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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운석 장면 부통령 영결식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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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 선생님!

이렇게 선생님 영전에 서서 조사를 말씀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북받치는 설움을 누를 길 없습니다.

선생님과 그리고 해공‧유석 선생님들과 같이 민주주의 씨앗을 뿌리러 방방 곡곡 험난한 길을 같이 다니던 일이 어제 같고, 뜨거운 폭양 아래 혹은 살을 에는 혹한 속에 자유의 깃발을 지키기 위하여 같이 고생하던 기억이 생생하며, 정부를 맡아 불철 주야로 경륜(經綸)을 펴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앞에 선한데, 이제 선생님은 훌륭히 가셨고 이 부박한 박순천은 다시 상여 앞에 섰으니 야속한 마음조차 듭니다.

장면 선생님!

지난 10여년을 통하여 선생님과 고생을 같이하던 많은 동지들이 지금 선생님의 영전에 모여 섰습니다.

자유와 민주를 전취한다는 소박한 목표 아래, 혹은 상하고 혹은 가산을 탕진한 수많은 동지들은 괄세받고 가난에 찌들리면서도 우리들과 같이 고생하시는 선생님이 계시기에 마음의 지주로 삼고 스스로 위안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이 가시니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터져 나옵니다.

선생님은 고생하는 동지들의 상징이었고 또한 할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면 선생님!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험난한 대한 민국의 모진 행로에서 백성 위한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피땀을 흘려 전진하다가 쓰러진 고고한 지도자이심을!

정부 수립 직후에 유엔에 파견되어 우리 나라를 승인케 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없는 돈을 아껴 가며 살벌한 외교 무대에서 고군 분투하시던 선생님의 정성된 봉사는 찬연한 빛을 영구히 잃지 않을 것입니다.

6‧25의 난리를 막아 내기 위하여 유엔에서 혹은 부산의 총리실에서 남 몰래 고심한 선생님의 심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민주당 초창기에는 점심조차 굶으시며 지방 유세를 다니실 때 그 피로하고 괴롭던 시련을 말없이 감수하셨습니다.

허다한 공적과 남 모르는 희생이 선생의 생활을 점철하였으나 호강다운 호강도 못해 보시고 한때는 총탄 선물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국무 총리로 집권의 좌(座)에 앉으셨으나 선생님은 위세를 부리기는커녕 무거운 책무감에 사로잡혀 더욱 겸손하시며 밤잠을 제대로 못 주무실 정도로 과로하셨습니다.

언제나 남의 입장을 생각하시고 스스로의 권리보다 책임부터 존중하시던 선생님을 이 나라 백성들은 너무도 알아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장면 선생님!

이제 선생님이 가시매 이 각박한 세상 인심도 조용히 선생님의 진면목을 평가할 때가 왔나 봅니다.

역사상 가장 풍부했던 자유가 난만하게 꽃피었던 민주주의는 장면 박사의 이름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평범한 기와집 한 채를 남기신 선생의 깨끗한 생애는 앞으로의 집권자들에게 무거운 좌우명이 될 것입니다.

장면 선생님!

이제 선생님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그토록 오래 걸머지셨던 멍에를 벗으셨습니다. 안타깝고 슬픈 것은 선생님께서 좀더 오래 사시면서 정치에서 해방된 개인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일입니다. 좋아하시는 음악과 꽃과 그리고 하느님과 마주 앉는 성당 근처에서 거리낌 없이 지내시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무거운 짐을 벗으셨습니다. 괴로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항상 하느님을 잊지 않으시던 선생님은 이제 하느님 곁에서 편히 쉬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당파도 없고 선거도 없고 정정법(政淨法)도 없는 천국으로 가시었습니다.

우리들 선생님을 따르던 모든 동지들과 그리고 국민들은 선생님이 지상에서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다시 힘과 뜻을 모아 못다 펴신 대업을 기어코 완수하겠습니다. 참다운 자유와 민주주의와 그리고 순리로운 번영의 길을 꾸준히 닦아 나아가겠습니다.

외롭고 허전하고 아쉬운 이 마음과 파도처럼 밀려드는 겨레의 슬픔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오리까. 목메어 이만 줄이옵고 선생님 맑은 영혼 위에 영복이 길을 떠나지 마옵기를 기도할 뿐이옵니다.

운석 선생님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1966년 6월 12일

민중당 대표 최고위원 박순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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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한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가톨릭출판사, 1999 증보판) 546,547,54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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