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시국 선언
우리는 얼마나 더 분노해야 하는가!
- 7월 12일 서울대 총학생회 학생선언
지난 6월 20일 우리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관련된 인물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본 사건의 재발방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난 3주동안 대학가 시국선언, 학자들의 시국선언, 종교계 시국선언, 고등학생 시국선언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수백명의 시민들이 매일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이고 있으며, 지난 토요일에는 1만여명의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제6공화국의 근간인 형식적 민주주의마저도 위협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를 보라.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은 정권의 선거개입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기는커녕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북한에 바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위기가 닥쳤을 때 색깔론을 이용해 자신들의 위기를 넘기겠다는 고전적인 술책이다.
하지만 공개된 정상회담 회의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였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오직 밝혀진 것은 새누리당이 사전에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이 문서를 입수하고, 문서를 왜곡하여 선동함으로써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득을 봤으며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합심하여 국민들을 기만하려 했다는 사실 뿐이다.
한술 더 떠 국방부는 7월 11일 대변인 브리핑에서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NLL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려 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정부 부처가 직접 나서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며 새누리당의 색깔론 공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사태는 국회가 해결할 일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 6월 24일의 일이다. 그런데 정부부처가 직접 나서 새누리당의 정치 공세에 가세하는 행동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연계도 모자라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뜻인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조사는 국민들의 분노에 대한 대답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바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침해한 인사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다시는 국가권력이 국민들을 기만하고 위협하지 않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국정원 개혁을 위한 당내 특위’를 구성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혹여나 새누리당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국민들을 기만할 생각을 하지 말기 바란다.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보호받는 정보기관, 국민들의 통제와 감시가 닿지 않는 정보기관이 국민보다 정권을 두려워할 것은 뻔한 사실이다. 본 사건에서 나타나듯 국민이 통제하고 감시할 수 없는 국가기관은 더 이상 국가기관이 아니라 정권과 관료의 통치기관으로 전락한다.
새누리당은 국가기관을 국민들을 기만하고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알량한 변명으로 국민들을 속이면서 국정조사를 수박 겉핥듯 실시하거나 허울뿐인 개혁안을 제출하여 현재와 같이 국가정보원을 유지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가기관은 국민들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이 ‘스스로’ 개혁하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국정원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국정원 자체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천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무책임함과 방관자적 입장은 제2, 제3의 김무성과 원세훈을 낳을 뿐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관련자의 처벌과 뼈를 깎는 쇄신과 국민들이 주도하는 혁신이 없다면 국정원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우리를 감시하고 사찰하고 선거에, 민주주의에, 국가중대사에 개입하는 것을 서슴지 않을 것이 명백하다.
우리는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 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더 분노해야 하는가!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어야 민주주의의 깃발을 지켜낼 수 있는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비통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훼손되고 국가기관이 국민들의 통제를 받기는커녕 국민들을 통제하려 드는 일련의 사건이 제6공화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탄압에 얼마나 많은 민주열사들이 산화했던가. 방식만 21세기화 되었을 뿐 우리는 중앙정보부과 국가안전기획부의 망령을 현재의 국정원 사태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무리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국정원과 경찰이 일치단결하여 국민들을 기만하고 폭력으로 집회와 시위를 탄압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더욱 큰 저항의 물결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선배들이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후배들이 국가기관이 마음대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도록 만들 수 없다. 우리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오늘 새누리당 앞 집회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이 공권력을 이용해 우리의 투쟁을 탄압한다 할지라도 정의를 정의라 부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 그것이 국민들이 역사를 움직여왔던, 작지만 거대한 힘이었음을 분명히 기억하자.
2013. 07. 12. (금)
서울대학교 학부생 1080명, 대학원생 127명, 졸업생 123명 등
총 1330명을 대표하여
민중해방의 불꽃 제55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김형래 대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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