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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삼국시대의 사상/삼국시대의 사상〔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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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라고 하면 고대국가가 성립되는 시기요, 중국과의 활발한 접촉을 통하여 봉건사회의 골격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사상 역시 고대왕국의 정립(鼎立)과 봉건사회의 형성, 외래사상의 유입을 통하여 한국사상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조선(古朝鮮)시대부터 보전되어 오던 원시종교와 원시사상의 고유성이 이 때에 이르면 중국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유교·불교·도교의 충격을 받아 크게 위축되고,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은 다투어서 이러한 외래사상을 수용하고, 사회체제의 개혁을 서두른다. 낙랑(樂浪)문화를 통한 중국 문명의 전래에 이어서 중국의 남북조시대와 때를 같이 한 삼국의 개화(開化)는 곧 동양사상권에의 참여를 의미한다. 이 때에 비로소 한국적인 것이 동양적인 것 속에 포용되고 동양사상의 맥락이 한국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 백제의 침류왕(枕流王) 원년, 신라의 법흥왕(法興王) 14년에 각각 시작된 개화운동은 불교의 전래, 교육기관의 설치, 율령제의 도입, 대 중국 외교관계의 성립 등으로 큰 진전을 보였으나 여기에는 역시 토착사상의 반발, 삼국 상호간의 대립 등 적잖은 난관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래부터 슬기롭고 진리를 사랑하는 한민족은 재빨리 새 사상에 적응하여 그것을 소화하고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여 사상의 유래를 찾아 중국·인도까지, 사상의 전파를 위하여 일본에까지 나아가니 그 활약상은 눈부셨다. 불교는 중국 삼론종(三論宗)의 3대조까지 된 고구려의 승랑(僧朗), 인도에까지 가서 경률(經律)을 가져와 번역한 백제의 겸익(謙益), 중국에 유학하여 새로운 불교이론을 배워와 진호국가사상(鎭護國家思想)을 특징으로 하는 신라불교를 일으킨 원광(圓光)·자장(慈藏) 등은 모두 한국 불교의 조사(祖師)들이다. 이들에 의하여 삼론학(三論學)·성실론(成實論)·천태학(天台學)·율학(律學)·열반학(涅槃學)·화엄학(華嚴學) 등이 개창되니 한편으로는 불교사상의 황금시대가 준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에서는 개화를 촉진시켰다. 다음에 유교는 좀더 일찍 한문의 전래와 함께 도입되어 고대국가의 정치이념과 사회윤리로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유교 교육기관인 태학(太學)과 경당의 설치(고구려), 유교박사 고흥(高興)과 왕인(王仁)의 활약(백제) 등이 한국 유학의 첫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하나의 사상이론으로 발전하는 데는 좀더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였다. 다음에 도교(道敎)는 4∼6세기경에 이미 고구려에 보급되어 왕실과 귀족의 숭신(崇信)을 받았다. 양원왕(陽原王) 이후로 중국과의 접촉을 통하여 도사(道士)와 천존상(天尊像)이 들어오고, 나라에서 불교를 억압하고 도교를 장려하니 혜량(惠惠), 보덕(普德) 등의 고승이 이를 탄식하여 신라로 넘어가는 일까지 생겼고, 연개소문(淵蓋蘇文)은 불교 배척의 중심인물이었다. 한편 백제에서도 4세기에 이미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이 전해진 기록이 있으나, 신라는 통일 이후에야 도교를 맞게 되었다. 이와 같이 외래사상이 정착하는 동안에는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유사상은 모습을 달리하여 발전하였으니 하나는 천신숭배(天神崇拜)와 연결된 단군(檀君)신앙이요, 다른 하나는 한국 고유의 무사도(武士道)가 외래사상을 받아들여 강력한 사상체계로 발전한 신라의 화랑도(花郞道)이다. 특히 화랑도는 진흥왕 때에 인재등용(人材登用) 제도와 연결되고 불교·유교를 포용한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정하여짐에 따라 큰 힘을 발휘하여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삼국시대의 사상을 종합해 볼 때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대가 토착사상과 외래사상의 종합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의 민족사상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때에는 그래도 한국인의 지혜와 독창성이 섬광을 발휘하여 생명력 있는 민족사상의 서광이 보였던 것이다. <金 東 華>