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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씨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은행 사무원 ○씨는 남에게 자기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길 좀 비켜주.”

“이게 노형의 길이오?”

○씨는 첫마디로 성을 냅니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들도 ○씨를 대단히 무서워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멀리하려 하였습니다.

이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교만한 ○씨가 이즈음 한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외다. ○씨가 매일 ○○은행으로 다닐 때에 그의 맞은편에서 오는(매일 만나게 되는) 어떤 사람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외 다. 그 ‘어떤 사람’은 코를 잔뜩 하늘로 쳐들고 ‘이 세상에 나밖에 사람 이 어디 있어’ 하는 듯이 뚜거덕 뚜거덕 걸어옵니다. ○씨는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목이 저절로 어깨로 수그러들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자식!”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씨는 스스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분한 마음은 삭지를 않았습니다.

하루 아침은 ○씨는 오늘은 꼭 그 자식을 흘겨 꺼꾸러뜨리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어떻게 하나?’ 그는 조반을 먹은 뒤에 시간을 맞추어가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어디 보자. 그는 마음을 결박해가지고, 늘 그 모르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곳까지 걸어갔습니다. 즉 그 사람은 저편 모퉁이에서 ○씨의 편으로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역시 그 사람의 코는 하늘로 향하였습니다. 입에서는 담배의 연기가 가장 자기 주인을 경배하는 듯이 너울너울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씨도 힘을 다하여 눈을 흘겼습니다. 충혈된 그의 눈은 아프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씨의 눈 같은 것은 이 세상에 그 존재의 여부 조차 모른다는 듯이 태연히 걸어갔습니다.

‘또 모욕당했다.’ 은행에서 사무를 보는 하루 종일 ○씨의 머리에서는 모욕당했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이 자식을…… 음, 이런! 원! 에, 분해…….”

그날 밤 그는 밤새도록 헛소리를 탕탕 하도록 열까지 났습니다. 그의 아내는 영문은 모르고 은행에서 뉘한테 따귀라도 얻어맞았는가 하고 대단히 걱정하며 간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그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출근하겠느냐 ‘ ’는 아내의 묻는 말에 당연한 일이라고 고함을 친 뒤에, 조반을 먹고 또 나섰습니다.

‘에, 이 자식을 오늘은 어제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그는 어제 그 사람의 담배 물었던 것이 더욱 자기를 업신여기던 것 같아서 오늘은 자기도 그 사람을 업신여기는 뜻으로 담배를 붙여 물고 뚜거덕뚜거 덕 걸었습니다.

그 사람은 역시 그 모퉁이에서 나왔습니다. 이놈.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제 원수를 꼭 갚아야겠다고 아주 거만한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역시 ○씨와 그의 담배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걸어옵니다. ○씨는 너무 답답하여 그 사람과 자기의 사이가 10여 보쯤까지 가깝게 된 때에 에헴, 하고 기침을 했습니다. 즉 그때였습니다. 그 사람은 눈을 한번 껌벅하더니 담배를 땅에 내던지고 피곤한 듯한 오만한 눈알을 천천히 굴려서 ○씨에게로 향하였습니다. ○씨는 뜻하지 않고 눈을 내리떴습니다.

아차! ○씨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눈을 다시 들 때는, 그 사람과 ○씨는 벌써 너덧 걸음 둥지게 되었습니다.

○씨의 마음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이런 수치가 어디 있어! 왜 내가 눈을 내리떴단 말인가. 바보! 바보!

이튿날 아침에 한강 하류에서 송장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 송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유서로 그것이 ○씨의 죽음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유서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자에게 욕을 보고 그것이 분하여 세상을 버리오.
— 철교 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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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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