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다204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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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대법원 2015. 8. 27., 선고, 2012다204587, 판결] 【판시사항】 [1] 저작물 폐기 행위로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발생한 경우, 저작권법상 동일성유지권 침해의 성립 여부와 별개로 저작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행위가 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국가배상책임에서 ‘법령 위반’의 의미 및 공무원의 저작물 폐기 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로서 위법한지 판단하는 기준 [3] 甲이 국가의 의뢰로 도라산역사 내 벽면 및 기둥들에 벽화를 제작·설치하였는데, 국가가 작품 설치일로부터 약 3년 만에 벽화를 철거하여 소각한 사안에서,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甲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저작권법은 공표권(제11조), 성명표시권(제12조), 동일성유지권(제13조) 등의 저작인격권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으나,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가 위와 같은 저작권법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저작물의 단순한 변경을 넘어서 폐기 행위로 인하여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동일성유지권 침해의 성립 여부와는 별개로 저작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 [2] 공무원의 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서 ‘법령을 위반하여’라고 함은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행위의무가 정하여져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아니하고 위반한 경우를 비롯하여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도 포함한다.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일반대중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얻는 등 예술작품의 종류와 성격 등에 따라서는 저작자로서도 자신의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보존될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질 수 있으므로, 저작물의 종류와 성격, 이용의 목적 및 형태, 저작물 설치 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성의 정도, 국가가 이를 선정하여 설치하게 된 경위, 폐기의 이유와 폐기 결정에 이른 과정 및 폐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국가 소속 공무원의 해당 저작물의 폐기 행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고 저작자로서의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과 명성 등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로서 위법하다. [3] 甲이 국가의 의뢰로 도라산역사 내 벽면 및 기둥들에 벽화를 제작·설치하였는데, 국가가 작품 설치일로부터 약 3년 만에 벽화를 철거하여 소각한 사안에서, 甲은 특별한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라산역이라는 공공장소에 국가의 의뢰로 설치된 벽화가 상당 기간 전시되고 보존되리라고 기대하였고, 국가도 단기간에 이를 철거할 경우 甲이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이나 명성 등이 침해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국가가 벽화 설치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유를 들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철거를 결정하고 원형을 크게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철거 후 소각한 행위는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하여 위법하므로,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甲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저작권법 제11조, 제12조, 제13조, 민법 제750조, 제751조 [2]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3]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민법 제750조, 제751조

【참조판례】 [2] 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95666 판결(공2012하, 1486)


【전문】 【원고, 피상고인】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최호진)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2. 11. 29. 선고 2012나31842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 3점에 대하여 저작권법은 공표권(제11조), 성명표시권(제12조), 동일성유지권(제13조) 등의 저작인격권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으나,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가 위와 같은 저작권법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저작물의 단순한 변경을 넘어서 폐기 행위로 인하여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동일성유지권 침해의 성립 여부와는 별개로 저작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저작인격권 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평가된 행위는 당연히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로도 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거나, 원심이 이 사건 벽화 폐기행위에 대하여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다음 이와 별도로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의 침해는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이유모순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가. 공무원의 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서 ‘법령을 위반하여’라고 함은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행위의무가 정하여져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아니하고 위반한 경우를 비롯하여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도 포함한다(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95666 판결 등 참조).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일반대중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얻는 등 예술작품의 종류와 성격 등에 따라서는 저작자로서도 자신의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보존될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질 수 있으므로, 저작물의 종류와 성격, 이용의 목적 및 형태, 저작물 설치 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성의 정도, 국가가 이를 선정하여 설치하게 된 경위, 폐기의 이유와 폐기 결정에 이른 과정 및 폐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국가 소속 공무원의 해당 저작물의 폐기 행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고 저작자로서의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과 명성 등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로서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알 수 있다. 1) 이 사건 벽화는 원고가 2006. 3.경 피고로부터 의뢰받아 2007. 5.경 도라산역사 내 벽면 및 기둥들에 포토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제작·설치한 14점의 벽화들로서, 반복·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도라산역 내에 ‘첩부벽화’의 형태로 설치되어 벽체로부터의 분리도 용이하지 않은 미술저작물이다. 2) 이 사건 벽화가 설치된 도라산역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의 역 가운데 하나로서 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의미가 있어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공개된 장소이다. 3) 피고가 이 사건 벽화의 제작·설치를 의뢰한 것은 경의선 철도출입시설의 공간 활용 계획의 일환으로 도라산역사 내에 통일문화광장을 조성하여 도라산역 방문객에게 민족의 동질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통일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남북교류협력의 현실과 통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대형벽화를 통해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4) 또한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벽화의 제작·설치를 의뢰한 것은 원고가 1968년경 이래 대학교수 등으로 재직하여 온 명망 있는 미술가로서 특히 비무장지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여 왔기 때문이다. 5) 피고는 이 사건 벽화의 설치과정에 전문가 회의를 개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 사건 벽화의 의미에 관하여 원고와 수차례 협의하였으며, 설치 이후에는 이 사건 벽화의 가치와 의미를 소개하는 책자를 작성하여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하였다. 6) 그런데 피고는 작품 설치일로부터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2010. 2. 3. 이 사건 벽화의 교체를 추진하는 계획안을 수립한 다음 같은 해 5. 6.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기로 결정하였고, 이후 그 원형에 대한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거나 원고에게 통보하여 의사를 확인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이 사건 벽화에 물을 분사하여 원래의 규격보다 작게 절단한 후 벽체에서 분리하는 방법으로 철거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같은 달 18일 그 철거를 완료하였으며, 그 과정에 이 사건 벽화를 크게 손상시켰다. 7) 피고는 2010. 4.경 15일간 도라산역 관람객 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같은 달 30일 회의에 참석한 외부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 사건 벽화의 철거를 결정하였다고 주장하나, 그 설문조사의 최종결과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설문지의 내용이나 실제 응답내용 등에 관한 자료는 전혀 제출하지 아니하고 있고, 나아가 위 회의에 참석한 외부전문가들의 인적 사항도 전혀 밝히지 아니하고 있다. 8) 한편 위 외부전문가들이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여야 할 이유로 지적하였다는 사유로 피고가 밝히고 있는 ‘작가 개인의 지나친 부각’, ‘관광객의 이해 곤란’, ‘어두운 색채와 반복적 내용’, ‘프린트 방식으로 아우라 없음’은 이미 이 사건 벽화의 제작에 앞서 도안을 검토하기 위해 2006. 11. 2. 열린 회의에 참석한 외부전문가들이 지적한 사항과 사실상 같은 것이다. 9) 벽화 철거 사실을 알게 된 원고가 2010. 6. 11. 이 사건 벽화의 철거 이유, 훼손 여부, 보관상태 등을 질의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자, 피고는 같은 달 17일 원고에게 ‘이 사건 벽화의 난해성, 어두움 등을 이유로 철거하였고, 철거 시 이 사건 벽화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노력하였으나 부득이하게 손상된 부분이 있으며, 현재 이 사건 벽화 전체를 적절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 10) 또한 피고는 2011. 8. 9. 열린 이 사건 제1심 제1차 변론기일에서도 이 사건 벽화를 떼어내어 보관하고 있다고 진술하였는데, 이에 따라 원고가 같은 해 9. 14.경 이 사건 벽화의 현황을 살피기 위해 도라산역을 방문하자 비로소 도라산역 옆 공터에서 이미 소각하여 버린 사실만을 고지하였고, 그 구체적인 소각 경위에 대해서 더 이상 밝히지 아니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소각 결정 및 경위에 관하여 아무런 문서도 작성되지 아니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 원심이 인정한 사실과 위와 같은 사정들을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특별한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라산역이라는 공공장소에 피고의 의뢰로 설치된 이 사건 벽화가 상당 기간 전시되고 보존되리라고 기대하였고, 피고로서도 이 사건 벽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홍보까지 하였으므로 단기간에 이를 철거할 경우 원고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이나 명성 등이 침해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피고가 이 사건 벽화의 설치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유를 들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그 철거를 결정하고 그 원형을 크게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철거 후 소각한 행위는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하여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피고의 이러한 이 사건 벽화 폐기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라.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3.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용덕(재판장) 이인복 고영한 김소영(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