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인도의 사상/이단의 제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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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제교설[편집]

異端-諸敎說

여기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베다 성전(聖典)>의 권위를 정면으로부터 부정한 철학설(哲學說)을 말한다. 불교(佛敎)도 흥기했을 당초에는 이 이단설의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도덕부정론[편집]

道德否定論

불교의 흥기시대에 나타난 푸라나(Purana Kassapa 佛陀時代의 六師 중의 한 사람, 전 5세기경)에 의하면 "살해·가택침입·약탈·강도·노상강도·간통·허언(虛言) 등을 하여도 조금도 악(惡)을 행한 것은 아니다. 악업(惡業)에 대한 응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제사(祭祀)를 행해도 시혜(施惠), 극기(克己), 감관(感官)의 제어(制御), 진실을 말한다 해도 선(善)이 생기지 않으며, 또한 선(善)에 대한 응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유물론[편집]

唯物論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유물론자(唯物論者)는 아지타(Ajita Kesakambalin 佛陀時代의 六師 중의 한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원소(四元素=四大)만이 참된 실재(實在)이며 독립상주(獨立常主)한다. 그는 또 이들 원소(元素)가 존재하며 활동하는 장소로서 허공(虛空)의 존재도 인정하였다. 인간은 이들 4원소(四元素)로부터 구성된다. 인간이 죽으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던 지(地)는 외계(外界)의 지(地)의 집합(集合)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수(水)의 집합에, 화(火)는 화(火)의 집합에, 풍(風)은 풍(風)의 집합으로 돌아가, 여러 기관(器官)의 능력은 허공으로 귀입(歸入)한다. 인간 그 자체는 죽음과 함께 무가 되며, 신체 외에는 사후(死後)에도 독립하여 존재하는 영혼(靈魂)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화장장(火葬場)에 이르도록 탄사(嘆辭)를 늘어놓지만, 시체(屍)가 불에 태워지면 뒤에는 회색(灰色)의 백골만이 남고 공물(供物)은 모두 재가 된다. 우자(愚者)도 현자(賢者)도 신체(身體)가 파괴되면 소멸하고 사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현세(現世)도 내세(來世)도 있지 않고 선업(善業)이나 혹은 악업(惡業)을 했다고 하여 그러한 과보(果報)를 받는 일도 없다. 시혜(施惠)도 제사(祭祀)도 공희(供犧)도 아무런 의의(意義)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부모도 없고, 또 사람들은 교도(敎導)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바라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유물론·쾌락론은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순세파(順世派) 혹은 차르바카라고 불리어진다. 유물론은 후대까지 존속하였고, 14세기가 되어도 일부에서는 유물론이 행해져, 바라문교 제파로부터 가장 사악한 사상이라 하여 비난받았다. 지식 근거로서는 직접 지각(直接知覺)만을 인정하고, 추론(推論)은 현세의 사항에 한하여서만 그 의의를 인정하였다.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며, 정신성(精神性)은 물질에서 생기는 것이어서 흡사 누룩이 발효하여 알콜을 생기게 하는 것과 같다. 인생에는 고난도 있지만 고난을 물리치고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 어육(魚肉)을 먹을 때 뼈를 추려내야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파쿠다의 7요소설[편집]

-七要素說

파쿠다(Pakudha Kacca yana 佛陀時代의 六師 중의 한 사람)에 의하면 인간의 각 개체는 7가지의 집합요소, 즉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원소(四元素)와 고(苦)·락(樂)과 생명(生命,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7요소는 만들어졌거나 창조된 것이 아니며, 다른 것도 낳는 일도 없다. 이것들은 산정(山頂)과 같이 불변이며 석주(石柱)와 같이 안정되어 있다. 상호간에 다른 것은 손상하는 일도 없다. 때문에 예리한 칼로 머리를 잘라도 이것으로 인하여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 다만 검도(劍刀)가 7요소(七要素)의 간극을 통과하였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결정론과 아지비카교[편집]

決定論-Ajivika 敎

고살라(Makkha li Gosala, 佛陀時代의 六師 중의 한 사람가 속하고 있던 종교는 아지비카라 일컫는다. '생활법에 관한 규정을 엄밀하게 신봉하는 자(者)'라는 의미였으나, 다른 종교로부터 격하하는 뜻으로 폄칭(貶稱)되어 '생활(生活)을 얻는 수단으로서 수행(修行)하는 자(者)'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한역불전(漢譯佛典)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로 번역되어 있다. 마우리아 왕조시대까지는 상당히 유력하였으나 그후에 자이나교 속에 흡수되었다. 그는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서 영혼(靈魂)·지(地)·수(水)·화(火)·풍(風)·허공(虛空)·득(得)·실(失)·고(苦)·락(樂)·생(生)·사(死)의 12종류를 생각하였다. 최후의 6종류는 이러한 이름의 현상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생각하고, 이것을 실체시(實體視)한 것이다. 영혼은 물체와 같이 생각되어 여러 가지 원소(元素) 뿐만 아니라 동물·식물 등 생물에도 각기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체의 생물을 가진 생물이 윤회(輪廻)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무인무연(無因無緣)이다. 또 그들이 청정하게 되어 해탈하는 것도 무인무연(無因無緣)이다. 그들에게 지배력도, 의지력도 없고 다만 운명과 상황과 본성(本性)에 지배되어서 어떠한 상태에 있어서 고락을 향수(享受)하는 것이다. 의지(意志)에 뿌리박은 행위는 성립되지 않는다. 840만의 대겁(大劫) 사이에 우자(愚者)도 현자(賢者)도 유전(流轉)하고 윤회(輪廻)하여 고(苦)의 종장(終)에 이른다.

그 기간에 수행(修行)으로 해탈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마치 실뭉치를 던지면 잘게 풀려서 실이 끝날 때까지 구르는 것과 같이 우자(愚者)도 현자(賢者)도 정해진 기간 동안은 유전(流轉)을 계속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회의론[편집]

懷疑論

불교 흥기시대에 출현한 산자야(Sanjaya Belatthiputta 불교시대의 六師의 한 사람, 전5 세기경)는 "내세(來世)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일 내가 '저 세상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면 '저 세상은 존재한다'라고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는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타 "선악업(善惡業)의 과보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해서도, 그는 마찬가지로 고의로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애매한 답변을 하고 확정적인 대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이와 같은 논설은 '미꾸라지와 같이 매끈하여 포착하기 힘든 의론(議論)'이라 하며, 또 확정적인 지식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고도 일컫는다.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한 판단중지(判斷中止)의 사상이 처음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자이나교[편집]

Jaina敎 자이나교의 조사(祖師)는 6사(六師) 중의 한 사람인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ntaputta 전 444 ?∼전 372 ?)이다. 그의 본명은 바르다마나(Vardhamana)였으나 대오(大悟)한 후에는 마하비라(Mahavira, 위대한 영웅)로 존칭되었다. 자이나라는 것은 '지나(勝者 수행을 완성한 사람)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원시 자이나교[편집]

原始 Jaina敎

당시의 사상계에 있어서는 여러 종교의 사상이 대립하여 서로 다투고 있었으나 마하비라는는 사물에 관한 절대적이거나 혹은 일방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물은 여러 가지 처지에서 다방면에 걸쳐 고찰해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떠한 판단을 내리고자 할 때사물(事物)에 관한 절대적이거나 혹은 일방적인 판단을 내려서는 '어느 점에서 보면'이라는 제한을 붙여서 말하지 말해야 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표현하며 상대적으로 해석할 것이다. 이러한 관찰법(觀察法)을 '보는 방법'(나야)이라고 하는데, 이 점(點)에 의해서 자이나교(敎)의 입장은 부정주의(不定主義, 相對主義)라고 불린다. 마하비라는 이와 같은 비판적·반성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베다 성전(聖典)>의 권위를 부정하였고, 바라문들이 항상 행하고 있는 제사(祭祀)는 의의(意義)도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계급제도에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합리주의적 입장에 서서 모든 사람이 어느때 어느 장소에서든지 신봉해야 할 보편적인 법(法=달마)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하비라는 특히 현세의 비참(悲慘)·고뇌(苦惱)를 통절한 말로써 강조하고 있는데, 이 고뇌를 해탈하기 위하여 그는 형이상학적 고찰을 개시한다. 우주는 많은 요소로써 구성되어 있으나, 그것을 <영혼(靈魂)>과 <비영혼(非靈魂)>의 두 가지로 대별한다. 지(地)·수(水)·화(火)·풍(風)·동물·식물의 6가지 종류의 실재가 있기 때문에 6가지 영혼이 있으나, 그것은 물질의 내부에 상정(想定)되는 생명력을 실체적(實體的)으로 생각한 것이다. 조금 뒤의 영혼관(靈魂觀)에 의하면 영혼은 그가 의지하는 신체에 응할 만한 크기와 상승성(上昇性)을 갖고 있다고 한다. 비영혼은 운동의 조건, 정지의 조건, 허공, 물질의 넷인데, 영혼과 합쳐서 논(論)할 때, <다섯 가지 실재체(實在體)>라고 일컫는다(어느 때는 시간을 한 개의 실재체라고 생각하여 합쳐서 6가지를 상정하는 수도 있다). 허공은 대공소(大空所)로서, 이 속에 기타 여러 가지 실재체가 존재한다. 시간은 영원하면서 단일한 것이어서 공간적인 넓이를 갖고 있지 않다. 물질은 수없이 많이 존재하여 다수의 물체를 구성하고 장소를 점유하여 활동성과 하강성(下降性)을 갖는다. 물질은 원자(原子)로 구성되어 있으나 원자는 부분을 갖고 있지 않으며 분할할 수도 없고, 또 파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원자 그 자체는 지각(知覺)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들이 집합하여 현실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물질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의 밖에는 비세계(非世界)가 존재한다. 우주는 영원한 태고적부터 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태초에, 우주를 창조하였다거나 혹은 지배하고 있는 주재신(主宰神)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가 활동하여 신(身)·구(口)·의(意)의 3업(三業)을 나타내면, 그 업으로 해서 미세한 물질이 영혼을 둘러싸 부착(付着)된다.

업(業)에 속박된 이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적정(寂靜)에 달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고행에 의하여 과거의 업(業)을 소멸함과 동시에 다른 편으로는 새로운 업(業)의 유입을 방지하여 영혼을 정화(淨化)하고, 영혼의 본성을 발현(發現)시키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철저하게 실행하는 것은 세속적인 재가생활(在家生活)에 있어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출가(出家)하여 사문(沙門)이되고, 일체의 욕망을 버리고, 독신의 유행생활(遊行生活)을 행할 것을 권(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행자(修行者)는 비구(比丘)라고 불리어 탁발걸식(托鉢乞食)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는 많은 계율(戒律)이 제정되어 있으나, 우선 첫째로 준수해야 할 것은 불살생(不殺生)·진실어(眞實語)·부도(不盜)·불음(不淫)·무소유(無所有)의 5계(五戒)이다. 자이나교(敎)의 수행자는 계율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 불살생계(不殺生戒)는 특히 중요시 되었다. 일체의 생물은 생명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을 상해하는 것은 최대의 죄악이라고 한다. 자이나 수행자는 무소유(無所有)라는 점에도 철저하여 실오라기 하나 몸에 걸치지 않고 모기나 파리 등에 몸을 내놓아 벌거벗은 나행(裸行)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백의(白衣)를 걸치는 것을 허용하는 일파가 나타났는데 이것을 <백의파(白衣派)>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전연 옷을 걸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나행파(裸行派)라고 한다. 이와 같은 수행에 의하여 업(業)의 속박이 소멸되고, 미세한 물질이 영혼에서 분리되면, 그 결과 죄악이나 오예(汚穢)를 소멸해 버리고 완전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삶도 바라지 않고, 죽음도 욕구하지 않으며 현세(現世)도 내세(來世)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 경지를 해탈(解脫)·적정(寂靜)·니르바나(nirvana 涅槃)라고 한다. 신체의 괴멸과 함께 완전한 해탈이 완성된다. 조금 늦게 성립한 해탈관(解脫觀)에 의하면, 신체(身體)가 죽으면 해탈한 영혼은 본래 갖고 있는 상승성(上昇性)을 발휘하여 상방(上方)으로 진행하여 세계를 벗어나서 비세계(非世界)에 도달하는데, 거기서 영혼은 그 본성(本性)대로 나타나 절대적인 안락이 얻어진다. 이것이 참다운 해탈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엄중한 수행은 재속신자(在俗信者)가 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이치를 믿고 고승(高僧)의 가르침에 좇아 도덕적인 바른 생활을 하면, 사후에는 신(神)들의 세계에 도달하여 즐거운 생활을 향수(享受)할 수가 있다고 한다. 재가신자에게도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엄수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신도(信徒)는 농업이나 도는 일반적으로 생산에 종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직업으로서는 상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자이나 교도는 상업에 정려(精勵)하였고 정직하였기 때문에 평판도 좋았고 부유하여 전세기까지의 인도 민족자본의 과반수는 인도 전인구의 0.5%에 지나지 않는 자이나교도의 수중에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경이 되면서 자이나교는 중앙 및 동남인도에서 성행하였다. 교조(敎祖) 마하비라가 신앙의 대상이 되어 사리숭배(舍利崇拜)가 행헤지고 스투파(塔)의 숭배가 성행했으며 그 근처에는 사원(寺院)이 건립되었다. 재속신자들은 스투파나 사원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헌납하였다(祠堂·奉納堂·貯水池·給水所·遊園·柱·石板의 액자 등). 그와 같은 헌납에는 비상한 공덕(功德)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자이나 교학의 체계화[편집]

Jaina - 敎學 - 體系化

5세기경이 되자 자이나교에서도 교의강요서(敎義綱要書)를 제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후 자이나교에서는 허다한 학자가 배출되었으나 특히 유명한 것은 헤마찬드라(Hemacandra, 1089∼1173)이다. 그는 <행위론(行爲論)> 등 많은 서적을 산스크리트 및 속어로 저작하였는데 구자라트의 왕후(王侯)를 자이나의 신앙으로 들어오게 하여, 살생을 금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주점(酒店)을 전업(轉業)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