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전남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1987년 6월 항쟁 이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크게 진전된 상태이며, 아시아와 제3세계 국가들의 모범적 사례로 분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런 정치발달은 4.19 혁명, 부마 항쟁, 5.18 광주 항쟁,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과 수많은 국민들의 값비싼 희생의 결과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민주화과정에서 정보기관들은 항상 개혁의 최우선 순위였다. 정보기관들은 과거 군부독재정권시절에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각종 정치탄압을 자행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보기관의 이런 비민주적 행태에 분노했고, 정보기관들은 정치적 변혁기마다 국민의 비판과 분노를 의식해 그 명칭을 바꾸며 변신을 시도하는 듯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근 들어 정보기관의 부정적 행태가 급속히 부활하고 있다. 최근만 하더라도 2012년 말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고, 민주인사들과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사찰과 음해공작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국정원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국민의 비판 앞에서 국정원이 보인 오만하고 비이성적인 대응자세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선거 개입 혐의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거세지고, 국정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및 국회의 국정조사가 진행되려하자 이를 피하고 희석시키기 위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했다.
또 일부 정치권은 국정원의 이런 비이성적 행위에 장단을 맞추어 노무현 대통령의 ‘NLL(서해북방한계선) 발언’을 정쟁화 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직후 한국기록학회 등 6개 기록전문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는 불법적일뿐만 아니라 국격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또 그들은 국정원이 회의록 발췌본을 지난 해 12월 17일 검찰, 지난 6월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각각 열람케 한 것 또한 대통령기록물 보호 취지에 반하는 명백한 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이는 국정원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해괴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국정원의 명예, 더 정확히 말하면 범죄행위에 연루된 국정원 인사들의 보호를 위해서 국가의 신뢰와 이익을 내팽개친 것이다.
우리는 기록전문단체들의 주장처럼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대화록 공개’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을 어긴 명백한 범법행위이며 국가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본다. 또 국정원의 공공연한 정치개입과 탈법행위는 1987년 이후 안정화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는 행위라고 판단한다. 이에 전남대학교 교수들은 다음과 같이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첫째, 국정원은 최근에 행한 일련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
둘째,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국정원법을 어긴 책임을 물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구속, 수사하라.
셋째, 국정원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남북정상회담 기록물을 공개하여 국가기록물보관법을 어기고 국가의 위신과 이익을 심하게 해친 남재준 국정원장과 관계자들을 즉각 해임하고 관계법에 의해 처벌하라.
넷째,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정원이 다시는 이번과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라.
다섯째, 국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절시키기 위한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하라.
여섯째, 정부·여당은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감싼 행위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 열람 및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자들을 문책하라.
2013년 7월 2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전남대 교수 일동 ( 14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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