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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제국의 경영사정[편집]

Asia 諸國-經營事情

아시아 제국의 경영실정을 파악하는 데는 특히 기업의 인적 구성, 사회적 관습과 제도, 정치적 환경과 경제적 발전단계 등에 관해서도 유의하여야 한다.

자본과 기술, 자원의 개발 등 기업의 물적 요소면에 있어서는 과학기술이 일찍이 발달한 구미 선진제국에 뒤져 있고, 또한 제반 경영관리제도의 도입도 일천(日淺)하여 관리제도상의 혁신적 국면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경제성장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는 일본에 관해서 말하더라도 기술혁신을 제외하고는 근대적 경영제도의 도입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아직도 요원하다고 하겠다.

일본의 경영사정[편집]

日本-經營事情

일본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이 세계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기업들이다. 일본의 기업들은 1945년의 패전으로 허탈상태에 빠져 있었으나, 한국동란시의 군수품 특수(特需)를 계기로 해서 본격적인 설비의 근대화와 경영의 합리화를 기해 오늘날의 번영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영을 이렇게 피상적으로만 보아서는 그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경영을 ① 공업화의 과정을 경영형태, ② 전통적인 조직구조, ③ 기술혁신의 자세 등의 몇 가지 국면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하자.

공업화의 과정과 경영형태[편집]

工業化-過程-經營形態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래 서구문명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고 정치적·사회적인 여러 가지 제도를 받아들였으며, 서서히나마 학문적 견지에서 서구의 과학을 도입하여 왔다.

그러나 일본의 공업들이 급격히 발전한 기반은 쇼와(昭和)시대에 들어와서였고, 그것도 1930년 이후 전쟁준비를 서두른 군국주의 정부와 손을 잡은 소수의 재벌(財閥)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쓰이(三井)·미쓰비시(三菱)·스미토모(住友)·야스타(安田) 등의 거대재벌들은 대륙지배의 야욕을 품은 일본 군국주의 정부의 절대적인 원조와 보조금을 받아 제각기 항공·선박·차량·방직·제철 등 주요 군수산업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재벌들은 주요군수산업을 장악함은 물론 은행을 설립하고, 점차 여러가지 일반소비재의 제조업도 그 지배하에 계열화하였으며, 결국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직전까지 1개의 재벌이 30개 내지 40개에 달하는 산하기업을 소유함에 이르렀다.

이러한 재벌 이외의 기업들은 대부분이 중화학공업 계열에서는 멀리 떨어진 산업분야에 속하는 영세기업 또는 중소기업들이며, 일본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일본의 공업화 과정을 일본공업의 파행적 2중구조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벌들은 어떻게 그 산하기업들을 지배하고 또 경영하였을까. 이상에 지적한 재벌들의 최고지배는 단일가족(單一家族) 또는 한 가족집단(家族集團)의 손에 있다. 하빈슨(F. Harbinson)과 마이어스(C. A. Myers)는 이러한 지배체제를 '가족군주체제(家族君主體制)'라고 부르고 있다.

기업체가 성장하고 산하기업의 수가 늘어나자 이 가족군주들은 고용된 중역(番頭)과 숫자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기능공·기술자에게 경영의 권한을 위양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재벌들은 각종의 전문가들을 그 재벌 또는 씨족(氏族)에 충성심(忠誠心)을 다하고 일평생을 통해 봉사한다는 언질을 받고 또한 그렇게 할 것을 전제로 해서 고용하는 것이다.

또한 각 재벌들은 그들의 대표자 또는 전문가들을 기계·생산공정·자재공급 등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영국·독일·미국 등으로 파견해 왔다. 일본은 산업기술에 있어서 서구의 선진 제국에 뒤져있었으며, 또한 자본의 운용, 기업의 관리 등 고도의 지적 활동을 요하는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권위로는 국내 최고의 행정력과 기술적 지식을 갖춘 인재를 구할 수 있었고, 종업원에 대해서는 충성심과 인내력을 종용하여 소위 '군주체제'적인 경영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일본이 패전하자 이러한 재벌들은 연합군에 의해 해체되었다. 그러나 평화조약 후 구재벌들은 다시 재건되었으며, 오히려 신흥재벌들도 조직되어 가고 있다. 기업의 통합, 의사의 교환, 융자 또는 투자 등의 여러 가지 계열화의 형태로 종전의 재벌 이상의 거대한 기업들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작금에 이르러 일본의 대기업들은 증권시장(證券市場)의 발달과 금융자본을 매개로 거대한 자본을 조달하여 대규모의 확대투자를 하고 있음은 물론, 서구 제국 또는 동남아 제국에 '플랜트(plant)' 수출을 촉진함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조직구조[편집]

傳統的-組織構造

일본의 기업경영의 전통적인 특징은 종신고용제(終身雇用制)와 연공서열적(年功序列的)인 임금 및 승진제도라는 것은 아베글렌(J. C. Abegglen)·하빈슨(F. Harbinson)·마이어스(C. A. Myers) 등 일본의 경영을 분석한 외국학자들이 다같이 지적한 바이다.

이와 같은 관습은 공업화 이전의 봉건적인 주종관계나 또는 가부장적(家父長的) 가족제도를 말하며, 이러한 생활관습이 그대로 기업이란 조직체에 도입되어 고용주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과 직장내의 인적 조화(人的調和)를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가부장적 인적 관계는 서구 제국의 기업가나 경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봉건적이고 불합리적이며 비능률적인 제도라고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령 서구 제국의 기독교적인 직업윤리나 경쟁적·개인주의적인 직장의 인간관계, 합리적인 생산조직은 기업의 생산력을 높이며 경영의 근대화를 촉진하는 데 적극적인 힘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이란 특수한 사회적·문화적인 기반을 지닌 사회에서는 도리어 종신고용제 또는 연공서열적인 제반 관습이 능률적으로 작용하여 기업의 발전이나 국민경제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일본의 공업화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서구 제국의 그것이 밑으로부터 조성된 데 반해, 위로부터 다시 말하면 군국주의적 정부가 추진한 것이며, 또한 이러한 위로부터의 공업화가 가능했던 것도 역시 이상과 같은 일본인의 전통적인 기업에 있어서의 인적·윤리적 관습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사적(私的)인 개인소유이며 아직까지도 가족경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독특한 이상과 같은 제도는 2차대전 후 서서이 해체되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전후에는 전문경영자가 기업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세력이 강력해짐에 따라 가부장적인 지배와 주종간의 신분적 차별에 대한 종업원의 사회적 가치관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종신고용제가 아직까지도 뿌리깊게 남아 있으며, 연공서열적인 임금제도가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노사관계가 경제성장을 촉진한 요인이 되었다는 견해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기술혁신[편집]

技術革新

일본의 경영에 관해 특히 지적되어야 할 점은 기술혁신과 신제품개발에 대한 각 기업의 경쟁과 노력이다.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기술혁신은 일본경제의 고도성장에 불가결한 요인이었다.

무역자유화와 자본자유화라는 국제경제체제 하에서 일본의 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을 쟁취하는 첩경이 그들의 기술수준을 선진 제국의 그것과 동등하게 높이며, 또한 국제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은 기술개발을 위한 스태프(staff) 조직을 강화하고, 장기계획을 도입,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적으로 늘이고 있다. 일본의 대기업들의 연구개발비는 미국의 그것에 비해 아직 낮은 수준에 있으나, 그래도 매출액의 5%를 차지하는 기업이 많으며, 강력한 중앙연구소(中央硏究所)를 설치하는 것이 일종의 붐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기술자양성에 있어서도 이공계 대학의 기술교육이나 정부의 과학기술진흥책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은 사내(社內)에 학교를 설립하여 독자적으로 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다. 가령 철강업계에서는 철강대학(鐵鋼大學)을 설립하였다.

인도의 경영사정[편집]

印度-經營事情

산업구조

産業構造인도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현재의 인구는 약 6억에 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경제성장이 극히 뒤떨어져 있으며, 앞으로의 개발이 촉망되고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이유에서일까. 일반적으로는 200여년 간에 걸친 식민지 경제하에 놓여 있어 첫째로 민족자본의 부족, 둘째로 과학기술의 후진성, 셋째로

특히 인력개발의 후진성이 지적되고 있다.

산업구조면에서 볼 때 인도는 아시아 제국의 후진성과 같이 아직까지도 절대적인 농업국이다.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나머지 30%가 상업·교역, 각종의 용역사업, 가공 및 제조업이다. 그러나 제조업은 현대적 산업에 비교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소규모 또는 수공업적 산업이다.

정부는 수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공업화를 촉진하여 왔고, 1956년의 산업화 정책은 국민소득수준의 향상과 중공업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원래 인도의 면직물(綿織物)과 주트직물의 공장생산은 이미 1850년에 시작된 것이며,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광산과 철도망이 확장되었다. 면직물산업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최대 제조업이며, 기타의 제조업은 철강(鐵鋼)·고무제품·화학약품·지류·제당·철도기기·자동차·병기 등이다. 특히 철강 및 병기·기계공구·통신기기·비료공장 등은 공기업이다.

또한 기업규모에서 볼 때 인도의 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며, 5,000명 이상의 종업원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국영기업이다. 면직물·주트직물업에 있어서는 민간기업에도 이러한 규모의 기업이 있고, 국영철강업에서는 3만 명을 고용한 기업도 있다. 재정투자에 의한 공기업은 대부분 외국의 기술용역회사에 의해서 설계되고 최신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인도의 경영자[편집]

印度-經營者

인도의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층은 본질적으로 세습적이라고 한다. 인도의 세습적 경영은 첫째로 대가족제도(大家族制度)와, 둘째로는 인도인들의 영국인으로부터 답습한 '경영대리(經營代理)' 제도에 연유한다.

'경영대리' 제도는 영국통치하의 산물이며, 이 제도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여러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영국인들이 자기자본(自己資本)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인 배려, 둘째로는 기업지배를 집중화하는 한편 지역사회의 융자와 기업신용을 얻기 위한 기구로서, 셋째로는 카스트제도나 대가족제도의 지역사회에 있어서의 권위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그 구성원(構成員)들에게까지 경영관리에 관한 의무(義務)를 부과하게 된다는 사회적 효과 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인도인들에게 경영 또는 관리직위를 제공해 줌으로써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효과를 볼 수 있었으며, 경영대리기관은 일종의 대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대리기관은 면직·시멘트·화학약품·유류(油類)·보험·은행·부동산·식료품·지류·간행물·신문·광산업 등을 지배하며, 대가족의 카스트적인 신분제도를 한층 더 굳건히 보장해 주는 것이다.

한편 경영대리기관은 소유권은 물론 투표권까지 지배하여 그의 권력남용과 친족등용주의 제도의 폐지를 입법화(立法化)하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인도의 독립과 더불어 외국인기업의 생존과 투자는 기술 및 경영진용의 '인도화(印度化)'를 조건으로 하게 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일부 외국기업들은 능률본위의 승진을 통해 전문경영자를 육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외국의 투자기업들의 최고경영층은 아직까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정치적 이유 또는 경비면으로 보더라도 인도인을 전문적으로 훈련하여 등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인식되어 가고 있다.

경영연구기관[편집]

經營硏究機關

인도에는 기술 및 생산성연구와 전문경영자의 육성, 또는 기업의 중간관리층의 지도를 위한 연구기관이 많이 설립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의 민간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연구기관의 활동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상공회의소연합회·전인도제조업자 조합 등 고용주기관에서는 경영관리의 육성보다도 정부의 입법이나 정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생산성연구협회·회계사협회·경영공학회 등의 특수한 연구기관들만이 경영자 활성에 전념하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는 기업의 경영진단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