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다23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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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금 [대법원 1999. 8. 19., 선고, 99다23383, 전원합의체 판결] 【판시사항】 [1] 수표면상에 발행지의 기재가 없더라도 그 밖의 수표면의 기재로 보아 그 수표가 국내에서 수표상의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발행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국내수표로 추단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수표면상 발행지의 기재는 없으나 그 밖의 수표면의 기재로 보아 국내수표로 인정되는 경우, 그 수표의 효력(유효)

【판결요지】 [1] 국내수표란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수표를 말하는 것이므로 국내수표인지 여부는 수표면상의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내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수표면상에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수표면에 기재된 지급지와 지급장소, 발행인, 지급할 수표금액을 표시하는 화폐, 수표문구를 표기한 문자, 어음교환소의 명칭 등에 의하여 그 수표가 국내에서 수표상의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발행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발행지를 백지로 발행한 것인지 여부에 불구하고 국내수표로 추단할 수 있다. [2] [다수의견] 수표면의 기재 자체로 보아 국내수표로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도 완전한 수표와 마찬가지로 유통·결제되고 있는 거래의 실정 등에 비추어, 그 수표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이를 무효의 수표로 볼 수는 없다. [반대의견] 재판할 사항에 대하여 법규가 있고 그 의미 내용 역시 명확하여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정의의 요청(이른바 목적론적 축소해석의 경우)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이른바 헌법합치적 해석의 경우)에 의하여 그 법규의 적용범위를 예외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으로서는 명문의 효력규정의 적용범위를 무리하게 벗어나거나 제한하는 해석을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인바, 수표법 제1조 제5호 및 제2조에 관하여는 정의의 요청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에 의하여 그 적용범위를 예외적으로나마 제한하여 해석할 만한 아무런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다수의견과 같이 위 수표법의 명문규정이 이른바 '국내수표'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법원이 수표법에도 없는 단서 조항 즉 '발행지에 관하여 국내수표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셈이 되고, 이는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법형성 내지 법률 수정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법원의 법률해석권의 범위를 명백하게 일탈한 것이다.

【참조조문】

[1]

수표법 제1조 제5호 ,

제2조

[2]

수표법 제1조 제5호 ,

제2조 ,

민법 제1조

【참조판례】

[1][2]

대법원 1998. 4. 23. 선고 95다36466 전원합의체 판결(공1998상, 1338) /[2]

대법원 1968. 9. 24. 선고 68다1516 판결(집16-3, 민61)(변경),


대법원 1983. 5. 10. 선고 83도340 전원합의체 판결(공1983, 986),


대법원 1990. 5. 25. 선고 89다카15540 판결(공1990, 1363)(변경),


대법원 1994. 9. 30. 선고 94다8754 판결(공1994하, 2838)(변경)


【전문】 【원고,피상고인】 【피고,상고인】 【원심판결】 대구지법 1999. 4. 7. 선고 98나6792 판결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가 할인을 위하여 소외인에게 각 발행일 및 발행지 백지, 액면금 각 금 1,000,000원, 지급지 각 대구, 지급인 각 주식회사 국민은행 대구지점으로 된 가계수표 5장을 발행하였는데, 원고는 1997. 10. 9. 위 소외인에게 위 각 수표를 할인하여 주고 이를 배서, 양도받아 발행일을 각 1997. 12. 9.로 보충하여 1997. 12. 11. 위 각 수표를 위 지급인에게 지급제시하였으나 지급거절되어 같은 날 위 지급인으로부터 지급거절선언을 작성받아 위 각 수표를 소지하고 있는 사실, 원고는 위 각 수표를 지급제시함에 있어 발행지는 보충하지 아니한 채로 지급제시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 사건 각 수표는 국내 금융기관인 국민은행이 교부한 용지에 의하여 작성된 것으로, 지급지는 대구, 지급장소는 국민은행 대구지점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발행인은 국내의 자연인이고, 수표금액은 원화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수표문구 등 수표면상의 문자가 국한문 혼용으로 표기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각 수표는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국내수표임이 명백하므로 그 수표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이를 무효의 수표로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어서, 위 각 수표에 대한 지급제시가 비록 발행지의 기재 없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법하게 지급제시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위 각 수표의 발행인인 피고는 소구권을 행사하는 원고에게 위 각 수표의 액면 합계 금 5,000,000원 및 이에 대한 그 판시와 같은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2. 수표법은 발행지를 수표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제1조 제5호), 발행지를 기재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수표는 효력이 없으나, 다만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가 있는 때에는 그 곳을 발행지로 보며(제2조 제1항, 제4항), 지급지의 기재가 없는 때에는 지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를 지급지로 보되 그 기재 기타 다른 표시가 없을 때에는 발행지에서 지급할 것으로 한다(제2조 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수표의 발행지란 실제로 발행행위를 한 장소가 아니라 수표상의 효과를 발생시킬 것을 의욕하는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서, 수표의 발행지에 관련된 수표법 제29조 제2항, 제30조, 제36조 제4항, 제48조, 제65조 등과 섭외사법의 관련 규정들을 살펴보면, 수표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는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토를 달리하거나 세력(歲曆)을 달리하는 수표 기타 국제수표에 있어서는 수표행위의 중요한 해석 기준이 되는 것이지만,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이른바 국내수표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수표란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수표를 말하는 것이므로 국내수표인지 여부는 수표면상의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내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수표면상에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수표면에 기재된 지급지와 지급장소, 발행인, 지급할 수표금액을 표시하는 화폐, 수표문구를 표기한 문자, 어음교환소의 명칭 등에 의하여 그 수표가 국내에서 수표상의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발행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발행지를 백지로 발행한 것인지 여부에 불구하고 국내수표로 추단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일반의 수표거래에 있어서 발행지가 기재되지 아니한 국내수표도 수표요건을 갖춘 완전한 수표와 마찬가지로 발행·양도 등의 유통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음교환소와 은행 등을 통한 결제 과정에서도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거절됨이 없이 관행상 발행지가 기재된 수표와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음은 현저한 사실이고, 나아가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아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의 유통에 관여한 당사자들은 완전한 수표에 의한 것과 같은 유효한 수표행위를 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표면의 기재 자체로 보아 국내수표로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도 완전한 수표와 마찬가지로 유통·결제되고 있는 거래의 실정 등에 비추어, 그 수표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이를 무효의 수표로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는 효력이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1968. 9. 24. 선고 68다1516 판결, 대법원 1990. 5. 25. 선고 89다카15540 판결, 대법원 1994. 9. 30. 선고 94다8754 판결 등은 위 법리와 저촉되는 한도에서 변경하기로 한다. 원심은 소액사건인 이 사건에서 위 판례 등에 상반되는 판단을 하였다고 할 것이나, 위 판례 등을 위와 같이 변경하는 바이고, 원심판결은 위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그 결과에 있어서 정당하다 할 것이므로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3.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하는바, 이 판결에는 대법관 정귀호, 대법관 김형선의 반대의견이 있는 이외에는 관여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4. 대법관 정귀호, 대법관 김형선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수표법 제1조 제5호는 수표에는 그 요건의 하나로서 발행지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한편, 같은 법 제2조는 발행지를 기재하지 아니한 증권은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가 없는 한 '수표의 효력이 없다'라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발행지와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는 그 효력이 없고, 따라서 소지인이 이러한 미완성 수표로 지급을 위한 제시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법한 지급제시가 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원래 법규의 의미·내용과 적용범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정하여 선언하는 권한 즉 법률의 해석·적용의 권한은 법원에 있으며, 법원은 법규의 흠결을 이유로 재판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재판할 사항에 대하여 적용할 법규가 없을 경우에는 법률 이념에 맞도록 다른 법규를 유추적용하고, 법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 내용이 애매모호할 경우에는 그 입법 취지에 따라 적절한 해석을 함으로써 그 법규의 의미 내용을 확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법규가 있고 그 의미 내용 역시 명확하여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정의의 요청(이른바 목적론적 축소해석의 경우)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이른바 헌법합치적 해석의 경우)에 의하여 그 법규의 적용범위를 예외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으로서는 명문의 효력규정의 적용범위를 무리하게 벗어나거나 제한하는 해석을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인바, 앞서 본 명문의 규정에 관하여는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정의의 요청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에 의하여 그 적용범위를 예외적으로나마 제한하여 해석할 만한 아무런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다수의견과 같이 위 수표법의 명문규정이 이른바 '국내수표'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법원이 수표법에도 없는 단서 조항 즉 '발행지에 관하여 국내수표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셈이 되고, 이는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법형성 내지 법률 수정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법원의 법률해석권의 범위를 명백하게 일탈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다. 다수의견은 입법정책상의 문제 또는 사실인정의 문제를 법률해석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다. 다수의견은 요컨대, 국내수표에 있어서는 발행지 기재에 별다른 의미가 없고, 발행지 기재가 없는 수표도 관행상 완전한 수표와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음이 현저한 사실이며, 또 그러한 수표의 유통에 관여한 당사자들도 유효한 수표행위를 하려 하였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이러한 수표도 유효하고, 따라서 그 상태에서의 지급제시도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행지를 수표요건으로 할 것인지 여부는 발행행위의 요식에 관하여 발행인의 기명날인 외에 서명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와 같이 법률로 정할 사항이고(1995. 12. 6. 법률 제5010호 개정된 수표법 참조),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별다른 의미'나 '관행' 또는 '당사자의 의사'의 유무에 의하여 좌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관행이나 당사자의 의사는 법률행위 해석의 논거로 될 수 있을지언정 이를 가지고 법률행위 등을 규율대상으로 하는 법규, 그 중에서도 효력규정인 법규의 해석 논거로 삼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법리에 맞지 아니한다. 뿐만 아니라, 원래 수표는 현실로 현금 지급을 하는 대신에 일시 대용적으로 발행되는 지급증권으로서 원칙적으로 은행을 그 지급인으로 하여야 하고, 그 발행인은 수표가 제시된 때에 처분할 수 있는 자금을 지급은행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바(수표법 제3조, 제59조), 이러한 수표에 있어서 발행지 기재는 수표의 문면상 발행인의 표시와 더불어 수표금에 대하여 최종적인 지급담보책임을 지는 발행인이 어느 곳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누구인가를 특정하여 수표발행 이후에 수표를 취득하거나 이에 대하여 보증, 기타 수표행위를 하려는 사람에게 수표의 출처를 알려주고 그 신용을 가늠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수표 발행지의 기재가 수표행위의 준거법의 표준이 되는 이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다수의견은 수긍이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우리 수표법은 다수의견이 말하는 '국내수표'에 중점을 두고 제정되었다고 볼 것인데, 수표요건으로서의 발행지가 국제수표에서 큰 의미가 있고 '국내수표'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또한,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관행은 이를 공지의 사실로 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법관이 직무상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로서 그 사실의 존재에 관하여 명확한 기억을 하고 있거나 기록 등을 조사하여 곧바로 내용을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볼 여지도 없으므로, 그러한 관행을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사 그러한 관행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관행이 강행법규인 수표법에 저촉된다면 이를 허용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만약 다수의견과 같이 이를 허용한다면 관행에 의하여 강행법규를 개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성문법주의 법체제 아래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다수의견은 거래 당사자의 의사를 그 논거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소구책임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효과의사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수표법의 기술적·형식적 특성에 기하여 인정되는 법정책임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기도 하다.

라. 다수의견은 수표의 절대적 요식증권성을 무시한 견해이다. 수표는 다른 요식증권과 마찬가지로 그 권리관계를 증권에 명시하도록 하는 한편, 화물상환증·선하증권 등과 같이 증권의 본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법정사항을 결하더라도 그 증권이 무효로 되지 아니하는 상대적 요식증권과는 달리, 법정사항 중 하나를 결하더라도 구제를 예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증권 전체가 무효로 되는 절대적 요식증권에 해당하는바, 이러한 절대적 요식증권성은 유통성의 확보와 지급의 확실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청에 따른 것이므로, 다수의견이 내세우는 사정만으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를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수표의 요식성을 완화하는 수표유효해석의 원칙을 긍정하는 견해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제한으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인바, 수표의 필요적 기재사항의 하나인 발행지의 기재를 결한 수표를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수표의 요식성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여기에 수표유효해석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는 없다고 할 것이다. 특히 신용증권인 어음과 비교하여 보아도, 수표는 지급증권으로서 지급인의 자격이 은행으로 제한되고 발행인이 처분할 수 있는 자금을 지급은행에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제시기간과 시효기간이 단기일 뿐만 아니라 신용증권화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마련되어 있는 등 그 형식적·추상적 성격이 더욱 강하고, 심지어 우리 나라는 수표에 관하여만 특별법인 부정수표단속법을 제정·시행하는 방법으로 형벌로써 그 유통성과 지급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조치까지 취하고 있으므로, 수표의 절대적 요식증권성은 더욱 더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발행지 기재가 흠결된 수표에 관하여 부정수표단속법이 적용되는지 여부를 판단한 대법원 1983. 5. 10. 선고 83도340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이를 부정한 반대의견은 물론이고, 부정수표단속법의 입법목적에 중점을 두어 이를 긍정한 다수의견 및 그 보충의견마저도 그러면 과연 발행지가 흠결된 수표를 수표법상 유효한 수표로 볼 수 있느냐는 점에 이르러서는 이를 단호히 부정함으로써, 발행지가 흠결된 수표가 수표법상 효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였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에 있어서 다수의견은 수표가 가지는 절대적 요식증권성을 외면한 채 일반의 법적 확신을 갖춘 것으로 확인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도 아니하는 관행 등을 내세워, 단기간 내에 고도의 유통성과 지급의 확실성을 요구하는 수표거래에 있어서 법률에 명확히 규정되고 알아보기 쉬운 수표의 유효 여부 판단 방법을 제쳐두고, 거래 당사자로 하여금 그 개념조차 명확하다고 볼 수 없는 '국내수표'와 '국제수표'라는 것을 그 수표면에 기재된 지급지와 지급장소, 발행인, 지급할 수표금액을 표시하는 화폐, 수표문구를 표기한 문자, 어음교환소의 명칭 등의 애매한 기준에 의하여 가려낸 다음 이에 따라 그 유효 여부를 판정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거래의 안정을 해치는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마. 다수의견은 우리 수표법의 운용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손상시키고, 수표가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경제실정에도 맞지 아니한다. 발행지를 수표요건에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독일·프랑스·일본 등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국가에서는 이를 수표요건에 포함시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의 효력을 부인하고 있음에 비하여, 미국·영국 등 영미법계에 속하는 국가에서는 이를 수표요건에 포함시키지 아니하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도 그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수표법이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주지의 사실이며, 제네바통일수표법(1931)은 수표요건에 관하여 아무런 유보조항도 두지 아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수표의 효력에 관하여, 오직 우리 나라만이 다수의견과 같이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수표를 국내수표과 국제수표로 구분한 다음, 국내수표의 경우에는 영미법계에 속하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보아 유효라고 하고, 국제수표에 대하여는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보아 무효라고 한다면, 이는 위 두 개의 법계 어디에도 속하지 아니한 우리 나라만의 독자적인 법운용으로서 어음법·수표법의 세계적 통일화 경향에 역행하는 것이며 국제적인 신뢰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수표는 국내거래뿐만 아니라 국제거래에 있어서도 지급의 수단 또는 송금의 수단으로서 활발히 유통되고 있고, 이 점에서도 수표는 어음에 비하여 그 국제적 유통성이 보다 더 강한 것인바, 다수의견과 같이 수표의 효력에 관하여 국내수표와 국제수표를 무리하게 구별하여 달리 취급하는 것은 위와 같은 수표거래의 실정에도 맞지 아니하는 법운용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바. 지금까지 대법원은 일관되게 발행지의 기재를 요건으로 하는 명문을 무너뜨리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가능한 한 유효하게 해석하려는 견해를 유지하여 왔는데, 다수의견이 특별한 상황의 변화도 없이 갑자기 성문법주의 법체제하에서 강행법규적 성격의 법규이자 효력규정인 수표요건에 관한 명문규정에 정면으로 거슬리는 결론을 끌어내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그 설시 내용으로 보아 발행지의 기재가 흠결된 어음에 관한 대법원 1998. 4. 23. 선고 95다36466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을 원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다수의견 자체도 어음법의 명문에 반하는 극히 예외적인 것이므로, 수표의 유효요건이 어음의 그것과 비교하여 일부 유사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판시 취지를 여기에서 그대로 확장하여 적용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지극히 기술적인 개념인 수표의 '발행지'에 관하여 법률이 이를 유효요건으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반면, 판례는 이를 국내수표에 관한 유효요건으로 보지 아니하는 상황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법조인이 아닌 일반 거래 당사자로서는 어리둥절하고 또한 불안정한 상태에서 거래에 임할 수밖에 없으므로, 언젠가는 법률이 개정되든지 판례가 변경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사.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살피건대,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수표는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미완성수표인 상태에서 그 지급을 위한 제시가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므로, 이를 적법한 지급제시로 볼 수는 없고, 따라서 피고는 발행인으로서 소지인인 원고에 대하여 수표법의 명문규정에 따라 그 소구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급제시가 적법하다고 하여 피고에게 그 소구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원심의 조처는 상고이유에서 지적한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때에 해당함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함이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장 윤관(재판장) 정귀호 박준서(주심) 이돈희 김형선 지창권 신성택 이용훈 송진훈 서성 조무제 변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