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윤치영 전 서울특별시장 영결식 김재순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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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치영 선생님 영전에

동산 윤치영 선생님! 삼가 영전에 엎드려 곡하나이다.

선생님꼐서는 1898년 2월 10일에 나셔서 1996년 2월 9일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우리네 셈으로 99세, 흰백 자 백수(白壽)를 하신 셈입니다. 선생님의 부음을 듣던 날 , 저는 만상에 사로잡혀 밤이 깊어가는 줄더도 잊은 채 방구석에 엎드려 그저 묵묵히 음악을 듣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백수하신 선생님! 장수한 사람이란 그저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인생을 체험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정녕 장수하셨습니다. 선생님과 동시대를 살다간 많은 선배들의 유영(遺影)이 떠오릅니다. 선생님께서 사신 1백년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통한과 고난과 환희로 얼룩진 조국의 역사가 생생히 회상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명예로운 행위는 조국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온 생애를 통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건국을 위해서, 보존을 위해서, 조국의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셨습니다. 인간이 소망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선생님께서는 갖고 가신 셈입니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갔느냐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선생님의 주변인물들, 그 중에서도 비록 선생님과 뜻을 달리했던 사람들에게까지라도 선생님은 변치 않는 의리와 우정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남다른 긴 생애를 통하여 나라의 흥망성쇠, 인간의 훼예포폄(毁譽褒貶)을 체험하셨습니다. 갠 날에는 비오는 날을 생각하시고, 비가 그치면 날이 갤 것이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시며 눈앞에 전개되는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으셨습니다. 배신과 실의에 찬 후진들에게 언제나 위안과 용기를 주시곤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기도하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기도는 슬픔의 외침이며 사랑의 찬가이며 구원의 소망이라 언젠가는 보답하는 날이 있으리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동산 윤치영 선생님! 영예로운 인생을 마치시고 먼저 가 계신 사모님께서 기다리시는 곳, 하늘나라에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께서 남겨놓은 사랑하는 아드님 인선 군 가족과 더불어 변치 않는 발걸음으로 선생님의 뒤를 따라 가리오리다. 오랜 세월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1996년 2월 13일
전 국회의장 김재순

출처[편집]

  • 조선일보 1996년 02월 13일자
  • 동아일보 1996년 0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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