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94다22927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손해배상(기) [대법원 1996. 12. 19., 선고, 94다22927, 전원합의체 판결] 【판시사항】 [1] 민법 제766조 제2항, 예산회계법 제96조가 정하는 기간이 소멸시효기간인지 여부(적극) [2] 서증제출에 의한 간접적 주장이 있는 것으로 본 사례 [3] 삼청교육과 관련한 대통령의 1988. 11. 26.자 및 국방부장관의 1988. 12. 3.자 담화 발표를 국가배상채무의 승인 또는 소멸시효이익의 포기로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1] 민법 제766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기간이나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5년'의 기간은 모두 소멸시효기간에 해당한다. [2] 삼청교육과 관련하여 제기된 국가배상청구에 있어서 국가측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하여 제소자가 국방부장관의 1988. 12. 3.자 담화 발표를 들어 국가가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을 뿐 대통령의 1988. 11. 26.자 담화 발표에 기한 소멸시효이익 포기의 주장을 한 바는 없으나, 제소자가 대통령의 담화문을 서증으로 제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담화를 기초로 하여 국방부장관의 담화가 발표되었다는 내용의 진술이 기재된 국방부장관에 대한 증인신문조서등본을 서증으로 제출하고 있음에 비추어 제소자는 그와 같은 서증들을 제출함으로써 국가가 대통령의 담화 발표로써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대통령의 담화로써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는 제소자의 주장이 있는 것으로 보고 그에 대하여 판단한 원심판결을 수긍한 사례. [3] [다수의견] 헌법상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가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피해자들에 대한 사법상의 법률효과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와 같은 행위로써 사법상으로 그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채무를 승인하거나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는바, 삼청교육으로 인한 피해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1988. 11. 26. 발표한 담화는 그 발표 경위와 취지 및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사법상의 법률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로써 사법상으로 삼청교육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채무를 승인하였다거나 또는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대통령에 이어 국방부장관이 1988. 12. 3. 대통령의 그와 같은 시정방침을 알리는 한편 그에 따른 보상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일정 기간 내에 신고할 것을 공고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실제 신고를 받기까지 하였다고 해서 그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충의견] 국가의 채무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그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행위는 이미 소멸한 채무를 소급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하는 행위로서 실질적으로 새로운 채무를 부담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므로 국가의 채무부담행위를 할 권한이 있는 자가 채무부담의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하여야 할 것인바, 관계 법령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국가의 삼청교육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의 시효이익을 포기할 권한은 있다 할 것이나, 그와 같이 소멸시효의 이익을 포기하여 국가의 채무부담행위를 하려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가예산에 편성한 후 국회가 이를 심의·확정하거나 예산 외에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에 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하고 특히 대통령이 이를 행하려면 헌법 제82조에 의하여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를 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이 법이 정한 국가 채무부담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단순한 담화 발표는 국가의 손해배상채무에 대한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고 그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하려는 의사표시로는 볼 수 없고, 삼청교육과 관련한 피해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의 시효소멸 여부가 문제되는 배상이 아닌 보상차원에서 새로운 입법조치 추진의사를 밝힌 정치적 시정방침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반대의견] 채무자의 소멸시효항변권의 행사는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 따라야 할 것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한 경우에는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인바, 삼청교육과 관련한 대통령의 1988. 11. 26.자 및 국방부장관의 1988. 12. 3.자 담화에 따라 피해신고를 한 삼청교육 관련 피해자로서는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담화와 그에 따른 신고의 접수로써 국가가 시효이익을 주장하지 않고 손해배상을 할 것으로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설사 대통령의 담화와 그에 따른 일련의 행위가 다수의견이 보는 바와 같이 단순히 정치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으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인 국가의 소멸시효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삼청교육 관련 피해는 국가 소속의 공무원이 통상적인 공무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저지르게 된 일반적인 불법행위가 아니고, 그 당시의 비상한 시기에 국가에 의하여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실시된 삼청교육 과정에서 국가 소속 공무원들이 대량으로 저지르게 된 특수한 불법행위의 경우이므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여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며 국민으로 하여금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향유하도록 하여야 할 임무가 있는 국가로서는, 삼청교육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국민들에 대하여 정정당당하게 그러한 불법행위 자체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다투는 것은 몰라도, 구차하게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워 그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어방식이라는 점에서도 국가의 소멸시효항변은 허용될 수 없다.

【참조조문】 [1] 민법 제766조 제2항, 예산회계법 제96조 [2] 민사소송법 제188조 [3] 민법 제2조, 민사소송법 제188조

【참조판례】 [1] 대법원 1979. 12. 26. 선고 77다1894, 1895 판결(공1980, 12526), 대법원 1993. 7. 27. 선고 93다357 판결(공1993하, 2399) /[2] 대법원 1993. 2. 12. 선고 91다33384, 33391 판결(공1993상, 956) /[3] 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공1995상, 434)


【전문】 【원고,피상고인】 【피고,상고인】 대한민국

【원심판결】 서울고법 1994. 4. 6. 선고 93나6722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피고 소송수행자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민법 제766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기간이나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5년'의 기간은 모두 소멸시효기간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대법원 1979. 12. 26. 선고 77다1894, 1895 판결, 1993. 7. 27. 선고 93다357 판결 참조), 위 각 기간이 제척기간으로서 시효이익의 포기 등에 관한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지는 독자적 견해에 불과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

2. 상고이유 제3점에 대하여 원고가 소위 삼청교육 관련 사상자에 대한 피해보상을 약속한 국방부장관의 1988. 12. 3.자 담화 발표로써 이 사건 손해배상채무에 대한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을 뿐 대통령의 1988. 11. 26.자 담화 발표를 들어 그와 같이 주장한 바가 없음은 상고이유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원고는 원심에서 위 대통령의 담화문을 갑 제5호증으로 제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갑 제6호증으로 제출한 전 국방부장관 오자복에 대한 증인신문조서등본에도 대통령이 발표한 위 담화를 기초로 하여 위 국방부장관의 담화가 발표되었다는 내용의 진술이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바, 사실관계가 위와 같다면 원고는 위와 같은 서증들을 제출함으로써 대통령의 담화 발표로써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법원 1993. 2. 12. 선고 91다33384, 33391 판결 참조). 그러므로 원심이 위 대통령의 담화로써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하여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변론주의를 위배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논지도 이유가 없다.

3.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헌법상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가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위 피해자들에 대한 사법상의 법률효과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와 같은 행위로써 사법상으로 위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채무를 승인하거나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가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그 채택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대통령이 1988. 11. 26. 소위 삼청교육과 관련한 사상자에 대하여 신고를 받아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의사를 국민에 대한 시국관련특별담화의 형식으로 표시하였고, 위 특별담화의 구체화 작업으로 정부 내의 주무부서인 국방부장관이 같은 해 12. 3. 담화문의 형식으로 정부가 삼청교육 관련 피해자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하기로 결정하였음과 삼청교육 관련 사상자를 대상으로 하여 신고기간을 같은 해 12. 12.부터 1989. 1. 20.까지로 하여 신고하여 줄 것을 밝힌 사실, 원고도 위 기간 내인 1989. 1. 5.에 소정의 서류를 갖추어 해당 관서인 서울 서초구청에 피해신고를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헌법 제66조 제4항) 재정 및 경제에 관한 긴급처분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점( 헌법 제76조 제1항), 예산상 예비비제도가 있는 점( 헌법 제55조), 더 나아가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국가의 채무를 승인할 정당한 권한을 갖춘 자라고 할 것이고, 한편 위와 같은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담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의 성질을 가진다고 보여지므로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의 요건에 관한 헌법상의 규정( 헌법 제82조)에 의한 형식을 갖추었는지 여부나 국가의 채무부담행위에 관한 예산회계법령에 정한 구체적인 절차를 거친 여부에 관계없이 절차상 적법한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로 인정되며, 나아가 그 특별담화의 내용이 신고를 받아 피해보상을 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후속조치로서 주무부서인 국방부장관이 별도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그 발표내용에 따른 신고까지 받았다면 피고측의 위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적어도 위 신고기간 내에 신고한 피해자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사법상으로 적법한 손해배상채무의 승인이나 시효이익의 포기라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원고의 재항변을 받아들여 피고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1988. 11. 26. 당시의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전임 대통령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는 일방 전임 대통령의 과오를 청산함과 동시에 민주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시정방침의 하나로서 이른바 삼청교육과 관련한 사상자에 대하여는 명예회복조치와 함께 신고를 받아 피해보상을 할 것임을 밝히고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의 시국관련특별담화를 발표하였고, 이어서 당시 국방부장관 소외인은 같은 해 12. 3. 대통령의 위와 같은 시정방침을 알리는 한편 그에 따른 보상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위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일정한 기간 내에 신고할 것을 공고하고 나아가 실제로 신고를 받은 사실을 알 수 있는바, 위와 같이 그 경위야 어떠하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삼청교육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의 방침을 밝힌 이상 정부로서는 마땅히 위 피해자들에게 위 담화에서 밝힌 대로 입법조치 등을 통하여 적절한 피해보상을 하여 줄 정치·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지만, 대통령이 위와 같이 담화를 발표한 경위와 취지 및 그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사법상의 법률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로써 사법상으로 위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채무를 승인하였다거나 또는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고, 대통령에 이어 국방부장관이 위와 같은 담화를 발표하여 신고를 받기까지 하였다고 하여 그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위와 같이 대통령에 이어 국방부장관이 차례로 담화를 발표하고 신고를 받은 일련의 행위가 사법상으로 손해배상채무의 승인이나 시효이익 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무의 승인이나 시효이익의 포기의 점에 관하여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것이고, 이와 같은 위법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다.

4. 그러므로 피고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는바,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한 판단에 대하여 대법관 박준서의 보충의견이 있는 것과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정귀호,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5. 대법관 박준서는 이른바 삼청교육과 관련한 대통령의 1988. 11. 26.자 및 국방부장관의 같은 해 12. 3.자 피해보상담화 발표를 정치적 시정방침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보충의견을 덧붙인다. 국가의 채무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그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행위는 이미 소멸한 채무를 소급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하는 행위로서 실질적으로 새로운 채무를 부담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므로 국가의 채무부담행위를 할 권한이 있는 자가 채무부담의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하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임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66조 제4항, 행정 각부의 직무범위를 규정한 헌법 제96조 및 정부조직법 제29조, 예산회계법 제56조와 국방부장관의 직무범위를 정한 정부조직법 제34조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국가의 삼청교육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의 시효이익을 포기할 권한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위 삼청교육과 관련된 피해액은 그 성질 및 규모로 보아 이미 편성된 예비비로 배상할 대상이 되지 못하므로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이 국가채무인 그 손해배상채무의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여 국가의 채무부담행위를 하려면 헌법 제54조 내지 제58조, 제89조 제4호, 예산회계법 제18조, 제24조, 제28조, 제35조, 제58조에 의하여 그로 인하여 부담할 채무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가예산에 편성한 후 국회가 이를 심의·확정하거나 예산 외에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에 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하고, 특히 대통령이 이를 행하려면 헌법 제82조에 의하여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를 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치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이와 같이 법이 정한 국가 채무부담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단순한 담화 발표를 국가의 손해배상채무에 대한 소멸시효이익을 포기하고 그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하려는 의사표시로 볼 수는 없고 삼청교육과 관련한 피해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의 시효소멸 여부가 문제되는 배상이 아닌 보상차원에서 새로운 입법조치 추진의사를 밝힌 정치적 시정방침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6.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정귀호,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는 다수의견의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한 견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찬성하지 아니한다. 다수의견은 대통령의 1988. 11. 26.자 시국관련특별담화는 사법상으로 삼청교육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채무를 승인하였다거나 또는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피고가 이 사건 소멸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는 원고의 재항변을 받아들여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다수의견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채무자의 소멸시효항변권의 행사는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 따라야 할 것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한 경우에는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참조). 그런데 원심이 적법히 확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는 이렇다 할 명백한 법적 근거도 없이 실시된 이른바 삼청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피고 소속 성명불상의 일부 공무원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이로 인하여 이 사건 후유장애가 남을 정도로 상해를 입었으며, 그 동안 이러한 국가의 불법행위를 거론조차 못하다가 대통령의 위와 같은 담화 발표와 그 후속조치인 국방부장관의 담화와 신고요청에 따라 피해신고를 하였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피고가 삼청교육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유린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그 후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그 위법성의 정도와 결과의 중대성을 인식하여 국가측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신고를 받아 그 피해를 보상하기로 하는 담화를 발표하였고, 나아가 그 후속조치로서 주무부서의 장인 국방부장관이 같은 취지의 담화를 발표하고 피해신고기간을 정하여 피해자들로부터 구체적으로 피해신고까지 받았던 것이라면, 국방부장관의 담화내용에 따라 피해신고를 한 원고로서는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담화와 이에 따른 신고의 접수로써 피고 국가가 시효이익을 주장하지 아니하고 손해배상을 할 것으로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설사 대통령의 담화와 그에 따른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다수의견이 보는 바와 같이 단순히 정치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으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피고 국가의 소멸시효항변은, 결국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이 사건의 경우는, 국가 소속의 공무원이 통상적인 공무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저지르게 된 일반적인 불법행위가 아니고, 그 당시의 비상한 시기에 국가에 의하여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실시된 삼청교육 과정에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대량으로 저지르게 된 특수한 불법행위의 경우이므로,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여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며 국민으로 하여금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항유하도록 하여야 할 임무가 있는 피고 국가로서는, 위 삼청교육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국민들에 대하여 정정당당하게 그러한 불법행위 자체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다투는 것은 몰라도, 구차하게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워 그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어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은 허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록에 의하면, 원고는 이 사건 제1심에서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이 위와 같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나(기록 제125면), 원심은 피고가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이 주장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므로, 다수의견이 원심과는 달리 소멸시효의 항변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이 점에 관하여도 또한 당연히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피고의 소멸시효의 항변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배척되어야 할 것이므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원심판결은 결국 정당하고, 설사 다수의견이 보는 바와 같이 원심판결에 시효이익의 포기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것이고, 원심판결의 결론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장 윤관(재판장) 김석수 박만호 천경송 정귀호(주심) 안용득 박준서 이돈희 김형선 지창권 신성택 이용훈 이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