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FOCUS - DISCUSSION WITH MG CHON TU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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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편집]

번역문[편집]

본문[편집]

1. 전체 전문은 2급 비밀임.

2. 요약 및 논평: 12월 14일에 있었던 전두환 소장과의 논의에서, 본인은 한국군 내 계속되는 불화의 위험성, 북한이 보일 수 있는 반응에 대한 이 불화의 영향, 헌정적 자유화의 진전과 정치적 및 경제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12월 12일의 사건 전개에 관한 우리의 중대한 우려를 강조하였음. 본인은 한국은 우리의 군과 우리의 사업가들과의 좋은 관계에 의존했었고, 이 둘 모두 일어난 사건에 의해 깊이 방해받았음을 경고하려고 노력했음. 전두환은 본인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그 또한 이 사건의 결과에 관해 걱정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음. 그는 길고 자세하게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자신에게 유리한 설명을 제시했음. 그는 그의 행동이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며,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에 관한 수사를 완수하려는 시도였다고 주장했음. 군 내 고위급 조력자들 및 정승화의 지지자들의 지지를 얻어, 그는 [암살] 음모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정승화 및 두 다른 장성을 구금하고, 그들의 유무죄를 따지며, 그들의 혐의가 벗겨지면 그들의 직책을 되돌려주려고 의도했었음. 정승화가 이를 거부하자 사건은 확대되었음. 전두환은, 그는 개인적 야망은 없고, 개인적으로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계획을 지지하며, 군 내의 통일성이 한 달 내로 회복될 것이란 주장을 견지했음. 그렇지만 그는 현재는 표면상으로는 평화로우나, 많은 수의 군 내 정승화 지지자가 몇 주 내로 상황을 되돌릴 것을 두려워하며 경고했음. 이 위험이 억제된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이것이 더 나은 대한민국 군대란 결과를 낼 것이라 주장했음.

3. 본인의 전두환과의 연락은, 그가 이 연락을 우리가 자기 집단의 권력 찬탈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표식으로 사용하려 할 위험성을 안고 있었음. 본인은 이 위험을 여러 방법을 통해 대체적으로 상쇄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일단 지금은 대한민국 육군의 권력을 잡고 있는 전두환과 그의 무리에게 우리(미국)의 우려의 크기를 빠르게, 직설적으로, 그리고 직접 본인이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제로 행동하기로 결정하였음. 본인은 전두환이 우리의 의사를 명확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그는 나에게 내가 비슷한 대화를 최규하 대통령과 한 것에 관한 이야기를 대통령이 본인에게 말해주었다고 하였음.

4. 본인은 이 대화에서 특별히 세 가지 지점에 놀랐음. 첫번째로, 본인은 반란 세력이 행동 전 최소 10일간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음을 명시하는 기존에 우리에게 전달된 메시지(관련 전문)와 계획의 흔적을 완벽히 감춘 전두환의 이야기 간의 불일치로 인해 놀랐음. 두번째로, 전두환은 그가 무릅쓴 위험과 그것이 만들어낸 새로운 위험에 관해 아주 방어적이었음. 세번째로, 전두환 본인이, 실제로 군 내부의 권력 투쟁의 위험이 존재함을 인정한 것은, 본인의 내린 첫 평가에서 본인이 말한 것, 즉 소수의 젊은 장교들이 엄청난 양의 해결해야 할 일들 및 관련된 모든 군사적 행위에 대한 정당화 필요성을 남기는 방식으로 기존의 지휘부로부터 권력을 쟁취했다는 점을 불길하게 상기시켜주는 것임. 확연하게도 전두환과 그의 동료들은 군 내의 반대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의 도움을 원할 것임. 우리가 쉽게 군 내부의 통일성에 관해 강조할 수 있을 동안, 우리는 상당한 확률로 몇몇의 극도로 어려운 선택들을 앞으로 몇 주, 그리고 몇 달간 만나게 될 것임. 요약 끝.

5. 본인은 보안사령관이자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 소장을 12월 14일 오후에 만나 12월 12/~3일의 사건들과 그것들의 대한민국 군대의 단합, 정치적 및 경제적 안정성, 민주적 발전 및 북한 위협의 측면에의 심각간 영향에 관한 우리의 우려를 표현하였음. 본인은 그 행동들이 대한민국 군 내에 위험한 선례를 남겼고, 북한의 위협을 보았을 때 큰 위험성을 안았으며, 내부적으로는 최규하 정부가 질서정연한 정치적 자유화를 위한 발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안정성에의 전망에 관한 질문을 추가로 제기하였다고 전하였음. 본인은 대한민국이 문민 정부를 유지해야 하며 발생한 사태로 인해 깊이 불안해하는 미국 군대와 사업가들의 지지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려 노력하였음. 전두환은 사건들의 영향에 관한 본인의 경고를 주의깊게 들었으며, 자신이 개인적인 정치적 야망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헌법적 자유화 계획을 지지한다고 주장하였음. 그는 [자신에 의해] 취해진 행동들이 더욱 좋고, 강하고, 통일된 대한민국 군대를 만들어낼 것이며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안정 계획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확신(아래의 설명으로 인해 제한됨)을 내비쳤음.

6.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수사가 지속되는 배경에서의 12월 12일의 사건들에 관한 기나긴 설명을 하였음. 그는 10월 27일부터 정승화가 암살에 가담했는지에 관한 의심이 있었다고 하였으나 그는 국내 상황이 나아지기 전까진 정승화를 수사를 위해 구금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국무총리가 임명되자, 그는 정승화의 암살에의 가담에 관한 사라지지 않는 의구심들 중 일부에 대한 “흑백”의 대답[1]을 얻기 위해 정승화를 구금할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고 느꼈다. 전두환은 정승화 및 같이 구금된 이건영 중장과 정병주 소장 두 장교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10월 26일부터 끊임업이 쌓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10월 26일이 되기 바로 전 김재규는 이건영에게 800만원을, 정병주에게는 500만원을, 정승화에게는 300만원을 주었음. 김재규는 또한 그의 후배인 정승화가 육군참모총장이 될 수 있도록 했음. 추가로, 정승화는 일관성 없고 상호모순적인 증언을 했으며, 암살이 있었던 저녁 동안 해당 지역에서의 행적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설명한 적이 없었음.

7. 그의 민간 수사 인력들이 요구한 대로, 그리고 국가의 안정을 뒤흔들고 대중의 신뢰를 위협할 수 있는 군사적 충돌의 위험성을 안고, 정승화를 일찍 체포하기보다는, 전두환은 기다리기로 했음. 그는 또한 대한민국 군대 내의 정승화의 지지자들이 이 행위를 저지할 것을 걱정하였음. 전두환은 정승화와 가까운 황영시 중장, 유학성 중장, 차규헌 중장에게 수사에서의 진실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의심을 제거할 필요성에 관한 속마음을 털어놓음으로써 그의 계획을 준비하였음.

그들은 그 계획에 동의하였다고 함. 국군보안사령관은 전통적으로 대통령에게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에 관해 직접 보고하였으므로, 그는 최규하에게 12월 12일 저녁에 가서 “진실들”과 정승화의 체포에 관해 이야기하였음.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처럼 최규하 대통령이 결단적으로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점에서 오판했다고 털어놓았음. 대신 최규하 대통령은 정승화와 가까운 사이인 노재현 국방장관의 재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고 버텼음. 계획을 재가할 것이라 가정하였지만 재가는 받지 못한 상황에서, 전두환은 정승화를 데려오기 위해 다섯 명의 수사 인력을 보내었으나, 정승화는 저항하였고, 그의 헌병에게 발포하라고 지시하여 한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이 중상을 입었음.

8. 전두환은 그 일 이후 저녁에 일어난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로 인한 혐의에 답할 것에의 “법적인 명령”을 거부한 정승화의 탓이라고 주장함. 최규하가 노재현 국방장관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한 것과 국방부, 수도경비사령부, 그리고 육군본부에 있는 정승화 지지자들이 수도기계화보병사단26사단을 움직인 것이, 전두환이 그들 자신을 보호하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부대들을 움직이도록 “강요했음”. 국방장관의 위치가 새벽 네 시 쯤 확인되고 신현확 총리와 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로 가고 나서야 이 문제는 끝을 볼 수 있었음.

9. 미래에 관해 논의하면서, 전두환은, 현재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밑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진술했음. 아직 군내엔 많은 수의 정승화 지지자들이 요직에 있으며, 그들은 군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끼친다는 것임. 전두환은,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또 다른 한 달 간은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을 안정화”하기 위해 행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음. 그는 군 내부적 문제가 한 달 내로 모두 해결된다면, 군대는 더욱 강하고, 더욱 통일되며, 그리고 더 나은 전투 준비 태세와 지도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10. 본인은 기존에 받았던 정보(관련 전문 3번째 문단)와 차이가 크고, 우리에게, 어떻게 주도면밀한 계획 없이 수도경비사령부의 병사들이 그들의 사령관을 체포할 수 있었는지와 같은, 대답없는 질문들을 남긴 이 긴 합리화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음.대신에, 본인은 본인이 사건에 대한 많은 수의 서로 다른 해석을 들었으며 그의 해석을 들었음을 고맙게 여긴다고 하였음. 본인은 문민 행정부 하의 넓은 지지기반을 가진 입헌적 정부의 개발을 확실히 하는데 우리의 관심이 있음을, 그리고 우리는 12월 12일의 사건이 이 발전을 저해하고 대한민국 군대를 분열시키며, 북한으로부터의 위험을 증대시킬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음을 덧붙였음.

11. 전두환은 정승화에게 속았으며 사실은 미국의 통제 하에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또한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박정희 암살 사건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과 김재규의 선처를 위해 미국이 압력을 넣고 있다는 끊이지 않는 유언비어를 뿌리뽑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음. 나는 이 기회에 직설적이고 강력하게 우리의 10월 26일의 사건에 대한 개입이 없었음을, 그리고 암살자에게 내려질 정의의 심판을 약하게 할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표명하였음.

12. 브루스터(당시 CIA 한국 지부장)이 본인과 함께하였다. 그레이버[2]에게 직접 손수 전달하기를 요청함. 글라이스틴

각주[편집]

  1. "유무죄를 가리다"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한 관용구로 보임.
  2. 윌리엄 J, 그레이버(당시 CIA East Asia Division의 Chief)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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