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의사의 고백
1
[편집]이 글을 쓰려는 나는 몇 번이나 주저하였는지 알 수가 없읍니다. 이 글은 나의 인격을 당신에게 대하여 스스로 낮추는 동시에 또는 나의 죄악의 기록을 스스로 짓는 것이 되는 것을 앎으로 몇 번이나 들었던 붓을 내던졌는지 알 수가 없읍니다. 이 글을 쓰려고 결심하였을 때, 또 이 손에 들은 철필촉이 나의 신경(神經)을 바늘 끝으로 새기는 듯이 싸각싸각하는 소리를 내며 나의 쓰지 않으면 아니 될 글을 쓸 때, 비로소 나의 내면 생활(內面生活)에 무슨 큰 변환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당신과 내가 숙명적(宿命的)으로 이 글을 서로 받고 주는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을 것도 나는 현대인(現代人)이라는 관념 아래에서 명백히 압니다. 또는 내가 이 글을 써서 당신에게 바치지 아니하여도 나에게 아무 의무나 책임이 없을 것도 법률의 관념으로 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그것을 회피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당신에게 써서 보내려 할 만큼 나를 무서웁게 하며 내면에 잠재한 모든 힘을 위압하고 강제할 만한 무슨 위대한 힘이 또다시 우리 인생 사회에 얼기설기하여 있어, 그 힘이 나와 또는 S라 하는 이성 사이에 일어난 그 어떠한 사실을 그 사실 중에 직접 당사자가 되는 당신에게 이 글을 아니 보낼 수 없게 하였읍니다.
당신도 이 글을 보시며는 새삼스러웁게 놀라실 줄 압니다. 그리하고 또 S라는 여성이 얼마나 당신에게 원망스러웁고 또는 무서운 여자인 것을 당신도 아시겠읍니다. 그러나 그 죄는 결코 S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책임이 <나>라는 사람에게 있읍니다. 나라고 하는 사람만 없었더면 S라는 여성도 그와 같은 무서운 죄악 ── 사람으로서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죄악은 짓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찌하였든지 이 죄악을 짓게 된 나로서 이 글을 써서 당신에게 모든 사실을 자백하여 그 죄를 사하는 동시에 또는 이 <나>라는 사람에게도 다소간에 동정할 점이 있는 것을 알아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2
[편집]내가 S를 알기는 지금으로부터 육 년 전 일입니다. 그때 나는 의학교를 갓 나온 젊은 의사로서 사각모(四角帽)를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스물 한 살 의사>라는 자기 자랑의 마음이 가슴 가운데 가득하여 말하는 때나 또는 행동에 다소간에 거만하고 방약무인하는 빛이 보인 것은 그때에 자기 자신도 종종 깨달은 일이 있었읍니다. 나이가 어린 데다가 남에게서 별로 볼 수 없는 자격, 즉 의사 면허장(醫師免許狀)을 가진 것이 그때 나의 마음을 얼마나 만족하게 하였는지 그것이 원인이 되어 적지 않은 죄악을 갖게 되었으며, 또는 나에게는 남달리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원한을 품게 한 여성이 이 세상에 몇인지 알 수가 없읍니다.
더구나 모두가 그렇다고 단언해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마는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참으로 우리 인류의 우환질고를 위하여서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몇 사람이 못 되고, 첫째 의술을 팔아서 땅이나 논을 장만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하는 것보다 그만큼 사회상 대우가 있으며 또는 그만큼 제한이 없는 직업인 까닭이라 하겠지요.
내가 처음으로 개업을 하였을 적입니다. 부모의 주선으로 어떠한 이가 뒤를 보아 주어서 병원을 낸 지 두 달만인가 하루는 우리 형님의 소개장을 가지고 온 여자가 하나 나를 찾아왔었읍니다. 우리 형님이라는 이는 그때 K여학교 교사로 계실 때인데 그 소개장을 가지고 온 여자는 자기가 가르치던 여자로 수년 전에 K여학교를 졸업하였다는데 마침 늑막염(肋膜炎)의 증세가 있어 어떠한 의사든지 마음놓고 치료를 받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여 우리 형님이 나를 소개하여 주신 것이었읍니다. 그 여자인즉 당신의 애인인 S이었읍니다. 그때의 나는 여러가지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때이었읍니다. 나는 사람의 머리를 보면 피부와 근육과 또는 그 속에 잠겨 있는 뇌(腦)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며, 그야말로 토끼의 고환(睾丸)과 사람의 고환이 현미경 밑에서는 동일하다는 정리밖에는 몰랐었읍니다. 사람이 울고 웃는 것도 그 신경 작용의 이렇고 저런 것에 따라서 변하며 그 사람의 잘하고 못하는 것도 대뇌(大腦)의 대소나 조직 여하에 따라서 분명히 구분되는 것밖에는 몰랐으며 여자의 골격과 남자의 골격은 몇 프로센토가 틀리는데 남자의 골반(骨盤)과 여자의 관골은 눈감고 만져 보아도 다른 것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과 사람이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 것은 다만 호르몬 작용에 따라서 되는 것이며 어찌하였든 사람을 볼 때에 나의 눈에는 다만 한 개의 기계(機械)로밖에 보이지 않았읍니다.
나의 손으로 살 위에 메스를 대고서 살점을 베어 내고 피를 긁어 낼 때 나의 마음은 아마 조각가(彫刻家)가 차디찬 대리석을 깎는 것이나 다름없는 법열(法悅)의 쾌감을 느끼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S가 왔을 때 나는 그를 보고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고서 다른 환자(患者)를 보려고 진찰실로 들어가자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O라는 간호부의 얼굴빛이 썩 좋지 않은 기색이 보였읍니다.
나는 속마음으로 이상하기는 하였으나 말을 물어 볼 수가 없어서 다만 그때에 병을 보던 어린애의 맥박을 듣고 있으려니까 O라는 간호부는 나의 수종도 하여 줄 생각을 하지 않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조금 있다 들어오더니,
『그 여자가 이따 오마 하고 갔어요』
하였읍니다. 나는 그 O라는 간호부의 마음을 알았읍니다. O라는 간호부는 내가 의학교 적에 만난 여자로 나에게는 첫사랑을 준 여자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너무나 질투심이 많아서 내가 어떠한 여자하고든지 만나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읍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인물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는 여자가 혹시 병을 보러 오면 그 여자는 반드시 무슨 핑계를 잡아서든지 쫓아 보냈읍니다. 그렇다고 결코 나의 사랑을 독점(獨占)하려 하는 것도 아니었읍니다. 처음 내가 그 간호부를 학생 시대에 사랑할 적에는 퍽 열렬하게 사랑을 하였으나 그 여자와 내가 육적 관계를 맺은 뒤에 내 병원에 와서 일을 보게 된 뒤에는 그 여자는 벌써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았읍니다. 그의 사랑은 벌써 김이 나간 사랑이었읍니다. 나의 손을 쥐던 그 뜨거운 손은 어디로 가고 차디찬 손이 나의 손을 쥐었읍니다. 또는 그의 눈동자에 별 같이 빛나던 빛은 나를 볼 때 나타나지 않고 그 어떠한 사람을 볼 때 나타났읍니다. 나는 그 여자로 말미암아 그 얼마나 마음이 괴로왔는지 알 수 없읍니다. 그래서 그를 병원에서 내쫓으려고 생각까지 하였읍니다. 다시 만나지 않으려고까지 하였더니 하루는 O가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을 용서하라 하므로 나도 또한 그리 박절히 할 수가 없어 용서를 하여 주었읍니다. 그러나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담지를 못하는 것인지 그의 마음은 나에게서 영영 가 버렸읍니다. 그는 또다시 다른 애인을 얻어 두었읍니다. 그러나 O는 언제든지 내 옆에 다른 여자가 가까이 오지를 못하게 하였읍니다. 이것은 일종의 변태 심리에서 나오는 질투이겠지요. 그뿐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유지하려는 여자의 앙칼진 마음인지도 모르겠읍니다. 그 날도 그 S가 나에게 가까이 오는 것이 싫어서 무슨 거짓말을 해서든지 쫓아 보낸 것이 분명하나 아직 증거를 잡을 수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두었읍니다.
3
[편집]그날 하루는 공연히 마음이 좋지 못하였읍니다. 더구나 이따 오마 하던 S가 오지 않으므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음이 나중에는 분노로 변하여 버리었읍니다. S는 당신도 아시다시피 미인이었읍니다. 더구나 그 눈썹 긴 눈에 검은 눈동자가 말할 때마다 광채 있게 도는 것이라든지 어여쁜 입이 반쯤 웃음을 띠는 것에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데다 그의 넝청넝청 걷는 걸음걸이는 그대로 뒤로 가서 끼어안을 만하였읍니다. 그러나 내가 S 오기를 기다린 것은 결코 S에게 마음을 두어서 그리한 것이 아니라 O라고 하는 간호부의 원수를 갚으려 하는 것이었읍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옷을 갈아입고 O간호부 집을 찾아갔읍니다. 때는 마침 첫봄이 되어서 상긋한 봄 냄새와 부드러운 봄바람이 콧속으로 스미어 분한 마음에 뜨거웁게 타오르는 뇌속에까지 기어들었읍니다. 집에서 나올 때에는 O를 만나면 당장에 죄수 심문하듯 하여 그 말을 알고 말리라 하였으나, 그래도 증거를 알기 위하여 나는 먼저 형님에게로 갔읍니다. 형님에게로 간즉 형님은 나를 보시더니 무슨 잘못한 일을 한 사람을 책망하려는 사람처럼,
『어서 오너라』
하시며 나를 쳐다보셨읍니다. 나는 그때에 나의 마음에 먹었던 말이 들어맞은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읍니다.
『아까 누가 너 찾아가지 않았든?』
『네, 왔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왔는데요.』
『글쎄 병 보러 간 사람을 쫓아 보내는 일도 있니?』
『아녜요, 제가 쫓아 보낸 것이 아니라요.』
『응.』
『간호부가 다른 사람더러 이따 오라고 하는 것을 잘못 말을 했어요. 그래서 노하지나 않았나 하고, 더구나 형님이 소개장까지 써 주신 것을…』
『글쎄 말야. 그럴 리가 없는데 퍽 이상하게 나도 생각을 하였지. 그 S라는 여자가 오더니 퍽 성이 난 얼굴로 날더러 하는 말이, 너는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간호부가 나와서 지금 바쁘셔서 진찰을 하지 못 하겠으니 이따나 내일 오라고 그러드라나, 그러면서 내쫓다시피 가라고 해서 다시는 가지 않는다고 그러니, 그 빌어먹을 간호부년이 어째 그 모양이냐, 그런 것을 왜 붙여 두니?』
이 말을 들은 나로서는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읍니다. 속에서는 날카로운 칼날같이 뾰족하고 예리한 감정이 당장에 O를 없애 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났읍니다. 그래서 형님에게 그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대단히 일이 잘못되었읍니다. 내일은 꼭 다시 오라고 말씀하여 주십시오』
하고 형님의 집 대문간을 나서서 가려는 곳은 다시 O의 집이었읍니다. O는 여관에 있었읍니다. 그 여관에는 다른 의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 있는 집으로 여자라고는 O와 또 다른 간호부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있을 뿐 이었읍니다. 내가 O의 여관에 발들여 놓으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읍니다. 물론 그 여관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은 O를 위하여서는 조금 섭섭한 말일지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창피한 일이었읍니다. 그러므로 O는 내가 자기 여관에는 으례 오지 않으리라 하였읍니다. 자기는 자기 여관에 있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안심하고 할 수가 있었읍니다.
내가 O의 집에 들어서려 할 때에는 거침없이 그의 방문을 열고서 머리채라도 끌어내려 하였으나 참으로 딱 당하고 보니까 일은 마음과 정반대로 다리가 주저주저하여졌읍니다. 우선 사람을 찾아서,
『O씨 계시우』
하니까 하인은 잠깐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안 계세요. 누구십니까?』
나는 한참 주저주저하다가 나의 이름을 대기가 창피하여,
『언제 나가셨소?』
하고 다른 말을 하였읍니다.
『글쎄, 저는 잘 모르겠읍니다. 안 계신 것만 알지요.』
『누구하고 나가신 것도 모르고?』
『모르죠』
하고 고개를 내흔들었읍니다. 그러자 누구인지 바깥에서 양복 입은 사람 하나가 들어왔읍니다. 그는 서슴지도 않고 나처럼 하인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그러다가 나를 돌아다보다가 나와 얼굴이 마주칠 때 나도 놀라고 그도 놀랐읍니다. 서로 쳐다보는 눈에는 무서운 원수의 화살이 당장에 서로 쏠 듯하기도 하고 옛날의 그리운 우정이 서로 끼어안을 듯하기도 하였읍니다.
『야!』
서로 손을 일시에 내밀고 그 손을 서로 쥘 때에 그 손은 차기도 하고 더웁기도 하였읍니다.
『재미가 어떤가?』
『그저 그렇지!』
다만 근질근질한 얼굴을 서로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요 어째 왔으며 누구를 보러 왔느냐?는 것은 서로 물어 보기 전에 똑같이 앎으로 다만 전쟁에서 서로 적군이 된 친구 모양으로 마주 보기만 하고서 우리 두 사람은 발 하나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읍니다.
그러자 저쪽 구석에 있는 미닫이가 열리며 내다보이는 사람은 없다고 하던 O였읍니다. 나는 그때에 모든 것을 알았읍니다. 이 모든 것이라는 것이 오늘 당신에게 이 글을 써서 바치게 된 동기를 나에게 만들어 주었읍니다.
나는 그 자리에 더 오래 서 있지를 못하였읍니다. 오래 서 있으면 O의 얼굴이 간질간질할 것보다도 나의 얼굴이 더욱 간지러워서 못 견뎠읍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나왔읍니다. 사람이 이와 같이 분한 경우만 당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그러하나 나는 그 자리에서 그 경우를 당하는 것처럼 분한 때가 없는 것 같았읍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어서 집에도 가지 않고 어떤 요릿집에 가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었읍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에는 우리 집 건넌방이요 내 아내가 나를 깨웠읍니다. 나는 그때, 나의 아내를 볼 때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읍니다.
4
[편집]그 이튿날 나는 병원에 있었읍니다. 오늘 나에게 진찰을 받으러 오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불쌍한 생각까지 났읍니다. 오늘처럼 나의 마음이 불쾌하고 화증나는 날이 없었읍니다. 내가 내 생각에도 내가 외과 수술(外科手術)을 하는 것이 겁이 날 만치 나는 조심을 아니 할 수 없었읍니다. 더구나 부인 환자가 오기만 하면 그 부인 환자를 모조리 때려 내쫓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두 자기의 것을 만들어서 O간호부의 원수를 갚아 보고 싶었읍니다.
오정이 되도록 O간호부와 나 사이에는 말이 없었읍니다. 다만 벙어리 모양으로 환자를 진찰할 뿐이었읍니다. O도 나의 불쾌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마는 여러 남자에게 시달림을 많이 당한 그는 내가 성이 난 눈치를 채면, 도리어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람의 간을 달게 하였읍니다.
한 시쯤 하여 S는 왔읍니다. 마침 손이 비었었으므로 얼핏 문 밖으로 나가서 그를 맞아들이며,
『어제는 매우 실례를 하였읍니다』
하며 나는 웃었읍니다. 이것이 오늘 병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웃은 것이었읍니다. 이 웃는 것을 내가 문을 열자 방 안에 있던 O가 보았던지 그의 두 눈등에서 서리가 일 듯이 새파란 빛이 돋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읍니다. S는 방안에 들어와서 머뭇머뭇하였읍니다.
『앉으시지요』
하며 나는 S의 서 있는 곳을 보니까 거기에는 교의가 없었읍니다. 그러자 나는 보통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O를 향하여 교의를 갖다 놓으라고 하였읍니다. 독살스러운 눈으로 S를 보고 있던 O는 아무 말 없이 싹 돌아서더니 그대로 문을 홱 닫고 나가버렸읍니다. 이것이 이때에 나는 S에게 미안하기도 한 동시에 또 O가 얼마나 얄미웁고 그 행동이 방정맞아 보이는지, 나는 날아가는 제비보다도 더 빠르게 문 밖으로 쫓아나가 그의 손을 잡았읍니다. 나는 을크러지게 그 손을 잡고 이를 앙다물다시피 하고 그를 쳐다보았읍니다. 바깥에는 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교의에 앉아 있다가 눈이 똥그래서 우리의 꼴만 살피었읍니다. 나는 머리끝까지 분함이 탱중하였으나 그래도 체모를 생각하고 안으로 끌고 들어갔읍니다. O는 독살이 나서 쌕쌕하며 암상이 닥지닥지한 눈으로 나를 흘겨서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왜 이러세요? 손을 좀 노세요?』
하며 손을 뿌리치려 하였읍니다. 그때 S는 어찌 된 영문도 알지 못하고 다만 한옆으로 비켜 서서 우리의 행동만 살피고 있었읍니다.
『무엇이야? 손을 노라구? 네가 무엇이냐? 손님에게 그런 무례한 짓이 어디 있어?』
『무엇이 무례해요? 저는 여태까지 그러한 심부름은 하여 보지 못하였어요. 저는 죽어도 그런 짓은 하지 않어요.』
그때의 나는 성미도 몹시 표독하였읍니다. 더구나 조금만큼이라도 내 수에 틀리거나 나의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이 터럭만치라도 거역을 하는 일이 있으면 그때에는 단정코 용서하지를 않는 성미였읍니다. 그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무슨 기운이 나의 가슴으로 칵 치밀어 올라오더니 나의 두 눈에서는 불기운 같은 기운이 번개같이 나며 나의 오른손이 O의 파르족족한 뺨을 힘있게 갈겼읍니다.
『무엇이야?』
소리를 지르자 O는 그대로 얼굴을 두 손으로 푹 싸더니 폭 주저앉아서 한참은 아무 말이 없이 앉아 있었읍니다. S는 옆에서 이 꼴을 보더니 눈이 똥그래지며 두 팔을 옹송그리고 서서,
『선생님, 왜 그러세요?』
하며 측은한 듯이 O를 내려다 보았읍니다. O는 조금 있다가 눈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도 씻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일어서서,
『어디 다시 한번 때려 보세요. 당신이 나를 때리시면 죽기밖에 더 할까요? 그러지 말고 죽여 보세요. 당신의 손으로 당신 앞에서 죽는 것이 나의 평생 소원예요.』
O의 말이 입에서 나와서 입 끝에서 사라지는 말인 것을 내가 모를 리는 없으나 비록 빈말이나마 전에 잠깐이라도 나에게 사랑을 준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되어 그러한지 퍽 나의 가슴을 쓰리고 거북하게 하였읍니다.
『듣기 싫어!』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병원의 약제사·조수, 또는 환자들이 모여 들었읍니다. 조수는 우리의 사이와 또는 나의 성미를 짐작하므로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하고서 O를 얼핏 끌어내려고 O에게로 갔읍니다. O가 뺨에서 손을 뗄 때에는 그 파르족족한 뺨에 시뻘건 손가락 자국이 떡가래같이 났었읍니다. 나는 다시,
『가! 다시는 여기 있지 못해!』
하고 한 손을 들어 손가락에 힘을 주고 O를 문 바깥 편으로 몰아내라는 듯이 지휘를 하였읍니다.
『왜 이러세요?』
약제사는 내 앞을 가려서면서 물었읍니다. 나는 그때야 여러 환자들이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저 환자들은 나를 믿고 나에게 자기의 병을 고치러 왔다, 그뿐 아니라 내가 만일 조금이라도 저 사람들에게 위신이 떨어지거나 또는 신용을 잃는다 하면 나는 그만 환자를 잃어버리는 동시에 명예와 또는 수입이 여지없이 떨어질 것을 깨닫고서, 얼핏 머리속으로 생각나는 것은 O간호부에게 모든 잘못을 씌워 버리리라 하는 것이었읍니다.
『왜가 무엇이야? 간호부가 되어서 손님에게 대하여 잘못을 하니까 그렇지.』
나는 목소리와 자세에 위엄을 돋우려고 일부러 허리를 펴고 점잖은 태도를 취하였읍니다.
『잘못을 하니까 선생님이 그리하셨지 당신이 미워서 그러셨겠소? 선생님 성미를 알면서 왜 그러우? 한두 해 모시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의 조수는 O를 타이르기에 노력하였읍니다.
『자, 남부끄럽소. 어서 저 방으로 갑시다. 어서, 어서』
하며 O의 등을 밀고서 바깥으로 나가매 O는 밀려나가면서 원망스러운 듯이 나를 흘겨보더니,
『어디, 선생님 두었다 보세요』
하고 문 밖으로 나가자 바깥에 있던 어떤 실없는 환자의 목소리로,
『모양 좋다, 말 안 들으면 그런 법이지.』
빗대 놓고 비웃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만 너무 지독한 걸!』
하고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읍니다.
5
[편집]O의 시기는 나로 하여금 반동적(反動的)으로 S를 농락할 마음이 생기게 하였읍니다. O간호부가 자기는 나를 배반하면서 나는 자기의 손아귀에 집어넣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 고약한 심사가 더 미웁고, 또는 이 손에 하나 저 손에 하나를 쥐고서 어느 편으로든지 더 기울어지는 편을 택하려 하는 그 심사가 더욱 가증스러웠읍니다.
그러자 나는 S라는 여자를 어떻게 해서든지 손 가운데다가 집어넣어서 O 간호부를 내 눈앞에서, 내가 보는 데서 그대로 말려 죽이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났읍니다.
S의 병은 그리 중하지는 않았읍니다. 일 주일이나 이 주일간 치료를 하면 관계치 않을 것을 나는 일부러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고개를 기웃하고 대답하기가 난처한 듯이,
『글쎄요. 과히 염려하실 것은 없으나』
하고 말끝을 마치지 못하매 S는 자기의 병이 그렇지 않아도 중한 병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는 차에 내가 대답을 시원히 하지 않는 것을 보더니,
『왜 그러세요? 오래 가겠어요?』
하며 눈 가장자리가 파래지면서 근심스러웁게 물었읍니다.
『아뇨.』
나는 더욱더욱 S의 마음을 초조하게 하기 위하여 굳이 말을 느럭느럭하며,
『별로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으나』
하고 말을 끊었다가,
『좀 중합니다』
하는 데는 힘을 주어서 말을 하였읍니다.
『글쎄 중한 줄은 저도 압니다마는 치료를 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어요?』
『글쎄요, 고쳐 보아야 알겠지요.』
나는 짐짓 얼굴에 냉정한 표정을 나타내며 말을 하니까 S는 거의 절망이나 한 사람처럼,
『그럼 한이 없다는 말씀예요?』
『아뇨. 한이 없기야 하겠읍니까마는 좀 시일이 오래 걸리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러고 S를 나의 손 가운데에다 넣으려면 S를 나의 곁에 두는 것밖에 없을 것 같아서,
『그러고 너무 한만히 나다니신다든지 또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어서는 안 될 걸요.』
『글쎄,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말씀이지, 저도 집에 있으면 머릿살만 아프겠고 병에 해로울 줄 압니다. 그러니까 이 병원에 입원할 병실이 있으면 입원이라도 하고 병 나을 때까지 있어 볼까 하는데요.』
『네, 그거야 완비하고 있으니까 S씨가 계시겠다면 상당히 편의를 도와 드리지요.』
여기에 나는 나의 일을 시작하는 데 첫째 번 성공을 하였읍니다.
6
[편집]S는 내 병원에 입원을 한 지 열흘이 되었읍니다. 그의 남편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들러서 병자도 위문하고 또는 나에게 여러가지로 부탁을 하기도 하였으나 나는 그가 오는 것이 언제든지 불쾌하였읍니다. 그리하자 마침 그의 남편이 볼일이 있어서 동경으로 가게 되었으므로 이것이 둘째 번으로 내가 내 일을 하는 데 성공하였다 할 것이겠지요.
S에게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읍니다. 하루 종일 병실에 누워서 책이나 보고 잠이나 자므로 그는 몹시 쓸쓸한 모양이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틈을 타서 가끔가끔 병실로 가서 이야기도 하여 주고 혹 시원한 과일이라든지 또는 과자, 무엇이든지 사다 주며 심심하면은 서로 침대 머리에서 트럼프 장난같은 것도 하였읍니다.
처음에는 서로 존경하는 말을 서로 써 오다가 다음에는 농담을 교환하게 되었읍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저는 선생님이시니까 모든 것을 믿고서 이렇게 무례하게 합니다』
하며 일변 변명을 하였으나 그 변명은 도리어 나와 S 사이가 무례한 짓을 해도 관계치 않은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었읍니다.
하루는 달이 환하게 밝았는데 그는 창에 비치인 달을 쳐다보기 위하여 일부러 전등을 끄고 누워 있었읍니다.
나는 어디를 가서 약간 술이 취하여 말할 수 없는 흥취가 가슴에서 용솟음을 치는데 파란 달빛은 나의 핏줄로 스며드는 듯하였읍니다. 나는 S의 안부를 알려는 것보다도 그와 또 농담이 하고 싶고 그의 얼굴이 한 번 보고 싶어서 나의 병원으로 와서 S 병실의 문을 열었읍니다.
『누구요』
하는 소리가 방 안에서 나기는 하나 불은 꺼서 얼른 보이지 않는데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유리창 커튼을 통하여 흘러드는 듯한 달빛 밑에 백옥 같이 흰 S의 얼굴이 마치 천사가 드러누운 듯이 보이고, 그의 까만 머리카락은 카락카락마다 달빛이 어린 듯하였읍니다. 나는 그때에 비로소 여자의 숭엄(崇嚴)한 아름다움을 찾아냈읍니다. 더구나 홑이불 하나만 걸친 그의 온 육체의 윤곽은 마치 로댕의 조각을 보는 듯하였읍니다.
『나요』
하고 가까이 들어서려 하니까,
『내가 누구요?』
하는 목소리는 술이 반 취한 나의 귓속으로는 그렇게 정있는 소리를 처음 들은 듯하였읍니다.
『나를 몰라요?』
하고 침대로 가까이 가 서매 그때야 안심한 듯이 가슴을 내려앉히면서,
『나는 누구라구』
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제 그 희고 부드러운 손을 나의 손으로 쥐었지마는 그는 나의 불같이 타오르는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하였읍니다.
『그런데 이 밤에 웬일이세요?』
하더니 옷을 벗어서 일어나지는 못하면서,
『그런데 어두워서 안 되었으니 저 불 좀 켜 주세요』 하고 전등을 가리켰읍니다.
『불은 켜서 무엇 하우? 달이 저렇게 밝은데』
하니까,
『그렇지 않어도 달 구경 하느라고 불을 껐어요. 대관절 이리로 앉으시지요.』
그때에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만족할 수가 없었읍니다. 자기의 마음에도 자기의 하고 싶은 대로 할 만한 아름다운 여자가 다만 나와 저 두 사람만 있는 이 비인 방에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모든 것은 하고 싶은 대로 되리라 하였읍니다. 그때의 나의 머리 가운데에는 남의 아내라는 관념도 없고 간통죄라는 생각도 없고 다만 내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읍니다.
S의 얼굴에는 적막한 마음에서 억지로 일어나는 웃음이 나타났읍니다.
『혼자 계시기가 퍽 쓸쓸하시지요?』
나는 위로나 하는 듯이 S에게 물었읍니다. S는 참으로 적막하다는 듯이 또
는 누구든지 이 적막을 없이 하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이켜
나를 쳐다보며,
『네, 오늘 저녁은 웬일인지 몹시 쓸쓸해요』
하는 그의 눈에는 누구에게든지 맘 튼튼하도록 매달려 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더 긴장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듯, 기색이 역력히 보이었읍니다.
나는 이 틈을 타서 S를 유혹 또는 농락하리라 하여,
『그러면 산보를 좀 하시지요.』
『산보를 해도 병에 관계가 없을까요?』
그는 산보가 하고 싶다는 말이었읍니다.
『너무 적적하게 계시는 것보다는 조금 바람을 쏘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경우처럼 환자가 의사의 명령을 복종하여 주었으면 좋겠지요. 영숙은 당장에 뛰어 일어날 듯이 기쁜 빛이 얼굴에 가득하여,
『그러면 조금 나갔다 들어올까요?』
『그러시요. 그러나 혼자 나가시면 안 되지 않었어요. 제가 잠깐 동행을 하여 드리지요.』
S는 잠깐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창 밖을 염려스러운 듯한 눈으로 내다보더니,
『그렇지만』
하고 나를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읍니다. 나는 그때 그의 마음을 알아보았읍니다. 자기는 남편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병을 맡긴 의사라 할지라도 밤중에 둘이 서로 나가는 것은 세상에 어떠한 소문을 만들는지 자칫하면 자기의 일생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고 비록이 내가 즉 의사가 아무리 자기의 신뢰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과 그의 인격까지는 믿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속에 그때 번갯불같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었읍니다.
그러나 그의 너무 쓸쓸함은 그와 같이 일어나는 의심을 이겨 버리고 문 밖으로 그를 끌어내기에 너무 많은 힘이 있었으며 또는 적막한 가운데에서 젊은 여자가 주리고 주린 이성(異性)에 대한 그 어떠한 위안이 너무 결핍함을 깨달았었던 것도 사실이었읍니다.
그는 어린애같이 옷을 입었읍니다. 그러고는,
『여보세요, 어디로 갈까요?』
할 때에는 통 속에 갇혔던 비둘기같이 춤을 추다시피 하였읍니다.
『글쎄요, 어떻든 나가시지요.』
마당에 달은 찢어지는 듯이 밝았읍니다. 우리는 마치 금강석 가루를 깔아놓은 마당을 걸어가는 듯이 모래들은 어여쁘게 반짝거리었읍니다. 병원은 적막한 바람이 불어간 듯이 말없이 우리들을 전송하였읍니다.
우리는 길거리를 피하였읍니다. 그 길거리를 피하여 으슥한 곳으로 다니자는 것은 S나 나나 모두 동감이었읍니다.
그것은 자기는 남편 있는 사람이요 또 나는 남편 있는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다소간 양심에 찔리는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벌써 나의 머리 속에 예정하였던 것이 있었음이었읍니다.
S는 그때 나를 쳐다보며,
『누가 보면 내외로 알겠네』
하며 웃을 제 나에게는 만족이 있었읍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영숙이 나에게 자기의 말을 알려 준 것 같아서 장차 자기 성공이 기탄 없고 조금도 어려움없이 될 것을 미리 짐작하게 하였읍니다.
S는 꿈에 취한 사람이 잠꼬대하듯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자기의 친정 이야기로 시집 이야기로 또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또는 시골로 구경다니던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그러고 자기는 아직까지 부족할 것이 없이 지내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읍니다.
그것은 자기 남편의 이야기였읍니다. 자기 남편이 우선 자기보다 나이가 한 살이 아래라는 것과 너무 신경질이라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자기는 S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S에게 자기를 사랑하여 달라는 것이었읍니다. 즉 말하면 S는 자기 남편을 사랑은 하여도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다는 말이었읍니다. S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마다 나에게는 승리를 노래할 좋은 기회를 자꾸자꾸 지어 주는 소리뿐이었읍니다.
우리들은 열두 시나 넘어서 어떤 카페로 갔읍니다. 밤참을 같이 먹으려고 음식을 갖다 놓았을 때 S는 피곤한 빛이 가득하여 가벼운 한숨만 쉬고 있었읍니다.
『드십시다.』
둘이 먹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포도주 한 병과 위스키 한 병을 가져 오라 하였읍니다. 그래서 위스키는 내가, 포도주는 S에게 권하였읍니다.
이것을 본 S는,
『저는 술을 먹을 줄 몰라요.』
『아뇨. 한두 잔은 괜찮습니다.』
이러한 때에 나는 내가 의사라는 것을 그에게 힘있게 발휘하였읍니다.
다른 술은 해 주어도 이 포도주는 여러 가지로 이로운 것이요, 그래서 의사들이 환자를 먹이는 것이니까요, 또 흥분제가 되어서 조금 피곤할 때 한두 잔 마셔도 괜찮다 하였읍니다.
영숙은 피로한 것을 잊을 수가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한 잔을 칠 홉쯤 마시었읍니다.
『맛도 흉허지 않고 좋지요?』
『네.』
『자, 한 잔만 더 하시지요?』
나는 두 잔째 권했읍니다.
두 잔을 마시더니 해쓱하던 얼굴이 진홍같이 빨개졌읍니다. 그러더니 누울 자리만 찾으면서,
『에그, 취해요. 취해요』
하며 일어섰다 문을 열어 놓았다 수건으로 부채질을 하였다 하였읍니다.
그때 나는 참으로 못 할 일을 하였읍니다. 그가 먹다 놓은 컵에다가 내가 먹던 위스키를 한 잔 부어 놓고,
『왜 그러세요? 이리 와 앉으세요. 찬바람을 쏘이거나 기동을 하시면 해로웁습니다.』
손목을 끌어다가 자리에 앉히고 다시 나머지 술 ── 그 독주가 섞인 술── 을 권하였읍니다.
S는 손을 내저으며,
『에그, 싫어요』
하며 사양하는 것도 듣지 않고, 나는 내 손으로 그 술을 먹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