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다45521
추심금 [대법원 2012. 2. 16., 선고, 2011다45521, 전원합의체 판결] 【판시사항】 채권압류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가 압류채무자에게 반대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기 위한 요건
【판결요지】 [다수의견] 민법 제498조는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는 그 후에 취득한 채권에 의한 상계로 그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의 취지, 상계제도의 목적 및 기능, 채무자의 채권이 압류된 경우 관련 당사자들의 이익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채권압류명령 또는 채권가압류명령(이하 채권압류명령의 경우만을 두고 논의하기로 한다)을 받은 제3채무자가 압류채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기 위하여는, 압류의 효력 발생 당시에 대립하는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있거나, 그 당시 반대채권(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것이 피압류채권(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여야 한다.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이인복의 반대의견]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을 당시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는 제3채무자가 당연히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고,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 또는 그 중 어느 하나의 이행기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하여 상계적상에 놓이지 아니하였더라도 그 이후 제3채무자가 피압류채권을 채무자에게 지급하지 아니하고 있는 동안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도 제3채무자는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고, 이로써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참조조문】 민법 제492조 제1항, 제498조
【참조판례】 대법원 1973. 11. 13. 선고 73다518 전원합의체 판결(집21-3, 민155), 대법원 1982. 6. 22. 선고 82다카200 판결(공1982, 691),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3다7623 판결
【전문】
【원고, 상고인】
주식회사 한화시스템창호
【피고, 피상고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1. 4. 27. 선고 2010나86664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민법 제498조는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는 그 후에 취득한 채권에 의한 상계로 그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의 취지, 상계제도의 목적 및 기능, 채무자의 채권이 압류된 경우 관련 당사자들의 이익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채권압류명령 또는 채권가압류명령(이하 채권압류명령의 경우만을 두고 논의하기로 한다)을 받은 제3채무자가 압류채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기 위하여는, 압류의 효력 발생 당시에 대립하는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있거나, 그 당시 반대채권(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것이 피압류채권(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여야 할 것이다 ( 대법원 1982. 6. 22. 선고 82다카200 판결,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3다7623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그 판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금전채권에 대한 가압류를 본압류로 전이하는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는 때 제3채무자가 채권이 가압류되기 전에 가압류채무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로써 나중에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기 때문에, 제3채무자가 가압류 효력 발생 당시 이미 반대채권을 취득한 이상 그의 상계에 대한 기대는 합리적이고 정당하므로, 그 당시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있지 아니하고 반대채권의 변제기도 도래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양 채권의 변제기 선후를 불문하고 그 후에 상계적상에 이르면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 사건에서 가압류의 효력 발생일은 2008. 6. 30.이고, 피압류채권인 공사대금채권의 변제기는 2008. 6. 10.경이며, 액면금 1억 원의 약속어음 관련 대여금채권(이하 ‘이 사건 반대채권’이라 한다)의 변제기는 공사대금채권의 변제기 후인 2008. 7. 25.이지만, 이 사건 반대채권이 가압류 효력 발생 당시 이미 취득되어 있었던 이상, 피고로서는 위 약속어음이 부도나더라도 이 사건 반대채권과 공사대금채권을 상계함으로써 자신의 채권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기대를 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반대채권과 공사대금채권의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인 원고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가압류의 효력이 발생할 당시 피압류채권인 공사대금채권은 이미 변제기가 도래하였으나 이 사건 반대채권은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있었다고 할 수 없고, 나아가 이 사건 반대채권의 변제기가 공사대금채권의 변제기보다 나중에 도래하므로, 피고는 이 사건 반대채권에 의한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인 원고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원심판결에는 지급이 금지된 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그렇다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 대하여는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이인복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양창수의 보충의견과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이인복의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안대희의 보충의견이 있다.
4.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이인복의 반대의견 가. 민법 제498조는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는 그 후에 취득한 채권에 의한 상계로써 그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이 규정에 의하여 제3채무자의 상계가 금지되는 것은 제3채무자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이후에 새롭게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하는 것뿐이고, 그 반대해석상 제3채무자가 그 이전에 이미 취득하여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는 이 규정에 의하여 금지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 채권이 제3채무자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을 당시에 이미 이행기가 도래하였는지 여부는 문제될 여지가 없다.
나. 민법 제492조 제1항 본문은 “쌍방이 서로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채무를 부담한 경우에 그 쌍방의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는 각 채무자는 대등액에 관하여 상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원칙은 제3채무자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제3채무자가 그 명령을 받을 당시에 이미 채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취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느 때나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피압류채권과 상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의 이행기가 모두 도래하여야만 비로소 상계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이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이 있다고 하여 달라질 이유는 없다.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은 제3채무자가 피압류채권을 채무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일 뿐 반대채권이나 피압류채권의 성질까지 변경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을 당시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는 물론이고, 그 모두 또는 그 중 어느 하나의 채권의 이행기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하여 상계적상에 놓이지 아니하였더라도 그 이후 제3채무자가 피압류채권을 채무자에게 지급하지 아니하고 있는 동안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도 제3채무자는 반대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를 할 수 있고, 이로써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다. 원래 상계는 서로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채권을 가지는 당사자 사이에 서로 대립하는 채권과 채무를 간이한 방법으로 결제하게 함으로써 그 채권채무관계를 원활하고 공평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허용되는 것이다. 이에 의하여 상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는 채무자의 변제자력이 충분하지 못한 때에도 자기의 자동채권에 관하여는 확실하고도 충분한 변제를 받은 것과 같은 이익이 보장된다. 이 점에서 상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는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갖는다. 상계권을 가지는 채권자의 이러한 지위가 수동채권에 대하여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이 있다고 하여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은 말 그대로 제3채무자로 하여금 채무자에 대한 변제를 금지하는 것일 뿐 피압류채권의 본질 내지 성질에 어떤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채무자의 행위와 관계없는 객관적 사실 또는 제3채무자의 행위로 그 채권이 소멸하거나 그 내용이 변경되는 것까지 방지하는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법리는 제3채무자가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라. 그렇다면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는 제3채무자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 중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그 대답은 자명하다.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의 지위는 원래부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임에 비하여, 제3채무자는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므로 제3채무자의 상계권의 행사가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을 당시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는 제3채무자가 당연히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고,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 또는 그 중 어느 하나의 이행기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하여 상계적상에 놓이지 아니하였더라도 그 이후 제3채무자가 피압류채권을 채무자에게 지급하지 아니하고 있는 동안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도 제3채무자는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고, 이로써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제3채무자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을 당시에 제3채무자의 반대채권은 아직 이행기가 도래하지 아니하였으나 피압류채권의 이행기는 이미 도래하였거나 먼저 도래할 경우에, 제3채무자의 반대채권의 이행기가 도래함으로써 상계적상에 놓여 제3채무자가 적법·유효하게 상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와 같이 상계하기 전에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가 피압류채권을 추심하여 현실적으로 제3채무자로부터 피압류채권의 지급을 받아야 한다. 그와 같이 보지 않으려면 특별한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 한다.
마. 민법 제492조 제1항은 상계의 요건으로서 쌍방의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 원칙을 그대로 관철하면,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이 있은 경우에도 제3채무자는 채무자에 대하여 반대채권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그 반대채권을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 전에 취득하였는지 그 명령 후에 취득하였는지에 관계없이, 그 반대채권과 지급이 금지된 채권의 이행기가 모두 도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상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는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의 지위를 지나치게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서, 제3채무자가 상계할 수 있는 자동채권인 반대채권의 범위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이익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생긴다. 그 구체적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입법정책에 달린 문제이다. 우리 민법은 그 기준을 양 채권의 변제기 도래의 선후에 두는 입법례를 채택하지 아니하고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과 제3채무자의 반대채권의 취득시기의 선후에 두는 입법례를 채택하여 민법 제498조에 규정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견처럼 변제기 도래의 선후에 따라 제3채무자의 상계가 허용되는지 여부를 정하도록 하는 것은 민법 제498조의 규정에 반하여 법률의 근거 없이 제3채무자의 상계를 제한하려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다수의견은 민법 제498조의 규정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결론에 이르면서도 그 이유나 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고 있지 않다.
바. 이상에서 살펴 본 법리와 저촉되는 대법원 1973. 11. 13. 선고 73다518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82. 6. 22. 선고 82다카200 판결,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3다7623 판결 등의 견해는 변경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가압류명령의 효력발생일 당시에 피압류채권의 변제기는 이미 도래하고 제3채무자인 피고의 반대채권인 대여금채권은 아직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압류채권이 아직 현실적으로 추심되어 지급되지 아니한 이상, 피고는 위 반대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를 하여 가압류채권자인 원고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판결은 정당하여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고, 상고는 기각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5. 대법관 양창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가. 반대의견은 상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는 채무자의 변제자력이 충분하지 못한 때에도 자신의 자동채권에 관하여도 확실하고도 충분한 변제를 받는 것과 같은 이익이 보장되어서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가지는데, 이러한 지위가 수동채권에 관하여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이 있다고 하여 부정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채권자가 가지는 위와 같은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는 그것이 다른 채권자들의 정당한 이익과의 균형 위에서 비로소 보장되는 것이다. 반대의견도 말하는 대로 상계는 원래 같은 종류의 채권을 가지는 당사자 사이에 서로 대립하는 채권과 채무를 간이한 방법으로 결제하는 수단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에 대하여 동종의 채권을 가지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각자의 채권을 각기 청구하고 이행받기보다는, 서로 대등액에서 소멸시키고 남은 것만을 결제하는 것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쌍방 모두에게 노력이나 비용면에서 절약이 되고 간편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상계는 당사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바로 자기 채권이 만족되는 효과를 발생시키므로, 상계자에게는 사적인 강제집행, 즉 사집행(私執行)이 허용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간이한 결제수단으로서의 상계가 거기서 더 나아가 이른바 담보적 기능 또는 우선변제적 기능을 가지는 것은 그 취지상 당연히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즉 채무자가 다른 채권자들에 대하여도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경우에, 채권자들 전원은 채무자가 가지는 일반재산을 평등하게 각자 자기 채권의 만족에 돌릴 수 있는 것이 원칙이고, 이 원칙은 주지하는 대로 ‘채권자평등의 원칙’이라고 불린다. 그 때 채무자가 채권자 중의 한 사람에 대하여 채권을 가진다고 하면, 이 채권도 채권자 전원의 만족에 쓰여야 한다. 그런데 반대채무를 부담하는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으로써 상계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원래 채권자 전원의 채권 만족에 돌려져야 했을 터인 채무자의 당해 채권이 반대채권자의 채권을 만족시키는 데만 쓰여지는 결과가 된다. 그리하여 반대채무를 부담하여 상계를 할 수 있는 채권자는 채무자의 자산상태 여하에 불구하고 그 채무자에 대한 다른 채권자들에 우선하여 자기 채권의 만족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상계가 허용되는 결과로 다른 채권자들은 채무자의 일반재산 중 상계의 대상이 된 채권만큼은 이를 자기 채권의 만족에 돌릴 수 없는 불이익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계에 위와 같은 담보적 기능이 인정되는 것은 당사자들이 서로 대립하는 채권을 가지고 있으면 통상 상대방의 자력 여하에 상관없이 자기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정당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담보적 기능이 무한정하게 인정되면, 채무자의 재산상태가 악화된 경우에 다른 채권자들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채무를 부담하여 채무지급불능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는 갑에 있어서 을에 대한 채권이 그 책임재산의 중요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갑에 대한 채권은 그 실제의 가치에 좇아 액면액보다 훨씬 싼 값으로 거래될 것인데, 을이 제3자의 갑에 대한 채권을 염가로 양도받아 이것으로써 자신의 갑에 대한 채무를 상계하여 버리면, 갑의 책임재산은 훨씬 줄어들게 되어서 갑에 대한 다른 채권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불이익을 입는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422조가 파산절차를 전제로 하여 거기에서 상계를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위 규정은 상계의 담보적 기능이라는 것이 채무자가 지급불능상태에 빠진 경우에는 현저하게 제한된다는 것을 웅변으로 말하여 주고 있다. 또한 예를 들어 다른 채권자들이 채무자 갑의 제3채무자 을에 대한 채권을 압류하여 강제집행에 착수하였는데 을이 반대채권을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취득하였는가에 상관없이 그것으로써 상계할 수 있다고 하면, 그 강제집행은 언제라도 무위에 돌아갈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앞서 본 대로 상계가 가지는 사집행으로서의 성격에 비추어서도 이와 같이 법정의 강제집행을 공동화시키는 결과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제3채무자의 반대채권은 통상 공시되지도 아니하므로, 이해관계인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불이익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채권자가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압류하기에 이르렀다면, 비록 채무자가 지급불능상태에 이미 빠졌다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이로써 그러한 상태에 빠질 위험이 드러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채무자 재산의 공취를 통한 채권자들의 채권 만족 이익이 서로 급박하고도 예리하게 대립하고 있으므로, 그 중 어느 한 채권자에게 유리하고 그 외의 채권자들에는 불리한 법적 해결을 주려면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상계의 담보적 기능은 어디까지나 앞서 본 상계의 간편한 변제수단으로서의 기능에 부수적으로만 인정되는 것으로서 이를 무한정으로 수긍할 것은 아니며, 상계를 하려는 채권자의 앞서 본 상계기대의 정당한 이익과 압류채권자를 포함하는 다른 채권자들이나 채권양수인 등의 채권 만족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여 그 범위를 정함으로써 이에 적절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대의견은 상계권 있는 채권자가 “사실상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지위는 반대의견이 강조하는 우리 법의 명문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단지 법이 먼저 상계의 요건과 그 효과를 다양한 관련 이익 등을 고려하면서 타당하게 해석·획정한 결과로 간이한 결제수단이라는 상계제도 본래의 취지에 부수하여 상계권 있는 채권자가 일정한 범위에서 사실상 위와 같이 우선변제를 얻게 되는 것과 같은 법상태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그와 같이 ‘사실상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미리 설정·시인하고 이를 내세워 상계의 구체적인 요건, 나아가 그 효과를 재단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태도라고 생각된다.
나. 민법 제498조는 바로 이와 같이 채권자 중 1인이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압류 또는 가압류한 경우(이하에서는 압류의 경우만을 들어 논의하기로 한다)에 그 제3채무자의 상계 주장에 한계를 설정하려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압류 당시 제3채무자가 자동채권을 가지고 있었던 이상에는 그 변제기의 도래 여부나 그 선후관계를 가릴 것 없이 압류 후에 상계적상이 되면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는 결국 피압류채권(수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였으나 제3채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있는 동안에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한 경우에도, 제3채무자는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가에 귀착된다. 이와 같은 경우에 제3채무자가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하려면, 앞서 논의한 바에 따라 그가 가지는 상계에의 정당한 신뢰를 보호받는다는 이익이 그에게 우선적 만족을 줄 만큼 압류채권자의 채권 만족의 정당한 이익과 비교하여 적절한 균형을 갖춘 것이어서 압류채권자의 이익을 후퇴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이 점에 관하여, 압류 당시 상계적상에 있지 아니하여 압류 후에 비로소 상계적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3채무자가 가지는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여 바로 상계할 수 있는 경우에만 위와 같은 압류채권자에 우선하여 보호받을 수 있다는 태도를 여러 번에 걸쳐서 밝혀 왔다. 이러한 태도는, 그렇지 아니하고 제3채무자의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수동채권의 변제기보다 늦게 도래하는 경우에는 제3채무자가 그 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있어야만, 따라서 적어도 객관적으로는 자신의 채무에 관하여 채무불이행을 범하고 있어야만 비로소 상계적상에 이를 수 있는 제3채무자를 아직 그러한 상계적상이 도래하기 전에 압류에 착수한 채권자에 우선하여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고려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상계는 쌍방의 채무에 있어서 그 변제기가 도래한 때에 허용된다. 물론 수동채권만이 변제기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라면 상계를 하려는 사람으로서는 통상 자신의 채무에 관한 기한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으므로, 변제기에 이른 자동채권과의 상계적상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상계를 주장하는 당사자의 채권, 즉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비록 수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였다고 하더라도 상계가 허용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수동채권이 변제기에 이른 이상 그 채무는 이행되어야 하고, 아직 변제기에 이르지 아니한 반대채권이 있음을 이유로 그 이행을 거절할 수 없다. 먼저 변제기가 도래한 채무에 관하여 채권자의 권리 행사를 부정할 이유가 없으며, 이를 부정한다면 오히려 채무자의 근거 없는 이행지연을 허용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는 채무가 변제기에 이른 이상 그 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는 기본원칙에 따른 것으로서, 위와 같이 아무런 법적 장애 없이 행사될 수 있게 되는 수동채권에 대하여 이미 압류가 행하여지는 등으로 자동채권을 가지는 사람과 정면으로 이익이 대립하는 이해관계인이 등장한 이상 그 한도에서 상계의 담보적 기능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본 대로 상계의 담보적 기능은 상계를 통하여 자기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정당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정되는 것인데, 위와 같은 경우에 설사 제3채무자가 자기 채권의 만족을 상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정당한 신뢰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판례의 태도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익의 내용 등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채택된 타당한 해결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한 경우 선량한 제3채무자라면 자신의 채무를 제때에 이행하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급부는 현실적으로 채무자의 일반재산에 속하게 되어 채권자들 전원에게 이를 통하여 각자 채무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채무자가 자기 채무의 이행을 늦추고 있다가 후에 그 이행기가 도래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상계를 가지고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여 자기 채권의 우선적 만족을 얻고 압류채권자의 채권 실행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은 상계의 담보적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다. 우리 판례의 태도는 비교법적으로도 뒷받침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독일민법 제392조 후단은 우리 판례와 같이 제3채무자의 채권이 압류 후에 비로소 변제기에 도달하는 경우에는 그 변제기가 피압류채권의 변제기보다 뒤인 때에는 상계를 할 수 없다고 명문으로 정하고 있다. 그 입법이유는 앞서 본 대로 제3채무자가 자신이 부담하는 채무의 이행을 반대채권의 이행기까지 지체함으로써 상계의 권리를 얻어내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는 것이다.
라. 반대의견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오히려 민법 제498조가 압류 이후에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는 제3채무자의 상계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입법 취지를 설명할 수 없다. 반대의견은 압류명령은 “제3채무자로 하여금 채무자에 대한 변제를 금지하는 것일 뿐 피압류채권의 본질 내지 성질에 어떤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채무자의 행위와 관계없는 객관적 사실 또는 제3채무자의 행위로 그 채권이 소멸하거나 그 내용이 변경되는 것까지 방지하는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민법 제498조는 무슨 이유로 피압류채권의 본질 내지 성질에 아무런 변경도 가져오는 것이 아닌 압류를 두고 그 전후로 상계의 허용 여부라는 중요한 법문제의 해결을 달리하도록 정하였던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민법 제498조가 채권 압류의 사실로써 제3채무자가 가지는 상계와 관련한 이익상황에 일정한 변화를 주어 위와 같은 법문제에 관하여는 이제 압류채권자의 채권 만족의 이익 등에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태도를 입법적으로 취하였다고 보는 것이 온당한 설명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입법 취지는 민법 제498조에서 정하는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 후에 취득한 채권”이라는 것의 구체적 내용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앞서 본 우리 판례의 태도는 민법 제498조의 명문에 반한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입법 취지를 밀고나가 이를 적절하게 실현하였다고 할 것이다.
6.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이인복의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안대희의 보충의견 가. 상계제도의 목적과 기능에 비추어 볼 때, 장래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채권자의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는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이 각각 존재하기만 하면 인정되는 것으로서, 양 채권의 변제기 선후에 따라 그 존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수의견에 의하면, 채권압류의 효력 발생 당시 반대채권이 있어 장래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던 제3채무자 가운데 반대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하고 그 변제기가 피압류채권의 그것보다 나중에 도래하는 제3채무자에 대해서는, 채권압류라는 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우연한 사정만으로, 상계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그동안 갖고 있던 지위를 갑자기 상실하게 하는 예상하지 못한 불합리한 결과를 발생시킨다.
나. 다수의견은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할 때까지 이미 변제기가 도래한 피압류채권을 변제하지 아니함으로써 채무불이행을 한 제3채무자의 장래 상계에 대한 기대는 보호될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계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제3채무자가 변제기가 도래한 피압류채권을 이행하지 아니한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재로는 우리 민법이 통상 예정한 대로 제3채무자에 대하여 지연손해금 등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채무를 불이행하는 동안 상계적상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상계권 행사마저 제한하는 것은 제3채무자에 대한 지나치게 과도한 제재에 해당한다. 특히 변제기에 이르렀어도 채권의 범위 등에 관한 다툼이 있어 피압류채권을 변제하지 못하는 등 그 채무불이행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단지 변제기 선후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상계권 행사를 제한하는 다수의견은 그러한 경우 제3채무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다. 비교법적으로 보아도 반대의견의 해석론이 타당하다. 독일민법 제392조는 다수의견과 같은 해석을 명문화하고 있으나 채권의 ‘취득’이라는 용어와 채권의 ‘이행기 도래’라는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어 우리 민법 제498조의 법문과 차이가 있다. 그리고 우리 민사집행법과는 달리 독일민사소송법에서는 압류채권자가 채권압류로 피압류채권을 목적물로 한 법정질권자의 지위를 취득하기 때문에 압류채권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우리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차이점을 고려하면 독일민법 제392조의 규정을 우리 민법 제498조의 해석론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라. 제3채무자가 은행 등 금융기관인 경우에는 통상 반대채권인 대출금 등 채권과 관련하여 채권가압류나 채권압류 등 채무자의 변제자력에 의심이 가는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면서 피압류채권인 예금 등의 채권과 상계를 할 수 있다는 특약을 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러한 기한의 이익 상실 등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특약에 따라 채권가압류나 채권압류로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이 곧바로 상계적상에 이르기 때문에 제3채무자인 은행 등 금융기관은 사실상 제한 없이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1989. 9. 12. 선고 88다카25120 판결,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3다7623 판결 등 참조). 또한 대법원은 제3채무자의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이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는 경우에 제3채무자는 사실상 제한 없이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대법원 1993. 9. 28. 선고 92다55794 판결 참조).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반대의견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즉, 위 대법원판결의 사안들이나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서의 압류채권자 및 제3채무자의 지위가 다르지 않은데,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서만 압류채권자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제3채무자의 상계권 행사가 제한되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경우를 위와 같은 사안들과 달리 취급하는 것은 정합성의 관점에 비추어 보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박일환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주심)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