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금융·경영/부문관리의 이론과 실제/독일의 경영학/독일 경영학의 발전과정과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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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영학의 발전[편집]

독일 경영학의 발전 경위[편집]

獨逸經營學-發展經緯

독일 경영학은 일반적으로 보자면, 3개의 역사적인 지식의 원천을 갖고 있다. 상업학 및 상업경영학·공업경영학이 그것이다. 이들 3개의 지식체계가 독일 경영학의 전사(前史)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제 대공업의 대두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제 대공업의 대두를 계기로 하여 통합화의 길을 걸어, 드디어 20세기의 초엽에 바이어만(M. Weyermann), 쇠니츠(H. Sch

nitz), 니클리슈(H. Nicklisch) 등의 연구를 거두어들이기에 이르러 독일경영학의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고비로 하여, 이 학문의 성격을 둘러싸고 현재까지 이미 제1차·제2차·제3차에 걸쳐 격렬한 방법논쟁이 전개되었다.

제1차 방법논쟁[편집]

第一次方法論爭

제1차 방법논쟁은 1912년의 바이어만·쇠니츠에 의한 과학적 사경제학(wissenschaftliche Privatwirtschaft­slehre)의 주장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오래된 상업학의 전통 위에 서는 기술론적 경향을 비판하고 존재의 이론으로서의 사경제학을 설파했으나, 이에 대해서 슈말렌바흐(E. Schmalenbach)는 사경제적 기술론(私經濟的 技術論:privatwirtschaftliche Kunstle­hre)을 주장하여 경제적 처리의 합목적성의 고찰을 문제의 중심에 두어 반론(反論)하고 있다. 당시 슈말렌바흐의 주장에는 셰어(J. F. Schar)가 찬동하고 있고, 바이어만·쇠니츠의 견해는 니클리슈(1期)나 슈미트(F. Schmidt) 등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이윽고 제1차 세계대전에 접어들어 연구는 중단되었지만, 전후(戰後)에는 독일경제의 혼란과 부흥의 문제를 배경으로 하여 경영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특히 전후의 10년간에는 사경제적 기술론이 눈부신 성과를 올린 시기이며, 마치 슈말렌바흐 시대를 방불케 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 동안에 과학적 사경제학은 별로 특기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

제2차 방법논쟁[편집]

第二次方法論爭

그후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10년간(세계공황 후의 10년간)에는 니클리슈 경영경제학이 완성되어, 이를 둘러싸고 새로운 방법논쟁(제2차 방법논쟁)이 전 되었다. 그 도화선은 리거(W. Rieger)의 수익성의 원리에 뒷받침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순수과학으로서 사경제학(私經濟學)의 주장이며, 그 비판은 니클리슈를 정점으로 하는 규범적 경영경제학과 슈말렌바흐에 의해 대표되는 사경제적 기술론을 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자의 입장에서, 쇤플루크(F. Sch

npflug)가 경제성의 원리에 뒷받침된 경영경제 개념으로서 대항하고 있으며, 그의 리이거 비판은 지극히 치밀한 바가 있었다. 그의 주장에는 프라이저(E. Preiser)가 동조하고 있다. 후자의 입장에서는 지버(E.H. Sieber)가 수익성의 원리에 동조하면서도, 그 순수과학설에는 기술론으로서 반(反)비판을 가하고, 울리히(H. Ulich)도 이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 경영학과의 교류도 성해져서 독일 경영학은 차츰 발전하였는데, 슈말렌바흐 이래의 전통적인 사경제적 기술론, 즉 기술론적(技術論的) 경영경제학이나 사경제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기업경제학, 그리고 거기에 규범적(規範的) 경영경제학이 병존하여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기업경제학은 주로 국민 경제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발전되어 온 것으로, 그 연구성과를 흡수하여 1951년에 구텐베르크(E. Gutenberg) 경영경제학이 이룩되고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제3차 방법논쟁[편집]

第三次方法論爭

경영경제학이 순수과학이며 경제학의 부분영역이라 주장하는 이 구텐베르크 학설에 대하여, 기술론적 경영경제학을 대표하는 멜레로비츠(K.Mellero-wicz)가 경영경제학의 실천적인 성격을 주장하여 수학적 방법의 추상성 및 그에 의해서 초래되는 경제학과 경영학의 혼동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리하여 제3차 방법논쟁이 경영경제학에 있어서의 과학과 실천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1952년부터 1954년에 걸쳐 정점을 이루면서 서독 경영학계가 총동원된 형태로 화려하게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논의는 경영에 있어서의 인간의 문제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멜레로비츠의 주장에는 슈말렌바흐·하크스(K. Hax)·하제나크(W. Hasenack)가, 구텐베르크의 주장에는 셰퍼(E. Schafter) 등이 각각 동조하여 이 논쟁을 화려하게 하고 있다.

제3차 방법논쟁이 일단 종결된 다음에는 규범적 경영경제학은 후퇴하여, 당분간은 구텐베르크의 순수이론적 경영경제학과 기술론적 경영경제학이 독일 경영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지만, 최근에 이르러 구텐베르크설을 타고넘은 논리실증주의 입장에서는 의사결정지향적 경영경제학(entscheibungsorientierte Bertriebsrwirt­schaftslehre)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에서 발전된 조직론을 독일 나름으로 재편성한 것이며, 이제 독일 경영학에 있어서의 일대조류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인다.

독일 경영학의 원천[편집]

상업학 및 상업경영학[편집]

商業學-商業經營學

독일 경영학은 일반적으로 우선 상업학 및 상업경영학의 과학화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상인의 수기(手記)나 상업에 관한 저술 등은 오래 전부터 눈에 띄지만 실무적인 지식을 제공함에 그치는 것이며, 관방학자(官房學者)들의 상업에 관한 저술도, 17∼18세기에 있어서의 상업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저술가인 마르페르거(P. J. Marperger)의 연구도 이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뒤 상업에 관한 여러 연구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 18세기에 나타나고 있다. 즉 루도비치·로이크스 등의 연구가 그 것이다.

루도비치[편집]

C. G. Ludovici

루도비치는 5권으로 된 『상인대학교 또는 완전한 상인의 렉시콘 』(Er

ffnete Akademie der Kaufleute oder Vollstandiges Kaufmanns Lexicon)의 제5권 부록(1∼3부)에서, 상업학에 관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그는 그 속에서 사상업(私商業)을 대상으로 하는 상인학(Kaufmannswissenschaft)을 주장하고 있으며, 상품지(Waarenkunde)·상업경영학(Handlungswissenschaft)·부기(Buchhalten)의 3부문으로 구분하여 이를 논하고 있다. 이들 3부문이 상인적 주요과학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에서 특히 상업경영학이 주목된다. 거기서는 농촌 및 도시 주민의 욕구충족과 상인의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① 상영업(商營業)이 상업 그 자체, ② 그 경영에 필요한 사람, ③ 그 때문에 필요하고 쓸모있는 보조수단으로 나누어 상론(詳論)하고 있다.

그의 이 연구는 발달한 도구(道具)에 의한 수공적(手工的) 생산양식을 기초로 하여 나타난 상영업이 대상이었다. 그 뒤 상업학의 저서는 허다하게 간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계의 발전에 의한 수공적 생산에서 공장제 공업생산으로서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로이크스의 연구는 유명하다.

로이크스[편집]

J. M. Leuchs

로이크스는 그의 저서 『상업의 체계』(System des Handels)에서 사(私)상업학에 해당되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배급계층에 속하는 상인의 영업이 상업이며, 이를 아 프리오리로 보면 상업학(Handelswissenschaft)이 성립한다. 이 상업학에서 국가상업의 부분을 제외한 것이 사상업학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의 사상업학에서는 상업은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상품의 판매가격의 결정, 매입·판매속도·대금회수·대금지불 등의 문제나, 판매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시장예견(市場豫見)에 의한 시장개척의 여러 가지 방안 ― 여기서는 루도비치의 연구가 계승되고 있다 ― 이 풀이되고 있다. 나아가 거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의 필요성에서 부기론, 통신교통론, 기타의 서류론(書類論)과 같은 사무관리의 문제까지도 거론하고 있다. 부기론에 있어서는 계산개념이기는 하지만 상업자본의 개념도 등장하고 있다. 이 로이크스의 사상업학은 그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뛰어난 상업경영학적 연구였다.

공업경영론[편집]

工業經營論

19세기에는 산업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이와 함께 상업경영의 활동영역도 점점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세기는 상업학적 연구가 침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즈음에는 독일 국민경제학이 점차로 그 체계를 갖추고 상업학적 연구의 내용이 이에 흡수되어 버려서 상업학의 중심문제는 경영기술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은 공장제공업의 발전을 기초로 하는 것이므로 공업경영에로의 관심은 점차 높아졌다. 19세기 후반에는 공업경영론이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에밍하우스(A. Emminghaus)·레들·칼메스 등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에밍하우스[편집]

A.Emminghaus

에밍하우스는 『일반공영업론』(一般工營業論:Allgemeine Gewerkslehre)에 있어서, 일반공영업론을 일반경제학과 구별하여 사경제(공업경영)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사경제학임을 주장하고 있다. 사경제의 목적은 화페이윤의 획득에 있으며, 그것은 자본(생산수단)과 노동(기업가 및 공장노동자의 노동)을 소비함에 의해서 얻어진다.

여기서 공영업의 계산적 파악의 필요성을 논하고 그 수단을 부기(簿記)에서 찾고 있으나, 당시는 노사(勞使)의 대립이 격화하고 사회문제로 되어 있던 현실을 포착하여 이윤획득에 대한 기업가의 전제(專制)를 나무라고, 도덕적인 문제에도 언급하여 정책론적인 색채를 짙게 하고 있다.

그 뒤 공업경영론은 비슷한 사회적 기초를 배경으로 하여 한동안은 기업가측에서 노사대립의 완화방안을 향하여 전개되었고, 부르카르트(J. J. Bourcart), 뢰스키(E. Roesky) 등의 연구가 보였으나, 금세기의 전환기에는 공업경영론은 이와 다른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레들·칼메스의 연구가 그것이다.

레들[편집]

E. Redle

레들은 그의 저서 『공기업(工企業)의 조직과 관리의 제요소』(Elemente der Organisation und Administration industrieler Unternehmungen)』에서 조직과 관리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공기업은 자본의 지배하에 있어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성과를 생산한다. 거기에 자본가적 조직이 엿보인다. 이 조직은 여러 경영활동을 권한과 책임을 지닌 개개의 기관에 분할하는 계획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의 조직론은 법률적 근거에 의하는 바가 많고, 오히려 관리론이 그의 논의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으며, 특히 코스트의 문제나 임금론 등이 주요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제조원가·판매가격·사용가치 등을 상세히 논하고, 노사관계를 상정한 생산고(生産高)지불제를 다루고 있으나, 계산론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에밍하우스와 비교해 보자면 계산적 파악에 초점이 옮겨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칼메스[편집]

A. Calmes

칼메스도 레들과 같은 경향을 거쳐 『공장경영』(Fabrikbetrieb)을 1906년에 발간, 공기업의 사경제적인 최대한의 이윤획득에 대한 구매활동·생산활동·판매활동 등의 제활동을 계획적으로 결합한 경제조직에 관하여 논하고, 아울러 관리문제에 관심을 보여 그 속에서 조직과 회계제도와의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지적하고, 회계제도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리하여 공장부기·원가계산에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는 것이다. 그의 공업경영론은 계산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관리기술적인 연구에 그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에밍하우스에서 본 경영의 사회형태의 고찰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 경영학에 연결됨에 반하여, 칼메스 등의 계산적 사고방법은 독일 경영학의 성립기에 관련을 갖는다.

사경제학[편집]

私經濟學

상업학 및 상업경영론은 경제학으로서 편성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발달한 경제학은 이를 제쳐놓고 상업경제론을 부분원리로서 고찰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자본가적 공업경영의 발전은 경제학에서는 해명할 수 없는 문제를 초래케 했으며, 에밍하우스·레들·칼메스 등의 공업경영론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것이 경제학이고자 할 때에는 에밍하우스와 같은 사경제학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상업경영론이 경제학이고자 한다면, 사경제학에 결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업경영의 발전은 당연히 상품의 유통을 팽창시켜 상업경영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하여, 당연한 사실이지만 중등상업교육이 성행하고, 그것을 위한 상업교육자가 필요하게 되고, 한편 상업활동의 활발화·복잡화는 종래보다 더욱 고도의 상(商)지식을 몸에 지닌 실무자를 필요로 하였다. 그리하여 여기서 '고등상업학교'가 설립되고, 그 중심에는 '독일상업교육협회'가 설립되었다. 이리하여 고도의 지식을 몸에 지닌 실천가나 상업교육자를 양성하기 위해, 우선 1898년에 라이프치히 및 아헨의 고등상업학교(Handelshochschule)가 설립되고, 이후 1901년에는 쾰른 및 프랑크푸르트에, 1906년에는 베를린에, 1908년에 만하인, 1910년에 뮌헨 등등 각지에 다투어 고등상업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와 함께 과학적 상업경영학이 요청되고, 에렌베르크(R. Ehrenberg)·뵈메르트(B

hmert)·셰어(J.F. Schar) 등이 그 중심에 섰다.

이러한 사정하에서 곰베프크(L. Gomberg)나 셰어의 사경제학에 연결되는 상업경영론이 편성되기에 이른다. 사경제학의 역사는 오랜된 것으로, 관방학(官房學:Kameralwissenschaft)에 사경제학적 지식이 포함되어 있고, 19세기 전반(前半)에 있어서 관방학이 경제학으로 전화(轉化)되고, 그 경제학의 체계 속에서 사경제학의 지위가 인정받고 있다. 독일 경영학의 발전은 이 사경제학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사경제학을 주장한 사람은 에렌베르크이며, 그 출발점을 사경제의 모든 경과가 기록되어 있는 부기(簿記)에서 찾고, 사경제학이 국민경제학의 불가결한 전제임을 설파하고 있다. 나아가 곰베르크의 『상업경영학과 개별경제학』(Handelsbetriebslehre und Einzelwirts chaftslehre)이 출판되었다. 거기에서는 경제적 가치 변동은 개별경제(특히 영리경제)에 있어서만 엄밀하게 기록되는 것이므로, 그 경제적 행위의 인과관계는 수(數)에 의한 표현을 이용해 설명할 수 있다 하고, 국민경제학에 내용을 부여하는 사경제적인 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이리하여 스틸리히(O. Stillich)를 거쳐서 바이어만·쇠니츠의 과학적 사경제학 및 니클리슈의 『상업의 사경제학으로서의 일반상인적 경영론』(Allgemeine Kaufmannische Betriebsleher als Privatwirtschaftslehre des Handels)이 대두하기에 이르렀고, 독일 경영학의 새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