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삼국시대의 사상/삼국시대의 고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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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고유 신앙〔槪說〕[편집]

천·일 숭배[편집]

天·日 崇拜단군 신화에 의하면 환웅이 하늘에서 하강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인간 세계 이전에 천계(天界)가 설정되고 신은 하늘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인의 원시적인 우주관은, 우주는 천계(天界)·지상(地上)·지하(地下)의 3단계로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으니 설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천계는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요, 신성한 곳으로 신령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우러러 왔다. 신단(神壇)을 만들 때에는 높은 산이나 언덕 위에 단(壇)을 쌓는 일은 조금이라도 높이 해서 하늘에 접근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을 숭배하는 신앙은 태양을 숭배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의 미간 신앙에 있어 제의(祭儀)가 높은 단 위에서 이루어진 것도 오랜 전통에 의한 것이다. 하늘은 영웅·위인을 낳는다고 생각하였으니 신라의 김유신 설화와 연오랑·세오녀(延烏郞細烏女) 설화에도 나타나 있다. 김유신은 천신과 일체였으며 사람으로 태어나 신라를 통일하고 사후에 천신으로 되돌아 갔다고 전한다. 또 연오랑은 일정(日精)이고 그의 처 세오녀는 월정(月精)이었다고 하니 일월의 정(精)이 조화를 이루어 광명이 있었다고 하는 바 삼국시대에는 천신(天神)·일신(日神)·월신(月神) 등이 주요한 신앙대상이었다.

산신사상[편집]

山神思想

고대의 기록에 의하면 한국인은 산천신(山川神)을 제사했고 수목과 동물에도 신령이 있다고 믿어 왔다. 단군이 죽어서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고 하거니와 산천에는 모두 신령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라에서는 '호사산신(好祠山神)'이라고 했으며 백제에서도 산신을 제사했고, 백마(白馬)를 잡아 산곡지신(山谷之神)을 제사한 바 있었다. 또 신라의 탈해왕(脫解王)은 동악신(東岳神)이 되었으며 박제상(朴堤上)의 처는 치술신모(致述神母=女山神)가 되었다. 이렇게 명사가 죽어 산신이 되었거니와 명산에는 응분한 산신이 있어 수호신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산신사상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으니 신라에서는 동토함산(東吐含山)·남지리산(南智異山)·서계룡산(西鷄龍山)·북태백산(北太白山)·중팔공산(中八公山)을 5악신(五岳神)이라 해서 제사한 바 있다. 산신을 위하는 까닭은 채취생활(採取生活)을 산에서 했던 수렵시대에 있어 그 산을 맡고 있는 산신을 설정하고 마을을 지키고 인간의 산에서의 생활을 보호하도록 기구한 데 있다.

수신숭배[편집]

水神崇拜

해천(海川)에도 제각기 담당하는 신이 있었으니 수신(水神)이다. 수신에는 사해(四海)를 맡는 사해신(四海神)과 소임(所任)은 일정치 않으나 바다에 있다는 해룡, 그리고 하천에도 신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이무기를 비롯하여 여러 수신을 설정하고 그의 가호와 재화를 주지 않도록 제사(祭祀)한 바 있다. 신라의 문무왕은 죽어서 호국의 용신이 되었으며, 처용(處容)은 동해의 용왕의 아들로 되어 있으며, 수로부인(水路夫人)은 해룡(海龍)에 의해서 약람(掠攬)된 바 있었다. 또한 백제에서는 무왕(武王)의 모(母)가 지룡(池龍)과 관계한 바 있어 수신(水神)이 여러 모로 나타나 있다. 물로 인연해서 생기는 행불행은 모두 수신이 작용하는 것으로 믿어 왔으며, 인력이 미치지 못하는 물속에서는 수신이 존재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동물숭배[편집]

動物崇拜

동물인 호웅(虎熊)은 단군신화에 이미 나타나거니와 신라 소지왕(炤知王) 때에 까마귀·쥐·돼지가 나타나 인어(人語)를 하고 또는 사람을 인도(引導) 했다고 한다. 동물이 사람의 말을 지껄이고 사람을 인도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신령시한 것이다. 산신(山神)을 상징할 때에 산군(山君)으로서 호랑이로 표시하거니와 돼지는 길조(吉兆), 까마귀는 흉조(凶兆), 쥐는 길흉을 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바, 이러한 생각들은 이미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거타지(居抒知)는 노호(老狐)를 잡아 요괴(妖怪)를 없애고, 밀본법사(密本法師)도 노호를 잡아 병원(病原)을 밝힌 바 있으니 호요(狐妖)는 변화무쌍하며 조화력(造化力) 있는 것으로 전승되어 있다.

식물숭배[편집]

植物崇拜

거고수(巨古樹)에는 신이 있는 것으로 믿어 왔다. 무속(巫俗)에 있어서나, 동신제(洞神祭)에 있어 거수(巨樹)는 당목(堂木)으로서 신이 하강하는 곳이며 또 귀중(鬼衆)이 군집해 있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신목(神木)을 숭상하여 함부로 베지 않으며 그 낙목(落木)이라 할지라도 불태우지 않는 까닭도 거수 숭배(巨樹崇拜)에서 유래한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태기가 있은 곳이 신수하(神樹下)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귀신사상[편집]

鬼神思想

신령과 아울러 귀신을 위하는 풍속은 일찍부터 있었으나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인격시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귀신은 사람의 운명에 관여해서 화복(禍福)을 주고 때로는 신력(神力)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의 비형(鼻刑)은 귀중(鬼衆)의 두령으로 하룻밤 사이에 석교(石橋)를 놓고 누문(樓門)을 지었다. 귀신은 초인간적인 힘이 있어서 악행을 하기로 들면 재해를 가져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귀신을 외공(畏恐)하고 그 해(害)를 예방코자 제귀신(祭鬼神)하는 풍속이 있었다. 귀신사상은 고대에는 귀신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어서 질병이 있을 때와 천재지변이 있을 때에도 귀신을 제사하고 제액(除厄)을 빌었다. 사람의 길흉에서 한우(旱雨)가 모두 귀신이 작용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양귀(禳鬼)로 퇴귀(退鬼)를 시도하는 일이 많았다.

무속신앙[편집]

巫俗信仰

신라에서는 남해왕(南解王)이 무당이었으니 제정일치를 보여준 셈이다. 무당은 사람과 신과의 중간에서 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일도 담당했다. 사람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고 또 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알려주었으니 제의(祭儀)를 맡고 제정(祭政)도 담당하고 기복 제화(祈福除禍)도 맡았던 것이다. 무당이 국왕이었으니 무당의 사회적 위치는 당당하여 제정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국가 행사 의식에 참여했고, 국운(國運)을 점치고 길흉화복을 담당했다.

점복술[편집]

占卜術

점복(占卜)이란 선지예조(先知豫兆)의 사상이거니와 사람의 장래에 있을 일을 예지하기 위하여 점복을 한다. 이러한 사상은 삼국시대에 이미 왕성하였다. 신라의 석탈해(昔脫解)는 삼일월형(三日月形)의 길지(吉地)를 발견하고 택지를 삼았으며, 백제의 의자왕(義慈王)은 초만월(初滿月)을 점쳤으며 고구려의 추남(楸南)은 선점(善占)하였으니 상자 속에 든 쥐를 알아맞추었다. 점복이 적중한다고 믿었고 예지(豫知)하고자 할 때에는 점복하는 풍속이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민간신앙으로서 하늘을 숭배하고 태양을 위하며 산천을 제사하고 해신(海神)을 숭상하며 수목과 동물에도 신령이 있다고 믿었다. 또 귀신은 사람의 길흉과 관계되기 때문에 방·퇴귀(防退鬼)하는 제의(祭儀)가 있었고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점(占)치는 등 애니미즘의 원시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삼신[편집]

三神 단군신화에 나오는 한임(桓因), 환웅(桓雄), 한검(桓儉 혹은 王儉-檀君)을 뜻함. 일명 삼성(三聖)이라고도 한다. 한임은 천계(天界)의 주(主), 환운은 천계와 인간계의 매개자, 한검은 인간의 조상으로 등장하여, 대종교에서는 이들 삼신이 한얼님 1신의 자기규정들이라고 해석하여 삼신일체설(三神一體說)을 주장한다. 이들을 제사지내는 신사(神祠)로 구월산(九月山)에 삼성사(三聖祠)가 있다.

김유신 설화[편집]

金庾信說話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명장 김유신(595∼673)의 생애를 신격화(神格化)하여 전해진 설화. 여기서는 영웅·위인을 하늘에 연결시키는 천신(天神)숭배의 사상이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다. (1) 유신이 태어날 때 어머니인 만명(萬明)부인은 뇌성벽력이라는 하늘의 도움으로 남편 서현(舒玄)을 만날 수 있었고, 아버지 서현의 태몽에는 형혹성(滎惑星) 두 별이 떨어졌고, 부인의 태몽에는 하늘에서 한 동자(童子)가 하강했다고 하니 김유신은 천명을 받아 태어난 사람이었다. (2) 유신은 17세 때 중악 석굴(中嶽石窟)에서 하늘에 기도하고 비법(秘法)을 전수받았다. (3) 유신은 사후(死後)에 천신(天神)으로 되돌아가 신라의 호국신(護國神)으로 추앙되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편집]

延烏郞·細烏女說話

신라의 설화.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 때 동해안에 살던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일본에 가 왕과 왕비가 되니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일관(日官)의 말을 쫓아 일본에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을 찾았으나 연오랑은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 하고 귀국을 거절하는 대신 세오녀가 짠 세초를 보내 하늘에 제사지내라고 하였다. 신라왕이 그대로 하여 해와 달이 밝아졌다고 한다. 즉 여기서 연오랑은 일정(日精), 세오녀는 월정(月精)으로 되어 있어, 고대인들의 일월숭배(日月崇拜)를 말해주고 있다.

탈해왕 설화[편집]

脫解王說話

신라 제4대왕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재위 57∼80)의 생애에 가탁한 설화, 탄생에 있어 동쪽 먼 나라에서 표류해온 알에서 나왔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와 삼일월형(三日月形)의 길지(吉地)를 발견하였다는 상지술(相地術)설화, 죽어서 동악신(東嶽神)이 되었다는 산신 설화 등이 전한다.

치술신모[편집]

治術神母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처의 설화. 박제상이 왕명을 받아 떠날 때 그 부인이 좆아가다가 망덕사(望德寺) 남쪽 모래 위에 쓰러져 길이 부르짖으니 이곳을 장사(長沙)라 하였고, 뒤에 부인은 남편에 대한 사모를 견디지 못하여,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治術嶺)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 죽어서 마침내 치술신모가 되니, 그 곳에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것은 선도성모(仙桃聖母)설화와 함께 여산신(女山神)을 말해주는 설화이다.

오악신군[편집]

五岳神君

신라 때에 오악 명산에서 받들던 산신(山神)으로 오악은, 동은 토함산(吐含山), 서는 계룡산(鷄龍山), 남은 지리산(智異山), 북은 태백산(太白山), 중(中)은 부악(父岳) 또는 팔공산(八公山)이었다고 한다.

처용 설화[편집]

處容說話

신라 헌강왕 때의 이인(異人) 처용(處容)을 주인공으로 한 설화. 여기서 처용은 동해 용왕(東海龍王)의 아들로 되어 있고, 용을 위하여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 남산신(南山神)과 북악신(北岳神)·지신(地神) 등이 포석정에 나타났다는 것 등이 있어 고대인들의 용신(龍神)사상과 산신사상을 보여준다.

거타지 설화[편집]

신라 진성여왕 때 견당사신(遣唐使臣)의 수행 군사 거타지(居抒知)의 해중조난(海中遭難)을 테마로 한 설화. 여기서는 목간(木簡) 50편(片) 제비뽑기, 서해약(西海若)이라는 해신(海神), 늙은 여우의 변신(變身)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동신제[편집]

洞神祭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정월 보름날 동민들의 제사. 동민들의 연중무병(年中無病)과 평온무사, 풍년을 빌기 위한 것으로 여기에는 금(禁)줄을 비롯한 각종 터부(taboo)와 큰 고목 나무를 신으로 받드는 거수숭배(巨樹崇拜) 등이 나타나 있다.

남해왕[편집]

南解王

신라 제2대 왕(재위 4년∼24년).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 남해 거서간(南解居西干)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이 <차차웅(次次雄)>이라는 칭호가 무당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데서 최근에는 그를 제정일치(祭政一致)에 의한 무당 겸 추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추남 전생설화[편집]

楸南前生說話

김유신 설화 속에 나오는 고구려 첩자 백석(白石)의 자백 속에 고구려의 점쟁이 추남(楸南)이 왕을 충고하다가 원사(怨死)하여 신라의 김유신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신라 호국산신(護國山神)으로 세 여신이 출현하고, 국경의 역류수(逆流水)를 점치는 것이 나오며, 추남이 쥐 여덟

마리를 알아맞춘 점복 등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