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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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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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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깍 하는 장독대 모퉁이 배나무에 앉아 우는 까치 소리에 깜짝 놀란 듯이 한 손으로 북을 들고 한 손으로 바디집을 잡은 대로 창 중간에나 내려간 볕을 보고 김씨는,

『벌써 저녁때가 되었군!』

하며 멀거니 가늘게 된 도투마리를 보더니, 말코를 끄르고 베틀에서 내려온다.

『아직도 열자나 남았겠는데.』

하고, 혼잣말로,

『저녁이나 지어 먹고 또 짜지.』

하며, 마루에 나온다. 마당에는 대한 찬바람이 뒷산에 쌓인 마른 눈가루를 날려다가 곱닿게 뿌려 놓았다. 김씨는 마루 끝에 서서 눈을 감고 공손히 치마 앞에 손을 읍하면서,

『하느님, 우리 선생님을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도인을 도와 주시옵소서.

세월이 하도 분분하오니, 하느님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선생님께서 이곳에 오신다 하오니, 아무 일이 없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어서 우리 무극 대도가 천하에 퍼져서,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는, 연하여 가는 목소리로,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세 번을 외우더니, 번쩍 눈을 뜬다. 또 까치가 장독대 배나무 가지에 앉아 깍깍 하고 짖다가 바람결에 불려 떨어지는 듯이 날아간다.

김씨는 무슨 크고 무서운 일을 앞에 당하는 듯한 기다려지고도 조심성스러운 생각으로 가만히 안방 문을 열었다. 아랫목에는 젖먹이 딸이 숨소리도 없이 잔다. 김씨는 가만가만히 그 옆으로 가서 허리를 굽혀 어린 아기의 자는 얼굴을 보며, 또 눈을 감고 짧은 기도를 올린다. 어린 아기를 충실하게 보호해 주시고, 자라서 도를 잘 닦는 사람이 되게 하여 달란 뜻이다. 그러고는 윗목 조그마한 항아리에서 됫박으로 쌀을 퍼내어 큰 바가지에 옮기고, 거기서 쌀 항아리 위에 놓였던 숟가락으로 세 술을 떠서 벽에 걸어 놓은 두 멍에 넣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또 한 술을 떠 넣는다. 김씨는 이제부터 갓난이 몫으로 한 숟가락 더 뜨게 된 것이 기뻤다.

김씨가 솥에 쌀을 일어 안치고 불을 살라 넣으렬 적에 남편 박 대여가 수염에 허연 얼굴을 달고 들어오더니, 부엌문으로 아내를 들여다보며 입이 얼어서 분명치 아니한 목소리로,

『여보, 선생님께서 오늘 밤에 오신다는구려. 거기서도 어떤 사람이 영문에 꽂아서 새벽에 떠나셨는데, 오늘 새벽에 하등집에 오셨다고, 그래서 오늘 해만지면 거기서 떠나셔서 이리로 오신다고 기별이 왔소.』

하며 토수 속에 넣었던 손으로 수염의 얼음을 땄다. 김씨는 부지깽이를 놓고 일어나면서,

『에그, 이 추운데, 선생님께서 얼마나 고생이 되실까? 여기 오셔나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눈물이 괸다.

『베틀은 낳았소?』

하는 남편의 말에 김씨는,

『어떻게 낳아요. 아직도 열 자나 남았는데. 그래도 끊어버리지요. 그까짓 게 무엇이게. 이번에 척수를 좀 길게 잡아서 짠 것도 바지 저고리 한 벌은 되어요. 그걸로 선생님 옷이나 한 벌 지어 드리면 그만이지요……. 그런데 사랑은 다 발랐어요?』

『바르느라고 했지마는, 불을 때 보아야.』

『 선생님은 안방에 계시게 하지요?』

하고 아내가 묻는다.

『글쎄, 함께 오실 이가 다섯 분이나 될 터인데…… 선생님과 해월 선생님은 건넌방을 내어드려서 계시게 하고, 다른 이들은 안방에 계시게 하고, 우리들이 아이들 데리고 사랑에 있게 하지.』

하고 동의를 구하는 모양으로 눈물 괸 아내의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치마 고름으로 눈물을 씻더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어떡허면 선생님을 좀 편히 계시도록 하나?』

하고 다시 불은 땐다.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가 의관을 벗고 나오더니, 비를 들고 마당 쓸기를 시작한다. 섬돌 밑과 담 밑과 마루 밑까지 얼어붙은 티검불을 빡빡 긁어 가며 쓴다. 쓰는 대로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또 눈가루를 갖다가 뿌린다.

마치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하여 하늘이 이 가난한 집 마당에 옥가루를 뿌려 주는 것 같았다.

대문 밖에서 쿵쿵 하는 발자취 소리가 나더니, 여남은 살 된 총각 아이가 뻘겋게 언 주먹으로 두 눈에 눈물을 씻으며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뛰어 들어와서 동정을 구하는, 듯이 부엌 문 밖에 가선다. 불을 때던 어머니는,

『정식아, 넌 왜 우느냐. 또 아이들이 무어라든?』

하며, 일어나 아들의 머리에 묻는 눈가루를 떨어 준다.

아들은 우는 소리로,

『또 그놈의 자식들이 응응응응응, 동학장이라고 그래, 응응.』

『그놈의 자식들이라고 그래선 못 쓴다. 그 아이들이라고 그래야지.』

『그까짓 놈의 자식들, 때려 죽일테야. 남을 가지고 동학장이라고. 이제, 이제, 원님이 목 베어 죽인다고…… 깍장이놈의 자식들!』

하고 아들은 조그마한 주먹을 발끈 쥐어 내어 흔든다. 어머니는 측은한 듯이 아들을 끌어 들여 아궁이에 붙을 쬐게 하면서,

『정식아, 그러면 어떠냐. 다른 아이들이 무에라고 하든지 너는 가만히 있으려무나. 너만 가만히 있으면 저희들도 그러다가 말지. 동학장이라면 어떠냐, 동학장이니깐 동학장이라지. 동학장이가 좋은 말이다. 응, 이제 오늘 성생님이 오시면 너를 귀애해 주시구 복 빌어 주시구 할텐데, 무슨 걱정이야. 자, 들어가, 갓난이 깼나 보아라. 그러고 안방 깨끗이 치어라, 응.』

하고, 정식의 등을 두드린다. 정식은 어머니 말에 위로가 되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정식은 아직도 자는 갓난이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린애 어르는 모양으로 혓바닥으로 두어 번 딱딱하더니, 자는 아기 가 대답이 없으므로, 가만히 일어나서비를 찾아 방을 쓴다.

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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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차차 깊어 간다. 바람은 자고 천기는 고요하다. 구름 한 점 볼 수 없는 하늘에는 초생달도 벌써 넘어가고, 별만 수없이 반작거린다. 이 산골 몇 집 안되는, 그것도 띠엄띠엄 떨어져 있는 눈에 쌓인 농가에서는 그도 설빔을 만드느라고 다듬이 소리들이 들리나, 깜빡깜빡하는 등잔 밑에는 짚세기 삼는 젊은 농부들의 담배를 피우고 웃고 떠들던 소리도 차차 줄어 간다. 총도 아니 낸 짚세기들을 차고 각각 자기 집으로 흩어지느라고 담뱃불들이 반짝거리고, 발자취 소리와 두런거리는 소리에 개들의 졸린 듯한 짓는 소리가 난다. 이윽고 조그만한 방문들이 혹은 남편을, 혹은 아들을 맞아들이는 소리가 그윽히 들리고는, 천지가 다시 고요해지고 만다. 개들도 다시 부검지 속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고, 반짝반짝하는 등잔불들도 하나씩 하나씩 눈을 감기 시작한다. 고요함이, 어두움이 이 가엾은 생명들이 들어 조는 조그마한 보금자리들을 꼭 품에 껴안았다. 오직 죄 없고 욕심 없는 꿈들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발자취도 없이 살금살금 다닐 뿐이다.

이때에 촌 중 맨 끝 산 밑에 앉은 박 대여의 집에서만 불이 반짝거리고, 부엌에서 아름이 넘는 김이 무럭무럭 나온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은 사랑에 재우고 내외는 안방 건넌방을 깨끗이 치이고, 거미줄과 먼지까지 떨어내고 때묻은 장판이 닳도록 걸레를 치고, 후끈후끈하게 불을 때이고, 꼭꼭 쌓았던 이부자리를 있는 대로 내어 아랫목에 깔아 녹히고, 지금은 닭을 잡고 무를 삶고 쌀을 일어 안치고, 선생님 일행이 오기만 하면 곧 국밥을 지어 드릴 준비까지 다하여 놓았다. 대여는 눈 묻은 나뭇단을 옆구리에 껴 다가 부엌에 넣고 내외가 무슨 이야기를 두어 마디 하더니, 부엌 문을 닫고 나와 안방으로 들어간다.

안방 한가운데는 소반을 놓고 백지를 깔고, 그 위에 새로 닦은 주발에 청수 한 그릇을 떠 놓았다. 내외는 분주히 새 옷을 내어 갈아입고, 의관을 정제하고, 청수상 앞에 북향으로 가지런히 앉아,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이윽히 앉았더니, 남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느님! 우리 선생님을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무극 대도 대덕이 천하에 퍼져서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대원을 이루게 하시옵소서. 처음으로 우리 동방조선을 밝히사, 이 후천 오만년 무극대도가 천하에 빛나게 하시옵소서. 지금 무지한 사람들이 이 무극대도를 훼방하고, 선생님을 지목하여 해하려 하오니, 하느님께서 우리 선생님을 도와 주시옵소서.』

할 때에, 김씨도 정성스럽게 여러 번 고개를 숙인다. 대여는 더욱 소리를 높이고 떨려,

『하느님, 지금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어리고 어린 동서불변 우리 무리들이 어찌하오리까. 될 수 있사옵거든 저와 같이 값 없는 목숨을 선생님 대신으로 바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 같은 것은 죽더라도 그만이어니와, 우리 선생님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말이 맟기 전에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른다. 김씨도 마음 속으로,

『우리 선생님을 보호하여 줍소서. 제 목숨으로 선생님 목숨을 대신하게 합소서.』

하며 남편을 따라 운다. 한참 동안 말이 없고, 오직 두 내외의 가슴이 들먹거릴 때마다 새로 풀해 다린 옷이 바삭바삭 소리를 낼 뿐이다. 등잔불이 창 틈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하다가 바로 선다. 두 사람은 눈을 떴다. 눈물에 젖은 눈에 네 별 모양으로 맑은 빛을 발한다. 네 눈은 거울같이 차고 맑은 청수를 들여다본다. 청수는 몇 천 길인지 모르게 깊은 것 같다. 헤아릴 수 없는 천지의 신비를 간직한 것이다.

두 입이 열리더니, 느리고 가는 목소리로,

『지기금지원위대장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하고 울려나온다. 남성과 여성이 합한 두 목소리가 높으락낮으락, 합하다가 갈렸다가, 끊이락이으락 영원히 끊일 때가 없을 것같이 울려나온다. 등잔불 도 곡조를 맞추어 흔들리는 것 같고, 청수에도 곡조를 맞추어 사람의 눈으 로는 알아볼 수 없는 가는 물결이 이는 듯하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세지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끝 없는 주문의 소리가 끝없는 사슬을 이룬다. 이따금 주문 중에서 한 구절이 반향 모양으로 공중에서 울린다. 마치 멀리서 멀리서 울려 오는 종 소리의 여운(餘韻) 모양으로 어디선지 모르게 「시천주 조화정」하고 울려올 때마다 내외는 외던 소리를 잠깐 쉬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는 다시 아까보다도 더 소리를 가다듬고 더 마음을 엄숙히하여,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주…….』

하고 소리를 합하여 왼다. 그러느라면 또 공중으로서 「지기금지원위대강」 하고 쟁쟁하게 울려 온다. 내외는 다시 소리를 끊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여전히 먼 곳에서 울려 오는 종 소리 여운 모양으로,

『지기금지원위대강…….』

하고 끊이락이으락 울려 온다. 내외는 다시 소리를 가다듬어 외기를 시작한다. 외면 욀수록 공중으로서 울려 오는 소리는 더욱 맑고 더욱 커진다.

졸던 천지는 두 내외의 깊고 깊은 정성으로 외는 주문 소리에 깨어, 그 주문에 화답하는 것이다. 하늘에 모든 별들과 땅에 모든 산천과 초목이 다 지금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 이 내외의 주문에 화답하는 것이다. 두 내외의 주문 외는 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지는 대로 낮아지면 낮아지는 대로 천지의 울리던 소리도 높으락낮으락한다.

온 천지는 소리에 찼다 ──.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온 천지는 이 소리로 찼다. 그러고 두 내외는 천지의 한복판에 우뚝 선 쌍기둥이다. 천지는 이 쌍기둥으로 버티어져 있다. 만생령이 이 쌍기둥의 버팀 밑에서 평안한 잠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그네는 그런 줄 모른다. 마치 어머니 품에 안겨 자는 아기가 어머니의 품이길래 이렇게 편한 줄을 모르는 것과 같다. 오늘 밤에 두 내외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되어 천지를 다스리는 것이다.

두 내외에 입에서는 주문 외는 소리가 그쳤다. 눈은 반쯤 떠 어디를 바라 보는지 모르게 바라보고 있다. 그 눈앞에는 천지가 환하게 보인다. 일월성신이 보이고, 산천초목이 보이고, 모든 짐승들이 보이고, 그리고는 만국만민이 도탄 중에 괴로와하는 양이 보이고, 사람들이 가난과 어두움과 허욕으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양이 보이고, 그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어른이 우뚝 선 것이 보인다. 내외는「 선생님이시다!」하며 고개를 숙인다.

두 내외는 다시 소리를 내어,

『포덕 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지 대도, 무극대도 대덕지기금지원위대강…….』

하고 외기를 시작한다.

『꾀꼬요!』

하고 첫닭의 소리가 난다.

두 내외는 깜짝 놀란 듯이 일어났다. 대여는,

『오실 때가 되었으니, 나가 보아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며,

『나가서 불 때오.……아마 지금 동구에 들어오시겠소.』

하며 밖으로 나간다. 김씨도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에 불을 사르고 인적 나 기만 기다려 이따금 귀를 기울인다.

마당에서 나는 인적 소리에 김씨는 부지깽이를 던지고 뛰어나왔다. 마루에 걸터앉아 눈묻은 신발을 끄르는 이가 어두운데 보아도 분명히 선생님이다.

그 중키나 되는 키, 너름한 얼굴, 한 번 밖에 뵈온 일이 없건마는 분명히 선생님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김씨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 선생님이 무사히 오시기는 오셨다.』

하고 김씨는 한시름 놓는 듯한 가벼워진 마음으로 상을 보기 시작한다. 밥도 넘었고 국도 끓었다.

『여보, 들어와 선생님께 인사 드리고 나오오.』

하는 부엌 문을 여는 남편의 말에 김씨는 행주치마를 벗어 그것으로 손을 씻으면서,

『해월 선생님도 오셨어요?』한다.

『해월 선생님은 다른 집으로 돌아오신다고 정 접주하고 김 접주, 또 박 접주 그렇게만 오셨어요. 다들 인사하시오. 선생님은 뵈면 알지?』

하고 대여는 부엌 문에 비켜서 아내 올라올 길을 내면서 묻는다.

『그럼 알고 말고요.』

한다. 대여가 앞서고, 김씨는 뒤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왔다. 선생님은 아랫 목에 다른 이들은 발치로 돌아앉았다. 모두 피곤한 모양이 보이나, 선생은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내외가 들어온 것을 보고 선생이 일어나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 일어난다. 김씨는 선생 앞에 엎드려 절을 드렸다. 선생도 마주 엎드려 절을 받았다. 다른 이와는 다만 상 읍만 하고 각각 자리에 앉았다. 선생은 김씨더러 앉으라 하며,

『그렇게 신심이 독실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그처럼 애를 쓰시니, 고맙소이다.』

한다. 김씨는 다만 고개를 숙이고 마음 속으로 「선생님」할 뿐이었다.

三[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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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와서부터는 밤을 새어 외고 기도를 하고 틈틈이 선생의 가르침이 있고, 그러고는 해가 뜬 뒤에야 모두 잠을 잤다. 낮에도 자지 못하는 이는 오직 선생과 대여뿐이다. 선생은 제자들이 잠이 든 뒤에는 혼자 청수상앞에 앉아서 무엇을 가만히 생각하였다. 대여는 양식과 나무를 구하여 들이느라 고 거의 날마다 밖에 나갔다.

이렇게 기도로 밤을 새운지 닷새 되던 날, 눈 많이 오는 밤이었다. 선생은 제자들을 데리고 주문을 외다가, 밤이 깊어 첫닭이 울 때가 멀지 아니한 듯 할 때에 선생이 주문을 뚝 끊고,

『저것을 보오!』

한다. 제자들도 주문 읽기를 그치고, 선생이 보라는 데를 보았다. 네 제자 는 일제히 몸을 흠칫하고 뒤로 물러앉으며 놀람과 무서움으로 말이 막혔다.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그만 것을 보고 놀라오 『 ? 천지가 무너지더라도 움직이지 않도록 수심정기를 하는 공부를 해야 되오! 장차 그대네는 저보다도 더욱 참혹하고 무서운 양을 볼 것이요. 또 몸소 당할 것이요. 나라를 고치고 창생을 건지는 일이 쉬운 줄 알지 마오! 선천 오만년의 나라이 무너질 때에 천지가 회명하고 죄인과의인이 피가 강물같이 흐를 것이요. 그대네는 저 광경이 무엇인지를 보오.』

하며, 극히 엄숙한 낯빛으로 제자들을 본다. 김덕원이가 떨리는 소리로,

『녜, 못 볼 리가 있읍니까. 운무가 자옥한 속에 사람들이 칼과 창으로 서로 찌르고 쫓고 물어 뜯어, 바로 그 피비린내가 코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저것 봅시오. 저 키 크고 뚱뚱한 한 사람이 어린 아이를 거꾸로 들고 배를 가릅니다. 선생님 살려 줍시오!.』

하고 기절할 듯하다가 겨우 정신을 진정하는 모양이다.

선생은 황망하여 하는 김덕원의 어깨를 손으로 만지며,

『아아, 마음이 서지 못한 자여!』

하고 한탄하다가, 덕원이 정신을 진정하는 것을 보고 힘있는 목소리로,

『저것이 이 세상이요, 서로 죽이는 것이. 사람들은 각각 몸에 창과 칼을 지니고 다니다가, 기회만 있으면 서로 죽이려는 것이 이 세상이요. 그대는 우리가 사는 이 나라와 동서양 모든 나라가 다 저 모양으로 서로 찌르고 찢는 양을 못 보았소. 그러나 그대네의 눈이 열리는 날은 천하 이르는 곳마다 저 광경을 알아볼 것이요. 아아, 가엾은 창생이여!』

하고 선생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제자들도 무서움이 차차 변하여 세상을 위한 슬픔이 되어 선생을 따라 울었다.

『우리네가 울 일이 천하에 없거니와,』

하고 선생은 눈물을 거두며,

『창생이 도탄 속에 든 것을 볼 때에는 통곡하지 아니 할 수 없소. 이 창생을 보고 통곡할 줄을 모르는 이는 천성을 잃어버린 이요. 그대네는 무슨 일에나 놀라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되, 오직 창생을 위 하여 울으시오. 이것은 성인의 마음이요.』

『 선생님!』

하고 박 대여가 느끼는 목소리로,

『 선생님! 저 창생이 왜 저렇게 서로 죽입니까. 어찌하면 저 창생을 구제 합니까?』한다.

『사람이 하늘을 잊어버린 까닭이요. 모든 사람이 다 높으신 하느님을 잊어버린 까닭이요. 악한 사람들이 정사를 잡아 백성을 악하게 인도하는 까닭이요 그러므로 창생을. 구제하는 길이 오직 하나이니, 곧 사람들에게 하늘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이 이 소리를 전하고 가르침을 주려 함이요. 그대네는 천하 만국만민에게 이 소리를 전하여 그네를 구제할 첫 사람들이요…….』

하고 이윽히 앞에 나타난 피 흘리는 광경을 노려보더니, 문득 노하는 빛을 발하고, 문득 슬픈 빛을 발하다가, 다시 화평한 낯빛이 되며,

『내가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왔소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오만년 무극대도를 그대네들에게 맡기고 가는 것이니 그대네들은 하늘의 뜻을 어그리지 마시오!』

하고 창연한 빛을 보인다.

『 선생님!』

하고 덕원이 선생의 팔을 잡으며,

『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저희는 누구를 믿읍니까. 저 불쌍한 창생을 건지시지 아니하고, 선생님이 어떻게 가십니까. 내일이라도 선생님이 나서 십시오. 우리 도인이 지금 만 명이 넘으니 이 만 명을 거느리고 일어나면, 모든 탐관오리배를 다 없이하고 새 나라를 세울 것은 여반장입니다. 이제라도 곧 명령을 내리십시오. 그리하면…….』

하고 김덕원은 자못 흥분하여 그 뚱뚱한 얼굴에 피가 오른다. 선생은 가만히 듣고 있더니, 덕원의 말을 막으며,

『때가 있소! 때가 있소! 아직은 그러할 때가 아니요!』한다.

『그때가 언제 옵니까?』

하고 제자 중에 하나이 묻는다.

『그때는 아는 이가 없소. 다만 조선 방방곡곡이 하느님을 부르고 새 나라를 세우자는 우리가 굳게 뭉쳐 한덩어리가 되거든 그때가 가까와 온 줄 아시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급급하여 그때가 이르기 전에 많이 경거망동을 하리다. 그것은 오직 인명만 많이 살해하고 하늘이 주시는 때를 더디게 만 할 뿐이니, 그대네는 크게 삼가야 할 것이요. 장차 「때가 왔다 때가 왔다」하고 백성을 선동하는 자가 많이 나려니와 그래도 흔들리지 마시오. 장차 왼 천하가 물끓듯하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우며 백성들이 일어나 서로 다투고 피를 흘리려니와 그런 일을 보거던 때가 가까와 온 줄 아시오. 그러나 천하를 구제하는 것이 우리 동방 조선에서 시작될 것이니 우리 동방 조선에 하늘을 부르는 소리가 방방곡곡에 들리고 큰 슬픔과 재앙이 임하여 백성이 물끓듯하며, 하늘이 부르는 소리가 뭉치어 한 덩어리가 되거든, 때가 이른 줄 아시오. 그때에 천시(天時)가 우리에게 있고 지리(地利)가 우리에게 있고 인화가, (人和)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의 큰 운수를 막을 자가 없을 것이요. 그대네는 그때를 바라고 기뻐하시오! 그때를 준비하느라고도를 닦고 덕을 펴시오. 정성스럽게 주문 외는 한 소리가 천하 만민의 마음을 한 번 흔들 것이요, 진실한 도인 하나 얻는 것이 천하를 구제하는 일에 가장 큰 공덕이 될 것이요!』

하며 선생은 더욱 소리를 가다듬어 제자들을 돌아보며,

『그대네의 맘 문이 열리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말을 한들 무엇하겠소. 천하를 구제할 오만년 무극대도를 불로 이득할 줄로 알지 마오. 그대네가 성심수도할 양이면, 알지 못할 것이 무엇이며,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소?

그대는 하느님이요, 천지를 지은 이도 하느님이요, 천지를 다스리는 이도 하느님이니, 하느님은 곧 나요, 그대네요. 아아, 성심수도하여 도성덕립하는 날에 모를 일이 무엇이며, 못할 일이 무엇이겠소? 이 일을 알았더면 요만한 나 한 몸이 간다고 무슨 근심이요?』

제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김덕원도 말이 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눈을 감았다. 아주 고요하다. 다만 등잔불이 춤을 추어 사람들의 그림자를 흔들 뿐이다. 새벽이 가까와 온 방 안에 찬 김이 돈다. 선생과 제자 다섯 사람은 마치 부처 모양으로 움직임이 없다. 오직 그네의 눈들이 불같이 빛날 따름이다.

이윽고 언제 시작되는지 모르게 주문 외기가 시작되었다. 그 소리는 아까 보다 더욱 엄숙하고 신비하였다. 박대여의 소리는 우는 듯이 떨리고 김덕원의 소리는 호령하는 듯하였다. 이때에 다섯 그릇 청수에는 얼음이 얼었고, 정수를 받쳐 놓은 백지에는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여덟 자가 또렷또렷이 나타났다. 닭이 두 홰를 운 때에 해월이 왔다. 해월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기가 바쁘게,

『 선생님, 곧 피하셔야 하십니다. 대구 영장 정 귀룡이가 삼십 명 나졸을 데리고 아침나절로 이곳에 올 것입니다. 대구 도인이 밤도와 와서 전하는 말씀인데 잠시를 지체할 수가 없읍니다.』

한다. 모두 눈이 둥그레졌다. 선생은 해월더러 자기 곁에 앉으라 하며,

『해월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할 때에, 모든 제자들은 선생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가 하고 숨도 못 쉬고 무릎 걸음으로 한 걸음씩 선생 곁으로 다가앉았다. 선생은 결심한 듯 한 어조로 입을 열어,

『김덕원은 지금 떠나 전라도로 가시오. 가느라면 자연 알 도리가 있으니, 아까 한 말만 명심하고 전라도로 가시오. 가서 할 일은 장황하게 내가 말할 필요가 없으니, 오직 성, 경, 신으로 하느님의 시키시는 대로만 하시오.』

하고, 김덕원의 손을 잡으며,

『자, 이것이 이 세상의 이별이요. 그러나 하늘에서는 한 가지로 있을 것이니, 슳어 말고 곧 떠나시오!』

하며 김덕원을 일으킨다.

덕원은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 선생님! 선생님!』

하고 말이 막힌다.

선생은 김덕원의 등을 어루만지며,

『장황하게 말할 때가 아니요. 가라면 가시오. 창생을 구제하려는 무리의 행색이 마땅히 이러할 것이요. 자, 가시오!』

하고 문을 가리킨다. 김덕원은 눈물을 머금고 선생께 절한 뒤에 여러 제자들의 손을 잡고 문 밖으로 나간다. 모든 제자들의 얼굴에는 비창한 빛이 보인다. 다른 제자들도 다 이 모양으로 혹은 충정도로, 혹은 경기도로 떠내보내고, 나중에 해월의 손을 잡고,

『해월! 오만년 무극대도를 해월에게 맡기고 가오. 이것은 내 뜻이 아니라, 곧 하느님의 뜻이니, 전에 전한 말을 명심하시오. 그대의 할 일과 그대의 장래는 그대가 스스로 다 알 날이 있을 것이니, 아직 몸을 피하여 태백 산으로 가시오. 무슨 부탁할 말이 있겠소마는, 북방에 우리 일할 인물이 많이 날 것을 명심하시오.』

할 때에 닭이 자주 울기 시작한다. 선생은 해월의 등을 어루만지며,

『자, 때가 급하니, 어서 가시오.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요!』

하고 떠나기를 재촉한다.

해월은 눈물을 머금고,

『 선생님! 한 번만 더 피하실 수 없읍니까?』

하고 애걸하는 모양으로 선생의 얼굴을 쳐다본다. 선생은 적이 노하는 빛을 발하며,

『천명(天命)! 천명(天命)! 천명을 모르오? 어서 가시오!』

한다. 해월은 다시 말이 없이 선생께 절하고 대문을 나섰다.

선생은 박 대여를 불러 오늘 하루만 피하면 일이 없을 것이니, 아무 데로 나 피하라 하고, 당신은 다시 짐에서 초를 내어 쌍불을 켜 놓고 냉수로 목욕을 한 후에 청수상 앞에 앉아 잠자코 무엇을 생각한다.

대여는 사랑에 나와 아내더러 선생의 하는 일과 말을 전하고 서로 붙들고 울다가 가만가만히 안으로, 들어와 창 밖에서 선생의 동정을 엿보았다. 선생은 그린 듯이 앉았다. 춤추는 쌍 촛불에 선생의 여윈 얼굴이 해쓱하게 보이고, 가끔 길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대여 내외는 참다못하여 소리내어 울었다. 그러다가,

『천명, 천명, 때가 왔으니, 어서 피하오!』

하는 소리에 대여는 창 밖에서 선생께 절하고 대문을 나섰다. 아직도 어둡다. 그러나 차마 멀리 가지 못하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산 중턱을 다 오르지 못하여 동네에 개 짖는 소리가 나므로, 바위 뒤에 숨어 가만히 귀를 기울인즉,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자기 집에서 무에라고 지껄이고 욕설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여는 정신없이 눈위에 펄썩 주저앉았다.

『아아, 선생님!』

하고 혼자 목이 메어 울었다.

환하게 될 때에 선생은 삼십 명 대구 영문 나졸들이 선생을 뒷짐을 지어 끌고 전후 좌우로 옹위하고 동구로 나가는 양이 보였다.

『천명, 천명!』

하고 선생의 하던 말을 외면서, 대여는 선생의 잡혀간 뒤를 따랐다.

四[사]

[편집]

동학 선생이 어느 날 죽는다는둥, 벌써 몰래 죽였다는둥, 그런 것이 아니라 동학 선생이 조화를 부려 벌써 옥에서 나와서 멀리로 달아났다는둥, 또 이제 동학군들이 군사를 일으켜서 대구 감영으로 쳐들어온다는둥, 대구 백성들 간에는 정초부터 모여만 앉으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선생이 서울로 잡혀가던 날에 철종 대왕국상이 나서 대구 영문으로 압송된지가 벌써 두 달이나 넘었다. 이 두 달 동안에 대구 감영에는 이 일 밖에 없는 듯하였다. 감사 서헌순(徐憲渟)은 이 일로 하여 잠을 못 잔 것도 여러 번이다. 조정에서는 나날이 독촉이 왔다. 그러나 스물 두 번이나 혹독히 심문을 하여도 선생은 감사에게 만족한 대답을 하지 아니하므로, 감사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감사는 선생을 우습게 알았다. 동학이란 말을 못 들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선생이란 아마 무슨 요술로 혹세무민이나 하는 자로만 알았으므 로, 몇 번 호령이나 하고 형문깨나 때리면 굴복할 줄 알았던 것이, 여러 번 심문을 하면 할수록 동학 선생이라는 이가 결코 범인이 아닌 줄을 알았다.

그 범할 수 없는 위엄, 그 동하지 않는 신색과 태연한 태도, 이따금 추상같이 꾸짖는 소리, 그런 것을 보면 볼수록 감사는 점점 선생에게 대하여 무서운 생각이 나고 놀래는 생각이 났다. 이렇게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무서움이 있는 외에 이 사람을 죽여서 천벌이 없을까. 또 동학의 도당이 많다는데 몸에 해나 없을까 하는 제 몸에 대한 무서움이 있어서 이제는 심문하는 것조차 싫어지고 무서워졌다. 자다가도 여러 번 가위눌렸다.

더구나 오늘 심문에 그 요란하고 무서운 소리 큰 산이 무너지는 듯도 하고 벼락을 치는 듯도 한 소리를 들을 때에는 정신이 아뜩하여져서, 아직까지도 가슴이 울렁울렁한다. 그게 무슨 소릴까. 형졸들은 그것이 죄인의 다리 부러지는 소리라 하였고, 또 그 다리 부러진 것과 거기서 피가 콸콸 솟던 것까지 눈으로 보기까지도 하였건마는, 그것이 다만 다리 부러진 소리뿐이었을까. 아아, 무서운 소리!

그 소리보다도 그렇게 몹시 맞아 다리가 부러지건마는 눈도 깜박하지 아니 하고 태연히 감사를 쳐다보며,

『나는 무극대도를 천하에 펴서 창생을 구제하고자 함이니, 이 도가 세상에 난 것은 하늘이 명하신 바요, 또 내가 이 몸을 도를 위하여 죽여 덕을 후천 오만년에 펴게 하는 것도 하늘이 명하신 바니, 공은 맘대로 하오!』

할 때에는, 감사도 모골이 송연하여 등골에 얼음 냉수를 끼얹는 듯하였다.

그래서 다시 심문할 생각이 없어서 옥에 내려 가두라 하고, 자기는 안으로 뛰어 들어가 자리에 누워 저녁도 굶고 지금까지 누웠다.

밤은 깊었다. 초어스름에 시작한 비가 점점 큰비로 변하여 낙수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고, 바람까지 일어 풍경 소리가 미친 듯하고, 문이 흔들리며 가끔 가다가 무서운 우뢰 소리와 함께 줄번개가 재우친다. 감사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무엇을 생각하는 듯 듣는 듯하더니, 방자를 불러 옥에 가서 동학 선생의 동정을 보고 오라 한다.

방자가 나간 후에 감사는 일어나 서안을 대하여 앉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그렇게 다리가 부러지고도 오늘도 태연히 앉았을까. 그렇게 피가 많이 나고 뼈가 부서졌으니, 아마 벌써 옥중에서 죽었을는지도 모를 것이다. 만일 아직도 살아 있다 하면, 그는 사람이 아니요 신이다. 그렇다 하면 내가 다시 그의 몸에 손을 대지 아니할 것이니, 나는 내일로 곧장계를 올려 벼슬을 버리고 서울로 가리라.

이러한 생각을 할 때에 눈앞에 선생의 모양이 선히 나타난다. 부러진 다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면서도 태연한 태도로,

『나는 무극대도를 천하게 펴, 창생을 건지려 함이…….』

하던 모양이 보일 때에 감사는 무서움을 못 이기어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마루에서,

『형리 아뢰오?』한다.

『이리 들어오너라!』

하여 형리를 불러들여,

『그래, 동학 선생이 살았느냐?』

형리는 정신을 진정치 못하는 듯한 목소리로.

『녜, 동학 선생이 살았읍니다. 상사또의 분부를 듣자 옵고 옥에 갔사옵더니, 동학 선생이 촛불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서 가만히 벽을 향하고 눈도 깜짝 아니하고 앉았읍니다.』

감사는 눈이 둥그레지며,

『그래, 아까 다리 부러진 동학 선생이 아직 죽지 않고 앉았단 말이야?』

형리는 더욱 고개를 숙이며,

『녜, 촛불을 켜 놓고 가만히 앉았읍니다. 그래 소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상한 것이 과히 아프지나 않으냐고 묻사온즉, 동학 선생이 고개를 돌 려 소인을 물끄러미 보며, 손으로 다리를 가리키옵기로, 그 다리를 보온즉, 분명히 뼈가 꺽어지고 피가 엉키었사옵고, 앉은 자리에는 피가 흘러 땅에 얼어 붙어서 방석과 같이 되었읍니다.』

五[오]

[편집]

삼월 초열흘 ── 갑자년 삼월 초열흘!

대구 장대에는 사람이 백차일 친 듯이 모이었다. 대구 감영 사람들, 사방으로서 모여 들어온 동학하는 사람들. 동학 선생이 죽는 것을 볼 양으로 아침 일찍부터 모여들었다.

날이 맑았다. 봄 안개가 먼 산을 둘렀으나, 해가 퍼지매 그것도 스러지고, 저녁나절에는 바람이 일 것을 예언하는 바람꽃이 파랗게 산을 덮었을 뿐이다. 밤새도록 퍼부은 봄비에 땅을 흠씬 젖고, 하루 아침에 수없는 풀 움이 뾰족뾰족 나왔고, 먼저 나왔던 풀들은 못 알아보게 자랐다. 천지에는 봄 기운이 찼다. 종달이조차 벌써 떼를 지어 공중으로 오르락내리락 지저귄다.

장대에 모인 사람들의 짚신과 미투리에는 검은 흙들이 묻었다. 어떤 사람은 두루마기를 걷어찼다. 먼 곳에서 온 듯한 늙은 도인들은 사람 없는 곳을 택하여 둘씩 셋씩 쭈그리고 앉아서 사람의 눈을 꺼리는 듯이 무슨 이야기들을 한다. 멋모르는 영감, 아이들은 공연히 좋아서들 뛰어 돌아다닌다. 그러 나 차차 모여드는 사람들의 수효가 늘어 갈수록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불안한 기운이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다. 어떤 노인은 무엇을 다 아는 듯 한 어조로,

『흥, 자네네들은 동학 선생이 죽을 줄 아나? 동학 선생이 어떻게 조화가 많은지 매를 맞아서 피가 흐르고 뼈가 부러졌다가도 조금만 있으면 피난 자국도 없이 아문다네. 그런 조화를 가진 사람이 죽을 줄 아나?』

곁에 섰던 벙글벙글 웃는 청년이 그 노인의 말을 비웃는 듯이

『제 아무리 조화가 있어도 그 커단 칼로 모가지를 치는데야 안 죽을 장사 가 있어요? 영감님은 빈대칼로 쳐도 돌아가실걸.』

하고 웃는다.

영감님이란 이는 노연 듯이,

『우리 같은 것이야 그렇지마는, 옛날 책에는 보면 안 그런가. 임진왜란에 김덕령이도 만고충신에 김덕령이라고 써 놓아 준 뒤에야 목이 베어졌다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칼로 찍어도 까딱도 없었다고 아니했다.……내 사위가 영문에 다니는데, 내 사위 말이 동학 선생은 사람은 아니라고 그러데. 그렇게 몹시 때려야 눈도 깜박 아니하고 감사를 똑바로 쳐다보고 앉아 맞는데, 감사가 도리어 고개를 돌리더래. 그나 그뿐인가. 때린 당장에는 피도 나지마는, 그 자리에서 나오기만 하면 글쎄 감쪽같이 된다네그려.』

『그럼, 영감님도 동학장이가 되셨구려.』

하는 다른 젊은 사람이 웃으며 묻는다.

『아니, 내야 늙은것이 동학이 무엇하며 천주학은 무엇하겠나마는, 동학 선생이 사람인즉 그렇단 말이야. 그러니까 오늘도 아무리 목을 찍어도 안 죽으리란 말이야.』

『그런데.』

하고 촌에서 들어온 듯한 어떤 중늙은이가 곁에서 이 이야기를 듣다가 노인을 보고,

『그러면 그 동학 선생이라는 사람이 무슨 못된 짓을 했나요? 왜 그렇게 조화 있는 사람을 내다 죽이려나요?』

한다. 노인은 더욱 신이 나서,

『하, 당신이 모르는구려. 동학 선생이 제자가 여러 십만 명이래요. 지금 대구 감영에도 그 제자가 여러 만 명 와 있지요. 그러니까 역적질이나 할까 보아서 그러지요. 그래 감사가 동학 선생더러 너 나가서 제자들을 다 헤치고 이훌랑 다시 제자도 모으지 말고 조화도 부리지 말라고, 그러면 나라에서도 너를 살려 주시려고 하신다고, 그리고 달랬지요.』

하며 노인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잘 아는 것을 자랑하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사람들은 점점 이 노인 곁으로 모여든다. 노인은 더욱 신이 나서

『그런데 여간한 사람 같으면, 매맞기가 무서워라도 녜 그리하오리다, 하고 항복할 것 아니야. 그런데 이 사람은 없지, 없어. 조금도 굴하는 빛이 없단 말이야. 그리고는 꼿꼿이 나는 오만년 대도를 펴느라고 나라를 바로 잡고 백성을 건지는 사람이로라고, 조금도 굴하는 빛이 없단 말이야요. 그래 내 사위도, 내 사위가 영문에 다니는데, 내 사위도 영문에서 나오면 동학 선생은 참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암만해도 범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노그러지요. 그리구…….』

하고 노인이 무슨 말을 더하려 할 때에, 어디서 「동학 선생 온다」하는 소리가 들리며 수없는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저쪽으로 향한다. 그 노인도 말을 끊고 그리로 향하였다.

벙거지에 전복 입은 군졸들이 벽제 소리를 치며 사람들을 헤치고 장대로 들어오더니, 뒤를 이어 어떤 중키나 되는 사람 하나이 목에 큰칼을 쓰고 잔뜩 뒷짐결박을 지고 나졸 네 명에게 끌리어 들어와 너른 마당 한복판에 놓인 등산 위에 걸터앉고, 얼마 있다가 다시 벽제 소리가 나며, 감사가 영장과 모든 아전들을 거느리고 마당에 들어와 동학 선생 앉은 데서 북으로 이십보쯤하여 쳐 놓은 차일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없이 등 상 위에 걸터앉은 큰칼 쓴 사람과 차일 밑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양만 보고 있다.

해는 낮이 되었다. 나졸들의 벙거지에 붙인 주석 장식이 번쩍번쩍한다. 이윽고 난데없는 바람이 휙 지나가며 감사의 앉은 차일이 펄렁펄렁할 때에 천 명인지 모를 사람들의 몸에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차일 밑으로서 어떤 아전이 쑥 나오더니, 등상에 걸터앉은 선생 뒤 서너보 가량에 큰 목패 하나이 서고, 거기는 큰 글자로 「동학 괴수 최제우」라고 썼다.

아전들이 감사의 차일 밑으로서 뛰어 나오더니, 나졸을 시켜 선생의 목에 씌운 칼을 벗긴다. 칼이 벗겨지자, 선생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이윽고 하늘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러하는 동안에 뒷짐지었던 것도 끌려서 두 팔을 무릎 위에 늘이고 몸의 자세가 발라진다. 이렇게 선생의 칼을 벗기고 뒷짐을 끄르는 나졸들이나 그것을 시키는 아전들이나 모두 무슨 무서운 일을 하는 듯이 조심조심하며 이따금 선생의 얼굴을 힐끗힐끗 볼 뿐이요, 피차에 아무 말도 없다. 선생은 무엇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 모양으로 사람들이 자기 몸을 어떻게 하는 대로 그대로 가만히 있다. 오직 그의 눈만 이 어딘지 모르는 먼 곳을 바라는 듯하다. 입은 바싹 다물었다. 얼굴은 오랫동안 옥중의 고초와 출혈로 하얗게 되었다. 오직 그의 가늘지 아니한 검은 상투 끝만이 그가 아직 늙지 아니한 건장한 사람인 것을 보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하얀 이마에 늘어진 것이 극히 처량하게 보인다. 부러진 왼다리, 바지가랑이에 묻은 피가 먼 곳에서도 분명히 보인다.

감사의 차일 밑으로서 또 어떠한 아전이 뛰어 나오더니 무에라고 길게 외친다. 수없는 사람의 무리는 그 외치는 소리 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사의 차일 곁으로서 어떤 웃통 벌거벗은 시커먼 사람이 상투 바람으로 작두 날을 반달 모양으로 휘어 놓은 듯한 커다란 칼을 어깨에 둘러 메고 껑충껑충 뛰어서 선생의 앞을 지나 선생 뒤 나무패 밑에 가서 칼을 짚고 선다. 사람들은 그 시커먼 사람이 메고 뛰는 칼날이 번쩍번쩍하는 양을 볼 때에 모두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아까 이야기하던 노인은 눈을 가리고 돌아섰다. 사 람들 속에서 어디선지 모르게 소리를 내어 우는 소리가 난다. 사람들의 눈은 그 우는 소리로 향하였으나, 어디서 우는지 몰랐다.

또 한번 바람결이 휙 지나가며 선생의 이마에 늘어진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웃통 벗고 큰 칼 든 사람은 추운 듯이 몸을 흔들며 칼을 한 번 들었다 놓는다. 선생은 한 번 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둘러보고, 에워싼 수 없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마침내 곁에 선 나졸들을 둘러보더니, 몸을 조금 움직여 자세를 바르게 하고 처음과 같이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고는 그린 듯이 앉았다. 모여 선 사람들 중에서 또 울음 소리와 「선생님, 선생님!」하는 소리가 난다. 선생은 그 소리 나는 데로 고개를 돌릴 듯하더니, 도로 가만히 앉았다.

감사의 차일 밑으로서 감사와 영장과 기타 이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오더니, 감사를 가운데 세우고 그 좌우로 읍하고 둘러선다. 감사가 그중에 한 사람을 불러 무에라고 몇 마디 말을 하더니, 그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선생의 앞에 와서 글을 낭독하는 듯한 어조로,

『죄인 동학 괴수 최〇〇 듣거라. 네 요망한 소리로 사문을 어지리고 도당을 모아 인심을 요란하니, 네 죄 만번 죽어도 마땅하거니와, 이제 금상전 하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깊은 은덕으로 한 번 더 개과천선할 길을 주노니, 이제라도 네 도당을 다 흩어 양민이 되게 하고, 다시 혹세무민하는 언행을 아니하기를 맹세하면, 네 목숨을 살려 주신다고 상사또께서 분부하옵신다!』

하고 소리를 높여 닷자를 길게 뽑는다. 선생은 말이 없다. 아전은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이윽히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고 섰더니, 그 입이 열릴 듯하 지 아니함을 보고,

『만일 이러한 은덕을 받지 아니하면, 저칼로 네 목을 베어 만민하게 보인답신다.』

하고, 또 잠깐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이 열릴 것 같지 아니함을 보고, 아까 올 때와 같이 빠른 걸음으로 감사의 앞에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고 읍하고 무에라고 아뢴다. 감사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더니, 오른 팔을 들어 무슨 군호를 한다. 그 아전이 감사의 군호를 받아 무에라고 길게 외치니, 선생 곁에 있던 십여 명 나졸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예에이」하고 소리를 합하여 외친다. 그중에 나졸 하나이 백지 한 조각과 냉수 한 사발을 들고 와 백지를 선생의 얼굴에 대고 입에 냉수를 물어 뿜으려 할 적에 선생은 손을 들었다.

선생의 마지막 청을 들어 나졸이 냉수 한 그릇을 새로 떠 왔다. 선생은 등상에서 일어나 흙 위에 백지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냉수 그릇을 놓고, 가만히 흙 위에 꿇어 앉더니, 눈을 감고 손을 읍하고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있다. 돌아선 사람들 중에도 선생 모양으로 꿇어앉는 이가 여기 저기 보이며, 어디선지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지 무극대도 대덕 지기금지원위대장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하는 소리가 울려온다. 선생은 일어나 한 번 더 사람들을 휘 둘러보고 등상에 앉는다.

칼든 자 칼을 둘러메고 뚜벅뚜벅 세 걸음을 걸어나와 왼편에 서더니,

『웨에이.』

하는 소리에 칼을 번쩍 머리 위에 높이 든다. 햇빛이 칼날에 비치어 흰 무지개가 선다.

『 선생님! 선생님!』

하는 통곡성이 사면에서 일어난다.

(一九二八[일구이팔], 七[칠], 一[일])

(一九二三年三月[일구 이삼 년 삼월] 《開闢》 [개벽]所載[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