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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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한 줌 물에다 불려서 그것을 흰 실에다 염주처럼 꿰었다. 덮을창에다 조 이삭 대신에 이 콩염주를 달아 놀는 것이다. 미라부리라는 주먹만한 회색 빛깔의 새를 잡기 위하여서다.

눈이 하얗게 내린 동리 뒤꼍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 낟가리와 콩짚을 쌓은 마당의 한 옆을 헤치고 눈 속에 덮을창을 묻어 놓고, 나는 해 저무는 겨울 날 저녁녘에 뽕나무를 총총히 심어 놓은 밭 쵯둑 위, 쓸어 놓은 누런 잔디판 위에 숨을 죽이고 쭈그리고 있었다. 벌ㅆ 한 시간 남짓한 동안을 이렇거고 잇는 것 이었다. 우르륵 소리를 내어서 참새의 한 떼가 돼지 우리 뒤를 스쳐서 먹을 것을 구하여 낟가리 밑으로 날아들 때에 똑똑히 커다란 미라부리란 놈이 두세 놈 섞인 것을 보았는데 여태껏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것이다. 멀리 동리 쪽을 바라보면 집집이 푸른 저녁 연기가 오른다. 바람이 조금씩 일기 시작한다. 연기가 한 발도 못 올라가서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 보인다. 학교가 산 밑, 잎 떨어진 포플라 나무에선 까치떼가 자지러지게 우는 것이 들린다.

'저녁인데, 어머니가 저녁을 지어 놓으시고 나를 부르지나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으로 조바심하고 있을 때 덥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새의 떼가 놀라서 우르르 날아간다. 그러나 참새의 떼는 낟가리 위에 이리저리 흩어졌을 뿐, 멀리 날아가 버리지는 않는다. 나는 눈을 골라 짚지도 못하고 댓바람에 낟가리 옆으로 뛰어갔다. 겉껍질은 얼음이 잡혔으나 짚으면 짚신 신은 발이 흠썩흠썩 발목까지 빠졌다. 내가 마당귀로 뛰어들어갔을 때 낟가리 위에 올라 앉았던 참새들은 또 한 번 놀라서 푸득푸득 자리를 옮기었다. 한 놈이 놀라면, 날개 치는 소리에 또 한 놈이 놀라고, 그래서는 숱한 새가 연이어서 이리 날고 저리 날고 한다.

틀림없는 미라부리였다. 흰 그물을 쓰고 조짚으로 엮은 덮을 창 위에서 활개를 치며 푸드득거린다. 노란 점과 까만 점과 희끄므레한 색깔이 회색 바탕 속에서 펄럭펄럭 뛰노는 것이 보인다. 그물 한 귀퉁이로 손을 넣어서 파닥이는 새를 가만히 움켜쥔다. 그물 한 귀퉁이로 손을 넣어서 파닥이는 새를 가만히 움켜쥔다. 한 줌이 남는다. 따끈한 새의 체온이 언 손에 다사로웁다. 나는 한참 동안 새를 꺼내 들고 이리저리 생긴 모습을 사랑하고 있었따. 그러나 나는 새를 괴춤에 감추고 귀를 기울였다. 방울 소리가 어디선가 은은히 들려 온다. 나는 머리를 둘러 보았다. 작은 샛길 위에 나귀가 한 마리, 부담마처럼 짐을 실은 위에는 수염이 허옇게 난 늙은이, 그 뒤에 역시 작다란 궤짝을 짊어진 젊은 머슴 같은 사람이 서 있다. 그들은 건던 다리를 세우고 물끄러미 나 있는 편을 바라다보고 있다. 나귀 위에 탄 노인은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차례씩 교회를 돌아 보러 오는 서양 사람 목사였다.

나는 눈 위에서 일어나서 경례를 하였다. 털모자 속으로 조그만 안경을 낀 허연 얼굴이 웃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목사는 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 하였다. 내가 가까이 갔을 때,

"오오, 소년의 이름이 김순일이지요. 거기서 무엇 하였소. 새를 잡았소? 그것이 무슨 새요?"

"미라부리라고도 하고 콩새라고도 하는 샙니다."

"오호, 착하오, 착하오. 하나님 은혜 많이 받았소."

늙은 목사는 장갑을 뽑고 붉은 손으로 내 머리를 투덕투덕 만져 주었다.

이 늙은 목사는 빠우엘이라는 이름을 가졌었다. 한문자로는 배열(裴烈)이라고 썼다. 교회의 영수나 장로들은 배열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늙은 목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 고장과 평양까지 내왕하는 자동차가 있었으나, 언제나 이렇게 나귀를 타고 뒷길로 찾아왔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시골로 돌아오는 때문이요, 또 멀리 그가 맡은 구역의 외딴 촌으로 돌아서 들어가는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 은빛으로 빛나는 수염을 가진 늙은 목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내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그가 나에게 학습을 주던 지난 여름부터의 일이었다.

나귀에게 지우고 다니는 침상을 펴서 윗목에 잠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옆 돗자리를 깔아 놓은 장판 위에서 나와 또 어린 주일 학교 생도 다섯은 학습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배열 목사가 가운데 앉고 그 옆에는 이 교회의 장로, 집사가 두서넛 돌라 앉았다.

"학생 이름이 무엇이오?"

"김순일입니다."

"몇 살 났지요?"

"열 두 살입니다."

"하나님 믿고 공경하시오?"

"예"

"예수 그리스도, 누구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읍니다."

"네. 잘 알았소. 잘 때에 깰 때에 음식 먹을 때에 기도 올리오?"

"예."

"무슨 뜻으로 기도 올리오?"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침에는 편안히 쉬게 해 주셨다고, 저녁에는 '쳔안히 쉬게 해 줍시사고, 음식 먹을 대엔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 올립니다."

"네. 참 착하오. 주일 잘 지키고 하나님 전도 많이 하시오?"

"예."

배열 목사는 돗수가 강해서 얼룽얼룽 보이는 돗보기 밑으로 인자한 미소를 띄고,

"그럼 성결 요절 왼 것 있거든 몇 절 외워 보시오."

나는 요한 삼 장 십 육 절을 우선 암송하였다. 목사는 역시 은빛 수염 속으로 미소를 띈 채 고개를 주억거려 보였다.

"시편 일 장 육 절. 대저 여호와 의인의 길을 아심이여, 악인의 길은 멸망하리로다."

흰 수염은 더욱 만족히 흔들거리었다.

"잠언 삼 장 십 삼 절. 지혜를 얻은 자와 지식을 얻은 자는복이 있을지로다. 십 팔 절로부터 이십 절까지. 지혜를 얻은 자에게 곧 생명수가 되나니 지혜를 가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 ―――― 지혜로써 땅을 세우시고, 총명으로써 하늘을 만드시고, 그 지식으로 바다가 갈라지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었도다."

목사는 내 손목을 더듬어 쥐었다.

"착한 소년이오. 이름이 김순일. 은혜 많이 받았소. 앞으로 더욱더 하나님 공경하시오."

주일날 오후 예배 시간에 성찬을 베풀기 전 나는 학습을 섰다고 광고되었다.

그 이튿날, 방학 동안에 과제로 내준 도화를 그리기 위하여 나는 교회 가까이로 물감 그릇과 붓과 종이를 가지고 나갔다. 날은 더웠다. 나는 해가 머리 위로 따가워지기 전에 낡은 비각과 그 옆에 선 한쪽이 썩은 배나무를 사생하러 교회당 가까이로 나갔던 것이다. 비스듬히 각도를 취하는 자리에 펼신하니 다리를 펴고 앉아서, 연필로 줄을 긋고 위치가 잡힌 뒤에 가지고 왔던 사이다 병에서 물을 부어서 물감을 풀었다. 노랭이를 칠하고 붉으레한 색으로 기둥과 추녀를 칠하고 초록과 다른 색을 섞어서 점점 진한 색을 묻히기 시작하였다. 한 절반 그렸을 때에 등 뒤에서 발자취 소리가 나서 낯을 돌리니까 어저께 학습을 받은 배열 목사였다. 아침 일직이 물 위를 돌아서 다른 방성으로 길을 떠날 줄 알았던 늙은 목사 빠우엘이었다.

"일어나지 말고 앉으시오. 앉아서 어서 그리시오."

일어서서 인사하려다 말고 다시 종이를 향하였으나 부끄럽고 궁둥이 솔아서 태연히 앉았을 수가 없었다.

"김순일, 그림 좋아하시오?"

목사는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모으고 그림을 내려다 보았다. 나는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외면을 하였다. 목사는 잘 보이지 않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림과, 그리고 자연 속에 놓인 그림의 대상을 번갈아 보았다.

"좀 더 아름다운 색을 묻히시오. 저 집과 나무와 풀숲에 있는 빛깔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택해서 그것을 선명하게 살려 보시오."

그는 유창한 조선말로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

"예" 하고 나는 나직이 대답하였다.

"나는 눈이 나빠서 잘 보이지 않으나 푸른 나무와 풀숲의 테두링에 햇빛이 춤을 추고 있을 것이오.. 빤뜩빤뜩 빛날 때도 있고 너울너울 후물거릴 때도 있을 것이오. 그 모양을 가만히 보고 똑똑히 붙들어 보시오."

나는 노인이 시키는 대로 비각과 배나무와 풀숲을 자세히 바라보는것이었으나 그의 말을 딱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잠시 덤덤히 앉았다가 늙은 서양인 목사는 다시 이렇게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사람도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미술가 되려고 뜻했었소. 미술 학교에도 들어갔었소. 그러나 눈이 너무 나빠서 중도에 그만 중지하였소. 그림에는 눈이 중요하오. 눈으로 본 것이 마음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눈으로 통하오. 그런데 나는 눈이 나빠서 잘 바라볼 수 없었소. 지금도 이 사람 그림을 사랑하오. 같은 나무를 바라보아도 그림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되오. 미술 학교에서는 많은 학생이 밖에 나가 한 가지 나무와 숲을 그릴 때가 있으나 그림이 된 것은 각각 다르오. 신기하지 않으오? 다르면 다를수록 좋으오. 남이 못 보는 것을 볼수록 그림은 으뜸 가오. 명심해서 그려보시오."

그는 일어섰다. 나직이 찬송가를 입 속으로 부르며 밭 샛길을 천천히 돌아서 한참만에 교회당 문으로 들어갔다.

이런 일이 있고는 빠우엘 목사는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회당으로 들려서 집으로 가시오. 오늘 밤 예배 공부에는 못 오지요?"

"예."

머슴은 나귀 앞으로 가서 고삐를 들고 갔다. 방울이 울렸다. 늙은 목사를 태운 나귀는 뙤뚝뙤뚝 눈길 위를 걸어갔다. 나는 덮을창과 미라부리를 양손에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해는 산 뒤에 떨어지고 들 위에는 자옥히 어둠의 회색 장막이 소리 없이 드리우려 하였다.

교회에서는 교회지기 김 집사가 나와서 목사를 맞이하였다. 종대 밑에 나무로 지어 놓은 작다란 외양간에 나귀는 짐을 풀고 들어가 섰다. 집사네 가족과 우리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기도를 올렸다. 목사는 짐 속에서 커다란 목침 같은 떡을 꺼내어 나를 주었다. 그리고 짐 속에서 그림 두 장을 꺼내 주었다. 나는 바지 가랑이 속에 새는 집어 넣고 떡과 그림과 덮을창을 끼고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가까워졌을 때 종 소리가 들렸다.

그림은훨씬 뒤에 안 것이지만, 한 장은 라파엘의 것이요, 또 한 장은 세잔의 것이었다. 그 이듬해 안식년에 들어가서 빠우엘 목사는 다시 고국인 캐나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래 이십 년, 나는 그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화필을 들어 캔버스를 향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은빛 수염과, 그리고 그 수염 속에서 나직이 새어 나오던 그의 이야기를 머리에 선하게 그려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 먼 곳에서 불려 오는 것 같은 나귀의 방울 소리를 은은히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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