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암장학재단설립기념비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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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암장학재단설립기념비(왼쪽).

계암장진영(張眞英)은서기일천구백칠십이년유월십사일전주시완산구중앙동에서아버지장길남과어머니백귀자의이녀중차녀로전주예수병원에서출생하였다전주교육대학부속초등학교기전여자중학교중앙여고를졸업하고서울상명대학교에서의상디자인을전공하였다어릴적부터꾸준한노력과의지가강하고자립정신이투철하여본인스스로해결하는노력파였다고등학교까지개근상을받았고대학재학중에는부모에게의존하지않고광고모델료를받아스스로출연비를마련하여일천구백구십삼년오월이십이일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서대전·충남「진」으로선발되기도하였다예능방면에천부적인소질이있어피아노연주를잘하였고미술도잘하여의상디자인을전공하게되었으며대학진학과동시「영화배우」로발탁되어연기자로서본격적인연예활동을시작하였다이천일년청룡영화여우주연상외많은상을수상하였고배우로출연하면서그의탁월한연기는빛을발휘하기시작하였다많은국민들로부터사랑받는일류명배우로서자리를굳혀갔다인생은희비쌍곡선이라하더니이천팔년구월뜻밖에도병원에서중병검진을받게되어일년여에걸쳐강한집념으로요양투병하였으나불행하게도끝내이천구년구월일일삼십팔세의젊은나이에유명을달리하고말았다자식이죽으면가슴에묻고간다더니가슴에맺힌통한을그누가알랴울어봐도불러봐도소용없는일이지만자나깨나진영이를찾아그리워하는부모마음…진영이는어려서부터효성이지극하였다항상부모님을편안하게해주었고장성하여서도언제나부모의마음을헤아려주었다일천구백구십오년아버지가경영하는「삼화화학회사」가부도를맞자아버지로인해피해를보는사람이있어서는안된다며부도를막아주어재산파탄의위기에서벗어났고부모가편하게살도록승용차와고급아파트며가재도구까지마련하여주었으며임실군운암면사량리동곡마을후록에선영을조성하는데이억원을부담하였으며본인의모교인중앙여고에장학금으로매년천만원씩삼년동안기탁하였고전주인재육성재단에이천만원사망직전의유언에따라사후오천만원을중앙여고에전달하였으며아버지의평생소원인사립고등학교건립추진이회사의부도현금도난등으로뜻을이루지못함을알고현금일십일억일천만원을출연하여장학재단을설립토록하였다비록진영이는떠났지만그갸륵한뜻을받아들여이천십년삼월십오일설립인가를받아재단법인계암장학회가발족하게된것이다진영이의출연금십일억일천만원은장학재단기금으로하고아버지의사재일십억원으로임실군운암면사량리의부지구백평을마련하여이곳에건평일백오십평건물두동을건립하고한동은재단법인계암장학회사무실과인동장씨삼십이세백은공종중사무실로한동은계암기념관으로사용할계획이다이천십년삼월이십오일착공하여동년칠월삼십일준공을마치고이천십년구월일일계암장진영의일주기를맞이하여개관식을갖게되었다이에우리재단법인계암장학회는계암의숭고한정신을계승하여재단을더키우고알차게운영하여훌륭한인재양성의요람으로육성해나갈것을굳게굳게다짐하면서그뜻을오래오래기리기위하여이비에새겨세우다

이천십년구월일일

인동장씨삼십이세백은공종중대표
재단법인계암장학회이사장

장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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