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재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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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간첩방조·국가보안법 위반·법령제5호 위반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 【판시사항】 [1]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 위반죄에서 ‘결사 또는 집단’의 의미 및 그 주관적 요건인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 유무의 판단 기준

[2] 피고인이 평화통일의 실현 등을 강령·정책으로 하여 결성한 ‘진보당’이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에 정한 ‘불법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3]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검사) 및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4] 형법 제98조 제1항에서 ‘간첩’의 의미 및 간첩이 이미 탐지·수집하여 지득하고 있는 사항을 타인에게 보고·누설하는 행위가 간첩행위인지 여부(소극)

[5] 피고인에 대한 ‘간첩’의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득한 관련 문건 등을 보고·누설한 행위에 불과하여 그 자체로서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6]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변경된 경우 법원이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령(=재심판결 당시의 법령) [7] 이른바 ‘진보당사건’에 관한 재심대상판결인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형상559 판결에 대하여 재심이 개시된 사안에서, 원심판결과 제1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하고 직접판결을 하면서 제1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된 진보당 관련 구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간첩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한편, 무기불법소지행위에 대하여는 형의 선고를 유예한 사례


【판결요지】 [1] 구 국가보안법(1958. 12. 26. 법률 제500호로 폐지제정되기 전의 것) 제1조, 제3조는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로서 수괴와 간부는 무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하고, 그 목적으로서 그 목적한 사항의 실행을 협의 선동 또는 선전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국헌을 위배하여’라 함은 대한민국헌법에 위반하는 것을, ‘정부를 참칭한다’고 함은 합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정부를 조직하여 진정한 정부인 것처럼 사칭하는 것을, ‘국가를 변란한다’고 함은 정부를 전복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각 의미하고, ‘결사 또는 집단’이라 함은 공동의 목적을 가진 2인 이상 특정 다수인의 임의적인 계속적 또는 일시적 결합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위 법 제1조, 제3조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된 결사나 집단의 공동목적으로서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 즉 주관적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그 결사나 집단의 강령이나 규약에 의하여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나, 외부적으로 표방한 목적이 무엇인가에 구애되지 않고 그 결사 또는 집단이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하며, 어느 구성원 한 사람의 내심의 의도를 가지고 그 결사 또는 집단의 공동목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2] 피고인이 평화통일의 실현 등을 강령·정책으로 하여 결성한 ‘진보당’은 그 경제정책이 사회적 민주주의의 방식에 의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부작용이나 모순점을 완화·수정하려고 하였을 뿐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체제의 골간을 전면 부인하는 취지가 아니고, 정치형태 역시 주권재민과 대의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 등을 목표로 하였을 뿐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내용이 아니어서 그 결성 목적이 대한민국헌법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고, 또한 진보당의 통일정책인 평화통일론이 북한의 위장평화통일론에 부수하는 것으로 인정되지 아니하고 이를 인정할 다른 아무런 증거도 없어 그 결성이 북한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구 국가보안법(1958. 12. 26. 법률 제500호로 폐지제정되기 전의 것) 제1조, 제3조에 정한 ‘불법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3]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4] 형법 제98조 제1항에서 간첩이라 함은 적국에 제보하기 위하여 은밀한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군사상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등 기밀에 속한 사항 또는 도서, 물건을 탐지·수집하는 것을 말하고, 간첩행위는 기밀에 속한 사항 또는 도서, 물건을 탐지·수집한 때에 기수가 되므로 간첩이 이미 탐지·수집하여 지득하고 있는 사항을 타인에게 보고·누설하는 행위는 간첩의 사후행위로서 위 조항에 의하여 처단의 대상이 되는 간첩행위 자체라고 할 수 없다.

[5] 피고인에 대한 간첩의 공소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보당의 중앙위원장인 피고인이 이미 지득하고 있던 관련 문건 등을 보고·누설한 행위에 불과하여 그 사실 자체로서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6]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령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이고,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변경된 경우 법원은 그 범죄사실에 대하여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을 적용하여야 한다. [7] 이른바 ‘진보당사건’에 관한 재심대상판결인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형상559 판결에서 피고인에 대한 구 국가보안법(1958. 12. 26. 법률 제500호로 폐지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국가보안법’이라고 한다) 위반, 군정법령 제5호 위반 및 간첩의 공소사실이 각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피고인의 자녀들이 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이 개시된 사안에서, 원심판결과 제1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하고 직접판결을 하면서 제1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된 진보당 관련 구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간첩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한편, 무기불법소지에 의한 군정법령 제5호 위반죄에 대하여는 당시 적용법령인 위 제5호가 폐지되어 구 총포화약류단속법(1981. 1. 10. 법률 제3354호 총포·도검·화약류단속법으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을 적용하였으나, 피고인의 독립운동가 및 정치인으로서의 이력과 이 사건 재심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진 점 등을 고려하여 그 형의 선고를 유예한 사례.


【참조조문】 [1] 구 국가보안법(1958. 12. 26. 법률 제500호로 폐지제정되기 전의 것) 제1조(현행 제2조, 제3조 참조), 제3조(현행 제4조 참조) [2] 구 국가보안법(1958. 12. 26. 법률 제500호로 폐지제정되기 전의 것) 제1조(현행 제2조, 제3조 참조), 제3조(현행 제4조 참조) [3] 형사소송법 제308조 [4] 형법 제98조 제1항 [5] 형법 제98조 제1항,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308조 [6] 형법 제1조 제1항, 제2항, 형사소송법 제438조 [7] 형법 제1조 제1항, 제2항, 제8조, 제98조 제1항, 구 국가보안법(1958. 12. 26. 법률 제500호로 폐지제정되기 전의 것) 제1조(현행 제2조, 제3조 참조), 제3조(현행 제4조 참조), 군정법령 제5호 제2조, 구 총포화약류단속법(1981. 1. 10. 법률 제3354호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으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12조(현행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제10조, 제12조 제1항 참조), 제36조(현행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제70조 제1항 제2호 참조)


【참조판례】 [1] 대법원 1982. 9. 28. 선고 82도2016 판결(공1982, 1113), 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도2671 판결(공1992, 959) / [3] 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도1568 판결(공2000하, 1964), 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도4946 판결(공2001상, 688),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9도1151 판결(공2010하, 1689) / [4] 대법원 1982. 2. 23. 선고 81도3063 판결(공1982, 400), 대법원 1982. 4. 27. 선고 82도285 판결(공1982, 549), 대법원 1982. 11. 9. 선고 82도2239 판결(공1983, 132) / [6] 대법원 1996. 6. 14. 선고 96도477 판결(공1996하, 2282) / [7] 대법원 2010. 10. 29.자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결정(공2011상, 63)


【전문】 【피 고 인】 망 조봉암

【재심청구인】 피고인의 자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법무법인 양재 담당변호사 김창국 외 6인

【재심대상판결】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형상559 판결

【주 문】 원심판결과 제1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한다. 무기불법소지에 의한 군정법령 제5호 위반죄에 대하여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공동피고인 1 관련 간첩의 점은 무죄. 제1심판결 중 진보당 관련 구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진보당이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결사’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구 국가보안법(1948. 12. 1. 법률 제10호로 제정되어 1958. 12. 26. 법률 제500호로 폐지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국가보안법’이라고 한다) 제1조, 제3조는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로서 수괴와 간부는 무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하고, 그 목적으로서 그 목적한 사항의 실행을 협의 선동 또는 선전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국헌을 위배하여’라 함은 대한민국헌법에 위반하는 것을, ‘정부를 참칭한다’고 함은 합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정부를 조직하여 진정한 정부인 것처럼 사칭하는 것을, ‘국가를 변란한다’고 함은 정부를 전복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각 의미하고, ‘결사 또는 집단’이라 함은 공동의 목적을 가진 2인 이상 특정 다수인의 임의적인 계속적 또는 일시적 결합체를 말한다 ( 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도2671 판결 등 참조). 그러므로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된 결사나 집단의 공동목적으로서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 즉 주관적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그 결사나 집단의 강령이나 규약에 의하여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나, 외부적으로 표방한 목적이 무엇인가에 구애되지 않고 그 결사 또는 집단이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이며, 어느 구성원 한 사람의 내심의 의도를 가지고 그 결사 또는 집단의 공동목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나. 원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면, 피고인은 국헌에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는 북한괴뢰집단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우리는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한 근로대중(피해 대중)을 대표로 하는 주체적, 선진적 정치적 집결체이며, 변혁적, 주체적 세력의 적극적 실천에 의하여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착취 없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혁신정치의 실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폐기 지양하고, 주요 산업과 대기업의 국유 내지 국영을 위시로 급속한 경제건설, 사회적 생산력의 제고 및 사회적 생산물의 공정분배를 완수하기 위하여 계획과 통제의 제 원칙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수탈 없는 경제체제의 확립, ‘우리는 남북한에서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요소를 견제하고 진보당세력의 주도권 장악하에 피 흘리지 않는 평화적 방식으로 조국의 통일을 실현한다’는 취지의 평화통일의 실현 등을 강령정책으로 하는 진보당을 조직하는 동시에 그 수괴인 중앙당위원장에 취임하고, 또한 공동피고인 3으로부터 ‘실천적 제 문제’라는 문서를 받아 진보당 노선의 자료로 검토하고, 당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근민당의 재남 잔류자인 김성숙 등과 회합하여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으며, 중앙정치 10월호에 ‘평화통일에의 길, 진보당의 주장을 만천하에 천명한다’라는 논문을 게재하고, 공동피고인 4로부터 ‘북한 당국의 평화공세에 대한 진보당의 선언문’이라는 제목으로 기안된 통일방안을 제출받아 진보당의 노선으로 검토하는 등 4회에 걸쳐 진보당의 목적한 사항의 실천을 협의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하 ‘이 사건 제2 공소사실’이라 한다. 이는 이 사건 2010. 10. 29.자 재심개시결정 기재 순서에 따른 것이다. 이하 같다)에 대하여, 원심은 그 판시 증거를 종합하여 이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나아가 진보당은 폭력적 혁명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 평화적 민주적 선거의 방법으로 그 강령정책을 실천하려는 결사이므로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소정의 불법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위 법조항의 규정은 결사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법이 폭력적 혁명의 방법이든 평화적 민주적 선거의 방법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 다음, 피고인을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 위반죄로 처단하였다.

다. (1) 먼저, 진보당의 결성 목적이 대한민국헌법에 위배된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원심 및 제1심에서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면, 진보당의 강령은 “1. 우리는 원자력 혁명이 재래할 새로운 시대의 출현에 대응하여 사상과 제도의 선구적 창도로써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의 달성을 기한다. 2. 우리는 공산 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이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여 책임 있는 혁신정치의 실현을 기한다. 3. 우리는 생산 분배의 합리적 계획으로 민족자본의 육성과 농민·노동자 모든 문화인 및 봉급생활자의 생활권을 확보하여 조국의 부흥 번영을 기한다. 4. 우리는 안으로 민주 세력의 대동단결을 추진하고 밖으로 민주 우방과 긴밀히 제휴하여 민주 세력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평화적 방식에 의한 조국 통일의 실현을 기한다. 5. 우리는 교육 체계를 혁신하여 점진적으로 국가보장제를 수립하고 민주적 새 문화의 창조로써 세계 문화에의 기여를 기한다.”는 것이고, 그 정책은 ‘무능 부패한 낡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서의 볼셰비즘(Bolshevism)을 다 같이 지양할 수 있고 또 지양하게 될 사회민주주의만이 우리 민족을 자유와 진보와 행복으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 아래, ① 남한의 소위 무력통일론은 이미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하며, 평화적 통일에의 길은 오직 하나 남북한에 있어서 평화통일을 저해하고 있는 요소를 견제하고 민주주의적 진보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통일정책으로, ② 낡은 ‘자유민주주의 = 자유자본주의적’ 방식은 무력하고 무효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유해하므로, 폭력적 독재적인 볼셰비즘적 방식과 더불어 이를 단호히 거부·배격하는 동시에 대중적이고 과학적인 ‘사회적 민주주의 = 계획적 민주주의’의 방식과 원칙에 의거하는 것을 경제정책으로, ③ 일인 독재에 기울어지기 쉽고 따라서 대의제도와 법질서가 유린되기 쉬운 현 대통령중심제 정부형태를 반대하고, 진실로 법이 준수되고 만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며 집권자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에 대해서 책임지는 의원내각제를 확립할 것을 정치형태로 채택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보당의 강령·정책이 위와 같다면, 진보당이 지양하고자 하는 소위 ‘낡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낡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자본주의’ 등이라고 함은 소위 자유방임적 자본주의(laissez-faire capitalism)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진보당의 경제정책은 사회적 민주주의의 방식에 의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부작용이나 모순점을 완화·수정하려는 데 있는 것이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체제의 골간을 전면 부인하는 취지가 아님이 분명하고, 진보당의 정치형태 역시 주권재민과 대의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 등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내용이 아님이 분명하므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구 대한민국헌법(1954. 11. 29. 헌법 제3호로 일부 개정된 것, 이하 ‘구 대한민국헌법’이라 한다) 및 현행 헌법의 각 전문 및 경제조항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 및 경제질서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2) 다음으로, 진보당의 결성이 북한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원심판결 및 제1심판결에서 들고 있는 모든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진보당의 통일정책인 평화통일론이 북한이 대한민국을 변란할 목적으로 선전·선동하고 있는 위장평화통일론에 부수하는 것이라고 인정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인정할 다른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는 이 사건에서, 그 평화통일론이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 당시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통일론이었던 북진통일론에 배치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을 들어 곧바로 진보당의 통일정책이 헌법에 위배된다거나 또는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주창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3) 재심대상판결은, 피고인이 원심 공동피고인 2 등과 함께 창당한 진보당은 그 강령정책에 비추어 국헌에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는 북한괴뢰집단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결사라고 판단하여 이 사건 제2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진보당의 강령정책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고 진보당의 평화통일에 관한 주장 역시 언론자유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 없어 그 조직에 참가하여 간부 기타 요직에 취임하고 정치활동을 한 원심 공동피고인들은 죄가 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진보당은 피고인이 주동·발의하여 추진·결당된 것이며 그 결당 목적이 북한괴뢰집단과 밀통 야합하여 그 지령하에 대한민국을 변란하려 함에 있음이 명백한 이상 피고인은 그 결사를 구성한 죄책을 면할 수 없고 그에 의하여 조직된 진보당 역시 자체의 성격에 불구하고 불법단체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에 규정된 불법결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결사의 공동목적이 국가변란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 결사를 주동·발의하거나 또는 그에 참가한 구성원 한 사람의 내심의 의도와 결사의 목적을 동일시하여 구성원별로 그 해당 여부를 달리 볼 것은 아니므로, 위 재심대상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재심대상판결은 뒤에서 보는 공동피고인 1 관련 간첩죄의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됨을 전제로 피고인이 북한괴뢰집단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진보당을 창당하고 그 통일정책으로 평화통일론을 내세운 것이라고 판단하였으나,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동피고인 1 관련 간첩죄에 대한 원심의 사실인정이 그릇된 것인 이상 재심대상판결의 그와 같은 판단 또한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진보당의 강령·정책이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거나 자유민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이 사건 제2 공소사실을 그대로 유죄로 인정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증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증거재판주의에 위반하였고 또한 구 대한민국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와 경제질서 및 구 국가보안법 제1조에 규정된 결사의 의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2. 간첩죄의 성립 여부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원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용 증거에 의하여 피고인과 공동피고인 1에 대한 간첩죄의 공소사실(이하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이라 한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공동피고인 1은 단기 4288년 6월 군첩보기관 해상공작 경로로 월북하여 노동당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의 직에 있는 박일영을 만나 동인으로부터 피고인이 하는 신당 운동의 내용과 그의 사생활을 자세히 조사하여 오라는 지령을 받고 한약재료 등 시가 300만 환 상당의 물품을 받아 월남한 후 재차 월북하여 그에게 피고인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비롯하여 피고인이 민주당 창당운동에서 제외되어 신당의 조직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였다. (2) 공동피고인 1은 단기 4289년 2월 육군 첩보기관의 휴전선 경로로 월북하여 박일영을 만나 동인에게 피고인이 진보당 결당 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하였다. (3)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박일영으로부터 “현재 북에서는 피고인과 합작할 용의가 있으니 남한의 현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하여 평화통일이란 공동목표로 합작하자는 말을 전하라, 피고인이 5·15 정부통령선거에 입후보하면 재정적으로 후원한다고 전하라”는 지령을 받고, 그 해 3월 피고인을 만나 그와 같은 지령을 받았다고 전하고,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벌었으면 개인적으로 원조하여 달라”는 말을 들었으며, 월북하여 박일영에게 그와 같은 취지를 보고하였다. (4)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박일영으로부터 선거자금을 원조한다고 전하라는 지령을 받고 월남하여 그 해 4월 피고인에게 그 지령을 전하고, 피고인이 “돈을 벌었다면 개인적으로 원조해 달라는데 왜 딴 소리를 하는가” 하므로 자신의 제의를 승낙하는 줄로 알고 “선거자금은 얼마나 드는가”라고 물어 “약 2억 환 있으면 족하다.”라는 말을 들었으며, 월북하여 박일영에게 그와 같은 취지를 보고하였다. (5)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박일영으로부터 600만 환 상당의 한약재를 받아 월남하여 피고인에게 현금 및 보증수표 500만 환 가량을 교부하고, 월북하여 박일영에게 그 교부사실과 5·15 정부통령선거에서 신익희가 사망한 까닭에 피고인이 약 200만 표를 획득하였다는 취지의 보고를 하였다. (6)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박일영으로부터 “이제는 선거도 끝났으니 빨리 창당하도록 하라, 정당은 기관지가 필요하니 속히 일간신문지 판권을 획득하여 평화통일노선을 적극 추진하도록 하라, 그 운영자금은 전적으로 원조할 터이니 전하라”는 지령을 받고 월남하여 피고인에게 그 지령을 전하고, 그 해 8월 월북하여 박일영에게 피고인과의 회담내용을 보고하였다. (7)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박일영 및 그로부터 소개받은 임춘추로부터 700만 환 상당의 물품을 받아 월남하여, 그 해 9월부터 11월까지 사이에 피고인, 그의 장녀인 재심청구인 1, 그의 운전사인 공소외 1 등에게 400만 환 가량의 현금 및 보증수표, 백삼 3근 등을 교부하고, 피고인으로부터 “백삼을 보내 주어서 감사하다, 사업은 잘 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많이 후원하여 주기 바란다.”는 취지의 편지를 받아 월북하여 박일영의 후임자인 임호에게 피고인의 편지를 전하고 진보당의 창당 및 진보당이 평화통일을 구호로 내세웠다는 내용을 보고하였다. (8)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임호로부터 지령을 받고 월남하여, 단기 4290년 2월 피고인에게 합계 500만 환 가량의 보증수표를 교부하고 그 무렵 피고인으로부터 진보당 중앙위원 및 상임위원 명단, 진보당의 선언 강령 정책 당헌이라는 소책자 및 진보당의 동향을 감시하라는 공소외 2 치안국장의 무전지시 사본 등을 교부받고 월북하여 이를 전달하였다. (9)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최 명불상으로부터 “조속히 신문사를 경영하도록 하라, 진보당의 조직을 강화하는 동시에 혁신세력을 규합하여 연합전선을 추진하도록 하라, 미군철수를 주장하라”는 취지의 지령을 받고 월남하여, 그 무렵 피고인을 만나 그 지령을 전하고, 그 해 5월 피고인으로부터 “사업이 잘 되기는 하나 경제적으로 곤란하므로 좀더 원조해 달라”는 취지의 자필서한과 진보당 지방당 간부 명단 1장, 대구시당 간부예정자 명단 1장 등을 받고 월북하여 이를 전달하였다. (10)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임호로부터 지령 및 미화 27,000불, 녹용 10냥 등의 금품을 받고 월남하여, 그 무렵 피고인에게 위 미화를 환전하여 마련한 2,400만 환 가량의 보증수표 및 미화 620불을 교부하고, 그 해 9월 피고인으로부터 중앙정치 10월호 1권, 진보당 조직 명단 1장 등을 교부받고 월북하여 이를 전달하였다. (11) 공동피고인 1은 위 자리에서 조 명불상 등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월남하여, 그 무렵 피고인을 만나 그 지령을 전하고 피고인으로부터 “반미운동과 관련하여 진보당의 지위가 확고하지 못하여 주장하기 어렵다, 진보당의 지방조직은 잘 되어 간다, 자기는 제4대 민의원 총선거에서 인천에서 출마할 예정이다.”라는 취지의 말과 진보당의 제4대 민의원 입후보자 명단 1장과 자금요청서 1장 등이 들어 있는 진보당선거대책이란 서한을 교부받았다.

나. 먼저, 원심이 들고 있는 유죄의 증거를 살펴본다. (1) 피고인은 육군특무부대 이래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공동피고인 1로부터 돈을 벌었으니 지원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적은 있으나 북한괴뢰집단이나 그 구성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거나 그 지령한 사항의 실행을 협의한 사실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의 진술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 (2) 그리고 공소외 3, 4, 5, 6, 7 등의 검찰 또는 제1심법정, 원심법정 등에서의 각 진술, 재심청구인 1, 공소외 8, 9 등의 검찰에서의 각 진술 등을 살펴보아도 이들은 모두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은 없다. 또한, 수사기관에서 압수한 물건들도 모두 그 내용이나 경위에 비추어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 (3) 그렇다면 남는 증거로서는 공동피고인 1의 진술뿐인데, 공동피고인 1은 육군특무부대 이래 검찰 및 제1심법정에서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다가 원심법정에 이르러 그 진술을 허위라고 번복하고 있으므로, 그의 진술의 증명력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 사건 2010. 10. 29.자 재심개시결정 이유에서 보듯이, 기록에 의하면 공동피고인 1은 육군첩보부대(HID)의 공작경로를 이용하여 남북한을 왕래하면서 물자교역에 종사하던 자로서 군인이나 군속의 신분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권이 없는 육군특무부대에 영장 없이 연행되어 장기간 여관에 감금된 상태에서 그 무렵 진보당 결성 및 그 평화통일론의 이적성 등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미 구속되어 있었던 피고인과의 관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더하여 공동피고인 1이 남북한을 왕래한 것은 육군첩보부대의 도움을 얻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 및 공동피고인 1이 원심 제1회 공판기일에서 수사기관 및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을 허위라고 번복한 이후 일관되게 그와 같이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볼 때, 그가 원심법정에서 한 진술과 배치되는 수사기관 및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이 특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4) 무릇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도1568 판결, 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도4946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의 경우, 공동피고인 1의 수사기관 및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원심법정에서의 진술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그 전후 사정에 비추어 신빙하기 어렵고, 그 밖의 다른 증거들은 이 사건 공소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아니하거나 피고인의 무죄 주장을 배척하기에 부족하므로, 결국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기록상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증거를 들어 위 공소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308조에 규정한 증거재판주의와 자유심증주의에 위반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서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다. 다음으로, 원심판결 이유에 기재된 이 사건 간첩죄의 범죄사실이 과연 형법 제98조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형법 제98조 제1항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간첩이라 함은 적국에 제보하기 위하여 은밀한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군사상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등 기밀에 속한 사항 또는 도서, 물건을 탐지·수집하는 것을 말하고, 간첩행위는 기밀에 속한 사항 또는 도서, 물건을 탐지·수집한 때에 기수가 되는 것이므로 간첩이 이미 탐지·수집하여 지득하고 있는 사항을 타인에게 보고·누설하는 행위는 간첩의 사후행위로서 위 조항에 의하여 처단의 대상이 되는 간첩행위 자체라고 할 수 없다 ( 대법원 1982. 2. 23. 선고 81도3063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원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는 공동피고인 1로부터 북한의 지령을 전달받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로부터 금품 등을 수수하고 그에게 진보당 관련 문건 등을 교부하였다는 것일 뿐이므로, 결국 진보당의 중앙위원장인 피고인이 이미 지득하고 있던 진보당 관련 문건 등을 보고·누설한 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것인바, 이러한 행위는 그 사실 자체로서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 즉 우리나라의 기밀을 탐지·수집하는 간첩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 부분 공소사실이 간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한 간첩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가. 이상과 같이, 원심판결 중 진보당 결성 관련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 위반 부분과 공동피고인 1 관련 간첩 부분은 각기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어 파기를 면할 수 없고, 이들 각 죄와 원심판결 중 재심이 개시된 나머지 죄인 무기불법소지에 의한 군정법령 제5호 위반 부분은 경합범으로서 하나의 형이 선고되었으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유죄 부분은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

나. 한편, 이 사건은 원심법원과 제1심법원이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판결하기에 충분하다고 인정되므로 형사소송법 제396조 제1항에 의하여 이 법원이 직접 판결하기로 한다. (1) 이 사건 제2 공소사실에 대하여 판단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진보당은 국헌에 위배되거나 북한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결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바, 이와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제2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은 정당하므로, 이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2)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에 대하여 판단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은 이에 부합하는 듯한 공동피고인 1의 수사기관 및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은 믿기 어렵고,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서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소정의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고, 이와 같이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제1심판결과 같이 이 사건 제4 공소사실에 대하여 구 국가보안법 제3조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없는 것이며, 더욱이 공소장변경 없이 그와 같이 심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이 부분에 대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3) 무기불법소지에 의한 군정법령 제5호 위반 부분에 대하여 판단한다. 제1심은, 피고인이 1957. 8.경 당국의 허가 없이 운전수 공소외 1을 통하여 미제 45구경 권총 1정 및 실탄 50발을 서울시 중구 신당동 노상에서 성명불상자로부터 3만 환에 매수하여 이를 불법으로 소지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하 ‘이 사건 제3 공소사실’이라 한다)에 대하여, 그 판시 증거에 의하여 이를 유죄로 인정하고 군정법령 제5호 제2조 위반죄로 처단하였다. 그런데 제1심판결에서 이와 경합범으로 하나의 형이 선고된 이 사건 제4 공소사실 부분에 대하여 위와 같이 무죄가 선고되는 이상 제1심판결 중 이 사건 제3 공소사실 부분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아래와 같이 다시 판결한다. 이 사건 제3 공소사실에 대한 범죄사실, 증거의 요지는 제1심판결과 같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99조, 제369조에 따라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그런데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령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이고,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변경된 경우 법원은 그 범죄사실에 대하여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을 적용하여야 한다( 대법원 1996. 6. 14. 선고 96도477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제3 공소사실과 같이 당국의 허가 없이 총포를 소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였던 군정법령 제5호는 1961. 12. 13. 법률 제835호 총포화약류단속법(이하 ‘구 총포화약류단속법’이라고 한다)의 제정으로 구 대한민국헌법 제100조에 의하여 의용되고 있던 구 총포화약류취체령(1912. 8. 21. 조선총독부제령 제3호로 제정된 것)과 함께 폐지되었고, 그러한 행위에 대한 처벌은 구 총포화약류단속법에 이어 구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1981. 1. 10. 법률 제3354호로 전부 개정된 것), 구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1984. 8. 4. 법률 제3743호로 전부 개정된 것), 현행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1995. 12. 6. 법률 제4989호로 일부 개정된 것) 등에 의하여 순차 규율되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 제3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형법 제1조 제1항, 제2항, 제8조에 의하여 형이 가장 가벼운 구 총포화약류단속법이 적용되어야 하는바, 피고인의 판시 무기불법소지행위는 구 총포화약류단속법 제36조, 제12조가 정한 형 가운데 징역형을 선택하고 그 형기는 징역 6월로 정한다. 끝으로 피고인에게 형을 선고하기에 앞서 그 정상을 살펴본다. 피고인은 일제강점기하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고,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을 탈당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여 제헌국회의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과 국회 부의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52년과 1956년 제2,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농지개혁의 기틀을 마련하여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그 후 진보당 창당과 관련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로 사형이 집행되기에 이르렀는바, 이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판결로써 그 잘못을 바로잡고, 무기불법소지의 점에 대하여는 형의 선고를 유예하기로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원장 이용훈(재판장) 박시환(주심) 김지형 이홍훈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 차한성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