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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컴퓨터·환경·첨단·지구과학/우주-지구-기상/우주의 신비/달 탐사와 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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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탐사와 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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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査-旅行

로켓 동력에 의한 우주 개발이 시작된 이래 그 주요 목표의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지구 유일의 천연 위성이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갖가지 미지(未知)를 안고 있는 달의 탐사였다.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이 궤도를 돌고 나서 1년 후에는 벌써 미국이 달을 겨눈 파이어니어 1호를 발사했으나, 달까지 비행하는 데에 실패하고 2호도 다시 실패로 끝났다. 그 후 1959년 1월 2일에 구소련이 쏘아올린 루나 1호는 달면에서 약 6,000km 떨어진 곳을 통과, 동년 9월 12일에 발사한 루나 2호는 드디어 인공 물체를 달면에 명중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동년 10월 4일에 비행한 루나 3호는 그 때까지 인간이 익히 바라다본 적이 없는 달의 뒤쪽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것을 지상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이 초기의 달 탐사에서 탐사 우주선 레인저 1호(1961년 8월 23일 발사)에서 6호까지 계속 실패하였다. 그러나 1964년 7월 28일에 발사한 제7호에서 드디어 텔레비전 카메라에 의한 달면 관측에 성공, 달에 충돌할 때까지 4,308장의 달면 사진을 지상으로 보냈다. 한편 구소련은 1965년 5월 9일에 쏘아올린 루나 5호로 달면에 관측선을 연착륙(軟着陸)시키려 했으나 실패하여 달에 충돌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66년 1월 31일에 지구를 출발한 루나 9호는 연착륙하는 데에 성공, 달면에서 텔레비전 카메라 등에 의한 관측을 하고 3일간에 걸쳐서 데이터를 지구로 보냈다.

동년 3월 31일에 구소련이 쏘아올린 루나 10호는 처음으로 달 주위 궤도를 도는 이른바 손자(孫子) 위성화하여 상공에서 달면을 탐사하는 데에 성공했다. 한편 미국도 동년 5월 30일에 발사한 서베이어 1호가 달면에 연착륙하였고 또한 루나 오비터 1호도 동년 8월에 달 상공을 도는 손자 위성이 되었다. 그러나 1967년 11월 7일에 쏘아올린 미국의 서베이어 6호는 일단 달면에 연착륙하고 나서 역추진 로켓을 작동시켜 다시 이륙,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의 복잡한 실험에 성공하였다. 1968년 9월 15일에 구소련이 발사한 존드 5호는 달을 돌고 나서 6일 후에 인도양으로 되돌아옴으로써 구소련의 유인 달 비행의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여 68년 10월 12일 3명의 우주 비행사를 태운 아폴로 7호를 케이프 케네디에서 발사했다. 아폴로 7호는 달 비행 연습의 사명도 띠고 일단 지구를 도는 궤도 위에서 11일간에 걸쳐 우주선의 성능과 조작에 대한 테스트를 했다. 발사에 쓰인 것은 새턴 1B형으로 후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새턴 V의 몇분의 1의 크기였다. 존드 5호의 착수(着水) 속도는 매초 200m의 고속이었으나 아폴로 7호는 매초 7m였다.

아폴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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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計劃

막중한 추진력의 새턴 1호 엔진을 가진 이륙선에 대한 최초의 계획은 1957년 4월에 시작되었다.

1958년 8월에 이륙선에 관한 조사 연구는 150만 파운드의 추진력을 가진 종합 조립 부스터(booster)만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려 연구와 개발에 관한 작용은 시작되었고 실제 화기(火器) 작용을 필요로 하는 기계 조립 기술에 의한 대단히 많은 양의 추진력을 필요로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토르 주피터(Thor­Jupiter) 엔진을 새로 개발한 록웰(North American Rockwell)회사의 제품인 로켓다인(Rocktdyne)은 20만 파운드의 추진력을 가진 H-I엔진을 개발함으로써 그 자체의 추진력을 추가시켰다. 동시에 150만 파운드의 추진력을 가진 F-I 엔진을 착상하게 되었고, 마침내 거대한 추진력을 위한 중요하고 강력한 기계 설비로서 사용되었다.

1958년 10월 미국 육군의 연구진은 진보된 우주 개발을 위한 고성능 추진력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여 이를 시험적으로 로켓다인(Rocketdyne) 주노 V라고 불렀고, 최종적으로 새턴(Saturn)이라고 명명했다. 부스터에 대한 것은 1959년 말 미항공우주국(NASA)으로 넘겨졌다.

1960년 7월 NASA는 공식적으로 최초의 유인(有人) 우주 여행을 위해서 머큐리(Mercury) 계획을 제안하였다가, 그것을 아폴로 계획으로 확정시켰다. 그 당시 생각했던 아폴로 계획의 목표는 3명의 우주인을 태운 우주선으로 지구 궤도와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었다. 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 연방정부가 인간이 달에 발을 딛게 될 60년대에 달 탐험을 마칠 것을 미국의 목표로 설정하고 달에 대한 우주 계획의 촉진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의회의 승인을 얻은 연방정부는 유인 달 탐험에 월등히 더 많은 추진력을 가진 강력한 추진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NASA는 1962년 1월 달 착륙을 위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할 새턴 V호(5개의 F-I엔진을 사용한다)는 일반적으로 750만 파운드의 추진력을 가져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발표가 있은 후 NASA가 새턴 V호를 개발하는 과업을 맡기로 하고 새턴 V의 첫 2단계 사업을 설정하기 위해 보잉(Boeing) 회사 및 북아메리카 록웰회사와 접촉했다.

두 번째 단계는 100만 파운드의 추진력을 가진 5개의 J-2 엔진의 집단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제3단계(S-IVB)와 기계 조립은 이미 더글러스(Douglas) 항공 회사와 IBM사에 의해 각각 개발 중에 있었다. 1962년 말 NASA는 아폴로 우주선의 지구 궤도 실험을 위하여 새턴 V호의 첫 단계와 새턴 I호의 첫단계를 연합한 새턴 IB가 개발 중에 있다고 발표하였다.

1961년 8월 9일 MIT 당국은 아폴로 우주선 안내와 항해계의 개발 계획안을 선정하였다. 석달 반 후에 NASA는 아폴로 사령선(CM)과 부선에 대한 계획안으로 북아메리카 록크웰 회사를 선정했다.

1962년 7월 중순 NASA는 달 탐험에 대한 달궤도 랑데부 모형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달궤도 진입과 달착륙에 사용하게 될 2인승 달 착륙선의 개발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루만(Grumman) 항공회사는 1962년 11월 7일 달 착륙선(LM)을 고안해 냈다.

1년 후에 첫번째의 아폴로 사령선의 이탈 실험이 행해졌고 높은 고도 이탈은 1964년 3월 13일에 성공하였다. 15일 후에 새턴 I호는 케이프 케네디로부터 첫번째의 아폴로 사령선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

그 후 새턴 IB의 개발이 촉진되었고 우주선 재돌입시의 열의 방어 실험이 성공적으로 행하여졌다. 1966년 2월 26일에는 새턴 IB가 최초로 실험 발사되었다.

새턴의 첫단계 계획은 1965년에 완성되었다. 새턴 I호의 10번에 걸친 발사 실험은 모두 성공적이었으며, 이것은 로켓 개발에서의 새로운 기록이었다. 많은 기술이 새턴 I호 계획에 시험되었 고, 로켓 분야에서도 개발이 가일층 촉진되었다. 집합적 로켓 엔진의 개발 계획이 세워졌고, 그 연료로서 액체 수소를 사용하는 실험을 낳게 했다. 새턴 IB의 사령선은 1966년에 세 번째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1967년 1월 27일 우주선 사고가 발생하였다. 즉 케이프 케네디에서 지상훈련 중 아폴로 우주선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우주인 그리솜(V. Grissom)공군 중령과 화이트(E. White)중령, 차피(R. Chaffee)해군 중령이 사망했다.

항공 우주국 조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비행사의 우주복이 연소되어 비행사들이 질식했으며, 화재 원인은 그리솜의 좌석 밑 좌측에 장치된 선내 환경 조절 장치 부근의 전선(電線)의 누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사단의 충분한 재검토 후 NASA 당국은 그 목표인 우주 계획을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수정해 나가게 되었다.

1967년 11월 9일 새턴 V호의 우주선인 아폴로의 첫번째 발사 시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1968년 1월 22일∼23일 사이에 아폴로 5호는 상승과 하강 추진계의 점화(點火)를 포함한 달 착륙과 이륙 그리고 우주선의 구조에 관한 모든 시험을 끝냈다. 무인(無人) 달 착륙선 1호는 새턴 IB호에 의해 지구 궤도로 올려졌다.

1968년 4월 4일 두 번째의 새턴 V호로 아폴로 6호가 발사되어 이륙선과 우주여행의 안전도를 입증하였다. 첫단계에서의 포고(pogo) 효과에 의한 수직 진동과 고단계에서의 작은 추진선의 파열이라는 두 가지 문제는 로켓을 검토하여 해결되었다. 아폴로 6호는 성공적인 사절단이었다.

아폴로 7호는 발사 11일 후인 1968년 10월 22일에 정확한 대기권 재돌입을 하여 이른바 '101%의 성공'을 거두었다. 우주인 쉬라(W. Schirra), 에이젤(D. Eisele), 컨닝함(W. Cunningham)이 탄 아폴로 7호는 우주선 추진계의 여러 가지 예비 실험을 행하고 첫번째 TV 생방송을 포함한 약 280시간에 걸친 우주 체재(滯在)를 아무 어려움 없이 수행하였다.

아폴로 8호는 태양계의 다른 천체로 비행하기 위하여 케네디 우주 센터로부터 1968년 12월 21일 발사되었다. 아폴로 8호는 147시간 동안 달 주위를 10번 선회하고 우주를 대략 5천만 마일 이상 비행했으며, 달과 지구의 사진을 찍고 TV 생방송을 보내 왔다.

아폴로 9호는 10일 동안 600만 마일을 여행한 후 1969년 3월 13일 대서양에 내려왔다. 아폴로 9호는 새턴 V호 우주선인 아폴로의 첫번째의 거의 완벽한 유인 우주선이다. 아폴로 9호는 랑데부와 도킹(docking)을 완벽하게 함과 동시에 TV 생방송과 지구의 사진을 찍고 페가수스Ⅱ 위성과 목성을 관측하였다. 이것이 4번째의 새턴 V호였다.

아폴로 10호는 인간의 두 번째의 달 궤도 선회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5월 12일 오후 12시 44분에 발사된 아폴로 10호는 거의 62시간을 달 궤도에서 보냈다(31회 선회). 그리고 19시간 동안 TV 컬러 생방송을 하였으며 발사된 후 192시간 만에 태평양의 예정 착륙 해상에서 불과 7,000야드 안에 착수(着水)했다. 이것은 인간의 우주 탐험에 있어 놀랄 만한 정확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아폴로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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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pllo 十一號

1969년 7월 16일 한국시간으로 밤 10시 32분 암스트롱(N.Amstrong), 올드린(E.Aldrin) 및 콜린스(M.Collins)의 세 우주비행사를 태운 아폴로 11호는 새턴 V호 로켓으로 케이프 케네디 기지를 출발하였다. 2분 30초 후에 1단계 로켓이, 6분 30초 후에는 2단계 로켓이 각각 떨어져 나가고 제3단 로켓은 3분간 분사되어 초속 7.9km에 이르렀을 때 고도 180km 되는 원궤도로 지구를 2회 선회한 다음 제3단 로켓을 한 번 더 분사하여 초속 11.04km의 속도로 달 세계로 가는 길에 올랐다. 달에 거의 가까이 왔을 때는 초속 2.5km로 감속되었다. 달의 뒷면에 도달하여 역추진(逆推進) 로켓을 분사하여 초속 1.66km로 감속하고 월면에서 고도 111km되는 원궤도로 회전할 때에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탑승한 착륙선이 모선(母船)에서 분리되어 달을 향해 내려갔다. 1시간 후에는 역추진 로켓이 작동하여 오전 5시 17분 19초에 '고요의 바다'에서 7.5km 떨어진 곳에 무사히 착륙했다. 착륙선 밖으로 나갈 준비를 갖춘 후 먼저 암스트롱이 9계단의 사다리를 내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 세계에 발을 디뎠다. 월면(月面)에 착륙한 우주인들은 태양풍 측정기·미국 국기·월진계(月震計)·레이저 반사경을 설치하였고 많은 기록사진을 찍었으며 주변 여러 곳의 모래와 암석을 채집하고 달을 탐색하는 등의 작업을 2시간 16분 내에 끝냈다. 다음날 모선과 도킹하고 모선에 갈아탄 두 사람은 2시간 후 달에서 타고 온 이륙선을 떼어 버리고 오후 2시에 지구로 귀환하였다. 7월 25일 오후 1시 30분에는 모선 중에서 기계부를 떼어놓고 남은 사령선은 지구의 대기권에 돌입하였다. 10분 후에는 낙하산이 열려 1시 50분 35초에 태평양 호놀룰루 남서쪽 약 2,000km 해상에 무사히 착수하였다.

아폴로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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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十二號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후 꼭 4개월 후에 아폴로 12호는 '폭풍의 바다'에 두 번째로 착륙하여 달 표면을 탐색하고 유인 과학 탐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성과를 다시 거두었다. 11월 14일에 이륙한 아폴로 12호는 정확한 착륙 능력을 재입증하였으며 계속적인 과학 기록을 위하여 표면에 달 표면 실험을 위한 기계를 또다시 설치했다.

우주인은 원자력 전지로 앞으로 1년 이상 가동될 태양풍 분석계·대기 측정기·전리층 측정기·자력계·월진계 등 달 표면 실험기재와 지질학 조사와 앞서(2년 7개월 전)의 서베이어(Surveyer) 3호가 실시했던 조사를 완료하였다. 245시간 동안에 걸쳐 임무를 수행한 아폴로 12호의 승무원은 사령선 선장에 콘라드(C. F. Conrad), 사령선 조종사에 고든(R. F. Gordon), 달 착륙선 조종사에 빈(A. L. Bean)이었다.

아폴로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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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十三號

1970년 4월 11일, 아폴로 13호는 달의 고지(高地)인 프라마우로에 착륙하여 승무원들이 달 표면의 표본을 채취하고 지구 물리 기계를 설치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날 오전 10시 11분 부선의 산소탱크 파열로 아폴로 13호는 달 착륙을 취소하였다. 달 주위를 선회하다 하강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지구 출발 142시간 54분 41초 후에 태평양에 내려앉아 지구로 돌아왔다. 사고 원인 조사에 나선 조사위원회는 6월 30일 발표를 통해 고압(高壓) 산소의 연료를 제거 수정한 사령선과 부선을 추천하게 되었다.

아폴로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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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十四號

1971년 1월 31일 지구를 출발하여 달의 프라마우로 지역에 도착한 아폴로 14호는

13호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약간 개조된 것이다. 사상 세 번째로 유인 달 탐사를 완성한 아폴로 14호는 1971년 1월 31일 오전 4시 3분 케이프 케네디를 출발하여 2월 5일 오전 4시 17분(EST)에 당초 예상했던 목표 지점인 프라마우로에서 불과 60피트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착륙지점의 경위도는 남위 3°40′27″, 서경 17°27′58″였다.

선장 앨런 B.셰퍼드와 달 착륙선 조종사 에드거 D. 미첼은 달 표면에서 활동하기 쉬운 특수 수레(달수레)로 이틀 동안 탐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수레의 운행 시간은 첫날에 4시간 50분 둘째날엔 4시간 35분, 도합 9시간 25분간이었다. 그들은 월면(月面) 실험기재를 성공적으로 설치했으며 달의 내부와 외부 구조를 탐색하여 지구로 보내 줄 지구 물리학적 실험 기구를 설치하는 동시에, 가장 큰 연구 자료가 될 약 10파운드의 바위 두 개를 포함한 96파운드의 월석(月石)과 흙을 채취했다.

33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을 달에서 보낸 후 2월 6일 오후 1시 47분 달 표면을 떠나 2월 9일(EST) 오후 4시 5분에 남태평양 해상에 무사히 연착(軟着)하였다. 이로써 아폴로 14호의 달 탐험에 관한 임무는 정상적으로 순조롭게 수행되었다.

아폴로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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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十五號

사상 4번째의 달 탐험으로서 아폴로 15호는 1971년 7월 26일 9시 34분(EDT) 한국 시간으로 10시 34분에 케이프 케네디를 출발하였다. 이 우주선은 장기간의 월면(月面) 체류와 월면 활동이 가능하도록 개조되었고 따라서 과학적 실험기재도 종전의 우주선보다 많이 추가되었다. 결국 아폴로 15호의 선장 데이비드 R. 스코트와 착륙선 조종사 제임스 B. 어윈, 사령선 조종사 알프레드 워든의 세 우주인은 288 시간 12분 동안의 우주여행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7월 30일 오후 6시 16분(EDT:Eastern Daylight Time, 미동부 일광 절약 시간) 스코트 선장과 어윈 두 우주인은 달을 방문하는 7∼8 번째의 두 미국 우주인으로서 북위 26°6′, 동경 3°39′ 지점의 달의 가장 높고 험준한 아페닌 하들리 산맥(높이 4,570m) 기슭에 연착했다.

그들은 월면 과학 측정기를 설치하고 달의 지리학적 특징을 기록했다. 또 달 착륙선에 싣고 온 800만 달러짜리 월면차(月面車)를 타고 달의 각 분화구와 태양계의 기원 등에 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를 자료 수집을 위해 총 28km를 달렸다.

아폴로 15호의 달 탐험 기록은 다음과 같다.

⑴ 월면 체류 시간 ― 66시간 55분(종전 아폴로 14호는 33시간).

⑵ 월면 활동 ― 3회, 18시간 36분(종전은 2회 9시간 22분).

⑶ 달 샘플 채취 ― 77kg(종전 54kg).

⑷ 월면 활동 거리 ― 28km.

⑸ 달 차량 드라이브 ― 월면차의 활동(종전은 무동력 2륜차).

⑹ 우주 공간에서의 유영 ― 20분(종전은 지구 궤도상에서 실시).

⑺ 아폴로 우주선에서 달 궤도에 미니(mini) 위성 발사(종전 없음).

⑻ 모선의 달 선회 궤도는 적도와 15도 경사로 종전보다 20% 더 많은 새로운 달 표면 관찰(종전 장도 궤도).

⑼ 원추형 화산군 발견(종전 없음).

사령선 조종사 워든은 달 궤도를 도는 동안에 보조 사령선에 설치된 두 대의 카메라, X선·γ선 감광판을 포함한 과학적 실험 기재들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이 카메라는 월면 상태를 상세히 촬영하여 지구로 송신했다.

74시간의 달 공전과 달 위성의 역할을 끝마치고 착륙선에서 모선으로 무사히 귀환한 스코트, 어윈과 함께 아폴로 15호는 우주 여행 12일 만인 8월 7일 오후 4시 46분(EDT) 우리나라 시간으로 5시 46분 태평양 하와이 북쪽 480km 해상에 착수했다.

아폴로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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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 十六號

달 탐험의 5번째인 아폴로 16호는 1972년 4월 16일 오후 12시 54분(EST) 케이프 케네디를 출발했다. 선장 존 W.영과 사령선 조종사 토마스 K.마틴, 착륙선 조종사 찰스 M.듀크는 11일 1시 51분 동안의 우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영과 듀크는 71시간 12분 동안의 긴 달 표면 탐사 시간을 보냈다. 달 표면 탐사일은 4월 21, 22, 23일의 3일간이었으며 착륙선이 착륙한 위치는 남위 8°54′, 동경 35°30′ 지점이다. 또 영과 듀크는 달 표면에서 210파운드의 월석(月石)과 흑을 채취했다. 사령선의 마틴은 영과 듀크가 달에서 탐험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달 궤도 선상에서 3일 9시간 39분 동안의 시간을 보내면서 복잡한 두 대의 달표면 촬영 카메라와 과학 기재들을 이용하여 달 표면의 특징을 관측하여 지구로 보내 주었다. 아폴로 16호는 모든 달 탐사를 마치고 출발, 11일 후인 4월 27일 오후 2시 45분 태평양에 착수했다.

아폴로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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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pllo 十七號

1972년 12월 6일 발사된 아폴로 17호는 아폴로 계획을 총결산하는 것으로 달 탐험이 역사에 있어 가장 길고 과학적이며 또 가장 보람스러운 것이었다. 거의 13일 동안의 사명을 위하여 아폴로 17호는 6일, 태양이 진 수시간 후에 미국 우주 비행사와 아폴로 우주선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로켓인 새턴 V호에 의해서 첫번째로 밤에 쏘아 올려졌다.

승무원으로는 37세의 지질학 박사인 해리슨 E. 슈미트 박사를 위시하여 오겐 A. 서넌 대령(40세)과 롤랜드 E. 에반스 대령(39세)이다. 이번으로 슈미트와 서넌은 6번째의 기록이 된다.

이들은 아폴로 17호 달 표면에 자동 탐색정거장을 설치하였으며 7가지의 새로운 실험과 달 궤도로부터의 과학적 관측을 하였다. 착륙 지점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달면의 북동쪽, 즉 달의 중심에서 북으로 20도, 동으로 30도인 고산(高山)의 계곡 타우라우스-리트로우 지역이다.

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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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石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이 월석을 최초로 달에서 가져 왔다. 세계의 유명한 과학자 126명이 분석 연구한 결과 월석에는 검은 가루가 붙어 있음을 알았다. 그 가루는 초자성(硝子性)을 띤 아주 작은 구슬 조각의 집합으로 달에서 채집한 가루의 거의 절반이 초자성이었는데 그것은 3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0.2mm 이하의 구(球)·타원·아령형과 다(茶)·황(黃)·녹(綠)색의 색깔, 투명 또는 반투명의 얇은 판상(板狀)을 이룬 다색 등이 있었으며, 기포가 많았고, 이런 초자분(粉) 외에 가루 중에는 사장석(斜長石)·단사휘석(單斜輝石) 및 티탄철광(鐵鑛) 등의 암석과 광물질도 섞여 있었다. 또 달에서 가져온 암석 역시 세 가지로 구분한다. 현무암(玄武岩)에 가까운 티탄철 광분이 풍부한 암석과 결정질화성암(結晶質火成岩), 그리고 각력암(角礫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 아폴로 15호가 가져온 암석은 달의 생성 기원을 말해 주는 46억 년 전의 것과 그보다 훨신 생성 연대가 뒤늦은 것이었다. 생성 연대를 달리하는 다른 종류의 암석은 달의 기원과 지각 운동을 연구하는 데 구체적인 자료가 된다.

월면 과학 측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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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面科學測定機

미국의 아폴로가 달표면 연구를 위해서 달에 가지고 간 관측 기기는 대개 다음과 같다.

⑴ 월진계(月震計) ― 달의 지진을 연구하는 장치이며 무게는 45kg 정도이다. 태양 전시판이 부착되어 있어 약 1년간 관측 결과를 지상으로 전송한다. 이 지진계의 역할은 달이 활화산이 없는 완전히 냉각된 죽은 천체인지 아닌지의 판단과 운석의 충돌을 관측 측정하는 것이다.

⑵ 레이저(laser) 반사경 ― 정밀한 거울 여러 개를 평행하게 만든 것으로 중량은 32kg이다. 지상에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면 달에 장치한 레이저 반사경에서 지구로 반사되어 온다. 지상에서 이 광선의 왕복에 소요된 시간을 측정하여 지구와 달간의 거리를 계산한다. 평균 거리는 384,400km이지만 태양에 의해서 이 거리가 약간 변한다. 이 변화의 과정을 명확히 측정하는 것이 그 목적이지만 그 외에 지구의 자전 속도의 변화를 관측해서 대륙 이동설에 관한 학설의 근거를 연구하는 것이다.

⑶ 태양풍(太陽風) 측정 장치 ― 태양에서 불어오는 많은 입자들, 즉 헬륨·네온·아르곤과 그외 여러 소립자의 회유 가스 원소를 포획하기 위해서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행사들이 월면을 출발하기 전에 이 장치를 다시 거두어 지구로 회수해서 지상에서 분석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 외에도 자력계·플라스마 분석계·전리 입자 검출기·열류량계·인공 지진 발생 장치 등이 있다.

이 밖에 첨가해서 이야기할 것은 아폴로 14호가 가지고 간 달 수레와 아폴로 15호의 월면 탐사차 등이 있다.

월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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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面車

아폴로 11호를 비롯하여 12, 14호 등 세 차례의 달 정복에서는 비행사들이 생명 유지 장치·암석채취·카메라 등 무거운 짐과 장비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 때문에 빨리 피로해지고 행동반경이 제한되었다. 아폴로 14호 때는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게 9kg의 알루미늄제 달 수레를 이용했으나 이것을 끌고 다니는 비행사들의 호흡 곤란으로 큰 분화구에는 오르지 못하고 말았다. 월면차를 타면 걸을 때 산소 소모량도 1/3로 줄며 운반 능력도 대단히 커지게 된다. 월면차(로버)는 무게 200kg의 2인승 4륜차로 네 바퀴에 각각 1/4마력의 모터를 달아 거친 달 표면에서의 주행(走行) 성능을 높인 것이다. 최고 12km까지를 내면서 활동을 한 로버는 1차 달표면 활동에서 앞바퀴의 고장 등 사소한 착오는 있었으나 그 성능은 지구 무게로 합계 437kg의 사람과 짐을 실을 수 있고 최고 시속 16km, 25°까지의 경사를 오를 수 있으며 높이 30cm의 장애물을 넘을 수 있다. 주행 가능 거리는 120km이고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서 우주인이 걸어서 돌아올 수 있도록 달 착륙선에서 반경 6km 이내에 머무르도록 되어 있다.

이 차량의 성능이 인정되어 앞으로 더욱 광범한 달 표면 탐색과 달 기지 건설에 필요한 대형 달차량 제작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사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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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令船

아폴로 달 여행용의 우주선은 사령선(CM)과 기계선(SM) 및 달 착륙선(LM, 일명 나룻배)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령선의 높이는 3.23m, 밑면의 넓이는 직경 3.1m인 원형이며, 발사시 중량은 비행사 세 사람의 무게를 합쳐서 5.9t이다. 비행 중에 자세 제어용 로켓의 연료를 소비하고 지구로 귀환할 때 보조 낙하산의 무게를 제외한 착수(着水) 직전의 무게는 5.3t이다.

사령선 내부는 전부(前部)의 기계실, 승무원실, 후부의 기계실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승무원실은 3인의 비행사들의 거실이며 우주선 조정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곳에 있는 3개의 의자 겸 침대는 로켓이 발사와 이륙 착수할 때의 강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게 되어 있다.

우주선이 궤도 비행을 할 때 중앙에 있는 좌석이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고, 좌우 양쪽 의자 밑에는 침대가 각각 1개씩 있다. 2인의 비행사가 동시에 계기판 앞에 서서 일하게 되어 있으나 2인이 동시에 잠을 잘 수는 없고 여행 도중에 교대로 쉬게 된다.

승무원실은 10㎥의 공간이지만 자유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6㎥이다. 1인당 공간은 2㎥로서 소형 승용차의 1인당 공간과 같다. 후부 기계실은 둥근 모양의 밑면을 지녔으며 자세 제어용 로켓의 연료 산화제 그리고 압축용 헬륨 가스와 물을 담은 용기가 들어 있다. 그리고 자세 제어용 로켓의 분사구는 밑면에 가까운 측면에 10개가 있고 비행사 출입문 위에 2개가 있다. 연료로는 모노메틸 하이드라젠, 산화제로는 사이산화질소를 사용한다.

사령선은 창이 모두 5개인데 그 중 2개는 좌우의 좌석에서 외부를 관찰하기 위하여 옆으로 배치되어 있다. 랑데부용 창이 2개가 있으며 이것은 관찰과 사진 촬영 외에 달착륙선과의 랑데부(rendezvous)와 도킹(docking)할 때, 그리고 서로 감시할 때 사용한다. 해치(hatch)창은 비행사가 출입할 해치(뚜껑)에 딸린 것이다. 사령선의 외벽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해치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고, 내벽은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으며 승무원실에서 공기가 새지 않도록 밀폐되어 있다. 알루미늄 내벽과 스테인리스 스틸 외벽과의 사이에는 부분적으로 유리 섬유나 나일론을 넣어서 단열재(斷熱材)로 사용했다. 내열재(耐熱材)와 단열재를 충분히 사용하여야 달 여행시 우주선이 받는 여러 가지 열적(熱的) 조건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달 착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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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着陸船

존 휴볼트라는 40세의 무명 과학자의 연필 스케치에서 시작되어 10년 사이에 10억 달러의 예산을 삼킨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달 착륙선(LM)은 그루만(Grumman)항공회사가 만든 것이다. 달 착륙선은 높이가 약 7m, 지름이 9.5m이고 승무원과 연료를 합하여 14.6t이나 되는 무게(연료가 2/3)로, 4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흡사 거미와 같다. 상부는 우주인 2사람이 기거할 캐빈(cabin) 상승용 로켓과 추진 원료 및 착륙선 전체를 제어하는 계기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빈은 지름 2.3m로 안에는 팔걸이가 있고 의자는 없다. 그래서 비행사들은 잠을 잘 때도 선 채로 잔다. 내부에는 순수한 산소로 차 있고 온도는 약 24℃이며 1/3기압이 유지된다. 캐빈의 천장에는 모선으로 통하는 도킹 터널(지름 82cm, 길이 46cm)이 있고 그 옆에는 공기를 빼는 구멍이 있다. 창은 출입용 해치 옆에 2개의 삼각창과 도킹용 창문 하나가 있고 연료 탱크 2개와 산소 탱크 2개가 각각 엇갈려 있다. 특히 상승부 계기판에는 566개의 스위치와 71개의 지시등이 있어서 비행사들은 작동 순서를 정확히 지켜야 한다. 외부에는 랑데부와 도킹용 안테나, 지구와의 교신용 안테나, 초급 단파안테나 등 3개의 안테나와 구석의 자세 제어용 사이드 제트가 16개나 있어서 착륙시 방향과 위치를 헬리콥터처럼 약 30m 가량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하강부는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여 4개의 하강용 로켓 연료 탱크와 로켓 착륙용 다리 4개가 있고, 그 중 1개는 9단계의 사다리가 붙어 있다. 달에 첫발을 내딛는 비행사는 이것을 이용한다. 8각형의 하부 선체와 4개의 다리는 달 탐색을 마친 두 우주인이 모선으로 귀환한 뒤 상부의 발사대로 쓰이는 그대로 달 표면에 버려진다. 추진력을 500kg에서 5t까지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 장시간의 달 체류기간 중 착륙선은 두 우주 비행사의 달 표면 생활 근거지로서 식당, 휴식처, 관측 기지로 사용된다. 두 비행사가 기거할 캐빈은 7.5cm의 두꺼운 절연층 벽으로 둘러싸여 우주 공간이나 달의 무서운 기온에도 영향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4개의 다리에 각각 지름 94cm의 널찍한 발판이 있어 충격 없이 달에 내려앉는 달 착륙선은 추진력 1.6t의 상승 엔진을 분사하여 달 표면을 떠나 달을 회전하고 있는 모선과 결합하게 된다. 결합된 후 착륙선에 탔던 2명의 우주 비행사가 모선으로 옮겨 타고 나면 달 착륙선의 상승 부분은 궤도에 버려지게 된다.

기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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機械船

기계선(SM)은 사령선 바로 밑에 있는 원통형의 부분이다. 사령선의 부속 창고로서 동시에 기관차의 역할을 한다. 지름은 3.91m, 높이는 7.37m이며 안에는 로켓의 호흡용 산소가 적재되어 있다. 연료 등을 적재한 후의 무게는 2.5t이며 적재 전에는 5.2t이다. 기계선은 진공중에서 9.3t의 추진력을 내는 로켓 엔진이 시설되어 있다. 달로 향한 여행시는 궤도 수정을 하며 다시 달 인력권을 벗어날 때도 이 기계선의 로켓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계선의 외벽에는 자세 제어용 십자형 로켓이 4개 부착되어 있어 비행중의 우주선의 자세를 바로잡거나 변환시키는 데 쓰인다. 이 십자형 로켓 1개가 지니는 추진력은 45kg중이다.

적재한 연료전지 3개는 산소와 수소를 화합시켜서 전기를 얻는 장치로 1개의 세기는 약 27∼37V이다. 부산물로는 물을 얻는데 이 물은 비행사들의 음료수로 사용된다. 연료전지 1개로도 우주선 전체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지만 3개 중 하나가 고장이 나도 달여행 도중 지구로 귀환하여야 한다. 만일에 정전이 된다면 산소 공급 장치로부터 모든 기계가 정지되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들은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기계선과 사령선의 장치는 14일간의 우주 비행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다. 달까지 가고 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최소 약 6일이며 나머지 8일을 더 여유있게 잡아 14일 분의 산소와 식량을 적재하고 있다.

우주왕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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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往復船 space shuttle

1977년 미국항공우주국은 747 점보 제트기를 고쳐서 만든 최초의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호로 비행실험을 했다. 이러한 실험을 거쳐 1981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우주비행사 두 명을 태우고 발사되었다. 이들은 54시간 동안 임무를 무사히 마쳤으며, 7개월 뒤에 두 번째 궤도 비행을 성공시킴으로써 우주선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구소련의 경우 1987년 에너지아라는 로켓이 설계되어 1988년 부란호를 승무원 없이 궤도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1989년 초 재정 부족으로 연기되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100가지에 이르는 임무를 계획대로 해내면서, 로켓처럼 발사하고 비행기처럼 착륙하도록 설계되었다. 우주왕복선의 구조는 궤도선인 오비터와 외부 탱크, 그리고 두 개의 고체연료 추진장치인 로켓 부스터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날개 달린 궤도선의 앞 부분에는 승무원실이 있고 조종실에서는 앞과 옆에 있는 창문으로 밖을 볼 수 있다. 외부 탱크는 궤도선 중앙에 붙어 있는데, 그 안에는 주엔진이 사용할 액체추진제가 들어 있다. 로켓 부스터 두 개는 외부 탱크 옆에 묶여 있으며 로켓 부스터에는 고체추진제가 들어 있다.

우주왕복선은 인공위성, 우주탐사선, 다른 무거운 짐 등을 지구궤도로 나른다. 또 인공위성과 우주탐사선을 발사할 뿐만 아니라 수리가 필요한 인공위성을 거두어들여 수리한 다음 궤도를 돌려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일환으로 미국은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서 '무중력과 노화'에 관련된 30여 가지의 우주 인체실험을 실시하였다.

챌린저호의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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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er號-慘死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열 번째 발사는 25번째 우주왕복선 임무로 예정되어 있었다. 1986년 1월에 우주비행사 7명을 태운 챌린저호가 발사되었다. 그러나 발사된 지 73초 만에 속도가 음속의 약 두 배가 된 고도 14,020m 지점에서 불덩이가 되어 분해되었다. 승무원 조종실은 우주왕복선에서 떨어져나와 공중으로 솟구쳤다. 조종실은 약 3분 뒤 대서양에 떨어졌는데 충격으로 부서지면서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 사고로 우주왕복선의 비행이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88년 디스커버리호의 발사로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은 이 사고로 우주왕복선의 결점을 대폭 보완하여 외부연료탱크에 8개소, 메인엔진은 31개소, 고체연료 로켓 부스터는 155개소, 그리고 오비터는 220개소를 개량하였다. 또한 앞으로는 메인 엔진의 터보펌프도 개량하고, 고체 연료 로켓 부스터의 추진력을 5.5톤분만큼 보강하며, 오비터의 우주 체재일수를 현재의 7일에서 16일로 늘리는 등 우주왕복선을 더욱 강력하게 할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우주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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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宇宙停車場)은 약 300-480km 높이에서 지구 둘레를 돌며 천문대, 실험실, 공장, 작업실, 창고, 연료창고로서의 역할을 한다. 유인우주선은 지구와 우주정거장 사이에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도 하며 무인우주선은 우주정거장에 식량과 물, 기기, 우편물을 전달하기도 한다.

우주정거장에는 방문 우주선과 연결할 때 쓰는 도킹구가 한 개 이상 있다. 도킹구는 대부분 해치라고 하는 둥근 문으로 되어 있는데, 방문 우주선의 해치와 연결되어 밀폐된 통로를 만든다. 두 해치가 열리면서 우주정거장과 방문 우주선 사이에 정상 기압의 터널이 만들어진다.

작은 우주정거장은 지상에서 만들어 커다란 로켓을 이용해서 궤도로 쏘아올리고, 큰 우주정거장은 우주에서 조립한다. 로켓이나 우주왕복선이 우주공간에 우주정거장의 모듈을 실어 나르면 우주비행사들이 이것을 조립한다. 오래된 모듈은 교체할 수도 있고, 우주정거장을 확장하고자 할 때에는 새로운 모듈을 붙일 수도 있다.

우주정거장에 있는 승무원들은 다양한 물질이 무중력상태에서 보이는 반응을 분석하고, 지구의 표면을 조사하거나 행성을 과학적으로 한다.

우주정거장은 고도 460km, 궤도경사각 28.5°의 궤도를 선회하는 우주 실험실이다. 길이 155m의 '붐'이라 불리는 구조물에 네 개의 기밀(氣密)모듈과 8개의 태양전지 패널이 달려 있다. 우주정거장 계획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 캐나다, 일본의 국제 협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중에서 유럽은 실험 모듈과 극궤도 플랫폼을, 일본은 실험 모듈을, 캐나다는 이동 서비스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의 네 기밀모듈 중 셋은 다양한 실험이나 관측 등을 하는 실험 모듈로 할당되어 있다. 우주에 떠 있게 되는 스페이스 스테이션 위에서는 지상에서 할 수 없는 특별한 실험이나 관측을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지상에서 만드는 합금보다 스테이션 안에서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더욱 균일하고 단단한 합금을 만들 수 있다. 네 모듈 중 나머지 하나는 탑승원이 식사나 수면을 취하는 거주모듈이다. 이 곳은 식사나 회합, 트레이닝 등을 하는 활동구역, 샤워나 컴퓨터가 설치된 완충구역, 수면이나 휴식을 취하는 안정구역으로 되어 있다. 거주모듈, 실험모듈은 모두 1기압으로 유지되어 있어서 탑승원은 보통의 작업복을 입고 활동할 수 있다.

살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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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yut

1971년에 구소련이 쏘아올린 최초의 우주정거장이다. 살류트 1호는 도킹구 한 개가 있는 한 개의 모듈로 되어 있었다. 1971년 6월에 우주비행사 3명은 자신들이 타고 간 소유스 11호를 살류트 1호에 연결하고, 의학적인 관찰과 실험을 하면서 23일 동안 지냈다. 그러나 지구로 돌아오는 동안 소유스 11호에서 공기가 새는 비극적인 사고가 생겨 3명의 우주비행사가 모두 목숨을 잃었다.

1977년에 쏘아올려진 살류트 6호에는 주 모듈의 한쪽 끝에 도킹구가 두 개 있었다. 이런 새로운 설계로 우주정거장의 승무원들은 다음 승무원이나 보급 우주선의 방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소유스를 고쳐서 만든 무인우주선이 1978년에 새로운 물자와 기구를 살류트 6호로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주정거장에서 훨씬 더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우주정거장의 낡은 부분을 손보거나 고치는 일도 가능해졌다. 살류트 6호는 거의 5년 동안 승무원 16명이 번갈아 탑승하면서 지구궤도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지냈다.

스카이래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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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lab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1973년 새턴 5호의 추진장치를 이용해서 궤도에 쏘아올렸다. 이 우주정거장은 발사되는 동안 심한 손상을 입었는데, 도착한 승무원들이 우주정거장 밖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 작업을 하였는데 28일 간 걸려 거둔 이 탐사의 성공으로 우주에서도 우주정거장을 수리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 뒤 다른 승무원 두 명이 스카이래브에 머물면서 의학 실험과 지구 촬영, 태양 관측을 하면서 우주정거장을 계속 유지시켰다. 이 두 번째 임무는 59일 간 이어졌고, 세 번째 임무는 84일 간이나 지속되었다. 하지만 1979년에 궤도를 벗어나 산산조각이 났고, 그 잔해는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와 인도양에 떨어졌다.

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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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

1986년에 구소련이 쏘아올린 우주정거장으로 양쪽 끝에 도킹구가 한 개씩 있고, 또 다른 해치가 4개 더 있다. 미르의 본체는 바퀴통과 같은 모양으로 중심부가 되고, 모듈은 바퀴살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미르에는 새롭게 고쳐 만든 장비와 성능이 더욱 좋아진 태양 전지판이 있다.

1986년 미국과 우주사업 경쟁을 벌이던 구소련은 3년 예정으로 미르를 쏘아올렸으나, 미르는 13년 넘게 우주에 머물렀다. 이 기간 중 미르는 지구궤도를 77,000여 바퀴 돌면서 무중력 상태의 인체 연구 등 16,500여 건의 실험을 수행했다.

또 외국 우주인 62명 등 103명의 우주인이 미르를 거쳐갔으며, 단일 최장 우주체류(737일)와 우주유영(82시간 21분) 등의 기록이 미르에서 달성됐다. 하지만 경제 위기를 맞은 러시아는 연간 2억 5,000만 달러(약 3,000억 원)의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승무원의 미르호 철수를 결심했다.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미르호는 2000년 4월경 사라지게 된다. 2000년 2월 미르호에 승무원 2명이 탑승해 대기권 진입을 위한 궤도수정을 하고 두 달 뒤 미르호는 대기권에 진입할 예정이다.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미르호는 폭발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잔해가 태평양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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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

미국·캐나다·일본·러시아·유럽우주기구가 협력해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으로 우주정거장은 여러 개의 여압 모듈과 태양 전지판을 갖게 될 것이다. 알파 우주정거장은 과학적인 연구에 중요한 국제 실험실 기능을 할 것이며 이 정거장을 건설하려면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러시아의 발사우주선들이 30회 이상 비행해야 한다.

우주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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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飛行士 astronaut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을 조종하고, 위성을 발사하거나 회수하는 따위의 일을 한다. 또 우주공간에서 공학, 의학, 과학 실험도 한다. 미국항공우주국의 경우 우주비행을 위해 두 종류의 우주비행사를 뽑는다. 하나는 조종 우주비행사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선 탑승 과학자이다. 조종 우주비행사는 우주선을 지휘, 조종하는 일을 하고 과학자는 우주선과 장비를 유지하고 실험을 하며 위성을 발사하는 따위의 일을 한다.

우주비행사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복잡한 우주선 장치에 대해 배우고, 모의 훈련 장치 안에서 보낸다. 간혹 우주에서 1년 정도의 긴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의 훈련에는 오랫동안 우주공간에 머물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특수한 적응 과정과 준비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우주비행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8-10년 정도의 기간을 준비해야 한다.

우주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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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食糧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인들이 식사를 하는 것은 지상에서 상상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다.

첫째 무중력이기 때문에 액체형의 음식물을 취급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러 가지 연구 끝에 미국에서는 튜브식(食)을 개발하여 발전시켰고, 다시 알루미늄제 튜브 대신에 가벼운 폴리에틸렌·나일론·아크릴 수지·폴리에틸렌 순으로 네 겹의 얇은 막을 겹쳐서 만들었다. 그래서 습기는 물론 공기·세균 등이 투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자루의 한끝에 물을 넣는 주입구가 있으며 비행사들이 권총과 같이 생긴 주수기(注水器)로 자루 속에 물을 넣게 된다. 다음에 손끝으로 약 3분간 주무르면 튜브에 들어 있는 고체형의 음식물이 물을 흡수해서 싱싱한 샐러드 푸딩이나 수프 등이 된다. 오렌지주스·코코아 등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조작한다. 가위로 자루 한 쪽을 자르고 그 곳을 입에 대고 손으로 자루를 눌러 짜면 음식물이 입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식사를 마친 후에 자루에 부착되어 있는 황색의 살균정제를 식사가 끝난 빈 자루에 넣는다. 이것은 방부제 역할로서 음식물의 찌꺼기가 썩어서 가스가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그 외에는 건빵·각설탕 등 한입에 넣기에 큰 음식물도 폴리에틸렌으로 진공 포장되어 있으며 가위를 포장 안에 넣어서 적당히 음식물을 쪼갠다. 지상에서 하던 버릇대로 입으로 잘라 먹으면 선내에 그 음식물의 가루가 온통 떠다니기 때문이다.

우주식의 재료는 되도록 잘게 썰어서 요리하며 급속히 냉동시킨 다음 그대로 특수 건조기에 넣는다. 이 건조기는 특별한 진공실로서 온도를 가열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만든 건조 식품은 물에 젖으면 건조 전과 똑같은 맛을 지닌다.

2인승의 제미니(Gemini) 우주선의 경우는 선내의 기온과 같은 온도의 물(21∼27℃ 정도)을 공급했지만 아폴로 우주선은 60℃ 정도의 뜨거운 물과 10℃ 정도의 액수를 공급해서 달 여행시 뜨거운 국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1인당 1일의 우주식은 2,800cal로서 단백질이 20%, 탄수화물 62%, 지방 18%이다. 튜브에 든 우주식은 1인당 1일 2kg의 무게였지만 폴리에틸렌 포장식으로는 600g이므로 1/3의 무게로 경량화(輕量化)시켰다. 그리고 아폴로 우주선에 적재한 우주식은 1인 1식으로 나누어 알루미늄 상자에 포장되고 색 테이프를 붙여서 분류하고 있다.

우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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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服

우주복은 비행사들에게는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우주인이 우주 밖으로 나가서 우주 유영(宇宙游泳)을 하든가 월면(月面)에 내려서 활동할 때 이 우주복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공간이 된다. 구소련 우주복과 미국의 것과는 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이나 미국의 것은 은색이며 구소련의 것은 오렌지 색이다. 미국의 우주 비행사들은 3종류의 우주복을 가지고 달을 여행한다. 그것은 선내(船內) 작업복·선내 우주복·선외 우주복의 3종류이다. 선내 작업복은 우주복을 벗고 선내에서 유유히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착용하는 작업복이다. 선내 우주복은 로켓 발사시 또는 월면 착륙선과의 도킹과 같은 위험한 작업을 할 때 착용한다.

또한 우주선에 구멍이 생겨서 선내외 산소가 유실될 때도 선내 우주복을 착용한다. 그러면 선내가 진공 상태가 되더라도 150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으며, 여행 도중에 이와 같은 비상 사태에서 곧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동안을 견딜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선외 우주복은 우주 유영과 월면 산책을 위하여 설계된 옷으로서 비행사들은 선내 작업복·선내 우주복·선외 우주복의 순으로 입게 된다. 비행사의 가슴과 등에는 4개소 이상의 의학 검사용 단자를 붙이고 있다. 비행사들의 맥박수와 호흡수 등의 자료가 이것을 통해서 무선으로 지상의 비행관제 센터에 보내지며 센터에서는 의사들이 이 자료에 의해서 비행사들의 건강 상태를 판단한다.

우주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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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便所

입으로 들어간 것은 언제나 배설되게 마련인데 이 배설물을 우주선 내의 공간에서 어떻게 처리하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첫째 대책은 밑으로 배설하지 않으면 된다. 미국에서는 처음에 우주식을 만들 때 대변을 형성하는 찌꺼기가 될 섬유 등을 제거하고 만들었다. 그 결과 우주 비행사들은 3일에 한번 정도의 대변을 볼 수 있도록 되었다. 우주식을 좀더 개량하면 3일에서 6일 만의 대변을, 그리고 다시 개량하면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대변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실험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테스트를 받은 사람은 대변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았다. 우주 비행사에게 대·소변을 참으라고 명령하는 대신에 우주선 내에 변기를 만들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아폴로 우주선에는 간단한 방뇨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선실의 우측 벽에 길이 2.5m 정도의 호스가 그것이다. 그것을 잡아당기면 그 끝에 채뇨기(採尿器)가 있다. 이것은 입구의 지름이 4.5cm, 길이 18cm의 원형이며, 호스는 흡입장치가 되어 있어 버튼을 누르면 펌프가 작동해서 소변이 선외의 우주 공간으로 방출된다. 우주 공간에 방출되자마자 얼어 그것이 태양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난다. 대변은 폴리에틸렌 자루로 포장해서 처리한다. 자루 주둥이에는 접착제가 붙어 있으므로 이것을 엉덩이에 벌려서 부착시킨 다음 용변을 보게 되어 있다. 무중력 상태이지만 인체의 분사력(噴射力)에 의해서 그것이 자루밑에 모이게 된다.

살균제를 용무가 끝난 자루 속에 넣어서 특별히 마련된 종이에 포장하고 다시 푸른 자루에 포장한다. 살균제를 넣는 이유는 이것이 부패해서 가스가 발생하게 되면 자루가 그 압력에 의해서 구멍이 나는 것을 예방함에 있다. 우주인들은 이 자루를 블루 백(푸른 자루)이라 부른다. 아폴로 우주선에는 이 자루가 약 30개 정도 있는데 세 사람 중 대단한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충분하다고 한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은 블루 백 대신에 기세(器洗)변소를 개발하고 있다. 수세식 변소의 원리로 단지 물 대신 기체(氣體)를 사용하는 것으로서 지름이 10cm, 높이가 30cm인 원통형 변기이며 원통 입구에서 하향으로 산소 가스가 분출하고 변기의 밑면에는 진공 펌프가 있어서 변을 흡수하게 되었다.

우주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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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遊泳

세계 최초로 우주유영을 한 사람은 1965년에 보스호트 2호를 탔던 구소련의 우주비행사 레오노프이다. 생명을 건 우주유영을 하는 동안 우주선과의 전화를 겸한 원격측정용 전선만이 유일한 생명선이다. 산소는 우주복 등에 달린 생명유지 장치에서 공급받는다.

우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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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銃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밖으로 나가 우주유영을 할 때 방향을 조정하는 장치로 우주선과 연결된 생명선을 잡아당기는 행동 대신 압축가스를 동력원으로 방향을 조정한다. 제미니 4호를 탔던 미국의 우주비행사 화이트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우주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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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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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utnik

구소련이 쏘아올린 무인인공위성으로 1957년 10월에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어 1958년 1월에 지구로 떨어질 때까지 29,000km/h의 속도로 95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돌았다. 1957년 11월부터 1961년 3월까지 구소련에서는 9개의 스푸트니크호를 더 쏘아올렸다.

익스플로러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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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衛星 explorer satellites

1958-1975년 사이에 미국이 발사한 55개의 과학위성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우선 지구궤도 주위의 온도를 측정하고, 유성(流星)을 관측했다. 또 우주선을 측정하고, 밴 앨런대의 가장 안쪽에 대전입자로 이루어져 있는 두 개의 지역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은하전파원의 측정과 우주공간에서 저주파실험 등을 하고 우리은하의 안쪽과 바깥쪽에 있는 엑스선방출원을 탐색하기도 했다.

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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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mbus

주로 기상·고층·대기·해양을 관측하고자 만든 과학위성으로 미항공우주국에서 제작했다. 1964년 8월부터 1978년 10월까지 7개의 위성을 띄웠다. 특히 7호는 성층권, 중간권, 지구복사수지, 오존전량 등에 관하여 대기와 해양을 탐사하였다.

극궤도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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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軌道衛星 satellite in polar orbit

남과 북의 양극을 통과하는 궤도위성으로 경사각을 90°로 하여 돈다. 극궤도위성은 남북으로 지구회전축을 포함하는 궤도를 그리므로,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지구의 모든 면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구소련은 군사정찰용위성, 기상위성 등을 이 궤도에 올려 놓았고, 미국도 군사위성과 지구환경조사위성을 극궤도에 올려 놓았다.

랜드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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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at

천연자원의 감소, 새로운 농지 개발, 환경파괴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으로 띄운 극궤도위성으로, 고도 920km 정도에서 남북으로 원궤도를 그리며 돈다. 조사 대상은 지구 표면에 있는 농작물의 종류, 성장 상태, 토양의 지질학적 구조, 암석의 종류, 토질, 당 속의 수분 함유량, 지표의 물 분포, 해양오염도 등이다.

아리안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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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n5號

1998년 10월 30일 남미 북부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 기지에서 차세대 위성발사 로켓인 '아리안 5호'가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아리안 5호에 실렸던 2개의 모조위성은 36,000km 상공의 정지궤도까지 올라갔다가 지구로 떨어지면서 공기와의 마찰로 사라졌다.

아리안 5호의 시험발사 성공까지는 10여 년 동안 유럽우주국 산하 14개 국가 연구소가 매달렸으며 모두 90억 달러의 개발비가 들어갔다. 이 위성로켓은 우주에 쏘아올릴 수 있는 위성의 무게를 종래보다 2배나 늘렸다는 점에서 세계 위성 발사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됐다. 또 로켓 하나가 위성 1개를 쏘아올리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번에 3개의 위성을 각기 다른 위치에 배치시킬 수 있게 됐다.

무궁화위성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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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窮花衛星三號) 우리나라의 세 번째 상용위성인 무궁화 3호가 1999년 9월 5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위성발사 기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통신 방송용 상업위성인 무궁화 3호는 유럽연합 아리안스페이스사의 '아리안4' 로켓에 실려 발사돼 적도 상공 2,000~35,876km의 타원궤도인 천이궤도를 돌았다. 무궁화 3호는 발사 21분 후 3단 로켓을 정상 분리한 데 이어 발사 59분 후 미국 괌에 위치한 위성관제소와 첫 교신에 성공했다. 무궁화 3호는 48일 후에 최종 목표인 지구정지궤도의 동경 116°에 안착하였다.이른바 '통일위성'으로 불리는 무궁화위성 3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21세기 초 실용화될 디지털 위성방송과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무궁화 3호는 무게 2,800kg에 태양전자판을 펼칠 경우 길이 19.2m의 최첨단 대형위성으로 27개의 통신용 중계기와 6개의 방송용 중계기가 탑재돼 있다. 이에 따라 정보화 사각지대인 농어촌과 산간 오지에서도 간단한 수신장비만 갖추면 저렴한 요금으로 고속 고품질의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정보통신 대중화가 가속화될 것이다.위성멀티미디어 서비스는 하나의 화면에 인터넷과 비디오·오디오(AV) 등 여러 화면을 동시에 띄워 고속인터넷·원격교육 가상병원·사이버대학·홈쇼핑·네트워크게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무궁화 3호는 특히 가변 빔 안테나를 새로 탑재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과 동남아 지역까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국내 진출을 강화하고 있는 외국 위성방송사업자에 적극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위성서비스를 해외에 제공할 수 있는 길도 처음으로 열린 셈이다.4년 동안 2억 1,600만 달러를 투자한 무궁화 3호 사업은 한국통신·한국전자통신연구원·현대전자 등 국내기업 및 연구소의 기술인력이 제작사인 미국 록히드만사의 연구진과 함께 위성체의 설계·제작·시험 등 전 과정에 참여해 국내 항공우주기술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무궁화 2호, 3호 비교

2호

비교 내용

3호

12기

통신 중계기

27기

3기

방송 중계기

6기

10년

수명

13~15년

50개

방송 채널

168개

한반도

서비스 지역

한반도 및 동남아 지역

652kg

우주 내 질량

1,298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