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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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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공화제 수 도:앙카라(Ankara) 인 구:6,649만 3,970명(2001) 면 적:78만 580㎢ 소 득:1인당 GDP 6,800달러(2001) 공 용 어 :터키어 화폐단위 :터키리라(lira / TL) 주생산물 :감자, 과일, 밀 / 기계, 비료, 펄프, 의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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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자연
[편집]Turkey-自然
소(小)아시아 반도의 북쪽은 흑해(黑海), 서쪽은 에게해, 남쪽은 지중해에 면해 있으며 대부분을 아나톨리아 고원이 차지하고 있다.러시아·이란과의 접경지대인 아르메니아 고원은 표고 2,000
3,000m 이상이며 이 고지대 위에 터키 최대의 호수인 반호(湖)가 있다. 평균표고 1,130m의 아나톨리아 고원은 중앙부가 가장 낮아 여기에 투즈호 등 많은 호수와 소택지(沼澤地)가 분포한다. 북부의 폰투스 산맥은 흑해를 따라 달리고, 남부의 타우루스 산맥은 지중해 연안을 동서로 달려 고원지대를 에워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이들 알프스·히말라야 조산 지대에 속하는 습곡산지(褶曲山地)는 신제3기 이후의 조산운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그 지각운동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폰투스, 타우루스 양산맥이 다 해안에 가깝기 때문에 남부의 안탈리아·아다나 부근 이외에는 넓은 해안평야가 없다.서부의 보스포루스해협과 마르마라해에서 다르다넬스해협을 거치는 에게(Aegean)해 연안은 굴곡이 많은 침수(沈水) 해안의 특색을 나타내는 다도해(多島海)이다. 내륙하천 외연(外緣) 산맥들을 침식해서 횡곡(橫谷)을 형성하고 각각 흑해와 지중해로 흘러든다.북쪽엔 예실 이르마고강, 키질이르마크강, 사카리아강, 남쪽엔 세이한강, 제이한강이 있다. 에게해에 흘러드는 강으로는 굴곡이 많은 멘데레스강, 게디스강이 있다. 동남부에서는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이 흐르고 있다.
터키의 기후
[편집]온대성이며, 북부 지방은 최고 25
, 최저 5
, 남쪽은 20
내지 10
이다. 강우량은 지중해 연안과 동부산지에 많아 연간 650㎜를 넘으나 아나톨리아 고원내에는 연간 300㎜ 이하의 지역이 많고 스텝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서·남부의 지중해 및 에게해 연안지방은 겨울이 우기이며,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아나톨리아 고원
[편집]Anatolia 高原
소아시아반도의 중앙부에 있는 해발 500
1,500m의 고원으로 내륙부는 건조하여 스텝성의 기후를 보이고 있다.
다르다넬스 해협
[편집]Dardanelles
海峽
길이 60㎞, 폭 2
6㎞의 해협으로 에게 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한다.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길이 29㎞,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00m이다. 이 양해협은 국제적으로 중요하며 보스포루스 해협엔 이스탄불이 위치한다.
아라라트산
[편집]Ararat山
구소련 및 이란과의 접경지대에 있다. 아르메니아 고원에서 돌출하는 해발 5,165m의 고산. 노아의 방주(方舟)가 도착한 곳이라는 전설로 유명하다.
터키의 주민
[편집]-住民
주민의 대부분은 터키인. 이외에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유태인이 있고 시리아 및 이라크와의 국경지대에는 쿠르드인들이 살고 있다.터키인은 중앙 아시아의 키르기스, 우즈베크, 투르크멘인과 원래는 동일한 혈통이나 서아시아에서 상당한 혼혈 과정을 거친 결과 유럽인을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알타이계 터키어로서 아랍 제국(諸國)과는 인종적(人種的), 언어적으로 다르다.
터키의 역사
[편집]-歷史
히타이트 왕국은 통일아랍의 고대왕조가 성했을 무렵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에 보가즈쾨이에 왕도를 정하고 인근을 정복하여 독특한 문명을 개화시켰다.그후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는데 로마 시대는 페르가몬 왕국과 폰투스 왕국이 로마의 속주(屬州)가 됨으로써 로마 문화가 널리 전파되었다. 이어 셀주크 투르크가 출현했는데 그 속에서부터 13세기에 이르러 오스만 투르크가 등장했다. 6세기의 오스만 투르크는 이스탄불을 수도로 정하고 판도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3대륙에 걸치는 대 이슬람 제국으로서 영화를 떨쳤으나, 18세기에 들어오면서 국내에 봉건 제세력이 대두하여 통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럽 열강과의 전쟁에 패했고, 1877년의 러시아와의 전쟁의 결과 영토가 현저히 줄어 터키는 유럽 제국의 반식민지로 전락했다.1차대전을 독일편에서 싸운 터키의 영토는 대전 후 현재의 소아시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방에 한정되어 버렸다. 이때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자 케말 파샤가 등장하여 독립전쟁을 일으켜 600년간 계속된 오스만 왕조를 타도함으로써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케말 파샤는 종교·언어·교육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고 근대적인 산업·경제 개발에 진력했다.
터키의 정치
[편집]-政治
근대 터키의 정치사는 세 차례의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등 격동기를 거쳐왔다. 1980년 에브렌 군참모총장의 쿠데타가 성공하여 국가안보평의회를 구성하고, 1982년 개헌 후 에브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1989년 조국당의 외잘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1993년에 사망, 1993년 5월 간선제 선거를 통해 임기 7년의 데미렐 대통령이 취임했다. 2000년 5월 세제르 대통령이 취임했다.
터키의 산업·무역
[편집]-産業·貿易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취업 인구의 6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공화국으로서 발족하면서 정부는 기술자의 양성, 선진농업기술의 도입, 농업금융의 정비 등 농업의 보호·진흥에 힘쓰고 있다.주요 농산물은 밀·보리·감자인데 이외에 면화·올리브·연초 등의 공예작물도 재배되고 있다. 특히 품질이 우수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초는 흑해 연안의 삼순과 에게해 연해에서 재배되며 주요 수출품목의 하나가 되어 있다.아나톨리아 고원의 건조지대에서는 양·앙고라 토끼·염소·소 등이 사육되며 양모, 피혁 등이 생산된다.광업자원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미개발지역이 많다. 석탄은 연간 278만t 정도가 채굴되는데 주산지는 종굴다크, 에레일리 등지이다. 철광석은 디부리이, 동광석은 엘가니, 물가르 등지에서 생산되며, 세계 제3의 산출고를 자랑하는 크롬광은 동남부 이스켄데룬 부근의 규레만을 중심으로 에스키셰히르, 안탈리아 등지에서 채굴된다. 석유도 1950년부터 채굴이 시작되었다. 이라크의 석유수출물량의 절반이 터키를 경유하는 송유관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입을 올리고 있다.공업은 중공업의 발달이 아직 불충분하여 경공업을 위주로 한다. 카이세리선 면공업, 부르사선 양모공업의 시설이 있고, 그 외에는 유리·시멘트·제당·제지공업이 있는 정도이다. 1930년 후반 카라뷔크에 세워진 제철·제강공장을 중심으로 중공업이 발전되고 있다.주요 무역 대상국은 미국과 영국인데 연초와 면화를 수출하고 기계, 석유제품 등 공업제품을 수입한다.보스포루스 해협, 다르다넬스 해협 등 전략상의 요충지대가 있다는 지리적 조건과 아라비아의 석유자원문제 등이 있어 대공산권(圈) 방위선으로서,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
터키의 교통·도시
[편집]-交通·都市
공화국 수립 이전인 1856년에 시작된 철도건설은 거의 전적으로 외국자본에 의한 것이었으나 철도는 그후 전부 국유화되었다. 국토 전역에 미치는 철도는 물자수송의 주요수단이 되고 있다. 주요간선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아나톨리아 고원을 횡단하여 이스탄불에 이르는 바그다드 철도이다.수도 앙카라와 지중해, 에게해, 흑해 연안의 모든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는 잘 발달해 있으나 폰투스 산맥과 타우루스 산맥이 흑해와 지중해에 연해 있기 때문에 해안지방의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망은 발달해 있지 않다. 예부터 해상 교통이 활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터키 최대의 항구 이스탄불은 흑해와 마르마라해 중간에 위치한다는 좋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물자의 거래가 성행한다. 에게 해안의 이즈미르, 지중해안의 이스켄데룬, 흑해안의 삼순과 트라브존도 주요항구이다.근년에는 항공기의 발달로 국내항로가 정비되었는데 이스탄불은 국제항공상의 요지가 되어 있기도 하다.도시는 해안지방 특히 에게해 연안에 많이 분포해 있다. 주요 도시는 아나톨리아 고원의 앙카라, 보스포루스 해협에 면하는 이스탄불, 에게해 연안의 이즈미르, 지중해 연안의 아다나 등이다.
페르가몬
[편집]Pergamon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 현재는 베르가마라고 불르는 헬레니즘 문화의 한 중심지. 북방의 다르다넬스 해협 부근에 트로이의 유적이 있다.
보가즈쾨이
[편집]Bogazky
앙카라 동방 약 150㎞에 위치하며 히타이트 왕조의 수도. 시는 약 400년간 번영했으나, 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 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파괴되었다. 20세기초에 히타이트어로 씌어진 고문서가 발견되어 왕조시대의 정치·경제기구 등이 밝혀졌다.
앙카라
[편집]Ankara
아나톨리아 고원 중부에 위치하는 터키 제2의 도시. 인구 319만명(2000). 1923년 터키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정치·문화·교통·군수공업의 중심지이다.
이스탄불
[편집]Istanbul
보스포루스 해협의 양안(兩岸)에 위치한 육·해·공 교통의 요충지이며, 터키 최대의 상공업도시. 인구 941만 3,000명(2000). 시의 중심기관은 해협의 서안 쪽에 집중해 있다. 비잔틴 제국 및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했으며, 비잔틴 건축물·회교사원 등 유적이 많다.
부르사
[편집]Bursa
마르마라해 남부의 초록색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14세기 한때 오스만의 수도였으며, 양탄자·비단 등의 섬유공업이 발달해 있다.
이즈미르
[편집]Izmir
이즈미르만에 면한 터키 최대의 무역항이며 제3의 대도시이다. 육·해교통의 요충으로 외국상사가 많고 근대공업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아다나
[편집]Adana
세이한강 하류변에 있는 도시. 인구 113만 3,028명(2000). 남부 터키의 중심지이며, 폭약·담배·섬유·비누 등의 공업이 성하다.
터키의 관광명소
[편집]-觀光名所
이슬람교 국가인 터키에는 이슬람사원인 모스크가 많고 대부분의 모스크들이 돔과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신비스러운 도시인 이스탄불은 유서깊은 관광명소가 밀집해있어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톱카프 궁전
[편집]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거주하던 섬이다.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곳이다. 지금은 제국이 남긴 각각의 방들을 박물관으로 꾸며놓아 당시에 누렸던 부귀에 영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궁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마을로서 의사당이나 술타의 거실은 물론 왕실의 여인들이 거쳐했던 하렘과 굴뚝이 딸리 큰 부엌이 있다. 천장이 돔으로 된 10개의 큰 방과 28개의 굴뚝이 있었다고 한다.
돌 마바흐체 궁전
[편집]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세워진 이 궁전은 원래는 목조건물이었으나, 1814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인 압둘 마지드에 의해서 1856년에 재건되었다. 잘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유럽 스타일을 본따 지어졌는데 특히 유럽에서 보내온 수많은 현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 후기 6명의 술탄이 일부 사용했다.
블루모스크
[편집]블루 모스크는 술탄아흐메트사원의 애칭이다. 내벽을 장식한 푸른 타일은 각기 독특한 문양이면서도 건물 전체로 보면 연속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터키의 모든 사원은 저마다 색다른 타일 장식으로 꾸며져 있지만, 이곳은 특히 유명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블루모스크는 이스탄불 관광의 중심지로 술탄아흐메트 1세가 1616년에 건축한 이슬람 사원이다. 블루모스크는 6개의 높은 첨탑과 여러 개의 돔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축양식이 독특해서 중앙 천장에 4개의 돔이 있지만 기둥은 없다. 바닥에 깔려 있는 가지각색의 빛깔과 무늬의 양탄자도 볼거리다.
히에라 폴리스
[편집]기원전 190년에 시작된 도시의 유적. 원형극장으로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둥근 관객석 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이 황홀할 정도로 멋지다. 이 밖에 터키식 증기 목욕탕이나 돌을 쌓아만든 벽 등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히에라 폴리스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하드리야누스 신전
[편집]2세기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를 받들어 지어진 신전이다. 내부는 비교적 화려하지 않지만 정면 현관의 장식은 화려하고 아치의 중앙에는 여신 티케, 문 안쪽에는 양손을 벌린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주위로 신들과 아마존, 동물 등이 그려져 있다.
트라야누스 샘
[편집]하드리아누스 신전 옆에 있는 샘터이다. 삼각의 지붕이 특색 있으며 대좌 등의 부분도 남아 있지만 그 외에는 원형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아 복구된 정면 부분으로 과거의 웅장한 모양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앞에 저수지가 있었고 그곳에 모셔둔 트라야누스 조각상의 발밑에서 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디오니소스, 세츄로스, 아프로디테의 조각상이 여기서 발견된 것이다.
트로이
[편집]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설로 더욱 흥미로운 곳이다. 유적의 입구로 들어가면 먼저 높이 1.5m의 큰 항아리가 몇 개 놓여져 있고 좀더 깊은 곳에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350년까지의 유적이 겹겹이 쌓여져 있다. 반경 300m 가량의 원형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
[편집]Cappadocia
아나톨리아 지방의 지하도시 카파도키아. 대규모 기암지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불가사의한 바위들이 많다. 적갈색, 흰색, 주황색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이것은 수억년 전에 일어난 화산폭발로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 높이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쓰였을 만큼 신비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터키 기독교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아랍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6세기 후반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신자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카파도키아에는 현재 100여개의 교회가 남아 있다. 이 석굴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보존상태가 좋을 뿐더러 내부의 장식이 아름답다.
카이마크르-데린쿠유
[편집]Kaymakl-Derinkuyu
개미굴처럼 지하 곳곳으로 파내려간 대규모 지하도시 ‘카이마르크’와 ‘데린쿠유’는 한때 아랍인들로부터 도피한 기독교인들이 거주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부 통로와 환기구가 지하 각층으로 연결돼 있고 교회와 학교, 그리고 침실, 부엌, 우물 등이 존재한다. 데린쿠유에는 약 4만 명, 카이마크르에는 2만 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해 둥근 바퀴모양의 돌덩이를 통로마다 설치해 비상시 통로를 막았고 독특한 기호로 길을 표시해 외부에서 침입한 자는 길을 잃도록 미로처럼 여러 갈래의 통로를 뚫어 놓았다.
성 소피아 성당
[편집]St. Sofia Church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진 성 소피아 성당은 가장 뛰어난 비잔틴 양식 건축물이다. 532년∼537년에 지어졌고, 둥근 지붕의 지름이 70m이며, 높이 55.6m인 톱카프 궁전 앞에 있는 적갈색의 건물로 동로마 제국 시대 그리스 정교의 본산지였다. 그후 15C에 오스만 터키 제국이 점령하여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 이들 두 종교가 공존하는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내부에는 비잔틴문화를 상징하는 다수의 모자이크 벽화가 남아 있다.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마리아 상이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화려하게 묘사된 그리스도 좌상은 특히 유명하다. 1931년 미국 고고학 조사단에 의해 숨겨진 벽 안의 모자이크화가 발견된 후, 성 소피아는 비잔틴 시대의 최대 유적으로 또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