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동양의 중세 교육사상/동양의 중세 교육사상〔槪說〕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동양의 중세교육은 내용이 한층 복잡하고, 시대도 장기간일 뿐 아니라 시대 구분에도 문제점이 많다. 중국의 중세교육은 위진남북조 시대로부터 청말(19세기 후반)의 서양식 근대교육이 시도되기 이전까지의 시기로 잡을 수 있다. 우선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사회가 혼란하였으므로 관학·사학 모두 큰 발달은 없었다. 수(隋)대는 왕조가 아주 단명하였으므로 학제면에서는 역시 두드러진 바가 없었으나, 당(唐)대에는 중국의 전통적 교육제도(고형학교 체제)의 확립 시기로 볼 수 있을 만큼 발전된 시대이다. 중앙에는 학무(學務)를 총관하는 '국자감'을 두고 그 관장하에 '육학(六學;국자학·태학·사문학·율학·산학 및 서학)'과 문하성(門下省) 예하에 '홍문관(弘文館)', 동궁(東宮) 예하에 '숭문관(崇文館)'을 두었고, 기타 '의학' 등 '전문학교'를 두었으며, 지방에도 각 행정구역에 관학을 설립하였다. 이 중 전문학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왕족·귀족 학교였고 서민에게는 입학이 거의 제한되었다. 한편 '과거제도'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9품중정법(九品中正法)'을 폐지하고 수의 문제(文帝)가 시도한 것(598)으로, 당대에 와서 제도적 확립을 보았다. 송(宋)대에는 학교제도는 전반적으로 당대보다 오히려 충실해졌으며,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서민에 대한 교육도 고려되었다. 그러나 북송 말부터는 관학이 오히려 '서원'에 압도되기 시작하여, 남송대에는 국가의 장려도 있어 중국 역사상 서원의 황금시대였다. 원(元)대에는 원조의 문교정책 자체가 엄격한 민족분할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으므로 학교도 몽고인·색목인을 위한 학교와 한민족을 위한 학교로 구분되었다. 한편 원대에도 관학보다는 서원이 더욱 발달한 시대였으나 원조의 통제정책으로 인하여 반관학화되고 말았다. 명(明)대에 와서는 소위 고형학교 체제에 개혁이 나타났다. 즉 원대까지 교육감독기관이던 국자감을, 명대에는 중앙의 모든 교육기관을 통합하여 국자감이라 함으로써 직접 교육기관으로 변하였고, 또 이전의 귀족학교적 성격을 버리고 서민학교로 개방시켰다. 또 교육내용도 경사(經史)의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역사제도(歷事制度)'라고 하는 실습교육을 도입한 것 등은 전대에서 볼 수 없는 개혁이었다. 또 지방 부주현 유학을 총관장하는 제학관제(提學官制)도 새로 마련해서 지방 관학의 진흥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교육기관을 관학으로 통일시킴에 따라 학교는 완전히 과거제에 포괄되어 과거시험의 준비단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조(淸朝)의 교육은 19세기 후반에 와서 근대식 교육제도가 시도되기 전까지는 제도의 내용이나 성격상 명대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즉 청조는 지배족인 만주족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학교(旗學·覺羅學)를 설립한 외에는 학교제도에서 오는 공과(功過)는 모두 명대의 그것과 흡사하였다. 한편 서원은 명대보다 훨씬 발달하였으나 국가의 정책상 반관학화되고 말았다. 인도의 중세교육은 회교(回敎)식 교육으로 대표될 수 있다. 즉 8세기 중엽 이후 점차 회교의 세력이 인도에 침입하기 시작해서, 13세기에 와서는 회교도 세력이 북인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회교왕조에서는 회교사원에 도서관과 학교를 부속시켜서 그곳에서 기초교육을 실시하였다. 특히 '무굴제국'의 악바르왕 때에는 초·중등학교 정도의 '회교학교'를 건설하고, 아라비아문자·코란시(詩) 및 페르시아어·회교법률·수사학·논리학·자연과학 등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일본의 중세 교육은 가마쿠라(鎌倉)시대 이후 무가(武家) 교육에서 비롯된다. 가마쿠라시대부터 무로마치(至町)시대를 거쳐 에도(江戶)시대 초기까지 장기간 학교형태를 가진 교육기관은 없었고, 무가의 자제를 위한 교육은 불교사원에서 행해졌다. 그러므로 교육과 문화활동은 각 지방의 사원을 중심으로 무사계급을 중핵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따라서 학문의 내용은 자연히 불교학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으나 에도시대 중기부터는 교육의 지나친 사원 의존 경향에서 탈피하여 차츰 주자학을 기초로 한 학문이 나타났다. 즉 바쿠후(幕府)나 지방의 모든 한(藩)이 무사교육을 위해서 유교주의 교육기관을 설립했으므로 전국에 270여 개의 '한코'가 존재하였다. 한코의 교육내용은 경사(經史)와 시문(詩文) 등 동양고전이 주였으나, 에도시대 말기에는 국학(國學;일본의 고전<史書>) 및 양학(洋學;외국어와 과학·의학 등)도 교수하였다. 한코에서는 또 무예도 정규 과목으로 이수시켰다. 에도시대에는 서민의 교육기관으로 '테라고야(寺子屋)'를 설립하였는데, 말기에는 농어촌까지 보급되어 전국에 1만여 개나 존재하였다. 에도시대의 이러한 교육의 발전은 뒤이어 나타난 메이지 이후 근대교육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吳 金 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