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과 노불관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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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一)


최근의 소식통은 노불협약의 성공을 전하여 천하의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흔선을 주었을 뿐아니라 세계적 위기라는 1935년을 맞이한 오늘에 있어 완전히 다른 정치경제의 체제를 가진 두 개의 거대한 국가가 한번 더 손을 잡으려는데 대해서 위대한 공노를 양개 국가의 외교당국자들에게 드리는 것은 당연한 예의인 것이지만 특히 대로친선의 급선봉이 가장 격화한 시대라는 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예로서는 1924년에 성공한 불국(佛國)의 좌익내각수상 에리오씨가 영국보존당정부의 쳄파-렌씨와 공동계획으로 독일을 대쏘정책의 밋기(餌)로 쓴 사실이다.


이 계획은 1925년 붐 쳄파-렌씨의 파리 방문이나 제네바에 있어서의 국연춘기위원회를 통해서 착착 진행되었던 것은 동년 가을에 이르러 정책의 실현을 위하여 로카르노회의가 소집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실현과정이란 그다지 손쉽게 아무 대공도 없이 성공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영불이 양개의 인페리아리즘의 대공상이고 현실의 역사는 벌써 그들의 이론을 파산케 한것도 옛일의 하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 공황의 선화를 계기로써 불란서의 산업자본주의가 요구한 소벳트 덤핑방지법의 폐지, 쏘불무역관계부활 같은 것들은 금융자본의 완강한 거부에 분쇄되었던 것은 세인의 기억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만큼 사물의 선악은 말하지 말고라도 이러한 일이 있었던 1925년으로부터 오늘날까지의 국제적 정치경제정세의 커다란 상위에 대한 새로운 고려만은 해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자본주의가 상대적 안정기였으며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일반적위가 되어있는 불란서의 민중재상 에리오씨의 공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쏘불관계의 장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이래의 쏘불관계의 역사적 소장의 구주외교의 전면적 구명을 시험해 보기 전에는 정확한 해답을 바랄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논객들은 불국에 있어서의 공황의 심화라든지 이러한 단순한 이유로써 또는 좌익내각의 출현○○(판독불능)는 등 너무나 말소적인 현상만을 들어서 쏘불관계를 아주 전향기에 들어선 것같이 떠든 것은 사물의 현상만 보고 본질을 파하지 못한 고루한 학자적 幻은 엄연히 錦??에 칼을 싼데도 불구하고 대쏘란생명선상의 문제를 위해서는 영불 양개정부의 모즌 양보 더구나 군사상의 모든 양보는 이 회의의 성과를 더욱 신속히 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영국의 대쏘정책에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론의 당연발전을 위해서는 영불 양국의 대쏘정책의 제관계까지 논급하여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과 아울러 이상 양국의 구라파에 있어서의 영도권획득의 대 과정까지 고찰하여 현금의 국제정국에서 가장 지배적인 지위를 점령한 불국의 대쏘정책을 논술하는 것은 적절한 순서가 아니면 안될 것이다.


이(二)


여기서 우리의 시각을 통하여 본 영국 인페리아리즘의 대쏘인식은 제삼국제의 원조밑에서 자기국내의 ××운동이 확대강화된다고 보는 것과 식민지에 있어서는 피통치군의 동요와 한걸음 나아가서는 노서아 시장의 획득인 것은 알기에 고심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자본의 의도는 볼드윈 내각으로 하여금 화란 체코슬로밧갸 루마니아 등 국을 자국과 우호관계 맺게하고 그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약속하였으니 볼드윈 내각은 이상의 국가들에 있어서 산업발달을 시키고자 그 중에도 운수공업을 발달시킬만한 재정적 보조를 기여하여 장래의 지도권을 확보하려하였으며 영국 인페리아리즘의 제창인 영불군사동맹도 한숨에 달성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양개국가의 대공은 대쏘정책의 긴밀한 임무를 위해서는 한번도 대립되지 못하였을 뿐아니라 그 유명한 주불노대사 라코부스커- 소환사건이란 것도 여사한 의도를 가진 영제국주의 다시말하면 영국 석유자본의 책동에 의하여 인출되었던 것은 당시의 신문들이 훤적하게 떠든 것만도 알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주에서 대쏘정책의 영도권을 잡을 만한 국가라면 그 지도적 권력제도를 통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럴때는 노서아의 인접지 즉 그 소협상국 및 발칸 제국을 금융적 군사적 세력으로서 정복한다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영제국정부는 이들 소협상국에 군수품을 제공하거나 군사재정을 보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외교정책을 행하여 온 것이니 그 특징적 예를 몇가지 만들 것 같으면


가, 1928년 4월 두 사람의 영국비행가가 런던으로부터 폴란드의 항공상태를 시찰하고자 [루부란]에 날아 온 것과


나, 1928년 4월에 영국의 군사사절이 [루발]에서 분란(芬蘭)의 참모본부를 방문한 것과


다, 1928년 6월 영국의 뿌르 대장이 [리가]와 [루발]을 방문하고 [리트와니아]와 [에스트니아]의 각 참모본부의 대표자들과 협의한 사실은 당시에 공표되지 않은 것이니만큼 아직도 정확한 말을 못할지언정 그 뿌-르 장군은 그전부터라도 대쏘문제의 한 권위로써 탁월한 견해를 가지고 인접제국의 중요성을 그려보고 온 사람이다.


다음으로 영국이 쏘벳트 인접국에 대하여 취한 수단은 경제적 재정적 원조인 것이니 즉 영정부는 파란이 아메리카 자본의 착관을 얻는데 성공케 한 것과 아울러 1929년 루-마니아를 위해서 국제착관의 조직에 대하야 특별한 노력을 한 것이었으니 그 착관의 대부분은 루-마니아 군비확장에 사용된 것이다. 그 외에도 영국자본은 동국의 군수공업공장건설에 막대한 장기대부를 하였으며 이외에 영국은 여러 가지 외교적 또는 경제적 정책을 통하여 파란 및 발칸 제국간의 군사동맹을 결성하기에 노력하엿으나 이것은 영불 양국의 이해의 대립으로 말미암아 영불동맹이 결성한 후에도 완전한 방법이 실현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때나 이러한 필사적 영제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라파에 있어서 그의 영도권은 불란서에 장악되어왔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에 언제부터의 일이었을까?


삼(三)


그러면 불란서가 구라파에 있어서 패권을 잡기에 영제국을 압도시킨 최대의 원인은 양국가의 경제력 상위였다는 것은 불란서의 경제적 번영과 강대한 군비력이 금일의 불란서로써 구주패권을 잡게 한 것이며 그것이 불국으로써 대쏘선상에 대담하게 진출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이에 기억하여둘 것은 불란서가 대소○○(판독불능)에 지휘자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쏘벳트 인접 소국의 맹주가 되지 않아서는 안될 것은 영국의 그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으며 이 제소국이 맹주가 되려면 군사적 경제적 기초조건이 완전히 구비되지 않으면 불가능하였다. 세인이 알다시피 영불 블록의 결성후에라도 불국이 구주에서 쏘벳트 인접국에서 군사적 지휘권을 잡은 소이는 불국이 영국보다 우수한 세력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것은 파란 루-마니아 기타 중구제국의 전 존재가 그의 군사적 금융적 맹주인 불란서의 후원에 달려있는 것만 생각하면 명료히 아는 것과 같이 불국의 이상과 같은 원조가 없이는 쏘벳트 서경의 현재와 같은 군사조직은 어떤 사람이라도 상상할 수 없다기보다 그곳에 있어서는 영불 양국의 패권획득의 투쟁과정을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곤난한 것이다.


가. 대전 직후 쏘베트 인접국에 대한 군사적 재정적 원조는 영불이 거의 공통되었다. 파란 루-마니아를 상대로는 불란서가 주역을 맡았지만 빨틱 제국의 그것은 영국이었다.


나. 1920년부터 1926년까지 쏘벳트 인접제국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의 지배적 역할을 맡은 것은 불국이었으나 동년말기에 이르러 불국은 급격한 금융상태의 동요와 다른 정치적 원인으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역량이 희박하여지자 이 기회에 영국과 이타리가 막대한 이익을 본 것은 세간주지의 사실이었다.


다. 1927년 불국은 새로운 공세로써 루-마니아에서 이타리의 세력을 구축하고 말았으니 사실상 이루 간의 협약이라는 것은 무효가 되었고 영국의 파란을 중심으로 한 제국에서 세력 감퇴되었다.


이같이하여 불국은 쏘벳트 서경제국의 군수품 공급의 지배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으니 체코슬로바키아의 원조에 적극적 참가를 하게 된 것도 이 기간의 사실이며 체코의 군수공업이 불국의 공업과 협동하는데 의해서 날로 왕성하여진 것도 마치 루-마니아와 파란의 그것과 한가지인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특징적인 일례로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코다 공장으로서 이 공장의 자본의 대부분은 불란서 금융자본의 수중에 장악되어있는 것이다.


1928년이 불체간의 상태는 한층 더 발전하였으니 체코의 군수공업이 급속히 발전하여 루-마니아와 파란으로부터 군수품의 대량주문이 있은 것과 론드 장군과 필츠키-의 방문, 체파 통상조약의 협약 등등은 물끓듯 하는 세상의 균형이 기울게 된다면 이것들의 역할을 말하지 않아도 알수가 있는 것이지만 미국의 그것은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고는 할지라도 불란서의 그것에 비하면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1929년말부터 세계공황의 폭발과 함께 맨처음 격열한 공황에 휩쓸린 것은 중구제국이었으며 이것을 구제할 자는 동양으로 몰락에 신음하는 영제국이 아니고 공황과 가장 잘 싸워온 막대한 대부였던 것도 특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사(四)


이러한 전통을 가진 불란서의 대소정책은 그 수단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변해왔으나 그 근본 방침만은 결코 변하여질 리는 만무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쏘벳트서경에 이같이 공고한 반병을 작만하여 놓은 이상 옛날과 같은 공포심은 어느 정도까지 해소되었다는 것보다는 구주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이라도 하려는 만큼 히틀러의 독일의 출현에 따라 형해만 남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지자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서 소련의 처지로 본다고 하더라도 여하간 세계평화를 보장한다는 말에는 이들과 손을 잡기도 그다지 손해는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선이란 것은 어느때나 상대적으로는 친선할 수가 있는 만큼 다같이 친선을 도모하려면 그중에도 불란서가 좋은 것이며 이 소련의 관계는 베르사이유조약이 존재하는 동안은 어쩌면 지속되어가리라고 믿어두는 것은 죄없는 희망일 듯하다.


본의는 좀더 구체적으로 논술하려하였으나 시간관계로 유감이나마 금번은 이 정도에 주리고 다음 기회에 미루어둔다 필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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