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헌마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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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서약제 등 위헌확인 [전원재판부 98헌마425, 2002. 4. 25.] 【판시사항】 1. 국가보안법위반 및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수형자의 가석방 결정시 준법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한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가 준법서약의 내용상 서약자의 양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지 여부(소극) 2. 이 사건 규칙조항이 준법서약의 강제방법상 서약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여부(소극) 3. 이 사건 규칙조항이 국가보안법위반 및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수형자의 가석방 결정시에만 준법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은 동 법위반자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로서 평등권의 침해가 아닌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1. 내용상 단순히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을 할 것을 요구하는 이 사건 준법서약은 국민이 부담하는 일반적 의무를 장래를 향하여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며, 어떠한 가정적 혹은 실제적 상황하에서 특정의 사유(思惟)를 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할 것을 새로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준법서약은 어떤 구체적이거나 적극적인 내용을 담지 않은 채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ㆍ서약에 불과하다 할 것이어서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2. 양심의 자유는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 확신과 이에 반하는 외부적 법질서의 요구가 서로 회피할 수 없는 상태로 충돌할 때에만 침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당해 실정법이 특정의 행위를 금지하거나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거나 권고 내지 허용하고 있는 데에 불과하다면, 수범자는 수혜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권고를 거부함으로써 법질서와 충돌하지 아니한 채 자신의 양심을 유지, 보존할 수 있으므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 할 수 없다. 이 사건의 경우,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에 의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이 반드시 법적으로 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당해 수형자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 또한 가석방은 행형기관의 교정정책 혹은 형사정책적 판단에 따라 수형자에게 주는 은혜적 조치일 뿐이고 수형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어서,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하는 당해 수형자는 결국 위 규칙조항에 의하여 가석방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지만, 단지 그것뿐이며 더 이상 법적 지위가 불안해지거나 법적 상태가 악화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위 규칙조항은 내용상 당해 수형자에게 하등의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며 이행강제나 처벌 또는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 방법에 의하여 준법서약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당해 수형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3. 남북한의 대결상황에서 북한은 여전히 대남혁명전략을 추구하며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으로서는 국가의 존립 보장을 위하여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에 방어적으로 대처하지 아니할 수 없다. 또한 북한에 연계하거나 혹은 자발적 의사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붕괴시키려는 세력의 위법행위는 그 행위의 성격상 주로 국가보안법위반죄 또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를 통하여 처단하여온 것이 현재 우리의 법적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해 수형자들에게 그 가석방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 다른 범죄의 수형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심사방법을 공히 적용하는 외에, 국민의 일반적 의무인 ‘국법질서 준수의 확인절차’를 더 거치도록 하는 것은 당해 수형자들이 지니는 차별적 상황을 합리적으로 감안한 것으로서 그 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준법서약제는 당해 수형자의 타 수형자에 대한 차별취 급의 목적이 분명하고 비중이 큼에 비하여, 차별취급의 수단은 기본권침해의 문제가 없는 국민의 일반적 의무사항의 확인 내지 서약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므로 그 차별취급의 비례성이 유지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할 것이고, 결국 이 사건 규칙조항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주선회의 위헌의견 1.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와 그 보호범위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관하여, 헌법 제19조에서 말하는 양심이란,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ㆍ윤리적 판단뿐만 아니라 세계관ㆍ인생관ㆍ주의ㆍ신조 등을 포함한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이러한 선례를 고려하지 않고 양심의 범위를 도덕적 양심에 국한시키면서,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에 관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한정시켜 이 사건을 판단하고 있는바, 이는 명백히 종래의 판례취지를 축소 내지 변경하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견은 더 나아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를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어 개념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판례가 아직 집적되어 있지 않음에도 그러한 연역적 개념위주로 형식적 판단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을 넓히기보다는 이를 제약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문제점이 있다. 2. 준법서약서 제출요구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속하는지 여부 가. 다수의견은 이 사건 준법서약은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ㆍ서약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어서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준법서약에 관한 한 그러한 판단에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준법서약서제도가 국가보안법위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중인 폭력적 방법에 의한 국가전복을 도모하려는 공산주의자에 대한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폭력적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그러한 사고가 개인의 내면에 머무는 한 이를 고백하게 하거나 변경하게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아무리 자유민주주의의 반대자라 하더라도, 그 표현된 행위가 공익에 적대적일 경우에만 정당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국가는 폭력적인 국가전복을 시도하는 극단적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지만, 한편 공산주의보다도 인권보장에 있어 우월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그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있어도, 그들로 하여금 여하한 직ㆍ간접적인 강제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신념을 번복하게 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게 대한민국 법의 준수의사를 강요하거나 고백시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 준법서약서제도는 과거의 사상전향서제도와는 형식적으로 다른 형태로서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서이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는 오랜 기간 공산주의에 대한 신조를 지닌 국가보안법 위반자 등으로 하여금 그러한 신조를 변경하겠다는 것을 표명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같은 신조를 지닌 자들과 격리하게 되는 효과를 도모하는 점에서 유사하다. 라. 설사 다수의견의 판시와 같은 양심 개념을 차용한다고 하더라도,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은 국가에 의한 중요한 혜택의 배제시에도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이 그러한 혜택에 포함될 것인지는 개별적으로 논해야 할 것이나, 적어도 장기수에 있어 가석방의 배제는 그의 일생 일대의 중요한 문제로서 이에 포함시켜 보아야 할 문제이다. 마. 그러므로 준법서약서제도는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포섭되어야 마땅하다. 3. 준법서약서제도의 양심의 자유 침해 여부 가. 준법서약서제도는 “개인의 세계관ㆍ인생관ㆍ주의ㆍ신조 등이나 내심에 있어서의 윤리적 판단”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심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준법서약서라는 ‘표현된 행위’가 매개가 되지만 이는, 국가가 개인의 내심의 신조를 사실상 강요하여 고백시키게 한다는 점에서, 양심실현 행위의 측면이라기 보다는, 내심의 신조를 사실상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 준법서약서제도는 어느 법률에서도 이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이를 하위법령에 위임하는 근거규정도 없다. 그러므로 더 나아가 볼 것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 다. 설사 이를 내심의 자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양심 “실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보는 경우에도 이 사건 규칙은 비례의 원칙을 준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이 사건 규칙이 수형자의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하여 향후의 준법의사를 파악한다는 관점에서 입법목적상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였다고 하여 향후 재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 제출하지 않은 경우 가석방하면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사건 규칙이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인 것인지는 의문이 있다. 한편 재범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제도의 목적이라면 면접 등 다른 일반 수형자의 가석방 심사 방법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이 사건 규칙은 필요 이상으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 나아가 준법서약서제도로 인하여 개인이 겪게 되는 양심상의 갈등, 즉 가석방을 얻어내기 위하여 자신의 근본적 신조를 변경하겠다는 표현을 하거나 혹은 침묵을 통해 신조의 불변을 나타내는 것에 대한 내면적 갈등의 심각성은, 재범의 위험성의 한 판단자료라는 공익과 대비시킬 때, 법익간의 균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 【당 사 자】 청 구 인 1. 조○록 (98헌마425)

국선대리인 변호사 이 경우

2. 조○원 (99헌마170)

대리인 변호사 이재명 외 1인

3. 이○철 외 28인 (99헌마498)

청구인들 대리인 변호사 강금실 외 9인

【주  문】 청구인 조○록, 조○원의 심판청구를 각 기각하고, 나머지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가. 사건의 개요(1) 98헌마425 사건청구인은 1978. 2. 2.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어 같은 해 12. 26.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후 안동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당국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를 거절하여 1998. 8. 15. 단행된 가석방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청구인은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심사시 준법서약서를 요구하는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 제2항’은 청구인의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1998. 11. 26.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99헌마170 사건청구인은 1993. 2.경 민족해방애국전선사건으로 구속되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춘천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당국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를 거절하여 1998. 8. 15. 및 1999. 2. 25.에 단행된 가석방에서 각 제외되자, 위 조항에 대하여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1999. 3. 25.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3) 99헌마498 사건청구인들은 1996.부터 1998.까지 사이에 ‘국제사회주의자사건’, ‘한총련사건’ 또는 ‘범청학련집회사건’ 등으로 징역 1년 6월 내지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각 복역하던 중, 당국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를 거절하여 1999. 2. 25. 단행된 가석방에서 각 제외되자, 위 조항에 대하여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1999. 8. 24.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따라서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1998. 10. 10. 법무부령 제467호로 개정된 것, 이하 “심사규칙”이라 한다) 제14조 제2항(이하 “이 사건 규칙조항”이라 한다)의 위헌여부이며, 이 사건 규칙조항과 관련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사규칙 제14조(심사상의 주의) ② 국가보안법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등의 수형자에 대하여는 가석방 결정 전에 출소 후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게 하여 준법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형법 제72조(가석방의 요건) ①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가 그 행장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무기에 있어서는 1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

행형법 제50조(가석방심사위원회의 구성) ③ 심사위원회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

형법 제51조(가석방심사) ① 소장은 형법 제72조 제1항의 기간을 경과한 수형자가 교정성적이 양호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법무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심사위원회에 가석방심사를 신청하여야 한다.

② 심사위원회가 가석방의 적격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는 수형자의 연령, 죄명, 범죄의 동기, 형기, 수형 중의 행장, 가석방 후의 생계수단과 생활환경, 재범의 위험성 유무 등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야 한다.

③ 심사위원회가 가석방 적격결정을 한 때에는 5일 이내에 법무부장관에게 가석방허가를 신청하여야 한다.

행형법 제52조(가석방허가) 법무부장관은 제51조의 규정에 의한 심사위원

회의 가석방신청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이를 허가할 수 있다.

행형법시행령 제153조(가석방심사대상자의 기준 등) 가석방심사위원회는 형법 제72조 제1항의 기간을 경과한 수형자로서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를 심사하여 가석방의 신청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1. 행형성적 심사결과 누진계급이 최상급에 속하는 자

2. 제1호 외의 수형자로 재범의 위험성이 없고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

행형법시행령 제156조(가석방심사 등) 가석방의 심사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

심사규칙 제3조(심사사항) ① 가석방심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는 가석방의 적격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수형자의 신원관계, 범죄관계, 보호관계,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심사하여야 한다.

2. 청구인들의 주장 및 법무부장관의 의견가. 청구인들의 주장준법서약서제도는 사실상 사상의 전향을 요구하거나 국법질서의 준수의지를 외부에 표출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헌법상 양심의 자유 및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형성할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다른 수형자들과는 달리 국가보안법위반ㆍ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등의 수형자에 한하여 가석방심사시 준법서약서 제출을 요구함으로써 평등권도 침해한다.

나아가 이 사건 규칙조항은 기본권제한의 목적ㆍ방식ㆍ정도를 벗어남으로써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제한의 한계를 일탈하였을 뿐 아니라,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의 적법절차 조항에도 위반된다.

나. 법무부장관의 의견이 사건 규칙조항 자체에 의하여 청구인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된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청구인들은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 청구 이후 모두 석방되어 더 이상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지 않으므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이 사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 또한 가석방제도에서의 준법서약은 수형자에게 내심의 변경 자체를 요구하지 아니하며 준법서약서의 제출여부는 전적으로 수형자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른바 사상범 내지 확신범은 다른 범죄인과는 달리 자신이 저지른 범법행위가 정당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존 법질서에 대한 체계적인 반대의사가 형성되어 있는 자들이므로 이들에 대한 재범의 위험성을 판단

함에 있어서 다른 범죄인들과 달리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 평등의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준법서약서제도는 남북대치의 현실상 국가보안법위반 등으로 수형된 자들의 재범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바, 그 수단의 적정성은 물론, 내심의 결정을 침해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의 정도도 최소화되어 있다. 또한 이 사건 규칙조항은 공안사범에 대한 적절한 행형을 통하여 현저한 국가이익을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반면, 위 조항에 의하여 준법서약서 제출대상자가 받는 불이익은 비교적 경미한 것이어서 보호되는 공익과 침해되는 기본권 사이에 과도함을 넘지않는 균형이 성립되어 과잉금지원칙의 기준에도 부합된다.

3. 판 단가. 적법요건에 관한 판단(1) 권리침해의 직접성법령조항 자체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려면 그 조항에 의하여 구체적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직접, 현재, 자기의 기본권을 침해받아야 하는 것을 요건으로 하고, 여기서 말하는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란 집행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법령 그 자체에 의하여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이 생긴 경우를 뜻한다(헌재 1999. 11. 25. 98헌마55, 판례집 11-2, 593, 605). 그러나 구체적 집행행위가 존재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반드시 법령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의 적법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즉, 집행행위가 존재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집행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구제절차가 없거나 구제절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권리구제의 가능성이 없고 다만 기본권침해를 당한 청구인에게 불필요한 우회절차를 강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경우로서 당해 법령에 대한 전제관련성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당해 법령을 직접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헌재 1997. 8. 21. 96헌마48, 판례집 9-2, 295, 304 ; 헌재 1999. 11. 25. 98헌마55, 판례집 11-2, 593, 606).

이 사건의 경우 가석방심사위원회는 먼저 형법 제72조 제1항의 기간을 경과한 국가보안법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등의 수형자중에서 행형성적 등을 심사한 결과 가석방 적격판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수형자를 선정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요구하게 될 것이므로 이 사건 규칙조항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가 있어야만 비로소 당해 수형자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는 단지

가석방 적격여부를 판정하기 전에 그 정상자료를 수집하는 중간적 조치일 뿐, 그 대상자가 반드시 이에 응하도록 강제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였다고 하여 그 사유만으로 가석방이 당연히 되는 것도 아니다. 즉 당해 수형자는 준법서약서의 제출요구조치가 아니라 가석방여부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종국적 판정처분에 의하여 비로소 그 이익에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는 당해 수형자에게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권유 내지 유도하는 권고적 성격의 중간적 조치에 불과하여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독립한 행정처분으로서의 외형을 갖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이 이 사건 심판청구 전에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행위를 대상으로 한 행정소송 등 사전구제절차를 통하여 권리구제를 받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할 것이어서 동 구제절차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들은 권리침해의 직접성의 측면에서는 모두 적법하다.

(2) 권리보호의 이익98헌마425 사건의 청구인은 1999. 2. 25.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99헌마170 사건의 청구인은 1999. 8. 15.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또 99헌마498 사건의 청구인들도 모두 석방되었는바, 청구인 이○철, 정○재, 윤○준, 전○은, 배○균, 양○훈, 장○상, 조○병, 김○학, 노○조, 박○서, 이○열, 김○준, 김○수, 김○희, 김○석, 장○섭, 민○우, 박○은 각 1999. 8. 15. 형집행정지로, 청구인 김○정은 1999. 12. 31. 형집행정지로, 청구인 최○주는 2000. 2. 29. 형기종료로, 청구인 이□철, 나○영, 정○홍, 이○구, 김○는 각 2000. 8. 15. 형집행정지로 각 석방되었고, 청구인 강○원, 정○찬, 정○기도 2001. 7. 13.에서 8. 3.까지 사이에 형기종료로 모두 출소하였다.

이렇게 청구인들이 모두 석방된 이상, 앞으로 더 이상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조건으로 한 가석방여부가 문제될 리가 없으며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가 인용된다고 하더라도 청구인들의 주관적 권리구제에는 도움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소원은 주관적 권리구제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헌법질서보장의 기능도 겸하고 있으므로 가사 청구인들의 주관적 권리구제에는 도움이 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같은 유형의 침해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고, 헌법질서의 수호ㆍ유지를 위하여 그에 대한 헌법적 해명이 긴요한 사항에 대하여는 심판청구의 이익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헌법재판소 1991. 7. 8. 89헌마181, 판례집 3, 356, 367 ; 1992. 1. 28. 91헌마111, 판례집 4, 51,

56-57). 이 사건 헌법소원에 있어서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으로 보여지고, 그에 대한 헌법적 정당성 여부의 해명은 헌법질서의 수호를 위하여 매우 긴요한 사항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의 이익은 여전히 존재한다 할 것이다.

(3) 청구기간(가) 98헌마425 사건

청구인은 그에 대한 가석방이 거부된 1998. 8. 15. 이전에 이미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요구받았는바, 그렇다면 늦어도 1998. 8. 15.에는 준법서약서의 제출거부로 인한 기본권의 침해사유가 있음을 알았다고 할 것이므로, 그 날로부터 60일을 이미 경과하였음이 명백한 1998. 11. 26. 접수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도과한 부적법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청구인은 위 처분이 아니라 그 근거규정인 이 사건 규칙조항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는바, 동 조항은 1998. 10. 10. 공포되어 같은 날부터 시행되었으므로(즉 이 사건 규칙조항은 그것이 공포되기 전부터 사실상 그 적용이 있었다), 이 사건 규칙조항의 공포ㆍ시행일로부터 기산하여 60일의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다.

(나) 99헌마170 사건

청구인은 준법서약서제출을 거부하여 1998. 8. 15. 및 1999. 2. 25.에 각 가석방 대상자에서 제외되었으므로, 그 중 1999. 2. 25.의 가석방 제외와 관련하여 늦어도 1999. 2. 25.에는 기본권침해사유가 있음을 알았다고 볼 수 있고, 그 날짜를 기준으로 할 때 1999. 3. 25. 접수된 이 사건은 60일의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다.

(다) 99헌마498 사건

청구인들은 각 준법서약서제출을 거부하여 1999. 2. 25.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므로 늦어도 같은 날에 자신들의 기본권의 침해사유가 있음을 알았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의 심판청구서는 그 날로부터 60일을 경과하였음이 명백한 1999. 8. 24. 접수되었으므로 청구기간을 준수하지 못하였다.

(4) 소결론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들은 권리침해의 직접성이나 권리보호 이익의 면에서 적법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하겠으나, 다만 99헌마498사건은 청구기간을 준수하지 못하였으므로 동 사건에 대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여 각하하여야 한다.

나. 본안에 관한 판단(1) 양심의 자유의 침해 여부우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여 명문으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의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말한다. 따라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양심이 아니다(헌재 1997. 3. 27. 96헌가 11, 판례집 9-1, 245, 263).

이른바 개인적 자유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양심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유지와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위해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을 보장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내심의 결정에 근거한 인간의 모든 행위가 헌법상 양심의 자유라는 보호영역에 당연히 포괄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양심의 자유가 침해되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먼저 양심의 자유의 헌법적 보호범위를 명확히 하여야 하는바, 이를 위해서는 양심에 따른 어느 행위(또는 불행위)가 실정법의 요구와 서로 충돌할 때 과연 어떤 요건하에 어느 정도 보호하여야 하는가의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헌법상 그 침해로부터 보호되는 양심은 첫째 문제된 당해 실정법의 내용이 양심의 영역과 관련되는 사항을 규율하는 것이어야 하고, 둘째 이에 위반하는 경우 이행강제, 처벌 또는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 법적 강제가 따라야 하며, 셋째 그 위반이 양심상의 명령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준법서약서의 제출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가) 준법서약의 내용과 양심의 영역과의 관련 여부

국가의 존립과 기능은 국민의 국법질서에 대한 순종의무를 그 당연한 이념적 기초로 하고 있다. 특히 자유민주적 법치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사상의 자유와 법질서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정당한 절차에 의하여 헌법과 법률을 개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여 다른 한편으로 국민의 국법질서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와 복종을 그 존립의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할 의무는 국민의 기본의무로서 헌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우리 헌법에서도 자명한 것이다.

이 사건 규칙조항상 요구되는 준법서약의 내용은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것이고, 이에 기해 만들어진 준법서약서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죄명 외에 처벌받게 된 경위와 내용, 대한민국 법질서 준수서약, 장래의 생활계획, 기타 하고싶은 말 등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바, “대한민국 법질서 준

수서약”은 이에 관한 어떤 정형화된 문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실제 운영상 대체적으로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내용정도로 단순하게 기재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본 바 국법질서의 준수에 대한 국민의 일반적 의무가 헌법적으로 명백함을 감안할 때, 내용상 단순히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을 할 것을 요구하는 이 사건 준법서약은 국민이 부담하는 일반적 의무를 장래를 향하여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며, 어떠한 가정적 혹은 실제적 상황하에서 특정의 사유(思惟)를 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할 것을 새로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준법서약은 어떤 구체적이거나 적극적인 내용을 담지 않은 채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ㆍ서약에 불과하다 할 것이어서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 청구인들 중에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들이 있고, 그들이 내심으로 가령 국가보안법 등이 자신들의 정치적 신조에 반한다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어긋난다고 확신하며 나아가 그들의 이러한 신조가 외부적으로 알려져 있다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가석방심사시 심사자료에 쓰일 준법서약의 내용이 단지 위와 같은 정도에 그치는 이상, 마찬가지로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어느 누구도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국법질서 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력, 폭력 등 비헌법적 수단으로 전복할 권리를 헌법적으로 보장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단순히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에 의하여는 그 질서나 체제 속에 담겨있는 양심의 자유를 포함하여 어떠한 헌법적 자유나 권리도 침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준법서약의 법적 강제와 양심의 자유의 침해 여부

뿐만 아니라 양심의 자유는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 확신과 이에 반하는 외부적 법질서의 요구가 서로 회피할 수 없는 상태로 충돌할 때에만 침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당해 실정법이 특정의 행위를 금지하거나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거나 권고 내지 허용하고 있는 데에 불과하다면, 수범자는 수혜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권고를 거부함으로써 법질서와 충돌하지 아니한 채 자신의 양심을 유지, 보존할 수 있으므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할 수 없다. 따라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도의 외부적 법질서의 요구가 있다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법적 의무의 부과와 위반시 이행강제, 처벌 또는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 방법에 의하여 강제력이 있을 것

임을 요한다. 여기서 법적 불이익의 부과라고 함은 권리침해의 정도에는 이르지 아니하더라도 기존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거나 법적 상태를 악화시키는 등 적어도 현재의 법적 지위나 상태를 장래에 있어 불안하게 변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건의 경우, 이 사건 규칙조항에 의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이 반드시 법적으로 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당해 수형자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 또 이를 거부하더라도 가석방심사위원회는 당해 수형자에게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강제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 또한 가석방이 그 법적 성격상 수형자의 개별적 요청이나 희망에 따라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행형기관의 교정정책 혹은 형사정책적 판단에 따라 수형자에게 주는 은혜적 조치일 뿐이고 수형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어서(헌재 1995. 3. 23. 93헌마12, 판례집 7-1, 416, 422), 다시 말해 가석방은 행형당국의 판단에 따라 수형자가 받는 사실상의 이익이며 은전일 뿐이어서,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하는 당해 수형자는 결국 이 사건 규칙조항에 의하여 가석방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지만, 단지 그것뿐이며 더 이상 법적 지위가 불안해지거나 법적 상태가 악화되지 아니한다. 즉, 원래의 형기대로 복역하는 수형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건 규칙조항은 내용상 당해 수형자에게 하등의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며 이행강제나 처벌 또는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 방법에 의하여 준법서약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당해 수형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특히 정치적 신조나 이데올로기가 달라 대한민국의 법질서에 순응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일부 장기수들에게 그 신념과는 다르게 법질서 준수의 서약을 하게 하면서, 비록 그 서약여부에 처벌이나 새로운 불이익을 부과하는 등으로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다름아닌 가석방의 은전을 미끼로 하여 만약 서약을 하지 않으면 가석방의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이 사건 규칙조항이 실질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데에 모아진다. 그러나 자유의사에 따른 행위, 불행위와 이에 기한 혜택부여 관계가 사실상 조건화 되었다하여 이를 들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적 강제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국가는 가석방과 같은 행형정책 뿐만 아니라 각종 시책을 펴나감에 있어서

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국민에게 각종 혜택을 부여할 수 있는데, 위 견해는 그러한 조건성 요건구비가 만약 어느 특정인의 신념에 배치될 경우, 자칫 혜택성 시책마저 모두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잘못 주장될 수 있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법적 강제가 아니라 단순한 혜택부여의 문제에 그칠 경우에는 비록 그 혜택이 절실한 것이어서 이를 외면하기가 사실상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이는 스스로의 선택의 문제일 뿐, 이미 양심의 자유의 침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단지 그 혜택부여의 공평성 여부라는 평등원칙 위배의 차원에서 헌법적으로 검토될 여지가 있을 뿐이다.

결국 이 사건 규칙조항에 따른 준법서약서의 제출은 단지 국가로부터 가석방이라는 은전을 부여받기 위한 요소일 뿐으로서 이러한 수혜요건을 충족시켜줄 것인가 여부는 당해 수형자가 자신의 내심의 소리에 따라서 여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2) 적법절차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은 “모든 국민은 …… 법률과 적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ㆍ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헌법조항이 규정한 적법절차의 원칙은, 절차는 물론 법률의 실체적 내용도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의 침해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법률에 의거하여 정당한 절차를 밟은 경우에만 유효하다는 원리이다(헌재 1997. 5. 29. 96헌가17, 판례집 9-1, 509, 515).

이 사건의 경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준법서약제에 관한 이 사건 규칙조항은 당해 수형자의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지 아니하다. 그렇다면 이 사건 규칙조항이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의 침해 등 기본권 침해가 있음을 전제로 적용되는 위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함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이 명백하다.

(3) 가석방을 받을 권리의 침해 여부형법 제72조 제1항은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가 그 행장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무기에 있어서는 1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가석방이란 수형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형을 집행 받고 있는 자 가운데서 행장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현저한 자를 그 형의 집행

종료 전에 석방함으로써, 갱생한 수형자에 대한 무용한 구금을 피하고 수형자의 윤리적 자기형성을 촉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취해지는 형사정책적 행정처분이다. 가석방은 교도소 등 각 행형기관에 설치된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위원장이 법무부장관에게 그 허부의 신청을 하고, 법무부장관이 그 신청이 정당하다고 인정하여 허가함으로써 이루어진다(행형법 제51조ㆍ제52조).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위원장이 법무부장관에게 가석방의 신청을 할 때는 위원회의 결정을 거쳐야 하고, 위원회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수형자로서 행장심사의 결과 최상급에 속하거나 위원장이 적당하다고 인정한 자에 대하여 그 연령, 죄명, 범죄의 동기, 형명, 형기, 수형 중의 행장, 가석방 후의 생활과 보호관계, 재범의 우려 기타의 사정을 참작하여 가석방의 신청 여부를 결정한다. 위와 같이 가석방은 수형자의 개별적인 요청이나 희망에 따라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행형기관의 교정정책 혹은 형사정책적 판단에 따라 수형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적 조치일 뿐이므로, 어떤 수형자가 형법 제72조 제1항에 규정된 요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행형당국에 대하여 가석방을 요구할 주관적 권리를 취득하거나 행형당국이 그에게 가석방을 하여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수형자는 동조에 근거한 행형당국의 가석방이라는 구체적인 행정처분이 있을 때 비로소 형기만료 전 석방이라는 사실상의 이익을 얻게 될 뿐이다(1995. 3. 23. 93헌마12, 판례집 7-1, 416, 421- 422).

이와 같이 수형자에게 가석방을 요구할 주관적 권리는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규칙조항에 의하여 동 권리가 침해된다고 볼 여지도 없다.

(4) 평등권의 침해 여부(가) 심사의 척도

평등위반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 엄격한 심사척도에 의할 것인지, 완화된 심사척도에 의할 것인지는 입법자에게 인정되는 입법형성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먼저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 엄격한 심사척도가 적용될 수 있다. 헌법이 스스로 차별의 근거로 삼아서는 아니되는 기준을 제시하거나 차별을 특히 금지하고 있는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면 그러한 기준을 근거로 한 차별이나 그러한 영역에서의 차별에 대하여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다음으로 차별적 취급으로 인하여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게 된다면 입법형성권은 축소되어 보다 엄격한 심사척도가 적용되어야 한다(헌재 1999. 12. 23. 98헌마363, 판례집 11-2, 770, 787).

이 사건 규칙조항은 가석방심사에 있어서 심사방법에 관한 내용을 정한 것으로 이는 행형당국의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는 분야에 속하고, 이 문제에 관하여 헌법이 특별히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도 아니하다. 또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준법서약제에 관한 이 사건 규칙조항은 당해 수형자의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차별적 취급으로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규칙조항에 대한 평등위반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는 특별히 엄격한 심사척도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완화된 합리성 심사에 의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할 것이다.

(나) 준법서약제도의 입법목적

이 사건 규칙조항으로 시행되고 있는 준법서약제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래 계속되어온 남북한간의 전면적 대치상황으로 인하여 우리에게만 특유하게 발생하여온 공안사범들에 대한 행형정책을 실시함에 있어서, 동 사범들의 성향이 우리 헌법질서에 대하여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이었던 점을 감안하여 동인들에 대하여 가석방을 실시함에 있어서는 헌법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보다 강도의 헌법적 충성확인을 받아서 우리 국가체제의 존립을 방어하는데 기여하도록 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준법서약제는 종래 시행되어오던 사상전향제를 개선한 것으로서 국가보안법위반 등 공안사범의 가석방심사에 있어 좌익사상의 포기를 요구함으로써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였던 일부 헌법적 비판을 불식하고, 단지 국민의 당연한 의무사항인 국법준수만을 확인케 함으로써 헌법적 요구사항을 충족함과 아울러 가석방심사에 있어 당해 수형자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려고 함에 이 사건 규칙조항의 제정의도가 있다.

(다) 차별취급의 비례성 여부

이 사건 규칙조항은 죄명에 관계없이 모든 수형자의 준법서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보안법위반죄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의 수형자의 경우에만 요구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인식하는 바와 같이, 남북한의 대결상황에서 북한은 여전히 대남혁명전략을 추구하며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으로서는 국가의 존립 보장을 위하여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에 방어적으로 대처하지 아니할 수 없다. 또한 북한에 연계하거나 혹은 자발적 의사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붕괴시키려는 세력의 위법행위는 그 행위의 성격상 주로 위와 같은 죄를 통하여 처단하여온 것이 현재 우리의

법적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해 수형자들에게 그 가석방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 다른 범죄의 수형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심사방법을 공히 적용하는 외에, 국민의 일반적 의무인 ‘국법질서 준수의 확인절차’를 더 거치도록 하는 것은 당해 수형자들이 지니는 차별적 상황을 합리적으로 감안한 것으로서 그 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와 같은 준법서약제는 당해 수형자의 타 수형자에 대한 차별취급의 목적이 분명하고 비중이 큼에 비하여, 차별취급의 수단은 기본권침해의 문제가 없는 국민의 일반적 의무사항의 확인 내지 서약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므로 그 차별취급의 비례성이 유지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할 것이고, 결국 이 사건 규칙조항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4. 결 론따라서 청구인 조○록, 조○원의 심판청구를 각 기각하고, 나머지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권성의 아래 5.와 같은 보충의견과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주선회의 아래 6.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의견일치에 의한 것이다.

5. 재판관 권 성의 보충의견가.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및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 등과 중첩되지 않는 양심의 자유의 고유한 영역을 양심의 자유의 본래적 영역이라고 할 때에 이 본래적 영역에서 기능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선악(善惡)을 인식, 판단하여 선(善)을 지향하는 인간의 천부적 심성을 가리킨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윤리적 문제에 관하여 선악을 인식ㆍ판단하고 선을 선택ㆍ결단하는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학문과 예술의 문제에 대하여 판단하고 선택하는 정신적 작용은 양심의 문제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윤리적 선악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정치적 사상과 신조 및 종교상의 교리와 원칙 등에 관한 정신적 작용도 양심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또한 헌법상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우선 국가의 간섭과 강요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요구를 거부하면 처벌이나 불이익이 있는 강요, 평온을 교란하는 정도의 거듭되는 간섭, 이러한 것이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

나. 그러므로 첫째로 국가가 개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도록 권장,

유도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지만 선악의 판단을 국가가 대신하고 그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결국 선악의 판단 자체는 개인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양심의 자유는 우선 선악의 판단을 개인이 독립하여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로 양심의 자유는 자신이 선이라고 믿는 바를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리킨다.

셋째로 양심의 자유는 그 양심의 내용을 조사받지 아니할 자유를 포함한다.

다. 이러한 양심의 자유가 실정법의 세계에서 정면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일부의 국법질서가 악이라고 하여 금지하고 있는 것을 개인이 반대로 이를 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강행을 선택하는 경우 또는 일부의 국법질서가 선이라고 판단하여 요구하는 것을 개인이 악이라고 판단하여 그 거부를 결단하는 경우 등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택이나 결단은 단순한 선호(選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악의 판단에 따른 불변(不變)의 윤리적 결단을 말한다. “이런 나쁜 짓을 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식의, 또는 “이 일을 못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식의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정체성에 관한 확신에 의한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법질서의 규정 가운데에는 대체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 사회구성원들의 선악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을 그대로 반영하는 부분들이 있고 법원 또한 이러한 국법질서의 규정내용을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다라고 판단할 경우 이와 반대로 행동하는 개인은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되는데 이처럼 선악에 대한 다수의 판단과 개인의 판단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에 양심의 자유문제가 대두한다. 결과적으로는 다수의 판단에 반대하는 소수자가 처벌을 받는 셈이므로 이때에는 소수자 보호의 원리가 뒤를 이어 문제가 될 수 있다.

라.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서약서의 내용은 다수의견이 적절히 설명하는 바와 같이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여야 하는 국민의 일반적 의무를 단순히 확인ㆍ서약케하는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러한 서약서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청구인들에게 윤리적 문제에 관하여 선악의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청구인들의 양심의 자유와는 처음부터 무관한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의하면 청구인들은 국가보안법위반의 죄로 복

역중이었는바 청구인들은 자기들이 선호하는 정치적 신조의 수행 내지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이들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으며, 앞으로 출소후에는 그러한 범죄를 재범하지 않겠다는 서약의 요구를 받고서 그러한 서약은 청구인들의 정치적 신조에 배치된다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상황하에서의 서약서 제출의 거부는 정치적 신조의 확고불변함을 안팎으로 과시ㆍ확인하는 행동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계산에 따른 전술적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이와 달리 그 거부행위가 자신들의 인간으로서의 윤리적 도덕적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행동이었다라고 볼 자료들은 이 사건에서 찾기 어렵다. 따라서 청구인들의 서약서 제출의 거부행위는 서약서의 제출이 악이라고 까지 확신하는 양심적 판단 즉 윤리적 판단 때문은 아니라고 인정된다. 그러므로 청구인들이 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한 행위 또한 청구인들의 양심과는 무관한 것이다.

6.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주선회의 반대의견우리는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이 개진한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동의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사건 준법서약서제도는 우리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있고, 그 자유를 제한하는 형식이 법률이 아닌 법무부령일 뿐만 아니라 비례의 원칙에도 반하므로, 위헌이라고 판단되어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밝힌다.

가.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와 그 보호범위(1)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는 기본적 인권이 보장될 것을 조건으로 하여서만 국가권력은 정당성을 지니게 된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지만 때로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하여 특정 개인들에게 불이익을 가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의 인권도 이를 상회하는 공익이 있기 전에는 침해될 수 없다는 원칙이 합의될 때에만 비로소 그 개인들은 그러한 불이익을 수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인권 중에서도 양심의 자유는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개인과 국가의 대치관계가 발생할 때, 양심의 자유 특히 내심의 자유는 아무리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간섭할 수 없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개인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벽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근본적 도덕과 신조를 지키기 위해

서는 무엇보다도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 조건이자 요청이다.

(2)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가)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관하여 이미 판단한 바 있다. 즉 헌법 제19조에서 말하는 양심이란 “세계관ㆍ인생관ㆍ주의ㆍ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ㆍ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고 넓게 보면서, 양심의 자유에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아니할 자유까지 포함한다.”(헌재 1991. 4. 1. 89헌마160, 판례집 3, 149, 153-154 ; 1997. 11. 27. 92헌바28, 판례집 9-2, 548, 571 ; 1998. 7. 16. 96헌바35, 판례집 10-2, 159, 166)

이러한 양심의 범위는 단순한 도덕적 선악의 개념보다는 넓은 것인데 헌법재판소는 이와 같이 양심의 자유를 넓게 해석하는 이유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판시하였다.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다른 나라의 헌법과 달리 양심의 자유를 신앙의 자유와도 구별하고 사상의 자유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 별개의 조항으로 독립시킨 우리 헌법의 취지에 부합할 것이며, 이는 개인의 내심의 자유, 가치판단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리의 명확한 확인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고 인간의 내심의 영역에 국가권력의 불가침으로 인류의 진보와 발전에 불가결한 것이 되어왔던 정신활동의 자유를 보다 완전히 보장하려는 취의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1990년에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른바 국제인권규약 B규약) 제18조 제2항에서도 스스로 선택하는 신념을 가질 자유를 침해하게 될 어떠한 강제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헌재 1991. 4. 1. 89헌마160, 판례집 3, 149, 153-154)

그러므로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에서의 양심은 단순한 윤리적 선악 판단보다도 더 넓은 보호범위를 지니며, 세계관ㆍ주의ㆍ신조 등까지 포함되고 있으며 이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한 관점에서 헌법재판소는 사죄광고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의 문제라고 보았던 것이다.(위 89헌마160 결정)

이렇게 우리 재판소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사상 혹은 이데올로기의 자유에 관한 보호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점

을 감안하고,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로서의 양심의 자유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를 폭넓게 인정하겠다는 취지이므로 타당한 판시라 아니할 수 없다.

(나) 그런데 이 사건의 다수의견은 이러한 우리 재판소의 위 선례를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양심의 범위를 도덕적 양심에 국한시키고 있다. 즉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에 관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한정시키면서 이 사건을 판단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종래의 판례취지를 축소 내지 변경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견은 우리 재판소의 양심의 범위에 관한 위 선례를 원용하고 있지 않으며, 단지 음주측정 거부사건(96헌가11)에서 새롭게 설시된 판시를 인용하면서 더 나아가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의 보장”이라는 새로운 요건적 표현을 추가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범위를 이렇게 좁게 해석하는 것은 위 선례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며 위 선례가 협의의 도덕적 양심 외에 세계관ㆍ주의ㆍ신조까지 보호하고자 하는 판시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 그리고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의 보장기능을 담당하는 양심만이 보호대상이라면 헌법재판소의 사죄광고에 대한 양심의 자유의 판시(89헌마160 결정)도 그 결론이 달라질 수 있게 된다. 사죄광고에 관한 위 선례는 다수의견이 개진하는 양심보다는 더 넓은 의미의 양심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판단된 것임을 간과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다) 또한 다수의견은 더 나아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를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어 개념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두번째 요건으로 “이에 위반하는 경우 이행강제, 처벌 또는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 법적 강제가 따라야 하며”라고 설시하고 있는바, 우리는 그 타당성 및 실효성에 대하여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양심의 자유를 다룬 판례가 아직까지는 몇 건에 지나지 아니하여 그 선례가 집적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연역적인 방법으로 개념규정을 시도하는 것은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또한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 매우 민감한 개인의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그러한 정의를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은 자칫하면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앞으로의 다양한 사안들을 개별적ㆍ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 세가지의 요건에 맞는지 여부에 관한 형식적ㆍ개념적 적합성 여부만 다루게 됨으로써 양심의 자유와 같은 중대하고 민감한 기본권 사건에서 실체와 유리

된 형식적 헌법재판을 하게 되는 자승자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오늘날 대체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구체적 사안을 통한 헌법규범의 해석”이라는 헌법해석의 방법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못하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연역적 개념위주의 형식적 판단은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을 넓히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제약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헌법은 개방적ㆍ추상적인 형태의 최고 규범이며, 헌법이 그러한 규정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은 유구한 세대를 거쳐 다양한 생활관계에 타당한 헌법해석의 여지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재판소가 헌법상의 기본권의 보호범위를 상당한 양의 판례축적도 없이 미리 연역적으로 확정하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인 것이다.

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속하는지 여부(1) 다수의견은 이 사건 준법서약은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ㆍ서약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어서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준법서약에 관한 한 그러한 판단에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준법서약서제도는,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위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중인, 폭력적 방법에 의한 국가전복을 도모하려는 공산주의자에게, 대한민국의 국가체제와 국가보안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면 가석방시켜 주겠다는 상황과 관련된 것이어서 문제는 달라진다.

다수의견은 청구인들 중 비전향장기수가 있고, 그들이 내심으로는 국가보안법 등이 자신들의 정치적 신조에 반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체제와 어긋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국법질서 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력ㆍ폭력 등 비헌법적 수단으로 전복할 권리를 헌법적으로 보장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단순히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에 의하여는 그 질서나 체제 속에 담겨 있는 양심의 자유를 포함하여 어떠한 헌법적 자유나 권리도 침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판시는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이념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비약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폭력적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가 개인의 내면에 머무는 한, 이를 고백하게 하거나 변경하게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준법서약서 제출

이 특정한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를 지닌 수형자의 내심의 신조를 변경할 것을 사실상 또는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결과가 생긴다 하더라도 이를 양심의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그 질서나 체제 속에 담겨있는 양심의 자유를 포함하여 어떠한 헌법적 자유나 권리도 침해될 수 없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양심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국가의 세계관적ㆍ도덕적 중립성을 전제로 한다. 이는 개개인의 내면의 세계관ㆍ도덕관이 어떠하든 국가가 특정한 세계관ㆍ도덕관을 개인에게 강요할 수가 없고 관용하여야 한다는 이념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체제를 선호하는 개인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보장되는 것이다.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맞는 양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맞는 표현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의 보호를 우월적 가치로 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은 가치상대주의에 기반하면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하여 국가는 제재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원래 자유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사상과 신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일률적으로 무시하거나 획일화시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의 강조는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지배를 불식하고 개인의 의견과 행위가 타인의 법익이나 공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관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유민주주의의 반대자라 하더라도, 그 표현된 행위가 공익에 적대적일 경우에만 정당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폭력적인 국가전복을 시도하는 극단적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지만, 한편 공산주의보다도 인권보장에 있어 우월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설령 그러한 자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있어도, 그들로 하여금 여하한 직ㆍ간접적인 강제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신념을 번복하게 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게 대한민국 법의 준수의사를 강요하거나 고백시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3) 비전향장기수에게 있어서 준법서약서 제출의 의미를 살펴본다.

준법서약서제도는 과거의 사상전향서제도와는 형식적으로 다른 형태로서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서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는 오랜 기간 공산주의에 대한 신조를 지닌 국가보안법 위반자 등으로 하여금 그러한 신조를 변

경하겠다는 것을 표명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같은 신조를 지닌 자들과 격리하게 되는 효과를 도모하는 점에서 유사하다.

사상전향서는 자신의 기존 공산주의사상을 포기하겠다는 서면이다. 사상전향서에 대해 법무부장관은 이 사건 답변서에서, “사상전향제는 내심의 사상포기를 외부에 표현하도록 하고 그에 따른 불이익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이를 …… 준법서약서로 대체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사상전향제의 대상이 되는 공산주의자의 경우라면, 준법서약서 역시 ‘이제는 자유민주주의 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사표현으로서, 기존에 이미 드러났던 그들의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고 이를 외부에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준법서약서의 제출 문제는 사상전향서의 제출 문제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자유민주주의 법의 준수는 바로 ‘공산주의 실현의 포기’와 대동소이하며, 이는 자신의 세계관ㆍ주의ㆍ신조를 변경하는 것으로서 다수의견이 이야기하는 대체로 아무 특별한 의미도 없는 단순한 서류에 불과한 것이 아닌 것이다.

무릇 많은 소송에서 법해석과 법리 판단도 중요하지만, 소송의 결과는 재판부가 사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사건에서 최대의 관건은 바로 일반인이 아닌, 공산주의 사상 신봉자인 수형자들에게 준법서약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의 문제인 것인데, 다수의견은 너무 쉽게, 형식적으로 이를 판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개별사안에서 과연 이것이 양심의 자유로서 보호할 만한 상황인지의 여부를 개별적ㆍ구체적ㆍ실질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준법서약서는 사상전향서와 마찬가지로 내심의 사상 포기를 외부에 표현하도록 하는 기능을 지니며, 이는 우리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이 세계관ㆍ주의ㆍ신조에까지 미친다는 점에서,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포함시켜 보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4) 준법서약서 미제출시 가석방을 배제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적 강제인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다수의견은 준법서약서의 제출이 강제되어 있지 않으며 그 부제출의 효과도 단지 은혜 내지 사실상의 이익일 뿐인 가석방으로부터의 배제이므로, 결국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의 방법에 의하여 준법서약서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한다.

나아가 다수의견은 “이와 같이 법적 강제가 아니라 단순한 혜택부여의 문제에 그칠 경우에는 비록 그 혜택이 절실한 것이어서 이를 외면하기가 사실상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이는 스스로의 선택의 문제일 뿐, 이미 양심의 자유의 침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설사 다수의견의 판시와 같은 그러한 양심 개념을 차용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견이 준법서약서 부제출시의 가석방 배제라는 효과를 여하한 “법적 불이익”도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지나친 형식논리이고, 기본권 보호적 시각에서 매우 벗어나 있는 것이다.

우선 청구인들 중 다른 가석방 요건은 모두 구비되었으나 준법서약서만을 제출하지 않아 가석방에서 배제된 국가보안법 위반의 무기수가 있다고 전제할 때, 그와 같은 철저한 신조를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도 가석방으로 가족품으로 돌아가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살 것인지 또는 감옥안에서 여생을 마감할지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준법서약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지금껏 신봉한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것이고, 같은 사상의 동료들을 배신하는 것이므로 그는 준법서약서와 가석방 여부의 문제에서 심각한 세계관 내지 양심상의 기로에 서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양심의 자유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문제를 “권리와 혜택”이라는 개념적 도식으로만 문제를 풀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개념적 도구는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데 기여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 타당성 있는 결정을 제공할 수는 없다. 특히 오늘날의 헌법재판은 추상적ㆍ개방적인 헌법규범을 개별 사안에 관련시켜 구체적ㆍ실질적으로 해석하는 작용이라고 할진대 오늘날의 기본권 제한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해당 행위로 인한 규제가 “권리의 침해인가, 혜택의 박탈인가”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만 푸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극빈한 일반인들에게 자유민주주의 법체제에 대한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생존급여나 의료혜택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 혜택이 권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양심의 자유와 무관하다고 할 것인가.

그러므로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은 국가에 의한 중요한 혜택의 배제 시에도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그러한 혜택에 포함될 것인지는 개별적으로 논해야 할 것이나, 적어도 장기수에 있어 가석방의 배제는 그의 일생 일대의 중요한 문제로서 이에 포함시켜 보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견이 “법적 불이익”, “법적 강제”라는 개념으로 이 사건에서 양심의 자유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은, 그러한 개념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여부를 떠나서, 양심의 자유와 같은 고도의 헌법적 가치를 지닌 기본권의 침해 문제를 지나치게 형식적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5) 준법서약서제도는 수형자의 양심의 표명을 직접적으로 강제하지는 않지만, 신체의 자유의 회복 혹은 영원한 감옥생활이라는 중대한 개인의 법적 이익이 걸린 수형자로 하여금 준법서약서를 쓰도록 사실상 강요하는 효과를 지닌 것이다. 이는 국가가 간접적인 강제로써 수형자의 양심(사상, 신조)을 표명하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더라도, 이는 당연한 귀결로서 준법에의 의지가 없음을, 즉 자신의 신조 또는 사상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을 소극적으로 표명하게 된다는 점에서 침묵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준법서약서제도는 ‘안 쓰고 가석방 안 받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로 볼수 없으며,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포섭되어야 마땅한 영역인 것이다. 만일 종교적 이유로 수감된 수형자에게 십자가를 밟으면 가석방 시켜준다고 했을 때, 이를 단순히 법적 불이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양심의 자유는 민감한 인간의 내심에 관한 문제이며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구비한 국가에 의하여 그 침해가 여러 가지 행태로 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기본권의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 문제에 있어서 여러 각도에서 해당 국가작용이 가져오는 개인의 내면에 대한 실질적 효과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다. 준법서약서제도의 양심의 자유 침해 여부(1) “

헌법 제19조가 보호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는 양심형성의 자유와 양심적 결정의 자유를 포함하는 내심적 자유(forum internum)뿐만 아니라,

양심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양심실현의 자유(forum externum)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내심적 자유, 즉 양심형성의 자유와 양심적 결정의 자유는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 자유라고 할 수 있지만, 양심실현의 자유는 타인의 기본권이나 다른 헌법적 질서와 저촉되는 경우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헌재 1998. 7. 18. 96헌바35, 판례집 10-2, 159-166)

(2) 준법서약서제도는 개인의 세계관ㆍ인생관ㆍ주의ㆍ신조 등이나 내심에 있어서의 윤리적 판단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심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준법서약서라는 ‘표현된 행위’가 매개가 되지만 이는, 국가가 개인의 내심의 신조를 사실상 강요하여 고백시키게 한다는 점에서, 양심실현 행위의 측면이라기 보다는, 내심의 신조를 사실상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달리 말하면 국가가 가석방의 조건으로서 특정 개인에게, 외형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종의 당위성에 대한 내적인 확신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 스페인 헌법 제16조 제2항은 “누구도 자신의 이데올로기, 종교 혹은 신념의 고백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며, 유엔인권규약 B규약 제18조 제2항이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를 침해하게 될 강제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 또한 독일기본법 제4조 제1항이 “……세계관적 고백의 자유는 불가침이다”고 규정한 것은, 그러한 신념의 고백의 강요가 가져오는 내심의 자유의 침해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십자가 밟기’와 같은 신앙고백 등을 방지하려는 헌법의 역사적 귀결에 해당한다.

준법서약서제도는 내심의 의사를 고백하게 하거나 혹은 침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신념의 고백 여부에 관한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따라서 내심의 의사의 표현행위와 관련된 것이라기 보다는 내심의 의사자체와 직접 관련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당신의 신념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겠으나, 갑(甲)인지 아닌지만 표현해 달라”고 강요하는 경우는 어느 때나 내심의 자유와 무관한 것이 된다는 논리가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내심의 자유의 고백 여부에 관한 제한으로서 결국 양심의 자유의 내면적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므로 그 본질적 내용에 연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준법서약서 제출요구가 법률에 의한 기본권제한인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우리는 준법서약서제도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 범위 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국가안전보장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만 제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준법서약서제도는 어느 법률에서도 이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이를 하위법령에 위임하는 근거규정도 없다. 준법서약서제도는 법률의 근거나, 법률의 위임 없이, 법무부령인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1998. 10. 10. 법무부령 제467호로 개정된 것)에 의하여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법률이 아닌, 법률의 위임 없이, 법무부령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므로 더 나아가 볼 것도 없이 헌법에 위반된다 할 것이다.

(4) 준법서약서제도가 비례의 원칙을 준수한 것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설사 준법서약서제도를 ‘양심실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보는 경우에도 이 사건 규칙은 비례의 원칙을 준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우선 이 사건 규칙이 수형자의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하여 향후의 준법의사를 파악한다는 관점에서 입법목적상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를 위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인지는 의문이 있다. 즉, 소위 공안사범들 중 국법질서에 대한 거부의 의사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하여도, 이는 아직 의사결정 단계에서의 소극적 거부라고 할 것이며, 이들이 새로운 범죄행위로서 국법질서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로 나아가는 재범의 가능성이란, 사회복귀 후의 정치적ㆍ사회적 제반여건, 개인적인 환경 등 무수한 조건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였다고 하여 향후 재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 제출하지 않은 경우 가석방하면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것인

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편 재범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제도의 목적이라면 다른 일반 수형자의 가석방 심사 방법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즉, 가석방 심사대상의 수형자에 대하여 일차적으로 수형기간 중의 수형성적으로 이에 대한 간접적인 판단을 하고, 가석방 면접심사 시에 심사위원이 구두로 현재의 심경, 장래의 계획 등을 질의함으로써 충분하고, 또 그 과정에서 수형자의 사상 및 헌법질서에 대한 인정 여부 등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어, 재범의 위험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 규칙은 재범의 가능성 판단을 위하여 개인의 근본적인 신조 내지 양심에 관계되는 사항을 서면으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를 필요한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나아가 준법서약서제도로 인하여 개인이 겪게 되는 양심상의 갈등, 즉 가석방을 얻어내기 위하여 자신의 근본적 신조를 변경하겠다는 표현을 하거나 혹은 침묵을 통해 신조의 불변을 나타내는 것에 대한 내면적 갈등의 심각성은, 이 사건 규칙이 추구하는 재범의 위험성의 한 판단자료라는 공익과 대비시킬 때, 법익간의 균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라. 결 론그러므로 이 사건 규칙은 양심의 자유의 내심의 자유를 침해하며,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양심실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볼 때에도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헌임을 면할 수 없으므로 이상과 같이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바이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 권 성 김효종

김경일(주심) 송인준 주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