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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헌바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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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헌바141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등 위헌소원 등
판결기관: 헌법재판소
2011년 3월 31일 판결.

【판시사항】 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특별법’(이하 ‘반민규명법’이라 한다) 제2조 제6호 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 자를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보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호 가목(2006. 9. 22. 법률 제7975호로 개정된 것, 이하 ‘이 사건 정의조항’이라고 한다)이 법률의 명확성원칙에 반하는지 여부(소극) 나.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하 ‘친일재산’이라 한다)으로 추정하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2005. 12. 29. 법률 제7769호로 제정된 것, 이하 ‘이 사건 추정조항’이라 한다)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적법절차원칙에 반하는지 여부(소극) 다. 친일재산을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국가의 소유로 하도록 규정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 본문(2005. 12. 29. 법률 제7769호로 제정된 것, 이하 ‘이 사건 귀속조항’이라 한다)이 진정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반하는지 여부(소극) 라. 이 사건 귀속조항이 재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소극) 마. 이 사건 귀속조항이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소극) 바. 이 사건 귀속조항이 연좌제금지원칙에 반하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가. 이 사건 정의조항 중 반민규명법 제2조 제6호 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 자’로 규정한 부분이 불명확하다고 할 수 없고,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부분은 ‘일제 강점하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운동에 의욕적이고 능동적으로 관여한 자’라는 뜻이므로 그 의미를 넉넉히 파악할 수 있다. 나.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 해방 이후 오랜시간이 경과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친일재산 여부를 국가측이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곤란한 반면, 일반적으로 재산의 취득자측은 취득내역을 잘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또한 이사건 추정조항이 친일반민족행위자측에 전적으로 입증책임을 전가한 것도 아니고, 행정소송을 통해 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방도도 마련되어 있으며, 가사 처분청 또는 법원이 이러한 추정의 번복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는 처분청 또는 법원이 추정조항의 취지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 결과이지 추정조항을 활용한 입법적 재량이 일탈·남용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추정조항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거나 적법절차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다.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 하지만, 진정소급입법이라 할지라도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이 소급입법이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 친일재산의 취득 경위에 내포된 민족배반적 성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선언한 헌법 전문 등에 비추어 친일반민족행위자측으로서는 친일재산의 소급적 박탈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친일재산 환수 문제는 그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공동체적 과업이므로 이러한 소급입법의 합헌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진정소급입법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불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 소급입법에 해당하나 헌법 제13조 제2항에 반하지 않는다. 라. 이 사건 귀속조항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민법 등 기존의 재산법 체계에 의존하는 방법만으로는 친일재산의 처리에 난항을 겪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귀속조항은 위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된다. 위 조항은 반민규명법이 정한 여러 유형의 친일반민족행위 중에서 사안이 중대하고 범위가 명백한 네 가지 행위를 한 자의 친일재산으로 귀속대상을 한정하고 있고, 이에 해당하는 자라 하더라도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등은 예외로 인정될 수 있도록 규정해 두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은 그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여 얼마든지 국가귀속을 막을 수 있고, 선의의 제3자에 대한 보호 규정도 마련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귀속조항은 피해의 최소성원칙에 반하지 않고, 과거사 청산의 정당성과 진정한 사회통합의 가치 등을 고려할 때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마. 친일재산은 이를 보유하도록 보장하는 것 자체가 정의 관념에 반하고, 귀속대상을 사안이 중대하고 범위가 명백한 친일재산으로 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귀속조항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바. 이 사건 귀속조항이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의 재산 중 그 후손 자신의 경제적 활동으로 취득하게 된 재산이라든가 친일재산 이외의 상속재산 등을 단지 그 선조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은 아니므로, 연좌제금지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재판관 김종대의 별개의견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13조 제2항에 대하여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도 허용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새로운 헌법적 내용을 형성해 내는 것이므로, 타당한 헌법해석이라고 볼 수 없고 권력분립원칙에도 반한다. 우리 헌법의 정신과 법통, 그 제정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친일재산은 일본제국주의와의 투쟁과 그 극복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헌법에 규정된 ‘재산권’ 조항으로써 보호될 수는 없다. 다만,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라 하더라도 친일재산의 선별과 국가귀속의 절차 등에 관하여 헌법적인 한계를 준수해야 하나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문제가 없다. 재판관 목영준의 일부별개의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것을 규정한 현행 헌법의 전문, 국가에 대한 반역죄 등을 규정한 대한제국의 형법대전 등을 살펴 볼 때, 친일재산에는 취득 당시 반사회적 가치 내지 범죄성이 내재하고 있었고, 과거사 청산절차를 밟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반사회성 및 범죄성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보이므로, 친일재산의 국가 귀속은 현재 진행 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하는 부진정소급입법이다.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의 일부한정위헌의견 우리의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제도는 일제에 의해1912년 토지사정부 등이 작성되면서 이루어졌으므로, 사정되기 이전에 친일반민족행위와 무관하게 취득하였던 토지라고 하더라도 위 시기에 취득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 결과 이 사건 추정조항에 따라 친일재산으로 추정된다.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위 추정을 번복하려면, 해당 토지를 1904년 이전에 실제로 취득하였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나, 토지사정부가 작성되기 이전에는 토지소유권에 관한 대세적 공시방법이 마련되지 아니하였고, 100여년전의 사실관계를 입증하기도 어려우므로, 이 사건 추정조항에 의해 친일재산과 무관한 재산까지도 박탈당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사건 추정조항 중 ‘취득’에 ‘사정에 의한 취득’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조대현의 일부위헌의견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단죄하고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작업은 헌법에 합치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의 박탈에 해당된다. 그런데 헌법 제13조 제2항은 4·19민주혁명과 5· 16군사쿠데타를 거치면서 각종 소급입법에 의한 정치적·사회적 보복이 반복되어온 헌정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도입된 것으로서 예외를 두지 않는 절대적 금지명령이다.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은 별도의 헌법적 근거 없이 진정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하므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된다.

【심판대상조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6. 9. 22. 법률 제7975호로 개정된 것) 제2조 제1호 가목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5. 12. 29. 법률 제7769호로 제정된 것) 제2조 제2호 후문, 제3조 제1항 본문

【참조조문】 헌법 제10조, 제11조 제1항, 제13조 제2항, 제3항, 제23조 제1항, 제27조 제1항, 제37조 제2항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호 나목, 제4조, 제5조, 제25조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30조 구 반민족행위처벌법(1948. 9. 22. 법률 제3호로 제정되고, 1951. 2. 14. 법률 제176호로 폐지된 것) 제1조, 제2조, 제3조

【참조판례】 가. 헌재 1998. 4. 30. 95헌가16, 판례집 10-1, 341 헌재 2005. 12. 22. 2004헌바45, 판례집 17-2, 712, 721 나. 헌재 2007. 10. 25. 2005헌바96, 판례집 19-2, 467, 477 다. 헌재 1996. 2. 16. 96헌가2등, 판례집 8-1, 51, 88 헌재 1999. 7. 22. 97헌바76등, 판례집 11-2, 175, 193-194 헌재 2001. 3. 21. 99헌마139, 판례집 13-1, 676, 693 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판례집 17-1, 1016, 1020 라. 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두13491 판결 마. 헌재 1999. 12. 23. 98헌마363, 판례집 11-2, 770, 787 헌재 2010. 11. 25. 2006헌마328, 공보 170, 2106, 2110 바. 헌재 2005. 12. 22. 2005헌마19, 판례집 17-2, 785, 792

【전문】

【당 사 자】

청 구 인 민○기 외 63인( [별지 1] 목록과 같음) 당해사건 서울행정법원 2008구합9034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취소 (2008헌바141) 서울행정법원 2008구합31482 국가귀속결정처분취소(2009헌바14) 서울행정법원 2007구합43259 귀속결정취소(2009헌바19) 서울행정법원 2008구합33914 국가소유결정취소(2009헌바36) 서울행정법원 2007구합43648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취소(2009헌바247) 서울고등법원 2009누7310 국가귀속결정취소(2009헌바352) 서울고등법원 2009누12725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무효확인등(2010헌바91)

【주 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1호 가목(2006. 9. 22. 법률 제7975호로 개정된 것), 제2호 후문, 제3조 제1항 본문(각 2005. 12. 29. 법률 제7769호로 제정된 것)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2008헌바141 사건 (가) 망 민○휘(1852. 5. 15. ~ 1935. 12. 31. 이하‘민○휘’라고 한다)는 한일합병에 기여한 공으로 일본국으로부터 1910. 10. 7. 자작 작위를 받았고, 1911. 1. 13. 은사공채 50,000원을 지급받았으며, 1912. 12. 7. 종4위에 서위된 후 1919. 12. 27. 정4위, 1928.경 종3위로 각 승급되었고, 사망 즈음 정3위로 추서되었다. 민○휘는 1918. 6. 20. 식민지 경제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식산은행의 설립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23. 5. 21. 황국신민화 교육을 추진하기 위하여 조선총독의 자문기구로 설치된 조선교육회의 부회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20. 3.경 일선(日鮮)융화철저등을 목적으로 조선실업구락부를 창립한 후 고문으로 활동하였고, 1921. 1.경부터 일선융화단체인 대정친목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민○휘는 위와 같이 식민통치에 협력한 공으로 1928. 11. 16. 쇼와대례기념장을, 1928. 11. 22. 은배 1개를, 1935. 10. 1. 은배 1조를, 사망 즈음 금배 1개를 각 수여받았다.

(나) 민○휘가 사정받은 [별지 2] 기재 토지들은 [별지 3] 기재와 같은 토지 취득경위 및 소유권 변동 경위를 거쳐 청구인 민○기 외 19명([별지 1] 목록 기재 청구인 1 내지 20)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이 사건 조사위원회’라고 한다)는 위 토지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하 ‘친일재산’이라고 한다)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를 거쳐, 2007. 11. 22. 민○휘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에서 정한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하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한다)에 해당하고, 위 토지들은 같은 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의해 그 법 시행일인 2005. 12. 29.자로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위 토지들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다) 이에 위 청구인들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를 상대로 위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며(서울행정법원 2008구합9034), 위 소송계속중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내지 제5조가 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3항, 제23조 제1항에 위반되는 등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울행정법원 2008아1084)을 하였으나, 2008. 10. 14. 기각되자, 같은 해 11. 19.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2009헌바14 사건 (가) 망 이○로(1838. 12. 2. ~ 1923. 5. 1. 이하 ‘이○로’라 한다)는 한일합병에 기여한 공으로 1910. 10. 7. 남작 작위를 받은 후 1911. 2. 22. 조선총독 관저에서 열린 작기본서 수여식에 참석하여 일본 천황을 대리한 야마가타 정무총감으로부터 이를 교부받았고, 같은 해 1. 13. 조선총독부에서 은사공채 25,000원을 직접 수령하였으며, 1912. 8. 1. ‘종전 일한관계에서 특히 공적 있는 자’로 인정되어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고, 같은 해 12. 7. 종4위에 서위된 후 1920. 12. 10. 정4위로 승급되었다. 이○로는 1915년 일제가 식민통치의 성과를 선전하기 위하여 ○○공진회를 기획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시정 5년 기념 ○○공진회 경성협찬회’ 특별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일제의 조선강점을 정당화하고 선전하는 데 가담하였고,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1915. 11. 10.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았다.

(나) 이○로는 1920. 2. 24.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리 산26 임야 24정 4단(외서면은 2004. 12. 1. 청평면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됨)을 사정받았다. 이○로가 1923. 5. 1., 그 상속인 이○세가 1948. 1. 15. 각사망함에 따라 청구인 이○호의 부 이○설이 위 토지를 단독으로 상속받았다. 위 토지는 1965. 11. 22. 같은 리 산26-1 임야 등으로 분할되었고, 같은 리 산 26-1 임야는 1970. 3. 14. 같은 리 산26-1 임야 240,496㎡ 등으로 분할되었다.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리 산26-1 임야 240,496㎡에 관하여는 1970. 10. 16. ‘임야소유권 이전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이○설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었고, 1979. 10. 30.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1969. 5. 15. 자 매매를 원인으로 한 청구인 이○호 명의의 소유권 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다)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위 토지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인지 여부에 관한조사를 거쳐, 2008. 2. 28. 위 토지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의해 그 법 시행일인 2005. 12. 29.자로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국가에 귀속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라) 이에 위 청구인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를 상대로 위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며(서울행정법원 2008구합31482), 위 소송계속중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항 및 제3조 제1항이 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3항, 제23조 제1항에 위반되는 등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울행정법원 2008아2528)을 하였으나, 2009. 1. 15. 기각되자, 같은 해 1. 28.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3) 2009헌바19 사건 (가) 망 민○석(1858. 12. 12. ~ 1940. 8. 6. 이하‘민○석’이라 한다)은 1910. 10. 7. 한일합방의 공을 인정받아 자작 작위를 수여받고, 1934. 7. 6. 조선총독부중추원 고문에, 1939. 10. 13. 중추원 부의장에 각 임명되어 활동한 자로서, 일제강점기인 1912. 5. 18. 경기 여주군 여주읍 ○○리 225 분묘지 2329평을 사정 받았다. 위 토지는, 민○석이 1940. 8. 6. 사망함에 따라 그의 아들인 민○기가, 그 후 민○기가 1951. 2. 21. 사망함에 따라 민○운이 각 상속하였다. 위 토지는 1967. 3. 29. 경기 여주군 여주읍 ○○리 225-1 묘지 7,580㎡를 비롯하여 같은 리 225-2 내지 5 토지로 각 분할되었고, 민○운이 1971. 11. 16. 사망함에 따라 청구인 민○홍과 민□홍이 위 토지들을 공동으로 상속하였으며, 경기 여주군 여주읍 ○○리 225-1 묘지 7,580㎡은 1972. 2. 19. 위 청구인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93. 12. 10. 경기 여주군 여주읍 ○○리 225-1 묘지 969㎡ 및 같은 리 225-6 묘지 6,611㎡로 분할되었다.

(나)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위 토지들이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인지 여부에 관한조사를 거쳐, 2007. 8. 13. 민○석이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위 토지들은 같은 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의해 그 법 시행일인 2005. 12. 29.자로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위 토지들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다) 이에 위 청구인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를 상대로 위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며(서울행정법원 2007구합43259), 위 소송계속중 친일재산귀속법이 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3항, 제23조 제1항에 위반되는 등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울행정법원 2007아2712)을 하였으나, 2009. 1. 7. 기각되자, 같은 해 2. 5.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4) 2009헌바36 사건 (가) 망 이○춘(1873. 1. 18. ~ 1936. 1. 11. 이하‘이○춘’이라 한다)은 1906. 11. 21. 의정부(1907년 내각으로 변경) 외사국장에 임명되어 한일합병이 될 때 까지 통감부의 지휘하에 외교통상업무를 총괄하면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협력하고, 한일합병 직후인 1910. 10. 1.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에, 중추원 관제가 개편된 1921. 4. 21.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어 1924. 4. 26.까지 근무하였던 자이다. 이○춘은 1911. 9. 19. 광주시 오포읍 ○○리 233 대 836㎡ 및 광주리 오포읍 ○○리 234-3 묘지 2,963㎡를, 1919. 7. 25. 광주리 오포읍 ○○리 산 67 임야 21,079㎡ 중 30분의 25지분을 각 사정받았는데, 청구인 이○구가 1985. 6. 28. 및 1971. 8. 12. 위 토지들에 관하여 각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하였다. 이후 이○춘의 상속인들이 청구인 이○구를 상대로 제기한 위 토지들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소송에서 조정이 성립되어 위 토지들에 대한 일부 지분이 청구인 이○구로부터 이○춘의 상속인들에게 이전되었고, 위 상속인들 중 일부가 사망함에 따라 그 지분이 다시 상속되어 현재에는 청구인 이○구 외 4명([별지 1] 목록 기재 청구인 23 내지 27)이 각자의 지분에 따라 위 토지들을 공유하고 있다.

(나)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위 토지들이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를 거쳐, 2008. 5. 23. 이○춘이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위 토지들은 같은 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의해 그 법 시행일인 2005. 12. 29.자로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위 토지들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다) 이에 위 청구인들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를 상대로 위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며(서울행정법원 2008구합33914), 위 소송계속중 위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 등이 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3항, 제23조 제1항에 위반되는 등 위헌적인법률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울행정법원 2008아3149)을 하였으나, 2009. 2. 6. 기각되자, 같은 해 3. 3.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5) 2009헌바247 사건 (가) 민○휘가 한일합병에 기여한 공으로 일본국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실 등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나) [별지 2] 기재 1 내지 11의 토지들은 민○휘가 1917. 10. 30. 일정시대 법령에 따라 사정받은 이후 [별지 3] ‘소유권변동내역표 1’ 기재와 같은 소유권 변동 경위를 거쳐 그 해당 청구인들에게, [별지 2] 기재 12 내지 14 토지들은 민○휘가 1911. 10. 1. 일정시대법령에 따라 사정받은 이후 [별지 3] ‘소유권변동내역표 2’ 기재와 같은 소유권 변동 경위를 거쳐 그 해당청구인들에게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다)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위 토지들이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를 거쳐, 2007. 8. 13. 민○휘가 같은 조 제1호 가목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위 토지들은 같은 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의하여 그 법 시행일인 2005. 12. 29.자로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위 토지들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라) 이에 위 청구인들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를 상대로 위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며(서울행정법원 2007구합43648), 위 소송계속중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내지 제5조가 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3항, 제23조 제1항에 위반되는 등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울행정법원 2008아554)을 하였으나, 2009. 8. 28. 기각되자, 같은 해 9. 24. 이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6) 2009헌바352 사건 (가) 망 조○근(1876. 4. 8. ~ 1938. 5. 15. 이하 ‘조○근’이라 한다)은 일제 강점 당시부터 23년 동안 일본군 장성 등을 역임하여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1933. 6. 3.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었고, 1938. 5. 15. 사망시까지 재직하면서 1934. 3. 조선총독부와 일본 군부의 지원 아래 황도(皇道) 사상단체인 조선대아세아협회 창립을 주도하고 상담역으로 활동하는 등 내선융화 및 황민화운동에 적극참여하였다. 그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1912. 8. 1. 한국병합기념장, 1915. 11. 10. 다이쇼대례기념장, 1920. 4. 28. 훈3등 서보장, 1920. 11. 1. ‘대정 2년 내지 대정 9년 전역 종군기념장’, 1928. 4. 21. 훈2등 서보장, 1928. 11. 16. 쇼와대례기념장을 각 받고, 1935. 10. 1.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에 공직부분공로자로 표창을 받았으며, 1920. 4. 27. 정5위에 서위된 후 거듭 승급되어 1931. 9. 28. 종3위에 올랐다. 조○근은 일제강점기인 1917. 10. 15. 의왕시 ○○동산1-1 임야 773.752㎡로 지적복구되기 전의 경기 수원군 의왕면 ○○리 산1 임야 78정 6무보를 사정받았고, 1926. 5. 3. 충남 예산군 오가면 ○○리 661 대 774㎡를, 1915. 7. 15. 같은 리 747 전 1,326㎡ 및 같은 리770 임야 1,706㎡를, 1928. 2. 29. 같은 리 771 전 1,937㎡를 각 매수하여 취득하였고, 1926. 11. 30.부터 1928. 2. 29.까지 위 토지들에 관하여 각 조○근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였다. 조○근이 1938. 5. 15.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조○현이 위 토지들을 상속하였고, 1994. 7. 12. 조○현이 사망함에 따라 그의 아들인 청구인 조○문이 이를 상속하였다.

(나)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위 토지들이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를 거쳐, 2008. 4. 25. 조○근이 같은 조 제1호 가목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위 토지들은 같은 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의하여 그 법시행일인 2005. 12. 29.자로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위 토지들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다) 이에 청구인 조○문 등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를 상대로 위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서울행정법원 2008구합29601) 기각되자 불복하여 항소(서울고등법원 2009누7310)를 제기한 후, 위 소송계속중 위 특별법 제2조 제2호 후문 및 제3조 제1항이 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3항, 제23조 제1항에 위반되는 등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울고등법원 2009아269)을 하였으나, 2009. 10. 20. 기각되자(같은 달 29. 송달), 같은해 11. 25.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7) 2010헌바91 사건 (가) 망 서○훈(1858. 3. 15. ~ 1943. 7. 31. 이하 ‘서○훈’이라 한다)은 한일합병에 기여한 공으로 1910. 10. 1.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되었고, 1921. 4. 28.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1943. 7. 31.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면서 그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는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협력한 공으로, 1912. 8. 1. 한국병합기념장, 1915. 11. 10. 다이쇼대례기념장, 1922. 6. 27. 훈4등 서보장, 1928. 8. 29. 훈3등 서보장, 같은 해 11. 16. 쇼와대례기념장, 1935. 10. 1.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 표창을 각 수여받고, 1913. 12. 10. 정7위에 서위된 후 거듭 승급되어 1928. 11. 2. 종4위에 올랐다. 서○훈은 일제강점기인 1918. 11. 15.경 용인시 처인 구 남사면 ○○리 산110-1 임야 2,182㎡로 분할되기전의 경기 용인군 남사면 ○○리 산110 임야 3단1무보를 사정받았고, 위 임야는 서○훈이 1943. 7. 31. 사망함에 따라 그의 장남인 서○원에게, 위 서○원이 1959. 3. 20. 사망함에 따라 그의 장남인 서○범에게 각 상속 되었다. 1970. 10. 10. ‘임야소유권이전등기 등에 관한특별조치법’에 기하여 서○범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마쳐졌고, 위 서○범이 2000. 5. 26. 사망하자 2000. 11. 8. 청구인 성○풍 명의로 유증을 원인으로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나)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위 토지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를 거쳐, 2008. 7. 9. 서○훈이 같은 조 제1호 가목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위 토지는 같은 조 제2호에서 정한 친일재산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의하여 그 법 시행일인 2005. 12. 29.자로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위 토지가 국가로 귀속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다) 이에 위 청구인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를 상대로 위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서울행정법원 2008구합40806) 기각되자 불복하여 항소(서울고등법원 2009누12725)를 제기한 후, 위 소송계속중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및 제3조 제1항 본문이 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3항, 제23조 제1항에 위반되는 등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울고등법원 2009아339)을 하였으나, 2010. 1. 13. 기각되자(같은 달 21. 송달), 같은 해 2. 17.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1) 2008헌바141 사건 위 사건의 청구인들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내지 제5조 전부의 위헌결정을 구하고 있으나, 당해 사건및 위 사건 헌법소원 심판청구서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위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당해 사건에 적용되는 조항으로서 위 청구인들이 구체적으로 그 위헌성을 다투고 있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 제2호 후문, 제3항 제1항 본문으로 한정함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위 사건의 심판대상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 제2호 후문, 제3조 제1항 본문의 위헌 여부이다.

(2) 2009헌바14 사건 위 사건의 청구인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및 제3조 제1항의 위헌결정을 구하고 있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및 제3조제1항 단서 부분은 청구인이 위헌성을 다투지 않거나 당해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이 아니므로 제외함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위 사건의 심판대상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및 제3조 제1항 본문의 위헌 여부이다.

(3) 2009헌바19 사건 위 사건의 청구인들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을 비롯하여 친일재산귀속법 전부의 위헌결정을 구하고 있으나, 당해 사건 및 위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서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위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당해 사건에 적용되는 조항으로서 청구인들이 구체적으로 위헌성을 다투고 있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제2호 후문, 제3조 제1항 본문으로 한정함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위 사건의 심판대상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제3조 제1항 본문의 위헌 여부이다.

(4) 2009헌바36 사건 위 사건의 청구인들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 제2호, 제3조 제1항의 위헌결정을 구하고 있으나, 청구인들이 위헌성을 다투고 있지 않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전문 및 선의의 제3자 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제3조 제1항 단서 부분은 심판대상에서 제외함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위 사건의 심판대상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 제2호 후문, 제3조 제1항 본문의 위헌 여부이다.

(5) 2009헌바247 사건 위 사건의 청구인들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내지 제5조 전부의 위헌결정을 구하고 있으나, 위 2008헌바141 사건 부분에서 살핀 바와 동일한 취지에서 위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 제2호 후문, 제3항 제1항 본문으로 한정함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위 사건의 심판대상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 제2호 후문, 제3조 제1항 본문의 위헌여부이다.

(6) 2009헌바352 사건 위 사건의 청구인들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및 제3조 제1항의 위헌결정을 구하고 있으나, 앞선 사건들에서 살핀 바와 같이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 부분은 심판대상을 본문으로 한정함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위 사건의 심판대상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및 제3조 제1항 본문의 위헌 여부라 할 것이다.

(7) 2010헌바91 사건 위 사건의 청구인이 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위 사건의 심판대상은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및 제3조 제1항 본문의 위헌 여부라 할 것이다.

(8) 소결 따라서 위 친일재산귀속법 사건들의 심판대상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이하 ‘이 사건 정의조항’이라고 한다), 제2호 후문(이하 ‘이 사건 추정조항’이라고 한다), 제3조 제1항 본문(이하 ‘이 사건 귀속조항’이라고 하고, 이하 위 조항들을 모두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라고 한다)의 위헌 여부이고, 그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6. 9. 22. 법률 제7975호로 개정된 것) 제2조(정의)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하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한다)”라 함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6호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자(제9호에 규정된 참의에는 찬의와 부찬의를 포함한다). 다만, 이에 해당하는 자라 하더라도 작위(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등으로 제4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결정한 자는 예외로 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5. 12. 29. 법률 제7769호로 제정된 것)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2.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하 “친일재산”이라 한다)”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 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 제3조(친일재산의 국가귀속 등) ① 친일재산(국제협약 또는 협정 등에 의하여 외국 대사관이나 군대가 사용·점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친일재산 및 친일재산중 국가가 사용하거나 점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재산도 포함한다)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 그러나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관련조항] 대한민국헌법(1948. 7. 17. 헌법 제1호) 부칙 제101조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하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한다)”라 함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말한다. 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 중 제4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결정에따라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자 등 친일의 정도가 지극히 중대하다고 인정된 자. 제4조(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설치) 친일재산의 조사 및 처리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제5조(위원회의 업무 등) ① 위원회의 업무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조사 및 선정 2.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조사 및 친일재산 여부의 결정 3. 일본인 명의로 남아있는 토지에 대한 조사 및 정리 4.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 ② 위원회는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관련 기관 또는 단체에 대하여 필요한 자료제출 및 사실조회 등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③ 제2항의 규정에 따라서 위원회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은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④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따른 조사 및 선정을 함에 있어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3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원용할 수 있다. 제25조(국가귀속재산의 사용) 이 법에 따라 국가에 귀속되는 친일재산은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제30조의 규정에 의한 용도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친일반민족행위”라 함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행한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1. 국권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명령한 행위 2.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단체 또는 개인을 강제해산시키거나 감금·폭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단체 또는 개인의 활동을 방해한 행위 3.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4.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그 단체의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활동을 주도한 행위 5.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을 저해한 행위 6.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 7.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 8.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활동한 행위 9.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활동한 행위 10.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1.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宣傳)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12. 일본군을 위안할 목적으로 주도적으로 부녀자를 강제동원한 행위 13.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4.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헌납한 행위 15. 판사·검사 또는 사법관리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6.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헌병 또는 경찰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7.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8. 동양척식회사 또는 식산은행 등의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로서 우리민족의 재산을 수탈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집행을 주도한 행위 19.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여 포상 또는 훈공을 받은 자로서 일본제국주의에 현저히 협력한 행위 20. 일본제국주의와 일본인에 의한 민족문화의 파괴·말살과 문화유산의 훼손·반출에 적극 협력한 행위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30조(기금의 용도) 기금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용도에 사용한다. 1.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예우 및 생활 안정을위한 지원금의 지급 2.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 독립운동가 및 독립운동 사료 발굴 사업 3. 민족정기 선양을 위한 교육·연구 및 이에 부수(부수)된 사업 4. 기금 조성 경비 및 기금 운용상 필요한 부수경비 5. 그 밖에 심의회에서 독립유공자의 공훈 선양등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구 반민족행위처벌법(1948. 9. 22. 법률 제3호로 제정되고, 1951. 2. 14. 법률 제176호로 폐지된 것) 제1조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일본정부로부터 작을 수한 자 또는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일본치하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제4조 좌의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 1. 습작한 자 2. 중추원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되었던 자 3. 칙임관이상의 관리되었던 자 4.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하였던 자 6.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7. 비행기, 병기 또는 탄약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8.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 9. 관공리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10. 일본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11.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데 협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제5조 일본치하에 고등관 3등급이상, 훈 5등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에 있던자는 본법의 공소시효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단, 기술관은 제외한다.

2. 청구인들의 주장요지 가.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이 사건 조사위원회가 친일재산으로 결정한 재산을 그 취득·증여 등의 원인행위시에 국가의 소유로 귀속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소유자들로부터 소급하여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된다.

나.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함으로써 재산권을 침해한다. 즉, 위 법률조항들은 친일파후손들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일뿐 ‘정의’, ‘민족의 정기’ 등을 구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과잉금지원칙상 수단의 적절성 원칙에 반한다. 민족의 정기나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이 약 60여년간 소유하고 있던 토지소유권을 환수하는 것 이라고 볼 수 없고, 친일행위를 직접 한 사람이 아닌 그 후손들에까지 불이익을 가하고 있고 그 불이익의 범위가 과도하며, 이 사건 추정조항을 통하여 재산을 환수당하는 개인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하여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고, 러·일전쟁 이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단지 토지사정부에 늦게 기재하여 러·일전쟁 이후에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 것 같은 외양을 갖춘 토지까지 친일재산으로 보고 있으므로, 피해의 최소성원칙에도 위배된다. 또한, 친일재산귀속법에 의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보다 침해되는 사익이 더 중대하여법익의 균형성에 위배된다. 나아가 친일재산귀속법은 소급입법을 통하여 소유권을 박탈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으므로, 헌법 제23조에서 정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산권은 모든 기본권의 기초를 이루는 기본권이므로 위와 같은 재산권의 침해로 인해 헌법 제10조에서 정한 행복추구권 및 제34조 제1항에서 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도 침해된다.

다. 이 사건 정의조항에서 정하고 있는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한 자’라는 요건은 불명확한 규정이어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서 비롯되는 법률의 명확성원칙에도 위배된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불특정 다수인을 규율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만을 규율하고 있는바 이는 처분적 법률에 해당하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배되고, 또한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정기간 동안 취득한 재산을 모두 친일재산으로 추정하므로 이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당해 재산의 소유자들을 차별하는 것이어서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 선조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훈장 등 영전의 효력을 이를 받은 자 이외에까지 인정하는 것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제2항, 제3항 및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 제13조 제3항에 위반된다.

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로부터 토지의 소유권을 박탈하여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형법상 재산형인 몰수와 유사하므로 헌법 제12조 제1항의 ‘처벌’에 해당하지만,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따르면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이 몰수형이 집행되는 것이므로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의 적법절차 원칙에 위반되고 헌법 제27조 제1항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며, 특히 이 사건추정조항은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에도 반한다. 또한, 1948.경 이미 친일재산귀속법과 같은 취지의 법률인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시행된 바 있으므로, 친일재산귀속법을 다시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은 이중처벌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3. 판 단 가. 친일재산귀속법의 입법 경위 (1) 제헌헌법에서의 반민족행위처벌법 (가)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 일제 강점의 과거 청산을 위한 입법으로서 우리 역사상 대표적인 시도로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이하 ‘반민법’이라 한다)을 들 수 있다. 반민법은 제헌 헌법 부칙 제101조에 근거하여 1948. 9. 7. 국회에서 통과되고, 같은 해 9. 22. 대한민국 법률 제3호로 공포되었다. 반민법은 전문 32조로 구성되었는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라 한다)가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하여 특별검찰부에 송치하고, 특별검찰부의 공소로 특별재판부가 심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공소시효는 위 법의 공포일로부터 2년으로 규정되었다.

(나) 반민족행위 처벌의 내용 반민법은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하고(제1조), 일본정부로부터 작을 수한 자 또는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하며(제2조), 일본치하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하고(제3조), 습작한 자, 중추원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되었던 자 등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으며(제4조), 일본치하에 고등관 3등급 이상, 훈 5등 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에 있던 자는 본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는(제5조) 등의 내용을 규정하였다.

(다) 경과 반민법 제19조에 의해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1949. 3. 28. 첫 공판기일이 열린 이후 같은 해 8. 31.까지 총 41건의 재판을 하여 사형 1명, 무기 1명, 징역형 13명, 공민권 정지 18명, 형 면제 2명, 무죄 6명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특별재판부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13명 중 2명은 재산 몰수형을 함께 선고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민법은 1951. 2. 14. 법률 제176호로 폐지되었고, 반민법에 의하여 공소 계속중인 사건은 폐지법률의 시행일에 공소취소된 것으로 보고, 폐지된 법률에 의한 판결은 폐지법률의 시행일로부터 그 선고의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한 반민법 폐지법률 부칙에 따라 위 특별재판부가 이미 선고한 판결도 모두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2) 친일재산귀속법의 제정 역사상 식민지배를 겪었던 많은 나라들은 식민지배상태를 극복하고 해방을 쟁취한 후 새롭게 건설한 국가공동체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사회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기존 식민지배에 복무했던 세력들을 강력히 단죄하는 작업을 해 왔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우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반민법에 의해 재판을 받은 사건의수도 미미할 뿐 아니라 이미 선고된 판결들의 효력도 모두 상실되는 등 일제 과거사 청산 작업들이 실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들이 있었다. 종래의 일제과거사 청산의 작업들이 그 역사적 소임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였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친일재산귀속법의 제정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제17대 국회에서 169명의 여·야 의원이 2005. 2. 24.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국가의 소유로 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친일재산귀속법의 초안을 발의하였고, 2005. 4. 19.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 및 2005. 6. 17. 공청회 개최 등의 절차를 거쳐 2005. 12. 8. 친일재산귀속법이 재석의원 155명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 후 친일재산귀속법은 2005. 12. 29. 공포되고 시행되었다.

나.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한 판단 (1) 판단의 구조 앞서 본 청구인들의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한 각주장들은, 이 사건 정의조항에 대한 부분(법률의 명확성원칙 위반), 이 사건 추정조항에 대한 부분(재판청구권 침해, 적법절차 원칙 위배, 무죄추정 원칙 위배), 이 사건 귀속조항에 대한 부분(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침해,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 평등의 원칙 위반, 사회적 특수계급 창설금지 위반, 영전 세습제 금지위반, 연좌제 금지 위반, 재판청구권 침해, 적법절차 원칙 위반, 이중처벌 금지 위반)으로 구분할 수 있는바, 차례로 살펴본다.

(2) 이 사건 정의조항에 대한 판단 (가) 우리 헌법상 법률의 명확성원칙 법치국가 원리의 한 표현인 명확성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모든 기본권제한 입법에 대하여 요구되지만(헌재1998. 4. 30. 95헌가16, 판례집 10-1, 341), 모든 법률에 있어서 동일한 정도로 요구되는 것은 아니고, 개개의 법률이나 법조항의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각각의 구성요건의 특수성과 그러한 법률이 제정되게 된 배경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명확성의 원칙을 산술적으로 엄격히 관철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므로, 어느 정도의 보편적 내지 일반적 개념의 용어사용은 부득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으며, 당해 법률이 제정된 목적과 타 규범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한지의 여부에 따라 명확성의 구비 여부가 가려져야 하고, 설혹 법문언에 어느 정도의 모호함이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법문언이법관의 보충적인 가치판단을 통해서 그 의미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보충적 해석이 해석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없다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헌재 1992. 2. 25. 89헌가104, 판례집 4, 78-79; 헌재 2005. 12. 22. 2004헌바45, 판례집 17-2, 712, 721 등 참조).

(나) 구체적인 판단 이 사건 정의조항은 “반민규명법 제2조 제6호 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 자(제9호에 규정된 참의에는 찬의와 부찬의를 포함한다)”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규정을 불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청구인들은 위 네 가지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자 등으로 이 사건 조사위원회가 결정한 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한 위 정의조항의 단서 중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부분이 명확성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나, 이 부분은 ‘일제 강점하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운동에 의욕적이고 능동적으로 관여한 자’라는 문언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조문구조 및 어의에 비추어 그 의미를 넉넉히 파악할 수 있고, 설령 위 조항에 어느 정도의 애매함이 내포되어 있다 하더 라도 이는 다른 규정들과의 체계조화적인 이해 내지 당해 법률의 입법목적과 제정취지에 따른 해석으로 충분히 해소될 수 있으므로, 위 조항의 의미는 명확성의 기준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고 적어도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위 조항의 의미를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정의조항은 법률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3) 이 사건 추정조항에 대한 판단 이 사건 추정조항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 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규정하면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조항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또는 그 후손(이하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이라 한다)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적법절 차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청구인들은 이 사건 추정조항이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주장하나, 위 추정조항은 형사상 유무죄와는 무관하므로 무죄추정원칙 위반 주장에 대해서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 (가) 입증책임과 입법형성의 자유 입증책임규범은 사실의 존부가 불명한 경우 법관으로 하여금 재판을 할 수 있게 하는 보조수단으로서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입증책임을 분배할 것인가는 정의의 추구라는 사법의 이념, 재판의 공정성, 다툼이 되는 쟁점의 특성 및 관련 증거에 대한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법자가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아야 하는바(헌재 2007. 10. 25. 2005헌바96, 판례집 19-2, 467, 477 참조), 입증책임의 형성에 관한 이러한 입법자의 형성적 재량을 감안한다면 이 사건 추정조항의 위헌성에 대한 판단은 입법재량의 일탈·남용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 구체적인 판단 ① 이 사건 추정조항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가 그 당시친일반민족행위로 축적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사실상의 식민통치기구로서 만든 조직에 참여하거나 고등문관 이상의 고위 관직을 제공받는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은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일제와 유착된 상태에 있었거나 그러한 상태에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지위는 친일재산을 형성하는 데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위와 같은 행적 중에 취득한 재산이 친일재산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보인다. 그리고 러·일전쟁은 일제가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도한 침략전쟁으로서 위 전쟁의 결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친일재산의 성립가능시점을 러·일전쟁의 개전시로 보는 입법자의 인식에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②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라는 과거사 청산 작업이 해방 이후 오랜 시간이 경과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사이에 한국전쟁 등이 발발하여 부동산의 소유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멸실되었다. 이와 같은 민족사적 현실과 시대적 상황 등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이사건 추정조항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떠한 재산이 친일협력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인지 여부를 국가측이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심히 곤란한 상태인 반면, 일반적으로 재산의 취득자 또는 그 후손들은 재산취득과 관련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거나 그 재산의 취득내역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으므로, 재산 취득자 측에게 재산 취득 경위를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③ 이와 같이 이 사건 추정조항의 현실적 필요성이 상당함에 반해, 위 추정조항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이 부담하는 입증책임의 범위는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위 추정조항에 따르면 당해 인물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는 사실 및 당해 재산이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 사건 조사위원회가 입증하여야 하므로, 위 추정조항이 친일반민족행위자측에 전적으로 입증책임을 전가하였다고 볼 수 없다. 다음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추정조항은 국권침탈을 통하여 일제의 지배가 본격화되었다고 보이는 일정기간, 즉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추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록 그와 같은 추정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은 그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여 언제든지 위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 결국 규범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위 추정이 친일재산의 내용과 범위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종국적이고 비가역적인 역할을 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④ 나아가, 실무적으로 제반 헌법적 가치를 조화롭게 구현하면서 위 추정조항을 운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실제로도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추정조항의 적용대상을 합리적인 범위로 제한하여 적용하고 있다고 보이므로 이러한 실무적 운영을 통해 위 추정조항이 과도한 범위로 적용되어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이를테면, 이 사건 조사위원회는 지방 유지로 중추원 참의에 임명된 자가 그 임명 이전에 도참사, 군참사 등을 역임하였다 하더 라도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기 전의 직위에서 취득한 재산은 (비록 친일행위의 대가로 볼만한 사정이 충분하다 할지라도) 추정조항의 적용범위에서 제외하였고, 관료에서 중추원 참의로 된 자의 경우에도 그 임명 이전에 하급 직위에 있을 당시 취득한 재산을 추정조항의 적용범위에서 제외하였다. 이러한 결과, 일응 이 사건 추정조항에 따라 친일재산에 해당되는 외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면밀한 조사를 거쳐 친일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던 상당한 수의 사례에서 이 사건 조사위원회의 조사개시결정은 취소되었다(2010. 3. 5. 현재조사개시결정이 내려진 총 5,572건 중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제외할 때 국가귀속결정 또는 친일재산확인 결정이 내려진 사건이 2,078건, 조사개시결정이 취소된 사건이 2,818건이다). 이처럼 이 사건 추정조항의 실무적인 운용례는 위 추정조항이 이 사건 조사위원회의 합리적인 해석에 따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⑤ 설령 이 사건 조사위원회에서 추정이 번복되지 않아 그 재산이 국가로 귀속되는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통한 구제의 방도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사법적 교정의 여지 또한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가사 처분청 또는 법원이 이러한 추정의 번복을 쉽게 인정하지 않아서 위 추정이 사실상의 간주와 같이 기능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는 입법자가 단지 ‘추정’의 법률효과만을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률을 집행하는 처분청 또는 이를 심사하는 법원이 그와 같은 입법취지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추정조항을 활용한 입법적 재량이 일탈·남용되었다거나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아닐 수 없다. 무릇 법률의 집행에 오류가 있다고 하여 그 법률의 제정이 위헌이라고 보는 것은 헌법이 정한 권력분립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사건 추정조항이 사실상 간주조항으로 기능하므로 위헌이라는 주장은 해당 법률의 구체적인 집행에 오류가 있을 때마다 그 법률을 위헌으로 선언하라는 주장과 같으므로 수긍할 수 없다.

⑥ 나치 등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겪었던 다수 국가들이 외세의 지배를 극복한 이후 행하였던 과거사 청산에 관한 사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러 입법례들은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고 그 재산을 몰수할 때 그 재산이 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되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이를 몰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통하여 반민족행위로 축적된 재산 내지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은 결코 보호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정의 관념을 구현하였고, 나아가 설령 그들의 일부 재산이 스스로의 경제적 성과를 통해 손수 획득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배반했던 공동체가 이룩한 국가질서 안에서는 그와 같은 경제적 이익의 향유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강력한 경고를 후손들에게 남겨주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이 사건 추정 조항은 비록 추정의 형식을 통해 입증책임의 일정부분을 재산소유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보장함으로써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에 한정하여 국가귀속을 도모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이 반민족행위의 대가 여부를 불문하는 여타 국가들의 과거사 청산 입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제되고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보인다.

⑦ 나아가 과거사 청산의 정당성, 사회정의의 실현 및 진정한 사회통합의 가치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추정조항이 추구하는 정의의 구현, 민족정기의 복원, 3·1운동의 헌법이념이라는 공익적 중대성은 위추정조항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이 부담하는 불이익에 비해 우월하다.

(다) 소결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다면, 이사건 추정조항의 입법적 필요성은 상당한 데 비해 위추정을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자측에게 전가되는 입증책임의 부담은 여러 제반 사정에 비추어 과도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추정조항이 일정한 입증책임을 친일반민족행위자측에게 분담시키고 있다는 사정만을 두고 입법자가 자신의 재량을 일탈하거나 남용하여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

(4) 이 사건 귀속조항에 대한 판단 (가) 소급입법금지 원칙 위반 여부 1) 문제의 소재 친일재산이 비록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된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그 당시의 재산법 관련법제에 의하여 확정적으로 취득된 재산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친일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행위는 진정소급입법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제헌 헌법은 친일재산의 환수가 헌법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문제 의식에 기반하여 소급입법을 통해 친일재산을 환수할수 있는 헌법적 근거인 부칙 제101조를 마련해 두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는 위 부칙조항과 같은 내용의 조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헌법 제13조 제2항). 그렇다면, 이 사건 귀속조항이 갖는 진정소급입법으로서의 성격이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문제된다.

2) 이 사건 귀속조항이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반하는 지 여부 가) 소급입법 일반론 소급입법은 새로운 입법으로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하도록 하는 진정소급입법과 현재 진행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하도록 하는 부진정소급입법으로 나눌 수 있는바, 부진정소급입법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의 요청 사이의 교량과정에서 신뢰보호의 관점이 입법자의 형성권에 제한을 가하게 되는 데 반하여, 진정소급입법은 개인의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내용으로 하는 법치국가원리에 의하여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는 것이 원칙이나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수 있었거나,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거나 하여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와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그리고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에는 허용될수 있다(헌재 1996. 2. 16. 96헌가2등, 판례집 8-1, 51, 88; 헌재 1999. 7. 22. 97헌바76등, 판례집 11-2, 175, 193-194 참조).

나) 구체적 검토 ① 현행 헌법 전문(前文)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3·1운동’의 정신은 우리나라 헌법의 연혁적·이념적 기초로서 헌법이나 법률해석에서의 해석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헌재 2001. 3. 21. 99헌마139, 판례집 13-1, 676, 693 참조).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헌법 전문의 의미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라는 점(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판례집17-1, 1016, 1020) 및 나아가 현행 헌법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추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헌법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부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행위에 대하여 그 진상을 규명하고 그러한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공적으로 회수하는 등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겪었던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함으로써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진정한 사회통합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임무라고 보아야 한다.

②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친일재산의 소급적 박탈은 일반적으로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하며, 그로 인해 발생되는 법적 신뢰의 침해는 우리 헌법의 이념 속에서 용인될 수 있다고 보인다. 첫째, 친일재산은 국제법규를 위반하여 우리 민족을 강압으로 제압하고 불법적인 통치를 자행한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하여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독립운동을 탄압한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다. 따라서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의 입장에서는 그 재산의 취득 경위에 내포된 민족배반적 성격에 비추어 향후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여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를 건립하였을 때에는 그러한 친일재산을 보유하고 후대에 전수하여 자신과 그 후손들이 대대로 부귀를 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둘째, 앞서 본 바와 같이 친일재산을 환수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는 일은 제헌 헌법 이래 우리의 모든 헌법 속에서 면면히 계승된 가치이자 헌법적으로 부여되었던 당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권자이자 수범자로서 그 헌법 아래에서 살아온 모든 국민들에게 친일재산의 환수를 포함한 일제 식민지 역사의 청산 작업은 언제든지 현실로 성립될 수 있는 이른바 ‘잠재적 현실’이었다.

셋째,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을사조약에 동조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행위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친일행위로 인해 징용되거나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동원되는 등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민족 자결의 주장을 펼치며 일제의 부당한 통치에 항거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생명과 신체의 안전 등을 포함한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침해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역사적 상흔의 상당 부분들은 해방 후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반민법에 따른 일제과거사 청산 작업도 실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역사적·법적으로 엄중히 평가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현재까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즉, 일제과거사의 청산 문제, 그 가운데에서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의 처리 문제는 오늘에까지 우리 사회의 비중있는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그간의 우리 사회내논의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친일재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져 친일재산의 사회적 환수 요청이 제기될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③ 한편, 일반적으로 소급입법이 금지되는 주된 이유는 문제된 사안이 발생하기 전에 그 사안을 일반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입법을 통하여 행위시법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에 의해 사후에 제정된 법을 통해 과거의 일들이 자의적으로 규율됨으로써 법적 신뢰가 깨뜨려지고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에 관한 입법들은 그 사안이 발생하기 이전에 일반적인 규율 체계를 갖출 수 없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 역사상 과거사 청산에 관한 다수 입법들에서 소급입법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용인되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컨대, 우리 제헌헌법은 부칙 제101조에서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서기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이에 따라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 등에 대한 중형과 재산의 몰수 등을 규정한 반민법을 제정한 바 있고,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에서도 종전 후에는 나치의 괴뢰정권인 비시(Vichy)정부를 위해 복무한 자들과 나치협력자들을 소급적으로 처벌하였다.

④ 지난 세기 인류사회를 휩쓸고 갔던 강대국의 식민지배와 약탈 현상은 제국주의 및 파시즘의 발호에 기인한 역사적 산물이었다. 따라서 식민지배의 극복후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던 과거사 청산의 작업들은 그와 같은 이념에 대한 동조와 추종을 단죄하여 공동체를 보호하고 그 과오와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문명사적 반성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는 공동체 내에서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결의와 성찰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일제 과거사 청산으로서의 친일재산 환수문제는 그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역사적으로 매우 특수하고 이례적인 공동체적 과업이라 할 것이므로, 설령 이러한 소급입법의 합헌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진정소급입법이 빈번하게 발생해 그로 인한 폐해가 만연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는 충분히 불식될 수 있다.

3) 소결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예외적인 사안이고 진정소급입법을 통해 침해되는 법적 신뢰는 심각하다고 볼 수 없는 데 반해 이를 통해 달성되는 공익적 중대성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진정소급입법이 허용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 귀속조항이 진정소급입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헌이라 할 수 없다.

(나) 재산권 침해 여부 1)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절성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귀속조항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가 그 당시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써 이는 정당한 입법목적이라 할 수 있다. 민법 등 기존의 재산법 체계에 따를 때에는 비록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이라 하더라도 우리 법제상 정당한 재산으로 보호될 여지가 있는데, 이는 3·1운동 정신의 계승을 선포한 현행 헌법의 이념과 달리 우리 실정법은 오히려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 후손이 대대로 부귀를 누리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할 수있는 모순적 상황임이 분명하다. 이 경우 민법 등 관련조항의 해석 및 적용에 의존하는 방법만으로는 사회 정의와 민족정기에 입각한 친일재산의 처리에 난항을 겪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 후손이 친일재산의 이익을 향유할 수 없도록 규제할수 있는 특별한 조치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청되었고, 친일재산을 국가로 귀속시켜 이를 독립유공자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30조)이 사건 귀속조항은 이러한 규범적 요청의 일환으로서 앞서 본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 할 것이다.

2) 피해의 최소성 ① 이 사건 정의조항과 귀속조항을 종합적으로 볼때, 이 사건 귀속조항을 통하여 국가에 귀속되는 친일재산의 대상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반민규명법’이라 한다)이 정한 여러 유형의 친일반민족행위 중에서 사안이 중대하고 범위가 명백한 네 가지 행위, 즉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반민규명법 제2조 제6호),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동조 제7호),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행위(동조 제8호),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동조 제9호)를 한 자의 친일재산으로 한정하고 있고, 설사 이에 해당하는 자라 하더라도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등은 예외로 인정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② 앞서 본 바와 같이 비록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추정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은 그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여 언제든지 위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③ 또한, 친일재산귀속법은 친일재산의 거래로 인하여 선의의 제3자가 발생할 경우 이를 보호하도록 하는 규정을 둠으로써 이 사건 귀속조항의 소급적 적용에 따른 법적 안정성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다{한편, 대법원은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 단서에 정한 ‘제3자’는 친일재산귀속법 시행일 전에 친일재산을 취득한자뿐만 아니라 친일재산귀속법 시행일 이후에 친일재산을 취득한 자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는데(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두13491 판결), 이러한 해석을 통해 법적 안정성의 훼손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④ 강제징용자 및 일본군위안부 등 가혹한 일제의식민통치로 인해 우리 사회에 새겨진 상처들이 여전히 상존하는 반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후손들에 의한 재산환수소송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망하거나 연로해져 사회적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소수자의 차가운 지위로 내몰리는 반면, 재산환수 소송을 제기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의 일부는 그 재산을 되찾은 후 거액을 받고 이를 매도한 다음 외국으로 도피하고 있는 모순적 현실이 공존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전에 이 사건 귀속조항을 입법함으로써 친일재산을 소급적으로 국가로 귀속시켜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박탈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며 부당한 과거사를 바로 세워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추구하고자 한 것은 친일재산귀속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방도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본다면, 이 사건 귀속조항이 헌법상 재산권을 필요이상으로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

3) 법익의 균형성 과거사 청산의 정당성, 진정한 사회통합의 가치 등을 고려할 때 정의를 실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며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이 사건 귀속조항의 공익적 중대성은 막중하다 할 것이며, 설사 청구인들의 주장대로 이 사건 귀속조항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의 재산권이 제한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친일재산 환수의 역사적인 당위성, 환수대상 범위의 합리적 설정, 선의의 제3자 보호 등 제반 사정들에 비추어 그 제한의 정도가 이 사건 귀속조항에 의하여 보장되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은 공익과 사익간의 균형성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법익의 균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

4) 소결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은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나아가, 위 조항에 의해 재산권이 침해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청구인들의 주장도 이유 없다. 한편, 청구인들은 이 사건 귀속조항이 소유권을 박탈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3·1 운동의 정신을 담고 있는 헌법 전문 및 정의의 실현 등을 위해 친일재산을 강제적으로 국가에 귀속시키고자 하는 친일재산귀속법의 취지에 비추어, 이러한 귀속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 한 이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헌법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 주장도 받아 들일 수 없다.

(다) 평등의 원칙 위반 여부 1) 이 사건 귀속조항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라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당해 재산의 소유자들을 차별하고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가) 평등권침해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 엄격한 심사척도에 의할 것인지, 완화된 심사척도에 의할 것인지는 입법자에게 인정되는 입법형성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나 차별적 취급으로 인하여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에는 입법형성권은 축소되고, 보다 엄격한 심사척도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헌재 1999. 12. 23. 98헌마363, 판례집 11-2, 770, 787 참조). 사회적 신분에 대한 차별금지는 헌법 제11조 제1항 후문에서 예시된 것인데, 헌법 제11조 제1항 후문의 규정은 불합리한 차별의 금지에 초점이 있는 것으로서, 예시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절대적으로 차별을 금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입법자에게 인정되는 입법형성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헌재 2010. 11. 25. 2006헌마328, 공보 170, 2106, 2110). 그렇다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라는 점이 헌법 제11조 제1항 후문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이것만으로는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없고, 아래와 같이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은 연좌제금지원칙이 적용되는 경우라고 볼 수도 없으며 그 외 달리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을 특별히 평등하게 취급하도록 규정한 헌법 규정이 없는 이상,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에 대한 차별은 평등권 침해 여부의 심사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라 볼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귀속조항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가지는 모든 재산을 귀속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선조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중 친일행위의 대가인 것만 귀속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귀속조항은 그 차별취급으로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경우라고 할 수 없으므로, 역시 평등권 침해 여부의 심사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으로 인한 차별이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심사는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귀속조항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 라는 점, 친일재산은 그 주체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든 그 후손이든 이를 보유하도록 보장하는 것 자체가 정의 관념에 반하는 점, 국가에 귀속시키는 친일재산의 대상은 반민규명법이 정한 여러 유형의 친일반민족행위 중에서 사안이 중대하고 범위가 명백한 네 가지 행위를 한 자의 친일재산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설혹 이에 해당하는 자라 하더라도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등은 예외로 인정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친일재산의 거래로 인하여 선의의 제3자가 발생할 경우 이를 보호하도록 하는 규정도 두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비록 이 사건 귀속조항이 다른 재산과는 달리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을 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취급에는 수긍할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므로, 이를 두고 자의적인 차별로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2) 한편, 청구인들은 이 사건 귀속 조항이 처분적 법률이므로 위헌이라고 주장하나, 우리 헌법은 처분적 법률로서 개인대상법률 또는 개별사건법률의 정의를 따로 두고 있지 않음은 물론, 이러한 처분적 법률의 제정을 금하는 명문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은바, 특정규범이 개인대상 또는 개별사건법률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바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헌재 1996. 2. 16. 96헌가2등, 판례집 8-1, 51, 69; 2001. 2. 22. 99헌마613, 판례집 13-1, 367, 375 각 참조). 따라서 처분적 법률이므로 위헌이라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주장 자체로 이유 없고,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친일재산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므로 위 법률조항들을 처분적 법률로 보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청구인들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라) 연좌제금지원칙 위반 여부 헌법 제13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친족의 행위와 본인 간에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아무런 관련성을 인정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친족이라는 사유 그 자체만으로’ 불이익한 처우를 가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헌재 2005. 12. 22. 2005헌마19, 판례집 17-2, 785, 792). 그런데 이 사건 귀속조항에서 국가귀속의 대상으로규정하고 있는 친일재산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을 말한다. 따라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소유한 재산 중에서 그 후손 자신의 경제적 활동으로 취득하게 된 재산이라든가 친일재산 이외의 상속재산 등을 단지 그 선조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이 아닌 한, 위와 같은 친일재산에 한정하여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은 ‘친족의 행위와 본인 간에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아무런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친족이라는 사유 그 자체만으로’ 불이익을 입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건 귀속조항이 헌법 제13조 제3항에서 정한 연좌제금지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마) 기타 주장에 대한 판단 1) 청구인들은 이 사건 귀속조항이 우리 헌법상 금지되는 사회적 특수계급을 창설하는 것이고 영전의 세습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헌법 제11조 제2항에서의 ‘사회적 특수계급’이란 신분계급 등을 의미하는 것이며, 헌법 제11조 제3항이 영전의 세습을 부정하는 것은 영전으로 말미암은 특권을 부인하는 의미이므로, 친일반민족행위자측의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을 두고 신분계급을 창설하였다거나 영전의 세습을 인정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2) 청구인들은 이 사건 귀속조항으로 인한 국가귀속이 형법상 몰수와 유사하여 헌법 제12조 제1항의 ‘처벌’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재판절차도 보장되고 있지 않으므로 이는 헌법 제27조 제1항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의 적법절차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나, 재산귀속특별법 제21조 및 제23조에 의해 이 사건 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불복방법이 예정되어 있고 이 사건 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도 보장되어 있는 점, 이사건에서 이 사건 조사위원회의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은 행정처분의 일종일 뿐 ‘범죄행위에 제공하였거나 제공하려고 한 물건,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하였거나 이로 인하여 취득한 물건, 그 대가로 취득한 물건 중 범인 이외의 자의 소유에 속하지 아니하거나 범죄 후 범인 이외의 자가 정을 알면서 취득한 물건’을 박탈하는 형법상의 형벌인 몰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이 부분 주장은 더 이상 나아가 살필 것 없이 이유없다.

3) 청구인들은 과거 반민법이 시행되었으므로 친일재산귀속법을 다시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라고 주장하나, 이중처벌의 금지는 국가형벌권의 행사와 관련된 형사처벌의 영역에서 적용되는 것이고 이사건 법률조항들에 기한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처분은 형사처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위 주장 역시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4. 결 론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재판관 김종대의 다음 5.와 같은 별개의견, 재판관 목영준의 이 사건 귀속조항에 관한 다음 6.과 같은 일부별개의견,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의 이 사건 추정조항에 관한 다음 7.과 같은 일부한정위헌의견,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조대현의 이 사건 귀속조항에 관한 다음 8.과 같은 일부위헌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5. 재판관 김종대의 별개의견 나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재산권을 침해하지 아니 한다는 법정의견에 의견을 같이 하나, 친일재산은 헌법상 재산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므로 아래와 같이 밝히는 바이다. 가. 법정의견에 대한 비판 (1) 우리 헌법은 재산권을 기본권의 하나로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재산권은 제한될 수 있지만 그 제한에는 반드시 비례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하고(헌법 제37조 제2항),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또는 제한은 법률로써 해야 하며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지급되어야 한다(헌법 제23조 제3항). 나아가 재산권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박탈되지 않는다(헌법 제13조 제2항). 따라서 헌법상의 재산권으로 인정된다면, 예외 없이 위와 같은 헌법상의 보장을 받게 된다.

(2) 특히, 헌법제정자들은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하고 있는 헌법 제13조 제2항을 규정하면서 어떠한 예외조항도 두지 않았다. 이는 위 헌법규정이 천명하고 있는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의 금지가 어떠한 예외적 상황도 없이 일률적이고 일의적으로 관철되어야 할 가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13조 제2항을 해석하면서,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도 허용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헌법제정자들이 금지해 둔 내용을 번복하여 새로운 헌법적 내용을 형성해 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들로 부터 단지 헌법을 해석할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인 헌법재판소가 그 위임의 취지를 벗어나 그와 대립되는 헌법적 내용을 창설한 것이므로, 타당한 헌법 해석이라고 보기 힘들고, 권력분립의 원칙에 비추어 보아서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법정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즉, 법정의견의 논증은 친일재산을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이라고 보면서도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한 헌법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는 논리적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법정의견은 예외적으로 진정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이 허용된다고 보나, 이는 헌법의 해석이라기보다는 헌법의 제정 내지 형성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권력분립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 친일재산의 헌법적 성격 (1) 기본권에 대한 지성사적 논쟁 속에서 국가의 성립 이전부터 천부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되는 자연권 개념이 널리 인정된 적이 있지만, 근대 입헌주의 체계가 보편적으로 수용된 오늘날에 있어서 어떤 기본권이 헌법적으로 보호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결국 그 국가 사회가 가지고 있는 헌법의 규범적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상 재산권이라 함은, 재산에 대한 권리로서 ‘우리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친일재산이 우리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재산권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친일재산에 대한 우리 헌법의 태도 혹은 친일재산과 우리 헌법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2)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의 헌법은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대항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탄생하였다.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36년간의 식민지배 동안, 우리 민족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치열하고 끈질긴 해방운동을 펼쳐왔다. 비록 해방의 과정에서 일제를 패망시킨 연합국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자신들의 생명과 안위를 희생하며 투신했던 해방운동을 통해 표출 되었던 민족적 역량과 그로 인한 성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점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헌법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우리 민족의 숭고한 희생과 각고의 노력 끝에 비로소 우리의 손에 쥐어진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이에 제헌 헌법은 그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을 명확히 선언하였다. 3·1운동은 일제강점기하에 있던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독립을 선언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고, 이 운동의 결과 공화국 형태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향후 일제로부터의 민족해방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헌법의 법통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규정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추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해방과 민족자결의 정신을 헌법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우리 헌법의 정신과 법통, 그 제정 배경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친일이라는 반민족적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은 우리 헌법에 의해 보호될 수 없다. 친일재산은 비록 친일반민족행위자 그 개인에게는 유용한 ‘재산’으로서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일본제국주의와의 투쟁 및 그 극복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헌법에 규정된 ‘재산권’ 조항으로써 보호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유지·강화를 위해 복무하고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해 힘썼던 민족의 선인들을 억압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을 봉쇄하고 지연시키려 했던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은 오히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해야 옳다.

(3) 제헌 헌법은 제15조에서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고 하였지만, 다른 한편 부칙 제101조를 통해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바 있다. 제헌 헌법은 재산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반민족행위자의 신변과 재산 등의 처리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음을 규정한 것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세계만방에 선포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헌법전문에 명시한 제헌 헌법의 기본 이념에 비추어, 제헌 헌법은 친일재산을 제15조의 재산권 조항에 포함시키지 아니하고 부칙 제101조에서 정하는 특별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규정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권 처리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요컨대 친일재산은 제헌 헌법이 그 권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재산이다. 그리고 비록 제헌 헌법 이후의 헌법에서는 제헌 헌법에서와 같은 부칙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친일재산의 처리 문제가 제헌 헌법하에서 완료되어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의 특별한 규범적징표가 없는 한, 제헌 헌법 이후의 헌법에서도 친일재산의 박탈을 위한 입법은 충분히 가능하다. 제헌 헌법이후의 헌법에서도 일본제국주의와의 투쟁 속에서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던 대한민국의 건국이념내지 헌법제정 이념이 그대로 계승되고 있으므로, 제헌 헌법이 견지해 온 친일재산에 대한 투쟁적·적대적 태도가 단절되고 변화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 만큼 친일반민족성이 짙어 우리 헌법 하에서 재산으로서 보유되도록 허용되기 곤란한 재산이라면, 제헌 헌법 이후의 헌법이라 할지라도 국회는 친일재산의 박탈을 위한 특단의 입법을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친일재산을 승계받은 후손들이 거래의 안전, 신뢰보호의 원칙 등의 가치를 들어 친일재산의 보호 역시 헌법적으로 요청된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위 가치들을 새로운 독립국가의 건립 이념이 지니는 가치와 역사적 무게에 견줄 수는 없다. 친일반민족행위로 취득된 재산이 새로운 국가의 건설 후 그 국가가 인정하는 특정승계의 원인 없이 무상으로 당연 승계된 것인 한, 친일재산 속에 내포된 원취득자의 친일반민족성은 이를 포괄 승계로 취득한 그 후손에까지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다.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에 대한 헌법적 한계 그러나 친일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법률이라 할지라도, 친일재산의 선별과 국가귀속의 절차 등에 있어서는 헌법적인 한계를 준수해야 한다. 친일행위를 한 사람의 재산이라 하여 그 어떠한 재산에 대해서나 특별법을 제정해 친일반민족행위로 인한 재산이라 규정하고 이를 박탈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친일재산은 대한민국의 건국정신과 헌법제정 이념 등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공정·공평한 범위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로서는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을 규정한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할 때 친일재산의 선별과 그 국가귀속의 절차 등이 합리적인가, 공정하고 공평한가 여부를 심사해야 하고, 이 한도에서 친일재산의 보유자들에게는 위헌심사를 통한 구제가 보장된다.

라. 결론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우리 헌법상 재산권으로 보호되지 않는 친일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따라서 법정의견과 같이 재산권 제한에 대한 비례성 원칙의 위배여부를 검토할필요가 없다. 헌법재판소로서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의해 귀속되는 재산의 범위가 국가로 귀속시킬 필요가 있는 친일재산의 대상에 속하는가 여부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위 기준에서 볼 때 문제가 없다고 보인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그 본질적 성격상 대한민국의 국가기초와 법통에 밀접히 관련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는 기존의 일반 사법(私法) 논리로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국가기초와 법통은 헌법 고유의 주제인 만큼 헌법 체계의 고유한 논리에 힘입을 때에야 비로소 타당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6. 재판관 목영준의 일부별개의견 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이 사건 정의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하여는 법정의견과 견해를 같이 한다. 반면 위 법률 제3조 제1항 본문(이 사건 귀속조항)에 대하여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있어서는 법정의견과 같으나 그 이유에 있어 다르므로,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힌다. 가. 법정의견에 대한 비판 법정의견은, 이 사건 귀속조항이 진정소급입법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진정소급입법도 ……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거나 하여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와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그리고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헌재 1996. 2. 16. 96헌가2등, 판례집 8-1, 51, 88; 헌재 1999. 7. 22. 97헌바76등, 판례집 11-2, 175, 193-194 참조)는 선례의 전제 아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은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예외적인 사안이고 진정소급입법을 통해 침해되는 법적 신뢰는 심각하다고 볼 수없는데 반해 이를 통해 달성되는 공익적 중대성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진정소급입법이 허용된다고 설시하고 있다. 제헌 헌법은 친일재산의 환수가 헌법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소급입법을 통해 친일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인 부칙 제101조를 마련해 두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위 부칙조항과 같은 예외조항을 전혀 두지 않은 채, 제13조 제2항에서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금지되어야 함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이 바람직한 지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위와 같이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그 권한을 유월하여 헌법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법정의견은 타당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의 앞의 선례들은 변경되어야 한다.

나. 이 사건 귀속조항의 성격 친일재산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였거나 그러한 상태에서 상속된 재산이므로, 비록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친일재산이 법적으로 취득되었다고 하더라도, 규범적인 측면에서 친일재산이 헌법상 재산권으로서 확정적으로 보장되어야 할지는 우리 헌법의 이념 및 재산 취득 당시의 사정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여야 한다. 현행 헌법 전문(前文)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되었다는 점 및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추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헌법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임시정부의 이념에 반하여 우리민족을 부정하고 식민통치에 협조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은 반사회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또한 1905. 4. 29. 반포된 대한제국의 형법대전은 국가에 대한 반역죄(제190조 내지 제192조), 내란죄(제195조), 외환죄 및 국권손괴죄(제200조) 등을 규정하였는바, 비록 위 형법대전은 1912. 3. 18. 조선총독부법령 제11호로 폐지되었으나 이는 일제의 부당한 지배에 의해 그 적용이 배제되었던 것일 뿐 위 법전의 규범적인 효력은 잠재적인 차원에서 그대로 존속하였다고 할것이므로, 이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행위는 위 반역죄 등에 해당될 수 있고 이에 대한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은 취득 원인에 중대한 범죄성이 결부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이처럼 친일재산에는 취득 당시 반사회적 가치 내지 범죄성이 내재하고 있었고, 다른 유사한 국가들과 달리 과거사 청산절차를 밟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반사회성 및 범죄성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볼수 밖에 없으므로, 친일재산의 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가 이미 종료되었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일정한 조건 하에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을 규정하고 있는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하는 부진정소급입법이라고 할 것이다.

다. 이 사건 귀속조항의 위헌 여부 우리 헌법상 부진정소급입법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 요청 사이의 교량과정에서 전자가 우월해야 한다는 한계를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귀속조항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막중한 공익적 필요성이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법적 신뢰보다 중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이 사건 귀속조항이 헌법상 요구되는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부진정소급입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헌이라고 하기 어렵다.

라. 소결어 그렇다면 이 사건 귀속조항은 부진정소급입법이지만, 헌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고 할 것이다.

7.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의 일부한정위헌의견 우리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특별법’ 제2조 제2호 후문(이 사건 추정조항) 중 ‘취득’에 ‘사정(査定)에 의한 취득’이 포함된다고 해석하는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므로, 아래와 같이 한정위헌의견을 밝힌다. 가. 토지사정제도 우리의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제도는 일제의 토지정리사업에 의하여 토지사정부가 작성되면서 이루어졌으며, 이를 대한민국이 소유권의 원시취득 원인으로 인정함으로써 현행 헌법 체제 내로 계승되었다. 즉, 토지소유자는 조선토지조사령(1912. 8. 13. 제령 제2호) 제15조에 의해, 임야소유자는 조선임야조사령(1918. 5. 1. 제령 제5호) 제8조에 의해 사정이 확정되면 해당 토지 내지 임야를 원시취득한 것으로 인정되었다(대법원 1965. 11. 30. 선고 64다1508; 대법원 1984.1.24. 선고83다카1152 등). 그런데 사정이란 일제가 토지정리사업을 시행하면서 조선인으로 하여금 이미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신고하도록 하여 장부에 기재하던 절차였다. 즉, 토지사업 이전에 토지를 실제로 소유하던 사람도 사정절차를 거침으로써 실제 소유권 취득시기와 상관없이 1912년 및 1918년 이후에 새로이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사정은 1912년 및 1918년 이후의 사정당시 누가 토지 또는 임야를 소유하였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뿐이지, 그가 실제로 언제 토지 또는 임야를 취득하였는지에 관한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나. 이 사건 추정조항의 문제점 이 사건 추정조항은, “러·일 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취득’시기가 ‘러·일 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인지 여부에 따라 추정 여부가 결정되게 하였다. 그 결과, 위와 같이 사정되기 이전에 친일반민족행위와 무관하게 취득하였던 토지 또는 임야라고 하더라도, 일제가 위 시기에 토지정리사업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1912년 및 1918년 이후에 취득한 것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이 사건 추정조항에 따라 친일재산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 1904년 이전부터 수백년간 조상 대대로 소유하고 있던 토지라 하더라도 사정된 시기에 취득한 것이 되어 친일재산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정의견은 친일반민족행위자측에서 그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여 위 추정을 번복함으로써 귀속을 면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소송절차의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귀속을 면하려면, 해당 토지를 1904년 이전에 실제로 취득하였다는 점을 입증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토지소유권제도는 일제 하의 토지정리사업시행으로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토지·임야사정부가 작성되기 이전에는 토지소유권에 관한 대세적 공시방법이 마련되지 아니하였다. 이처럼 국가가 관리·보관하는 공시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다른 서증이나 증인에 의하여 취득시기를 입증하여야 하는데, 60여년 내지 100년여년 전의 사실관계를 입증할 서증이나 증인이 현재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설사 그러한 증거들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의 경과로 증거로서의 형체가 심하게 파손되거나 관련자들의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 법정에서 효과적인 증명력을 갖추기도 곤란할 것이다. 또한 그 밖의 정황증거, 즉 선대의 묘소가 토지상에 있다거나 선대의 족보상 주소지가 해당 토지라든지 하는 것만으로 위 추정을 번복시키기도 쉽지 않아, 이렇게 전가된 입증책임은 사실상 번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나 그 상속인들은 이 사건 추정조항으로 인해 전환된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해 친일재산과 무관한 재산까지도 박탈당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다. 소결어 이처럼 이 사건 추정조항 중 ‘취득’에 ‘사정에 의한취득’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함으로써 친일재산과 무관한 일반재산까지 국가에 귀속되도록 하는 것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침해의 최소성원칙에 반하고 법익균형성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나 그 상속인들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고, 따라서 헌법에 위반된다. 결국 이 사건 추정조항 중 ‘취득’에 ‘사정에 의한 취득’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조대현의 일부위헌의견 우리는 이 사건 귀속조항이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의 박탈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판단하므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밝힌다.

가. 친일재산의 귀속 필요성 친일재산귀속법상의 친일재산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이다. 한편,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선언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에 비추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단죄하고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써 잘못된 일제과거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은 우리사회의 동화적 통합을 위하여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나.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사회적·이념적 필요성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작업은 마땅히 우리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에 합치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 법정의견은,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는 해당하지만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였으므로 일제 과거사를 청산하여야 할 헌법적 임무가 있으며,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그 설시와 같은 역사적 예외사정이 있고, 이를 통해 잘못된 일제의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공익이 침해되는 청구인들의 법적 신뢰보다 훨씬 중요하여 진정소급입법이 허용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귀속조항이 진정소급입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라. 그러나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의 박탈에 해당되므로 헌법 제13조 제2항의 명문규정에 위반된다. (1) 우선, 우리 헌법사에 있어서 진정소급입법에 의한 처벌이나 재산권의 박탈, 참정권의 제한 등은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이나 법의 일반원칙에 위반되므로 별도의 헌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헌헌법 이전부터의 일반적·보편적 인식이었다. 그리하여 제헌헌법 하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고 친일재산을 박탈하며 그들의 공민권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던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시행된 바 있지만, 이는 제헌헌법 부칙 제101조가 “이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서기1945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1960년 11월 29일 제4차 개정헌법 부칙은“이 헌법 시행 당시의 국회는 단기 4293년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 부통령 선거에 관련하여 부정행위를 한 자와 그 부정행위에 항의하는 국민에 대하여 살상 기타의 부정행위를 한 자를 처벌 또는 단기 4293년4월 26일 이전에 특정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현저한반민주행위를 한 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으며 단기 4293년 4월 26일 이전에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자에 대한 행정상 또는 형사상의 처리를 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였고, 이에 근거하여 부정축재처리법 등을 제정함으로써 부정축재자들의 재산을 환수할 수 있었다.

(2) 그러다가 1962년 12월 26일 제5차 개정헌법 제11조 제1항에서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 또는 재산권의 박탈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우리 헌법사상 처음으로 소급입법에 의한 참정권의 제한이나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는 명문의 헌법규정이 신설되었다. 위 규정이 신설된 취지는, 4·19민주혁명과 5·16군사쿠데타를 거치면서 그때마다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정치활동정화법, 부정축재자처리법, 부정축재처리법 등의 각종 소급입법에 의하여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과 재산권이 수시로 제한되거나 박탈됨으로써 정치적·사회적 보복이 반복되어온 헌정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향후에는 소급입법에 의한 참정권의 제한이나 재산권의 박탈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겠다는 헌법개정권력인 국민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위 헌법규정은 조문의 위치와 표현을 약간달리 하였을 뿐 거의 동일하게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계속 유지되어 왔다.

(3) 그러므로 헌법 제13조 제2항은, 헌법 자체에서(진정)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을 제한하거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금지명령을 직접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위 규정의 헌법적 의의는, 참정권이나 재산권도 일반적으로는 헌법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 것이지만, 헌법 제13조 제2항에 의하여 소급입법의 방식으로는 이를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없다는 헌법적 금지를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비록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소급입법에 의하여 이를 박탈하는 것은 위헌법규정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법정의견은, 헌법재판소 1996. 2. 16. 96헌가2등 사건에서의 입론, 즉 진정소급입법에 의한 기본권의 제한도 예외적인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라 이 사건 귀속조항도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 제13조 제2항과 이 조항에 대한 연혁 등을 종합해 보면, 소급입법에 의한 참정권의 제한과 재산권의 박탈은 헌법 자체가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 부칙 등에서 별도의 규정이 없는 이상,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더라도 소급입법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 부칙 등에서 특별한 규정이 없는 현행헌법에서는 이 사건 귀속조항이 비록 역사적으로 특별히 예외적인 상황을 청산하거나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의 박탈인 이상 헌법에 위반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현행헌법 체계 내에서 법정의견과 같이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에는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의 박탈도 허용될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사실상의 헌법개정 내지 헌법변질이 될 것이고, 헌법해석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5) 결국, 친일재산을 국가로 귀속하기 위하여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정을 가능하게 하였던 제헌헌법부칙 제101조, 부정축재처리법 등의 제정을 가능하게 하였던 1960년 11월 29일의 제4차 개정헌법 부칙과 같은 별도의 헌법적 근거가 마련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6) 나아가 법정의견 중,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은“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였으므로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임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관하여 살펴본다. 이 부분의 주장 취지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의미가 헌법 전문에 표현된 근본이념이나 기본원리 등의 법적 효력이 헌법 제13조 제2항의 그것보다 우월하므로 친일재산에 대한 소급적 박탈은 헌법 제13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 헌법 전문의 건국이념 속에서 용인될 수 있다는 취지라면 이는 합당하지 않다. 헌법 전문에 표현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부분이 우리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선언한 것으로서 헌법이나 법률해석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헌법 전문에서 선언된 건국이념이나 기본원리 등은 결국 헌법 본문의 개별 규정들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헌법적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 본문의 개별규정을 해석함에 있어 헌법 전문에서 선언된 건국이념이나 기본원리 등과 같은 연혁적·이념적 의미를 내세워 개별규정의 법문에 반하는 해석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헌법 전문에서 선언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부분만을 내세워 헌법 제13조 제2항의 명문규정에 반하는 해석을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나아가 실제적으로 보더라도, 위와 같은 헌법 전문 부분의 진정한 의미가 친일재산은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소급입법에 의해서라도 반드시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취지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볼 것은 아닐것이다.

마. 소결 이상의 이유로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어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므로 위헌이라고 선언해야 할 것이다.

[별지 1] 청구인 명단:생략 [별지 2] 토지목록:생략 [별지 3] 부동산 취득경위 및 소유권 변동내역: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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