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민단체 공동 시국 선언
시국선언문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선거개입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중대사태!
지난 시기 우리의 질곡의 현대사를 돌아보자.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투쟁은 분단이라는 조건속에서 늘 친북이적의 멍에를 뒤집어써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투옥되었다. 친북이적의 낙인을 찍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군사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와 같은 정보기관들은 본래의 제 소임은 마다하고 정권을 보위하는 첨병임을 자임했다. 정보기관은 무소불위, 공포의 대명사였다.
평화적 정권교체와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명제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명제가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간단히 무너졌다. 정보기관은 다시 정권을 보위하는 친위대로 재편되었고, 국내정치개입과 사찰, 공작이 일상화되었다. 지난 대선 무렵의 국가정보원 직원의 인터넷 댓글을 통한 대선개입사태 및 박원순, 반값등록금 관련 문건들에서 나타나는 작태들은 정권보위대로 변질된 국가정보원을 징표하는 구체적 사례들이다. 종북척결은 국가정보원의 그러한 정권보위적 작태를 정당화한 핵심적 프로파간다가 되었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헌법질서는 정보기관의 상시적인 정치개입으로 흔들리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일련의 국가정보원 사태가 가지는 의미의 중대성을 공감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쪽은 이 문제가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한 쪽은 이 문제의 거론이 자칫 대선불복의 인상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이번 국가정보원 사태는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대한민국 헌법질서의 근본을 건드리는 문제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군부독재 따위의 반민주적 시대로의 회귀를 용인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명확해진다. 우선 검찰은 일련의 국가정보원 사태의 진상을 엄정하고도 낱낱이 규명하여야 한다. 밝혀진 결과에 따라 정치개입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책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도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두 가지 우려가 있다. 첫째, 검찰이 이번 사태의 중대성을 외면하고 밝혀진 행위의 개별적 측면에만 주목하여 나무만 보고 숲은 외면하고 있다는 우려다. 이번 사태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정권적 차원에서 국가정보원을 국내정치와 선거에 활용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국기문란행위이다. 둘째, 국가정보원의 내부 제보자에 대한 처벌의 우려이다. 본말의 전도요, 강도를 체포한 시민을 강도에 대한 폭행죄로 처벌하는 격이다. 이러한 우려들이 단순한 우려에 그칠 것이라 믿는다.
검찰에 의하여 밝혀질 진상의 토대위에서 국회와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을 근본적으로 근절시킬 수 있는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집행하여야 한다. 철저하게 대북 및 해외 정보의 수집으로 직무범위를 한정하고 정보기관답게 수사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악마적 종북프레임을 국내정치에 활용하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도 아울러 중단되어야 한다.
과거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포정치 시대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정보기관이 제 소임을 다하는 진정한 민주국가로 진화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갈림길에서 우리의 선택은 분명하다. 국가정보원을 개혁하여 정보기관이 제 소임에 충실하는 진정한 민주국가로 나아가게 하는 우리의 투쟁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2013년 6월 5일
시국선언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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