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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배재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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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민주주의 파괴를 규탄한다>

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가정보원은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공작을 벌임으로써 대통령선거에 개입하였다. 국정원은 인터넷과 SNS상에서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국민 여론의 조작을 시도하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젊은 층 우군화 전략’을 행동지침으로 내세워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종북좌파로 몰아세웠으며, 소위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을 통해 대국민 여론조작에 국정원 직원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였다. 정보기관의 구시대적인 정치개입이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노골적으로 자행되어 왔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다. 국정원은 비단 대통령선거에만 개입한 것이 아니다.

박원순 제압 문건, 반값등록금 관련 문건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명박 정권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일상적인 업무였다. 대북 및 해외정보의 수집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망각한 채로, 국정원은 이명박 정권 및 특정 정치세력의 주구가 되어 정권 안보를 위해 국민을 공작의 대상으로 여기고 국민들의 정당한 정치적 주장을 탄압하는 일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원세훈 전 원장이 종전 조직을 확대개편하여 만든 심리정보국의 주도로, ‘종북 척결’이라는 구호 하에 국민을 섬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반민주적인 작태까지 저질러 놓고도 대북심리전이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국정원이 스스로를 정권보위부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가정보원법과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임을 넘어서, 헌법이 규정한 국민주권원리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대한 헌법유린 사태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처럼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반민주적 독재정권 시대로 회귀한 국정원의 행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우리 교수들은, 이토록 부끄러운 광경을 제자들에게 더 이상 보여줄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며, 정치개입의 전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의 엄중 처벌, 나아가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을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한다.

첫째, 국정원의 부당한 정치개입의 전모, 그리고 이를 축소은폐하려고 시도한 현 정권의 부당한 수사개입에 대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장이 직원 몇 명과 짜고 저지른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과 일부 정치세력이 국가정보원을 국내정치 조작에 동원한 조직적인 국헌문란행위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 하에서 자행되어 온 국정원의 모든 정치개입의 실체가 낱낱이 규명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이 사건의 수사에 부당하게 간섭했다는 정황도 의심되고 있는 만큼 현 정권의 부당한 수사 간섭과 축소·은폐시도에 대해서도 그 전모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둘째, 모든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 기소하고 이 사건에 개입한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유예처분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취했지만, 이처럼 국가권력을 동원한 권력형 범죄 사건에서야말로 그에 가담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법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외에, 정치개입의 조직적인 음모와 범죄 실행에 관련된 국정원 직원들을 비롯하여 모든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고 죄과에 상응하는 처벌을 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

셋째, 국정원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국정원의 광범위한 정치개입이 이처럼 과감하게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러므로 국정원은 물론 각종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도록 하는 전면적인 개혁이 즉각 시작되어야 하며, 이러한 개혁작업은 국정원의 해체와 폐지를 불사한다는 각오로 착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박대통령은 대선개입 등 국정원의 국헌문란사태가 지난 정권의 일이었을 뿐 현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도 되는 양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 당시 여당의 후보자로서 적지않은 언급을 했던 박대통령은 결코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이러한 모호한 자세는 국정원의 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가로막는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전 국민의 분노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대통령은 이제라도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정원에 의해 저질러진 헌정 파괴 범죄에 대한 철두철미한 수사와 국정원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국민 앞에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2013년 7월 5일 국정원의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규탄하는 배재대학교 교수 일동

 강명숙(교직부), 김양주(일본학과), 김종서(법학부), 박종대(물리융합전기공학과), 박현민(경영학과), 백 철(비주얼디자인학과), 송태섭(무역학과), 오영기(분자과학부), 유진숙(정치언론학과), 윤일권(독일어문화학과), 윤 준(영어영문학과), 이규봉(전산수학과), 이길주(러시아학과), 이문지(법학부), 이상수(생명공학과), 조태준(문화예술콘텐츠학과), 한규광(물리융합전기공학과) (이상 17명, 성명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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