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면 전 부통령 건국훈장 추서 기념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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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일생을 사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평가를 받습니다. 젊었을 때 혹은 살았을 때 엄청난 영예를 누리고 찬양받던 사람도 차후에 엄중한 심판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생전에 여러 가지 비판을 받던 사람도 시간이 지난 뒤 정당하게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역사를 믿고 바르게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인은 결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국민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결코 영원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운석 장면 선생의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최고 훈장을 추서하면서 참으로 우리는 의인 불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한없이 축하하는 마음과 자랑스러운 심정을 갖습니다. 저는 1957년 장면 박사를 대부로 보시고 가톨릭 영세를 받았습니다. 장 박사님의 민주당에서 장 박사님을 도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신 이후에는 여당의 대변인으로서 우리 총리를 방어하고, 여당의 입장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5·16에 의해서 우리들이 나라를 바르게 세우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5·16을 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장면 정권은 너무도 유약했다. 그런 약한 정권 가지고 나라를 지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옆에서 본 장면 총리는 결코 약한 분이 아니라 강력한 빈주적 신념을 갖고 이를 실천한 분이었습니다. 장면 박사는 민주적인 경선을 통해서 총리가 되었고, 총리가 되어 오랫동안 폐지되었던 지방자치제를 완벽하게 실시했습니다. 읍장·면장까지 선거하는 그러한 일을 아무 차질없이 전국적으로 해냈습니다.

또한 야당인사들을 과감하게 입각시켜서 연립내각을 만드는 결단도 내렸습니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과거 자유당 정치인, 경제인,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소급입법을 하려고 할 때 장면 총리가 이것을 단호하게 반대했던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농협 강단에서 중앙상무위원회를 할 때 장면 총리가 거의 목멘 소리로 “민주국가에서는 소급입법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설득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소급입법은 되고 말았습니다만 총리는 저를 만날 때마다 이런 일을 하면 안된다고 굉장히 개탄하셨습니다. 그 당시 내각책임제하에 국회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였고 의원들의 각성과 자질이 부족해서 지도자의 그러한 훌륭한 말씀을 여야간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적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의 말처럼 5·16 직전이 나라가 붕괴의 직전에 있었는가, 혼란의 위기에 있었는가, 정반대입니다. 그때 4·19가 일어나고 시민들이 데모 한 번 안하는 사람은 병신이라고 할 정도로 데모를 많이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폭력적인 진압이 아니라 시위를 평화적으로 유도하는 노력을 해서 결국 5·16직전에는 시위도 거의 없어지고, 시위가 있어도 국민들도 별 관심을 안 가질 정도로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면 정권을 그대로 두었으면 나라가 말할 것 같아서 5·16을 일으켰다." 이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앞에서 김수환 추기경께서 박순천 선생의 삼민회 대표 연설을 말씀하셨는데, 그 삼민회 대표 연설을 바로 제가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박순천 선생이 어디서 얻어들으신 것이 아니라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자마자 한 달도 안되어서 충무로에 있는 충무장에서 나중에 군사 쿠데타를 한 사람들이 모여서 정권 전복을 모의했다는 것은 그들이 출판한 5·16 군사혁명사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발견해서 박순천 선생께 보이고, 그 연설 속에 넣었습니다. 사실이기 때문에 여당이 감히 반박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그 책은 모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수거되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장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1개월도 될까 말까 한데 어떻게 부패할 줄을 알고, 어떻게 무능할 줄을 알고, 어떻게 공산당이 나라를 지배할 줄을 알겠습니까? 이것은 나중에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붙인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5·16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이 신문지 양면에 걸쳐서 깨알같은 글로 민주당 부패상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군사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어느 장관이 외국 출장 가 있는 동안에 누가 중고품 냉장고 하나 갖다 놓은 것만이 유죄가 되고, 나머지는 전부 무죄가 되었습니다. 5·16 직전에 그렇게 천하를 뒤엎다시피 떠들어댔던 사건이 결국 군사정권의 손에 의해서 무죄가 되었습니다. 부패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또, 무능한 정권이 어떻게 질서를 회복해서 5·16 직전에 거의 안정된 나라를 만들었겠습니까? 무능한 정권이 어떻게 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겁이 나서 못하던 지방자치제를 과감하게 실시하게 되었습니까? 그뿐입니까? 장면 정권은 국토건설단을 발대시켜 전국민의 에너지를 국토재건에 투입하는 일을 시작해서 돌아가신 장준하 선생께서 그 단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나라경제를 바로잡는 개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쿠데타가 났는데 군사정권이 그 5개년계획을 가져다가 표지만 바꾸어서 그대로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능한 정권이 어떻게 이런 준비를 하겠습니까? 모두가 나중에 붙인 이유가 된 것입니다. 장면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건국의 공로자이십니다. 한국을 UN에서 승인받도록 하는 데 그 당시 소련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성공하신 것입니다. 또한 6·25때 UN군 파병에 절대적으로 공헌을 하신 구국의 공로자이십니다. 1952년 이래 1960년 4·19까지 8년동안 이 박사의 독재에 반대해서 싸우고, 이 박사 정권으로부터 가장 미움받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 때 이번에도 불행히 대통령 후보가 선거 시작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당내에서는 “대통령 후보 없는 선거 두 번째 해서 뭐 하느냐? 그만두자”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면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은 “우리는 끝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정권도 좋지만 국민의 권리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싸웠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노력했습니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3·15 부정이 저질러졌던 그 삼엄한 시대에, 군인들이 영내에 있다가 철조망 쪽으로 와서 우리가 마이크를 들고 가니까 손을 내밀면서 삐라를 달라고 해서 모두 주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 오던 자유당이 와서 그들에게 삐라를 준다고 하니까 전부 안 받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이런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어떻게 되었든 3·15 부정선거에서 야당 표가 전혀 안 나오고, 장면 박사 표가 안 나오고, 모두가 여당 표만 나왔습니다. 표가 너무 많아서 줄이려고 난리치는 이런 부정선거가 행해졌는데, 그런 부정 선거를 안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자염 후보의 불굴의 지도력과 투쟁, 또 우리가 모두 싸운 결과였습니다. 그것이 4·19를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3·15를 포기했으면 4·19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장면 박사는 최초의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한 이 나라의 역사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지도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민주정권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정권의 책임자인 장면 총리의 책임도 큽니다. 그러나 그 당시 많은 정치인들이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까지도 총리를 괴롭히고 협력을 안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국민으로부터 정부가 의심을 받게 만들고, 심지어 당내에서 별도 조직을 만들어 총리를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책임은 없었습니까? 과거 이 박사 빝에서는 숨도 크게 못쉬고 감옥에 끌려다니던 사람들이 장면 총리 빝에서 자유를 주니까 오히려 장면 정권 타도의 선봉에 나선 그런 과오를 범했습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반성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면 박사는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첫줄에 서는 위대한 신앙인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장면 박사가 우리 교회에 끼친 위대한 영향은 어느 성작자 못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100주년을 맞이해서 오랫동안 상식화된 장면 박사에 대한 “무능했다, 부패했다, 약했다, 그대로 두었으면 공산화되었다” 이처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이 조작하여 수십 년을 되풀이해서 국민의 머리에 세뇌시킨 장면 박사에 대한 부당한 판단이 이제 건국훈장의 수여와 더불어 말끔히 씻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도자가 누명을 벗을 뿐아니라 우리 국민의 스승으로서 이 나라의 위대한 민주 지도자로서 남게 된 것을 국가를 위해서 한없는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장면 박사의 대자로서 이 점에서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우리들의 지도자를 오랫동안에 걸친 부당한 평가와 누명으로부터 벗겨 드리고, 이렇게 해서 이 나라 건국의 한 원훈으로서 훈장을 드리고 그 영예를 높이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부당한 박해 때문에 많은 심려를 하셨던 박사님의 사모님, 또 그 가족들, 박사님을 존경하는 모든 사람들의 한과 고통이 말끔히 씻겨지고, 새로운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앞으로도 장면 박사의 위대한 인격과 민주 지도자로서 탁월한 경륜을 가졌던 분으로서의 진가가 우리 역사에 영원히 빛나기를 바랍니다.

199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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