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네/천합소문의 아들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1[편집]

일환아!

「거짓말은 도둑질의 근본이니」

하는 속담이 있다.

거짓말이라 하는 것은 얼마나 나쁜 것인지 그것을 말하는 바다.

또 유명한 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을 너도 들었으리라.

어떤 양(羊) 치는 아이가 있었다. 본시 거짓말을 즐겨 하는 아이였다.

거짓말이라야 무슨 악의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농담삼아 재미로 하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남이 속는 것이 재미가 있어서, 그것을 구경하려 하는 것이었다.

어떤 밤, 이 아이는 산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을 속여 보고 싶어져서,

「이리(狼)야! 이리 무리가 온다! 사람 살리오!」

하면서 마을을 향하여 뛰어내려갔다. 마을에서는 혼이 났다. 그래서 모두들 몽치를 가지고 이리를 쫓으러 뛰어나왔다.

숨을 헐떡이며 산에서 내려오던 이 아이는 덤비는 사람들 틈에 뛰어들면서,

「하하하하! 잘 속는다!」

하고 웃어 대었다.

동리 사람들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꾸짖지도 못하고 도로 들어갔다.

여기 재미를 본 이 목동은, 그 뒤 어떤 날 또 한번,

「사람 살리오!

외치면서 마을로 뛰어내려갔다. 마을에서는 또 놀라서 뛰어나왔다. 그것을 보고 목동은,

「또 속았다!」

하고 웃으면서 산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 얼마 뒤였다. 어떤 밤, 이 목동이 산에서 양을 지키고 있을 때에, 저편 숲에서 무서운 이리의 〈오─ 오─〉하는 부르짖음이 나더니, 그 부르짖음은 목동이 있는 곳으로 차차 가까이 왔다.

목동은 혼비백산하였다. 양이고 무엇이고 모두 내어버리고 도망하여 마을로 내려올 때에, 이리의 무리는 목동의 뒤를 더욱 급히 따라왔다.

「아이구 사람 살리오! 이리야! 이리!」

목동은 목청을 다하여 부르짖으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음질하였다.

마을에서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두 번을 속은 일이 있는 마을에서는 이번도 목동의 거짓말인 줄 알고 내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 죽소! 사람 살려요!」

부르짖으며 마을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쳤지만, 목동의 걸음이 이리의 걸음을 따를 수가 없었다. 이리와 목동의 거리는 점점 가까와졌다.

「아! 죽는다!」

소리를 낼 때는, 벌써 목동의 뒷덜미를 이리가 물고 늘어진 때였다. 이리하여 이 목동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마침내 자기의 목숨을 잃었다.

사람이란 왜 그다지도 거짓말을 하기를 좋아하느냐? 아무 필요도 없는 일에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목동은 왜 거짓말을 하였느냐? 거기는 아무 이유도 없다. 다만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사람이란 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고자 하느냐? 아무 필요도 없는 거짓말을 서로 하기 때문에 생기는 손해는 너무도 크다. 사람의 지난 역사로써 그만일은 넉넉히 알 것인데, 그래도 사람은 왜 그냥 거짓말을 하느냐? 필요가 있어서 하는 거짓말도 용서치 못할 죄어늘, 왜 아무 필요도 없는 거짓말까지 즐겨서 하느냐? 쓸데도 없이 남을 속이기를 좋아하는 이 세상 그것은 너무도 고약한 세상이다.


2[편집]

일환아!

아버지는 장차 백제의 망한 이야기─ 백제 임금 의자왕이 그 재상 성충의 충언을 듣지 않기 때문에 팔백 년에 가까운 긴 역사를 가진 백제가 망하여버린 그 내력을 말하겠지만, 그전에 또한 백제와 신라와 때를 같이하여 칠백여 년간을 서 있던 고구려의 망한 내력을 말하겠다.

쓸데없는 사람이 아무 필요도 없이 한 마디의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고구려의 긴 역사는 마지막 막을 닫은 것이다. 그 거짓말의 이야기를 여기 쓰겠다.

고구려 보장왕 이십오년의 일이었다.

역사상에 그 이름을 커다랗게 적어 놓은 일대의 영웅 천합소문(泉蓋蘇文)이[1] 죽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은 남생(男生)이요, 둘째는 남건(男建)이요, 세째는 남산(男産)이었다.

합소문이 죽은 뒤에, 그의 맏아들 남생이 돌아간 아버지를 대신하여 막리지(莫離支) 벼슬에 올라갔다.

남생이 막리지가 되면서, 그는 정사를 돌보기에 넉넉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나라를 한 번 돌면서 백성의 사는 모양이며, 그 경제 상태를 시찰하고자 하였다.

남생의 삼형제는 몹시 의가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직까지 세 형제가 싸움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자랄이만큼 의가 좋았다. 형은 아우를 사랑하였다. 아우는 형을 공경하였다.

그리고 삼형제가 늘 음식을 함께 하고, 놀기를 함께 하고, 문을 함께 배우고, 무를 함께 닦고, 슬픔을 같이 통곡하고, 기쁨을 같이 즐겨하고 지냈다.

막리지가 되어서 국내를 순찰하러 떠나기 곧 전에 남생은 두 동생을 가까이 불렀다.

「나는 지금 중한 벼슬을 하였다. 나라에서 받은 중한 책임이매, 뼈를 부수면서라도 책임은 다해야겠다.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아래로 백성의 지내는 모양을 몰라서야 어떻게 옳은 정치를 베풀겠느냐? 그래서 나는 지금 국내를 다 한 번 순찰을 하러 떠나려는데, 떠나기에 임하여 너희 두 사람을 부른 것은 다른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상감께 중한 책임을 맡고 떠나기 때문에 상감을 보좌하지를 못해. 하니깐, 내가 없는 동안 형을 대신해서 위로는 상감을 보좌할 것이 너희에게 부탁하는 첫째 부탁이요, 또 한 가지는 아래로 많은 백성을 역시 형을 대신해서 잘 가려야 한다. 정치는 엄하게 백성에게 임할 것이 아니요 사랑으로써 임해야 한다. 너희 두 사람을 조용히 부른 것은 오로지 이 두 가지의 일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남생은 두 아우에게, 이 일을 신신히 부탁을 하였다.

형을 지극히 공경하는 두 아우는 즉시 형의 명령에 쫓기를 서약하였다.

「우리의 지혜가 형님을 당하지는 못하겠지만, 정성껏 부탁하신 일을 다할 터이오니 뒷일은 근심 마시고 민정이나 잘 순찰하고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위로는 상감님과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소홀함이 없도록 주의를 하여라.」

이렇게 부탁을 한 뒤에 남생은 궐하에 하직을 하고 민정 순찰의 길을 떠났다.

형 막리지가 떠난 뒤에, 두 동생은 형의 부탁에 의지하여, 형을 대신하여 막리지의 임무를 다하였다. 일대 영웅 합소문의 자식─ 맏형이 맏형 구실을 하느니만큼, 동생들도 또한 부끄럽지 않게 동생의 구실을 해서 서로 잘 의논해 가면서, 위로 왕과 아래로 억조 창생에게 임하였다.

이러한 때에 뜻 안한 고장이 생겨나서 그것이 차차 전개되어, 마지막에는 고구려 나라가 거꾸러지게 된 것이다.


3[편집]

여기서 다시 탄식할 바는 세상 사람은 왜 그다지도 〈필요 없는 거짓말〉을 즐겨 하는가 하는 점이다.

남생이 길을 떠난 뒤의 일이다.

어떤 날, 몇몇 젊은 재상들이 모여서 연회를 하던 중에 거기서는 문득 남생 형제의 두터운 사랑에 말이 이르렀다.

「세상에 형제가 많다 해도 그 형제만큼 서로 믿고 서로 속을 아는 형제는 다시 없을 게야.」

누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참 형이 아우더러 불로 뛰어들어가라면 까닭도 묻지 않고 아우들은 불로 들어갈걸!」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응하였다.

한참을 그 형제의 사랑을 토론하던 그들의 사이에는 한 가지의 새로운 흥미 있는 문제가 일어났다. 그것은 남생 형제의 의는 도저히 뗄 수 없는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글쎄, 힘들걸!」

누가 이렇게 말하면 이 편에서는,

「무얼! 아무리 친하다 해두 이간을 붙이려고 싸매고 달려들면 떨어 안지는 사람이 없어. 친하면 친하니만큼 서로 나무렴도 많겠고 원망도 많을 거니깐 오히려 이간 붙이기가 쉬울섷.」

이렇게 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차차 벌어지면서 마지막에는 아무리 이간을 붙인다 해도 남생 형제만은 속지 않으리라는 패와 이간 붙이는 데 안속는 사람은 없다는 패가 서로 나누어져서 격론까지 일어났다.

그들은 한참을 격론을 하다가 그 격론의 끝에,

「이럴 것이 없이 내기를 했으면 가장 쉽게 알 것이 아니오? 우리 내기를 합시다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리하여 내기는 시작되었다. 지는 패에서는 이기는 패에게 한턱을 잘 쓴다는 것이 그 내기의 조건이었다.

진실로 변변치 않은 데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내기의 조건도 아주 변변치 않은─ 말하자면 한때의 웃음에서 시작되어 한 때의 웃음으로 끝을 막을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내기 때문에 남생의 형제는 서로 반목이 되고, 그 때문에 마지막에는 고구려라 하는 나라의 멸망에까지 이른 것이다.

반드시 이간을 붙일 수가 있노라고 장담한 패의 한 사람은 길 떠난 형을 대신하여 국무에 분주한 남건과 남산을 찾아갔다. 그리고 가장 긴하고 은밀한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연하여 사면을 살피어,

「당신네의 몸에 위험이 가까운 줄을 모르시오?」

하고 물었다.

형제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우리 몸에 위험? 모릅니다.」

「이건 절대로 비밀히 해야 할 말인데, 당신네들은 비밀히 해 주시겠소? 그리고 내 말을 꼭 신용하시겠소?」

「어디 말해 보오.」

「다른 것이 아니라, 당신의 형 막리지가 당신네들을 해하려는 눈치가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남건 형제는 배를 두드리며 웃었다.

「여보, 농담도 작작 하오, 형님께서 우리를 해하다니, 그런 우스운 말은 그만두시오.」

「아 그래도......」

그래도라고 정색을 하면서 다시 말하려 할 때에 형제는 이구동성으로,

「노형이 술을 자셨거든 집에 가서 낮잠이나 자오.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중언부언했다는......」

남건은 곁에 놓인 쇠뭉치를 들어서 방바닥을 쿵 하니 울렸다. 이 서슬에 그 사람은 다시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4[편집]

남생은 민정 순찰의 길을 떠났다. 이곳 저곳으로 민정이며 관리들의 행정을 순찰하며 어떤 곳에 이른 때였다. 어떤 사람이 남생을 만나자고 찾아왔다. 만나 보니 이전에 알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서울 있어야 할 그 사람이 의외에 여기 있으므로 남생은 의아하여,

「언제 여기 오셨소?」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은 대답하기 전에 먼저 사면을 살피었다.

「비밀히 여쭐 말씀이 있는데 타인들을 좀 물리시면 좋겠읍니다.」

「무슨 국사에 관한 일이오?」

「예.」

「중대한 일이오?」

「예.」

「비밀히 해야 할 일이오?」

「그럼─」

남생은 좌우를 돌아보고 모두 좀 몸을 피하기를 명하였다.

이윽고 조용해진 뒤에, 그 사람은 무릎으로 한 걸음 더 다가앉았다. 그리고 소리를 낮추어,

「중대한 일이 서울서 일어났읍니다.」

고 말을 꺼내었다.

「중대한 일이란 대체 어떤 일이오?

「막리지, 내 말은 꼭 신용해 주십시오. 지금 나는 막리지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달려왔읍니다.」

이 심상치 않은 말에 남생은 눈을 크게 하였다.

「어서 말해 보시오.」

「지금 막리지의 두 계씨가 못된 일을 하렵니다.」

「예?」

막리지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뚫어지게 그 사람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두 계씨가 막리지라는 벼슬에 탐을 내서, 상감께 좋지 못한 말씀으로 막리지를 모함하고 거사를 하려고 합니다.」

커다랗게 떴던 남생의 눈은 고즈너기 닫겼다. 남생은 대답지 않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을 동안 한 때는 이 의외의 말에 놀랐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일은 있을 까닭이 없었다. 한참 뒤에 남생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건 당신의 오해겠소. 내 아우는 결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오. 뿐더러 만약 아우가 막리지라는 벼슬이 마음에 있다면, 나는 아우에게 곧 그 벼슬을 주겠소. 그럴 줄은 아우들도 알 것이외다. 나는 아우를 믿소.」

「아아, 세상에는...... 이렇듯 행님은 믿는데 동생들은 그런 형님을 배반하다니! 에이 몹쓸 세상! 막리지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소이다만, 막리지에게 충실되던 탓에 내 목숨이 위태하니 내가 잘 도망하도록 주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그리하오.」

「그리고 막리지는 속는 셈 치고 사람을 서울로 보내셔서 계씨들의 동정이나 한 번 보시오.」

이 말을 들은 밤, 남생은 잠을 못 이루었다. 무론 그런 일은 있음직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그만치 사랑하고 또한 자기를 공경하던 동생들이 자기를 배반한다는 것은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아까 그 말을 부러 하러 여기까지 달려왔던 그 사람은 어인 일인가? 이상한 일로 여기까지 달려올 호사가도 없을 것이다.

황금은 선비의 마음도 흐려지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두 동생이 임시로나마 벼슬에 욕심이 났나? 아아, 천박한 일이로다! 만약 벼슬이 부럽다면 그맛 것이야 물려주지 못하랴.

이리하여 이튿날 새벽, 남생은 한 사람의 심복을 불러서 서울로 돌아가서 아우들의 동정을 살펴 오라 하였다. 그리고 만약 아우들이 벼슬을 부러워한다면 말없이 이 자리를 아우에게 주리라고 생각하였다.


5[편집]

남건과 남산은 일찌기 이간하는 한 사람을 꾸짖어 돌려 보냈다. 그 밤에 다른 사람이 또 몰래 형제를 찾아서 그런 말을 또 하였다. 이튿날도 그런 말이 또 귀에 들어왔다. 낮에 또 들어왔다.

이 너무도 심하고 흔한 말에 형제의 마음에는 조금 의심의 종자가 뿌려졌다.

이런 때에 이 말썽을 마지막으로 고정시키는 새로운 사건이 생겼다.

어떤 날 밤, 형제는 마주 앉아서 그날 치른 정사에 틀림이 없었는지를 다시 한 번 검토한 뒤에, 이즈음 매우 성한 수상한 말썽을 서로 의논하던 그때였다.

남건이 먼저 그 소리를 들었다. 바삭 하는 수상한 소리였다. 남건은 손을 들어 남산에게 조용하라고 손을 저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때에 또 바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삭 소리는 또 났다. 듣고 보매 그것은 소리를 감추려는 사람의 발자취가 분명하였다.

발소리는 차차 형제의 있는 방으로 가까이 왔다. 문앞까지 이른 뒤에는 자리를 잡는지 부석부석 하는 소리도 났다. 그 뒤에는 귀를 기울이는 듯이 조용하여졌다.

남건은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형을 보았다. 잠시를 서로 바라보다가 동생의 얼굴에서 눈을 떼는 순간, 남건의 손은 번개같이 움직이어 곁에 놓인 작은 활과 살을 집었다. 동시에 살의 날아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휙 하니 났다.

남건의 활은 이름난 활이었다. 그다지 겨냥도 안하고 쏘았지만 밖에서는 사람의 비명성이 들렸다. 살은 담벽을 뚫고 나아가서 수상한 사람을 맞춘 것이었다.

사람의 비명을 들으면서 남건은 활을 고즈너기 놓았다.

「자, 어디 나가 볼까?」

그리고 남건이 나가 보매, 웬 한 사람이 가슴에 살이 박혀서 넘어져 있었다. 남산도 뒤로 불을 들고 따라나왔다.

형제는 괴한에게 가까이 갔다. 바른 곳을 맞은 괴한은 벌써 피를 쏟고 죽었는지 다시 소리도 없었다.

남건은 발로 괴한을 차서 자빠뜨려 뉘어 놓았다. 남산은 괴한의 얼굴에 불을 갖다 대었다.

행제는 거기서 보았다. 괴한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맏형 막리지 남생의 심복인이었다. 이것을 알아본 뒤에 형제는 한참을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때 형제의 마음에는 그 수상한 말썽이 모두 참말로 믿어졌다. 믿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형이 자기네를 해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왜 심복인을 몰래 보내서 자기네의 동정을 엿보았을까?

「형님, 그게 모두 정말이었구료!」

남산이 이렇게 말할 때 남건은 대답하지도 못하였다.

「형님, 세상에 누구를 믿겠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그러나 남건은 역시 대답지 못하였다. 깜박일 줄을 잊은 듯한 커다란 눈을 허공으로 향하여 뜨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정신 잃은 사람같이 그 곳에 서 있던 남건은 황급히 동생의 소매를 잡았다.

「자, 들어가자. 들어가자.」

그리고 마치 누가 쫓아오는 듯이 급급히 방으로 돌아 들어왔다.

들어오는 동시에 남건은 그의 몸을 커다랗게 방바닥에 내어던졌다. 호랑이의 포함성과도 비슷한 통곡성이 그의 목에서 울리어 나왔다. 양손으로 안타까운 듯이 방바닥을 두드리며 남건은 소리를 놓아서 통곡하였다. 가장 경애하던 이에게서 그 신망을 잃어버린 아픔에서 나온 통곡이었다. 남산도 따라서 통곡하였다.


6[편집]

사랑하는 형에게서 모반함을 받았다고 믿은 남건, 남산의 형제는 억울하기가 짝이 없었다. 형제는 밤이 새도록 땅을 두드리며 통곡하였다.

이튿날 형제는 손목을 맞잡고 입궐하였다. 그리고 보장왕께 배알하였다.

눈이 퉁퉁 부은 형제를 보시고 왕께서 웬 연고냐고 물을 때에, 형제는 머리를 왕께 내밀었다.

「상감, 벌해 줍소서.」

「그게 웬 말이오?」

「죽음으로밖에는 소신들의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읍니다.」

왕께서 재차 연고를 물으실 때에, 형제는 지난 일을 모두 왕께 하소연하였다.

그것을 들으신 왕께서도 매우 의아해하셨다.

「그게 과연 사실이오?」

「어젯밤에 소신의 살을 맞고 죽은 사람은 분명히 막리지의 심복이올시다.」

한참을 왕께서는 머리를 숙이시고 생각하셨다.

「좌우간 짐의 생각 같아서는 막리지가 동생을 저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을 듯하오. 그러니깐 불러서 그 까닭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합시다.」

이리하여 민정 순찰을 떠난 남생에게 대하여 왕명으로 도로 즉시 귀경하라는 영이 이르렀다.

이편 남생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에 의심이 생겨서 동생들의 동정을 엿보러 사람을 보내기는 하였다. 그러나 동생들을 굳게 믿고 있는 남생은 사람을 보내기는 하였다. 하나 여전히 좋은 회답이 이를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그 보낸 사람과 함께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심복인은 남건에게 잡혀서 죽었다는 의외의 보고를 하였다. 그 뒤미처 왕명으로 즉시 귀경하라는 영이 이르렀다. 뒤를 연하여 이른 이 두 가지의 보고와 명령에 남생은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놀랐다.

왕명으로 온 사람은 남생의 명령으로 즉시 잡아서 베었다. 그러나 남생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아아, 세상이 이런 것이로구나!」

황금은 흑사심이라 하는 말이 있으되 아무리 빛나는 황금일지라도 아무리 훌륭한 녹자일지라도, 자기네 형제의 두터운 의만은 움직일 수가 없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남생에게는 이 일은 과연 청천의 벽력이었다.

자기가 사람을 보냈는데 동생이 그 사람을 잡아서 죽였다. 뿐만 아니라 왕께 어떤 참소를 하였는지, 왕명으로서 자기를 잡아 올리려까지 한다. 믿을 것은 누구냐? 피를 서로 나는 동생이 오늘날 이런 모반을 하였다.

「에이! 원통하구 분해!」

이런 말이 남생의 입에서 나올 때는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동생도 없었다. 위로는 왕이며 나라도 없었다. 참소하는 사람의 말을 곧이듣고, 죄 없고 공만 있는 자기를 불러 올리려는 그에게 어떻게 의탁을 하고 그를 위하여 일을 하랴.

왕명으로 왔던 사자를 잡아 베고 남생은 거기 배종해 온 사람에게 향하여,

「막리지는 지금 민정을 순찰하는 중이오매, 긴급하신 의논이 아니옵건대 서서히 해 주시면 좋겠읍니다.」

하고 왕께 복주하기를 명하여 그 위에 매까지 때려서 돌려 보냈다.

조금의 분풀이는 하였다. 그러나 이맛 분풀이로 그의 마음을 펼 수가 없었다.

「아아, 아아!」

남생은 밤새도록 가슴을 두드리며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새벽에는 너무도 억울함으로 말미암아 피까지 토하였다.

이리하여 남생의 마음에는 왕과 나라와 동생에게 대한 원한이 깊이 박혀졌다.


7[편집]

왕은 남생을 부르셨다. 그리고 남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무슨 오해겠지, 남생은 그렇지 않을 줄 왕은 믿고 계셨던 것이다. 그랬더니, 의외에도 남생은 왕명조차 거스릴 뿐 아니라 보냈던 사람도 잡아 죽였다.

여기서 왕도 드디어 남생을 의심 안하실 수가 없었다. 왕의 노염도 매우 컸었다. 왕은 당장에 남생에게서 막리지의 벼슬을 삭탈하시고 남건을 그 대신 막리지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새 막리지 남건에게 즉시 군사를 풀어서 역적 남생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남건은 군사를 호령하여 민정 순찰의 길에 있는 제 형을 잡으려 하였다.

이 소식이 남생에게 이른 때에 남생은 과도한 노염으로 몸을 한참이나 와들와들 떨었다. 자기의 아버지 합소문 때부터 자기의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고 나라를 도왔거늘, 오늘 날 이런 일을 당할 줄은 과연 꿈밖이었다.

이것도 모두 저 미운 동생놈들의 잡간질! 아무리 세력이 부럽다 할지라도 정당히 의논만 하면 그것을 물려주지 않을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차례를 밟지 않고 이런 괴악한 짓을 하는 것은 분하기 짝이 없었다.

왕도 왕이시다. 어떤 참소를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아직껏 그만한 충성을 다한 자기어늘, 한 때의 참소로 인하여 이렇듯 쉽게 마음이 변하는 왕이시매 어떻게 마음을 놓고 섬길 수 있으랴

(왕도 나라도 동생도 이젠 다 원수로다. 나는 내 몸 하나를 이 위경에서 빼어내어 이 원한을 언제든 풀 기회를 엿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그곳을 도망하여 국내성(國內城)으로 달아났다.

동생의 군사는 더욱 급히 뒤를 쫓아왔다. 여기서 세궁 역진한 남생은, 자기 아들 헌성(獻誠)을 당나라로 급히 보내서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몸을 거두어 주기와 도와 주기를 청하였다.

그것은 당나라의 고종 때였다. 일찌기 지략이 겸비한 영웅으로서의 천합소문은 고종도 잘 아는 터이었다. 그의 아들 남생이 역시 비범한 인물이란 소문도 또한 당나라에까지 들리어 있는 터였다. 이런 인물이 스스로 몸을 의탁하러 오려는 것은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 였다.

그래서, 고종은 즉시로 좌효위대장군(左騎衛大將軍) 설필하력(契苾何力)을 국내성으로 보내서 남생을 구원하여 당나라로 오게 하였다.

남생은 당나라 장수에게 구원을 받아서 당나라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고종은 남생들을 불러 보았다. 그 인물의 준수함이며, 그 지력의 빼어남이며, 그 용기의 과인함이 당대에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고종은 남생의 인물을 사랑스럽게 보았다. 그래서 역시 고구려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막리지의 벼슬을 남생에게 주었다.

남생은 당나라 막리지가 되었다. 당나라에서 자기에게 잘 대접을 하면 하느니만치, 남생은 그 자기의 인물을 못 알아본 고구려에게 대한 원한이 더 커 갔다. 그리고 그 원한이 커 가느니만치 또한 자기를 그렇게 참소한 두 동생에게 대한 노염이 더하여 갔다.

「음, 어디 두고 보자!」

이를 갈면서 멀리 고국 하늘을 바라보며 남생은 늘 이렇게 부르짖고 하였다. 사랑하는 고국, 정다운 고국, 생각나는 고국─ 아아, 그러나 남생에게는 그 고국은 단지 원한 많은 고국이었다. 그리고 그 원한을 언제든 갚으려고 굳게 마음먹었다.


8[편집]

당나라에서 남생을 맞아서 후히 대접한 것은 물론 남생의 인물이 준수한 것을 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인물이 준수한 것보다도 이면에는 또 한 가지의 계략이 숨어 있었다. 당나라에서는 신라와 힘을 아울러 몇 해 전에 벌써 백제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백제 북 방에 웅거해 있는 고구려는 너무도 활 잘 쏘고 표표한 인종들이므로 정벌하기가 힘들었다. 몇 번을 정벌가기는 갔었지만 매번 도로 쫓겨오고 하였다.

이 때에 고구려의 막리지 남생이 당나라에 투신하고자 온 것이었다.

당나라에서는 남생을 이용하여 여러 해 벼르던 고구려 정복을 하려는 계획 아래에서 남생을 흔히 맞은 것이었다.

고구려 정벌군을 인솔하기에는 남생만치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남생은 고구려에 큰 원한을 품은 사람이었다. 고구려를 방방곡곡이 민정을 순찰하고자 편답한 사람으로서, 그 땅의 지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에는 지금도 남생을 따르려는 백성이 많이 있었다. 만약 남생이 고구려를 정복한다 하면 내응할 백성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리하여 고구려 정복에 남생을 이용하려는 당나라에서는, 다시 남생에게 요동대도독(遼東大都督)에 겸하여 평양도 안무대사(平壤道按撫大使)와 현토군공(玄菟郡公)을 봉하였다. 그리고 남생의 환심을 기껏 산 뒤에, 정군 이적(李勣)과 함께 고구려 원정의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원정의 길을 떠나기 전날 밤에, 남생은 혼자서 방에 앉아서 이런 생각 저 생각 번민을 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개 무량하였다. 오래 벼르던 일을 이제 바야흐로 결정하였다. 그것은 원한 많은 고국과 밉고 미운 아우를 치러 가는 길이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생각할 때에, 그것은 또한 자기의 고국을 치러 가는 일에 다름이 없었다.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 조상이 모두 나시고 자라시고 세상 떠나신 곳, 그리고 또한 자기가 나서 자란 곳─ 자기가 피와 살을 물려 받은 곳─ 그곳을 향하여 자기는 지금 군사를 이끌고 간다.

이것이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에 대하여는 그는 생각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생각지 않으려는 그 한편에서는 거기 대한 생각이 연하여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사내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버린다.」

이 속담말로써, 남생은 자기의 마음을 속여 보려 하였다. 고국은 자기를 몰라보았다. 뿐이냐? 충성을 다 하려는 자기를 원수로 대접하였다. 이러한 고국이어늘, 이 남의 나라는 자기를 어떻게 대접하였나? 이 나라에서는 자기 한 사람을 구해내기 위하여 군사를 국내성까지 보내 주었다. 이 나라에 데려온 뒤에도, 벼슬로, 금전으로, 권력으로 온갖 것으로 자기를 대접하여 주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그 목숨을 내어버려야 한다. )

자기는 지금 이 자기를 알아주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던지려다. 자기를 몰라보고 자기를 원수로 본 나라를 치러 가련다. 이것은 가장 정당하고 옳은 일이다.

이러한 이론으로써, 그는 자기의 마음을 속여 보려 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번의 이 길에 대하여, 남생은 마음에 걸리는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 가지 만 가지의 어지러운 생각 때문에 남생은 앉아서 밤을 새웠다.

그러나 밝는 날 아침, 한 마디의 계명성으로 뭇 집의 아침 짓는 연기가 떠오르며, 진영에서는 취군의 쟁과 나발 소리가 요란히 울릴 때는, 남생은 어젯밤의 어지럽던 생각을 두 잊어버리고 용감히 투구와 갑옷을 입었다.


9[편집]

전쟁은 드디어 시작되었다.

남생과 이적이 인솔한 당나라 십만 대군은 물결같이 고구려로 향하여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활쏘기와 말달리기와 표표하기로 이름 높은 고구려의 군사는, 당나라의 십만 대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더구나 일찌기 일대 영웅 천합소문의 손 아래서 길러난 노장들이 아직도 많은지라, 그 병법에 있어서도 아무리 당나라의 대군이라 하여도 당할 수가 없었다. 기기한 진, 기기한 전법, 기기한 공격법, 기기한 퇴각법으로, 능히 적은 군사를 가지고 당나라의 대군을 잘 막았다.

그 위에 당나라는 그 공격에 있어서도 통일이 부족하였다. 군사가 많아서 통일이 부족하였다. 원체 군사가 많아서 통일이 힘든 데다가, 먼 길을 오고 지리까지 밝지 못하고 풍토도 낯설기 때문에, 성적이 그다지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도 더 당나라 군사의 싸움이 시원치 않은 까닭이 있었다. 그것은 남생이 싸움에 성의가 부족한 때문이었다.

불붙는 노염과 불붙는 원한 때문에 이 대군을 인솔하고 오기는 했지만, 고구려 땅에 들어서면서 오래간만에 듣는 고구려말을 지껄이는 군사들을 보고, 오래간만에 고국 옷을 보고, 또한 오래간만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창안한 진법을 볼 때에 남생의 마음은 약하여졌다. 차마 힘을 다하여 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원한을 품었다 할지라도, 그의 몸에는 고구려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낯익은 산천, 낯익은 옷, 낯익은 언어─ 여기 대하여 공격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전쟁은 이태나 끌어갔다.

그러나 이 전쟁도 끝날 날이 이르렀다. 어떤 날 당나라 진에서는 한 수상한 고구려 사람이 배회하는 것을 발견하고 잡아들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이 근처를 배회하느냐?」

거기 대하여 괴한은 잘 대답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병졸을 불러서 악형을 가하였다.

고문이 차차 더하여 가서 급기 못 견디게 되어서야 괴한은 입을 열었다.

「아뢰겠읍니다.」

「숨기지 않고 아뢸 테냐?」

「아뢰겠읍니다.」

「그러면 무얼 하러 배회했느냐?

여기 대하여 괴한은 남생을 쳐다보며,

「장군의 목을 구하기 위해서......」

하고 대답하였다.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라, 남생은 미소하며 누구의 명령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괴한의 대답은 막리지 남건의 명령이라는 것을 남생에게 알게 하였다.

아직껏 미소하고 있던 남생의 얼굴은 문득 푸르게 되었다.

「그놈이 아직도 내 목을? 괘씸한 놈같으니! 내, 네 목을 자르고야 말리라』

거기서 맹연히 일어설 때는, 남생의 마음에는 다시금 두 동생에게 대한 노염이 폭발하였다.

남생은 즉시로 이적을 찾았다. 두 장군은 머리를 모으고 의논하였다. 고구려를 칠 좋은 꾀는, 남생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이제는 더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남생에게 꾀를 듣고 그것을 실행하고자 나올 때는 이적의 얼굴도 빛났다. 남생이 스스로 꾀를 베풀기만 하면 고구려는 넉넉히 파멸될 것을 이적도 잘 아는 까닭이었다.

이리하여 시원치 않은 전쟁만 계속하고 있던 고구려와 당나라의 싸움은 겨우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튿날 총공격령이 내린 뒤에, 그것을 보고자 진 밖에 나온 남생의 얼굴에는 빛나는 웃음이 있었다.

참극을 눈앞에 두고도 웃음 띤 아침해는 동녘 하늘에 솟아올랐다.


10[편집]

싸움에 활기를 띠었다. 신라 군사도 당나라와 합하게 되었다. 뿐더러 남생의 활동으로 성 안에서는 남생에게 내응하는 군사며 장군까지 있었다.

이제는 고구려도 파멸될 수밖에 없었다.

남생의 몸소 거느린 대군에게 포위를 당했으며, 더구나 성 안에까지 반심 품은 군사가 있으매, 아무리 강한 고구려라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열흘 보름, 한 달까지는 겨우 버티어 보았지만, 세궁 역진하여 드디어 당군에게 항복을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고구려는 드디어 망하였다.

고구려 태조 동명성왕이 나라를 세운 이래 칠백 오십 년 간 이십 팔 왕의 강하고 날쌔고 웅장하던 고구려의 역사는 끝이 난 것이었다.

일환아!

너는 이 이야기를 다 보았느냐?

거짓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

어떤 목동이 공연히 사람을 속여 보는 재미로서 여러 번 거짓말을 하였다. 그 거짓말 때문에 마지막에 목동은 이리에게 물려 죽었다.

그것은 아무 필요도 없는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목동의 목숨을 해하였다. 거짓말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

그러나 목동의 거짓말은 단지 목동의 목숨 하나를 빼앗은데 지나지 못하였다. 목동의 거짓말보다도 더욱 무서운 결과를 보여 준 거짓말─ 고구려의 몇몇 젊은이의 거짓말의 결과도 너는 보았으리라.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하였나?

거기는 아무 그렇다 할 까닭이 없다.

그들은 남생 형제의 이간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고구려가 망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무서운 일에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하였나?

단지 속나 안 속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속는 것을 본단들 그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으며, 안 속는단들 그들에게 무슨 손해가 나랴만, 그들은 속나 안 속나를 보기 위하여 형에게 가서는 아우의 참소를 하고, 아우에게 가서는 형의 참소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아무 필요도 없는 거짓말이 어떤 결과로 나타났느냐?


일환아!

너는 두렵지 않으냐? 그 결과가 너무도 큰 것이 네게는 두렵지 않으냐? 참소를 들은 형은 아우를 원수로 보았다. 아우는 형을 원수로 보았다. 아우는 왕명으로 그 형을 잡으려 하였다.

형은 이 위난을 피해서 멀리 남의 나라에 가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아우에게 대한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형은 남의 나라 군사를 빌어 가지고 아우를 치러 왔다. 그러나 아우를 치려 하는 것은 또한 형 자기의 고국과 동포를 치려 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아우를 치려는 형의 군사에게 아우의 나라요 형의 고국은 멸망을 당한 것이다. 역사를 읽어서 여기까지 올 때에, 우리는 이 사소한 문제가 맺은 커다란 결과를 보고 몸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일환아!

너는 거짓말을 삼가라.

쓸데 없는 거짓말을 해서 남이 그 거짓말에 속는 것을 볼 때에, 당장에는 재미있겠지. 그러나 그 거짓말이 쌓이고 또 쌓여서 네 신용이라 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을 너는 알아라.

뿐더러, 그 거짓말이 또한 때때로는 의외의 곳으로 뻗어나가서 놀라운 결과를 맺는 것이니, 이 실례로서 고구려의 망한 내력은 가장 적당할 것이다.

삼가라, 삼가라! 거짓말을 아예 삼가라. 거짓말이란 두려운 일인 줄 알아라. 한때 재미로서의 농담의 거짓말도 아예 삼가라. 거짓말은 두려운 것이니라.


라이선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
 
  1.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개(蓋)를 합(盒)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정사에는 천개소문(泉蓋蘇文) 또는 개금(蓋金)으로 기록돼 있는데,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당나라 고종 이연(李淵)의 이름자인 못 연(淵)자를 피휘(避諱)하여 샘 천(泉)자를 쓴 것이라 주장하였고, 우리 학계의 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