자연히 조금 높았다.

“글쎄, 글쎄라 말만 하면 됩니까? 어떻게든지 일을 시작하도록 하셔야지요. 그러면 제가 가서 칠봉 아범을 불러올까요?”

명호도 아침 일어날 때부터 밭을 갈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물론 없었던 것은 아니로되, 매양 무슨 일이든지 생각만 하고 바로 착수하지 못하는 것이 거의 병적으로 버릇이 되고 만 그가 아내에게 재촉을 다시 당하면서도 속이 시원하도록 대답 한 마디조차 오히려 하지 못한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음 직도 하였다. 그러나 물론 아내에게 대한 감정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 바깥에도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큰 의문으로 있는 것은 이렇게 생활을 하여야만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명호는 한참 있다가 앞마루로 나오며 겨우 입을 떼어 말하였다.

“글쎄, 그러면 불러오구려!”

하고, 그는 다시 두 활개를 벌리고 기지개를 켰다. 소리를 높이어 하품을 크게 하였다.

혜정은 기지개 켜며 하품하는 남편의 얼굴을 유심히 흘겨보고는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이 숨은 그 찰나의 그의 감정을 가려움 없이 표시 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앞 토방을 돌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숨은 왜 쉬오?”

명호는 부엌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뒤를 바라보며 조금 불쾌한 말로 이렇게 물었다.

“생각해보셔요. 한숨이 아니 나올까. 어쩌면 모든 것을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하십니까?”

혜정은 부엌에서 자숫물 통에 물을 떠 부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무엇이 흐리멍덩하다우? 속 모르는 말은 이 담부터는 하지도 마오.”

하고, 명호는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이때에 혜정은 자숫물 그릇을 들고, 다시 부엌에서 앞마루로 나왔다.

“좀 생각해보셔요. 지금이 언제인지 알으십니까? 벌써 사월이 가까워 왔답니다. 다른 사람들의 농사짓고 사는 것을 좀 보시지요. 지금까지 아직도 밭을 그대로 둔 집이 어디 있는가……. 이왕에 이러한 생활을 하신다면은, 이것이나마 좀 의의 있게 하여야 할 것이 아니에요?”

명호는 가만히 듣고만 섰었다. 그에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혜정은 남편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실망한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 모든 일에 등한하셔요? 밭 갈아야 할 것 말씀한 지가 언제인지 알으십니까?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어요. 저는 농사가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알 수도 없다마는 때를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의 밭에는 벌써 싹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 밭은 아직 괭이 맛도 보지 못하였지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밭이 잘되고 못 되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남이 부끄럽지 않아요?”

혜정은 이렇게 숨도 쉬지 않고 한참 동안을 지껄이다가 숨이 차올라와 겨우 말을 그치었다.

그러나 또다시 명호에게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답할 만한 무엇이 있다 하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어떠한 폭군이 충실한 신하의 간하는 말을 들을 때에 취하는 조폭(粗暴)한 태도나 언사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혜정은 다시 말을 내었다. 이번에는 애원하듯이 말하였다.

“저 보세요. 이러한 농촌에서 무엇을 하려고 고생할 필요가 있어요. 이런 생활 ─ 불철저한 생활은 그만두고, 우리에게 적당한 도회로 가는 것이 어때요? 손발이 희고 고운 사람에게는 이러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벌써 틀린 수작이라고 합니다. 암만해도 당신 성격에는 농촌 살림은 적당치 못해요…….”

이것은 명호에게는 참을 수 없는 실망과 비애를 주는 말이었다.

“여보! 그런 쓸데없는 말은 그만 하구려! 지금에 와서 이러한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소? 그만두려거든 당신이나 그만두고 이전처럼 가서 다시 지내구려!”

혜정은 이러한 최후의 말에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없었다. 명호 부부는 이러한 말다툼이 일어날 때에 두 편이 다 같이 흥분한 태도를 가지는 일은 이 전부터 있었다. 그리하여 어디까지든지 자기를 주장함이 자기들 생활에 얼마만 한 영향을 줄는지, 그것을 그들은 알았으므로 한편이 격앙(激昻)할 때에는 한편은 누그러져버렸다. 이것이 가장 그들로 하여금 오늘까지의 결혼 생활을 파멸로 인도치 않은 큰 원인이었다. 말하자면 이 부부의 사이를 떨어지지 않도록 꼭 붙게 한 거멀못이었다.

그리하여 혜정은 두말하지 않고 바깥으로 칠봉 아범을 불으러 나갔다.

명호는 아무 대답 한 마디도 못하고 초연히 바깥을 향하여 나아가는 혜정의 그림자가 사리문 밖으로 사라질 때에 그는 기침을 크게 한 번 하였다.

명호의 이러한 기침은 그가 어떠한 충동을 받거나 또는 흥분할 때에 보통 사람의 한숨이나 눈물을 대신하는 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제에 한 기침은 사리문 밖으로 나아간 아내에게 대한 것이 아니요 말하자면 그가 스스로 , 인정하는 자기의 약한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

명호는 항상 자기가 자신의 행동을 조종할 만한 의지의 힘이 박약하여 필경은 아무 긴장한 맛이 없는 생활조차 마음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의지가 박약한 것만이 원인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일과 또는 귀와 눈에 활동이 있는 이상에는 반드시 아니 보이고, 아니 들리면 아니 될 여러 가지 사상이 도리어 자기라는 육(肉)과 영(靈)의 화합이 아니오, 혼합인 덩어리를 절망의 구렁으로 떠미는 것이 생에 대한 권태를 일으키고, 이 권태가 다시 얼마 남아있지 못한 기력을 소모함인 것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다른 소위 승리자와 같이 무엇이든지 이기고 나아가지 못하는 이 섬약한 의욕에는 증오를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증오를 느끼게 됨도 그가 어떠한 동기로든지 무슨 충동을 받을 때의 일이오, 평상시에는 염두에 올리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해 보였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흐리멍덩한 것은 결코 그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때에 냉정히 자신을 비판할 때에는 자신에 반드시 두 가지의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이중성격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의 불순을 느끼는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이 불순하여 보였다.

따라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처지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그에게는 제왕도 없었다. 모든 권력도 없었다. 이상도 없었다. 있다 하면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생활의 힘이었다. 날카로운 비수를 가슴에 댄다 하여도 그의 전 인격이 그것을 두려워함이 아니요, 다만 생활하겠다는 본능이 그것의 위혁(威嚇)에 전율할 뿐이었다. 이렇게 대담하면서도 어떠한 때에 곁에서 보는 사람이 웃을 만큼 쉽게 그는 희로의 감정을 나타내었다. 또는 자기와 친한 친구나 친척이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오히려 눈썹 하나를 까딱하지 않고 “사람이란 죽는 것이니 할 수 없지. 언제든지 반드시 죽을 터이니까…… 그가 사람인 이상에는…….”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에게는 뜨거운 피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의심할 만큼 냉혹해 보였다. 그러한 대신에 어떠한 때이면, 소설 같은 것을 보다가도 눈물을 흘리게 되어 보드라운 감정을 가진 것도 보였다.

지금에 이러한 명호가 초연히 사리문 밖에로 나간 아내를 바라보고 아무 느낌이 없을 수는 없었다 .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 가운데에 무엇이던지 한 가지가 정히 나타날 때였다.

그는 아내를 언제까지든지 그러한 고통에 두어서는 안 될 것을 더욱 간절히 느끼었다. 그는 사랑으로 들어갔다. 낡은 의복을 가려 입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그가 사랑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아내는 칠봉의 집을 다녀서 벌써 돌아왔다. 혜정은 헌옷을 갈아입고 사랑방에서 나오는 남편을 보고 이상스러운 생각을 하며 말하였다.

“칠봉 아범은 벌써 다른 데로 일 나갔어요. 그러면 오늘도 할 수 없이 틀렸습니다그려!”

“여보! 칠봉 아범이 없어도 염려 말구려. 오늘은 내가 일을 좀 시작해 보겠소.”

하며, 명호는 앞마루 밑에서 헌 짚신을 내어 발에 끼고 마당으로 나왔다.

혜정은 남편의 차림이 하도 서툴러 보여서 한편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남편의 하는 일이 갈수록 우습게 생각되었다. 일주일 전부터 밭을 갈아야 하겠다 하여 그와 같이 혀가 닳도록 말할 때에는 글쎄, 글쎄 하던 그때의 남편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충동을 받을 때에는 의외의 일을 대담하게 하는 일도 없는지는 아니하였으나, 그것은 일 년이나 이 년에 한 번 볼는지 말는지 한 일이라 기괴(奇怪)히 아니 여길 수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혜정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도리어 먼저 남편에게 성나는 대로 함부로 말한 것을 뉘우쳐 생각하였다. 또 한 가지 마음에 적이 의심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은 “나는 밭 갈 수 없어. 귀찮아…….”하고, 밭 파던 괭이를 내던지고 흙 묻은 발로 방으로 뛰어 들어가지나 아니할까 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세요…….”

“정말이야!”

“그러면 저도 가서 조력해드리리까?”

하고, 혜정은 안방으로 들어가 끄나풀로 허리를 단단히 졸라매고 수건으로 머리를 덮어썼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명호는 괭이를 메었고, 혜정은 호미를 들었다. 그리하여 부부는 자기집 뒷밭으로 나갔다.

2[편집]

봄날 아침 하늘빛은 엷은 망사와 같은 아지랑이를 통하여 희푸르게 흐릿해 보였다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 광선은 오히려 호득호득하였다. 이따금 불어 가는 바람은 미지근한 손으로 봄볕에 호듯해진 그들 부부의 뺨을 문질러주었다. 며칠 전 비에 젖은 아직 물기 있는 흙덩이를 밟을 때에 그들은 이상스러운 촉감을 느끼었다. 담 밑의 양지에 파릇파릇한, 인제야 움 나는 풀과 울타리 밖에 자짓빛 페인트를 칠한 듯이 붉고도 윤택해 보이는 포플러 가지 빛은 봄 하늘 빛과 조화되어 보드라운 자극을 주었다.

그들은 신발을 밭도랑 언덕에 벗어놓고 맨발로 밭 위로 올라섰다. 그들의 희고 파리한 발 빛과 흙의 거무충충한 빛과는 너무나 부조화해 보였다. 모래와 돌멩이 섞인 껄끄럽고 단단한 밭 흙 위에 그들의 희고도 연한 살이 닿을 때에 그들은 반사적으로 발을 움츠렸다. 발바닥 밑에는 타도(墮道)가 뚫렸다. 그들은 다만 발뒤꿈치와 앞부리로만 땅을 디뎠다. 비로소 이 땅을 밟는 데에 어떠한 경건한 마음을 느낀 것처럼, 그리하여 그들은 될 수 있으면 뒤꿈치나 그렇지 않으면 앞부리의 하나로만 땅을 디디려 하였으나, 대지의 힘은 그들의 전체를 흙 속으로 깊이깊이 끄집어 당기려 함인지, 발바닥의 전 면적을 요구하였다.

혜정은 “아이구! 따가워요. 간지러워요.”하며 명호를 바라보았다. 명호 역시 괴상스럽게 찡그린 얼굴로 혜정을 바라보았다.

명호는 “에기! 얼른 시작합시다…….”하고, 괭이를 들어 밭 한편 구석에부터 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팔에 힘을 잔뜩 들인 괭이는 그렇게 깊이 그 날이 흙에 파묻히지 않았다. 혜정은 남편이 파놓은 흙덩이를 호미로 깨뜨리고 골랐었다.

그들의 흰 발등에는 어느덧 검은 흙이 덮이었다. 그리고 발에 간지러움과 따가운 것을 느낄 만한 신경은 벌써 마비되고 말았다. 혜정의 고운 손가락 끝은 흙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봄날의 따뜻한 광선과 흙냄새에 취하였다. 두 가슴에는 아침에는 뜻도 못하였던 행복감을 다 각각 품게 되었다. 그들이 봄바람이나 흙냄새에 취하였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러한 순간의 행복감에 취한 것이었다. 혜정은 언제든지 남편이 이처럼 용기를 내어 일하는 용사와 같이 여기었다. 그리고 영원히 무슨 일이든지 용맹을 내이는 일꾼이 되기를 바랐다. 또 자기는 언제든지 남편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 뒤 추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하는 데에서 자기의 행복을 발견하고 싶었다.

명호는 자기가 평일에 동경한 생활의 세례를 오늘에야 처음으로 받은 듯하였다 그러한 경건조차 . 그는 느끼었다. 그리고 자기의 발밑에서 그의 괭이로 파 뒤쳐놓은 흙덩이를 아무도 없이 호미로 깨뜨리고 앉아 있는 혜정을 내려다볼 때에, 지금까지에 얻을 수 없던 서로 이해하는 반려를 얻은 듯하였다. 어느 때까지든지 변함없이 저와 같이 괴로움을 나누는 착실한 동무가 되기로 마음으로 원하였다.

이러한 행복스러운 생각으로 손이나 발과 같이 머리를 활동시키면서 그들은 일을 이어 하였다.

명호의 팔에는 힘이 풀어졌다. 그는 괭이로 땅을 짚고 뒤에서 흙덩이를 깨뜨리며 골라 오는 처를 돌아다보며 더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여보! 정말 되구려! 암만해도 손발이 흰 사람은 이러한 일은 못 해먹겠소!”

이렇게 말하고 명호는 바른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혜정은 흙투성이가 된 두 손을 남편의 눈앞으로 높이 들고 말하였다.

“이걸 좀 보셔요. 손가락이 다 닳았나 봐요. 몹시 아픈데요!”

이와 같이 말할 때에는 흰 수건 밑으로 일하느라고 상기한 얼굴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의 이마와 입 모습에는 땀이 가늘게 구실처럼 맺혔다.

명호는 아내의 반작거리는 눈을 수건 밑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괭이질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여보! 우리 같은 사람은 이런 것은 못해먹을 팔자인 모양이야! 정말 되어서 못 견디겠는걸! 팔이 아프고, 숨이 차서 할 수 없는 걸!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좀 쉬어가며 하시지요.”

“쉬기야 쉬겠지마는…….”

“그렇지마는 누구든지 이러한 일을 어렸을 때부터 하여야만 하겠습니까?

어찌할 수 없으면 누구든지 다 하게 되겠지요.”

“게 누가 이런 것을 꼭 좋아서만 하겠소마는, 먹고살려니까 하지요.”

명호는 괭이로 큰 돌멩이를 파서 밭도랑 위로 올려놓으며 말하였다.

“누구든지 이러한 일을 하면 먹고살 수 있을까요?”

“그러면 당신이 지금 밭을 파고 있으니까. 이러한 일을 한 것만으로 얻어 먹고 살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이러한 일하는 것이 생명을 얻으려는 노력이지오마는, 우리들에게는 이것이 유희나 위안거리밖에 아니 되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혜정은 가쁜 숨을 쉬어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말에 명호의 가슴은 무슨 비수로 나 찔린 것처럼 아팠다.

그러면요 지금 하는 일은 “ . 장래에 생활을 얻으려고 미리부터 준비하여 두는 노동의 연습이라 하면 어떠할까요. 그러면 우리의 지금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일평생 사업으로 여기고 노력하는 사업의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되겠지요. 그리고 자기가 생활에 대한 어떠한 기능을 얻게 되는 셈이겠지요.”

명호의 말이 끝나매 혜정은 빙그레 웃으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신성한 직업을 유희로 아는 것과 같은 모독은 없겠지요. 우리의 태도를 변호하는 말만이 물론 아니겠지요.”하였다.

명호도 따라 웃었다.

명호는 농촌으로 돌아오던 날부터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갈등과 모순을 느끼었다. 이것은 자기의 일한 보수가 넉넉히 생활을 지탱치 못하고, 다만 부모의 약간 유산으로 그날을 지낸다 하면, 도리어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하여 일하는 직업의 신성한 것을 모독함이 아닌가 생각함이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 하였다. 농촌에 파묻히는 그것 보다도 자기에게는 적당한 다른 무엇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핼쑥한 살 밑에서 새파란 심줄이 줄기줄기 비치는 손을 들여다볼 때에 또는 아내의 고운 얼굴빛과 연약한 태도를 바라볼 때에, 그러한 느낌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리고 또 그 사상으로써 톨스토이의 참회 생활 가운데에 농부 노릇한 것과 또는 일본의 어떠한 장군이 농부를 모방하여 똥통을 매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직업을 유희시한 것이라 하여 위선이라 단정을 내린 자신으로, 이러한 모독을 다시 하게 된 것을 인생의 어떠한 보복이라 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이 사회에 대한 조그만 불평, 또는 여러 사람 가운데에 뜻을 얻지 못하였다는 실망 그것만으로 온 인생에 대한 자기의 인생관이 변하여, 이러한 농촌을 찾게 된 것은 냉정한 생각이 그를 에워쌀 때에는, 그러한 소극적인 행위를 그의 양심은 부인하였다. 그리고 또는 자신으로 ─ 어떠한 개념 생활에 열중하였던 그로서, 한편 호주머니에 폭탄을 넣고 다니는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한 것은 큰 유감이었다. 그의 천연의 유나(柔懦)한 성격이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는 항상 혼돈한 사회에서 몹시 자극받을 때에는 어떠한 테러리스트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극단이라 할 만한 은둔적 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에 배태(胚胎)한 생명력을 신장시킴이라 하였다.

명호는 이 두 가지를 두고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그는 T라는 남쪽 나라의 따뜻한 지방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하여는 처도 찬성하였었다. 이와 같이 테냐 퇴(退)냐 하는 갈림길에서 퇴를 취한 그로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직업 모독함이라 하는 데에서 그동안 오래괭이 잡기를 주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의 우연한 기회에 혜정의 흐리멍덩하다고 충동이 한 말이 오랫동안 생각하느라고 피곤한 명호의 신경에 자격을 주어 그를 이 밭으로 끄집어내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러 시간을 두고, 여러 가지로 장래에 대한 생활을 꿈꾸면서 일을 계속하였다.

낮이 조금 지났을 때에 그들은 밭을 거의 다 갈았다. 새삼스럽게 기쁨을 느끼었다. 자기들의 미미한 힘에 오히려 이러한 땅을 갈고, 에너지가 잠재 潛在한 것을 느끼었다. 그리하여 거의 몸이 피곤한 것을 잊어버릴 만큼 기뻐하였다.

“벌써 다 되었어요. 인제는 씨를 뿌려야 하지요.”

이렇게 말하고 혜정은 씨앗을 가지러 갔다.

명호는 괭이자루를 짚고 우두커니 서서 파놓은 밭의 흙을 들여다보았다.

이때에 뛰어노는 흙냄새는 몹시 향기로웠다. 그이는 흙을 두 손으로 담숙히 쥐어 온몸에 뿌리고 싶었다.

혜정은 바쁜 거름으로 씨앗 주머니 넣은 상자를 가지고 왔다. 상자를 밭도랑 위에 내려놓고, 씨앗 주머니를 하나씩 펴보며 남편을 향하여 “이것은 파(蔥)씨! 이것은 아욱씨! 이것은 상추씨!”하고, 일일이 그 씨앗의 이름을 일렀다. 그리고 다시 혜정은 밭도랑으로 다니며 그 씨앗을 뿌렸다.

명호는 담배를 피워 물고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당신은 씨를 잘 뿌리는구려! 언제 그렇게 배웠소! 우리는 암만해도 그렇게 고르게 뿌리지 못할 것 같은데…….”

“저는요. 어렸을 때에 이런 것 하기를 퍽 좋아하였어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에도 제 집 넓은 데에 씨는 제가 다 뿌렸어요.”

하며, 혜정은 허리를 굽히고 이리로저리로 돌아다니며 줄줄이 뿌렸다. 다시 그 위에 흙을 엷게 손으로 흩으려 덮었다. 그는 이렇게 하여 갈은 밭에 거의 다 씨를 뿌리고, 겨우 한 평쯤 되는 데를 밭 한편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손을 털고 숨을 길게 쉬고 나왔다.

이것을 보고 섰던 명호는 이상스러웠던지 물었다.

“거기는 왜 그대로 남겨두오? 뿌리려면 아주 다 뿌려버리지 그러오?”

혜정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꽃 심으려고요!”

“꽃은 심어 무엇 하오?”

명호는 속으로 여자란 것은 역시 언제이든지 이러한 것인가라고 생각하였다.

꽃은 심으면 못씁니까 “ ? 입으로 먹는 것도 좋지마는,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 않아요?”

혜정은 이렇게 말하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해는 낮이 훨씬 지났다. 볕은 그러나 아직 훗훗하였다. 흙냄새는 그들을 취하게 하였다.

3[편집]

밤이 되었다. 처음으로 하여본 하루 동안 일에 명호 부부는 대단히 피곤하였다. 팔다리가 뻣뻣하였다. 굴신할 수 없이 아팠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자지 않고 사랑방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명호와 혜정은 책상을 한가운데에 두고 앉았다. 혜정은 그날 서울서 온 신문을 보고, 명호는 일기책을 앞에 놓고 오늘 일기를 썼다. 사랑방이라 하여도 이름이 좋아 사랑방이오, 실상은 도회지에 있는 행랑방만도 못하였다. 천정이 낮아서 키가 조금 큰 사람은 방 안에서 허리나 다리를 굽혀야 걸어 다닐 만하였다. 그러나 도배한 지가 얼마 아니 되는 고로, 다른 시골 방같이 그렇게 어두컴컴한 기운은 적었다. 방 안의 넓이가 좁고 도배한 지가 얼마 아니 되었다는 것이 조그마한 램프불도 오히려 더욱 밝아 보이게 하였다. 방안에 늘어놓은 것은 다만 책을 가지런히 넣은 책장과 흰 보로 덮은 책상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비교적 정결한 방에 다른 동리 사람들이 손님으로 온 일이 극히 이 방에서 서로 쓸데없는 이야기나 독서로 날을 보내던 터 이었다.

그리하여 명호는 흔히 저녁이면 자기 아내와 함께서 밤이 깊도록 웃음 짓는 일도 많았었다. 실상은 이 방이 내실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더욱 혜정이 이 방으로 나오게 된 것은 안방보다는 등불이 훨씬 밝은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일할 것만이 있고, 다른 찾아온 사람이 없으면 반드시 사랑방으로 나왔다.

혜정은 신문 들은 손을 등불에다 비추어 보더니,

“이것 보세요. 손이 부르텄습니다그려!”

하고, 명호의 앞으로 내밀었다.

“안되었구려! 그대로 가만두려오. 건드리면 안 되오.”

명호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리하여 자기 손도 부르터 물이 잡힌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손을 아내가 자기 앞에 내어 보이듯이 자기의 아내에게로 내어보였다.

“나는 두 군데나 물이 잡혔는걸!”

“이제는 일만 하면 손이 부르트겠지요!”

혜정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물론 그럴 터이지! 부르터지다 못하면 나중에는 칠봉이 어머니 손같이 되겠지요…….”

명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혜정은 칠봉 어멈의 손을 생각하였다. 그 손을 무엇이라고 형용하여 말할 수도 없었다. 그 장작개비같이 굵은 손가락! 왜호박같이 쭈글쭈글한 손등!

주먹같이 툭툭 나불거진 손가락 마디! 그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 다시 그 곱게 흩는 선과 선으로 된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토실토실한 살비듬!

잘쑥잘쑥 들어간 손가락 마디! 수정처럼 얼굴이 비칠 듯 한 고운 손톱! 아!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변한다 생각할 때에 그는 다시 몸을 떨었다. 또다시 남편을 바라보았다. 곱슬곱슬한 머리와 총기가 듣는 듯한 눈이며, 패리운 듯하나 그래도 고상하여 보이는 얼굴빛이 더욱 귀엽게 생각났었다.

“그러면 당신도 필경은 칠봉 아범과 다름없이 되겠지요. 이렇게 십년이고, 이십 년이고 지내면 말이에요?”

“그렇게 되겠지요!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니까, 똑같은 환경에 있어서 나 혼자만 변치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소? 그렇게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혜정은 머리가 다시 휭휭 내둘리었다. 그리고 앞이 캄캄한 듯하고 정신이 아찔하였다.

칠봉 아범의 험상궂은 얼굴! 비굴하여 보이는 웃는 입! 썩은 생선 눈깔 같은 희묽은 영기 없는 눈! 손가락처럼 보기 싫게 나붉어진 손과 다리에 보이는 심줄! 모든 것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다시 나직이 한숨을 휙 내쉬었다.

명호는 쓰던 일기의 끝을 막고 혜정을 향하여

“여보! 내 일기를 읽을 터이니 들어보구려.”

하고, 가늘게 명료하게 읽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한 모험할 성격이 없는 것은 큰 유감이다. 명예와 공리만을 위하여 인간의 참생활에서 거리가 너무나 먼 단적 문제에만 구니(拘泥) 하는 이매망량(魑魅魍魎) 과는 언제까지든지 길을 같이할 수 없다. 나는 그러한 비열한 생활 수단을 취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야심을 속이지 않고 진실한 내면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실패자가 됨을 도리어 기뻐한다.

나는 이 첫 시험을 다른 사람의 직업의 신성을 더럽혔다. 그러나 나는 내의 생을 개척하는 길은 다만 여기에 있음을 믿은 까닭에, 때의 늦음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는 첫 연습을 하였다. 첫걸음을 배웠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영원히 우리의 시달린 영(靈)을 잠재워줄 것으로 믿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세상에 믿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생활을 다시 핍박하는 그때가 오면, 나는 다시 이곳에 불을 놓고 밭을 헤뒤치고 논을 내버리고 표랑의 길을 떠나자! 그러할 때에 같이 갈 이 없으면, 나는 혼자 가자!

끝없는 곳으로. 그러다가 들 가운데에 거꾸러져 죽어도 좋고, 바다에 빠져도 좋다! 나는 그때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때를 도리어 반겨 맞이하자!

그때야말로 내외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줄 터이니까……. 그러나, 그러나 오늘의 흙냄새는 사향(麝香)보다도 더 향기로웠다. 나는 언제든지 그러한 흙냄새를 맡고 싶다……. 나는 비로소 흙의 세례를 받았다. 흙의 세례를 받았다.”

여기까지 읽고, 그는 일기책을 접어 책상 장에다 놓으면 “그 다음은 읽을 것 없소.” 하였다.

혜정은 일기를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매우 주의를 하는 듯하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뵈었다.

명호는 다시 처를 향하여 고적에 쌓인 듯한 웃음을 웃으며 말하였다.

“여보, 알겠소! 이러한 생활이 당신에게 맞지 않거든 언제든지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나는 당신이 어떻게 하던지, 그것을 조금도 원망치 않을 터이니까……”

혜정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원망스러운 듯한 빛으로 말하였다.

“지금에 와서 그러한 말씀을 할 것이 무엇이오. 물론 그러해요. 내가 언제든지 이러한 살림에 싫증이 나고, 또는 당신과 서로 나눠야 할 필요가 생기면,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고라도 내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가 처음에 서로 만날 때부터 서로 약속한 것이니까요. 당신도 언제든지 이 혜정이 주체스럽거나, 또 혜정 때문에 당신의 참으로 하여야 할 일을 못하게 되거든 말씀하여주세요. 그때에 나는 당신을 위하여 눈물을 머금고라도 당신에게 떠나갈 터이에요…….”

명호는 다시 천정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혜정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다시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그들 새에는 잠깐 동안 침묵이 계속하였다.

혜정은 신문을 한참 아무 말 없이 굽어보다가 남편을 불렀다.

이것 보세요 정숙이가 “ . 벌써 시집을 가서 훌륭한 가정의 주부가 될 모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혜정은 신문을 자기 남편 앞으로 내놓았다. 명호는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S신문의 가정란에 서양식으로 꿈인 서재를 배경으로 삼고 박은 정의 부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기사에는 두 사람이 다 사회적으로 의의 있는 사업을 한다는 것이 조금 과장적으로 쓰였었다. 그리고 특별이 정숙은 여류 문학가라는 것을 기재하였다.

“벌써 정숙이가 사회에 명망 있는 여류 작가가 되었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근본이 다른 것이에요!”

“왜요?”

“정숙이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지마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사람의 참속은 모르고 지내왔어요. 졸업한 뒤에는 물론 서로 그뿐이었지요.”

명호는 이와 같은 처의 말에는 어떠한 의욕이 이것을 말하게 한 것을 알았다. 그의 마음에도 아직도 자기 명망이란 것을 무엇보다도 좀 더 날리어 보자는 본능이 대단 굳센 것을 짐작하였다. 이것을 상상할 때에 명호의 마음을 점령한 고적은 그 두 동갑 되는 힘으로 그를 괴롭게 하였다. 명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혜정은 가만히 앉아 신문을 보다가,

“우리가 이대로 여기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아무 알 사람이 없겠지요. 이 동리 사람 외에는, 그리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겠지요? 그저 어떠한 늙은이와 늙은이가 살다가 죽었다고 하겠지요? 혹 자손이 생긴다면 그것들이 조금 섭섭한 생각을 하다가 얼마 지내면 그대로 잊어버리겠지요, 네?”

명호는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들은 정신이나 육체에 한가지로 피로를 느끼었다. 어둠의 장막이 고적과 싸우는 두 혼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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