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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전국 변호사 비상시국모임 시국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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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왕조국가인가.

대한민국은 최순실 사건으로 그 처절한 민낯을 드러냈다. 최순실 사건은 단순한 몇몇 개인의 비리나 일탈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지 않은 한 줌의 세력이 국가권력을, 공적 권위를 사유화했고,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적으로 공유하였다. 그들은 시스템 위에 군림하며, 국가권력을 치부(致富)와 영달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법치주의는 돈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을 꾸짖고 다스릴 때만 작동하는 이념으로 전락했다. 기가 막힌 일은 왕조국가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뻔히 자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최순실로 표상되는 국헌문란과 국정농단의 치욕적 재앙의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권력자들은 감히 몰랐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공적 권위를 사유화한 이번 사태의 원인은 특정 개인의 사악함에만 있지 않다. ‘최순실’을 거대한 괴물로 만들고 그에 업힌 대통령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 집권여당, 공안조직, 대기업 등 우리 사회의 지배 권력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하였다. 행여 이들이 이러한 일련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파괴행위를 전혀 몰랐다고 변명한다면 그들은 결코 그 자리에 있지 말아야 했던 무능한 역사적 범죄자일 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최순실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철저하고 포괄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하고 관련자들은 모두 처벌받아야 하며 그들이 가진 권력은 모두 박탈당해야 한다. 대통령과 주변 기득권 세력, 그 동조자와 침묵의 방조자들에 대한 척결과 청산 없이는 누가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그 모든 절차는 이들의 헌정파괴행위에 면죄부를 쥐어 주게 될 것이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말 것이다.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기본적 사명으로 한다는 우리 변호사들 역시 때로는 방관하고, 때로는 조력하고, 때로는 불의한 권력의 주구가 되길 마다하지 않으며 일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았는지, 눈앞에 벌어진 일에만, 조그마한 사익에만 분개하고 집착하지 않았는지,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애써 외면하고 경쟁과 생존의 현실에서 딱딱하게 굳어 버린 양심을 합리화하지 않았는지 처절하게 반성하면서, 이제 국가와 국민이 우리 법률가들에게 부여한 소임에 따라, 헌정파괴행위에 앞장섰던 대통령과 청와대의 전ㆍ현직 핵심간부들, 집권당의 핵심세력들, 재벌 등 이 사태의 핵심세력들을 청산하고 그들이 찬탈한 권력을 국민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에 겸허하게 나서고자 한다.

3.1운동부터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을 거쳐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희생과 고통과 인내를 딛고 쟁취해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 헌법의 이념, 이 모든 성취가 진창에 뒹굴고 흙탕물로 오염되고 있는 오늘, 이 땅에서 자행되는 불의에 분노하는 국민으로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변호사로서, 우리는 요구한다.

하나, 대통령은 퇴진하라.

하나, 최순실로 표상되는 헌정파괴행위에 가담했거나,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거나 또는 인지하고 방치했거나, 이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던 모든 기득권 세력들은 모두 국민 앞에 고해성사하고 자신이 부당하게 취득한 모든 것을 되돌려라.

하나, 국회와 제 정당은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이번 사태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고 범법행위자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여 헌정질서를 수호하라.

이것만이 전대미문의 이번 사태로 한없이 끓어오르고 있는 국민적 분노와 허탈감과 모욕감으로 갈기갈기 찢긴 국민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길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16. 11. 11.
전국 변호사 비상시국모임
공동의장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김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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