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도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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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실화 [대법원 1989. 1. 17., 선고, 88도643, 판결] 【판시사항】 중실화죄에 있어서의 "중대한 과실"의 판단기준

【판결요지】 연탄아궁이로부터 8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쌓아둔 스폰지요, 솜 등이 연탄아궁이 쪽으로 넘어지면서 화재현장에 의한 화재가 발생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스폰지요, 솜 등을 쌓아두는 방법이나 상태 등에 관하여 아주 작은 주의만 기울였더라면 스폰지요나 솜 등이 넘어지고 또 그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할 것을 예견하여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주의로 이를 예견하지 못하고 스폰지와 솜 등을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상태로 쌓아둔 채 방치하였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어야만,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조조문】 형법 제171조


【전문】 【피 고 인】 【상 고 인】 피고인

【원심판결】 춘천지방법원 1988.3.17. 선고 86노778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사건을 춘천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한다. 1. 원심은 피고인이 1986.1.3. 19:20경 자신이 경영하는 수예점의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약6평 넓이의 점포안 구석에 있는 연탄아궁이에 연탄불을 피워놓았고, 또 그 연탄아궁이로부터 8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에 스폰지요 20여개, 이불솜 30여개, 베개싸기, 베개등 가연성물질을 비닐로 포장하여 쌓아 두었는데, 1.4. 00:30경 위 스폰지요, 솜 등이 연탄아궁이 쪽으로 넘어져 연탄아궁이로부터 장시간 전도된 열에 의하여 밀폐된 점포안에서 연기만 내면서 불꽃없이 타고 있다가 그 연기를 발견한 공소외 신철승 등 몇 사람이 점포문을 부수고 들어갈 때 외부의 공기가 일시에 유입되면서 불꽃이 일어 이 사건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이 위와 같은 가연성물질을 쌓아둠에 있어서 연탄아궁이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떼어놓고 끈으로 묶어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화재가 수예점 점포안에 있는 연탄아궁이 부근에서 발생하였고 사람들이 화재현장을 처음 보았을 때 이불솜 등에 불이 붙어 있었던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피고인이 쌓아둔 스폰지요, 솜 등이 연탄아궁이 쪽으로 넘어진 것이 화재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이 채택한 증거들 중의 하나인 화재현장조사결과보고서(치안본부 형사과 수사지도관실 경감 송재철과 경위 김영철이 작성한 것)는 이 사건 화재의 발화부위가 연탄아궁이 부근인 점, 연탄아궁이로부터 8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에 체적가변성을 지닌 축열성, 훈소성가연재인 스폰지, 솜 등이 쌓여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쌓여 있던 훈소가연물이 전도되어 발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 보고서의 기재만으로는 피고인이 쌓아둔 스폰지요, 솜 등이 연탄아궁이 쪽으로 넘어진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나. 뿐만 아니라 설사 피고인이 쌓아둔 스폰지요, 솜 등이 연탄아궁이 쪽으로 넘어졌기 때문에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피고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피고인이 스폰지요, 솜 등을 쌓아두는 방법이나 상태 등에 관하여 아주 작은 주의만 기울였더라면, 스폰지요나 솜 등이 넘어지고 또 그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할 것을 예견하여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주의로 이를 예견하지 못하고 스폰지와 솜 등 을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상태로 쌓아둔 채 방치하였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이 되어야만, 피고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이 연탄아궁이로부터 8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에 비닐로 포장한 스폰지요, 솜 등을 끈으로 묶지 않은 채 쌓아두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아주 작은 주의만 기울였더라면 그것들이 연탄아궁이 쪽으로 쉽게 넘어지고 또 그로 인하여 훈소현상(불꽃없이 연기만 내면서 타는 현상)에 의한 화재가 발생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평상시에도 화재가 발생한 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연탄아궁이에 불을 피워놓은채 스폰지요, 솜들을 쌓아두고 귀가한 것으로 보이는 바, 이와 같은 점포의 관리상황과 피고인이 점포를 떠난지 4시간 이상이 지난뒤에 화재가 발생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화재의 발생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중대한 과실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3. 그렇다면 원심판결에는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한 채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하였거나, 중실화죄에 있어서의 중대한 과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고 이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임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고 원심판결은 파기를 면할 수 없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한 것인지의 여부를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윤관(재판장) 김상원 김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