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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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편집]

일년, 이년, 삼년, 오년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자. 장구한 세월을 변함없이 충성을 다하면 조카님도 오해를 푸실 날이 이르겠지.

─형왕(文宗)의 재궁 앞에서 깊이 스스로 맹세한 이래 수양은 더욱 더 충성을 다하여 조카님을 모시었다.

강보적부터 부왕께 늘 「수양숙을 삼가라, 무서운 사람이니라」는 교훈을 들으면서 자란 왕은 세상 무엇보다도 수양숙을 무서워하였다.

아버님도 승하하였다. 수양숙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제이 천성을 품고 왕은 등극하였다.

빈전에서 재궁을 모실 동안 왕은 처음에는 참으로 기막혔다. 세상 무엇보다도 무서운 사람─수양숙이 딱 겉에 붙어 앉아서 잠시 한 때도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진저리나게 무섭고 애가 탔다.

한 달─

두 달─

석 달─

가까이 지낼 동안 차차 무서움증이 덜어졌다. 동시에 수양숙의 헌신적 보호가 차차 눈에 뜨이어 갔다. 그 체격, 음성, 모두가 유달리 굵고 큰 그 숙에게서 어디서 그런 세밀한 주의가 나오는지. 어린 왕이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곧 누울 자리를 준비하였다. 갈한 듯하면 무엇을 눈치를 채는지 곧 내관에게 식혜나 밀수를 부른다. 원상(院相─왕이 빈전에 있을 동안 정무를 맡아보는 대신)이 무슨 문제를 가지고 빈전까지 찾아오면 수양이 맞아서 듣고, 거기다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상책 중책 하책의 세 가지로 나누어 그 문제(원상이 가져온)와 아울러 해결 삼방책까지를 왕께 아뢰어 신료의 어리석은 행동에는 왕을 대신하여 책망도 하였다.

만사를 독재(獨裁)하는 일은 없고 반드시 왕은 윤허를 얻어서야 행하고 아직 어린 임금이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소상하고도 명쾌하게 가르치어 올리고 지도하여 올리고 그러면서도 또한 옥체 보중까지 용의주도하게 감독하고 돌보는 것이었다.

이 수양에게 비하여 다른 어린 숙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안평숙의 태도도 너무 차이가 컸다.

안평숙은 자기가 직접 왕으로부터 명을 받거나 심부름을 받은 일이 아니면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가장 변변치 않은 일을 예로 들지라도 가령 왕이 무엇을 집으려 하는데 팔이 채 자라지 않는 경우를 당했다 치면 안평은,

『저것 좀 이리로 밀어 주세요.』

하던가, 혹은,

『좀 집어 주세요.』

하고 직접 자기를 지목해서 시키는 일이면 부득이 행하지만, 왕이 혼자서 집으려고 애를 쓰든가, 혹은 누구라고 지목하지 않고 다만,

『저 것 누구 좀 안 집어 주시나.』

하든지 하면 외면하고 모른 체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역시 물건을 집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가령 왕이 안평에게 향하여,

『안평숙 저것 좀 집어 주세요.』

할 때에 안평의 겉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 일어서려 하면 안평은 부러 행동을 느리게 하여 그 사람이 집어 바치도록까지 안평은 집으러 가려는 행동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근한 예에 지나지 못하지만 안평은 만사에 다 그러하였다.

『군명은 복종해야 한다.』

『움찔거리기 싫다.』

이 두 가지 마음의 합작이 안평의 온 행동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수양은 그 꼭 반대로, 어떻게 알아내는지 입을 딱 벌릴 밖에는 도리가 없도록 왕의 「하고 싶어하는 일」을 알아내어 봉행하며, 미처 못 알아낸 일이라도 왕의 분부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보다 앞서서 하명을 봉행하고 모든 정무에 대해서도 그의 활달한 눈으로 관찰하여 가장 적당한 방책을 골라내어 왕의 재단을 청하고─그는 빈전에 있을 동안은 섭정, 섭정 가운데서도 가장 믿을만한 섭정의 책무를 스스로 맡아 봉행하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는 동안 왕은 이 수양의 성심을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도록 절실히 느끼었다.

─아버님이 숙을 오해하셨구나.

수양숙께 대한 감사의 염과 존신의 염이 왕의 마음에는 종내 크게 자랐다.

─할아버님이 역시 바로 보셨다.

왕도 분명히 기억하는 바, 수양이 부왕의 병석에 와서 무슨 진언을 하고 할 때에 부왕은 흔히 외면하여 버리셨다.

어떤 때는 혀를 채며 냉큼 나가라고 호령하실 때도 있었다.

이런 일을 당하면 감정 나서라도 한동안이라도 일궐 않기가 쉽다. 그런데 수양숙은 한동안은커녕 그 자리에서 그냥 미소하면서 부왕께 무슨 말씀을 여쭙고 하였다.

「수양은 삼가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따라서 수양에게 호감을 못 가졌던 당시의 세자는 수양의 이 태도를 보고 뻔뻔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왕 승하한 뒤에 가까이 조석으로 대하고 보니 대하면 대할수록 그 성의가 느껴지고 상종하면 상종할수록 그 마음이 믿어워진다.

부왕 승하하시기 직전에 고명하기 위하여 대신들을 부를 때에 수양은 들지 말라 하여 대신들에게 수양을 믿지 않노라는 뜻을 분명히 나타냈다. 지금도 내관들이 저희끼리 하는 잡담의 마디마디를 뜯어보면 대신들은 부왕의 이 말씀을 방패삼아 수양숙과 간간 다툼이 생기는 모양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사람이란 얼마나 불쾌한 감정이 일어날지 왕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숙부님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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