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를 등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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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를 등지면서[편집]

1932년 6월 3일 아침.

씻은 듯이 맑게 개인 하늘가에는 비행기 한 대가 프로펠러의 폭음을 발사하면서 배회할 때 용정촌을 등지고 떠나는 천도열차(天圖列車)는 외마디의 이별 인사를 길게 던졌다.

나는 수많은 승객 틈을 뻐기고 자리를 잡자마자, 차창을 의지하여 돌아보니 얼씬얼씬 멀어져가는 용정촌.

그때에 내 머리에 얼핏 떠오르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던 작년 이때다.

그때에 용정 시가는 신록이 무르익은 기로수 좌우 옆으로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가 멋있게 나부끼었고, 붉고도 흰 벽돌집 사이로 흘러나오는 깡깡이의 단조로운 멜로디는 보랏빛 봄 하늘 아래 고이고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로(街路)에서 헤매이는 걸인들의 이 모양 저 모양. 그들에게 있어서는 봄날도 깡깡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역두(驛頭)에서 흩어지는 낯선 사람의 뒤를 따르면서 그 손을 벌릴 뿐, 그 험상궂은 손!

나는 이러한 옛날을 그리며 아까 역두에서 안타깝게 내 뒤를 따르던 어린 거지가 내 앞에 보이는 듯하여 다시금 눈을 크게 떴을 때, 차츰 멀어가는 용정 시가 위에 높이 뜬 비행기, 그리고 늦은 봄바람에 휘날리는 청홍흑백황(靑紅黑白黃)의 오색기가 백양나무숲 속으로 번듯거렸다.

차창으로 나타나는 논과 밭, 그리고 아직도 젖빛 안개 속에 잠든 듯한 멀리 보이는 푸른 산은 마치 꿈꾸는 듯, 한 폭의 명화를 대하는 듯, 그리고 아직도 산뜻한 아침 공기 속에 짙은 풀 냄새와 함께 향긋한 꽃 냄새가 코밑이 훈훈하도록 스친다.

밭둑 풀숭쿠리 속에 좁쌀꽃은 발갛게 노랗게 피었으며, 그 옆으로 열을 지어 돋아나는 조싹은 잎새를 두 갈래로 벌리고 벌겋게 타오르는 동켠 하늘을 향하여 햇빛을 받는다.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 젖가슴을 헤치듯이 그렇게 천진스럽게 귀엽게!…… 어디선가 산새 울음 소리가 짹짹하고 들려온다. 쿵쿵대는 차바퀴에 품겨 들리는 듯 마는 듯.

“어디 가셔요!”

하는 소리에 나는 놀라 돌아보니 어떤 트레머리 여학생이었다. 한참이나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서울까지 갑니다. 어디 가시나요.”

혹시 경성까지 동행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반문하였다.

“네, 저는 회령까지 갑니다.”

생긋 웃어 보이는 입술 속으로 하얀 이가 내밀었다.

“그러세요. 그럼 우리 동행합시다.”

마침 나와 맞은 켠에 앉은 어린 학생이 졸다가 옆에 앉은 일인(日人)에게로 쓰러졌다.

“아라(어머나)!”

내 옆에 앉았던 여학생은 날래게 일어나 어린 학생을 붙들어 앉히며 유창한 일어로 지껄인다. 일인은 어린 학생을 피하여 앉다가 이켠 여학생에 끌려 어린 학생을 어루만지며 서로 말을 건네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귓결에 들으며 다시금 창 밖을 내어다보았다. 금방 내 앞으로 다가오는 밭에는 어쩐지 조싹을 발견할 수가 없어 나는 자세히 둘러보았을 때 “지금 촌에서는 밭갈이를 못해서 묵히는 밭이 많다지. 올해는 굶어죽을 수 났다.”하던 말이 내 머리를 찡하니 울려 주었다. 나는 뒤로 사라지려는 그 밭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온갖 잡풀이 얽히었을 뿐이었다. 그때에 내 가슴은 마치 돌을 삼킨 것처럼 멍청함을 느꼈다. 따라서 농부들이 저 밭을 대하게 되면 어떨까, 얼마나 아까울까. 얼마나 애수할까, 흙의 맛을 알고 그 흙에서 매일 달라가는 조싹의 자라나는 그 재미, 그야말로 농부 자신이 아니고서는 알지 못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저들이 저 밭을 대할 때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그 무엇이 들어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얼핏 이러한 노래가 떠올랐다.

지금은 봄이라 해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 해도
이 땅에는 봄인 줄 모를네 모를네

안개비 오네 앞산 밑에 풀이 파랬소
이 비에 조싹이 한치 자라고
논둑까지 빗물이 가득하련만

아아 밭갈이 못했소
논갈이 못했소
흙 한 줌 내 손에 못 쥐어 봤소

나는 이 노래를 금방이라도 종이 위에 옮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바스켓을 뒤졌으나 종이도 없고 붓도 없어서 그만 꾹 참고 보느라 없이 휙 돌아보니 옆에 앉은 그 여학생은 『슈후노도모(主婦之友[주부지우])』를 들고 들여다본다.

일인은 끊임없이 여학생에게 시선을 던지며 벙긋벙긋 웃고 있었다. 마침내 일인은,

“회령 어디 계십니까?”

하고 묻는다. 그는 가볍게 머리를 들며,

“도립병원에 있습니다.”

이 말에 나는 그가 간호부인 것을 직각하며 다시금 그를 쳐다보았을 때, 어디선가 그의 몸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약 냄새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까 내 맞은편에서 졸던 어린애는 어느덧 여학생 곁으로 와서 앉아 물끄러미 책을 들여다본다

“글쎄 이애 혼자서 상삼봉(上三峰)까지 간다지요.”

그는 어린애를 가리키면서 나를 쳐다본다. 나도 그 말에는 놀라서 그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이 둥글둥글한데다 눈이 큼직한 보암직스러운 사내였다.

“너 몇 살이냐?”

그는 머리를 숙이며,

“일곱 살이에요.”

“응 용쿠나, 너 혼자 어디 가니?”

“삼봉 가요.”

“응 아버지 어머니 다 계시냐?”

어린애는 우물쭈물하며 말끝이 입술 속으로 숨어 들고 있다.

“이 애 똑똑히 말해.”

그 여자는 어린애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상냥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말을 안 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무심히 앉았을 때,

“이 애가 울어!”

그 여자는 어린 학생의 머리를 들며 들여다본다. 나도 얼핏 그편으로 보았을 때 그 검은 속눈 사이로 커단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때에 나는 그 애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아였음을 짐작하자 내가 왜 그런 말을 함부로 물었는가, 내가 짐작하는 그대로 참으로 그 애 아버지 어머니가 없었다면 저 어린것의 가슴이 얼마나 내 물음에 아팠으랴 하고 생각하면서,

“이리 온, 이거 봐.”

그 여자의 손에서 『슈후노도모』를 옮겨 내 무릎 위에 놓으며 표지의 그림을 내보였다 어린애는 . 눈물을 씻으며 슬금슬금 바라볼 때 여러 사람의 시선은 어린애에게로 집중됨을 나는 느꼈다.

어느덧 차는 도문강(圖們江) 안참(岸站)에 이르렀다. 중국인 순경에게 나는 일일이 짐 조사를 받은 후, 어린애와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벌써 차는 슬슬 미끄러졌다.

옆의 여자는 내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도문강이에요, 에그 저 고기 봐!”

말 마치기가 무섭게, 나는 머리를 돌려 굽어보았다.

강변 좌우로 휘늘어진 버들가지에 강물 속까지 푸르렀으며 그 속으로 헤엄쳐 오르는 금붕어 은붕어를 보고, 나는 몇 번이나 하나, 둘, 셋, 넷하고 입 속으로 그 수를 헤이다가 잊어버렸는지.

“고기 고기도 있어요!”

조그만 손을 쑥 내밀어 가리키는데, 나는 어린애의 손을 꼭 쥐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네게도 뵈니, 어디 있어, 어디 가리켜 봐 또.” 어린애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가 내가 채쳐 묻는 결에 그만 부끄러운 생각이 났던지 머리를 숙이며 잠잠하다. 순간에 나는 그 애가 아버지 어머니 틈에서 자라지 못한 불쌍한 애였음을 확실히 알았다.

강을 사이로 보이는 조선땅! 산색(山色)조차 이편과는 확연히 다르다. 산봉이 굽이굽이 높았다 낮아지는 곳에 끊임없이 아기자기한 정서가 흐르고 기름이 듣는 듯한 떡갈나무와 싸리나무는 비오는 날 안개 끼듯이 산봉 끝까지 자욱하여 푸르렀다.

차가 상삼봉역에 닿자마자 내 곁에 앉았던 어린애는 냉큼 일어났다. 그 뒤를 따라 나도 바스켓을 들고 일어나며,

“이젠 다 왔지…… 정 네 이름 무어냐?”

찻간에서 정들인 이 어린것의 이름도 모르고 보내는 것은 퍽도 섭섭했다.

어린애는 잠잠히 차에서 내려서며,

“순봉이.”

“응 순봉이, 순봉아 잘 가거라.”

나는 해관검사실(海關檢査室)로 들어가며 돌아보았을 때 순봉이는 개찰구로 나가며 다시 한번 이켠을 돌아보고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 어쩐지 나는 무엇을 잃은 듯한 느낌으로 그 애의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삼십분 후에 우리는 상삼봉역을 출발했다. 간호부와 나는 순봉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다시금 순봉의 그 검은 눈을 그려보았다.

형사는 차례로 짐 뒤짐을 하며 우리 앉은 앞으로 오더니 역시 내 짐이며 몸을 뒤져보고 몇 마디 말을 물어본 후 간호부에게로 간다. 그는 언제나 삽삽한 태도와 유창한 일어로 대하여준다.

차는 도문강을 바른편에 끼고 빙빙 돌았다. 실실이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로 넘쳐 흐르는 도문강물, 언제 보아도 싫지 않은 저 도문강물, 네 가슴 위에 뜻있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이 몇몇이 비쳤으며 의분에 떨리는 그들의 몸을 그 몇 번이나 안아 건네었느냐.

숲속으로 힐끔힐끔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움막은 작년보다도 그 수가 훨씬 늘어 보였다. 그 속에서도 어린애들이 소꿉놀이를 하며 천진스럽게 노는 꼴이 보인다.

나는 이켠으로 머리를 돌리니 길회선(吉會線) 철도공사 인부들이 까맣게 쳐다보이는 석벽 위에 귀신같이 발을 붙이고 돌을 쪼아내린다. 나는 바라보기에도 어지러워서 한참이나 눈을 감았다. 다시 보면 볼수록 아찔아찔하였다. 아래 있는 인부들은 굴러내리는 돌을 지게 위에 싣고 한참이나 이켠으로 돌아와서 내려놓으면 거기에 있는 인부들은 그 돌을 이를 맞추서 차례차례로 쌓아 올라가고 있다.

나는 차안을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그곳을 주시하는 사람조차 없는 듯하다. 모두가 양복장이었으며 학생이었으며 숙녀였다.

우선 나조차도 저 돌 한 개를 만져보지 못한 사람 아니었더냐.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나, 소위 인테리층 나리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누구보다도 나는 이때까지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으로 입고 무엇으로 먹고 이렇게 살아왔나.

저들의 피와 땀을 사정없이 긁어모아 먹고 입고 살아온 내가 아니냐! 우리들이 배운다는 것은, 아니 배웠다는 것은 저들의 노동력을 좀더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더냐!

돌 한 개 만져보지 못한 나, 흙 한 줌 쥐어보지 못한 나는 돌의 굳음을 모르고 흙의 보드라움을 모르는 나는, 아니 이 차안에 있는 우리들은 이렇게 평안히 이렇게 호사스럽게 차안에 앉아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 볼 수가 있지 않은가.

차라리 이 붓대를 꺾어버리자. 내가 쓴다는 것은 무엇이었느냐. 나는 이때껏 배운 것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내 붓끝에 씌워지는 것은 모두가 이런 종류에서 좁쌀 한 알만큼, 아니 실오라기만큼 그만큼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저 한판에 박은 듯하였다.

학생들이여 그대들의 , 연한 손길, 그 보드라운 흰 살결에 태양의 뜨거움과 돌의 굳음을 맛보지 않겠는가. 우리는 먼저 이것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하여 튼튼한 일꾼, 건전한 투사가 되지 않으려는가.

돌에 치여 가로세로 줄진 그 손이 그립다. 그 발이 그립다. 햇볕에 시커멓다 못해 강철과 같이 굳어진 그 빰이 그립다! 얼마나 믿음성스러운 손이랴.

간도야 잘있거라[편집]

이런 생각에 잠긴 채 기차는 어느덧 회령에 도착하였다. 동행하던 여성을 따라 역에 내리니 역두에는 출영인(出迎人)으로 잡답(雜踏)하였다. 웬일인가 하여 휘휘 돌아보니 맨 앞에 달린 화물차 속에서는 군인들이 꾸역꾸역 몰려나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훈춘(琿春)지방에 출정하였던 군대라고 한다. 그러자 이켠 뒷객차에서는 수백 명의 중국인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밀려나온다. 이들은 조선을 거쳐 중국 본토로 가는 간도의 피난민이다.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들의 이 모양 저 모양을 바라볼 때 무어라고 말로 옮길 수 없이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나는 얼결에 구외(構外)로 밀려 나왔다. 군대는 행렬을 정돈하여 유량(嚠 喨)한 나팔소리에 맞춰 보무당당(步武當當)히 군중 앞으로 걸어간다. 우렁차게 일어나는 만세소리! 그 중에서도 천진한 어린 학생들의 그 고사리 같은 손에 잡혀 흔들리는 일장기(日章旗)! 그 까만 눈동자!

햇볕에 빛나는 총검에서는 피비린 냄새가 나는 듯, 동시에 ××당의 혐의로 무참히도 원혼으로 된 백면장정(白面壯丁)의 환영이 수없이 그 위를 달음질치고 있었다. 나는 발길을 더 옮길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행 여성은 내 손을 쥐고 작별인를 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겨우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 나는 그의 사라지는 뒷꼴을 바라보며 아차 이름이나 서로 알았더면 하는 후회를 하였다.

수없는 피난민들은 군대의 행보하는 것을 얼빠지게 슬금슬금 바라보며 보기만 해도 무섭다는 듯이 그들의 몸을 쪼그린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생명의 보장이나마 얻어볼까 하여 누더기 보따릴 짊어지고 방향도 정(定)치 못하고 밀려나오는 그들…… 아니 그들 중에는 백의 동포도 얼마든지 섞여 있다.

오후 여섯시에 기차는 회령역을 출발하였다. 경편차(輕便車)보다는 마음이 푹 놓여 차창을 의지하여 밖을 내어다보았다. 마침 형사들이 와서 지분거리기에 그만 눈을 꾹 감고 자는 체하던 것이 정말 잠이 들고 말았다. 이따금 잠결에 눈을 들어보면 높고 낮은 산봉(山峰) 위에 저녁노을빛이 불그레하니 얽혀 있었다.

이튿날 아침 아직도 이른 새벽. 검푸른 안개 속으로 이렴풋이 나타나 보이는 솔포기며 그 밑으로 흰 거품을 토하며 솩 내밀치는 동해 바닷물, 그리고 하늘에 닿은 듯한 수평선 저쪽으로, 꿈인 듯이 흘러내리는 한두낱의 별, 살았다 꺼진다.

벌써 농부들은 괭이를 둘러메고 논뚝과 밭머리에 높이 서 있었다. 금방 이앙(移秧)한 볏모는 시선이 닿는 데까지 푸르러 있었다.

이따금씩 숲 사이로 보이는 초라한 초가집이며, 울바자 끝에 넌 흰 빨래며, 한가롭게 풀 뜯는 강변에 누운 소의 모양이 얼핏얼핏 지나친다.

잠시나마 붉은 구릉(丘陵)으로 된 단조무미(單調無味)한 간도에 살던 나로서는 이 모든 경치에 취하여 완연히 선경(仙境)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큰 공장에서 시커먼 연기를 토하고 있는 것은 장차 무엇을 말함일까.

대자본가의 잠식(蠶食)이 그만큼 맹렬히 감행되고 있는 것이 파노라마 모양으로 역력히 보인다.

기차는 이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산굽이를 돌고 터널을 지나 숨차게 경성을 향하여 달음질친다. 그러나 나의 마음만은 반대 방향으로 간도를 향하여 뒷걸음친다.

아, 나의 삶이여.

전란의 와중에서 갈 바를 잃고 방황하는 가난한 무리들!

그나마 장정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노유부녀(老幼 婦女)만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도시를 향하여 피난해 오는 광경이 다시금 내 머리에 떠오른다.

부모형제를 눈뜨고 잃고도 어디 가서 하소 한 마디 할 곳이 없으며 그만큼 악착한 현실에 신경이 마비되어 버린 그들! 눈물조차 그들에게서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오직 그들 앞에는 죽음과 기아(飢餓)만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간도여! 힘있게 살아다오! 굳세게 싸워다오! 그리고 이같이 나오는 나를 향하여 끝없이 비웃어다오!

기차는 원산을 지나 삼방(三防)의 험산(險山)을 바라보며 여전히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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