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그 여자의 일생/회광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回光篇(회광편)

[편집]

인현은 금봉을 데리고 표훈사로 도로 내려 와서 돈도암이라는 산속 조그마한 승방으로 데려다 두었다. 이 암자는 신라 적부터 있던 오랜 절로,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왕후와 마의태자의 부인이 일생을 숨어 있던 곳이다.

돈도암에는 한 육십된 노장이 주장이 되고 젊은 여승이 칠팔인 있었다.

인현은 그 노장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금봉을 소개하였다. 그들은 미리부터 다 알고 있던 것 모양으로 금봉에게 대해서는 별로 물어 보는 것도 없었다.

『그럼, 여기 있거라.』

하고 인현은 가버렸다.

어떻게 있으란 말도, 언제 오마는 말도, 아무 지시도 없이 그저 데려다 두고만 가고 말았다.

인현이가 나간 뒤에 금봉은 아무 질문도 받지 아니하였다. 으례 있을 듯한, 어째 왔느냐, 나이가 몇 살이냐, 이러한 질문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금봉이란 사람이 곁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금봉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그들이 하는 양만 보고 있었다.

노장이나 젊은 중이나 하루 종일 도무지 말이 없었다. 혹은 쌀을 고르고, 혹은 산에서 도라지를 캐어 오고, 혹은 빨래를 하고, 잠시도 몸을 쉬는 일이 없지마는 도무지 말하는 양을 보지 못하였다. 이 말 없이 일만 하는 세상이라는 것은 금봉이가 여기 와서 얻은 첫 인상이었다.

그들은 모두 굵다란 무명으로 지은 사내 고의 적삼을 입고 대님을 무릎 밑에다 매고 발을 벗었다. 적삼은 품이 넓고 깃은 늦고 길이는 허리를 지나서 축 늘어지게 지어서 엉덩이를 감추게 되었다.

낡은 집이지마는 마루나 장판이나 말짱하게 걸레로 닦아서 윤이 흐르고, 부엌과 마당에도 티끌 하나 없었다. 깨끗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였다.

큰방 정면에는 도금한 조그마한 부처 한 분을 모시고, 그 앞에는 향로와 향합과 목탁이 놓이고, 횃대에는 혹은 검은, 혹은 회색 장삼과 빨간 가사들이 걸렸다.

이렇게 말은 없고 몸만 움직이는 중에 저녁때가 되어 쌀을 씻고 반찬을 만 들었다. 그러는 중에도 사람들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일 뿐이요, 도무지 말소리는 들을 수 없고, 눈도 보는 데 밖에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이윽고 큰절에서 종소리가 울었다. 그것을 따라 이 조그마한 암자의 조그마한 종도 울었다.

『땅 ─ 땅 ─ 땅』

하고 처음에는 느리게 치다가 차차 잦아져서,

『땅땅땅땅』

하고 아주 자지러지다가는 다시 또 느리게 치다가 다시 자지러지고 마는 그러한 소리였다.

종소리가 날 때에 사람들은 일하던 것도 쉬이고 눈을 감고 합장하였다.

『큰방으로 가지.』

하고 노장이 금봉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오늘 여기 와서 처음 들은 사람의 소리였다.

금봉은 노장을 따라 큰방으로 갔다. 거기는 벌써 부처 앞에 ⌜공양⌟이라는 밥이 놋으로 만든 밥소라에 담기어 놓이고 향로에서는 향연이 올랐다.

사람들은 장삼과 가사를 입었다. 그중에는 장감 가사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노장이 목탁을 들고 딱딱 칠 때마다 사람들은 절을 하였다. 이때에도 다른 절에서 모양으로 중얼거리는 것은 없었다. 다만 절을 할 뿐이었다.

부처 앞에서 하는 절이 끝나고는 그 밥을 툇마루에 있는 신중당으로 옮기고 또 목탁에 맞추어서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들 가사와 장삼을 벗어서 제자리에 걸고, 그리고는 벽에 들려 얹은 선반 위에서 저마다 ⌜좌복⌟이라는 방석 하나와 바리때들을 내려서 방바닥에 놓고 돌아 앉았다. 금봉이 앞에도 방석과 바리때를 갖다 주었다. 노장만은 제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그중 젊은 여승 하나가 방석과 바리때를 내려 놓아 드렸다.

그 바리때는 네 개를 포개 놓은 것이어서, 맨 위의 것이 제일 작고 맨 밑의 것이 제일 컸다. 사람들은 소리 아니나게 그 대접 같은 나무 그릇들을 꺼내어서 제 앞에 둘씩 두 줄로 벌여 놓았다. 그런 뒤에 한 사람이 구리 주전자를 들고 돌면 그 사람이 제 앞에 와서 선 때에 그 사람을 향하여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 뒤에 네 개중에 그중 큰 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서 눈 높이만큼 내어 밀면 주전자 든 사람은 그 그릇에 물을 따랐다.

물 돌리는 사람은 물을 돌리고는 제자리에 앉고, 다음에는 밥소라를 든 사람이 사람마다의 앞에 와서 밥소라를 옆에 놓고 꿇어 앉으며 밥 받을 사람에게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면 밥 받을 사람도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답례한 뒤에 물 받은 그릇 다음 그릇을 두 손으로 받들어 내어 민다. 그러면 밥 돌리는 사람은 주걱으로 그 그릇에 밥을 푸다가 밥 받을 사람이 먼저 합장을 하면 ⌜그만⌟이라는 뜻으로 알고 그 밥그릇을 밥 받을 사람에게 돌린다.

받은 사람은 제 밥그릇을 받아서 제자리에 놓고 밥 돌리는 사람을 향하여 합장하여 고맙다는 뜻을 표하면 밥 돌리는 사람도 합장하여 답례하고, 그리고는 밥소라를 들고 다음 사람 앞에 가서 또 그 모양으로 한다.

금봉은 맨 끝에 앉았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것을 유심하게 보고는 남들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었다.

다음에 국 돌리는 사람, 맨 나중에는 장아찌를 돌리는 사람, 이 모양으로 네 그릇에 돌릴 것을 다 돌리고 받을 것을 다 받으면 사람들은 일제히 노장을 바라다본.

노장이 물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시고 숟가락을 드는 것을 보고는 사람들은 일제히 물 한 모금 마시고 숟가락을 든다.

금봉도 그대로 하였다.

밥은 맛이 괜찮으나 국은 맨된장에 멧나물 말려 두었던 것을 넣고 끓인 것이 되어서 소태국같이 썼다. 그리고 장아찌는 무는 무인 모양이나 무엇인지도를이만큼 까맣게 장에 절어서 짜기가 소금 이상이었다.

그래도 다들 맛나게 먹는 모양이었다. 금봉이가 오전 열 한시에 여기를 왔는데 이제 저녁을 먹는 것을 보면 점심은 안 먹는 모양이니, 모두 젊은 혈기에 하루 종일 쉴새 없이 일을 하였으니 시장도 할 것이라고 금봉은 생각하였다. 실상 금봉도 마하연에서 아침을 사먹고는 이제 처음이라 퍽 시장하여서 그 밥을 다 먹었다. 국은 써서 반이나 남겼었으나 가만히 보니 사람들은 그릇에 받았던 것은 하나도 아니 남기고 다 먹는 모양이요, 나중에는 물그릇에 남았던 물로 밥그릇을 부시고 그리고는 그 물을 국그릇에 부어서 그것을 부시고 그 물을 또 반찬 그릇에 부어서 부시고 나중에는 개숫물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들고 도는 그릇에 그 물을 따르고 그리고 그 그릇에 남는 찌꺼기를 마저 마셔 버리고 그리고는 저마다 가 진행주로 제 그릇들을 닦아서 아까 모양으로 넷을 하나로 포개 놓고, 사람들이 다 이리하기를 끝내기를 기다려서 일제히 합장하고 그리고는 그 그릇과 방석들을 저마다 선반에 본디 놓았던 자리에 올려 놓았다. 이렇게 제 그릇에 받아 놓은 것은 하나 안 남기고 다 먹는 것을 보고는 금봉은 남겼던 국을 억지로 다 마셔 버렸다.

이렇게 저녁이 끝나고는 다들 자유인 모양이었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가람도 있고, 나무 아래를 가는 사람도 있고, 시냇가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금봉이도 돌돌돌 물소리 나는 시냇가에서 정선이와 아담이와 또 제가 지나 온 과거와 망망한 앞길을 생각하면서 저녁 산새 소리를 듣고 있을 때에 또 종치는 소리가 들렸다. 금봉은 종소리가 아마 모이라는 종이거니 짐작하고 암자로 돌아 갔다.

사람들은 큰방으로 모였다. 다들 아까 밥 먹을 때에 앉았던 자리에 서 있었다. 금봉도 제가 밥 먹던 자리에 섰다. 노장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 불전에는 촛불을 켜고 이번에는 목량이 아니라 만수향을 꽂았다. 이윽고 노장이 들어 와서 제자리에 섰다. 한 사람이 쇠를 땅땅 울렸다. 사람들은 일제히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말 없이 다들 제자리에 앉았다.

노장은 고개를 스르르 들고,

『우리 마음은 행실사나운 말과 같아서 잠간 놓치면 천리 만리로 달아나서 일을 저지르고야 마는 것이니, 저마다 제 마음의 고삐를 바틈히 꼭 붙들고 종용하게 사마타에 들어.』

하고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다들 가만히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다리를 왼장을 치고 허리를 조추고 앉았다. 갑자기 먼 개천의 물소리와 뒷수풀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만이 유난히 높아지는 것 같았다.

금봉도 남과 같이 가만히 앉았다. ⌜마음의 고삐를 바틈히 잡으라⌟는 말은 알아 들었으므로 잡념을 막으려고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금봉이가 잡은 고삐를 뿌리쳐 빼앗아 가지고 맨 처음으로 달린 곳이 삼청동 집이었다. 거기는 침모와 할멈과 순이와 정선이가 있었고, 다음 순간에는 아담이도 있었고, 또 다음 순간에는 광진이가 있었고, 또 다음 순간에는 칼 든 손명규와 꼬부리고 이불을 막쓴 금봉이 자신이 있었다. 쥐구멍으로 들어가고라도 싶은 부끄러운 숨이 막힐 듯한 뉘우침 등등. 금봉은 얼른 마음의 고삐를 잡아 당기어서 제자리로 끌어들였다.

다음 순간에는 마음이 달려 간 곳은 동경, 기숙사, 숙희, 임학재의 생일 날, 비오는 날 밤 하숙 이층에 찾아와서 추군추군하게 유혹하던 심상태, 속으로 마음이 솔깃하기도 하는 저. 금봉은 얼른 마음의 고삐를 채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은 임학재와 조병결과 심상태와 숙희와 함께 이노가시라 공원으로 돌아 다니던 일, 더운날 임학재에게로 한없이 한없이 끌리던 제 마음, 형언할 수 없이 그리운 제 마음. 금봉은 이 유쾌한 추억에 취하여 마음이 달아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마음이 호텔에서 돈을 가지고 저를 유혹하던 손명규의 장면으로 달려 갈 때에 금봉은 깜짝 놀라 고삐를 나꾸었다. 그러나 마음은 금봉을 줄줄 끌어 손 명구에게 첫 번 몸을 허하는 장면까지 기어이 끌고 가고야 말았다.

금봉은 죽을 힘을 다하여 마음을 다시 끌어 왔다.

<이왕 달아나려거든 깨끗하고 정다운 추억의 나라로 가려무나!>

하고 금봉은 입을 꼭 다물고 마음을 책망하였다.

마음은 금봉의 청을 듣는 모양으로, 처음에는 금봉이가 어머니 사랑 속에 살던 옛날로 끌고 갔다. 귀여운 어린 계집에, 어리광, 칭찬, 걱정 들은 것.

금봉은 한참 유쾌하였다. 그러나 짓궂은 마음은 심술궂은 영화 촬영 감독 모양으로 껑충 뛰어서 우물에서 물을 쭉 흘리고 쑥 올라오는 어머니의 광경을 끌어 내었다. 금봉은 이 허깨비가 바로 금강산이 절, 지금 자기가 앉는 자리 앞에 나 뜨는 것만 같아서 몸서리가 쳐졌다. 금봉은 허겁지겁 마음의 고삐를 나꾸채었다.

<깨끗한 추억, 깨끗한 추억!>

하고 금봉은 심술궂은 제 마음에 대하여 짜증을 내었다.

마음의 말은,

<어디 깨끗한 추억이 더 있더냐?>

하는 듯이 한참 가만히 있더니 문득 살풍경이 일어나 혼인 식장으로 달려 간다. 거기는 손명규의 본처가 그 해골만 남은 몸을 끌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갈갈이 찢어진 치마를 질질 끌면서 달려 들어와서 금봉이 손에 들린 꽃을 빼앗아 발로 비비고 너울을 벗겨 동댕이를 치고,

『요년, 요망한 년, 내가 죽을 날까지 기다리기가 바빠서!』

하고 발악하는 모양을, 사실도 없는 것을 보충까지 하여서 금봉을 괴롭게 한다.

『응!』

하고 금봉은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꼭 감고 마음의 고삐를 끊어져라 하고 잡아 당기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의 마음은 금봉도 모르는 사이에 비오는 날 성북동 김광진의 별장으로 달아났다. 그 침실! 그 술! 금봉은 전신이 근질근질함을 깨달았다. 에라 될 대로 되어라 하고 몸을 내어 던진 저, 술과 육욕에 취하여 음란, 그물같이 되었던 저, 에라 이러면 그만이지 하고, 좋다, 마음대로 놀아라 하던 저, 김광진과의 수 없는 포옹, 그리고 집에 돌아갔을 때에 음란한 마음이 더욱 불일듯 일어나던 것, 심상태가 온 것.

금봉은 숨이 막힐 듯이 마음의 고삐를 잡아 끌었다. 그러나 마음은, ⌜쿵, 쿵⌟하고 비웃는 코웃음을 금봉에게 던지면서 광진과의 음란의 장면 ─ 생각만 해도 전신이 땅속으로 잦아 들어갈 듯한 장면들을 금봉의 앞에 벌여 놓았다. 더구나 부처님 앞, 모두 다 정욕을 죽이고 도를 닦는 사람의 앞, 조인 광좌 중에 벌여 놓고는, 마음은,

<금봉아, 이것이 네 일생이다. 이것 밖에 무엇이 있어!>

하고 입을 삐쭉거리면서 소리를 높여, 활동 사진 변사 모양으로 설명을 하는 듯하였다.

『으흐흐.』

하고 금봉은 저도 모르는 동안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제 소리에 깜짝 놀라서 방안을 돌아 보았다. 사람들이 여전히 앉은 양이 마치 금봉이가 지른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촛불은 약간 춤을 추고 만수향 연기는 여러 모양의 커어브를 그리며 올랐다.

금봉은 다시 마음을 잡으려 하였다. 이번에는 차라리 마음에게 갈 곳을 명하려 하여 금봉의 일생 중에 가장 깨끗한 기억을 남긴 동경 ○○○학원의 기숙사로 가게 하였다.

그 기도실, 랜디스 부인, 특히 그 기도실,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화상, 감람산에서 합장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는 예수의 화상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꿇어 엎드린 제 모양, 제 자리옷 입은 모양, 제 침대, 손명규, 김광진, 아이 낳는 아픔, 제 살, 처음 동경 갈 때에 해운대 온천 목욕탕에서 제 몸의 아름다움에 취한 저, 누군지 모르게 몹시도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던 저, 불의에 저를 꼭 껴안은 손명규, 호텔, 돈 삼십만 원, 인사동 집, 남치마, 호강, 돈 없어진 부끄러움, 김광진의 사랑, 마침내 김광진의 아내 홍씨가 아이 밴 것을 시기하던 것, 아이가 떨어지기를 바라던 것, 아이를 낳다가 모자가 다 죽기를 바라던 것, 김광진의 본부인이 한번 되어 보기를 바라던 것, 누구를 시켜서 홍씨의 몸에 낳은 아들이 잠이 들었을 때에 바늘로 숫구멍을 찔러 죽이는 광경 ─ 나중에 그것이 발각이 되어서 제가 경찰서로, 검사국으로, 공판정으로 끌려 다니는 광경, 그러다가 무죄로 나오는 광경,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대에 오르는 광경 ─ 금봉은 소리가 질러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이가 으스러져라 하고 악물었다.

금봉은 이 불쾌한 기억에서 벗어날 양으로 이번에는 단상에 가만히 앉아 계신 부처님을 바라보기로 하였다.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들기를 마치 찰찰 넘는 물그릇 받들 듯하고 그 조용하고 인자하고 깨끗하고 모든 정욕에서 벗어나서 오직 따뜻한 자비심과 새말간 지혜만 있는 듯한 부처님만 바라보려 하였다.

그러나 그도 잠간이요, 붙들린 마음은 어느덧 또 요동하기를 시작하였다.

마음은 그 불상을 임학재로 변하여버렸다. 마음에 두고 만져 보지 못한 보물, 한번 시원히 제 속도 말해 보지 못한 애인. 그러나 그 임학재의 곁에는 양미간을 찌푸리고 잔뜩 짜증을 내인 강영자가 살기가 있는 눈으로 금봉을 노려보았다.

『이년! 내 남편을 왜 생각해!』

하고 강영자는 금봉을 꾸짖는다.

『이년, 내가 가지려던 서방을 왜 네년이 가져. 그 좋은 남편을 네년이 왜 못 견디게 굴어. 네년은 죽기나 하렴. 그다음에라도 내가 가지게.』

하고 금봉은 영자의 뺨을 친다. 영자와 금봉은 어울어져 싸운다.

손 명규가 어슬렁어슬렁 나선다. 히히하고 그 진저리 나는 웃음을 웃는다.

『금봉이, 내가 금봉이 서방인데 왜 딴 사내를 생각해. 임학재는 무엇이 고 김광진은 무엇이고 심상태는 다 무엇이야. 내가 모르는 줄 알고. 다 안다나, 죄다 알아. 히히.』

하고 금봉을 끌어안는다.

『어서 뒤어져. 어서 뒤어져!』

하고 금봉은 손명규를 떠밀친다.

손 명규는 향항으로 달아난다.

금봉은 손 명규가 죽었다는 전보가 오기를 기다린다.

『손 명규가 어서 죽었으면.』

하고 금봉은 김광진의 품에 안긴다.

『요년, 요사스러운 년! 내 서방 왜 빼앗어?』

하고 광진의 처 홍씨가 식칼을 들고 덤빈다.

홍씨가 든 식칼이 번쩍거리는 것이 불단 앞에 켜놓은 촛불이요, 김광진으로 보이던 것은 만수향 연기다.

부처님은 여전히 가만히 앉았다.

한승이 거의 다탄만수향자리에 새것 한 개를 피워놓고 합장하고 물러난다.

금봉은 앉은 자세를 고쳤다. 다리가 저리다. 발에는 감각이 없다. 냉수가 먹고 싶으나 참았다.

금봉은 마음의 동쌀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괴롭게 구는 일이 없더니, 오늘따라 웬일인고 하였다. 나만 이런가? 여기 앉은 사람들이 다 나와 마찬가진가?

이제부터 저만수향이 다 탈 때까지는 마음을 꼭 붙들어서 날지 못하게 하리라 하고 금봉은 치맛자락으로 무릎과 발을 잘 가리우고 몸을 똑바로 하고 앉았다.

한참 동안 금봉의 마음은 자리를 잡은 것 같았으나 또 어느덧에 고삐를 끊어 가지고 애오개 아버지의 집으로 달아났다. 낯살을 찌푸린 아버지, 앙절대는 어머니, 떼만 쓰는 바보 동생, 행악하는 김 서방과 어멈, 마당에는 머리 푼 귀신, 목 떨어진 귀신, 벌거벗은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고 날뛰는 양 이 보였다. 밖에서는 유황 냄새가 나오고 안방에서는 퍼런 불길, 아버지가 앉았는 사랑에서는 벌건 불길이 날름거리고, 올케가 있는 아랫방에는 검푸른 불길이 나왔다. 누는 냄새, 타는 냄새, 튀는 소리, 부러지는 소리. 애오개 집에 붙은 불은 온 장안에 옮아 붙었다. 사람들의 아우성, 귀신들의 날 침, 숨이 탁탁 막히는 냄새, 초록장 분홍장 두른 인사동 집이 나온다. 남치마 입은 제 모양이 대청에서 어른거린다. 금봉은 웃통을 벗고 머리를 감는다. 머리키락들이 모두 독사뱀이 되어서 머리를 물고 꿈틀거린다. 머리는 사람이요, 가슴부터 아래는 돼지 모양인 손명규가 입을 벌리고 덤비어 금봉의 젖가슴을 물어 뜯는다. 광진이가 와서 손명규를 떼밀친다.

『돈 주어, 돈 주어!』

하고 손명규가 광진에게 대든다.

『엣다!』

하고 광진이가 지전 뭉텅이로 명규의 면상을 때린다. 명규는 면상에서 피를 흘리면서 그 지전 뭉텅이를 집어서 입에 틀어 막는다. 병원이 나온다. 숙희의 병실이다. 숙희의 이불 속에서 피묻은 어린 아이가 떼그르르 굴러 떨어지더니 그것이 변하여서 조 병결이 되었다가 조병걸이 목덜미에 그 피묻은 아이가 매달리고 숙희는 전신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한길로 달아난다.

임학재의 집이다. 학재와 영자가 한자리에서 자고 있다. 금봉이가 영자를 밀어 내고 그 틈에 드러눕는다. 방안에는 거르마와 지네가 설렌다. 금봉이가 학재를 안으며,

『나는 정말 임 선생을 사랑해요.』

하고 할 때에 심 상태가 달려들어 임학재를 떼어 밀어놓고 금봉을 껴안는다. 금봉은 심 상태의 면상을 할퀴어 눈알을 뽑아 가지고 달아난다. 금봉은 순사한테 붙들렸다. 금방 금봉은 거지 노파가 되었다. 허리가 아프고 눈은 안 보였다.

『응.』

하고 금봉은 무서운 꿈에서 깨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눈을 크게 떴다.

이 모양으로 세 시간 공부가 끝나고 종이 땅땅 울 때에 사람들은 일어나 합장하였다.

금봉은 노장이 자는 방과 등을 마주 대는 구석방 하나를 주어서 거기서 자라고 하였다. 등경에는 옛날 등잔에 녹두알만한 불이 까물거렸다. 우중충한 방, 몇 천년이나 묵은 듯한 도배와 장판.

고요한 밤, 고요한 방에 금봉은 목침을 베고 모으로 드러누었다. 일생에 처음 베는 목침이라 머리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몸과 마음은 다 같이 피곤하였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어디서 뚝뚝하는 것도 같고 스스륵스스륵 뱀 같은 것이 기어 오는 것 같기도 하였다. 눈을 뜨면 반자와 벽에 여러 가지 물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중도 보이고 떠꺼머리 총각도 보이고, 희미한 광선이 이러한 환영을 만들어 내거니 하면서도 도무지 무시무시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따금 여러 십 명이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하고 일제히 염불을 하는 것도 같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것은 아마 수풀에 지나가는 바람 소리인 모양이었다.

또 어떤 때에는 우우하고 수천 명 군사가 납함을 하는 것도 같았다. 그것은 바람결 따라서 들려 오는 큰 개천의 물소리인 모양이었다.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하고 금봉은 스스로 마음을 굳게 먹으려 하였다.

그래도 어떻게 잠이 들었다가 종소리에 깬 것은 새벽 세시.

금봉은 밖에 나갔다. 별빛이겠지, 훤한 중에 사람들이 소리 없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 보였다. 어떤 사람은 머리만도 보이고, 어떤 사람은 방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에 아랫도리만 보이고, 어떤 사람은 다리는 없이 웃통만도 보이 고, 도무지 산 사람들 같지를 아니하였다.

어떤 사람이 금봉을 보고 합장하였다. 금봉도 얼결에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어떤 사람이 금봉에게 세수물을 떠다 주었다. 금봉은 합장하기를 잊어 버려서 어두운 속에서 혼자 낯을 붉혔다. 요다음에는 누구를 대하거나 합장하리라 하였다.

소금으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였다. 물이 손 끝이 저리도록 차다. 찬물은 금봉의 머리를 무척 시원케 하였다. 새벽 공기가 모시 적삼에는 추울 지경이었다.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낯을 씻노라니 어느덧 어떤 사람이 와서 세수 대야를 집어 갔다. 세수물을 버려 주는 것이다. 누가 어디 지켜 섰다가 이렇게 시종을 해주는 것인고. 금봉은 어두운 속에서 허공을 향하여 합장하였다.

이러고 있는데 또 목소리가,

『뒷간에 가시지요.』

하였다. 금봉은 어떤 사람의 등을 보았다. 그 등을 따랐다. 멀고먼 절 뒷간 이다 앞선 사람은 가끔 . 금봉의 손을 잡아서 끌었다. 그것은 위태한 곳이었다. 손은 부드러운 여자의 손이었다.

뒷간 문 앞에서 그 사람은 뒤지를 금봉에게 주었다. 뒤 보고 나는 때에는,

『손 씻으시지.』

하고 조그마한 양철통에 물을 들고 섰다. 그가 껴얹어 주는 물에 손을 씻은 뒤에는 그 사람은 수건을 금봉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또 앞서서 금봉을 인도하여 마당까지 오고는 어디로 가버리고 말았다. 금봉은 이 사람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무론 모른다.

큰방에서 종소리가 난다. 금봉은 손으로 미리를 쓰다듬고 큰방으로 들어 갔다.

어제 저녁 모양으로 둘러 앉는다. 어떤 사람이 금봉의 앞에도 방석을 놓아 준다. 노장이 입을 열어,

『헤아릴 수 없는 옛날부터 세세생생에 무명 속에 쌓아 오던 업장과 눈, 귀, 코, 입, 몸, 맘의 모든 번뇌를 불살라 버리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시방삼세에 늘 겨오신 부처님네와 보살님께 뵈와 그 가르치심을 듣자옵고 아 녹다라삼막삼보리고작 높은 도를 닦사와 등정각을 이루어 삼세 모든 중생을 건지리라는 큰 원을 발한 우리오니, 자비심이라는 부처님의 집에 들어 유화 인욕이라는 부처님의 옷을 입삽고 일체 범공이라는 부처님의 자리에 앉아 중생에게 대승의 불법을 설하게 되려면은 우리는 슬플 비자 참을 인자 부일공자로 마음을 꼭 잡아 네가 마음의 주인이 되고 마음에 끌리는 내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 모든 번뇌를 다 불사르고 마음을 고요한 물과 같이 잘 닦은 거울과 같이 만든 때에 마하반야파라밀, 일체 종지를 엇견 성 견불을 하는 것이니, 모드 큰 정진력을 발하여 이 자리에서 끝을 보고야 일어서겠다는 결심으로……』

하고는 녹탁을 한번 딱 치고 가만히 앉는다.

금봉도 마음을 꼭 붙들고 앉았다.

이 모양으로 오륙일이 지났다.

금봉은 이 생활에 좀 연단이 되어서 아홉시에 자리에 누우면 곧 잠이 들고 새벽 세시에 잠이 깨면 제발로 나가 세수도 하고 뒷간에도 가고, 무서운 생각도 줄고, 무엇보다도 지긋지긋한 허깨비와 공상도 줄어서 참선 자리에 앉 으면 마음이 조용한 때가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말은 아니하여도 이 사람들이 여기 모여서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대강 짐작이 되고, 그 규칙적이요, 말 없고 바쁘고 겸손하고 참회적이요, 경건한 생활에 흥미도 가지게 되었다. 금봉은 제 옷을 제 손으로 빨아서 밟아 입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도라지도 캐었다 그러나. 앞길이 어떻게 되나 하는 망연한 생각은 슬지를 아니하였다.

음력으로 칠월 초하루. 이날은 태허 스님이 오시는 날이다. 선암에서 비구(남자 중)들을 가르치시는 태허 대사가 초하루 보름만 돈도암에 와서 비구니(여승)들의 참회를 받고 법문을 하는 것이었다. 파라 제목자라는 옛날 법을 지키는 것이었다. 돈도암에 모인 여승들도 태허 대사를 따라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날은 장실 스님이 오신다고 해서 특별히 집과 마당을 전보다도 더 깨끗이 치우고, 또 새로 빨아 다린 옷들을 내어 입었다. 금봉도 머리를 감아 빗고 새로 빨아 다린 치마 적삼을 입었다. 또 이른 새벽에 대중과 같이 찬물에 목욕도 하였다. 무론 산에 들어 온 뒤로는 크림조차도 바른 일은 없었다.

태허 선사 올 시간이라는 아침 아홉시 반쯤해서 노장이 앞을 서고 대중이 뒤를 따르고 금봉이도 몇 걸음 떨어져서 뒤를 따라서 동구까지 나갔다. 얼 마 기다리지 않아서 나무 그늘로 회색 옷이 움직일 때에 노장을 비롯하여 일동은 마치 장관의 호령을 받은 병정들 모양으로 일제히 합장하였다. 금봉이도 그와 같이 하였다.

이윽고 중들이 쓰는 갓을 쓰고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키가 훨적 큰 노인 이 길단 지팡이를 짚은 모양이 나타나고, 그 뒤에는 역시 회색 장삼을 입은 젊은 중들이 따랐다. 금봉은 얼른 그중에 한 사람이 오빠인 현인 것을 발견하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태허 선사의 일행이 가까이 오매, 일동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태허 선 사와 뒤를 따르던 두 젊은 중도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비 온 이튿날의 일광과 공기는 심히 맑았으나 낮이 되면 더울 것을 예상케 하였다.

일동은 큰방으로 들어 갔다.

얼마 있다가 열시 종이 울었다.

부처를 향하여 정면으로 태허 선사가 앉고 그 좌우로 인현과 다른 중(그는 황씨는 아니요, 인현보다는 나이 많고 퍽 수척한 사람이었다)이 모시고 앉았다. 모일 때마다 비인 자리 하나를 남겨 놓고 거기를 향하여 절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금봉은 알았다.

다른 자리를 잡은 뒤에 노장이 먼저 일어나 태허선사의 앞에 나아가 세 번 절하고 이마를 방바닥에 대고 꿇어 엎디었다. 태허선사는 기럭지 석 자나 되는 단장 하나를 두 손으로 앞에 집고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앉았다.

노장은 이마를 땅에 붙인 대로, 지나간 보름 동안에 다들 『몸이 평안하였사옵고 서로 다투거나 계를 범하거나 하온 일은 없었사오며, 손님 한분이 오셨사오나 그 손님도 사중의 규례를 대중과 같이 지키시옵고 대중도 손님을 잘 공경하온 줄로 보았사옵니다. 소승으로 말씀하오면 아직도 그 진심(嗔心 ─ 분한 마음)을 뿌리 뽑지 못하와 꿈에 남을 원망하는 일이 있사오니, 원하옵나니 범력을 베푸시와 제도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그동안의 보고와 참회를 하였다.

태허 선사는 노장의 참회를 가만히 듣고 있더니,

『진심의 뿌리가 무엇인고?』

하였다.

『차별이옵니다.』

『차별의 뿌리는?』

『저라는 생각이옵니다.』

『저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저라는 것은 인연이 합하여 이룬 것이라. 인연이라 하면 스러질 물거품 같은 허깨비이옵니다.』

『그렇지. 강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어떤 주인 없는 비인 배가 내 배에 부 딪친다면 진심을 발하겠는가?』

『진심을 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비인 배오니.』

『그렇지. 세상의 모든 중생 나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모둔 중생이 다 비인 배가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지금 있다가, 있다가 스러진 물거품을 보고 진심을 발하겠는가?』

『우스운 일이옵니다.』

『그래, 무아(無我) 무상(無常)이라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어. 저라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이것은 내가 좋다, 저것은 내게 나쁘다 하는 차별관을 버리라신 말씀이지. 그렇게 닦게.』

하고 선사 노장더러 물러 가란 뜻을 표하였다.

다음에 일어나 신사의 앞에 나아와 절하고 엎드린 이는 나이가 삼십이 될락말락한, 외모로 보아서 상당한 가정 사람인 듯한 얼굴에 수심기가 있고 언제나 눈을 폭 내려 깔고 있는 퍽 조심성스러운 여자였다. 그는 내외간 금실은 좋았으나 시어머니와 불화하여, 없는 소리를 지어 내어서는 애매한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 분하여 시어머니 머리에 밥상을 둘러엎은 죄로 어린 자식들을 두고 쫓겨난 며느리였다. 원체 세찬 성미라 남편과 친정부모가 시어머니 앞에서 석고대죄하고 빌라는 말도 듣지 아니하고 금강산으로 달아나서 중이 되었다. 그는 남편과 자식에게 대한 그리움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몸이 꼬치꼬치 말랐고, 벌써 삼 년이 넘는 오늘날까지도 그 원심을 풀지 못하였다.

『소승은 업장이 하도 두터워 일전에도 시어머니에게 대한 분을 생각하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사옵니다. 아무리 그 분한 마음을 버리려 하와도 버려지지를 아니하오니 어찌하올지?』

하고 울었다.

『분해서 우는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웁니다.』

『시어머니께서 벌써 돌아 가셔서 땅에 묻히셨건만 그래도 분한가?』

『네? 소승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읍니까?』

선사는 잠잠하였다.

『생전에 한번만 뵈옵고 마음을 풀었더면 하는 생각이 나옵니다.』

『응,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시어머니도 마음을 푸시겠지. 불쌍한 사람 아닌가?』

『시어머니도 불쌍하십니다.』

『네가 비록 잠시라도 그를 어머니라고 불렀으니 제도해 드리지.』

『네에.』

『응, 너는 오늘 제도를 받아서 그 생각으로 마음을 닦아.』

그 여자는 눈물이 어룽어룽한 낯을 들어 태허 선사 앞에 절하고 제자리에 돌아 가서도 울었다.

다음에 일어나 나온 이는 살피가 좋고 얼굴이 좀 길고 눈이 한쪽이 작지마는, 그래도 퍽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그는 행세하는 예수교인의 가정에 자라나서 높은 학교에서 공부까지 하고 어느 학교 교사로 가 있어서 그 지방에서는 꽤 이름이 높았으나, 남편 복이 없어서 이삼차나 사랑하다가는 실연을 하고 사랑하다가는 또 실연을 하다가 마침내 어느 사내의 씨를 밴 것이 탄로되어 학교에서는 쫓겨나고 그 사내에게는 버림을 받고 어린애를 낳아서 혼자 기르다가 그것마저 잃어 버리고는 반 미친 사람이 되어서 절로 찾아 온 사람이다. 행세하는 부모와 평소에 친하던 교인들도 다 돌아 보지 아 니하므로 붙일 곳 없어서 머리를 깎은 것이었다. 그는 처음 중이 되어서는 자기의 학식이 높은 것을 믿어서 무척 교만하였고, 이따금 감정이 격하면 저를 배반한 사내들의 이름을 부르고는 저주를 하고 울었고, 몇 번이나 죽는다고 법석을 한 일도 있었다. 그는 태허 대사 앞에 절을 할 때마다 이마가 땅에 닿지를 아니하여,

『그 교만을 떼어 버려라!』

하는 호령 밑에 몽둥이로 여러 번 머리를 얻어 맞아서 근래에는 남과 같이 나붓이 절을 하게 되었고, 사내들의 이름을 부르고 날치던 미친 짓은 아니 하게 되었다.

『소승은 부처님과 시님의 하해 같으신 덕택으로 지난 보름 동안에는 전에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졌사옵니다.』

『응, 그렇지만 방심을 말어. 네 속에 들어 앉았던 탐심과 진심과 치심이 인제 겨우 나오기는 나왔지마는, 멀리 가지는 아니하고 다시 들어 갈 양으로 틈을 엿보고 있거든. 졸지 말고 꼭 지켜야지.』

『그리 하겠읍니다. 인제는 소승을 지르밟은 모든 남자들이 죄를 회개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빌겠읍니다.』

『그거 좋지 못한 생각이야. 잠시 동행하다가 갈린 사람 모양으로 아주 잊어 버리고 말지. 만날 인연이 있어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야 흩어지면 고만이지. 푸른 하늘에 구름 지나간 자욱 있던가? 부처님께서는 무엇에나 착하지 말라고 하셨지. 착이란 마음을 붙였단 말이야. 있는 것은 없어질 것, 산 것은 죽을 것임을 깨달았거든, 이렇게 믿지 못할 것에 마음을 붙였다가는 그것을 떠날 때에 번뇌가 생기지 아니할 수 있나? 몸에서 썩어 버린 때나 깎아 버린 손톱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나? 다 그런게야.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이 다 몸에서 씻긴 때와 깎아 버린 손톱이어든. 너는 정이 많아 무엇에나 정을 붙이는 버릇을 떼고 가는 구름과 같이, 흐르는 물과 같이 오거나 가거나 착하지를 말어.』

『황송하옵니다. 그러하온데 아뢰옵기 죄송한 말씀이오나 아직도 소승은 번뇌를 떼지 못하와 그러하온지, 앞으로 한번 마음에 맞는 남편한테 시집 가서 아들딸 낳고 화락한 가정을 이뤄 보고 싶습니다.』

『응, 일시에 마음에 맞는 남편은 있겠지. 일생에 마음에 맞을 남편이 있을까. 가정에 화락도 있겠지. 고생이 더 많지 않을까? 한두 번 남자를 사랑해 보았으니 그저 그것이 그것이 아닐까? 좀 더 마음을 닦아 보지.』

하고 태허 대사는 눈을 감았다.

이들 중에는 혹은 남편이 동경 유학 중에 거기서 여학생 첩을 얻어 가지고 온 것이 분하여 출가한 자도 있고, 혹은 폐병이 나서 병을 고치려고 출가한 자도 있고, 혹은 도깨비가 붙었다 하여 시집에서 쫓겨 나서 친정 부모들이 귀찮음을 떼려고 절에 데려다가 내여 버린 자도 있고, 혹은 소년에 과수가 되어 십수년 수절하다가 어찌어찌 금강산 구경을 들어 와서 그만 중이 되어 버린 자도 있었다. 그들은 태허 선사 앞에서 참회할 때에도 각각 제 소리를 하였다.

그런 중에 노장의 수종을 드는 통통하고 얼굴이 이쁘장한 어린 여승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내어 버린 아이로서, 이 노장의 손에 길린 사람이었다. 그는 필시 근본 있는 집 혈육인가 싶어 어딘지 모르게 점잖음이 있지 마는, 다만 그 눈이 너무 광채가 있어서 마치 금봉의 눈 모양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점이 있었다. 그는 참회할 때에,

『소승은 부모를 한번이라도 뵈옵고 싶사옵니다.』

하였다.

『무정하게 너를 버린 부모여든 그래도 그리운가?』

하고 태허선사가 빙긋이 웃을 때에 그는,

『사정 오죽 딱하셔서 핏덩이 자식을 버리셨을까 하면 더욱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옵니다.』

『응, 그렇지. 그렇지만 도를 닦는 사람은 부모나 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떼는 법이야. 그리워한다는 것은 마음을 붙이는 것인데, 마음을 붙이는 것은 배로 이르면 닻을 주는 것이라. 배가 닻을 주면 가지를 못하는 것이어 든. 그 닻을 다시 들기 전에는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이야. 사람이 혹은 재물에 붙고 혹은 부모, 형제, 남녀, 자녀에 마음을 붙여서 삼계화택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어든. 얘, 부모라면 어찌 한 부모뿐이겠느냐? 길가에 구는 해골이 어느 것은 네 전생 다생에 부모 아닌 채 있으며 남편 아닌 채 있을까 보냐. 사람이란 무시 이래로 항상 시집 가고 장가 들고 항상 갖은 번뇌를 하는 것이라. 너로 말해도 과거 진점겁(塵點劫)을 지나오는 동안에 딸 되기, 아내 되기, 어머니 되기를 몇 천만 아승지번을 하였거든, 생로 병사, 우비고뇌의 괴로움 속에 그 만큼 부대꼈거든, 이제 부처님 도를 배웠으니 그만 하고 나도 죽는 바다에 뜨락잠기락하는 것을 끊어 보는 것이 좋지. 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냐? 뉘라 날 때에 불행하고 싶은 사람 있으며, 뉘라 시집 장가 가고 들 때에 낙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마는, 다들 이러하지 아니하냐. 너는 산중에서 깨끗이 길린 몸이라, 세상 풍파를 모르고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같이 생각한다마는, 세상은 불 붙는 집이라, 욕심과 미워함과, 사랑함과, 질투함과 ─ 이 모든 탐, 진, 치, 삼독의 불 속에 지글지글 끓는 곳이야. 여름이 되면 남녀가 수 없이 금강산 구경을 오거니와, 다 들끓는 가마 속을 잠시라도 떠나서 맑고 서늘한 맛을 보랴고 오는 것이지. 그렇지마는 마음속에 번뇌의 불을 그냥 담아가지고 다니니 극락 세계에를 가기로 서늘할 리가 있느냐. 네가 못 본 부모를 그립게 생각하는 것도 그 불이라. 그 불을 그냥 두었다가는 네 꿈을 송두리채 태와 버리고야 말 것을.』

하는 선사의 말에 그 어린 여자는 일어나 절함으로써 알아 들었읍니다 하는 뜻을 표한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각기 참회하는 동안에 금봉은 그들이 하는 말이 다 어느 부분은 제가 하려는 말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또 제가 지나간 일 주일간 지나온 경과를 회상해 보았다.

금봉은 이곳 온 지 이삼일이 지나서부터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무서운 여러 허깨비들이 많이 스러졌다. 금봉의 마음을 하늘에 비긴다면 처음에는 폭풍우를 몰아 오려는 구름이 동으로 서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뭉게뭉게하던 것이 차차 구름이 적어지고 푸른 하늘이 드러날 때가 많아진 것 같았다. 이따금 번개와 우뢰를 머금은 구름장이 마음 하늘에 나오지마는, 가만히 보고 있는 동안에 슬슬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금봉은 번뇌의 구름이 끝나는 미래는 파랗게 맑은 무엇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 새벽 공부에는 더욱 금봉은 전에 못한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앉은 지 이십 분이나 지나서부터 아주 화평한 아무 불쾌한 기억도 떠오르지 아니 하는 순간을 경험하였고, 그후에도 잡념 ─ 그것은 대개 지나간 기억이었다 ─ 이 떠오르는 동안이 떠지고 가끔 인제는 더 떠오를 것이 없다는 듯이 한참 동안 뜸한 것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관한 것, 김광진에게 관한 것, 임학재에게 관한 것 등은 여러 번 여러 번 반복하여서 떠올랐지마는, 그것도 인제는 동안이 뜰 뿐더러, 설사 떠오르더라도 가슴이 울렁거리지 아니하고 그냥 활동 사진이나 환등을 바라보고 앉았는 것과 같이 무관심한 제 삼자적 냉정을 가질 수가 있었다. 마치 일생에 지난 것이 ─ 오래 잊어 버렸던 것까지 다 한두 번은 떠오르는 것 같은데, 오늘 아침에는 그 떠오르는 것들을 분류할 여유가 있었다. 제일 많은 것은, ⌜내가 이쁘다⌟하는 자만에 관련된 것들이요,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내가 깨끗하고 착하다 하는 자존심에 관련된 것이요,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세상 남자들이 다 나를 우러러 본다 하는 데 관련된 것이요, 그 다음에 많은 것은 마음에 들던 남자들에 관한 것 ─ 즉, 마음으로 그 남자들을 알던 기억이요, 그리고 가장 혹독한 것은 남편과 김광진과 자기와의 삼각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금봉은 혼자 부끄러웠다. 제가 미인이란 것은 혹시 그럴는지 모르지마는, 제가 깨끗하다 착하다 하던 자존심은 여지 없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고, 필경 제가 미인이란 것도 그것이 남자의 정욕을 일으켜서 내 몸의 희롱과 모욕을 끌어 오는 것 밖에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앉은 지 두 시간이 지난 뒤에 금봉은 이 잡념이 다 스러져 버린 명랑한 마음을 그리워하는 생각이 일어난 것은 금봉에게는 크게 놀라운 일이었다. 이 수많은 생각, 이루 세일 수 없는 생각들이 마음 앞에 지나가는 것이 실로 아침 창 틈으로 쏘는 볕에 보이는 티끌과 같이 많거니와, 그것들이 꼬리를 물고 찰나 찰나 간에 나타났다가 스러지는 것이 실로 기관이었다. 일생에 지난 기억이 다 지나간 뒤에는 전생 다생의 기억이 떠올라서 내 몸이 나기 전 슬픔으로 눈물을 쏟는 일이 있다는 말을 노장에게 들었거니와, 혹시 그럴 것도 같았다.

금봉더러 만일 이 자리에서 그동안 일 주일 동안의 경과를 참회하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는지도 모르고, 오늘 종일 하여도 끝이 아니 날 듯하였다.

그러나 무론 금봉은 손님이요, 학인이 아니며, 참회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금봉의 바로 곁, 그러니까 일동의 말석(석차는 이 공부에 참녜한 차례 다)에 앉은 오십이 넘은 부인의 참회가 필한 뒤에는 이 예식은 끝이 났다.

이 부인은 여자로서 할 고생을 다 하고 당할 불행은 다 당한 표본이라 할 만한 부인이었다. 그가 입산할 때에 참회한 말에 의하면, 그는 본래 돈도 있고 지체도 좋은 집 무남 독녀로 그와 같은 집에 시집을 가, 그런 뒤에는 시부모도 죽고, 친정 부모도 죽어, 남편은 유학을 다녀, 돌아 와서는 첩을 얻어, 재산은 처음에는 애국합네, 그 다음에는 실업합네, 또 그 다음에는 기미를 합네, 금광을 합네 하고 다 없이해 버려, 재산을 다 없이하고는 죽어, 손자 하나와 며느리와 살다가 며느리는 달아나, 어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받아 가지고 근근 득생하여 아들을 장가 들여, 딸을 시집을 보내, 했더니 아들은 사회운동을 한다고 나가서 소식이 없다가 옥에서 죽어, 딸은 시집 갔다가 이혼을 당하고 와서 얼마 있다가 물에 빠져 죽어, 손자를 데리고 있 다가, 손자는 네 살에 이질로 죽어, 이러고는 붙일 곳이 없어서 절로 들어 온 것이었다. 나이는 오십밖에 안되었지마는, 그 고생과 슬픔에 눈은 어둡고 어진 혼이 다 빠져서 조는지 깨었는지 모를 지경이지마는, 오직 죽은 아들, 손자를 생각하는 정신만은 분명하여서 앉았다가도 울고 섰다가도 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남들이 하는 대로 스님 앞에 절은 하였으나 말은 못하고 울어 버리고 만다.

한참이나 울다가 이 늙은 부인은,

『이렇게 도를 닦노라면 죽은 아들과 손자를 만나 보겠읍니까?』

하고 태허 대사에게 물었다.

『만나 볼 수 있지.』

하고 태허는 힘있게 말하고,

『그렇지만 죽은 아들과 손자가 눈앞에 갑자기 나서더라도 무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을 만큼 마음 공부를 한 뒤에야 볼걸. 지금 그 마음으로 죽은 아들과 손자를 만났다가는 미치지. 제일단 무서워서 미쳐. 그러니깐 마음을 잘 닦지.』

하였다.

이 늙은 부인의 참회가 끝난 뒤에 태허 선사는 소리를 높여,

『관일체법공여실상(觀一切法空 如實相), 모든 것이 비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아라.』

하는 것을 외친 뒤에 다시 평상스러운 어조로,

『내라는 것이 무엇이냐. 흙과 물과 바람과 불이 인연으로 모여서 된 이 몸뚱이냐. 며칠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흙은 흙으로, 물은 물로, 바람은 바람으로, 불은 불로 흩어져 버릴 이 몸뚱이를 세상 사람들이 내라고 하거든, 남편이라 아들이라 아내라 사랑하는 사람이라 원수라 하는 모든 사람들도 다 그런 것이 아니냐 말야. 비 온 뒤에 공중에서는 무지개를 아름답다 하 여 정을 붙인다면 어떠할꼬? 구름 속에 번뜩거리는 번개에 마음을 붙이면 어찌 될꼬? 그것이 스러질 때에 남는 것이 설움뿐이란 말이야. 인생은 무지 개 같고 인생의 부귀영화와 모든 쾌락이란 것은 번개와 같고 물거품 같은 것이 아니냐 말이지. 산 것은 죽을 것이요, 있는 것은 없어질 것이라, 이 죽을 것, 없어질 것에 마음을 붙이는 것이 인생의 번뇌의 뿌리어든.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보는 하늘 해와 달과 별들과 몇 억만 번 나고 죽고, 있고 없 고 한 것이란 말이야. 과거에 그러한 것 모양으로 미래에도 그러하지. 이 속에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마음이란 말이야 ─ 진여(眞如)란 말이고. 이 마음 자리를 찾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신 길이 즉 불도란 말이오. 다른 게 아니란 말이야. 너희들은 세세생생에 무명(無明)에 가리워서 업을 짓고는 보를 받아서 생, 로, 병, 사, 우, 비, 고, 노 속에 떴다 잠겼다 하기를 아승지겁을 하였거니와, 이제 부처님 말씀을 들었으 니 이 육취 윤회(六趣輪廻)를 끊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고해에 잠긴 일체 중생을 건질 크나큰 원을 이룰 때가 아니냐. 다들 힘써 공부해. 도란 배워서 알 것도 아니요, 들어서 깨닫는 것도 아니라, 사람마다 제 마음속에 도가 있으니 가만히 앉아 번뇌를 소멸하고 거울과 같은 도의 참 모양을 보는 것이 도를 깨치는 것이란 말이다. 도를 깨치고 나서는 시집을 가고 싶은 자는 시집을 가고 세상, 일을 하고 싶은 자는 세상 일을 하란 말이다. 이제 너희들이 할 일은 참마역을 찾아 보는 것이야.』

하고 태허 선사는 법문을 끝내었다. 일동은 일어나서 선사에게 절하고 그리고 부처님께 절하였다.

금봉은 이 모든 처음 듣는 소리,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래었다.

이날 인현은 태허에게 금봉을 데리고 산 구경시키라는 허가를 얻었다. 동 기간에 하루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인현은 금봉을 데리고 만폭동으로 올라 갔다.

금봉은 하고 싶은 말이 태산 같건마는 수도 생활이 무엇인지를 대강 짐작 하였으므로 오빠에게 어떻게 말할 바를 몰라서 잠자코 따랐다. 인현도 말이 없었다.

보덕굴(普德窟)에 올라 가서 인현은 바위에 걸터 앉았다. 금봉도 그 곁에 앉았다.

『오빠.』

하고야 그제야 금봉이가 입을 열었다.

『너 그동안 지난 말은 내게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인현의 대답이었다.

『네가 말을 아니하더라도 대강은 짐작한다마는, 만일 네 입으로 그 말을 들었다가는 내가 미칠 것 같다.』

하고 인현은 손에 든 염주를 세었다.

『오빠는 여기 늘 계시우?』

하고 금봉은 하고 싶은 제 신세 타령은 못하는 대신에 오빠의 말을 물었다.

『네야말로 어찌할 작정이냐?』

하고 인현이가 되물었다.

『난 작정 없어요. 죽는 대신 여기 오길, 오빠한테 밖에 갈 데가 없으니깐 왔지요.』

죽기나 할까 하고 금봉의 마음은 갑자기 흐렸다. ⌜벌써 내 마음이 움직이는구나 하고 금봉은 얼른 마음을 수습하였다.

『죽기는? 가만히 있기로니 죽을 때가 오면 안 죽을라고.』

『오빠는 도를 닦아서 도통을 하셨소?』

하고 금봉은 옛날 동기의 정이 솟아서 어리광 삼아 물었다. 마음 놓고 어리광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저는 어리광할 자격이 있는 몸도 아니었다. 순결한 처녀의 어리광은 귀여워도 다 떨어진 걸레와 같은 제 어리광은 징그러우리라고 생각해서 금봉은 낯을 붉혔다.

도통이 그렇게 쉽사리 『되는 것이면 저마다 하게. 마음에 번뇌를 가진 높은 수도도 안되거든. 그게 불가 말로 번뇌마라는 것이다.』

『왜 번뇌를 못 떼시우? 이왕 중이 되셨거든 다 떼어 버리지.』

하고 금봉은 돈도암에 있는 여승들을 생각하였다.

『응 나도 그만하면 많이 뗀 게지. 인제는 그래도 다른 공상은 많이 떼었 으니까.』

『그럼 아직도 무엇이 남았수?』

하고 금봉은 차차 기분이 순결하던 어린 적으로 돌아 가서 쳐녀다운 웃음을 머금고 인현을 곁눈으로 보았다. 인현의 중의 옷 입은 것이 우습기도 하였다.

『인제 남은 것은 너하고 처자지.』

하고 인현은 한숨을 쉬었다.

금봉도 웃음을 거두고 엄숙하여졌다.

『내가 누이 동생이 너밖에 은봉이도 있지마는, 은봉이는 도무지 걱정이 안되고 네게 대한 걱정은 그칠 날이 없어. 나는 그동안 두 번이나 네 집 대문 밖에를 가서 엿을 보고는 돌아 왔다.』

『네? 서울을 오셨어요?』

『응, 네 집 밖에를 갔다가는 들어갈까 들어갈까 하다가 돌아서고 말았지.』

『어쩌면!』

하고 금봉은 입을 크게 벌렸다.

『원래 중이 되는 것은 출가라고 해서 집을 아주 여읜다는 것인데, 집 생각을 떼어 놓치 못하고는 도가 안 닦아지는 것이야. 네가 보고 싶어서 인사동에 한번, 삼청동 집에 한번 어떤 아이를 시켜서 물어 보았더니 그때에는 네가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고. 그래서 병원으로 가서 앓는 너를 만나 볼까 하였더니, 병원에서 물어 보니깐 산파라고 하길래 돌아 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영영 네 생각을 떼어 버리랴고 굳게 맹세하였지마는……』

금봉은 말이 없었다.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스님 말씀이 형제간에 이렇게 그리워하는 것도 번뇌래. 이것도 해탈해야 만 된대. 무엇에나, 어디나 마음을 붙이고는 득도를 못한다는구나. 그리고 이렇게 여러 형제 중에 특별히 마음이 켕기는 형제는 전생 차생에 깊은 인연이 있는 까닭이라고. 네가 내나 여러 생을 두고 이렇게 불행한 남매가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시겠지. 아버지도 그러시겠지. 그렇지마는 인제는 지긋지긋하지 아니하냐? 이런 지긋지긋한 세상을 또 보고 또 보고 할 필요는 없지 모든 . 세상 인연을 끊어 버리고 아주 이 세 생명이 스러져 버리고 싶지 아니하냐?』

『오빠, 그런 슬픈 말씀 마세요. 젊으시고 나도 젊고 하니, 앞으로 재출발을 할 수도 있지 않아요?』

『무슨 재출발?』

하고 인현은 금봉의 말에 놀라는 듯이 금봉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지나간 한 사오년쯤은 우리 일생에서 끊어 버리고, 그 대목에서부터 인생 재출발을 할 수 있지 않아요?』

하고 금봉도 꿈꾸는 듯한 눈으로 인현을 바라본다.

『너는 아직도 인생에 무슨 소원이 남았니?』

하고 인현은,

『내 생각에는, 너도 그만하면 인생이 진절머리가 날 듯한데, 아직도 무슨 소망이 남았니?』

하고 놀라는 듯이 묻는다.

『소망이 끊어져 가지고 이리로 뛰어 들어왔는데 오빠를 이렇게 만나니깐 또 소망이 생겨요. 아직도 인생의 어느 구석에 살 만한 인생이 남은 것도 같고, 이제부터 인생길을 재출발을 하면 실패 없이 잘 살 것도 같고, 그래요. 이게 다 불교에서 말하는 허망이라는 것일까?』

하고 금봉은 웃는다.

『아마 그렇겠지.』

하고 인현도 어이 없는 듯이 웃으며,

『사람이 속아 산다는 것이 그것이지. 훈회라 윤전이라 하는 것이 그래서 생기는 것이겠지. 그래, 그러면 너는 또 손 명규하고 부부 생활을 할 작정이냐?』

하고 물으며 금봉을 본다.

『인제 어떻게 그 생활을 또 해요? 그 생활이야 인제는 벌써 막이 닫치고 말았지. 손도 나를 다시 용서할 리도 없고.』

하고 금봉은 칼부림을 하던 손명규를 생각한다.

『손 명규는 소식이 있니?』

하고 인현은 안 물으려던 것을 묻는다.

『서울 왔어요.』

하고 금봉은 한숨을 쉰다.

『왔어?』

『응.』

인현은 그다음 말을 듣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오빠, 더 묻지 말아요!』

하고 금봉은 몸을 한번 떨며,

『오빠, 나는 간통한 계집이야요. 남의 아내면서 다른 사내의 아이를 낳은 계집이야요. 손 명규가 나를 칼로 찔러 죽이더라도 살인도 안될 그런 년이 야요. 그러니깐 자식도 버리고 도망해 나왔지요. 말이 그렇지 내가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어서? 한강에 나가 빠져 죽으려다가, 그래도 죽더라도 오빠 나 한번 더 뵙고 죽을 양으로 이렇게 왔지요. 그러니깐 오빠한테도 용서를 못 받을 년이야요.』

하고 금봉은 매우 흥분한다.

인현도 금봉의 말을 들으매, 숨이 빨라짐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고 인현은 앉았던 데서 일어나서 마당으로 거닐면서 마음을 잡으려 하였다. 오래 눌렸던 금봉을 위한 울분한 마음이 불끈 일어나려 하였다. 칼을 들고 손명규와 김광진을 찌르려 하였다. 한참만에 인현은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여 가지고 다시 금봉의 곁에 와 앉았다. 금봉은 자기가 인현의 마음을 괴롭게 한 원인인 줄 알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금봉아.』

하고 인현은 여무지게 불렀다.

『네?』

하고 금봉은 미안한 듯이 인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내 네 말을 더 묻지도 아니할 테니 너도 그 생각을 더 하지 말고……』

하고 잠깐 말을 끊었다가,

『네야말로 아주 중이 되어 버려라.』

하고 위협하는 듯한 눈으로 누이를 보았다.

금봉은 인현의 눈이 무서웠다. 그러나 그 무서움 속에는 지극한 애정이 사 모친 것을 보았다.

『오빠가 하라는 일이면 무엇이나 할 테야요. 다른 오빠 같으면 나 같은 추악한 죄를 지은 년을 동생이라고 돌아 보기나 하겠어요? 나도 오빠가 어떻게 나를 극진히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줄은 알아요. 오빠 말씀대로 하겠어요.』

『그럼, 오늘 절에 돌아 가서 머리를 깎고 한 백일 작정하고 참회 기도를 하여라.』

『네.』

『분명히 그렇게 할 테냐?』

『네, 오빠가 하라시는 대로 해요.』

『그래, 그게 옳지.』

하고 인현은 눈을 감고 혼잣말로,

『그 밖에 길이 없어. 또 그게 가장 좋은 길이고 ─ 그래 그러기로 해.』

하고 그는 눈을 번쩍 뜨며 일어섰다.

인현은 금봉을 데리고 선암으로 올라 왔다. 그렇게 험한 길이언마는 금봉은 인현에게 끌려서 힘드는 줄도 몰랐다.

금봉은 이렇게 깨끗한 사랑 속에 도를 찾아 가는 것이 기뻤다. 마음에 정 선이나 아담이가 어른거리지 않음은 아니지마는, 그래도 마치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더러움을 다 벗어 버리고 하늘로 올라 가는 듯한 가뜬함과 기쁨을 느끼었다.

파랗게 머리를 깎은 제 모양이 눈앞에 얼른 보일 때에 금봉은 우뚝 서서 제 장래를 처량하게 바라보았다. 산마루에 올라 서니 하늘에 닿은 봉우리에 위태하게 달린 선암이 보였다.

『어머나,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사우?』

하구 금봉은 금방 굴러 내릴 것만 같은 선암을 보고 놀래었다.

『왜?』

하구 인현은 뒤를 돌아 보았다.

『여기서 바라보기만 해도 핑핑 돌아요. 저 천야 만야한 비탈로 송두리채 굴러 내려갈 것 같은데.』

하고 원통골 바다에 물 흐르는 것이 하늘 높이 뜬 흰 구름 줄기 같은 골짜기를 내려다 보면서 금봉은 무서운 듯이 인현의 팔을 잡고 바싹 제 몸은 인현에게로 붙였다. 강선대 꼭대기에 송낙을 너슬너슬 단 뼈만 남은 늙은 향나무들이 푸른 하늘을 찌르고 섰다. 선암 뒤 벼래에서 사람들이 어물거리는 것이 허깨비같이 보였다.

『하늘 반공에 뜬 것 같애.』

하고 금봉은 또 한번 감탄한다.

『이런데 올라와야 세상번뇌가 좀 멀어지지.』

하고 인현은 암자를 향하여 합장하였다.

『그런데 저 담벼락 같은 비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수?』

『수미임 넘어가는 길을 닦노라고 그런단다.』

『저 꼭대기에 또 암자가 있수?』

『수미암이란 것이 있지. 칼날 같은 등성이를 넘어가서, 금강산에서는 제일 꼭대기 암자지. 원효(元曉)라는 신라 적 중이 영랑 선인을 득도시킨 데 란다 야운 . (野雲)조사라고. 이 선암이란 데는 박 빈(朴彬)이라는 거지가 도를 닦아서 육신으로 하늘에 올랐다는 데구.』

『하늘에?』

『그럼, 하늘에 올랐다고.』

『후후후후.』

『왜 웃니?』

『오빠는 박 빈 거사가 하늘에 오른 것을 믿수?』

『남 올랐다는데 안 올랐다고 할 것은 있나?』

『흥흥, 그렇긴 그래.』

선암은 텅 비었다. 사람들은 다 길 닦으러 나간 것이었다.

마당은 좁지마는 역시 깨끗이 쓸어서 빗자국이 곱게 나고 들에는 모두 곱게들 옷이 입혀 있었다. 집은 낡았지마는 깨끗이 거둔 것이 돈도 암보다 더 한 것 같았다.

『퍽은 깨끗해. 깨끗한 것 하나는 좋아.』

하고 금봉은 사람 없는 것을 다행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인현을 보고 중얼거렸다.

『정불국토(淨佛國土)라고 부처 될 땅을 깨끗이 한다고 해서 불가에서는 무엇이나 개끗한 것을 숭상한단다. 자주 쓸고 훔치고 부시고 빨고, 누더기 라도 때가 묻어서는 못 쓴다는 것이어든.』

『그것이 옳기는 옳아. 그런데 빨래들은 누가 하우?』

하고 금봉은 이 사내들만 모여 사는 나라의 일이 궁금하였다.

『저마다 제 것은 제가 하지.』

『떨어지면 꾸어매기는?』

『다 제가 하지. 옷감 바꾸어다가 새로 짓는 것도 제가 하고.』

『오빠 입으신 것도 그럼 오빠가 지으셨수?』

『그럼.』

금봉은 인현의 옷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딴은 이 따위로나 바느질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하리라 하는 것이었다.

『솜옷도 제가 뒤집구?』

『그럼. 중의 옷이란 두 벌 뿐이어든. 솜바지 저고리 두 벌이면 고만이어 든. 봄이 되면 솜을 뽑으면 겹옷이요, 여름이 되면 아팎 거죽 뜯어 놓으면 고의적삼 두 벌이 되지 않느냐. 한 벌 빨래에는 한 벌 갈아 입고. 그러니깐 중의 등에 걸머지는 바랑 하나면 고만이야. 세간이 그것뿐이어든.』

『다들 먹기는 어떻게 먹어요?』

『먹다니?』

『아니 돈이 어디서들 나느냐 말야요.』

『응, 동냥해다가 먹지. 다른 중들은 다 제 재산이란 것을 가지지만 여기 있는 학인들은 다 동냥을 해먹어. 인제 한 이십일 지나면 해제가 되어서 모두 겨울에 먹을 것 동냥하러 가지.』

『오빠도 동냥 다니셨수?』

『그럼.』

『어머나! 오빠가 동량을 다니셨어?』

『그럼. 너도 중 되면 동냥 나가야지.』

『땡땡이 중만 동냥 다니면서?』

『동냥 다니는 것도 공부다, 공덕이구.』

『동량이 무슨 공부요?』

『인욕 공부, 참는 공부.』

『동냥 가면 잘들 주우?』

『잘들 안 주니까 공부가 되지. 아무리 사람들이 푸대접을 하고 욕을 하고 놀려먹더라도 성도 안 내고 오직 자비심으로 참는 공부가 된단 말이다. 참 더라도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유화하게, 부드럽게 참아서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단 말야.』

『참는 공부……』

하고 금봉은 땅을 들여다 본다.

금봉은 제가 고깔을 쓰고 바랑을 지고 염주를 목에 걸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중 동냥 왔읍니다.』

할 것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그리고 공부라는 것은 그저 앉았는 게요?』

하고 금봉은 또 인현에게 묻는다.

『그럼. 네가 돈도암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지』

『그렇게 앉았노라면 도통이 되우?』

『그런다고 그러지.』

『도통이 되면 어떤구?』

『그게야 도통을 해보아야 알지. 서울 가지 않고야 서울이 어떤 것인 줄을 알 수 있나?』

『도통이 되면 마음이 편안한가?』

『그렇다고 그러지.』

『그래 여기는 몇 분이 계시우?』

『여남은 되지. 더 된 때도 있고.』

『다들 왜 중이 되었나요?』

『가지각색이지. 화 나는 일이 있어서 중된 사람도 있고, 중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도 있고, 정말 인생의 진리를 알아 보려고 된 사람도 잇고, 나같이 세상을 비관해서 된 사람도 있고.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대학 출신도 셋인가 있고 예수 믿던 사람도 있고, 또 몸에 병이 있어서 병 고치러 왔다가중된 사람도 있고, 부자집 자식도 있고 ─ 』

『아참, 오빠 친구 그이는 어떻게 되셨수?』

『황?』

『응, 그이.』

『저의 집에서 찾으러 와서 붙들려 갔지.』

『그때에 오빠가 달아나셨다고 해서 은봉이 황씨 집엘 갔더라우. 갔더니 오빠가 자기네 아들 후려 데불고 갔다고 야단 법석이 났더래. 사방으로 사 람을 보내구.』

인현은,

『너 여기 앉아 있거라. 물이 먹고 싶거든 저기서 큰 바위 밑에 우물이 있으니까 떠 먹어. 나는 저기 길 닦이 하는 데 가보아야겠어. 일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중간에는 빠지지 못하는 법이니까, 아직 두어 시간은 기다려서야 우리 스님이 오실 게다. 거기 있어.』

하고 가버리고 만다.

금봉은 혼자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수없는 봉들과 거기를 감도는 구름들을 바라보았다.

금봉은 문득 자기 세간들과 삼충장 속에 채곡채곡 지어 넣은 옷들을 생각 하였다. 그것이 아깝고 그리웠다. 거기는 조선옷도 있고 양복도 있었다. 그 옷 중에 어떤 것에는 여러 가지 쓰고 단 기억들이 붙어 있었다. 그 옷과 함 께 두고 온 세상이 아깝기도 하였다. 젊은 남녀가 사랑하는 쾌락을 덜 본 것도 같았다.

이런 뒤숭숭한 생각은 집어 치우자 하고 금봉은 인현이가 가르쳐 준 바위 밑에 물을 먹으러 갔다.

그 바위도 금시에 굴러 날 듯한 바위였다. 물을 떠 먹는 동안에 그 바위가 굴러 나서 저를 덮어 누를 것같이 위태위태하였다. 이 순간에 금봉은 ⌜죽음」의 무서움을 느꼈다.

금봉은 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나무로 판 바가지를 들고 물을 뜨려고 샘가에 허리를 구부렸다. 물 속에는 금봉의 그림자가 있었다. 오래 못 보던 제 얼굴! 그것은 마치 평생에 처음 보는 사람과 같았다. 불과 일 주일 간 거울을 대한 일이 없었건만, 분도 안 바르고 웃음도 표정도 없는 그 얼굴, 그것은 마치 자기가 죽어서 어느 다른 곳에서 보는 제 얼굴과 같았다. 금봉은 바가지를 든 채로 무서운 것을 피하는 듯한 걸음으로 뒤로 물러섰다. 금봉은 물에 비치었던 그 얼굴이 인제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벌써 잊혀진 얼굴임을 느꼈다. 이 얼굴을 보면 누구나 무심코 보고 말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하던 옛날 자신은 없었다.

금봉은 금시에 굴러 내릴 듯한 바위 밑, 맑은 샘물가에 서서 더할 수 없는 외로움을 깨달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부끄러움과 슬픔을 품고 홀로 섰는 혼 하나 ─ 그것이 제 모양이었다.

<어디로 가나?>

갈 곳은 없었다. 누구를 찾나. 찾을 사람도 없었다. 죽어 아깝다 하고 생각할 사람도 없었다. 앞도 절벽, 뒤도 절벽, 금봉은 비켜설 곳도 없는 몸이었다.

큰 바위가 움직움직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이 목숨을 끊어 버릴까? 앞날을 무엇에 붙여서 살아 가나? 머리를 깎고 이 산중에서 염주를 세기로니 망망한 남은 일생이 너무 오랠 것 같았다.

다람쥐가 안심코 달려 오다가 금봉을 보고 우뚝 서며, 꼬부린다. 한참 금 봉을 바라보고 앉았다가 오던 길로 가버리고 만다.

<어떡허나?>

하고 금봉은 비쭉비쭉 울고 싶었다.

<새파랗게 머리를 깎고 다람쥐 모양으로 산중에 숨어 살까?>

하고 흰 구름을 썼다 벗었다 하는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또 집에 두고 나온 어린것들과 세간과 옷들이 생각힌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금봉이와는 인연이 다 끊어진 멀고멀리 떠난 물건이었다. 산과 구름만이 금봉의 몸에 바싹바싹 다가 드는 것 같았다. 식어져야 할 마음은 여전히 불 같건마는, 금봉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하여 물을 떠 먹고 다시 암자로 올라 와서 혼자 툇마루에 앉았다. 떠가는 구름장 그림자가 마당을 덮었다가 지나가고 만다.

금봉은 산과 구름을 바라보는 것도 진력이 나서 제 손을 펴도 보고 만져도 보았다. 고운 손이었다. 좀 수척하였지마는 아직도 손가락을 곱게 보일 만 한 지방은 있었다. 그리고 봉숭아꽃 물을 들인 듯한 불그레한 손톱의 아름다움도 여전하였다.

팔자가 세리라 과부가, 되리라, 생이별을 하리라 하던 손금도 들여다 보았다. 그럴 때에 문든 순이 어머니의 거칠은 손을 생각하였다.

<아무것도 인생에 쓸 데 있는 일을 해본 일이 없는 손이로구나.>

하고 금봉은 한손으로 다른 손을 꼭 쥐었다.

금봉은 제 손으로 하여 본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생각 나는 것이 손바닥에 분을 개어서 얼굴에 바르던 것이었다. 금봉은 무심코 두 손으로 제 뺨과 이마와 코를 만졌다. 마치 화장을 하는 모양으로. 뺨은 보드라 왔다. 입술에 약간 조같이 일었을 뿐이었다. 콤팩트가 생각이 났다. 입술에 바르는 연지, 눈썹에 바르는 검정이, 향기 강한 향수, 이런 것들이 생각이 났다.

『경대 서랍에……』

하고 금봉은 잠꼬대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마장판이 생각이 났다. 흥중, 백관 만관, 이런 생각이 나고, 마음대로 잘 맞아 나오는 것, 도무지 안 맞아 나와서 애가 타던 것, 이 따위 ─ 두 손가락으로 가느단 포도주 잔대를 들던 것이 생각힌다. 그리고는 곧 뒤를 이어서 제 손이 기름 바른 김광진의 머리를 만지던 것, 이 따위 ─ 금봉은 두 손을 무릎 밑에다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손 생각은 다시 아니하리라 하였다.

<간호부나 될걸.>

하고 금봉의 질서 없는 생각이 계속된다. 뭇사내들, 더러운 것이란 더러운 것은 다만지는 간호부의 손이 그리웠다. 그 손은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주사를 주고, 고약을 바르고, 퍽으나 친해 보이던 간호부가 금봉에게는 무척 거룩해 보였다. 제사회사의 손등 터진 여직공, 방직 회사의 실을 잇는 여직공, 겨울에 설겆이하는 식모들, 빨래하는 빨갛게 언 손들. 금봉은 무릎 밑에 넣었던 손을 다시 꺼내어 보았다. 왼손의 둘째, 셋째 손가락 끝에 담뱃진으로 노랗게 되었던 것이 인제는 거의 다 벗어졌다. 금봉은 그 두 손가락을 코에다 대고 킁킁 맡아 보았다. 구수한 해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금봉은 담배 생각이 나서 입맛을 다시 고침을 두어 번 삼켰다. 근래에는 머리맡에다가 담배와 재떨이와 성냥을 놓았다가 눈이 번쩍 뜨이기만 하면 먹던 담배다.

마장, 담배, 술, 육욕 ─ 금봉은 제 몸이 온통 그것으로 밴 것 같았다. 그리고도 고운 모시 치마 적삼, 피까지도 뼈 속까지도 냄새 나는 더러운 것으로 꽉 찬 것 같았다.

『깨끗, 청정.』

하던 법문 이야기가 생각한다.

서 정희의 기도하는 모양이 생각힌다.

심상태, 김광진, 조병걸, 최형식, 손명규, 아버지, 기타 누구누구.

모두 담배와 술과 돈 욕심, 육욕, 교만, 음모, 시기, 뒷공론.

임학재만은 안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강영자, 을남이, 숙희.

<예수를 그냥 믿고 갈걸. 기도를 늘할걸.>

<모두 다 허사다.>

금봉은 불쾌한 뉘우침으로 몸을 비틀었다.

금봉의 젖이 지는 것 같아서 젖을 만져 보았다.

그렇지만 인제는 젖도 말라붙었다. 아담이가 오물오물 젖을 빨던 것이 생각혀서 금봉은 안감힘을 쓴다. 정선을 구박한 것이 뉘우쳐진다. 지금은 어미를 잃고 어떻게나 사는고? 침모마저 잃으면 어디다 붙어 살꼬.

침모는 참 얌전하였다. 별로 종교도 철학도 없는 모양이지마는 별로 불평은 없이 밤낮 바느질을 하였다.

어디 청승맞은 데가 있나, 궁기가 있나 하고 침모를 바라보면서 궁리하던 것을 생각한다. 얌전하고 알뜰한 것이 청승이라고 결론하던 것도 생각한다.

그는 연애를 하려는 욕망도 없는 것 같았다.

<연애!>

금봉은 웃입술과 아랫 입술을 번갈아 빨았다.

<정말 사랑은 못해 보았다.>

하는 결론을 얻을 때에 금봉은 놀랐다.

<한번 잘 사랑을 해보았으면 임학재하고 한번 잘 사랑을 하고 살아 보았으면.>

하고 금봉은 몸에 경련이 일 듯이 떨렸다. 숨결이 찼다. 전신의 모든 신경 과 선이 다 불끈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전신에 있던 맥이 다 풀려 나가는 것 같았다.

<모두 허사다.>

하고 금봉은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다리가 쏙쏙 쑤시고 어깨가 아팠다.

<머리나 깎자. 머리나 깎자.>

하고 그렇게 하루에도 쓰다듬던 머리를 만져 보았다. 손명규가 그렇게도 탐내던 머리다. 금봉은 머리카락 몇 올을 끌러서 눈앞에 대었다가 입에 물고 빨았다. 그것은 아무 맛도 없었다. 금봉은 혀로 머리카락을 뱉아 버렸다. 침에 젖은 머리카락은 금봉의 뺨에 찰딱 붙어 버리고 만다.

머리 『 깎고 이것 다 벗어 버리고 거기서 새 길을 찾자.』

하고 금봉은 치마와 적삼을 쥐어 뜯는 모양을 하였다.

금봉은 한번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고 벌떡 일어나서 침침한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금빛 나는 부처님이 가느스름한 눈으로 금봉을 바라보았다.

금봉은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퉁퉁퉁퉁하고 뒤꼍에서 사람들이 내려 오는 소리가 들렸다.

옷에 땀이 배고 이마에도 땀이 흐르는 중들이 태허 대사의 뒤를 따라서 절 마당에 들어 서더니 일제히 부처님을 향하여서 합장을 하고 허리를 굽힌다.

이날에 금봉은 머리를 깎았다.

(一九三四 年二月 十八日 [일구삼사년 이월 십팔일] ~ 三五年九月二十六日[삼오년 구월 이십육일] 朝鮮日報[조선일보] 所載[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