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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패성의 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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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눈이 덮였구나
흰 조갑지를 씻어서 엎어 논듯
새하얀 눈이 소복히 쌓였구나.

흑진주(黑珍珠)같이 영롱(玲瓏)하던 너의 눈도
복숭아를 쪼개논듯 연붉던 너의 입도
그리고 풀솜처럼 희고 부드럽던 너의 살도,
저 눈속에, 저 흙속에 파묻히고 말았구나.
네 마음 속의 조그만 허영(虛榮)이
죄(罪) 없는 네 몸을 죽음의 길로 이끌었다.
참새가 한섬 곡식을 다 먹지 못하고
비단 옷도 열겹 스무겹 껴입지는 못할 것을
논에 몸을 팔아 일찌감치 죽음을 샀구나.

구두를 전당(典當)잡혀 고무신짝을 끌고
네게로 달려 갔을 때 너는 나를 보지도 않았더니라.
병(病)든 네 몸을 위하여 그 사나이와 칼부림할 때
너는 돌아 앉아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더니라.
대동강(大同江)은 얼음만 풀리면 전(前)과 같이 흐르려니
이제 청류벽(淸流壁)을 끼고 도는 내 그림자만 외롭구나!
봄이나 와야 저 산(山)기슭에 새들이 울어 주지 않으랴
꽃이나 피어야 네 무덤에 한 송이 꽂아 주지 않으랴.

1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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