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다36466
약속어음금 [대법원 1998. 4. 23., 선고, 95다36466, 전원합의체 판결] 【판시사항】 [1]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으나 기타 어음면의 기재로 보아 그 어음이 국내에서 어음상 효과를 발행시키기 위해 발행된 것임이 인정되는 경우, 국내어음으로 추단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으나 어음면의 기재 자체로 보아 국내어음으로 인정되는 경우, 그 어음의 효력(유효)
【판결요지】 [1] 국내어음이란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어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국내어음인지 여부는 어음면상의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내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어음면상에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어음면에 기재된 지급지와 지급장소, 발행인과 수취인, 지급할 어음금액을 표시하는 화폐, 어음문구를 표기한 문자, 어음교환소의 명칭 등에 의하여 그 어음이 국내에서 어음상의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발행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발행지를 백지로 발행한 것인지 여부에 불구하고 국내어음으로 추단할 수 있다. [2] [다수의견] 어음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는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토를 달리하거나 세력(歲曆)을 달리하는 어음 기타 국제어음에 있어서는 어음행위의 중요한 해석 기준이 되는 것이지만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이른바 국내어음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또한 일반의 어음거래에 있어서 발행지가 기재되지 아니한 국내어음도 어음요건을 갖춘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간에 발행·양도 등의 유통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음교환소와 은행 등을 통한 결제 과정에서도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거절됨이 없이 발행지가 기재된 어음과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음은 관행에 이른 정도인 점에 비추어 볼 때,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의 유통에 관여한 당사자들은 완전한 어음에 의한 것과 같은 유효한 어음행위를 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어음면의 기재 자체로 보아 국내어음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이를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는 없다. [보충의견] 일반적으로 모든 법은 법규정의 본질을 바꾸는 정도의 것이 아닌 한도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뒤쳐진 법률을 앞서가는 사회현상에 적응시키는 일방 입법기관에 대하여 법률의 개정 등을 촉구하는 것은 법원의 임무에 속하는 일이라 할 것이고, 그 뒤쳐진 법규정의 재래적 해석·적용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률 개정이라는 입법기관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는 이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체념해 버리는 것은 온당치 않은 태도이다. 어음법이 강행법·기술법적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어음법에서 정한 어음요건은 이를 엄격하게 해석함이 원칙일 것이나, 이러한 엄격해석의 요청은 이를 자의로 해석함으로써 어음거래 당사자에게 불이익하게 법률을 적용하는 것을 막자는 데에 있는 것이지 입법취지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까지도 절대적으로 금지하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음면의 기재 자체에 의하여 국내어음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단지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효의 어음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치우친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음 유효해석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타당한 해석이 아니므로, 국내어음에 한하여는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며, 이러한 해석은 국내어음에 한하는 것으로서 국제어음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가 없으면 그 어음은 무효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므로 위 해석에 의하더라도 발행지를 어음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어음법의 조항을 완전히 사문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법원의 법률해석권의 범위를 일탈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의견] 재판할 사항에 대하여 적용할 법규가 있고 그 의미 내용 역시 명확하여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정의의 요청(이른바 목적론적 축소해석의 경우)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이른바 헌법합치적 해석의 경우)에 의하여, 그 법규의 적용 범위를 예외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설사 명문의 규정이 거래의 관행과 조화되지 아니하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서는 모름지기 국회의 입법 작용에 의한 개정을 기다려야 할 것이지 명문의 효력규정의 적용 범위를 무리하게 벗어나거나 제한하는 해석을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인바, 어음법은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에 관하여 그 효력이 없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편, 이 명문의 규정에 관하여는 정의의 요청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에 의하여 그 적용 범위를 예외적으로나마 제한하여 해석할 만한 아무런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다수의견과 같이 위 어음법의 명문규정이 이른바 '국내어음'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법원이 어음법에도 없는 단서 조항 즉 '발행지에 관하여 국내어음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셈이고, 이는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법형성 내지 법률수정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법원의 법률해석권의 범위를 명백하게 일탈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참조조문】 [1] 어음법 제1조, 제75조 [2] 어음법 제1조 제7호, 제2조 제1항, 제75조 제6호, 제76조 제1항
【참조판례】 [2] 대법원 1967. 9. 5. 선고 67다1471 판결(집15-3, 민69)(변경), 대법원 1976. 11. 23. 선고 76다214 판결(공1977, 9626)(변경), 대법원 1979. 8. 14. 선고 79다1189 판결(공1979, 12159)(변경), 대법원 1985. 8. 13. 선고 85다카123 판결(공1985, 1237)(변경), 대법원 1988. 8. 9. 선고 86다카1858 판결(공1988, 1207)(변경), 대법원 1991. 4. 23. 선고 90다카7958 판결(공1991, 1453)(변경),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1다24724 판결(공1992, 3237)(변경), 대법원 1995. 9. 15. 선고 95다23071 판결(공1995하, 3398)(변경)
【전문】
【원고,피상고인】
【피고,상고인】
【원심판결】
부산지법 1995. 7. 7. 선고 94나15797 판결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발행지 미기재의 점에 대하여
가. 원심 판단의 요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소외 주식회사 유성경금속이 1993. 7. 15. 이 사건 약속어음 5매 액면 합계 금 220,000,000원을 소외 1에게 발행하고, 위 소외 1은 이를 피고에게 배서·양도하였는데, 피고는 그 중 4매를 원심 공동피고 2에게, 나머지 1매를 원고에게 각 배서·양도하였고, 위 원심 공동피고 2는 다시 위 4매를 원고에게 배서·양도하여 원고가 위 각 어음의 최후소지인으로 발행지 기재를 보충하지 아니한 채 1993. 10. 30. 지급장소에 지급제시하였으나 무거래를 이유로 지급거절이 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원고가 위 각 어음의 발행지를 보충하지 아니한 채 지급제시하였으므로 그 지급제시는 부적법하여 배서인인 피고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하였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약속어음의 발행지 기재가 없더라도 어음면의 기재에 의하여 국내에서 발행, 유통되는 어음임이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에는 어음면의 기재에 의하여 발행지를 추단할 수 있는 사정이 엿보이는 한 발행지의 기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전제한 후, 이 사건 각 어음의 표면 우측 상단에 '부산'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또한 위 각 어음의 지급지가 양산군이고 그 지급장소도 주식회사 부산은행 양산지점인 점, 위 각 어음의 발행인이 국내회사인 주식회사 유성경금속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각 어음은 발행지의 기재가 있는 것으로 못 볼 바 없다고 할 것이므로, 비록 위 각 어음의 발행지란이 백지인 채로 지급제시되었다 하더라도 그 지급제시는 적법하고, 따라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이 사건 소구권 행사 역시 적법한 지급제시에 의한 것으로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나. 이 법원의 판단 어음법은 발행지를 어음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제1조 제7호, 제75조 제6호), 발행지를 기재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어음은 효력이 없으나, 다만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가 있는 때에는 그 곳을 발행지로 보며(제2조 제1항, 제4항, 제76조 제1항, 제4항), 지급지의 기재가 없는 때에는 발행지를 지급지로 본다(제2조 제3항, 제76조 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어음의 발행지란 실제로 발행행위를 한 장소가 아니라 어음상의 효과를 발생시킬 것을 의욕하는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서, 어음의 발행지에 관련된 어음법 제37조, 제77조 제1항 제2호, 제41조 제4항, 제77조 제1항 제3호, 제76조 제3항 등과 섭외사법의 관련 규정들을 살펴보면, 어음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는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토를 달리하거나 세력(歲曆)을 달리하는 어음 기타 국제어음에 있어서는 어음행위의 중요한 해석 기준이 되는 것이지만,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이른바 국내어음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어음이란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어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국내어음인지 여부는 어음면상의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내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어음면상에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어음면에 기재된 지급지와 지급장소, 발행인과 수취인, 지급할 어음금액을 표시하는 화폐, 어음문구를 표기한 문자, 어음교환소의 명칭 등에 의하여 그 어음이 국내에서 어음상의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발행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발행지를 백지로 발행한 것인지 여부에 불구하고 국내어음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일반의 어음거래에 있어서 발행지가 기재되지 아니한 국내어음도 어음요건을 갖춘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간에 발행·양도 등의 유통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음교환소와 은행 등을 통한 결제 과정에서도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거절됨이 없이 발행지가 기재된 어음과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음은 관행에 이른 정도이고, 나아가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아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의 유통에 관여한 당사자들은 완전한 어음에 의한 것과 같은 유효한 어음행위를 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음면의 기재 자체로 보아 국내어음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도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유통·결제되고 있는 거래의 실정 등에 비추어, 그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이를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일부 다른 견해를 취한 대법원 1967. 9. 5. 선고 67다1471 판결, 1976. 11. 23. 선고 76다214 판결, 1979. 8. 14. 선고 79다1189 판결, 1985. 8. 13. 선고 85다카123 판결, 1988. 8. 9. 선고 86다카1858 판결, 1991. 4. 23. 선고 90다카7958 판결, 1992. 10. 27. 선고 91다24724 판결, 1995. 9. 15. 선고 95다23071 판결 및 이와 같은 취지의 판결들은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이 사건의 경우를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이 사건 각 약속어음은 국내 금융기관인 부산은행이 교부한 용지에 의하여 작성된 것으로, 지급지는 양산군, 지급장소는 부산은행 양산지점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발행인과 수취인은 국내의 법인과 자연인이고, 어음금액은 원화로 표시되어 있으며, 어음문구 등 어음면상의 문자가 국한문 혼용으로 표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어음 표면 우측 상단에 어음용지를 교부한 은행 점포를 관할하는 어음교환소명으로 '부산'이라 기재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각 약속어음은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국내어음임이 명백하고, 따라서 그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여 이를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위 각 어음에 대한 지급제시가 비록 발행지의 기재 없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법하게 지급제시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원심의 판단은 위에서 설시한 법리와는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 각 약속어음의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상태로 한 지급제시가 적법하다고 본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2. 변제항변의 점에 대하여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가 원고에게 변제조로 교부한 약속어음 2장(원심은 3장으로 인정하였으나 이는 오기로 보인다) 액면 합계 금 32,570,000원이 그 지급기일에 결제되었다는 증거가 없고, 오히려 위 각 어음이 1995. 4. 21. 부도처리된 것으로 인정된다고 하여 피고의 변제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조치는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도 받아들일 수 없다.
3. 동시이행항변 내지 상계항변의 점에 관하여 기록에 의하면, 피고는 이 사건 (주소 1 생략)에 관하여 원고가 피고에게 하자를 보수하여 주기로 약정하고도 이를 불이행하였으니 그 채무를 이행할 때까지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고, 또 그 하자보수채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이 사건 채권과 그 대등액에서 상계한다는 주장을 제출하였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아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록과 관계 증거를 살펴보면, 원고가 피고의 주장과 같은 하자보수의 약정을 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오히려 위 하자보수비는 이미 서로간에 정산되어 위 빌라의 매매대금에서 감액된 사실이 인정될 뿐이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 것이어서, 원심이 위 주장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4.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하는바, 이 판결에는 제1항 부분 판단에 관하여 대법관 이돈희, 대법관 신성택, 대법관 이용훈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과 대법원장 윤관, 대법관 최종영,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정귀호, 대법관 김형선, 대법관 이임수의 반대의견이 있는 이외에는 관여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5. 대법관 이돈희, 대법관 신성택, 대법관 이용훈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법률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법률규정의 문언의 어의(語義)에 충실하게 해석하여야 함이 원칙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법률 제정 당시에 입법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법률로 규정되지 않았거나 불충분하게 규정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이 경우에도 법원은 재판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므로 법원의 법형성적 활동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있는 경우에도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달라짐에 따라 법과 실제 생활과의 사이에 불가피하게 간격이 생길 수 있으며, 이 때에 만일 명문규정의 엄격한 적용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법적 안정성이 유지될지는 모르나 사회생활의 유동·발전에 대한 적응성을 결여하는 중대한 결함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를 실제 생활에 부합하게 해석할 사회적 필요가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 법원은 형식적인 자구 해석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그 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입법정신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그 입법정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법의 의미를 부여하여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명문규정의 의미를 확대해석하거나 또는 축소·제한해석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법형성적 기능을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법은 법규정의 본질을 바꾸는 정도의 것이 아닌 한도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뒤쳐진 법률을 앞서가는 사회현상에 적응시키는 일방 입법기관에 대하여 법률의 개정 등을 촉구하는 것은 법원의 임무에 속하는 일이라 할 것이고, 그 뒤쳐진 법규정의 재래적 해석·적용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률 개정이라는 입법기관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는 이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체념해 버리는 것은 온당치 않은 태도라고 할 것이다(대법원 1978. 4. 25. 선고 78도24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특히 사법(私法)은 국민의 사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률이므로, 국민의 사법적 거래의 관행을 뒷받침하여 그 거래를 원활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사법의 본래의 영역이며 사명에 속하는 것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명문규정에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규정에 맞지 아니한 행위도 유효한 것으로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에, 그것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어 무효로 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법원만이 그 행위를 무효로 보아 국민의 거래행위를 제약할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금전 지급수단인 어음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어음법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어음법이 강행법·기술법적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어음법에서 정한 어음요건은 이를 엄격하게 해석함이 원칙일 것이나, 이러한 엄격해석의 요청은 이를 자의로 해석함으로써 어음거래 당사자에게 불이익하게 법률을 적용하는 것을 막자는 데에 있는 것이지 입법취지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까지도 절대적으로 금지하려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음법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를 어음의 필요적 기재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발행지와 세력(歲曆)을 달리하는 지(地)에서 지급할 환어음·약속어음의 경우에 어음의 만기의 날은 지급지의 세력에 의하여 정한 것으로 보고(어음법 제37조, 제77조 제1항 제2호), 어음의 발행국과 지급국이 동명이가(同名異價)를 가진 통화에 의하여 환어음·약속어음의 금액을 정한 때에는 지급지의 통화에 의하여 정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어음법 제41조 제4항, 제77조 제1항 제3호), 발행지의 기재는 만기 결정의 세력과 지급통화를 결정하는 표준이 되고, 약속어음에서의 발행지의 기재는 약속어음상에 다른 표시가 없는 때에 지급지와 발행인의 주소지로 의제되는 기능이 있으며(어음법 제76조 제3항), 발행지의 기재는 국제어음법에 있어서 어음행위의 능력·방식·효력 및 환어음의 소지인의 원인채권의 취득 여부 등을 결정함에 있어서 준거법을 결정하는 표준이 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섭외사법 제34조 제2항, 제36조 제2항, 제37조 제2항, 제38조). 따라서 위와 같은 발행지의 기재는 보통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토를 달리하거나 세력을 달리하는 어음 기타 국제어음에 있어서는 유용한 기능을 하지만,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이른바 국내어음에 있어서는 세력과 지급통화가 단일하게 통일되어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발행지는 특정한 행정구역으로 제한하여 기재할 필요가 없으며 널리 '한국'이라는 기재로도 족하고, 나아가 어음면의 기재 자체에서 국내어음임이 분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가 없더라도 발행지가 '한국'으로 기재된 어음과 구별할 필요가 없다 할 것이다. 또한 섭외사법상 준거법을 정하는 표준이 되는 발행지는 어음면상에 기재된 발행지가 아니라 실제로 발행행위를 한 지(地)라고 해석되므로 어음면상의 발행지는 섭외사법상 준거법을 정함에 있어서는 추정력을 가지는 데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어음거래의 관행을 살펴보면, 다수의견에서 본 바와 같이 일반의 어음거래에 있어 발행지가 기재되지 아니한 국내어음도 어음요건을 갖춘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간에 발행·양도 등의 유통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고, 어음교환소와 은행 등을 통한 결제 과정에서도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거절됨이 없이 발행지가 기재된 어음과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으므로, 국내어음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여도 어음의 유통증권으로서의 실제 기능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의 유통에 관여한 당사자들은 완전한 어음에 의한 것과 같은 유효한 어음행위를 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이에 관여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어음을 무효로 한다면 이는 어음상의 의무자로 하여금 채무의 이행을 지연하거나 면탈하는 구실을 주게 되어 어음채무자에 의하여 악용될 소지가 많다고 본다. 왜냐하면 실제의 거래에서는 어음을 수수하는 자는 어음상의 권리관계에 별 의미가 없는 발행지의 기재에 대하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발행지의 기재가 없어도 완전한 어음에 의한 것과 같은 유효한 어음행위를 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발행지를 보충하지 아니한 채 어음을 수수하는 것이 보통임에도 불구하고, 어음채무자인 발행인이나 배서인이 발행지의 기재만을 누락한 채 어음을 발행·양도한 다음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최종소지인이 지급을 청구하면 어음요건의 흠결을 주장하여 어음채무의 이행을 지연하거나 면탈하고자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재 세계의 어음법은 크게 제네바통일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뉘어 있고 우리 나라는 제네바통일법계에 따라 입법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어음은 원래 금전 지급 및 신용 이용의 수단으로 안출된 기술적인 제도로서 세계적 통일화 경향이 현저하므로 어음의 해석에 있어서는 특히 제네바통일법계와 영미법계 상호의 법규정을 염두에 두고 해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영미법계에서 제네바통일법계와 상이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에는 그 의미를 완화하여 해석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발행지의 기재에 대하여 영미법계에서는 이를 어음요건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발행지의 기재가 흠결되어도 어음으로서의 효력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명문규정을 두고 있고, 더구나 1988. 12. 9. 제43차 UN총회에서 채택된 '국제환어음·약속어음에 관한 UN협약'에 있어서는 우리 어음법의 규정과 달리 발행지의 기재를 필요적 기재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도 아니하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경우에 있어서도 어음요건의 해석에 융통성을 두어 국내어음에 한하여 다수의견과 같이 발행지의 기재가 없어도 어음의 효력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해석하여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음면의 기재 자체에 의하여 국내어음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단지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효의 어음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치우친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음 유효해석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타당한 해석이 아니라고 할 것이므로, 국내어음에 한하여는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석은 국내어음에 한하여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어서 국제어음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가 없으면 그 어음은 무효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므로, 위 해석에 의하더라도 발행지를 어음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어음법의 조항을 완전히 사문화시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따라서 다수의견은 국내어음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가 별다른 의미가 없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도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유통·결제되고 있을 뿐더러 어음거래의 당사자들도 발행지의 기재가 없어도 유효한 어음행위를 하려는 의사였다고 보이는 점 등을 비롯한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국내어음에 한하여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를 무효의 어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해석이 법원의 법률해석권의 범위를 일탈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6. 대법원장 윤관, 대법관 최종영,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정귀호, 대법관 김형선, 대법관 이임수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어음법 제1조 제7호와 제75조 제6호는 어음에는 그 요건의 하나로서 발행지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한편, 같은 법 제2조 및 제76조는 발행지를 기재하지 아니한 증권은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가 없는 한 '어음의 효력이 없다'라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발행지와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은 그 효력이 없고, 따라서 소지인이 이러한 미완성 어음으로 지급을 위한 제시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법한 지급제시가 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원래 법규의 의미·내용과 적용 범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정하여 선언하는 권한 즉 법률의 해석·적용의 권한은 법원에 있으며, 법원은 법규의 흠결을 이유로 재판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재판할 사항에 대하여 적용할 법규가 없을 경우에는 법률이념에 맞도록 다른 법규를 유추적용하고, 법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 내용이 애매모호할 경우에는 그 입법취지에 따라 적절한 해석을 함으로써 그 법규의 의미 내용을 확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법규가 있고 그 의미 내용 역시 명확하여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정의의 요청(이른바 목적론적 축소해석의 경우)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이른바 헌법합치적 해석의 경우)에 의하여, 그 법규의 적용 범위를 예외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설사 다수의견이 보는 바와 같이, 명문의 규정이 거래의 관행과 조화되지 아니하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서는 모름지기 국회의 입법 작용에 의한 개정을 기다려야 할 것이지 명문의 효력규정의 적용 범위를 무리하게 벗어나거나 제한하는 해석을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어음법은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에 관하여 그 효력이 없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편, 이 명문의 규정에 관하여는 정의의 요청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에 의하여 그 적용 범위를 예외적으로나마 제한하여 해석할 만한 아무런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다수의견과 같이 위 어음법의 명문규정이 이른바 '국내어음'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법원이 어음법에도 없는 단서 조항 즉 '발행지에 관하여 국내어음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셈이고, 이는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법형성 내지 법률수정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법원의 법률해석권의 범위를 명백하게 일탈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다. 다수의견은 입법정책상의 문제 또는 사실인정의 문제를 법률해석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다. (1) 다수의견은 요컨대, 국내어음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가 별다른 의미가 없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도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관행에 이른 정도이며, 또 그러한 어음의 유통에 관여한 당사자들도 유효한 어음행위를 하려 하였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이러한 어음도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2) 그러나, 발행지를 어음요건으로 할 것인지의 여부는 발행행위의 요식에 관하여 발행인의 기명날인 외에 서명을 허용할 것인지의 여부와 같이 법률로 정할 사항이고(1995. 12. 6. 법률 제5009호 개정된 어음법 참조),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별다른 의미'의 유무에 의하여 좌우할 성질의 것은 아니며,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거래관행이나 당사자의 의사는 법률행위 해석의 논거로 될 수 있을지언정 법률행위 등을 규율 대상으로 하는 법규, 그 중에서도 효력규정인 법규의 해석 논거로 삼는다는 것은 법리에 전혀 맞지 아니한다. 특히 위와 같이 어음법이 개정될 때,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와 국내·외 상거래관행의 추세를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어음발행행위의 요식에 관하여 종전의 '기명날인'에서 '기명날인 또는 서명'으로 바꾼 바가 있고, 위 개정 당시 최소한 국내어음에 있어서는 발행지를 어음요건에서 배제하는 어음법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법론적인 주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 발행지의 요건에 관하여는 개정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둔 점에 비추어 볼 때, 아직 어음요건에서 발행지의 기재를 제외할 만한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나 국내·외 상거래관행이 있었다고 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록을 살펴보아도 발행지란이 보충되지 아니한 채 지급제시된 어음에 대하여 배서인이 이를 결제하거나 소구책임을 지는 것이 어음거래의 관행에 이른 것이라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나 근거가 없을 뿐더러 가사 그러한 관행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관행이 강행법규인 어음법에 저촉된다면 이를 허용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만약 다수의견과 같이 이를 허용한다면 이는 관행에 의하여 강행법규를 개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성문법주의의 법체제하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3) 그리고 원래, 어음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는 어음 문면상의 발행인의 표시와 더불어 어음금에 대하여 최종적인 지급책임을 지는 발행인이 어느 곳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고, 신용증권인 어음은 기본적으로 그 발행인의 신용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므로, 발행지의 기재는 어음발행 이후에 어음을 취득하거나 이에 대하여 보증, 기타 어음행위를 하려는 사람에게 어음의 출처를 알려주고 그 신용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것이며, 특히 국제거래가 활발하여져서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지가 국내인 어음이라도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유통될 것이 예상되는 오늘날의 경제상황에 비추어 본다면(외국환관리법 제19조에서는 환어음·약속어음도 당국의 허가 등 일정한 제한 하에서 외국에 수출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음 발행지의 기재가 어음행위의 준거법의 표준이 되는 이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다수의견은 수긍이 가지 아니할 뿐 아니라, 우리 어음법은 다수의견이 말하는 '국내어음'에 중점을 두고 제정되었다고 볼 것인데, 어음발행요건의 발행지는 오히려 국외어음에서 큰 의미가 있고 '국내어음'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라. 다수의견은 우리 어음법의 운용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손상시키고, 어음이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경제실정에도 맞지 아니한다. 제네바통일조약이 제정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어음법·수표법은 크게 제네바통일조약을 채택한 제네바통일법계와 동 조약을 채택하지 아니한 영미법계 등 두 개의 법계로 나뉘어 있는데, 발행지를 어음요건에 포함시킬 것인지의 여부에 관하여 독일·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일본 등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국가에서는 이를 어음요건에 포함시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은 어음의 효력을 부인하고 있음에 비하여, 미국·영국 등 영미법계에 속하는 국가에서는 이를 어음요건에 포함시키지 아니하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도 어음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어음법이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주지의 사실이며, 제네바통일어음법(1930)은 어음요건에 관하여 아무런 유보조항도 두지 아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의 효력에 관하여, 오직 우리 나라만이 다수의견과 같이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어음을 국내어음과 국제어음으로 구분한 다음, 국내어음의 경우에는 영미법계에 속하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보아 유효라고 하고, 국제어음에 대하여는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보아 무효라고 한다면, 이는 위 두 개의 법계 어디에도 속하지 아니한 우리 나라만의 독자적인 법운용으로서, 어음법·수표법의 세계적 통일화 경향에 역행하는 것이며 국제적인 신뢰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일·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일본 등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국가에서는 제네바통일어음법이 성립된지 67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법에 유보조항이 없는 규정에 관하여는 각국의 국내법을 개정하지 아니하면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을 무효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어음은 국내거래뿐만 아니라 국제거래에 있어서도 신용창출의 수단 또는 금전의 지급결제의 수단으로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바, 다수의견과 같이 어음의 효력에 관하여 국내어음과 국제어음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위와 같은 어음거래의 실정에도 맞지 아니하는 법운용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에서는 그 해석의 논거로서, 영미법계에서는 발행지를 어음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고, '국제환어음·국제약속어음에 관한 유엔협약'에서도 발행지를 필요적 기재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점을 들고 있으나, 우리 법률보다 우리의 거래실정에 더 맞는 외국법률의 규정이 있다고 하여 우리 법률의 명문의 규정에 반하여 외국법률과 마찬가지로 해석하자는 것은 입법론과 해석론을 혼동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위 협약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내어음이 아닌 국제어음에만 적용되는 것으로서, 국제어음의 경우에는 발행지가 필요적 기재 사항임을 인정하고 있는 다수의견의 주장과 맞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가 위 협약을 비준하지도 아니 하였으므로, 이들을 그 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마. 다수의견은 어음의 절대적 요식증권성을 무시한 견해이다. 어음은 그 유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른 요식증권과 마찬가지로 그 권리관계를 증권상에 명시하도록 하는 한편, 화물상환증·선하증권 등과 같이 증권의 본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법정사항을 결하더라도 그 증권이 무효로 되지 아니하는 상대적 요식증권과는 달리, 법정사항 중 하나를 결하더라도 구제를 예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증권 전체가 무효로 되는, 이른바 절대적 요식증권이다(어음법 제2조, 제76조). 앞서 본 바와 같이, 어음법이 어음의 발행지를 어음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제1조 제7호, 제75조 제6호), 다수의견과 같이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을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어음의 절대적 요식증권성에도 반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어음의 요식성을 완화하는 어음유효해석의 원칙을 긍정하는 견해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제한으로 적용될 수 없고, 어음의 요식성을 파괴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지급의 확실성 보장과 유통성 강화라는 어음의 이념에 반하기 때문에 그 적용을 부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통설적 견해인바, 어음의 필요적 기재 사항의 하나인 발행지의 기재를 결한 어음을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어음의 요식성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여기에 어음유효해석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는 없다고 할 것이다.
바. 지금까지 대법원은 일관되게 발행지의 기재를 요건으로 하는 명문을 무너뜨리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가능한한 유효하게 해석하려는 견해를 최근까지 유지하여 왔는데, 다수의견이 특별한 상황의 변화도 없이, 갑자기 성문법주의의 법체제하에서 강행법규적 성격의 법규이며 효력규정인 어음요건에 관한 명문규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론을 끌어 내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으며, 사실인정의 문제를 법률해석의 문제로 보거나 법률해석의 논거가 될 수 없는 관행과 당사자의 의사를 무리하게 끌어들여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도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법원은 모름지기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심판하여야 하고 법률에 대하여 심판하여서는 아니 된다.
사.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살피건대, 원심이 적법히 확정한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약속어음 5장은 모두 그 우측상단에 '부산'이라는 고무인이 찍혀 있을 뿐 발행지란을 백지로 하고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의 기재도 없이 발행·배서양도되다가 그 발행지란이 보충되지 아니한 채 지급제시되었는데, 위 '부산'이라는 표시는 어음교환소명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그 '부산'이라는 표시는 발행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이를 발행지의 기재로는 볼 수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 각 약속어음은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미완성어음으로 그 지급을 위한 제시가 되었다고 할 것이어서 이를 적법한 지급제시로 볼 수 없고, 따라서 피고는 배서인으로서 소지인인 원고에 대하여 어음법의 명문규정에 따라 그 소구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위 '부산'이라는 표시를 발행지의 기재로 보아 그 지급제시가 적법하다고 하여 피고에게 그 소구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조처는 어음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이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함이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장 윤관(재판장) 최종영 천경송 정귀호 박준서 이돈희 김형선 지창권 신성택(주심) 이용훈 이임수 송진훈 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