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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국기와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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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정치체제:이슬람 연방공화제 수 도:이슬라마바드(Islamabad) 인 구:1억 4,460만명(2001) 면 적:80만 3,940㎢ 소 득:1인당 GDP 2,000달러(2000) 공 용 어 :우르두어, 영어 화폐단위 :파키스탄루피(rupee / PRs) 주생산물 :밀, 목화, 사탕수수 / 면직물, 철강, 시멘트 / 천연가스

파키스탄의 자연[편집]

Pakistan-自然

파키스탄은 중앙의 대부분이 인더스강의 충적평야로 하류지역은 신드 지방이라고 불리는 사막지역이다.중류·상류 일대는 펀자브(다섯 개의 강) 지방이라고 불리어, 인더스강 본류 외에 젤룸·체나브·라비·베아스·수틀레지 등 다섯 개의 지류가 흘러 밀·콩 등의 곡창이 되어 있다. 인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의 접경지대는 힌두쿠시·술라이만 등의 산맥 및 발루치스탄 고원으로 이루어진다. 인도와의 국경지대는 대부분이 불모의 타르 사막이다. 파키스탄의 카라치 근처에 연평균 기온과 강우량은 각각 25.8

와 204㎜ 이다.

파키스탄의 기후[편집]

전반적으로 건조기후를 보인다.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서늘하며 여름에는 계절풍으로 인해 비가 많이 온다.

인더스강[편집]

Indus江

티베트의 카일라스 산지에서 발원하여 산지 북쪽을 북서로 흘러 카슈미르에 들어가 키르가스 부근에서 남서로 방향을 바꾸어 파키스탄을 통과해서 아라비아해로 흘러든다. 본류의 연장 3,180㎞, 유역면적 약 96만 ㎢ 로, 농업과 교통 양면에서 파키스탄의 생명선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의 주요 도시는 이 강의 본류와 지류 유역에 많이 있다.

타르 사막[편집]

Thar砂漠

인도 사막이라고도 하며, 인도 북서부에서 파키스탄의 남서에 걸쳐 펼쳐지는 면적 25만 9,000㎢의 사막지대. 서쪽은 인더스강에, 북쪽은 펀자브 지방에, 남동쪽은 아라발리 산지에 가까우며, 남부는 몬순의 조건이 좋을 때는 온통 초원으로 변하나 대개는 강우량이 250㎜ 이하로 가시가 돋힌 아카시아가 자랄 정도이다.

파키스탄의 역사[편집]

-歷史

파키스탄은 처음 인도의 한 지방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인도와 공통적인 부분이 많이 있다.파키스탄에는 수천년 전 인더스강 유역에 고도의 문화가 발달했는데, 모헨조다로나 하라파의 유적이 당시의 영화를 말해 주고 있다. 이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화와 공통점이 많아 고대에 이미 동서의 문화교류가 있었던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파키스탄의 역사는 서방민족이 지배한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군과 함께 흘러들어온 그리스 문화와 10세기 전후에 이곳에 침입한 회교도들의 문화는 파키스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파키스탄의 주민[편집]

-住民

파키스탄인은 아리안계의 혈통을 짙게 이어받고 있는데, 언어는 힌두어를 아라비아 문자로 표기하고 여기에 페르시아어를 많이 섞은 우르두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95%이며 약간의 힌두교와 그리스도교도가 있다.

파키스탄의 정치[편집]

-政治

주민의 95%가 회교도로 정치에도 회교색이 강하며, 헌법도 대통령의 신분자격을 회교도에 한정하고 있다. 1958년 군부의 쿠데타로 아유브 칸이 대통령이 되어 독재정치를 했다. 1971년 알리 부토 당수가 13년간의 군사통치를 종식시키고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73년 내각책임제로 개헌하여 총리가 되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지아 울하크 대통령은 독재체제를 유지해 오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정국(政局)은 반전되어, 1988년 회교권 국가에서는 최초로 베나지르 부토가 여성총리에 취임했으나 실각했다.2001년 6월 총선에서 무샤라프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2003년 11월 재선에 성공했다.

파키스탄의 산업[편집]

-産業

주민의 약 50%가 농업에 종사한다. 주요산물로는 밀과 면화가 생산되며, 면화는 파키스탄 섬유공업의 발전을 지탱해 왔다. 공업화는 면화를 원료로 한 면섬유공업에서 발전하여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섬유공업지대가 되어 있으며,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특히 수이 지방에서 발견된 천연가스는 공업화 촉진 역할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의 교통·도시[편집]

-交通·都市

교통은 카라치에서 인더스강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라호르·라왈핀디를 거쳐 페샤와르를 지나 카이버 고개에 이르는 옛 실크로드가 간선도로이며, 철도도 간선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건설된 노선의 교통량이 가장 많다. 대중 교통수단으로는 택시, 버스, 릭쇼(모터 삼륜차), 마차가 있다.파키스탄의 대도시로는 카라치·라호르·하이데라바드 등의 주요 도시(主要都市)가 있다.

이슬라마바드[편집]

Islamabad

파키스탄 북동부의 라왈핀디교외에 세워진 새 수도. 1965년 5년 만에 완성이 된 계획도시로 관청을 중심으로 해서 남서에 주택구, 남동에 상공업구가 기능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라왈핀디[편집]

Rawalpindi

파키스탄 북동부의 인구 140만 6,214의 도시. 예로부터 교통·군사상의 요충으로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원정의 중요한 기지가 되었다. 독립 후에도 군사령부 소재지로서 발전했는데 1960년부터 65년까지는 일시 수도가 되기도 했다. 북쪽 교외에 세워진 새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상공업구로서 발전하고 있다.

라호르[편집]

Lahore

인도와 접경한 펀자브주의 주도. 이슬람교도가 지배하던 시대 이후 무굴제국의 악바르를 비롯한 역대 왕조의 왕이 사실상의 수도로서 경영한 도시. 회교사원 등 무굴 시대의 건조물이 많이 남아 있어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농산물의 집산지이자 공업도시로서 파키스탄의 중심을 이룬다.

카라치[편집]

Karachi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州)의 주도로서 파키스탄 최대의 도시이다. 1947년에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독립한 후 수도로서, 또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발전해 왔다. 이슬라마바드에 정치의 중심이 옮겨진 지금도 국제항과 국제공항이 있는 파키스탄 최대의 도시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키스탄의 관광명소[편집]

-觀光名所

파키스탄은 구경할 곳이 많은 나라다. 세계적으로 높은 산들과 빙하, 아름다운 계곡, 녹음이 우거진 평야 등의 자연미 외에 모헨조다로·하랍파로 대표되는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 스왓트·페샤와르·타키시라 등 간다라 지방의 불교유적, 그리고 라호르·화이사라바드 등 무굴조 이슬람문화가 가득하다.

무리에[편집]

Muree

이슬라마바드 북동쪽 약 53㎞ 지점에 위치한 해발 2,300m의 매우 아름다운 고원지이다. 이슬라마드보다 기온이 10

나 낮아 피서지로서 인기높다.

사라파 바자르[편집]

Sarafa Baxaar

사라파 바자르는 몇 백미터나 되는 거리 양편으로 귀금속점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파키스탄에서는 귀금속을 개개인의 재산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결혼때 값진 귀금속을 신부에게 보내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혼인을 앞둔 딸과 어머니가 귀금속 바자르에서는 눈에 많이 띈다.

샤카르 파리안 파크[편집]

Shakar Parion Park

중심가 남쪽의 나지막한 언덕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으로 두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둘 있다. 이스튼뷰 포인트에서는 이슬라마바드의 정부기관 건물과 세계 최대의 샤 파이살 모스크 등을 볼 수 있으며, 웨스트 뷰 포인트에서는 리왈핀디 옛시가지와 라왈 호수, 스포츠 스타디움을 볼 수가 있다. 북쪽에는 20,000㎢의 광대한 부지에 무려 250종의 장미와 12종류의 자스민을 심어 놓은 로즈자스민 가든이 있어 관광객들로 하여금 휴식처를 제공해 준다.

라호르 국립박물관[편집]

Lahore Museum

라호르는 회교 무굴왕조 5대왕의 도읍지였기에 무굴왕조의 고적이 많은 곳이다. 이 박물관에는 이슬람, 자이나, 힌두, 불교의 유적들이 수집되어 있다. 특히 이곳에는 높이 약 80㎝의 뼈와 가죽만 남고 혈관이 간신히 뼈에 붙어 있는 단식하는 부처상이 유명하고 이 외에 검종류, 창, 의상, 장신구, 석기, 포, 나팔, 투구, 활 등과 대형 빅토리아 여왕상, 대리석으로 만든 불상의 조각이 소장되어 있다. 그 밖에도 회교의 회화와 불교의 만다라 그림이 한데 있어 다양성을 보여준다.

바디샤히 모스크[편집]

Badshahi Mosque

이 모스크는 그 앞 광장에 무려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였는데 회교 무굴왕조 6대 오랑셋트가 건설했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17세기 후반에 세워진 대표적 건물로서 파키스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다. 모스크입구의 현관 건물에는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는데, 그것에는 마호멧의 머리카락과 치아, 그가 쓰던 터번 등을 보관하고 있는 진귀한 박물관이다.

샬리마르 정원[편집]

Shalimar Garden

인도 페르샤식의 전형적인 정원으로 무굴왕조 5대 샤자한 왕이 직접 만들고 그후 왕들이 산책한 곳이다. 시가지 동쪽 약 5㎞ 지점에 조성되어 있다. 모든 건물과 분수대를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1,700㎡나 되는 광대한 정원에는 연못과 수로가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균형적인 가지런함이 돋보인다.

고궁 라호르성[편집]

Lahore Fort

라호르성은 1700년경 무굴왕조시대에 악바르왕이 건설했다. 건축미와 조형미가 어우러진 성으로 특히 보석의 방이라고 이름 지어놓은 방에는 많은 보석들이 박혀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보석이 박힌 흔적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페샤와르 박물관[편집]

간다라 미술의 컬렉션으로는 라호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최대 최고를 자랑하는 박물관의 하나이다. 홀과 복도에는 갖가지 불상들이 줄지어 있다.

마자르[편집]

Mazar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인 무하마드 알리 진나의 묘이다. 이 묘에서는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묘궁은 약간 현대적이지만 건물의 안팎은 대리석을 붙여서 이 나라의 전통을 이어 무굴왕조 때의 묘처럼 지어 상당히 정교하고 정성을 들인 건물이다.

모헨조다로[편집]

Moenjodaro

기원전 2500∼1500년경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과 유적들이 발굴·보존되어 있는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모헨조다로는 1922년 영국인 고고학자 마셀(Marshall. J.)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다. 이 고대유적지는 카라치 북쪽으로 380㎞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일부만이 발굴되었고 사막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거대한 목욕소, 수도시설, 집회소, 동물조각상, 인장, 손도끼 등의 유물과 유적들이 발굴되어 당시의 공동생활 및 주거 환경을 엿볼 수 있다.

하라파[편집]

Harappa

모헨조다로와 함께 인더스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의 하나인 하라파유적지는 모헨조다로 지역보다 광활하다. 이 유적지도 1922년 영국인 고고학자 마샬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인더스 강 상류의 펀잡지방으로 모헨조다로와 거의 비슷하나, 그 원형은 철도공사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다. 약 4,000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곡물창고·대장간·직공의 아파트 등을 볼 수 있다.

탁실라[편집]

Taxila

기원전 5세기에 생겨난 유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탁실라의 마을은 불교문화의 전성기 1,000년에 걸쳐 번영하였고 예술, 교육, 종교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단식하는 부처’상은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미술품 중의 하나이며, 현재 라호르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

샤 파이잘 모스크[편집]

Shah Faisal Mosque

이 모스크는 1980년경에 건축한 최대 규모의 현대식 회교사원으로 70년대 말 사우디 국왕 파이잘이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거금을 희사해 건축하였다. 이 모스크 안에는 성경도서관, 성경학교, 지아 대통령의 무덤이 있다. 파이잘 모스크는 이슬라마바드 시내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