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헌마623
민법 제844조 제2항 등 위헌확인 [전원재판부 2013헌마623, 2015. 4. 30.] 【판시사항】 가.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를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844조 제2항 중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에 관한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모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적극) 나. 잠정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한 사례 【결정요지】 가. 오늘날 이혼 및 재혼이 크게 증가하였고, 여성의 재혼금지기간이 2005년 민법개정으로 삭제되었으며, 이혼숙려기간 및 조정전치주의가 도입됨에 따라 혼인 파탄으로부터 법률상 이혼까지의 시간간격이 크게 늘어나게 됨에 따라, 여성이 전남편 아닌 생부의 자를 포태하여 혼인 종료일로부터 300일 이내에 그 자를 출산할 가능성이 과거에 비하여 크게 증가하게 되었으며, 유전자검사 기술의 발달로 부자관계를 의학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쉽게 되었다.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에 따르면, 혼인 종료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자녀가 전남편의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하고, 전남편이 친생추정을 원하지도 않으며,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하려는 경우에도, 그 자녀는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되어 가족관계등록부에 전남편의 친생자로 등록되고, 이는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서만 번복될 수 있다. 그 결과 심판대상조항은 이혼한 모와 전남편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데 부담이 되고, 자녀와 생부가 진실한 혈연관계를 회복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민법 제정 이후의 사회적ㆍ법률적ㆍ의학적 사정변경을 전혀 반영하지 아니한 채, 이미 혼인관계가 해소된 이후에 자가 출생하고 생부가 출생한 자를 인지하려는 경우마저도, 아무런 예외 없이 그 자를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함으로써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도록 하는 심판대상조항은 입법형성의 한계를 벗어나 모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 나. 심판대상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하면 친생추정의 효력이 즉시 상실되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의 법적 지위에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상태를 어떤 기준과 요건에 따라 개선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형성재량에 속하므로,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적용을 명한다.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안창호의 반대의견 심판대상조항은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갖추게 함으로써 법적 보호의 공백을 방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합리성이 인정되므로, 입법재량의 한계를 준수한 것으로서 모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친생추정은 친생부인의 소와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길은 친생부인의 소를 규정한 민법 제846조 및 제847조로 심판대상을 확장하여, 그 규정들이 추정을 번복할 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규정하지 아니한 부진정입법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를 논하는 것이 타당하다. 【심판대상조문】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844조 제2항 중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에 관한 부분 【참조조문】 헌법 제10조, 제36조 제1항 구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되고, 2005. 3. 31.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11조 민법(2005. 3. 31.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된 것) 제846조, 제847조 제1항 【참조판례】 헌재 1997. 3. 27. 95헌가14등, 판례집 9-1, 193, 204-205 【전문】 [당 사 자]
청 구 인 최○원
국선대리인 변호사 김현재
[주 문]
1.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844조 제2항 중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2. 위 법률조항 부분은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이 유]
1. 사건개요
청구인은 2005. 4. 25. 유○술과 혼인하였다가 2011. 12. 19. 이혼에 합의하고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받은 다음 2012. 2. 28. 관할 구청에 이혼신고를 하였다. 이후 청구인은 송○민과 동거하면서 2012. 10. 22. 딸을 출산하였다. 청구인은 2013. 5. 6. 관할 구청을 방문하여 송○윤이라는 이름으로 딸의 출생신고를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민법 제844조에 따라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녀는 전남편의 친생자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므로 전남편의 성(姓)에 따라 유○윤으로 기재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출생신고를 보류하였다. 한편, 2013. 5. 8. 서울의대 법의학교실의 유전자검사 결과 송○윤은 송○민의 친생자로 확인되었고, 송○민은 송○윤을 자신의 친생자로 인지하려고 한다. 이에 청구인은 민법 제844조 및 제845조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3. 9. 5.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844조 제2항 중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에 관한 부분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이다. 청구인은 민법 제845조에 대하여도 위헌확인을 구하고 있으나, 청구인은 송○민과 재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송○윤을 출산하여 민법 제845조는 청구인의 경우에 적용되지 아니하므로 이는 심판대상에서 제외한다. 심판대상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844조(부의 친생자의 추정) ② 혼인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
3. 청구인의 주장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청구인이 친생자관계를 바로 잡으려면 전남편을 상대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 자와 생부(生父)의 유전자검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고 승소확정판결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를 정리한 다음 생부에 대해 인지를 청구함으로써 생부와 친생자관계를 창설하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절차를 거치려면 청구인은 어느 시기에 누구와 성관계를 하였는지를 밝혀야 하는데, 이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일정 기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을 미룰 수밖에 없다면 이는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혼인을 하더라도 일정기간 임신을 회피하기 위하여 성관계를 기피하여야 한다면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간단하고 저렴한 유전자검사를 통해 친생자 여부를 확실히 밝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대상조항은 많은 소송비용이 요구되는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도록 강제하고 있어 재산권도 침해한다. 나아가 심판대상조항은 전혼 해소 후 300일 이전에 출산한 여성과 그 후에 출산한 여성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여 평등권을 침해한다.
4. 판단
가. 쟁점 정리
모든 국민은 인격권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신의 생활 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혈통에 입각한 가족관계 형성은 개인의 인격 발현을 위한 자율영역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은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자녀가 출생하면 그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명백한 경우에도 무조건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야만 하므로, 진실한 혈연에 따라 가족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청구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제한한다. 또한, 헌법 제36조 제1항은 개인의 자율적 의사와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자유로운 형성을 국가가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은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하지 아니하고 당사자들이 원하지도 아니하는 친자관계를 강요하고 있으므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제한한다(헌재 1997. 3. 27. 95헌가14등 참조).
청구인은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혼인의 자유, 성적자기결정권, 재산권, 평등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친생부인의 소 진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공개의 문제는 소송법상 변론 및 소송기록 비공개 제도의 운영에 관련된 문제로서 심판대상조항으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제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여성의 재혼금지기간을 규정하던 구 민법 제811조가 폐지된 이상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청구인의 혼인의 자유 및 성적자기결정권이 제한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청구인이 절차가 간단한 유전자검사 대신 절차가 복잡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게 됨으로써 경제적 부담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불이익은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함에 따른 간접효과로서 반사적 불이익에 불과할 뿐 이를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의 제한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심판대상조항이 혼인 해소 후 300일 이전에 출산한 여성과 그 이후에 출산한 여성에 차이를 두는 것은 심판대상조항이 혼인 해소 후 300일을 친생추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데, 그 기준이 합리적인가에 관하여 인격권 등의 침해 여부를 검토하면서 판단하는 이상 이에 관한 평등권 침해 주장은 다시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
나. 입법형성 및 한계
혼인 종료 후 출생한 자에 대한 친생추정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모뿐만 아니라 자ㆍ생부ㆍ부(夫)의 법적 지위와 관계되므로, ‘법률적인 친자관계를 진실에 부합시키고자 하는 모ㆍ자ㆍ생부ㆍ부(夫)의 이익’과 ‘친자관계의 신속한 확정을 통하여 법적 안정을 찾고자 하는 자의 이익’을 어떻게 그 사회 실정과 전통적 관념에 맞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는 이해관계인들의 기본권과 혼인 및 가족생활에 관한 헌법적 결단을 고려하여 결정할 문제로서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그런데 민법 제844조에 따라 인정되는 친생추정의 효력은 법률에서 인정하는 다른 추정에 비하여 강한 효력을 갖는다. 친생추정이 유지되는 한 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를 생부의 친생자로 등록하거나, 자가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하거나, 생부가 자를 인지하거나, 부(夫)가 자에 대한 양육 및 상속의무에서 벗어나는 것 모두 허용되지 아니한다. 이처럼 민법상 친생추정이 모ㆍ자ㆍ생부ㆍ부(夫)의 법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엄격한 요건에서만 인정되는 친생부인의 소 제기 부담을 국민에게 지우기 위해서는 그러한 친생추정이 얼마나 합리적인지가 검토되어야 한다. 소송을 통하여 친생부인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친생추정의 비합리성이 치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혼인 종료 후 출생한 자의 친생추정 여부와 방법을 정하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입법재량에 속한다 하더라도, 그 친생추정의 기준이 지나치게 불합리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진실한 혈연관계에 반하는 친자관계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이는 입법형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위헌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여부
(1) 모자관계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에 의하여 그 관계가 명확히 결정된다. 그런데 부자관계는 그 관계 확정을 위한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므로 이를 위해 친생추정제도가 도입되었다. 부부가 동거생활을 하면 처가 남편의 자를 포태하는 것이 정상이고 부부의 정조의무가 지켜지는 한 처가 남편이 아닌 남자의 자를 포태할 수 없으므로, 민법은 처가 혼인 중에 포태한 자 또는 혼인관계 종료 뒤 3백일 안에 출생한 자는 부(夫)의 자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유전자검사 기술의 발달로 과학적 친자감정이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위와 같이 개연성에 기반을 둔 친생추정제도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출생과 동시에 자에게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자의 출생 시 법적 보호의 공백을 없앴다는 측면에서 친생추정은 여전히 자의 복리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특히, 친자관계에 대하여 다툼이 없는 대다수의 경우 친자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특별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친생추정제도는 계속 유지될 필요성이 있다.
민법 제844조는 포태시기를 근거로 처가 혼인 중에 포태한 자는 부(夫)의 자로 추정하는 한편, 출생시기를 근거로 혼인 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적용되는 200일 또는 300일의 기간은 포태 시부터 출산 시까지의 최단ㆍ최장기간에 해당하는 의학적 통계를 바탕으로 한다. 태아의 임신기간이 통상 280일(40주)인 것은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고, 산모의 개인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출산일로부터 역산하여 200-300일 이내에 포태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경험칙에 부합한다. 이런 이유에서 독일과 일본 등 외국에서도 출생일로부터 역산하여 300일 이내의 기간을 친생추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심판대상조항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 출생 여부를 친생추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합리적이다.
(2) 심판대상조항은 민법이 1958. 2. 22. 제정된 이래 한 번도 개정되지 아니한 채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이라는 친생추정 기준은 민법 제정 당시의 사회적ㆍ법률적 배경에 근거한 것인데, 당시에는 이혼율이 낮았고 이혼 후 재혼도 흔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성은 혼인관계 종료 후 6개월 동안 재혼할 수 없었다(구 민법 제811조). 그 결과, 여성이 이혼 후 300일 이내에 전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를 출산하는 일은 드물었고, 여성이 전혼 종료일로부터 6개월 이후 생부와 재혼하여 포태한 자가 전혼 종료일로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를 법률상 예외 없이 부(夫)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데 나름대로 합리적 근거가 있었고, 친자관계의 과학적 확인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친생추정에 어긋나는 예외적 경우라면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를 통하여만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자의 법적 지위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소송경제 등에도 부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ㆍ법률적 상황은 이러한 친생추정의 기준이 만들어진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 우선 이혼 및 재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여 이혼율 및 재혼건수가 증가하였고, 여성의 재혼을 일정기간 금지하던 구 민법 제811조도 2005. 3. 31. 삭제되었다. 한편, 협의상 이혼의 경우 민법 제정 시에는 호적법에 따른 신고로 효력이 발생하였으나, 1977. 12. 31.에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신고하도록 변경되었고(민법 제836조), 2007. 12. 21.에는 신중하지 못한 이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혼숙려기간 제도가 도입되었다(민법 제836조의2). 이에 따라 과거에는 당사자의 이혼의사 합치와 호적법에 의한 신고만으로 이혼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가정법원에서 이혼에 관한 안내를 받고 그 안내를 받은 날부터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 법원으로부터 이혼의사 확인을 받아야만 협의상 이혼이 가능하게 되었다. 재판상 이혼의 경우에도 1990. 12. 31. 가사소송법이 제정되면서 조정전치주의가 도입되어 이혼의 소를 제기하려면 먼저 조정을 신청해야 하게 되었다(가사소송법 제50조). 그 결과,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른 뒤 법률상 이혼의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시간 간격이 크게 늘어나게 되면서 여성이 남편이 아닌 남자의 자를 포태하여 혼인 종료일로부터 300일 이내에 생부의 자를 출산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에는 존재하지 아니하던 유전자검사 기술의 발달로 부자관계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3)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친생추정이 되면 그 추정은 오직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서만 번복될 수 있다(민법 제844조 제1항, 제847조). 한편 출생신고는 자의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해야 하고 신고기간 내에 신고를 해태하면 과태료의 제재를 받는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제1항, 제46조 제2항, 제122조). 따라서 혼인 종료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자가 전남편의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하고 전남편이 친생추정을 원하지도 않으며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하려는 경우에도,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일단 전남편인 부(夫)의 친생자로 등록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하여 모의 경우, 전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출산한 생부의 자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전남편의 자로 기재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소기간 내에 전남편을 상대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정은 모가 이혼 후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부(夫)의 경우, 전처가 이혼 후 출산한 제3자의 자가 자신의 친생자로 추정되어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고 이에 따라 부양의무를 부담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벗어나려면 모의 친생부인의 소를 기다리거나 2년의 제척기간 안에 스스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만약 모 또는 부(夫)가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거나 2년의 제척기간이 지나 친생부인의 기회를 상실하면, 자는 생부에게 인지를 청구할 수 없고 생부도 자를 인지할 수 없어, 진실한 혈연관계를 회복할 길이 막혀 버린다.
이러한 불합리한 결과는 혼인관계 종료 후 단기간 내 재혼이 드물었던 민법 제정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와 법제도의 변화에 따라 혼인관계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전남편이 아닌 남자의 자녀를 출산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그 부자관계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진실한 혈연관계의 회복을 막는 심판대상조항의 문제점이 대두되게 되었다.
(4) 친생추정제도는 모자관계와 달리 부자관계의 정확한 증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검사 등을 통하여 친자관계 증명이 가능하게 된 현 상황에서 부자관계 입증 곤란은 더 이상 친생추정의 근거가 되기 어렵게 되었다. 한편, 심판대상조항과 같이 모와 부(夫) 사이의 혼인이 이미 종료된 경우를 전제로 친생추정을 적용하는 경우에는 가정의 평화 유지를 그 입법취지로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의 입법취지로는 자의 법적 지위를 신속히 안정시킬 필요성만 남게 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이혼 및 재혼이 크게 증가하고 법률적으로 여성의 재혼금지기간도 폐지되었으며 협의상 및 재판상 이혼에 필요한 시간이 상당히 늘어난 이상,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가 부(夫)의 친자일 개연성은 과거에 비하여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유전자검사를 통해 생부로 확인된 사람이 자신의 친자를 인지할 적극적 의사가 있는 경우에는 자의 법적 지위에 공백이 발생할 여지도 없다. 이러한 경우 심판대상조항은 본래의 입법취지에는 아무런 기여를 못하고 친자관계를 신속히 진실에 맞게 합치시키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당사자의 의사를 도외시하는 결과만 초래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독일에서는 부(夫)와의 혼인 중에 출생한 자라도 그 출생일이 이혼소송 계속 이후이고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한 경우라면 부(夫)의 친생추정을 제한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혼소송이 계속 중이라면 이미 가정의 평화가 깨진 상태이고 이때 출생한 자를 생부가 인지하여 그 자의 법적 지위가 안정된 경우 굳이 이혼한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할 아무런 법률상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도 전남편을 자의 부(父)로 정한 다음 반드시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도록 강제하는 것은 무의미한 절차의 낭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혼인관계가 해소된 이후 자가 출생하였고 이 사건과 같이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하려는 경우마저도 아무런 예외 없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를 부(夫)의 친생자로 추정하도록 하는 심판대상조항은, 친생추정의 주된 목적인 자의 복리에 비추어 보아도 지나치게 불합리한 제한이라고 보아야 한다.
(5) 심판대상조항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의 출생 여부를 친생추정의 원칙적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입법형성의 한계를 넘었다고는 볼 수는 없다. 또 자의 법적 지위 안정을 위해 심판대상조항과 같은 친생추정 규정도 필요하다. 문제는 친생추정에 아무런 예외를 허용하지 아니한 채 오직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서만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도록 한 데서 비롯된다.
독일과 같이 친생추정에 일정한 예외를 인정하거나, 친생부인의 소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도 적게 드는 비송사건절차를 통하여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하지 아니함으로 인한 위헌성을 해소함과 동시에 자의 신분관계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정 이후 사회적ㆍ의학적ㆍ법률적 사정변경을 전혀 반영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예외 없이 일률적으로 300일의 기준만 강요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이 겪는 구체적이고 심각한 불이익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입법형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모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5. 헌법불합치결정과 잠정적용명령
심판대상조항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지만 이 조항이 위헌으로 선언되어 즉시 효력을 상실하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에 대해서는 친생추정이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가 부(夫)의 친생자임이 명백한 경우에도 친생추정이 소멸되어 자의 법적 지위에 공백이 발생한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이 위헌이라도 그 위헌 상태를 헌법에 맞게 조정하기 위한 구체적 개선안을 어떤 기준과 요건에 따라 마련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형성재량에 속한다. 따라서 입법자가 심판대상조항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때까지 일정 기간 이를 잠정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다만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적용을 명하기로 한다.
6. 결론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나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적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아래 7.과 같은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안창호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7.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안창호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과 반대로 심판대상조항은 입법형성의 한계를 준수한 것이고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므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심판대상조항은 혼인관계 종료 후 출생한 자의 친생자관계에 관한 근본이 되는 추정규정이다. 추정규정은 아직 진실을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 법률관계를 안정시키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추정규정의 본질상 진실과 다른 경우에는 불합리한 점이 없을 수 없으므로 예외규정으로 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방법을 규정함으로써 그 불합리를 해소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경우가 있다고 하여 추정규정을 위헌이라고 한다면 모든 추정규정은 위헌성을 지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친생추정규정 자체의 불합리성을 논의하려면 그 논의가 적용 범위를 포괄하여야 하는데, 규율하는 상당 부분이 합리적이고 일부 불합리한 부분이 있더라고 예외규정을 두어 친생추정규정의 불합리를 해소할 수 있다면 심판대상조항은 입법형성의 한계를 준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심판대상조항이 규율하는 범위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아무도 자의 생부가 전남편(夫)인 것을 다투지 않는 경우, 다수의견이 주력하고 있는 부분인 자의 생부가 전남편(夫) 아닌 제3자일 개연성이 농후한 경우 및 자의 생부가 전남편(夫)인지, 전남편(夫) 아닌 제3자인지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첫째, 자의 생부가 전남편(夫)인 것을 아무도 다투지 않는 경우에는 친자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추가적으로 특별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으므로 친생추정제도는 그 자체로 자의 출생과 동시에 완전하게 효용을 발휘한다. 그런데도 다수의견처럼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할 수 없으므로 전남편인 생부가 인지하거나 인지청구의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자에 대한 법적 보호의 공백상태가 발생한다. 둘째, 자의 생부가 전남편(夫) 아닌 제3자일 개연성이 농후한 경우 친생추정제도는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것과 같은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 셋째, 자의 생부가 전남편(夫)인지, 제3자인지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 친생추정규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혼인 중 포태가 입증되지 않는 때에는 첫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부가 인지하거나 인지청구의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자에 대한 법적 보호의 공백상태가 발생한다. 이처럼 다수의견은 친생추정규정의 규율 범위 중 일부분이 불합리하다고 하여 여전히 그 효용을 발휘하여야 할 부분까지 헌법불합치를 선언함으로써 자에 대한 법적 보호의 공백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다수의견은 위의 둘째 경우에나 제한적으로 타당할 수 있게 된다.
심판대상조항은 부자 사이의 친생자 추정에 관한 근본규정이다. 오늘날 유전공학의 발달로 부자간의 혈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들이 여전히 친생추정제도를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규정이 근본적인 규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혼인 종료 후 300일이란 친생추정의 기준은 포태시부터 출산시까지 최장기간이 300일이라는 의학적 통계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미국 통일친자법, 프랑스 민법, 독일 민법, 일본 민법에서도 300일을 친생추정에 있어 일응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의 출생 여부를 친생추정의 원칙적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 다수의견도 같은 취지로 혼인 종료 후 300일이라는 친생추정 기준 그 자체의 존재이유 및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심판대상조항이 통상의 추정과는 달리 친생부인의 소 이외의 방법으로 그 추정을 번복할 수 없는 강력한 효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간주규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추정규정에 불과하다. 다만,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친생부인의 소만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문제의 소재가 여기에 있는데도 친생자 추정에 관한 근본규정인 친생추정규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를 선언하여 자에 대한 법적 보호의 공백을 초래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친생추정규정은 그 추정을 번복하는 방법인 민법 제846조의 친생부인의 소와 제847조의 친생부인의 소 제척기간 규정과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소로써 친생자관계가 부인되지 않으면 친생자추정의 효과를 확정적으로 발생시킨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의 헌법불합치 선언으로 발생하는 자의 법적 보호에 대한 공백을 제거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은 친생부인의 소 이외의 방법으로 추정을 번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민법 제846조나 제847조로 이 사건의 심판대상을 확장하여 그 규정들이 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이고 간편한 방법을 규정하지 아니한 부진정 입법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를 논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친생자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예외에 관하여 불완전, 불충분한 입법을 함으로써 입법형성의 한계를 현저히 일탈하였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 심판대상조항의 적용 범위 중 둘째의 경우에 불합리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므로 친생추정의 예외로서 이러한 불합리성을 해소할 수 있는 입법을 하지 아니한 것이 입법형성의 한계를 현저히 일탈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친생추정규정은 출생과 동시에 자에게 안정된 법적 지위를 갖추게 함으로써 자에 대한 법적 보호의 공백을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을 하는 규정으로서 자의 복리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므로 친생추정규정의 위헌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생물학적 부를 법률상 부로 확정하는 것보다는 자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수의견처럼 헌법불합치를 선언하면 위헌이 확정되는 단계에서는 법률상 부를 확정할 때까지 공백상태에 놓이는 자의 복리에 대한 고려가 없게 된다. 생물학적 부를 법률상 부로 확정하는 것은 그것이 자의 복리를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한도 안에서 의미 있는 가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예외규정으로 친생추정규정의 불합리를 충분하게 해소할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 그 자체는 합리성과 필요성이 인정되어 입법재량의 한계를 준수한 것이어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심판대상조항의 일부 불합리한 부분은 입법부작위 상태에 있는 추정 번복에 관한 규정을 합리적으로 개선 입법을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생자관계의 바탕이 되는 규정을 헌법불합치라고 선언하는 것은 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게 되는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은 그 동안 입법시한이 정해진 헌법불합치결정에 대하여 상당수가 그 시한이 지나도록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입법관행이 존재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다수의견이 잠정적용,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면서 입법시한을 두지 않는 것은 자에 대한 법적 보호의 공백상태를 우려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는 있지만, 이는 정상적인 헌법불합치 결정 방식이 아니다. 또한 그 개선입법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어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위헌성은 언제 해결될지 전망하기 어렵다. 다수의견은 자식에 대한 권리 구제를 원하는 청구인에 대하여 권리를 전혀 구제해주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잠정 합헌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