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믐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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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모두 잠자는 밤중이었습니다. 절간에서 밤에 치는 종 소리도 그친 지 오래 된 깊은 밤이었습니다. 높은 하늘에는 별만이 반짝반짝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한 밤중이었습니다.
 이렇게 밤이 깊은 때 잠자지 않고 마당에 나와 있기는 나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참말 내가 알기에는 나 하나밖에 자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계도 안 보았어요. 아마 자정 때는 되었을 것입니다. 어두운 마당에 가만히 앉아 별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니까 별을 볼수록 세상은 더욱 고요하였습니다.
 어디서인지 어린 아기의 숨소리보다도 가늘게 속살속살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들어서는 큰일 날 듯한 가늘디 가는 소리였습니다. 어디서 나는가 하고 나는 귀를 기울이고 찾다가 내가 공연히 그랬는가보다고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살거리는 작은 소리는 또 들렸습니다. 가만히 듣노라니까 그것은 담 밑 풀밭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아이구! 이제 곧 새벽이 될 터인데 꿀떡을 여태까지 못 만들었으니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것은 곱디고운 보랏빛 치마를 입은 조그만 앉은뱅이꽃의 혼이었습니다.
 “에그, 꿀떡은 우리가 모두 만들어 놓았으니 염려 말아요. 그런데 내일 새들이 오면 음악할 자리를 어디다 정하우.” 하는 것은 분홍 옷을 입은 진달래꽃이었습니다.
 “음악할 자리는 저 집 이층 위로 정하지 않았나 봐! 잊어버렸나?”
하고 노란 젖나무꽃이 말을 하고는 복사나무 가지를 쳐다보고,
 “에그, 여보! 왜 여태껏 새 옷도 안 입고 있소? 그 분홍 치마를 얼른 입어요. 그리고 내일 거기서 새들이 음악할 자리를 치워 놓았소?”
하고 물었습니다.
 “치워 놓았어요. 이제 우리는 새 옷만 입으면 그만이라오. 지금 분홍 치마를 다리는 중이어요. 그 아래에서는 모두 차려 놓았소?”
하고 혼은 몹시 기뻐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보니까 거기는 진달래꽃이랑 개나리꽃이랑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날만 밝으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그들은 모두 새 옷을 입고 큰 잔치의 준비를 바쁘게 하는 중이었습니다. 할미꽃은 이슬로 술을 담그느라고 바쁜 모양이고, 개나리는 무도장 둘레에 황금색 휘장을 둘러치느라고 바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벌써 심부름을 다 하고 앉아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아기꽃들도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 ‘따르릉 따르릉’ 하고 조그만 인력거 한 채가 등불을 켜달고 손님을 태워 가지고 왔습니다. 인력거꾼은 개구리였습니다. 인력거를 타고 온 손님은 참새 색시였습니다. 왜 이렇게 별안간에 왔느냐고 꽃들이 놀래서 하던 일을 놓고 우루루 몰려왔습니다. 참새의 말을 들으면 제비와 종달새 들은 모두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꾀꼬리가 목병이 나서 내일 독창을 못하게 되기 쉽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에그, 그래 내일 꾀꼬리가 못 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들을 하다가 좋은 꿀을 한 그릇 담아서,
 ‘약으로 잡수어 보라’고 주어 보냈습니다.
 참새 색시는 꿀을 받아가지고 다시 인력거를 타고 급히 돌아갔습니다. 참새가 돌아간 후 얼마 안 있어서, 이번엔 ‘따르릉 따르릉’ 하고 불 켠 자전거가 휘몰아 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은 다리 긴 제비였습니다.
 “어이구, 수고 많이 하였소.”
 “얼마나 애를 썼소.”
하고 꽃들은 일을 하는 채로 내다보면서 치사를 하였습니다.
 제비는 5월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는 꽃과 벌레 들을 돌아다니면서 깨어 놓고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래 우선 애썼다고 이슬술을 한 잔 얻어먹고 좋아하였습니다. 동네 어느 집에선가 새로 두 점을 치는 시계 소리가 들려올 때에, 나비 한 마리가,
 “나비들은 모두 무도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준비가 어떻게 되었느냐?”
고 그것을 알러 왔다가 갔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날이 밝기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하늘의 별들은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일러 주는 것처럼 반짝반짝하고 있었습니다. 고요하게 평화롭게, 5월 초하루의 새 세상이 열리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네 시쯤 되었습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벌써 종달새가 하늘에 높이 떠서 은방울을 흔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꽃들이 그 소리를 듣고 문을 달각 열고 빵끗 웃었습니다. 참새가 벌써 큰 북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제비들이 길다란 피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주섬주섬 모두 모여들어서 각각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층 아래층에서 꽃들이 손님을 맞아들이기에 바빴습니다. 아침 해 돋을 때가 되어 무도복을 가뜬히 입은 나비들이 떼를 지어 왔습니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더 판이 울려졌습니다. 목을 앓는다던 꾀꼬리도 노란 새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인력거에 실려 당도하였습니다. 꾀꼬리가 온 것을 보고 모두들 어떻게 기뻐하는지 몰랐습니다.
 일 년 중에도 제일 선명한 햇빛이 이 즐거운 잔치터를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버들잎, 잔디풀은 물에 갓 씻어낸 것처럼 새파랬습니다.
 5월 초하루! 거룩한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복사나무 가지 위 꽃 그늘에서 온갖 새들이 일제히 5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맞춰서 나비들이 춤을 너울너울 추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잔디풀, 버들잎까지 우쭐우쭐 하였습니다.
 즐거운 봄이었습니다. 유별나게 햇빛 좋은 아침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아이구, 복사꽃이 어느 틈에 저렇게 활짝 피었나!”
 “아이구, 이게 웬 나비들이야!”
 “이제 아주 봄이 익었는걸!”
하고 기쁜 낯으로 이야기하면서 보고 들었습니다. 5월 초하루는 참말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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